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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판단 기준

+α, 현저한 기능향상도 베낀 건 베낀 거다

박성수 | 125호 (2013년 3월 Issue 2)

 

 

기업의 자산 변화와 기업 간 분쟁

미국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e) 2003년 연구 조사에 따르면 미국 S&P 500대 기업의 유형자산과 무형자산의 비율은 10년 단위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2년에는 유형자산 대 무형자산의 비율이 62 38이었으나 1992년에는 정반대로 역전되면서 38 62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2년에는 그 비율이 20 80으로 무형자산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졌다. 10년이 더 지난 2012년 이후는 무형자산의 비중이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무형자산은 주로 특허권 등의 지식재산권이다.

 

주요 기업들의 자산이 지식재산권이 됐으니 기업 간에 벌어지는 분쟁의 중심에 지식재산권이 자리 잡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최근 세계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특허권을 비롯한 지식재산권 관련 분쟁에 휘말리고 있는 것은 이제 뉴스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소식에 불과한 느낌마저 있다. 심지어 이제는 TV의 퀴즈쇼에서프랜드(FRAND) 1 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 문제까지 등장할 정도다.

 

특허등록요건: 신규성과 진보성

우선 어떤 발명에 대해 특허를 받기 위해서는 특허청에 명세서 등 출원 관련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특허출원을 위한 명세서에는 우선발명의 목적’ ‘발명이 속하는 기술 분야 및 그 분야의 종래기술’ ‘발명이 이루고자 하는 기술적 과제’ ‘발명의 구성’ ‘발명의 효과등 특허출원하는 발명이 어떤 기술인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담겨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특허청구범위(claims)를 명시함으로써 특허등록을 통해 법적으로 보호받고자 하는 권리의 한계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이렇게 출원된 발명이 특허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크게신규성(novelty)’진보성(inventive step)’이라는 두 가지 요건을 만족해야 한다. , 출원발명이 종래의 발명과 구별될 정도로 새로워야 하며 출원발명이 속해 있는 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자가 용이하게 발명할 수 없을 정도로 기술적으로 다른 면이 있을 때에만 특허로 등록될 수 있다.

 

이때 더욱 문제가 되는 건 진보성 요건이다. 신규성에 관한 판단은 출원되기 이전의공지(公知) 발명’(공공연히 실시된 발명, 반포된 간행물에 게시된 발명, 인터넷 등을 통해 공중이 이용 가능하게 된 발명 등)과 동일성이 없어야 한다는 객관적 증거를 근거로 하기 때문에 비교적 단순하고 명확하다. 그러나 출원특허가 과연 진보성을 부정당할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모호한 면이 있다. 이전보다 얼마나 차별화된 기술이며, 그로 인한 효과가 얼마나 커졌는지를 명확하게 판단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특허와 관련된 법적 문제는 진보성 요건에 대한 이견(異見)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허출원 거절이나 특허무효심판청구 등이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때 특허심판원 혹은 특허법원에서는 발명을전체로서의 발명(invention as a whole)’ 관점에서 보고 판단한다. , 출원된 발명을 전체로서 파악해 통상의 기술자가 그 출원 이전에 공지된 발명으로부터 쉽게 발명할 수 있는 것이라고 판단될 때 특허거절(특허무효) 결정을 내린다.

 

특허권의 침해판단 기준

그렇다면 제3자의 발명이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속하는 것인지 여부를 따지는 특허침해 사건에선 어떤 원칙을 적용할까. 특허법은 발명이라는 말과 기술이라는 말을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발명이든 기술이든 침해 여부를 판단할 때 핵심은 특허청구범위의 청구항(claim)에 기재된구성요소(element)’ 또는한정사항(limitation)’이다. 침해자로 지목된 자가 그 특허발명의 구성요소를모두갖춰 실시할 때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단한다. , 특허발명의 구성요소를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갖춘 기술을 실시한다면 특허권 침해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특허권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를구성요소 완비의 법칙(all elements rule)’이라고 한다.

 

특허권 침해 여부를구성요소별(element by element)’로 판단하는 구성요소 완비의 법칙에 따르면 갑이 을의 청구항에 기재된 구성요소를 모두 갖춘 발명(기술)을 실시하고 있을 때 을의 특허권을 침해한 것이 된다. 하지만 갑이 을의 청구항에 기재된 구성요소 중 단 하나라도 빼놓고 실시한다면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는 게 된다. 예를 들어, 침해 여부가 문제되는 특허발명이 구성요소 A+B+C+D로 이뤄져 있다고 가정하자. 만약 침해발명이 A+B+C+E+F의 구성요소로 돼 있다면 특허권의 침해는 인정되지 않는다. 구성요소 D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침해발명으로 지목된 기술이 A+B+C+D+E로 구성돼 있다면 특허권을 침해한 게 된다. 설령 E라는 새로운 요소가 있다고 할지라도 구성요소 A, B, C, D를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허침해 분쟁 발생 시 원고는 피고 제품이 원고의 특허발명의 각각의 구성요소를 구비하고 있다는 점을 주장하고 증명해야 한다.

 

특허권 침해자로 지목된 자가 과연 특허권을 침해했는지에 대한 판단기준은 법률에 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진 이들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과거 법원의 판결 중에서도 청구항의 구성요소 완비 여부가 아닌 유사성을 특허권 침해의 판단 기준으로 잘못 사용한 사례가 있을 정도다. , 침해자로 지목받은 자의 기술이 특허를 받은 기술과 단순히 유사하다는 이유를 들어 특허침해 판결을 내리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는 특허권 침해 여부를 따질 때 가장 쉽게 빠지는 오류다. 유사성 여부는 디자인이나 상표권의 침해를 따질 때에 쓰는 기준이지 특허권의 침해 여부를 따질 경우에는 전혀 무관한 판단 기준이다. 반면 구성요소 완비의 법칙은 이미 우리 대법원이 여러 차례에 걸쳐 확인한 확립된 원칙이자 전 세계 특허법의 해석에서도 거의 만국 공통으로 인정되고 있는 원칙이다.

 

특허발명의 예시

구체적인 특허발명의 사례를 들어보자. 등록번호 제847743호 특허는 통상의 자동차가 아니라 전기와 가솔린 등과 같이 연료를 두 가지 이상 동시에 사용하는 하이브리드(hybrid) 자동차에 관한 것이다. 2007 54일 출원돼 2008 716일 특허로 등록됐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가솔린 등의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엔진이 자동으로 꺼진다. 이때 시동이 꺼질 뿐 아니라 발전기가 작동해 전기 모터를 구동하기 위한 전기를 생성해 저장한다. 그 후 다시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전기 모터가 먼저 구동을 하고 그 후에 다시 가솔린 엔진이 구동된다. 따라서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경우 화석연료만을 사용하는 자동차에 비해 연비가 뛰어나게 우수하다. 이 발명의 명칭은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제동장치 및 제동방법이며 특허청구범위 제1항은 다음과 같다.

 

청구항 1.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정지상태이거나 주행상태인 것을 판별하고,

그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주행상태이면 브레이크 부스터 2 의 부압과 미리 설정된 임계치값을 비교하며,

그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정지상태이면 운전자가 제동력을 더 가했는지를 판별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제동방법.

 

이 특허발명의 청구항을 보면 크게 세 가지 구성요소로 이뤄진 발명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선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정지상태이거나 주행상태인 것을 판별하는 단계(A)”가 있어야만 한다. 다음으로그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주행상태이면 브레이크 부스터의 부압과 미리 설정된 값을 비교하는 단계(B)”가 존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그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정지상태이면 운전자가 제동력을 더 가했는지를 판별하는 단계(C)”가 필요하다.

 

따라서 만약 어떤 자동차 회사가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생산하면서 위 A+B+C 구성요소(여기서는 판별 단계)를 모두 갖춘 브레이크를 탑재했다면 그 회사는 이 특허권을 침해한 게 된다. 하지만 만약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정지상태일 때에는 운전자가 제동력을 더 가했는지를 판별하지 않고 자동차가 운행 중일 때에만 운전자가 제동력을 더 가했는지를 판별해 대처하는 브레이크를 채용한 자동차라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특허권 침해가 되지 않는다. 위에서 C 구성요소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도대체 하이브리드 자동차란 무엇인가?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가솔린과 전기를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는지, 그중에서도 전기 모터가 작동할 때에는 가솔린 엔진이 완전히 멈춰 서야만 하이브리드 자동차인지, 아니면 전기 모터가 보조적으로만 작동하고 가솔린도 동시에 사용하는 경우도 하이브리드 자동차로 볼 것인지, 혹은 LPG와 전기를 동시에 사용하는 자동차도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속한다고 할 것인지 등 어떻게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각국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위 특허권의 침해자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바로 청구항의 해석 문제다.

 

특허발명이 규정하는 권리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한정할 것인가는 사법기관의 결정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는 법원에서 재판을 통해 최종적으로 결정하며 우리나라의 경우 대법원이 최종적인 해석 권한을 가진다. 청구항의 해석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청구항의 해석과 균등론

특허 청구항(특허발명)의 권리범위를 문언(文言)적 의미에서 글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흔히 문언적 침해(literal infringement) 여부를 판단한다고 하는 것인데 이때에는 청구항뿐 아니라 특허 출원 시 제출한 명세서에 기재된 모든 내용, 특히발명의 상세한 설명부분을 참작한다.

 

위에 예시로 든 제847743호 특허 명세서에 기술된 발명의 상세한 설명을 보면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어떠한 것인데, 어떠한 문제점이 있어서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이 발명을 했다는 설명이 나와 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공압 센서가 자동차의 정지상태 및 주행상태 시 브레이크 부스터의 공압을 감지해 이를 보상해 줌으로써 기존 하이브리드 자동차에서 공압 펌프라는 부품을 제거해도 되도록 해주는 효과가 있어서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제조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따라서 위와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라면 그것이 전기와 가솔린의 하이브리드든, 아니면 전기와 LPG의 하이브리드든 모두 위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속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그림1) 이와 같이 특허발명의 보호범위는 발명의 상세한 설명을 참작하지 않고는 기술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대법원 2007. 9. 20. 선고 2005520 판결)

 

문언적 원칙에 따른 해석보다 더욱 중요한 특허발명의 해석 원칙으로는 균등론(doctrine of equivalents)을 들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특허권의 침해 여부가 문제되는 실제의 재판에서는 문언 그대로 침해가 인정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오히려 균등침해 여부가 문제되는 경우가 많다.

 

균등론은 구성요소 완비의 원칙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등장한 이론이다. , 미세한 부분의 개량이나 변형만으로도 특허권의 침해를 회피할 수 있게 됨으로써 특허권의 실질적인 보호가 어려워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 대두됐다.

 

처음은 미국의 판례이론(Graver Tank v. Linde Air Prods. Co. 339 U.S. 605)으로서 미국에서는 세 가지 기준(tri-partite test)에 따라 균등 침해 여부를 판단한다. 문제된 발명들의 기능(function)이 동일한지, 과제 해결의 방법(way)이 동일한지, 발명의 효과(result)가 동일한지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법원 판결(2000. 7. 28. 선고 972200 판결)에서 정면으로 균등론을 인정했다. 이 판결은 5개의 요건을 제시했으나 그중 적극적 요건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 가지다. 다른 두 가지는 이른바 소극적인 요건으로서 그러한 사정이 존재함을 침해자가 입증함으로써 균등침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므로 적극적 요소에 대해서만 소개한다.

 

, 중요한 세 가지는 특허발명에서의 구성요소(:A+B+C C)와 침해발명에서 치환(바꿈)한 구성요소(:A+B+C' C')를 비교해 봤을 때과제해결의 원리가 동일한지(기술사상의 범위 내) ②치환가능성이 있는지치환이 용이한지를 따져 보는 것이다. 첫째 요건은 특허된 발명과 침해발명이 그 외양은 C C'로 달라도 결국은 같은 원리에 의한 기술이냐를 묻는 것이고, 둘째 요건은 그 기술을 적용한 결과가 같으냐를 보는 것이며, 셋째 요건은 그것이 통상의 기술자에게 쉬우냐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요건에 모두라는 답이 나오면 설령 그 외관이 다소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침해자로 지목된 사람의 기술은 그 특허권을 침해한다고 해석한다.

 

이 중에서도 실무상 가장 빈번하게 문제되면서 가장 중요한 요건은 치환용이성이다. 치환용이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사람은 당해 기술 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자인데 그 판단의 기준 시점을 뒤로 할수록(특허출원 당시가 아니라 침해가 문제된 당시) 특허권자에게 유리한 면이 있다. 왜냐하면통상의 기술자의 수준은 시간이 갈수록 올라가기 때문에 용이하게 바꿀 수 있는 범위가 확대된다. 미국의 판례는 특허권자를 넓게 보호하기 위해 특허출원 시가 아니라 침해행위가 이뤄진 당시를 기준으로 해 바꿈이 용이한지를 판단한다.

 

예를 들어, 앞의 특허발명과 관련해 아무개 회사가그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정지상태이면 운전자가 제동력을 더 가했는지를 판별하는 단계(C)” 대신에그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정지상태이면 운전자가 발을 브레이크 페달 위에 올려놓았는지 3
를 판별하는 단계(C')”를 넣었다면 어떨까? 과연 그러한 발명은 위 특허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해야 할까?

 

이러한 사례에서 아무개 회사가 과연 위 특허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할 것인지는 위 원칙에 따라 차례로 판단해보면 된다. 첫째, C 단계를 C' 단계로 바꿨지만 위 특허발명의 기본원리가 과연 동일한지 따져 봐야 한다. 첫째 요건에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대개 운전자가 제동력을 더 가하는 조작은 브레이크 페달을 발로 누르는 동작으로 하기 때문이다. 둘째, 그 기술을 적용한 결과가 같으냐를 봐야 하는데, 위에서는 위 두 기술을 적용한 결과가 다를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셋째 요건은 그것이 통상의 기술자에게 쉬우냐 하는 것인데 여기서 통상의 기술자가 누구이냐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일단 대학에서 자동차공학을 전공했거나 그 분야에서 상당한 정도의 숙련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상정한다면 브레이크 페달이 실제로 눌려지는지(운전자가 제동력을 더 가했는지) 하는 구성요소를 단지 운전자가 발을 브레이크 페달 위에 올려놓았는지 정도로 바꾸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위 사례에서 아무개 회사는 위 특허권을 침해했다는 판단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침해의 구분 4

1) 문언 침해

특허권의 침해 여부 판단에 있어서 개별 구성요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침해의 여러 가지 유형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문언침해가 원칙적인 특허권 침해를 의미한다. 물론 실제 소송에서는 문언침해보다 균등침해가 문제되는 경우가 많다.

 

 

 

2)균등침해

균등침해는 앞서 본 균등론의 원칙을 적용하는 경우다. 이를 도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실제 소송에서는 균등침해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앞서 본 바와 같이 C C'의 대비를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요건에 따라 따져 봤을 때 모두라는 대답이 나올 경우에만 특허권 침해의 책임을 지게 된다.

 

 

 

3) 이용침해

흔히 침해발명이 A, B, C라는 특허발명의 요소에 D E라는 추가적인 요소를 더해현저하게성능이 높아진 발명을 내놓았을 때 이전보다 훨씬 개량됐기 때문에 특허를 침해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착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추가 요소에 의해 기술의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여부는 침해 여부의 판단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는 요소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침해 여부의 판단은 1차적으로 구성요소완비의 법칙에 따라 이뤄진다.

 

물론 이용발명도 특허를 받을 수는 있다. 실제 판례는 이용발명에 대해 기본 특허발명의 구성요소를 모두 그대로 가지고 있고 새로운 구성요소를 부가해 특허성을 취득한 경우(대법원 1995. 12. 5. 선고 921660 판결)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기본 특허의 특허권자로부터 허락을 받지 못한 이용발명은 스스로 자신의 발명을 실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용발명은 아무리 진보성이 있다고 해도 기본발명을 침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용발명이 아무리 뛰어난 발명이라고 해도 결론은 동일하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흔히 원천특허가 없어서 고생을 한다고 하는데 원천특허는 특허법상의 용어가 아니다. 기본발명이 원천특허에 해당한다. 하지만 기본발명을 이용발명이 곳곳에서 에워싸 더 이상의 이용발명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는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특허덤불을 만들어 버리면 오히려 기본발명에 대한 특허를 가진 회사라도 좋은 이용발명을 다수 가지고 있는 회사를 무시하지 못하고 상호 특허권 이용계약을 맺지 않을 수 없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기본발명의 구성요소를 그대로 이용한 경우가 아니라 그 균등의 영역을 이용한 경우( C가 아니라 C'를 적용해 발명한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 이에 대해 대법원은 2001. 9. 7. 선고 2001393 판결에서 여전히 이용침해를 인정한다.

 

 

 

특허권 침해 판단의 실례

이와 같이 구성요소 완비의 원칙이 특허침해 판단의 기본이다. 따라서 구성요소 중에서 매우 하찮아 보이는 구성요소라도 이것을 생략하면 침해를 피해갈 수 있다. 복잡한 조립기계가 있고, 이 발명의 청구항 구성요소는 A+B+C+D+E+F+G+H라고 치자. A부터 G까지의 요소는 기술적으로 매우 복잡한 것이지만 H 요소는 조립기계의 핵심 기능과는 큰 상관이 없는 이동용 바퀴에 대한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이 발명을 A부터 G까지 똑같이 베끼고 이동용 바퀴(H)만 없앤 제품을 만들어 팔았다면 그는 특허권 침해의 책임을 지지 않게 된다.

 

한편 구성요소는 어떠해야 한다는 제한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기술을 채용해 쓰지 않는다는 구성도 일종의 구성요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그 구성을 채용했다면 특허권 침해가 되지 않는다.

 

 

 

 

 

침해소송에 대한 대응

침해소송을 받게 되면 침해자로 지목된 자로서는 일단 특허발명의 구성요소들 중에서 단 하나라도 누락한 채 실시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게 중요하다. 이와 함께 침해자로 지목된 자가 고려해볼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은 특허무효심판을 청구하는 것이다. 특허무효심판은 특허심판원에 청구하며 특허심판원은 특허무효 심결 혹은 심판청구 기각 심결을 하게 된다. 특허심판원의 심결에 불복하려면 특허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 된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우리나라 특허심판원의 특허무효 심결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하게 높다는 것이다. 특허 침해자로 지목한 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희소식일지 모르지만 오랜 시간 연구한 결과물인 특허권이 무참하게 무효판결을 받으면 특허를 출원한 연구자들로서는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이처럼 특허침해소송과 특허무효소송이 별개로 이뤄지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특허침해소송에서 특허무효 여부도 함께 판단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이고 이것이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대법원은 약 1년 전에 이런 흐름과 요청에 따라 전원합의체 판결로 일반 민사법원에서도 특허발명에 대한 무효심결과 별도로 특허발명의 진보성 여부를 심리·판단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2012. 1. 19. 선고 201095390). 그러나 동시에 진보성 없음이 명백한 경우에만 특허발명을 무효로 판단하라고 명시해 함부로 특허발명을 무효로 하는 것을 경계했다.

 

특허침해가 인정된 경우

특허침해가 인정되는 경우에 특허권자는 특허 침해자를 특허침해죄로 형사 고소할 수 있고 민사재판을 청구할 수도 있다. 민사재판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형태로 이뤄진다. 특허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돈으로 물어내라!)와 침해행위의 중지를 구하는 침해금지 청구(더 이상 침해행위 하지마라!)가 그것이다. 전자는 과거의 특허침해에 대한 구제책이고 후자는 현재 및 장래의 침해행위에 대한 구제책이다.

 

문제는 후자의 특허침해금지 청구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실제 손해를 입은 정도를 따지는 게 원칙이고 이에 대해 특허법이 특별한 규정을 가지고 있다. 반면 후자에 대해서는 그 손해가 적은 경우에도 침해자로 판명된 자의 공장 전체를 멈춰 세울 수 있는 지나친 청구가 이론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특허권자의 침해금지청구에 대해 일정한 제한을 가하는 판결이 등장했다. 그러나 아직 특허권의 무효율이 높아 특허권자의 보호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우리나라의 경우 그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논의가 유력하다.

 

특허권의 소진

특허권의 침해는 특허제품을 생산하거나 판매하거나, 혹은 임대하는 경우는 물론 선전 광고하는 경우에도 성립한다. 그러나 한 번 행사한 특허권을 이중 삼중으로 행사할 수는 없다. 특허권은 한 번 행사하면 소진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특허권자 갑이 특허제품을 생산해 을에게 판매했다. 을은 그 제품을 쓰다가 다시 병에게 팔았다. 특허권자 갑의 특허권이 기간 만료(특허출원 시로부터 20)가 되지 않았다면 갑은 을에게 특허제품의 판매를 금지하라고 청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인정한다면 중고물품의 거래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이미 특허권을 한 번 행사한 갑에게 여러 번의 권리행사를 하게 하는 게 지나치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그래서 이러한 경우에는 갑이 특허제품을 생산해 을에게 판매함으로써 특허권은 소진된다.우리 판례도 인정하는 이론이며 국제적인 소진도 인정된다. 예를 들어 갑이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모두 특허를 받은 제품을 미국에서 생산해 미국의 을에게 팔았는데 한국에 있는 병이 이것을 수입해 온다고 치자. 이때 갑은 미국의 특허권은 한 번 행사했으나 한국의 특허권은 아직 행사한 것이 아니므로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주장할 수 없다. 특허권의 국제소진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적법한 특허권 행사가 있는 경우에만 특허권이 소진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을이 갑의 허락도 없이 특허를 침해해 물건을 만들어 팔았고 이를 구매한 병이 다시 정에게 특허제품을 판매했다고 가정하자. 갑은 을이나 병 모두에게 특허권을 행사해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 수 있다. 적법한 특허권 행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박성수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seongsoo.park@kimchang.com

필자는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미시간대 법학 석사와 연세대 공학 석사 학위도 갖고 있다.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특허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법원행정처 국제총괄심의관 등을 거쳐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했다.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으며 현재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지적재산권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 박성수 | - (현)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지적재산권 관련 업무 담당
    -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특허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법원행정처 국제총괄심의관,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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