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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원그룹 - LA 할리우드장로병원

한국식 밤 11시 회진 미국서도 통하다

윤상철 | 139호 (2013년 10월 Issue 1)

 

 

 

 

 

2013 9월 중순, 국내 유수 의료기관 대표들이 모여 세미나를 열었다. 내용은의료기관의 해외진출 사례연구였다. 세미나 도중 모 의료기관 대표가 말했다. “솔직히 대한민국 의료기관 중 제대로 된 해외진출 성공사례가 있나?” 중동 진출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이 의료기관 대표의 자조 섞인 한마디에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유독 한 사람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자신의 발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양원석 차바이오앤디오스텍(이하 차바이오텍) 대표이사였다. 차병원그룹은 차광렬 그룹 회장의 지휘 아래 지난 2004년 적자에 허덕이던 미국 LA 할리우드장로병원(Hollywood Presbyterian Medical Center, 이하 HPMC)을 인수해 불과 2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다.

 

 

차병원그룹이 최초로 세계 최강 의료 대국인 미국 땅을 밟은 건 1999.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차병원그룹으로 연락이 왔다. ‘로열티를 지급할 테니 차병원불임치료 관련 노하우를 전수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마침 국내에서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각종 규제로 고민이 많던 차병원그룹은 이를 받아들였다. 막상 미국에 진출해 보니 특정 영역에서는 한국 의학이 미국에서도 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때 컬럼비아대가 위치한 동부가 아닌 반대편 끝에 있는 서부지역이 눈에 들어왔다. 차병원그룹은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는줄기세포관련 연구에 규제가 가장 적은 서부를 거점으로 삼기 위해 2002년부터 LA 지역에불임센터를 건립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연구활성화와 차병원 브랜드의 글로벌화를 위해 실제 병원을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이 경영진 사이에서 공감대를 얻었다. 그때 마침 매물이 나왔다. LA에 있는 종합병원 HPMC(할리우드장로병원)였다.

 

1.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병원을 2년 만에 흑자로 바꾸다

 

HPMC 1924년 설립돼 LA 지역의 중추 종합병원으로 자리 잡았지만 의료시설 및 시스템 측면에서의 경쟁력이 뒤처지면서전통빼고는 볼 게 없는 병원이 된 신세였다. 차병원그룹이 쉽사리 손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의료보험 체계부터 병원 운영 및 관리 체계가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미국 병원을 차바이오텍이 인수해 성공하리라고 전망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차병원그룹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80년 역사와 434병상 규모의 병원은 분명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434병상이라고 하면 그다지 크지 않은 병원처럼 느껴지지만 총매출이 1조 원에 달하는 큰 조직이다. 한국에서도 1조 원이 넘는 병원은 다섯 개가 되지 않는다. 특히 1인실 시스템임을 감안하면 4인 병실 등 다양한 다인 병실을 보유한 한국 병원을 기준으로는 1500병상 수준이 된다.

 

 

연면적 99000여㎡, 대지면적 33000여㎡의 미국 종합병원은 그렇게 차병원그룹 품으로 들어왔다. 미국 현지 의료진 500여 명과 1400여 명의 직원도 함께였다. 많은 국내외 의료계 관계자들의 우려와 달리 EBITDA 기준 2005 70만 달러 적자였던 HPMC는 인수 2년 만인 2006 50만 달러 흑자로 돌아섰고 매년 등락을 거듭하면서도 꾸준히 성장해 2012년에는 4070만 달러 이익을 냈다. 특히 경영이 안정화되고 ‘HPMC가 바뀌었다는 인식이 퍼진 2010년 이후에는 급속한 성장을 했다. (그림 1)

 

1) 완전히 다른 나라, 미국에 적응하라

 

HPMC를 인수한 차병원그룹의 가장 큰 고민은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병원 경영환경이었다. 영리법인을 허용하는 제도적 여건은 분명 차병원그룹에 좋은 기회였지만 한국과 달라도 너무 다른 의료보험체계가 가져올 혼선이 가장 크게 우려됐다.1  일단 최고의 보험 전문가, 의료기관 경영 전문가들을 고용해 사보험회사들과 보험금 지급 방식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현지 실정을 몰라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했다. 보험회사들의 연합체 내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맞춰주면서도 병원 쪽 입장이 반영되도록 했다. 차병원그룹 CEO인 차광렬 회장은 아예 미국에서 2년간 상주하면서 관련 전문가들로부터 매일 밤특별과외를 받으며 한국제도와의 차이를 배워나갔다. 전문가로 고용된 이들도 성과가 없거나 명성에 비해 실력이 부족하면 6개월도 안 돼 해고해버렸다.

  

 

 

①최종 고객에 앞서 중간 고객부터 잡아라 법적·제도적 차이를 극복하는 건 법률 전문가, 컨설턴트 등을 고용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지만 실제 고객을 병원으로 끌어들이는 건 차병원그룹 경영진의 몫이었다. 1999년부터 미국 상황의 특성을 연구해온 차병원그룹 경영진은 지역, 개인 혹은 소규모 병원클리닉의사들이 고객 확보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개인 병원에서 진료를 받던 환자의 상태나 증상이 종합병원에서 정밀 검진을 받고 치료해야 할 때 해당 클리닉의 의사가 환자를 종합병원으로 데리고 와야 하는 게 미국의 병원 시스템이다.이른바파트너의사들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그들로부터 외면받으면 종합병원은 운영 자체가 어려워진다. 자연스레 개인 병원, 소규모 클리닉 의사들은 종합병원의중간고객이 된다. 자칫 한국의 의료수준에 대한 잘못된 이해나 편견 등으로 생길 수 있는 피해를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었다. 이때 줄기세포 연구를 위해 2002 LA 지역에 HPMC와는 별도로 개설해 둔불임센터’가 큰 역할을 했다. 이미 의학계에서 전 세계적으로 차병원그룹의 불임 관련 연구와 성과는 잘 알려져 있었고 그런 세계적 수준의 ‘CHA’브랜드가 인수해 운영하는 종합병원은 80년 전통에 첨단을 더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즉 적자경영에 허덕이긴 했지만 남캘리포니아 지역에서 3대 종합병원으로 이미 확실한 인지도가 있던 HPMC 앞에 ‘CHA’라는 브랜드를 조심스럽게 붙여줬다는 것이다.2  기존 대형 병원으로서 HPMC가 지니고 있던 강점은 그대로 보존한 채 의료 전문가들 사이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차병원그룹의 강점을 살짝 얹은 셈이다. 자연스레 각 타운에서클리닉을 운영하는 주치의들을 다수 확보할 수 있게 됐다.

 

 

②다민족 사회에 맞는 마케팅 전략을 짜라 교민사회만 노리고 들어가면 반드시 망한다.” 양원석 차바이오텍 대표의 말이다. 양 대표에 따르면 한국의 작은 병원들이 미국에 들어가 실패하는 주된 요인 중 하나가 한국 교민사회만으로 충분히 시장이 될 것이라고 보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교포 사회에 이미 한국계 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은 충분하고 미국 특유의클리닉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없기 때문에 반드시 실패한다는 얘기다. 물론 HPMC를 인수한 직후 차병원그룹 역시 빠른 안정화를 위해 교민사회를 공략했다. 인수 직후에는 1개 층 모두를 털어 한인 전용 병동을 만들어버렸다. 24시간 한국TV를 시청할 수 있도록 했고 한국인 조리사가 만드는 한식도 제공했다. 한국계 의료진도 더 확충했다. 하지만 그건 병원의 시급한 정상화를 위한 것이었고 병원 안정화 직후 곧바로 전 민족별로 차별화된 마케팅을 펼쳐나갔다.

 

우선 백인과 흑인 등 다수 미국인들을 공략하기 위해 버스에 광고판을 달고 전통의 HPMC가 새로운 경영과 신의료장비 도입으로 완전히 거듭났음을 알렸다. 또 아르메니아인 사회도 공략했다. 현재 LA 지역에는 한인커뮤니티보다 아르메니아계 커뮤니티가 더 커졌을 정도로 아르메니아계 인구가 많다. 이들이 특히 자국어로 나오는 TV를 즐겨본다는 점에 착안해 TV 토크쇼 프로그램에 의료진과 병원이 노출되도록 했다. 필요하면 출연할 수 있도록 했고 광고도 공격적으로 만들어 유명 토크쇼 시간대를 공략했다. 한인들은 인수 직후 한인 전용 층을 만들며 이미입소문이 난 상태였지만헬스케어 페어같은 큰 행사에 적극 나섬으로써 입소문을 확산시키고 신뢰를 더욱 공고히 했다. 특히 TV보다 신문을 즐겨보는 한인들을 위해 신문광고 위주의 마케팅을 펼쳤다. 일본인 같은 경우 보통 병원 선택에 신중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활동하는브로커를 활용해 그들이 홍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그 결과 현재 환자 비율은 백인이 50%, 일본인이 25%, 한인이 20%, 아르메니아계를 포함한 기타 민족 혹은 인종이 5%를 차지하게 됐다. (그림 2) 또 웹사이트에서만 6개 국어를 제공하고 각 인종·민족별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코디네이터를 충분히 고용함으로써 실제 병원을 찾은 여러 민족들이 다시 찾을 수 있는만족감을 제공했다.

 

③‘브랜드’가 없으면 고객도 없다 미국은 병원도 영리법인인 경우가 많고 경쟁도 매우 치열하기 때문에 철저한 브랜드 관리가 이뤄진다. 의사 자체도개인이 브랜드인 나라답게브랜드 가치를 올려야 한다. 병원도 단순히 크기가 크고 역사가 오래됐다는 사실보다실제로 어떤 분야를 잘 진료하고 어떤 강점이 있다고 내세울 만한 게 있어야 한다. 한국의 경우 의사 개인 브랜드가 크게 영향을 끼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대학병원’ ‘큰 병원에 대한 신뢰가 의사 개인 브랜드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차병원은 처음에는 가장 잘하는 분야인산부인과 분야부터 인지도를 높이고 신뢰를 쌓은 뒤 다른 진료과목에도제고된 브랜드 이미지를 확산시키는 방법을 썼다. 그 결과 성공적인 현지 안착과 전 진료과목에 대한 신뢰도 상승이 이뤄졌다. (그림 3) 초기에는 산과와 부인과 진료 비중이 상당히 높았지만 2012년 현재 산과 비중은 14.1%고 최근 가장 많이 투자한 재활의학과가 13.9%나 된다. 그 밖에 심장과, 일반 내과 등도 점차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산부인과와 신생아과의 강점으로부터 시작해줄기세포와 연관된 재활의학과 쪽으로 투자를 높였고 소기의 성과를 이뤘다. 유전적인 질환이 많은 심장질환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라인이 점차 강화되는 결과도 보여주고 있다.

 

실력 있는 의사를 모집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됐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엄밀하게 말해한 병원에 소속된 의사는 없다. 여러 병원과 파트너십을 맺고 해당 병원을 오가면서 진료와 수술을 한다. 의사에게 선택권이 주어지다 보니 병원 입장에서는 좋은 의사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진다. 산부인과 영역에서는 이미 차병원그룹의 명성을 아는 의사들을 확보하기가 어렵지 않았지만 다른 분야에서는당근이 필요했다. 의사 직군은 다른 어떤 직군보다 이민자 출신이 많기 때문에 HPMC의 다인종 서비스 기반은 이들에게 큰 유인이 됐다. 또 다른 어느 병원보다 의사를 존중하는 간호사들이 있다는 소문도 나면서 실력 있는 의사들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2)‘한국식 병원의 강점을 활용하라

 

HPMC의 성공에는한국 의료서비스 특유의 강점을 적절히 잘 활용한 점도 크게 작용했다. 한국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서비스나 운영시스템이 미국에서는깜짝 놀랄 만한것들인 경우가 많았다.

 

①밤 11시 회진과 미역국 차광렬 차병원그룹 회장은 인수 직후 2년간 HPMC에서 거의 숙식을 해결하다시피했다. 그는 너무도 당연한 듯 밤 11시에 회진을 돌며 환자들을 만났다. 퇴근 시간 이후에, 그것도 한밤중에 병원의 오너가 회진을 직접 돌자 현지 의사와 직원들은 적잖게 당황했다. 불만도 제기됐다. 그러나 한국 병원 특유의, 그리고차병원의 회진과 환자관리 시스템을 설명하고 근무체계를 그에 맞춰 바꾸고 설득하자 직원들도 수긍했다. 환자들의 반응은 상상을 초월했다. 각 과별로 밤 11시 회진이 공식화됐고 환자들은 한밤중에라도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말할 수 있게 됐다. 더 중요한 건 환자들이 느끼는안도감이었다. 한국 병원에서는 당연한 듯 보이는 야간 회진은 미국에서는최고의 서비스가 된 셈이다.

 

산부인과 병동에서 실시한미역국 제공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세계적으로 임신과 출산으로 가장 유명한 병원인 차병원에서미역국의 효능을 설명하면서 현지 입맛에 맞게 한국산 미역과 식재료를 공수해와 정성스럽게 식사를 제공하자 미국 환자들도진정성을 알아봤다. 여기에 기존 HPMC가 특히 뒤떨어져 있던 병원 정보시스템 등 전산망을 차병원식 최신 시스템으로 전부 교체하자 병원의 환자관리, 약품 및 일정 관리 등 운영 시스템 전반이 효율화됐다.

 

 

 

②‘야전 사령관리더십 한국 병원은 규제로 인해 병원을 이끄는 CEO가 반드시 의사여야 한다. 이 같은 규제는전문적인 경영자체를 어렵게 하는 약점이 되지만 리더인 의사가 경영능력이 있을 경우에는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자존심 강하고 폐쇄적인 의사들에게 그들보다 더 많은 임상경험을 갖고 있는 실력 있는 의사가 병원 경영을 하면서 세부사안을 챙기면 대부분 수긍하고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는 미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예 HPMC 내에 수면캡슐을 설치해놓고 하루 3시간씩만 수면하면서 회진도 하고 임상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병원 개혁을 지휘하니 미국 의사들도 자연스레 따라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어떤 최신 의학 분야든 본인이 가장 먼저 공부하면서, 경영 현장에서 직접 지휘하며, 스스로를야전 사령관이라 부르는 차광렬 회장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미국에서도 통했다.양원석 대표는우리 병원이 미국에서 성공을 하기 위해 많은 전략을 짜고 수없이 많은 토론을 거쳐 이를 실행했지만 솔직히 차 회장 특유의 리더십이 없었으면 과연 성공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차 회장은 미국에서 2년간 머물면서 늦게 퇴근하는 직원들을 직접 차로 집까지 데려다주며 미국 사회에서는 보기 힘든 유형의 리더십을 보여줬고 이는 미국 의사와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3)향후 계획 및 전망

 

앞으로도 차병원은 대형 병원 몇 개를 더 인수할 계획을 갖고 있다. 확정된 곳은 아직 없지만 몇 개 병원을 놓고 협상이 진행 중이다. 그중 일부는 HPMC와 같은 대형 종합병원이고 일부는특정질환 특성화병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양원석 대표는아직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면서도차병원그룹의 궁극적인 계획은미국의 CHA’로 브랜드 가치를 높여 아태지역을 비롯한 기타 지역으로 진출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CHA’는 국내 고객과 의학계에서는 인정받고 있지만 그것만 믿고 중동, 동남아시아 등에 진출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계를 극복하는 최고의 전략은미국에서 유명한 CHA’ 브랜드가 되는 것이라는 게 차병원그룹의 생각이다.

 

처음으로 인수한 병원 경영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차병원그룹은 미국에서의 병원 경영에 대한 노하우를 쌓았고 브랜드 인지도도 높아졌기 때문에 향후 큰 문제가 없는 한 자신들의 성공공식을 반복·진화시키며 원활한 글로벌화를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의 성공을 만들어낸 차광렬 회장의야전사령관 리더십은 장기적으로는 불안요소일 수 있다. 차광렬 회장의 리더십은 분명 차병원그룹 성공의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다. 이미 한국에서도 차병원의 지역적 확장, 대학 설립, 연구소 건립, 최초의 VIP 건강관리센터차움운영 등 성공적인 관련 다각화를 이뤄냈다. 의사이자 경영자인 그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을 일들이다. 그러나 강력한 리더십이 빠진포스트 차광렬의 차병원그룹이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다. 공격적이면서도 시장을 선점하는 전략이 지속될 수 있는 시스템을 완벽히 구축하거나 비슷한 유형의 리더로 성공적인 승계를 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져 있다. 이는 특히 미국에서의 브랜드 제고 성공 후 기타 지역으로 진출하겠다는 장기 플랜을 갖고 있는 차병원 입장에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2. 성공요인 및 시사점

 

 

1)적합한 진출 전략을 선택했다.

 

의료산업은 기본적으로 규제산업이고 각 나라별 문화와 제도의 특성에 의해 경영방법이 크게 달라진다. 인력 집약적이며 첨단의 기술과 학문이 적용되는 동시에 높은 신뢰를 필요로 하는 일종의신뢰산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 산업과 달리 해외 진출 또는 수출 비중이 낮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한국의 우수한 의료기술과한류열풍만을 믿고 병원 신설, 프랜차이즈, 공동운영 등의 방식을 썼던 많은 의료기관들이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3  차병원은 그러나 다른 길을 택했다. 여타의 병원들과 달리 대형 병원을 인수하는 방식을 택했고 인수대상인 HPMC는 남캘리포니아 지역 3대 종합병원으로서의 역사와 신뢰를 가진 기관이었다. 미국에서 일반 고객들이 한국 병원의 수준을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HPMC는 환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진출 대상국의 의료 수준과 위상, 문화적 특성, 각종 규제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장 경쟁력 있는 진출 전략과 대상을 선정하는 것이 성공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2)일시적 경쟁우위를 지속적으로 창출했다.

 

80년 넘는 역사를 가진 병원으로서 HPMC가 신뢰성 있는 브랜드를 지니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경쟁력이 약해져가는 상황에서 기존 브랜드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환자를 유인하기 위해서는 고루해진 이미지를 첨단을 달리고 활력이 넘치는 이미지로 바꿔줄 필요가 있었다. 차병원은 줄기세포, 불임치료 등의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에서도 인정받는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산부인과, 소아과, 재활의학과 등에서 높은 경쟁력을 기대할 수 있었다. 특히 산부인과는 젊은 세대의 여론주도층에게 HPMC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면서 구전효과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 같은 HPMC의 성공요인은일시적 경쟁우위의 지속적 창출로 설명할 수 있다.

 

미국에서 의료기관은 로버트 다베니 교수가 말하는 초경쟁상태에 있다. 이런 경우 지속가능한 장기전략을 만들어 실행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시적 우위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전략을 사용해야 성공할 수 있다. 차병원그룹은 이 같은 초경쟁 상황의 일시적 경쟁우위 지속 창출에 성공했다. 먼저산부인과 분야를 중심으로 한인사회를 먼저 공략하면서 우위를 점했고(doing) 곧바로 산부인과 연관 분야인신생아 분야로 확장하는 동시에 민족별 세분화 마케팅으로 새로운 경쟁우위를 만들어냈다. 실행(doing)하면서 동시에 다음 단계 경쟁우위를 준비했고(setting-up) 이후 다시 관련성이 적은 재활의학 등 다른 진료 분야로도 강점을 확장시키면서확 바뀐 HPMC’라는 인식을 LA 지역 전체에 퍼뜨려 새로운 경쟁우위 창출 계획(planning)을 수립했다. (그림 4) 그리고 현재는 특성화 병원과 다른 종합병원 인수를 검토하면서 ‘CHA’라는 브랜드를 의학계만이 아닌 미국 일반 고객들에게 확산시킬 전략을 짜며 먼 미래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envisioning).

 

3) 서두르지 않고 단계별로 접근하며3의 길을 찾았다.

 

해외진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단계별 접근도 중요한데 차병원그룹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꾸준한 논문발표를 통해 인지도를 높였고 1999년 컬럼비아대로부터 로열티를 받고 진출하면서 첫 단추를 잘 끼웠다. 2002 LA불임센터 등을 통해 핵심역량을 미국에 안착시킬 수 있었던 것도 성공의 기반이 됐다. 당장 한국에서의 인지도와 실력만 믿고 해외진출을 노리는 의료기관들에, 그리고 헬스케어 산업 전반에도 교훈을 줄 수 있는 부분이다.

 

‘산부인과’라는 핵심역량 외에도 한국적인친절 서비스효율적인 정보시스템도 명백한 강점이 됐다. 미국 병원은 크게 두 가지 성공 방식 중 하나를 택하게 되는데 하나는 존스홉킨스식실력제일주의고 다른 하나는 메이요병원식친절제일주의. ‘존스홉킨스웨이를 택한 병원은죽을 사람도 살리는 것에 집중하게 되며메이요웨이에서는죽음마저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한국식 의료서비스와 친절이 차병원그룹의의술 기본기에 더해지면서 성공적인 현지화와 더불어3의 길을 만들어냈다. 선진 시장에 진출할 때 무조건적으로그들의 방법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활용할 수 있는 한국 기업 특유의 강점을 적절하게 조합해야 경쟁우위를 창출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윤상철 갈렙앤컴퍼니 대표이사 yunsc@calebglobal.com

윤상철 대표는 경영컨설팅회사 갈렙앤컴퍼니를 공동 설립하고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병원, 대학, 정부, 기업을 대상으로 전략수립, 정책개발, 경영혁신, 경영시스템설계 등의 컨설팅을 수행해 왔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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