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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a & Business

싸이의 초국가전략: 미친듯 위대한 창조경영

신동엽 | 129호 (2013년 5월 Issue 2)

 

필자가 전공하는 거시조직이론은 경영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심리학 등 다양한 사회과학 분야들의 거장들이 참여해서 공동으로 발전시켜왔다. 따라서 기업조직이나 비영리공공조직은 물론 다양한 사회 부문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에 대해 깊이 있고 독창적인 통찰력을 제공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디마지오(P. DiMaggio), 마치(J. March), 와익(K. Weick), 해넌(M. Hannan) 등 이 분야의 전설적 거장들이 가장 즐겨 연구해온 분야 중 하나가 문화예술이다. 문화예술은 창조적 혁신이 가장 중요한 게임의 룰이다. 거시조직이론의 관점에서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싸이의 경쟁우위 원천과 성공 요인을 분석해보는 것은 21세기 창조사회에서 다른 유형의 조직들을 성공적으로 경영하는 데도 큰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강남스타일의 세계적 히트로 시인 바이런이 말했듯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세계적 스타가 된 가수 싸이는 최근 후속곡젠틀맨으로 또다시 전 세계 팝 음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미 강남스타일로 유튜브 조회건 수 역대 1위와 빌보드 차트 2위 등 아시아 가수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경지에 도달한 그는 젠틀맨으로 또다시 역대 최단 기간 유튜브 조회건 수 1억 뷰 돌파 등 새로운 기록을 쓰고 있다. 싸이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경제적 효과에 대한 각종 언론들의 분석도 이어지고 있다. 물론 최근 몇 년 사이에 K-POP이 전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인기몰이를 했지만 싸이의 글로벌 영향력은 그동안의 기타 한류 문화상품들과는 비교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경제적 파급효과가 있다. 심지어싸이 경제학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연예인이나 문화예술의 경제적 가치는 어떤 요소를, 어떤 범위에 대해,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도출하기 때문에 객관적 추정은 어렵지만 싸이 개인에게 발생한 수익은 대략 추산 가능하다. 강남스타일의 경우 광고출연 등으로 대략 10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하니 이번에 이 두 배인 200억 원은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싸이는 젠틀맨 뮤직비디오에더블A’ 복사지를 노출시키고 무대 위에서참이슬소주를 마시는 장면을 연출하는 등 자신이 모델로 있는 광고주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PPL(Products in Placement)을 연출해서 광고주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모델로 자리잡았다.

 

거시조직이론과 전략경영 관점에서 본다면 싸이의 글로벌 경쟁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싸이가 강남스타일과 젠틀맨에서 보여준 선택은 이론적 관점에서 합리적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 싸이의 핵심 성공요인(Key Success Factor)을 거시조직이론과 경영전략 관점에서 알아보자.

 

고성과의 핵심 기반은 탄탄한 상품 경쟁력

 

상품의 경쟁력을 말할 때 트렌드 적합성, 마케팅 전략, 광고홍보, 의미 부여, 디자인 등 주변적 요소들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기업의 경우도 홍보에 의한 호의적 이미지 구축이나 CSR 활동을 통해 받는 사회적 존경 등을 그 기업의 경쟁력이나 생존, 성과의 주요 요인으로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거시조직이론의 거장 퍼로(C. Perrow) 교수는 많은 경영이론들이 주변적 요인들의 상징성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요소들보다 기업 성과와 경쟁력에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어떤 품질과 가격의 상품을 시장에 제공하느냐, 즉 펀더멘털이다. 상품이나 기업의 경쟁력은 수많은 요소들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으로 결정되지만 그중에서 단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 상품 자체의 내용, 즉 품질이라는 것이다.

 

싸이의 노래들은 세계 시장에 나가기 훨씬 전부터 이미 국내에서 반복적으로 검증된 탄탄한 품질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다. 싸이는 데뷔작로 시작해서낙원’ ‘챔피언’ ‘연예인등 수많은 히트곡들을 가지고 있었고 골수 팬층을 확보하고 있었다. 라이브공연은 티켓 발매 즉시 매진됐다. 또 싸이는 일렉트로니카, 댄스, 힙합, , 발라드 등을 교묘히 결합한 자신만의 음악 색깔이 있으며 중독성 강한 단순한 비트와 폭넓은 팬층에 어필할 수 있는 B급 코드의 따라 부르기 쉬운 구어체 가사 등 대중들의 인기를 끌 만한 요소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 싸이가 대학가 축제 최고의 스타로 군림해온 이유다. 물론 현재 젠틀맨이 누리고 있는 폭발적 상승세에 전작 강남스타일의 후광효과가 어느 정도 작용했음은 사실이지만 두 곡 모두 그 자체로도 누가 들어도 신나고 흥미진진한, 완성도 높은 대중음악이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싸이 인기의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싸이의 글로벌 경쟁력은 싸이의 노래들이 글로벌 수준의 질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마케팅, 홍보, 비즈니스모델 등이 모두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좋은 상품을 만드는 것이 시장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탄탄한 펀더멘털은 높은 성과의 충분조건은 아닐지 몰라도 단연 가장 중요한 필요조건이다.

 

싸이의 노래 자체가 훌륭하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나서 강남스타일과 젠틀맨의 폭발적인 글로벌 인기에 기여한 다른 요인들을 알아보자.

 

다차원적, 심층적 소비경험 제공

 

문화상품은 일반 제조업 상품들과 다른 특징을 가진다. 객관적인 가치가 존재하지 않고 소비자 각자가 그 음악을 감상하고 즐기는 주관적 경험이 가치를 결정한다. 그래서 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그 문화상품을 감상하는 과정과 경험이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전통적으로 대중음악의 소비는 청각적 경험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듣기에 아름답고 신나고 감동적인 음악이 경쟁력이 있다. 그런데 ‘Video killed the radio stars’라는 노래에서 묘사하듯이 1980년대에 뮤직비디오가 등장하면서 대중음악의 소비 경험에 시각이 추가됐다. 한류 아이돌 그룹들의 핵심 성공요인 역시 이 두 가지의 결합이었다.

 

그런데 싸이는 여기에안무 따라 하기패러디 동영상 만들기라는 두 가지를 더 추가함으로써 소비경험을 훨씬 더 다차원화시키고 심화시켰다. 강남스타일의 경우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안무를 유튜브로 무료 배포된 뮤직비디오를 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그래서 사람들이 강남스타일의 신나는 리듬만 들으면 자연스럽게말춤을 추도록 만드는 세계적 유행을 창출했다. 그리고 이번 젠틀맨에서도시건방춤을 필두로 누구나 따라 하기 쉬운 포인트 댄스를 다섯 가지나 전략적으로 포함시켰다. 듣는 음악과 보는 음악을 넘어서 같이 참여해서 춤추는 음악으로 발전시켰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싸이의 뮤직비디오는 패러디 동영상 제작을 유도해 전 세계 소비자들이 직접 문화 콘텐츠 제작에 참여하는 새로운 소비경험을 하도록 만들었다. 소비자들이 음악과 뮤직비디오의 수동적 객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 주체로서 직접 제작과 생산에 참여하면서 훨씬 더 심층적 소비경험을 하게 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젠틀맨은 경험재로서의 문화상품의 경계를 대폭 확장해 다각적이고 심층적 소비경험이 발생하도록 만들어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기업들도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소비자 주도적 혁신이나프로슈머(prosumer)’ 현상의 확산은 기업들이 단순히 소비자나 고객들의 수요를 상품 설계와 생산에 반영하는 행위를 넘어서서 소비자들이 직접 참여하게 만듦으로써 소비경험을 다각화하고 심화하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한국적 콘텐츠와 글로벌 형식의 결합

 

훨씬 오래 전부터 미국 등 해외시장 진출에 노력해 온 JYP SM엔터테인먼트와 비교해 싸이는 어떤 점이 달랐냐는 경영전략적 질문을 자주 듣는다. 예를 들면 JYP의 박진영 대표는 미국 가수들의 경력발전 전략을 그대로 따라 원더걸스나 세븐 등과 같은 소속 가수들을 직접 미국으로 데리고 가서 영어로 노래를 부르게 하고, 또 조나스 브라더스와 같은 현재 인기 가수들과 함께 투어 공연을 하며 인지도를 알리는 방식으로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미국 현지의 특수한 환경에 자신을 철저하게 적응시키는 현지화(localization)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SM도 대표 그룹인 소녀시대가 미국의 유명한 토크쇼에 출연해서 영어로 노래를 부르는 등 JYP와 유사한 전략을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한국 스태프들과 한국말로 노래를 만든 싸이의 글로벌 성과가 월등했다.

 

경영전략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글로벌 전략에서 싸이가 훨씬 더 뛰어났다. 첫째, 싸이는 국가나 지역 간 모든 경계가 급속히 파괴되고 있는 21세기 글로벌 초경쟁 환경의 특징을 정확히 읽고 이에 적합한 새로운 글로벌 진출 전략을 활용했다. 전통적 글로벌 전략은 일단 국내 시장을 석권한 후 수출을 통해 해외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그 다음에 해외 사무소나 지사를 설립해 특정 해외 시장을 집중 공략한 후에야 전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방식이다. 일정한 순서에 따라 글로벌화의 수준을 높이는 단계적 국제화 전략이다. 그러나 최근 국경이 무의미해지는 글로벌 무경계 환경이 형성되고 또 상시 혁신으로 상품의 수명주기가 극단적으로 짧아짐에 따라 애플이나 삼성전자 등 글로벌 선도기업들은 대부분 신상품을 전 세계에 동시 출시하는 글로벌 동시 진출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싸이는 이런 글로벌 추세에 발을 맞췄다. 일단 신곡이 만들어지면 유튜브를 통해 무료로 글로벌 시장 전체를 대상으로 동시에 배포하고 광고 등을 통해 수익을 추구한다. 21세기 글로벌 무경계 환경에 적합한 전략이다.

 

둘째, 전통적으로 글로벌 전략에는 두 가지 상반된 유형이 공존했다. 일반적으로 글로벌전략은 곧 현지의 수요에 철저하게 적응하고 현지화(localization)하는 전략이라고 아는 경영자들이 많으나 꼭 그렇지는 않다. 현지화는 한 가지 전략적 옵션일 뿐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사고방식으로 진출하는 지역마다 그 지역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상품이나 브랜드를 개발하는 전략이며 글로벌 플레이어들 중 필립스나 네슬레가 이런 현지화 전략을 가장 잘 구사하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JYP의 미국 진출 전략은 바로 이런 현지화 전략의 패턴을 충실하게 잘 따른 선택이었다. 반면 이와 정반대의 두 번째 글로벌 전략은 오히려 초점을 현지로부터 본국으로 전환한다. 다양한 시장에서 통할 가능성이 높은 자신만의 독특한 상품을 전 세계에 똑같이 유통하는 방식의 글로벌 통합(global integration) 전략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사고방식이다. 글로벌 기업들 중에서는 코카콜라나 과거의 마쓰시타가 글로벌 통합 전략의 대표 주자였다. 전 세계를 휩쓰는 미국 팝송, 할리우드 영화의 전략 또한 글로벌 통합 전략이다. 이런 정반대의 전략적 접근 또한 현지화 못지 않게 훌륭한 글로벌 전략이며 환경의 특성과 그 기업의 전략적 선택에 따라 두 가지 중 어떤 방식으로도 높은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

 

싸이의 글로벌 전략은 엄격하게 말하면 글로벌 통합 전략과도 약간 차이가 있다. 즉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면 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내용과 형식의 음악을 영어로 불러야 한다는 식의 현지화 사고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로 자기만의 색깔만 고집하며 한국에서 통한 방식 그대로의 콘텐츠로 모든 글로벌 시장을 휩쓸겠다는 전략과도 상당히 다르다. 싸이가 추구한 것은 실은 이 두 가지 글로벌 전략을 통합한초국가 전략(transnational strategy)’과 유사하다. 현지 소비자와 시장의 요구와 본국의 차별적 경쟁우위를 교묘하게 결합한 전략이다.

 

먼저 싸이는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 현지인들이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음악의 형식을 선택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폭넓게 인기 있는 대중음악 장르인 비트 강한 일렉트로니카와 댄스, 힙합이 결합된 형식은 현재 국적을 불문하고 전 세계인들이 가장 부담 없이 수용하는 대중음악 형식이다. 그러나 거기에 담는 내용마저 영어로 미국이나 해외 현지인들의 코드에 맞는 내용을 선택했다면 결과적으로 현지 본토 음악들과 정면 경쟁했을 것이고, 차별적 경쟁우위를 획득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싸이는 전 세계 팬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형식의 음악에 우리나라와 싸이 자신만의 차별적 콘텐츠인 자유분방한 B싼 티문화, 21세기 강남의 상업주의적 문화 등을 담는 일종의 초국가 전략을 사용했고 그러한 글로벌 형식과 한국적 내용의 결합이 전 세계 시장에서 멋지게 통했다. 이런 면에서 싸이는 소나무 사진으로 세계 최고의 사진작가로 자리잡은 배병우와 유사하다. 현재 작품이 가장 비싸게 팔리는 한국 작가인 배병우는 가장 서구적이고 현대적이며 보편적인사진이라는 형식에 한국 전통화의 핵심 콘텐츠인 소나무를 결합해 전 세계인들이 쉽게 공감하면서도 매우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여 세계적 작가로 성장했다.

 

내적 적합성 통해 약점마저 경쟁우위로 승화

 

싸이는 외모나 분위기로 보면 결코 매력적인 연예인 스타일이 아니다. 또 국내 공영방송사에서 뮤직비디오를 방송 금지시킬 정도로 B싼 티코드가 언행에 체질화돼 있는 등 치명적 약점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런 약점들이 묘하게 경쟁력의 원천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젠틀맨이나강남스타일을 멋진 외모의 아이돌 가수가 불렀다면 파급력이 훨씬 낮았을 것이다. 무엇 때문일까?

 

대부분의 가수들에게 약점이 될 가능성이 높은 요소들이 싸이의 성공에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한 데는 거시조직이론의 상황적합성이론이 강조하는 내적 적합성(internal fit)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싸이라는 캐릭터와 그가 부르는 노래, 춤 사이의 자연스런 일관성과 적합성이 이런 약점마저 경쟁우위로 작용하게 만들었다. 싸이의 장난기 서린 외모는 물론 강남이 주는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촌스러워 보이는 의상, 코믹한 막춤, B급 코드의 가사, 코미디를 보는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뮤직비디오의 전개, 그리고 비트 강한 댄스풍의 멜로디와 리듬 등이 모두 절묘하게 서로 맞아떨어진다. 아무리 명품이라도 자기 몸에 맞지 않는 옷은 보기 싫듯이 싸이가 자신의 타고난 외모나 이미지에 딱 어울리는 춤과 노래를 했다는 것이 핵심 성공공식이다.

 

진정성에서 나오는 지속가능한 경쟁우위

 

게다가 싸이의 이런 이미지는 인기몰이를 위한 콘셉트로 인위적으로 꾸며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그 자신의 진짜 모습이다. 싸이는 항상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잘 노는 남자라고 말하고 다니는데 실제로도 그렇다고 한다. 싸이가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원래 싸이의 실생활에서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최근 조직이론에서는 이런 진정성이 성과의 강력한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발적 동기부여의 원천이 될 뿐 아니라 자신에게 자연스러운 행동이므로 그 과업행동의 몰입도와 완성도 또한 높을 수밖에 없다. 싸이는 공연을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게 아니라 공연 그 자체를 진정으로 즐긴다고 주장한다. 이는 도구적 인센티브에 의한 행동보다는 진정성 있는 내재적 동기에 기반한 행동이 창조와 열정의 필수요건이라는 최근 연구결과와 일치한다. 그리고 자기만의 자연스럽고 독특한 개성에 기반한 경쟁력은 모방이 어려우므로 전략경영의 자원기반 관점에서 강조하는 지속가능한 경쟁우위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또 다른 장점도 있다.

 

이런 높은 수준의 내적 적합성과 진정성에 기반한 음악은 질적 경쟁력이 높다. 하지만 마치(J. G. March) 교수가 성공의 덫(success trap) 이론에서 지적하듯이 전혀 다른 새로운 종류의 음악으로의 이행을 어렵게 만들 위험 또한 있다. 그렇지만 싸이는 지금 하고 있는 음악과 공연을 즐기는 데 몰입하고 있으며 미래 대비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찢어지는 가난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대한 열정 그 자체로 창작에 몰두하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싸이의 현재 몰입은 내재적 동기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전형적 특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존 자원들을 창조적으로 재결합하는 개방적 혁신

 

싸이는 천재적 영감을 받아 혼자서 고독하게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던 다양한 요소들을 개방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방식으로 재결합하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 전략을 사용했다. 창조적 혁신을 연구한 대표적 조직경제학자인 슘페터(J. Schumpeter)를 비롯해 넬슨(R. Nelson), 윈터(S. Winter) 교수 등은 대부분의 혁신은 존재하지 않던 완전히 새로운 상품이나 기술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던 다양한 지식, 기술, 노하우, 아이디어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결합(novel recombination)하는 데서 온다고 주장한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은 바로 이런 논리에서 기업 내의 기술과 지식, 역량에만 의존한 연구개발과 혁신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모든 경계를 넘어서서 조직 내외부의 다양한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창조적으로 재결합하는 개방형 혁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싸이는 작사나 작곡, 노래 등 작품의 핵심 요소들은 내부에서 자신이 직접 담당하지만 안무, 녹음, 뮤직비디오 제작 등 나머지 요소들은 다양한 외부의 역량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개방형 혁신 전략을 채택했다. 이런 면에서 이번 젠틀맨 뮤직비디오 제작에서 브라운아이드걸스가아브라카다브라에서 선보였던시건방춤을 차용해서 자신의 노래에 맞게 적절하게 수정해 사용한 것은 창조적 혁신 전략에서 매우 효율적이며 효과적이므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활용해야 할 전략이다.

 

최근 싸이가 젠틀맨 뮤직비디오에서 사용한 시건방춤의 안무가에게 법적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안무 사용료를 자발적으로 지급한 데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의 모범사례라고 언급해서 화제가 됐다. 다양한 경제행위자들이 각자가 가진 지식, 기술, 아이디어를 활발하게 공유하는 개방형 혁신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원소유주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윈윈 신뢰구조를 확립하는 것이 필수 전제조건이다. 그렇지 않다면 각자의 독창적 역량을 공개하거나 공유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개방형 혁신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이런 면에서 싸이의 선택은 개방형 혁신의 원리에 매우 충실했다.

 

혁신적 탐색의 모멘텀을 살리는 신속한 활용 전략

 

싸이는 전작인 강남스타일의 인기가 완전히 시들기 전에 신속하게 후속작을 냈다. 강남스타일로 좀 더 수익을 창출해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서둘러 젠틀맨을 배포함으로써 스스로 강남스타일의 막을 내렸다. 그리고 후속작으로 내놓은 젠틀맨은 그 형식과 스타일, 그리고 콘텐츠 면에서 강남스타일의 성공코드를 그대로 복제한 듯한 모습이다. 언뜻 비합리적인 전략적 선택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거시조직이론적 관점에서 보면 싸이의 이런 전략이 특히 불확실하고 급변하는 환경에서는 오히려 합리적이다.

 

거시조직이론의 거장 마치 교수는 새로운 성공공식의 발견을 위한 혁신적 탐색(exploration)과 기존 성공공식의 반복과 강화, 확장을 위한 활용(exploitation)이 모두 필요하며 어느 하나에 치중하면 위험에 빠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경영학뿐 아니라 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지난 20여 년간 가장 많이 인용된 마치 교수의탐색과 활용이론은 흔히 탐색이 활용보다 더 중요하고 우월하다는 식으로 해석되곤 했는데 그건 오해다. 혁신적 탐색에 성공하면 반드시 이를 성과 실현과 수확으로 연결시키는 활용이 뒤따라야 한다. 따라서 기본적 코드는 유사하나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 젠틀맨으로 강남스타일의 혁신적 탐색의 성공공식을 활용하려는 싸이의 전략은 매우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후속작을 소개한 타이밍이 너무 빠르지 않았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봐야 할까?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볼 수 있다. 첫째, 전작 성공의 후광효과(spillover effect)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강남스타일의 열기와 인지도가 완전히 식기 전에 신속하게 후속곡을 소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젠틀맨이 역대 최단기간에 유튜브 조회 1억 건을 돌파한 것은 그 자체의 매력뿐 아니라 강남스타일의 후광효과가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강남스타일이 대중들에게 완전히 잊혀진 다음 후속곡을 소개했다면 시장 인지도를 높이는 노력들을 처음부터 다시 했어야만 했다. 이런 면에서 거시조직이론가 앰버기(T. Amburgey)와 바넷(W. Barnett) 교수는 조직변화는 탄력이 붙었을 때 시도하는 것이 더 용이하다는 모멘텀 이론(momentum theory)을 제시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빠르다고 느낄 수도 있는 싸이의 후속곡 도입 타이밍은 거시조직이론의 환경적합성(environmental fit) 이론 관점에서 강조하는 대로 문화산업의 환경적 특수성에 잘 적응한 전형적인 예다. 문화콘텐츠산업은 상품의 라이프 사이클이 극도로 짧고 소비자의 취향이 급변하는 시장환경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어떤 성공공식이 검증되면 지체 없이 신속하게 그 성공공식을 활용하는 파생상품을 출시하는 것이 당연한 전략이다. 지나치게 작품의 완성도에 집착하다 타이밍을 놓치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는 환경이다. 물론 싸이가 짧은 기간 내에 후속곡과 뮤직비디오의 작곡, 작사, 안무, 제작 등을 완수해낼 수 있었던 데는 우리나라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 즉 속도경쟁력이 크게 기여했음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필자는 젠틀맨이 전작 강남스타일과 기본적으로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부정적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현 시점에서는 성공적인 전작과 공통점이 있어야 글로벌 시장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실히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된다. 최근 거시조직이론의 조직생태학에서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정체성(identity) 이론에서는 다양한 장르를 폭넓게 아우르는 전략은 모든 영역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낼 수는 있으나 동시에 정체성의 모호성(identity ambiguity)을 초래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소비자나 투자자와 같은 이해관계자들에게 확실히 인식시키는 데 방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최소한 자신의 정체성이 시장에서 이해관계자들에게 확고하게 자리매김할 때까지는 유사한 카테고리의 상품을 집중적으로 출시하는 집중화된 정체성(focused identity) 전략이 유리하다고 한다. 싸이의 이름과 스타일이 세계 시장에 갓 알려진 지금 너무 다른 장르의 음악을 소개하면 확고한 시장정체성 확립에 오히려 좋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번 젠틀맨의 경우 강남스타일과 유사한 코드의 음악을 배포한 것은 전략적으로 합리적이었으나 이런 코드를 한층 더 강화하고 심화했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한다. 마치 교수가 말하는 활용(exploitation) 전략이란 기존 방식을 똑같이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같은 역량이나 전략의 점진적 강화와 심화를 말한다. 같은 유형이지만 개선된 상품을 내놓는 것이 활용이다. 이런 면에서 젠틀맨의 한계는 전작 강남스타일과의 유사성이 아니라 싸이의 차별적 정체성이 전작 강남스타일에 비해 별반 심화되거나 강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 마치 교수가 활용에만 집착하고 새로운 코드의 탐색을 등한시하는학습의 근시안(learning myopia)’ 이론에서 지적했듯이 이런 활용전략은 앞으로 한두 번 정도만 더 사용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완전히 다른 창조적 혁신을 선보이는 것이 싸이가 세계 시장에 확고하게 자리잡을 수 있을지, 아니면 1회성 유행으로 끝날지를 결정할 것이다. 기존 성공 공식의 강화와 심화를 통한 활용전략에 너무 오래 집착하면 결국 성공의 덫(success trap)에 빠져 장기적으로는 시장에서 소멸할 수밖에 없다. 특히 상품의 라이프 사이클이 극도로 짧은 문화예술 분야는 기존 성공공식의 타성에 젖는 성공의 덫은 치명적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점을 싸이는 항상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파격과 불편함을 개방적으로 수용해야 창조경제

 

마지막으로 한국의 대표적 방송사에서 싸이의 젠틀맨 뮤직비디오에 방송금지 판정을 내린 사건에 대해 언급하고 마무리하고자 한다. 한마디로 이런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있는 지도층들의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대다수 국민들은 그 역량이나 문화적 수준이 전 세계 어느 나라 국민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으나 상당수 지도층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배포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온갖 기록을 경신하며 2억 명이 넘는 세계인들이 본 뮤직비디오를 그 가수의 고국에서 방송 금지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어색하다. 이것은 이 판정을 내린 사람들이 가식 없이 재미있게 노는 데 솔직하게 집중하는 싸이와 젊은 층들의 문화코드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일종의 해프닝이다.

 

무엇보다 창조적 혁신의 본질과 문화예술 분야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기업의 경영진에 포진하고 있으면 상시 창조적 혁신을 통한 창조경영은 결코 달성될 수 없을 것이다. 진정한 창조적 혁신은 기존의 관점에서 보면 불편하고 파격인 것이 당연하다. 시대를 앞서나가는 창조적 예술가들은 예외 없이 고정관점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야기해서 비판과 비난을 받았다. 음악, 발레, 미술 등 세 분야에서 동시에 현대 예술의 시작을 선포한 것으로 평가되는 스트라빈스키 작곡 니진스키 안무의봄의 제전 1913년 파리에서 초연될 때 청중들의 노골적 야유를 들어야 했으나 이젠 20세기 최고의 예술로 평가받는다. 또 우리나라가 세계에 자랑하는 예술가 백남준도 1960년대에동양의 문화 테러리스트로 불리며 여성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C. Moorman)과의 공연 도중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진정한 창조적 혁신은 현재의 관점으로 봤을 때 불편한 파격 요소를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창조적 혁신을 원한다면 경영자들이 새로운 것에서 오는 파격과 불편함에 대한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진정한 창조적 혁신은 언뜻 비정상적이고 미친 듯이 보이지만 실은 위대한 상품이어야 한다는 뜻에서 스티브 잡스는광적인 위대함(insanely great)’이라는 기준을 모든 애플 상품에 적용했다. 이렇게 보면 싸이는 21세기 창조경영형 전략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자칫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새로운 파격적 시도에 대해 우리나라 기업조직과 비영리 공공조직의 리더들이 개방적 수용성을 가질 때 진정한 창조경제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싸이가 장차 우리나라 대중문화계의 백남준이 되기를 기대한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dshin@yonsei.ac.kr

신동엽 교수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조직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직이론 분야의 세계 최고 학술지 등 유명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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