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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tegic Planning

‘초일류, 세계최고, 글로벌, 종합…’ 전략, 미사여구와 잡다한 목표부터 빼라

이동현 | 110호 (2012년 8월 Issue 1)






기업 경영에서 전략만큼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개념도 드물 것이다. 온갖 용어에 전략이라는 단어만 붙이면 그럴 듯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마케팅 전략, R&D 전략, 재무 전략 등 다양한 경영 활동을 전략이라고 표현하면 왠지 해당 활동이 수준 높게 관리된다는 착각을 유발한다. 하지만 너무 광범위하게 해석되는 개념은 오히려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의미하는 바와 의미하지 않는 바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개념이 명확해 질 것이다. 게다가 전략은 경영자들에게 여전히 인기 있는 주제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베인의 조사에 따르면 전략 기획이나 비전 선언문(vision statement)은 지난 10년간 경영자들이 선호하는 경영 기법 중 늘 상위권을 차지했다. 따라서 전략 개념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전략에 대한 인기만큼이나 실제 현업에서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소위나쁜 전략(bad strategy)’은 전략에 대한 경영자들의 잘못된 인식이 낳은 총체적인 부실을 대변하는 개념이다.

 

나쁜 전략의 속성과 원인

 

전략 분야의 개척자이자 대가로 알려진 UCLA 경영대학원의 리처드 루멜트 교수는 2011년 출간한 자신의 저서 <전략의 적은 전략이다(원제: Good Strategy Bad Strategy)>에서 좋은 전략을 세우려면 무엇보다 나쁜 전략을 인식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책에서 제시한 나쁜 전략의 대표적인 속성들은 전략에 대한 오해가 낳은 심각한 기업 관행들이었다.

 

우선초일류 기업으로 대표되는 미사여구가 나쁜 전략의 대표적인 속성이다. 실질적인 내용이 없는 전략일수록 추상적이거나 근사한 용어들을 늘어놓고 고차원적인 사고의 결과물인 것처럼 호도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이 발표하는 전략에초일류’ ‘세계 최고’ ‘종합’ ‘글로벌등의 용어가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지만 실제 이를 어떻게 달성하겠다는 복안을 제대로 표현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 1>은 홈페이지에 게재된 일부 한국 공기업들의 비전 및 전략을 정리한 표다. 표에서 주요 전략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미래성장 동력 확보, 글로벌 경쟁력 확보, 고객만족경영, 지속가능경영 등 거창한 용어들이 등장한다. 물론 이들 전략이 틀린 내용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표현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이고 차별적인 정책들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 1>처럼 일부 공기업의 핵심전략이 그럴듯한 미사여구 나열에 그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홈페이지 내용만 보고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한 가지 원인은 사명(mission), 비전, 가치(value), 전략이라는 정해진 틀에 빈칸을 채우는 식으로 전략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주어진 형식을 활용해서 전략을 만들면 조직의 진정한 문제를 파악하고 기회를 분석하는 골치 아픈 작업을 피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저마다 바라는 긍정적인 내용만 담으면 되기 때문에 누구도 희생시킬 필요가 없다.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받아들인다면 이러한 방식이 문제될 것이 없다고 강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틀에 박힌 전략 수립은 실질적인 전략을 만들려는 노력을 피상적인 문구로 변질시켜 아무런 효과가 없는 나쁜 전략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둘째, 좋은 전략은 핵심 목표에 자원과 노력을 집중한다. 반면 나쁜 전략은 잡다한 목표와 허황된 목표에 자원과 노력을 분산시킨다. 단순히 해야 할 일(To-Do List)의 목록을 전략으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목표와 전략을 혼동하는 경우도 많다. 대담하고 높은 목표를 설정하거나 장밋빛 희망사항을 비전에 담으면 마치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높은 목표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흔히 구성원들의 열정과 강력한 의지를 강조하지만 풍차를 공격하는 열정의 돈키호테를 전략가라고 하지는 않는다. 긍정적인 사고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문제점을 파악하고 분석하지 않으면 전략이 아니라 단지 희망사항을 나열하는 데 그치게 된다.

 

소수의 중요한 목표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모든 희망사항을 포함한 목록은 결코 전략이 될 수 없다. 거기에장기(long-term)’라는 명칭까지 부여하면 그 어느 것도 당장 이룰 필요가 없는 무의미한 목록이 될 것이다. 어떤 기업은 12개 전사전략, 30개 전략과제, 그리고 무려 100개 실행과제를 세부 전략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전략들은 자원의 제한으로 실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구성원들조차도 목록이 실현될 것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방대한 목록이나 희망사항이 전략으로 둔갑한 가장 큰 이유는 경영자가 선택, 즉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어려운 작업들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리더가 상충하는 가치들 사이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거나 내리지 않으려고 할 때 방대한 목록들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연관성 없는 개별적인 행동들을 나열하는 것은 전략이 아니다.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하기 위한 계획을 잔뜩 늘어놓고 사정이 나아지기만을 바라는 천수답 경영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를 회피하면 당장 갈등이 없어 일시적으로 마음은 편할 수 있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전략은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안들을 검토하고 선택해야 하며 선택된 대안들에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조직 내에 긴장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를 두려워하거나 귀찮아서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모든 것을 다하자는 주장은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주장과 동일한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셋째, 나쁜 전략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거나 문제를 오히려 회피한다. 한때 미국을 대표했던 초일류 기업이었던 코닥은 90년대 말 디지털카메라 붐이 확산되면서 침체에 빠지기 시작했다. 디지털카메라 시장은 매년 20%씩 성장한 반면 전통적인 필름 시장은 15%씩 감소했다. 덕분에 91 190억 달러에 달했던 코닥의 매출액은 2003 130억 달러로 급감했다. 하지만 코닥은 무려 5년이 지난 2003년까지도 이러한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당장 필름 매출이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에서 필름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과 수치들이 제시됐다. 디지털카메라 기술을 제일 먼저 개발해 이미 역량을 확보했던 코닥이지만 기존 필름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코닥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었던 위기를 왜 감지하지 못했을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공식화된 계획 시스템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간과한 것이다.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할 경영자들은 점점 더 현장에서 멀어지고 현장을 잘 모르는 기획 스태프들이 사업계획을 주도하면서 마치 스태프들이 전략을 수립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기업에서 의사결정에 필요한 대부분의 자료들은 기획 스태프들이 도맡아 작업하게 된다. 그들은 애초 시간과 스킬이 부족한 경영자들을 대신해서 전략적 의사결정을 지원하기 위해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기능을 대행했다. 결과적으로 사업의 책임자들은 이들 스태프들이 제공하는 분석 자료를 참조해서 전략을 결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행들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경영진은 점점 더 현장에서 멀어지고 오직 기획 스태프들이 제공하는 복잡한 수치와 분석 자료에 근거해 전략적 의사결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기획 스태프들이 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전략을 수립하면 경영진은 회의를 통해 승인만 하는 식으로 변질됐다. 전문성이라는 미명 아래 기획 스태프들이 분석을 도맡았지만 어느새 이들이 제공하는 분석 자료들만 두꺼워졌을 뿐 정작 문제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보고서로 전락했다. 사업 계획이 두껍고 멋진 파워포인트 장표의 경연장으로 변질된 지 오래됐다. 이제는 사업의 전략을 마련하고 이를 실천하는 주도권을 실제 사업을 책임지는 사람들에게 되돌려 줘야 한다. 또한 사업 책임자들은 기획 스태프의 보고서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체험한 생산 현장과 고객의 목소리도 중시해야 할 것이다.

좋은 전략의 조건

 

그렇다면 나쁜 전략과 대비되는 좋은 전략이 갖춰야 할 조건들은 무엇일까? 우선 좋은 전략은 냉철한 진단에 바탕을 둬야 한다. 전략을 수립하는 첫걸음은 도대체 우리 사업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이다. 단지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점이나 장애요인에 대한 진단이 잘못되면 엉뚱한 전략이 제안될 수 있다.



 

70년대까지 항공기엔진과 더불어 원자력 사업은 GE의 대표적인 기술사업 중 하나였다. 당시 원자로 사업부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최고의 자질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잭 웰치가 CEO로 취임한 81년 원자력 사업은 큰 변화를 겪고 있었다. 2년 전인 79년 펜실베이니아의 스리마일 섬(Three Mile Island)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한 방사능 누출 사고는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회의적인 여론을 확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잭 웰치가 바로 이 원자로 사업부를 방문할 날, 사업부 기획팀은 매년 발전소용 원자로 3기를 신규 주문받는 것을 가정해 수립한 장밋빛 사업 계획을 보고했다. 이런 계획이 가능한 이유는 원자로 사업부의 구성원들이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누출사고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진단했기 때문이었다. 사고로 사업 환경이 완전히 변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들은 미래를 낙관했다. 하지만 잭 웰치는 그들에게 미국 내에선 원자로 주문을 추가적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는 가정 아래 사업 계획을 다시 수립하라고 요청했다. 사업부의 현실 진단에 찬물을 끼얹어 버렸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현실에 대한 냉철한 진단이 다시 이뤄지자 문제 해결의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됐다. 원자로 사업부는 핵 반응기 부문의 종업원 수를 80 2410명에서 85 160명으로 대폭 줄였고 원자로 기반 설비의 대부분을 없앴다. 사업의 초점을 원자로를 판매하는 단순 제조업에서 이미 판매한 72기의 원자로를 대상으로 연료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조 서비스업으로 전환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원자로 관련 서비스 사업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후 20년간 원자로 사업부에서 판매한 최첨단 원자로는 단 4기에 불과했다. 물론 주문받은 4기의 원자로 중에서 미국 내에서 발주받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GE 원자로 사업부 사례는 냉철한 진단이 전략의 방향을 통째로 바꿀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93년 루 거스너가 IBM CEO에 올랐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IBM은 기업과 정부기관에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전략을 기반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술의 발전 때문에 상황이 바뀌었다. 컴퓨터 산업은 칩, 메모리, 하드디스크, 키보드, 소프트웨어, 모니터, 운용체제 등의 분야로 분화했다. 따라서 당시 IBM 내부의 지배적인 시각은 산업의 변화에 맞춰 사업 부문을 분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거스너는 상황을 분석한 후 다른 결단을 내렸다. 거스너는 하드웨어 플랫폼이 아니라 고객 솔루션에 초점을 맞추어 통합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진단에 따른 전략 방향은 IBM의 고유한 역량을 활용해서 고객에게 맞춤식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초점을 고객 솔루션에 뒀기 때문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필요에 따라 다른 회사의 제품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IBM의 핵심 활동은 시스템 엔지니어링에서 IT 컨설팅으로,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전환됐다. 이처럼 상반된 진단은 회사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특히 통찰력 있는 분석은 상황에 대한 시각을 전환해서 완전히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냉철한 진단이 이뤄지면 다음으로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행동지침을 마련해야 하는데 루멜트 교수는 이를추진방침(guiding policy)’이라고 명명했다. 추진방침은 상황의 복잡성과 모호성을 줄이고 집중적인 노력을 통해 일관된 행동을 유도함으로써 경쟁우위를 창출한다. 또한 좋은 추진방침은 경쟁우위의 원천을 창출하거나 활용해 진단을 통해 드러난 장애요인들을 극복한다. GE 원자로 사업부가 제조 서비스업으로 전환하거나 IBM이 고객 솔루션을 강조한 것은 전형적인 추진방침의 예다. 추진방침은 좁은 의미에서 전략이라고 볼 수도 있다.

 

추진방침은 조직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행동지침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불확실한 상황에서 나침반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경영자들에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방향성(direction)’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혼란스럽고 복잡한 세계에서 경영자는 전략을 통해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 결정은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복사기 업체인 제록스는 최초로 PC 개념을 발명했지만 사업의 가능성을 오판해 정작 PC 산업의 주도권을 애플과 IBM에 빼앗겼다. 유통업체인 시어즈는 도심 변두리에 있는 창고형 할인 매장이 별 볼일 없다고 판단했지만 볼품없었던 월마트는 오늘날 세계 최고의 유통업체로 성장했다. 에스프레소 바는 이탈리아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사업 모델이었지만 스타벅스는 로스팅과 브랜드, 서비스를 통합한 모델을 통해 유럽의 커피 회사들이 미처 건설하지 못한 거대한 소매 체인을 구축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독점 기업인 경우를 제외하면 기업은 언제나 시장에서 경쟁자와 다툰다. 따라서 경쟁자와 비교한 자신만의 색깔, 즉 타사와 비교해 자신은 어떤 기업인지, 혹은 내가 하는 사업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이 때문에 추진방침에는 경쟁자와 대비되는 사업의차별성(difference)’이 담겨 있어야 한다.

 

월마트와 K마트는 할인점이라는 측면에서 유사해보이지만 사업을 운영하는 원리는 근본적으로 차이점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할인점은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와 연계돼 있다. 할인점을 운영하려면 최소 10만 명의 인구 기반이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통념이었다. 또한 기본적인 운영 단위는 매장이었다. K마트는 이러한 통념에 충실했다. K마트는 각 지점장에게 제품 라인과 공급업체, 가격까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K마트 관점에서는 소도시를 공략하는 월마트는 대단히 비효율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월마트는 할인점 사업을 다르게 접근했다. 월마트 입장에서 기본적인 경영단위는 매장이 아니라 네트워크였다. 비록 개별 매장은 인구가 적은 소도시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150개 매장으로 구성된 네트워크 전체는 100만 명이라는 인구 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다. 따라서 월마트는 철저하게 중앙집권적으로 운영됐다. 매장의 개념을 네트워크로 확대 정의했고 이를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찾아냄으로써 월마트는 경쟁자와 다른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일관된 행동과 조율의 중요성

 

명확한 방향성과 독특한 차별성은 좋은 전략이 갖춰야 할 필요조건이지만 좋은 전략이 완성되려면 반드시 갖춰야 할 마지막 조건이 하나 더 있다. 좋은 전략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제시할 뿐만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하는지도 제시해야 한다. 전략은 반드시 행동을 수반해야 한다. 물론 모든 행동을 나열할 필요는 없다. 다만 전략적 개념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일관성 있는 행동들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행동들은 조직의 역량을 집중해서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도록조율(coordination)’돼야 한다.

 

흔히 구체적인 행동계획은 전략의 세부사항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은 전략의 본질이자 핵심이다. 즉각적으로 취할 수 있는 타당한 행동들을 정의하지 않은 전략은 중요한 요소를 빠뜨린 것이다. 기본적으로 전략은 중요한 문제에 대응하는 일관된 분석, 방침, 행동을 의미한다. 반대로 일관성이 없는 전략적 행동은 별개의 목표를 추구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지 못한다.

 

미국의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저비용 항공사의 선도업체다. 사우스웨스트가 국내선 시장에서 저가 항공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자 업계의 1, 2위를 다투는 델타와 유나이티드항공사가 저가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진입 초기 저가 시장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포기할 줄 몰랐다. 급기야 델타는(Song)’, 유나이티드는테드(Ted)’라는 별도의 저가 브랜드를 구축해 다시 시장을 공략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사우스웨스트를 넘어서지 못했고 저가 항공 사업에서 철수하기에 이르렀다. 24년과 26년에 각각 설립돼 미국 항공 산업을 주도했던 델타와 유나이티드항공사가 역사도 짧고 비즈니스 모델도 단순한 저가 항공 사업에서 실패한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외관만 보면 저가 항공 사업은 매우 단순해 보인다. 전통적으로 중심 공항과 주변 공항을 연결하는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 방식 대신에 도시 간 직항로를 운영하는 포인트 투 포인트(point-to-point) 방식을 기반으로 거리 대비 연료 효율이 높은 보잉737 단일 기종을 운영하면서 최소한의 기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사업의 전부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단순해 보이는 사업을 업계 1, 2위 기업들이 제대로 모방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우스웨스트의 일관된 행동과 조율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행동의 조율 자체가 경쟁우위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조율을 일시적인 조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략적인 차원에서 조율은 일시적 조정이 아니라 기획에 따른 체계적 조정이다. 다시 말해 행동과 자원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사우스웨스트는 기장을 비롯한 승무원과 지상 조업 인원 간의 팀워크와 협업을 매우 중시한다. 값싼 티켓을 판매하는 저가 항공 사업에서 수익성을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비행기 운항 횟수를 최대한 늘려 많은 인원을 신속하게 목적지로 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해서 수하물과 승객을 내리고, 항공기 정비와 급유가 이뤄지면 기내 청소와 함께 승객과 수하물을 다시 싣고 이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단축하는 노하우가 필요하다. 이는 도시 간 직항로에서 운영되는 비행기 운항 시간을 늘려 결과적으로 항공기의 가동률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정시 출발과 도착이 이뤄져 항공사를 이용하는 승객들의 가장 큰 불만을 해소할 수 있다.

 

또한 사우스웨스트는 독특한 기내 서비스로도 유명하다. 승무원들은 각자 자신의 특기를 이용해서 기내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등 자칫 지루할 수 있는 항공 여행에 색다른 활력소를 제공한다. 이 역시 저렴한 티켓 가격 때문에 단가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었던 사우스웨스트가 고육지책으로 설립 초기부터 꾸준히 실행해서 개발한 구체적인 방법론들이다. 더 깊이 살펴보면 사우스웨스트는 구성원들 간의 긴밀한 협업과 독특한 기내 서비스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인력의 채용과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어쩌면 사우스웨스트의 성공 사례가 전략뿐만 아니라 마케팅, 서비스, 인재개발, 노사관계, 리더십 등 다양한 경영학 분야에서 많이 인용되는 것은 그들의 일관된 행동이 기업의 목표 달성을 위해 잘 조율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다양한 교육을 통해 전략에 관한 지식이나 기법들이 널리 확산되면서 자신을 전략의 전문가로 과신하는 경영자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들은 자신만의 성공체험을 지나치게 과신한다. 자신의 경험과 직관, 때로는 시행착오를 통해 성과를 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 곧 전략이고 성공 방정식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코닥, 소니, 노키아 등 수많은 실패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의 성공은 미래의 성공을 결코 보장하지 못한다. 제대로 전략을 수립하려면 과거 경험이나 모호한 추측이 아니라 확고한 사실에 기반을 두는 자세가 중요하다. 산업 추세에 대한 통찰을 얻고, 경쟁자의 행동과 반응을 예측하며, 고유한 역량과 자원을 파악하려면 본능이나 직관이 아니라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좋은 전략은 대개 깊은 생각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명심하자.

 

 

이동현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

 

이동현 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 방문 교수로 연구 활동을 벌였다. <MBA 명강의> <경영의 교양을 읽는다: 고전편, 현대편> <깨달음이 있는 경영> <초우량 기업의 조건>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경영학 지식을 다양한 조직에 확산하는 일에 역량을 쏟고 있다.

  • 이동현 | - (현)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
    -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 방문 교수
    - <경영의 교양을 읽는다: 고전편, 현대편>, <깨달음이 있는 경영>, <초우량 기업의 조건> 저자
    dhlee67@catholi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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