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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ve Minds

베토벤의 변덕스러움, 이유가 있다

이병주 | 136호 (2013년 9월 Issue 1)

 

 

편집자주

창조와 혁신이 화두인 시대입니다. 예술가, 문학가, 학자, 엔지니어, 운동선수 등 창작가들의 노하우는 기업 경영자에게 보석 같은 지혜를 제공합니다. 이병주 생생경영연구소장이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창조의 노하우를 소개합니다.

 

1812년 여름 베토벤은 빈을 벗어나 휴양지로 여름 휴가를 떠났다. 거기에서 지인의 소개로 대문호 괴테를 만났다. 두 거장은 며칠 동안 매일 만나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둘이 산책하던 중에 마침 오스트리아 황후가 귀족들에게 둘러싸여 걸어오고 있었다. 괴테는 황후가 예술 애호가로 훌륭한 분이라며 존경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길을 내어주자고 하니, 베토벤이 거부감을 보였다.

 

“귀족 따위가 우리의 예술에 대해 왈가왈부하다니 말도 안 됩니다. 선생님, 저 귀족들이 오히려 우리에게 경의를 표할 테니 그냥 걸어가시지요. 분명 그들이 길을 양보할 겁니다.”

 

황후 일행이 다가오자 괴테는 길가로 비켜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했다. 베토벤은 괴테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걸어갔다. 그러자 황후와 귀족들이 베토벤을 위해 길을 비켜주며 인사를 건넸다. 그들이 지나가자 베토벤은 스물한 살이나 많은 괴테에게 의기양양하게 충고했다.

 

“어떻습니까. 제 말이 맞지요. 선생님도 이제부터는 저런 사람들이 먼저 경의를 표하게 만드십시오.”

 

이 일화는 서로에게 실망한 두 사람이 남긴 기록을 토대로 후세 사람들이 재구성한 것이다. 괴테는 베토벤의 인상을 친구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그보다 더 활기차고 진실한 예술가를 본 적이 없다네. 그의 재능은 경탄스러웠지만 불행히도 그는 철저히 길들여지지 않은 성품을 지니고 있어. 세상을 그토록 혐오스러워하면서도 세상을 더 즐겁게 만들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네.”

 

베토벤 역시 괴테에게 실망해 이렇게 기록했다.

 

“괴테는 왕실 궁정의 분위기를 지나치게 좋아한다. 시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한 나라의 제일가는 스승이 번쩍이는 것들을 위해 중요한 걸 잊어버리고 있다니 통탄스럽다.”

 

첫 만남 이후 괴테는 베토벤을 다시는 상종하지 않을 사람으로 생각했지만 베토벤은 좀 달랐다. 베토벤은 만나는 사람마다 괴테를 속물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했지만 괴테와의 만남을 자주 회상하며 감격하기도 했다. 괴테를 비난하다가도 괴테와 만났으니 자신은 열 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곤 했다.

 

이처럼 베토벤은 변덕스러웠다. 베토벤은 스스로를 영웅으로 여기다가도 툭하면 희생자로 생각했다. 천재적인 능력이 있었지만 어릴 때는 아버지와 친구들에게 맞고 자랐으며 2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귀에 이상이 생겨 결국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됐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베토벤은 수많은 여인들을 사랑했다. 처음에 여인들은 위대한 예술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베토벤을 만났지만 괴팍한 성격과 비호감의 외모를 지닌 베토벤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베토벤의 사랑은 대부분 결실을 맺지 못하고 짝사랑으로 끝났다. 그래서 베토벤은 오만함과 콤플렉스를 왔다 갔다 했다. 그는 마음에 든다며 친구들에게 자랑했던 하인도 석 달이 멀다 하고 트집을 잡아 해고했다. 심지어 집에도 자주 싫증이 나 늙어서까지 계속 이사를 다녔다. 말년에는 조카인 칼 베토벤의 양육권을 두고 제수인 요한나와 법정싸움을 벌였는데 여기서도 일관성이 없었다. 어떤 때는 있는 힘을 다해 모자의 접촉을 막으려고 애쓰다가도 이내 친근한 태도를 보이며 요한나와 조카의 만남을 자기 집에서 주선하기도 했다. 현대의학의 눈으로 보면 베토벤은 극심한 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보인다.

 

베토벤 말고도 고흐, 톨스토이, 버지니아 울프 등 수많은 천재적인 창작가들이 조울증을 앓았다. 창의성 분야의 대가인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에 의하면 뛰어난 창조가들은 대부분 조울증과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칙센트미하이는 문학가, 화가, 음악가, 과학자, 엔지니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창조가들을 만나 연구했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서로 반대되는 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이를 열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창조가들은 대단한 활력을 갖고 있으면서 또한 조용히 휴식을 취한다. 둘째, 창의적인 사람들은 명석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천진난만한 구석이 있다. 지능이 높지만 동시에 어린애 같은 순진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 그들은 장난기를 보이면서 이와 반대되는 기질인 끈기, 인내심, 집착하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무책임하면서도 동시에 책임감을 가지려고 한다. 넷째, 그들은 상상과 공상을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현실에 뿌리박은 의식 사이를 오고 간다. 다섯째, 창조가들은 베토벤이 그런 것처럼 외향성과 내향성이라는 상반된 성향을 함께 갖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교환하는 것을 좋아하다가도 일부러 사람들을 피해 혼자 지내기도 한다. 여섯째, 창의적인 사람들은 매우 겸손하면서도 동시에 자존심이 강하다. 소심하거나 수줍어하지만 오만을 드러내기도 한다. 일곱째, 그들은 전형적인 성의 역할에서 벗어나 있다. 창의적인 소녀들은 남성적이고, 창의적인 소년들은 좀 더 감성적이고 여성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여덟째, 반항적이고 개혁적이면서 동시에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아홉째, 자신의 일에 매우 열정적인 동시에 극히 객관적이다. 애착과 초연함 사이의 갈등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창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열 번째, 개방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성향으로 인해 종종 즐거움을 겪지만 동시에 고통을 겪는다. 왜 창조가들은 두 가지 상반된 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걸까.

 

 

창조와 혁신의 이중성

 

경영학의 거장 테오도르 레빗(Theodore Levitt)의 창조와 혁신에 대한 설명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레빗은 혁신은 아이디어로 시작하지만 실행이 뒷받침돼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했다(Innovation = Ideation + Execution).

 

그러나 불행히도 많은 기업에서 혁신(innovation)아이디어 창출(ideation)’과 동의어로 생각하고 있다. 혁신에서 실행이 빠진 이유는 첫째, 심리학에서 말하는 창의성과 기업의 창조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학문적인 관점에서 창의적인 사람은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마치 어린애처럼 순진한 호기심을 가지고도넛에는 왜 구멍이 뚫렸냐고 질문할 줄 안다. 이처럼 생각의 새로움을 창의성으로 여기는 학문의 관점을 기업에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의성과 창조는 다르다. 창의성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거나 남다른 생각을 하는 것 자체를 가리키지만 창조는 그 생각으로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뜻한다. 둘째, 컨설팅이나 자문 비즈니스의 발달로 아이디어만 각광받게 됐다. 컨설턴트, 대학교수, 경영전문가 등은 모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데 그친다. 그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것은 이들의 역할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이런 전문가들이 혁신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셋째, 기업에서도 말 잘하는 사람들이 승승장구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아이디어를 냈을 때 조직 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를 끝까지 실행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영리한 사람은 아이디어를 낸 후 실행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자신은 다른 문제로 옮겨가 새로운 의견을 다시 내려고 한다. 그래야 조직 내에서 자꾸만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업에서 말만 잘하는 사람들이 각광받는 풍토로 인해 혁신에서 실행의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다.

 

레빗은 아이디어를 끝까지 갈고 닦아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실행이 혁신에서 훨씬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우선 실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경영자들은 현안을 처리하느라 항상 바쁘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한번도 시도해보지 않았으므로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시간도 많이 들고 효과도 불분명하다. 당장 익숙한 방식으로 긴급한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거절되기 쉽다. 혁신에서 아이디어 창출은 쉽지만 실행은 이처럼 어렵다. 실행이 혁신에서 더 중요한 둘째 이유는 실행의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발전되고 더 나은 아이디어로 세밀화되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원래 퍼스널 컴퓨터를 판매하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아이디어를 실행하고 사업화하는 과정에서 운영체제 사업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했다. 구글 역시 검색 엔진을 개발해 판매하려고 했지만 아무도 구글을 사주지 않아 울며 겨자 먹기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한 게 지금처럼 커졌다. 애플은 태블릿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터치스크린 기술을 개발했다. 이 아이디어는 아이폰에 먼저 차용돼 지금은 스마트폰의 표준이 됐다. 화가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면서 주제가 더 명확해지고 소설가는 원고지에 글을 쓰기 시작해야 인물들이 알아서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작가들은 처음에 쓴 서문을 글을 다 쓴 후에 반드시 고친다. 처음 아이디어와 완성한 작품이 너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혁신은 아이디어와 실행으로 구성되지만 얄궂게도 아이디어를 내는 데 능한 사람과 실행가는 전혀 상반된 성향을 지니고 있다. 아이디어 창출에 탁월한 아이디어맨은 규칙이나 인습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그의 영혼은 자유롭다. 나이가 들어도 항상 어린애같이 순수하다.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해 개방적이고, 모호함이나 복잡함을 불편해하지 않고 즐긴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별로 없다. 대개 이런 사람들을 심리학에서 창의적이라고 한다. 이들은 문제를 해결한다기보다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다. 이들과 대화를 하면 이슈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난다. 왜냐하면 아이디어맨은 확산적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실행가는 규율을 중요시한다. 모호함보다는 명확한 것을 좋아하고 복잡함을 싫어한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려고 한다. 집중력이 있고 끈기가 있다. 이들은 토론을 하면 이슈를 좁힌다. 실행가는 수렴적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대한 창조가나 혁신가는 이런 상반된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다. 가령 새로운 그림에 대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화가 둘이 있다고 하자. 한 명은 위대한 아이디어를 생각만 하고 그리지는 않는다. 다른 화가는 이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우리는 후자를 위대한 화가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인류의 역사에 남은 위대한 예술가들은 모두 아이디어맨이자 훌륭한 실행가였다. 한 분야에서 뚜렷한 업적을 세운 창조가들이 모순되는 특성을 동시에 지니는 것은 그들이 아이디어맨의 기질을 지닌 동시에 실행가의 성향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베토벤이 변덕스럽고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 것은 그가 그만큼 작품 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작품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는 선술집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이야기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렸다. 책도 많이 읽고 괴테 같은 다른 분야의 예술가와도 교류했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오선지에 옮길 때는 종이를 수없이 찢어내면서 집중했다. 술집에 들러도 사람들을 피해 외진 자리에 앉아 혼자 술을 마셨으며 작업이 잘 안될 때는 하인에게 짜증을 내고 기이한 짓을 했다.

 

혁신은 상반된 조직문화를 필요

 

아이디어맨과 실행가가 반대 성향을 가지고 있듯이 아이디어 창출에 능한 조직과 실행에 뛰어난 기업도 서로 다른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기업의 창의성에 대해 오랜 기간 연구한 에머빌(Teresa Amabile)에 의하면 아이디어 창출 단계와 실행 단계는 전혀 다른 경영방식이 필요하다.

 

1970년에 설립된 제록스 팰로앨토연구소(Palo Alto Research Center·PARC)에서는 수많은 혁신적인 제품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곳에서는 제록스의 사업과 관련 없는 아이디어라도 개발할 수 있었다. 아이디어맨들의 천국이었다. 스타크웨더(Gary Starkweather)는 이곳 연구원 중에서도 매우 뛰어났다. 로체스터대에서 광학을 전공한 그는 항상 아이디어가 넘쳤다. 레이저 기술 전문가였던 그는 재미 삼아 근거리 무선통신을 개발하기도 했다. 연구소 건물 공사로 잠시 고속도로 건너에 있는 빌딩으로 그의 부서가 이전했을 때 케이블을 깔지 않고 레이저를 이용한 사내 무선통신망을 만든 것이다. 팰로앨토연구소가 세워지기 전 그는 프린터 사업부에서 일했다. 당시 프린터 기술은 컴퓨터의 이미지를 찍은 후 복사하는 방식이었다. 스타크웨더는 이 단계를 건너 뛰고 컴퓨터에서 디지털 신호를 곧바로 프린터에 전송하는 기술을 생각해냈다. 레이저 기술을 활용하면 컴퓨터 화면에 나오는 모든 이미지를 인쇄할 수 있었다. 그는 상사에게 이런 방식의레이저 프린터를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당시 이 기술은 워낙 비싸서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그는 자기 연구실에 검은 커튼을 쳐놓고 안쪽에서 홀로 실험하며 레이저 프린터를 개발했다. 팰로앨토연구소가 설립되자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유롭게 연구하게 된 스타크웨더는 결국 1977년 세계 최초의 레이저 프린터제록스 9700’을 개발했다.

 

 

그의 레이저 기술을 활용한 제품 아이디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카메라에 직접 연결하는 프린터, 고해상도 스캐너, 유리에 고화질의 사진을 인쇄할 수 있는 프린터 등을 연구했다. 팰로앨토연구소는 자율성과 다양성이 있는 곳이었고 좋은 아이디어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매달릴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 제품 아이디어를 상업화하기 위해 사업부로 찾아가면 항상 같은 말만 들었다.

 

“우리는 컴퓨터 시장에 있다네. 도대체 그걸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그러나?”

 

이 중 유리에 사진을 인쇄하는 프린터 기술은 훗날 반도체 산업에 실제로 활용됐다. 그러나 스타크웨더의 기술은 사업화되지 않았으므로 더 이상 발전되지 못했다. 이처럼 제록스는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빼앗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팰로앨토연구소에서 만들어 남 좋은 일 시켜준 기술은 많다. 어도비사를 성장시킨 포스트스크립트, 3com을 탄생시킨 이더넷, 기업용 레이저 프린터에만 집중해 HP의 역량이 된 개인용 레이저 프린터, 그리고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로 애플에 빼앗긴 그래픽 인터페이스, 아이콘, 마우스 기술 등. 제록스는 똑똑한 바보로 불렸다.

 

그러나 에머빌은 제록스가 현명하다고 진단한다. 아이디어 창출을 전담하는 팰로앨토연구소와 실행하는 조직인 제록스의 사업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팰로앨토연구소의 업무는 대부분 제품 개발 전 단계이거나 초기로 업무의 성격이 문제해결보다는 탐색과 실험에 가깝다. 이런 일은 결과보다 과정에서 얻을 게 더 많다. 다양한 실험 과정에서 나오는 예기치 않은 부산물이 많기 때문이다.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 보니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게 좋다. 더 많은 시행착오를 하는 게 목적이다. 아이디어 전담 조직은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구성원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조직문화는 자유롭고 분산된 분위기가 적합하다.

 

그러나 제품을 사업화하는 실행 조직은 한 분야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업무가 구체적인 목표를 지닌 미션이라서 결과가 매우 중요하다. 제품 출시 시기를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시간 압박이 성과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래야 더욱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행 조직은 구성원의 주인의식과 책임감으로 돌아간다. 고도의 집중력과 끈기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으므로 규율과 집중의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가령 마우스만 해도 팰로앨토연구소에서 개발한 제품은 300달러가 넘는 고가였고 사용하기도 불편했다. 애플은 PC 시장에 대해 수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기에 제록스의 기술을 한눈에 알아봤고 15달러짜리 마우스를 내놓을 때까지 집중했다. 사실 제록스가 스타크웨더의 레이저 프린터 개발을 허락한 것도 당시 컴퓨터 사업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에 레이저 프린터가 제록스의 관심사가 된 것이다. 만약 제록스가 팰로앨토연구소에서 개발한 다양한 기술을 모두 사업화했다면 제록스는 지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에머빌 같은 혁신 전문가들은 아이디어 창출과 실행에 적합한 서로 다른 조직문화는 예술가 집단과 군대처럼 쉽게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걱정한다. 그래서 두 개의 조직을 개별적으로 운영하라고 조언한다. 제록스가 연구소와 사업부를 따로 뒀듯이 말이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두 조직을 별도로 가지고 있는 형태보다 어떨 때는 예술가 집단이 됐다가 필요할 때는 군대로 변신하는 이중성을 지닌 조직이 더 발전된 모습이다.

 

창조와 혁신은 분산과 집중의 변주곡

 

수많은 아이디어가 거절되자 스타크웨더는 애플로 떠났다. 제록스의 기술을 재빠르게 사업화했던 애플은 아이디어를 보는 눈이 남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위직으로 갔다. 레이저 광학 기술에 정통한 그는 이미지와 디스플레이 관련 기술을 담당했다. 처음에 그는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컴퓨터를 개발하자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이후에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많이 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애플에서도 그의 다양한 아이디어는 평생 채택되지 않았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사람 좋기로 유명한 스타크웨더는 아이디어맨이었다. 베토벤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베토벤이 최고의 역작인 제9합창교향곡을 완성한 것은 53세 때인 1824 2월이었다. 그러나 이 곡은 괴테를 만나던 해인 1812년부터 구상하기 시작해 1817년에 이미 중요한 부분은 예비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실러의환희의 송가에 곡을 붙이기로 생각한 것은 훨씬 전이다. 괴테를 만나 실망하지 않았다면 괴테의 시에 곡을 붙였을지도 모른다. 어떤 영화에서는 베토벤이 월광소나타를 즉석에서 작곡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실제로는 악상이 떠오른 후 그것을 다듬는 데까지 수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에 대해 베토벤이 직접 고백했다.

 

“어떤 구상을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다가 어느 순간 적어나가기 시작합니다. 대부분 품고 있는 기간이 아주 오래 걸릴 때가 많지요. 내 기억력은 아주 믿을 만하기 때문에 한번 기억 속에 저장해 둔 주제는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더라도 작업 결과에 만족할 때까지 수도 없이 고치고 또 고치며 많은 부분을 없애고 새로 시작합니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때문에 처음 아이디어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성장하고 쌓입니다.”

 

레빗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보다 실행이 더 어렵다고 했다. 베토벤의 경우를 보면 이건 평범한 아이디어의 경우에 해당되는 말 같다. 훌륭한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것을 가다듬는 것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한국 기업의 창조와 혁신에 가장 큰 장애물이 이 부분인지도 모른다. 우리 기업은 지금까지 실행에 으뜸이었다. 조직문화 역시 규율과 집중의 단일한 조직문화로 승승장구해왔다. 그간 아이디어는 남에게서 빌려오면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우 빨랐다. 이제는 분산과 집중의 변주가 필요하다. 이중성을 지닌 조직을 어떻게 구축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이병주 생생경영연구소장 capomaru@gmail.com

이병주 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LG경제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창의성, 변화관리, 리더십 등을 연구했다. 저서로 <애플 콤플렉스> <> <3불 전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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