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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수칙

인샬라: 모든 것이 신의 뜻 시간을 갖고 긍정적 에너지를 찾자

이희수 | 131호 (2013년 6월 Issue 2)

 

 

 

해외에서 만난 현지 기업인이 다짜고짜중국인이세요?”라고 물어오면 기분이 좋지 않다. 일본인으로 인식돼도 기분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가 이란 기업인에게 “Are you Arab?”이라고 물으면 상대방은 단순히 기분이 좋지 않은 정도를 넘어 민족적 모멸감을 느낄 것이다. 좀 더 보탠다면당신과 비즈니스 하지 않겠다와 동의어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란은 인종적으로 백인 계통이고 언어도 인도-유럽어를 쓴다. 아랍과는 종족과 언어는 물론 역사적 배경과 문화 인식에서 완전히 다르다. 이들에게 아랍은 역사적 적대 세력이고 그들과 동일시한다는 것은 굉장한 모욕이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오늘날 중동에는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연대감보다는 개별국가 중심주의 및 부족주의가 훨씬 강하다. 부족 내 연대나 이익이 국가보다 우선시되고 이슬람의 종교적 결속력은 상당히 느슨해졌다. 다만 이슬람은 이미 삶 속에 녹아 문화적 총체가 된 지 오래다. 하루 다섯 번 예배를 보고, 라마단 기간 동안 한 달간 금식을 하고, 300만 명이 한꺼번에 성지순례를 하는 모습은 외부인의 시선으로는 종교적 도그마일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삶이자 존재가치다. 이런 관습은 앞으로도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아랍=이슬람이라는 담론도 마찬가지다. 아랍은 종족적 개념이고 이슬람은 종교적 개념이다. 일부다처, 근친결혼(사촌결혼), 여성 억압, 여성 할례, 명예살인, 피의 복수 등은 이슬람의 종교적 계율이라기보다는 지독히 가부장적인 아랍의 유목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토착 관습에 가깝다. 따라서 같은 이슬람권 비즈니스라도 아랍권, 동남아권, 중앙아시아권, 아프리카권, 터키, 이란 등에 따라 전략과 준비가 달라야 한다.

 

부족주의, 족내혼, 부족 간 협력과 상호연대라는 생존 법칙 때문에 기본적으로 중동 사람들은 외부인에게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누구든 쉽게 신뢰하지 않는다. 오랜 기간 서구로부터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고통받아 온 것은 물론 최근에는 서구의이슬람=테러리즘시각 때문에 이슬람권 전체가 더욱 날카로워졌으며 크게 위축됐다. 이런 점에서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상대의 문화와 종교를 이해하려는 열린 자세와 진정한 파트너로서 신뢰를 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즈니스 파트너를 잘 바꾸지 않고 한번 신뢰를 쌓은 회사에 계속해서 발주하는 이들의 태도는 시간과 공을 들여 신뢰를 쌓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말해준다.

 

이 글에서는 아랍권 중심의 중동 지역에 초점을 맞추면서 문화적 습속을 간단히 설명하고 이들과 관계를 맺을 때 유념해야 할 팁을 정리한다.

 

아랍인의 인사법

인샬라를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꿔라

아랍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인사법을 총칭해서 외국인들이 만들어낸 용어가 ‘IBM’이다. 아랍인들과 비즈니스를 하는 한국 기업인들에게도 익숙한 표현이다. I는 인샬라(Inshallah·신의 뜻이라면), B는 부크라(Bukra·내일), M은 말리시(Malish·걱정 말아라)의 머리글자다. 이 세 가지는 아랍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인사말인데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이 미루기만 하는 아랍인들의 행동을 대변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여기서 부정적 IBM을 긍정적 IBM으로 바꾸는 지혜가 비즈니스의 묘수다.

 

먼저 부크라와 말리시를 보자. 아랍인들은 부정적인 표현을 거의 쓰지 않는다. 어떤 악조건에서도 생존해야 한다는 생각이괜찮아” “문제없어” “걱정 마등의 자기암시를 끊임없이 반복하게 한다. 그리고 상대방에게도말리시라는 무책임한 긍정의 메시지를 보낸다. 비즈니스 의사와 능력이 정말 있는 것인지, 사실은 같이할 생각이 없는데 말로만 괜찮다고 하는 것인지, 속내를 알 수 없는 상대방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책임회피와 신뢰구축의 기다림은 또 다른 용어부크라로 표현된다. 그들은 비즈니스 업무를 쉽게 결정하지 않는다. 끝까지 버티며 유리한 조건과 시기를 기다린다. 늦출 수 있는 한 최대한 늦추려고 한다. 급할 것도 없다. 약속된 날짜는 쉽게 파기되고 아주 천연스럽게 부크라를 내뱉는다. 다음 날, 또 부크라가 남발된다. 부크라는 아직 결정할 준비가 안 됐다는 막연한 표현이다. ‘내일이라는 의미지만 내일 된다는 보장은 없는 그야말로 의례적인 단어일 뿐이다.

 

가장 자주 사용되는 인샬라는신의 뜻이라면!’이라는 의미다. 일상 대화에 습관적으로 끼어드는 고약한 단어다. 모든 것을 자신이 결정할 수 없고 신의 뜻에 맡길 뿐이라는 이 말은 1970∼1980년대 아랍에 막 진출하기 시작한 많은 한국 기업인들을 당황하게 했다.

 

인샬라는 종잡을 수 없고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믿기 어려운 아랍인들의 기질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용어다. 거꾸로 생각하면 인샬라는 신의 뜻을 걸었기 때문에 노력에 따라 반드시 성사될 수도 있다는 강한 긍정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무슬림들은 일상생활의 모든 과정은 물론 비즈니스도 우주를 주관하는 알라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고 믿는, 예지사상에 의존도가 높은 사람들이다. 씨를 뿌리고 땅을 가꾸며 수확했다가 비축해서 1년을 계획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순환경제 패턴의 농경 사회와는 달리 전쟁과 교역이 삶의 주된 방편이어야 하는 아랍 유목 사회의 전통적 삶에 뿌리를 둔다. 인샬라는 척박하고 제한된 생태계를 무대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서 만들어진 삶의 지혜이자 철학을 담고 있다. 모든 성패를 알라에게 맡기고 자신은 그저 순응하며 살아갈 뿐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신의 뜻에 맡기되 기다리는 시간 동안 상대방의 태도나 신뢰를 시험한다. 이들은 불확실성 강한 환경에서 살다보니 신뢰가 두텁지 않은 외부인이나 이방인에 대한 불신이 매우 강하다. 그들과 거래하려면 반드시 신뢰가 필요하다. 시간을 두고 관찰하면서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 자체가 인샬라다. 가격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려는 비즈니스적 속셈은 기본이다. 그들은 자신이 시간의 노예가 되는 것을 싫어한다. 정해진 시간 내 반드시 해치워야 하는 강박관념 대신 스스로 시간을 창조해 간다는 생각을 갖는다. 상대방과 정한 어떤 날이 아니라 자신이 만족하고 이만 마무리해야겠다고 판단하는 순간이 바로 비즈니스가 성사되는 시점이다. 그 시점은 알라만이 아신다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결정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다.

 

이런 아랍인과 비즈니스를 성사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그들의 기다림 전략에 익숙해야 한다. 함께 어울리며 여유를 갖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예배 시간이 되면 종교와 상관없이 함께 예배를 보거나 적어도 관심을 표명하고 음식과 모임이라는 그들의 소통 방식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외부자나 이방인의 위치에서 얼마나 빨리 내부자로 편입되는지가 관건이다. 일단 내부자가 되면 신뢰가 형성됐다는 것이고 비밀 보장은 물론 이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된다.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파트너십이 형성되는 것이다. 아랍인들은 한번 관계를 맺으면 그 사람과 오랫동안 거래를 지속한다.

 

인샬라는 기다림의 미학이다. 신의 뜻을 건 이상 함부로 일을 내팽개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를 잘 활용하면 비즈니스는 반드시 성사된다. 인샬라에 익숙해져야 한다.

 

사교적 분위기 속에 끝없는 탐색이

“마 쌀라마(평화가)!” 무슬림들이 만날 때마다 던지는 첫인사다. 만날 때도 평화, 헤어질 때도 평화다. 평화로 만나고 평화로 헤어진다. 사실 아랍과 이슬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평화보다는 폭력적인 이미지가 더 강하다. 오랜 기간 잦은 분쟁과 갈등의 역사가 반복되며 만들어진 이미지다. 평화를 약속하고 갈구하는 무슬림들의 열망이 인사말로 압축됐다고 보면 될 것이다.

 

무슬림, 특히 아랍인들은 만나면 서로 껴안고 상대의 볼에 입술을 맞춘다. 상황에 따라 횟수는 다르다. 통상 비즈니스 미팅에서 사용하는악수는 거리를 두는 인사법이다. 이를 적대거리(hostile distance)라고 한다. 악수를 나누는 거리는 적의가 스며들 수 있고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무기를 휘두를 수 있는 공간이다. 반면 서로 껴안고 공간을 없애는 것은 적의 대신 친근함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중요한 제스처다. 악수만 할 때와 껴안고 체취를 나누며 공간을 없앨 때는 친밀감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반갑게 껴안고 인사할 수 있으면 불필요한 탐색과정을 그만큼 줄일 수 있다. 물론 악수도 인사법의 하나다. 다만 이때 주의할 것은 왼손 사용이다. 아랍인에게는 왼손을 내밀어서는 안 된다. 이슬람 관습상 오른쪽은 선과 행운, 왼쪽은 악과 불행의 상징이다. 왼손은 화장실에서의 뒤처리에나 사용하고 음식을 먹거나 코란을 다룰 때는 반드시 오른손을 쓴다. 악수할 때 왼손을 내밀면 분위기가 좋지 않아질 수 있다. 또한 동성끼리는 껴안고 양 볼에 입맞춤하는 것이 허용되지만 이성끼리는 가볍게 악수하는 것에 그친다.

 

아랍인은 대화나 인사 중에 감정이나 행동을 나타내려고 할 때가 많다. 외국인에게는 자신의 존재감이나 생각을 깊게 각인시키려고 노력한다. 이 때문에 아랍인들은 목청을 한껏 키워 말하거나 크고 과장된 제스처를 사용한다. 외국인이 볼 때는 다소 긴박하거나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아랍인의 인사 예절로 이해해야 한다. 또 아랍인은 상대방의 눈을 뚫어지게 주시하거나 상대방의 어깨를 두드리며 팔을 잡거나 얼굴을 바싹 들이대는 등 상대방과 몸을 접촉하며 대화한다.

 

아랍인은 만나서 인사하는 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긴 민족이다. 날씨에서 안부로, 세상 돌아가는 현안에서 어제 들렀던 맛있는 식당에 이르기까지 길고 긴 체면치례의 인사말을 나눈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친근감을 높여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나서야 본론이 아주 천천히 뜸을 들여가며 시작된다.

 

인간관계에서도 아랍인들은 부족이나 고향 같은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면이 강하다. 직원을 채용하거나 제품을 살 때도 개인의 장점이나 성취, 제품의 장점보다는 인간관계를 훨씬 많이 고려한다. 손님 접대도 후하다. 남을 환대하면 그만큼 존경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사생활을 매우 중시하기 때문에 가족 중 여자에 대해 서로 물어보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아랍인의 삶은 철저히 가족 중심적이다. 가족에 대한 예의와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남녀 간 내외 관습과 이성 간 격리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아내나 딸의 안부를 묻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다. 부인끼리, 자녀들끼리 서로 알고 지내면 신뢰기반을 구축하는 일이 훨씬 빨라질 수 있다.

 

위와 같은 아랍인들의 행동양식은 협상에 임할 때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곧바로 협상에 들어가지 말고 신뢰를 먼저 쌓는 일이 필요하다. 자신에 대해 충분히 과시하되 건방진 태도는 금물이다. 관계 형성을 목적으로 방문을 여러 번 하는 것이 좋고 함께 여행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접대를 받을 때는 반드시 한 번은 공손히 거절한 후 받아들인다. 접대를 받았다면 충분히 감사함을 표해야 한다. 후한 태도를 보일수록 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질 것이다. 첫인상이 특히 중요하다. 흔히 첫 만남에서는 여유 있고 사교적인 분위기가 유지되지만 그 순간에도 끊임없이 평가받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상대방은우리가 이 사람과 국제 거래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계속 탐색하고 있을 것이다. 환대받고 있음에 안심할 일이 아니라 이면에 숨겨진 아랍인들의 특성을 간파해야 한다. 관계를 많이 맺는 데 치중할 것이 아니라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무슬림과의 비즈니스 수칙

이슬람은 비즈니스 종교다. 정당한 거래를 권장하고 공정한 이익을 매우 강조하는 종교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천부적인 상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무함마드를 따르고 닮으려 하는 많은 무슬림 지도자들이 상인의 길을 마다하지 않았고 지금도 아랍 무슬림들의 DNA에는 상인 기질이 잠재돼 있다. 아랍의 비즈니스 역사는 페니키아 시대부터 수천 년을 이어오고 있다.

 

무슬림과 거래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알아야 한다. 무슬림 시장에 진출할 때 알아둬야 할 비즈니스 수칙은 다음과 같다.

 

1.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임해라: 아랍인의 시간관념을 나타내는 두 가지 잠언을 기억하자. “서두르는 것은 상대를 모독하는 것이다.” “내일 해도 되는 일은 철저히 내일로 미룬다.” 대화할 때 시계를 자주 보는 것은 아랍인들의 시간관념에 배치된다. 아랍인들과의 거래에서는 인내가 최고의 미덕이다.

 

2. 신뢰를 줄 수 있는 확실한 카드를 준비하라: 체면과 예의를 중시하는 아랍인들의 특성상 처음 만나는 외국인에게 친절하기는 하지만 의심이 많다. 상대의 의심을 잠재울 수 있는 확실한 신뢰 카드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다른 바이어와 차별화된 가격이나 조건은 물론 상대가 자부심을 느끼는 것(문화, 종교, 성취 등)에 대한 공감과 깊은 이해 또는 인적 네트워크 등을 최대한 활용하면 신뢰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3. 과거를 중시하는 성향을 이해하라: 아랍인들은 급속한 진보와 빠른 변화보다는 전통과 관습의 보존을 훨씬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현대 경영 기술이나 새로운 기법의 도입에 보수적인 경향을 보인다. 협상이 이런 내용과 연관된다면 시간을 갖고 꾸준히 설득하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4. 동시다발적인 협상 방식을 존중하라: 아랍인들은 몇 개의 회합을 동시에 갖는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거나 하나의 일을 끝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체계성이 약하다. 이 일 저 일, 이 손님 저 손님, 중간에 예배 보고 식사하고 차 마시고 다시 협상하는 등 업무 스타일이 산만하다. 이것이 그들의 기질이고 특성이다.

 

5. 흥정 문화를 받아들여라: 그들에게 흥정은 생활이고 오락이다. 흥정을 즐기는 것이 생활화돼 있다. 조급한 사람은 흥정에서 실패한다. 기다리면서 여유를 갖고 좋은 조건을 만들어갈 줄 알아야 한다.

 

6. ‘모른다또는잘못했다는 표현이 없다: 아랍인들은 생사의 선택이 자주 요구되는 험난한 유목 생활 습관 때문인지모른다잘못했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목숨을 걸고 길을 떠나는 카라반들에게모른다는 죽음이자 절망의 표현이다. ‘잘못했다는 것은 용서를 구한다기보다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가혹한 책임을 수반한다. 패배에 대한 시인이자 비굴함의 표현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아랍인들은 부정적인 표현을 잘 쓰지 않고 습관적으로라고 말한다. 정말 긍정의인지, ‘그럴지도 모른다인지, 아니면아무 뜻도 없다는 것인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 길을 물었을 때 모른다고 답하는 대신 아무 방향이나 가리키는 것이 아랍인이다. 거짓 친절을 따라 가다보면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되는 일이 아랍에서는 자주 만나게 되는 일상이다.

 

7. 친한 사이라도 문서와 거래 관계를 분명히 하라: 이들은 부자간에도 이익과 돈에 양보가 없는 천부적인 장사꾼이다. 아랍인들의 교역 역사는 이미 2500년이 넘었다. 기원전 5세기 오만과 로마까지 사막을 가로지르는 유향 교역으로 2000배의 이익을 올리던 그들이다. 인간적인 신뢰가 장사를 시작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깔리지만 거래할 때는 관련 서류나 계약 조건, 금전 관계를 완벽한 법적 문서로 준비해야 한다. 인간적으로 친하다고 문서를 소홀히 했다가 낭패를 당할 때가 많다.

 

8. 문화적 혐오나 종교적 금기에 조심한다: 술과 돼지고기는 코란에 명시된 금기다. 다만 술은 종교적 금기 사항이기는 하지만 문화적 혐오까지는 아니다. 이슬람 문화권 밖에서 술을 마시는 무슬림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돼지고기는 종교적 금기일 뿐 아니라 강한 문화적 금기 대상이다. 돼지고기는 신앙의 강약에 상관없이 아주 강한 혐오 음식이다. 돼지고기에 대해서는 철저히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

 

9. 자존심과 명예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전통을 염두에 둬라: 어떤 경우에도 그들의 종교적, 문화적, 종족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은 절대 피해야 한다. 아랍인들은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다. 1991년 걸프전쟁 때 사담 후세인이 승산 가능성이 1%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미국과 전쟁을 불사했던 것이나 카다피 등 종교 지도자들이 실익보다는 자존심과 명분 때문에 강대국과 무모한 소모성 대결을 벌이는 것 등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10. 예의와 격식을 엄격하게 따져라: 한없이 소탈하게 보이다가도 일순간 예의와 격식을 따져 묻는 사람들이다. 방문할 때는 반드시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선물을 주고받는 호혜 관계는 아랍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화다. 초대를 받았다면 빠른 시일 내 반드시 초대로 갚아야 한다. 손님이 떠날 때는 건물 밖으로 나가 차가 떠날 때까지 배웅한다.

 

11. 국내 정치나 최고통치자 이야기는 삼간다: 비즈니스를 주로 하는 아랍인 상대 중에는 체제 옹호론자들이 많다. 산유국 왕정이니, 공화정이니 할 것 없이 폐쇄된 권위주의 정권이 장기 집권하는 국가가 많기 때문에 외국인이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첩보원이 많다는 생각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무엇보다 반미 정서가 뿌리 깊고 팔레스타인 문제의 정당성에 대한 집착이 강해 자칫 유대인이나 이스라엘 문제가 대화 주제로 언급되면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부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아랍 지식인들 사이에는 미국과 서구에 대한 이중적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미국과 서구를 동경하면서 동시에 적대감을 갖고 있어 혼란을 겪을 때가 종종 있다.

 

12. 서비스는 남성의 몫이다: 아랍에서는 남성이 주로 서비스를 한다. 장을 보는 일도, 집에 손님을 초대해 음식을 서빙하는 것도 주로 남자가 한다. 서구 교육에 익숙한 일부 사람들 외에는 식사할 때도 초대된 남녀가 분리될 때가 많다. 부부가 함께 초대를 받아 갔더라도 식사 때에는 자리가 갈린다. 최근에야 특급 호텔에 외국인 여성 종업원들이 드물게 등장하는 정도다. 아랍계 항공사에서도 대부분 외국인 여성 승무원이 종사하고 자국 여성들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아랍에서는 여성 전용 서비스 공간인 미용실, 화장품 판매점, 속옷 매장에서조차 남성 종업원들이 근무한다. 최근 남녀가 완전히 격리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 속옷을 파는 가게의 종업원을 여성으로 바꿔달라고 여성단체들이 정부에 탄원을 제기하는 일이 있었을 정도로 여성들의 업무 활동, 특히 서비스업 종사는 아직도 바람직한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13. 속도감을 이해하라: 지상에서는 한없이 느린 아랍인들이 말만 타면 최고의 속도로 빠르게 달린다. 자동차 경주하듯 과속하는 이들 때문에 인구 비례 기준 스포츠카가 가장 많이 팔리고 대형사고가 빈발한다. 이들에게는낙타 모드휴식 모드가 공존한다. 낙타 등에 올라타면 속도가 곧 생존이다. 교역을 할 때는 상대보다 빨리 교역 도시에 도착해야 하고 전쟁을 할 때는 도망가거나 적을 추월해야 하므로 최고 속도로 달려야 한다. 그러나 일단 낙타 등에서 내려오는 순간 휴식 모드로 전환된다. 비스듬히 누워서 휴식을 취하거나 담소를 나누면서 맛있는 음식을 든다. 거의 꼼짝하지 않고 느긋하게 쉬면서 다음 속도를 위해 페이스를 조절한다. 낙타가 사라진 지금은 자동차가 낙타 기능을 대신한다. 자동차에 올라타는 순간 낙타 모드가 가동되면서 빠른 속도감을 만끽하는 것이다.

 

14. 하이 비즈니스는 풍성한 대화와 인문교양에서 시작된다: 아랍인들은 말로 먹고 사는 민족이다. 코란을 포함해 모든 지혜는 구전으로 이어져왔다. 코란을 점 하나 틀리지 않고 모두 외우는 무슬림이 수백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이 이런 전통에 기인한다. 구전 전통은 적확하면서도 효율적인 대화법을 발전시켰다. 이어기억의 과학이라는 영역을 창출했다. 왕이나 장관이 공식석상에서 연설할 때도 종이를 들고 읽지 않는다. 그 상황에 가장 잘 맞는 즉석 연설을 자유자재로 한다. 식사시간이 긴 아랍 파트너와의 대화에서는 무엇보다 풍성한 대화의 소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오페라, 소설, 역사 같은 다양한 관심사는 물론 지구촌 공통의 주제인 중동 문제나 이슬람 역사,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 및 균형 잡힌 시각은 그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최고의 무기이자 전략적 자산이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hslee@hanyang.ac.kr

필자는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국비 유학생으로 터키 이스탄불대에서 중동 역사와 이슬람 문화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당 대학에서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하다가 현재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및 박물관장을 맡고 있다. 30년간 중동 전역에서 필드워크를 진행하고 있으며 터키만 114번 방문했을 정도로 자주 드나든다.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이슬람과 한국문화> 68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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