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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인수와 해운업계 구조조정 지원

“담보가치 떨어진 선박 아예 사주자” 해운사도 놀란 역발상, 연쇄 부실 고리 끊다

이기환 | 108호 (2012년 7월 Issue 1)



편집자주

캠코가 지난 46일로 창립 50주년을 맞았습니다. 캠코가 50년 동안 명실상부한 한국의 종합 자산관리 공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보여준 대표적인 다섯 편의 성공 스토리들을 DBR이 자세히 풀어냅니다. 부실채권 정리, 구조조정과 M&A, 국유재산 관리 등과 관련해 지난 50년간 캠코가 축적한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한 작업으로 업계와 학계 모두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택호(서강대 경영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1. 국내 해운산업 상황

2008년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는 국내 해운산업에도 큰 충격을 줬다.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면서 국가 간 교역이 얼어붙었고 이는 물동량 급감으로 이어졌다. 2008년 상반기 12000포인트에 육박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발틱해운거래소 건화물운임지수(BDI)1 는 같은 해 11 800포인트 아래로 떨어졌다. 물동량이 줄자 국내외 해운업체 간 경쟁이 심해졌다. 경쟁이 과열되면서 선박 운임료가 하락했고, 특히 시황 변화에 민감한 벌크선 부문의 수익성이 가파르게 떨어졌다. 해외 상위사보다 규모나 인지도, 운송능력 등이 부족했던 국내 중소해운업체의 영업상황은 한층 더 어려웠다. 신규 운송 계약 체결이 불가능해진 것은 물론 이미 체결된 운송 계약이 줄줄이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러한 상황은 국내 해운업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 때문에 한층 악화됐는데 당시 국내 해운업계가 갖고 있던 구조적 취약점은 다음과 같다.

 

① 취약한 유동성 글로벌 경기 불황과 물동량 감소는 선박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 2008년 말 중고 벌크선의 가격은 연초에 비해 절반 이상 급락한 상태였다. 선박 가격이 하락하면서 이를 담보로 자금을 지원했던 금융권의 압박이 시작됐다. 선박을 담보로 맡기고 현금을 융통해서 선박 구입 및 각종 비용으로 사용하던 해운사들은 대출금 상환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그림1)

 

선박 운임이 하락하는 것도 문제였다. 공급이 수요보다 우세한 상황이 만들어지면서 운임 시세가 뚝 떨어졌다. 용선료는 2008 1월 정점을 찍고 추세적 하락을 보였다. 안 그래도 담보가치가 떨어져 대출금 상환 독촉에 시달리는 중에 선박을 빌려주고 얻는 수익마저 끊어지자 중소 해운업체들은 파산 위기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이는 충분한 자본 없이 과도한 레버리지를 통해 선박 구입에 나선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림2)

 

② 연쇄적으로 얽힌 용대선 계약 구조 대부분 해운업체들은 직접 배를 소유하기보다는 제3자인 원주인으로부터 빌려 쓰는 용대선(傭貸船)2 방식을 이용하고 있었다. 해운 호황기였던 2007∼2008년에는 배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자금조달 여력이 없는 선사들의 용선 의존도가 이전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용선 수요가 증가하자 선박보유기업들의 신규 선박 건조도 늘었다. 배를 새로 지으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지만 이 기간에는 용선 수요가 많고 용선료가 높았기 때문에 선박 건조 후 3년이면 자금 회수가 가능했다. 해운업체 중 상당수가 선박 건조에 뛰어들었고 대선(貸船) 수입 비중을 높였다.

 

 




 

 

그런데 이때 해운사의 대부분은 한 척의 선박으로 수개의 용선계약을 체결하는용대선 체인방식을 활용했다. 예컨대 A사가 선주로부터 하루에 5만 달러씩 내고 배를 빌린 후 이 배를 B사에 2만 달러의 마진을 붙여 7만 달러에 빌려준다. B사는 다시 이 배를 C사에 빌려주면서 하루에 10만 달러씩 받는다. C사는 화주(貨主)에게 하루에 10만 달러씩 받고 이 배를 화물 운송에 활용하게 한다. 그런데 운임료가 떨어지면서 화주가 C사에 지불하는 금액이 하루에 2만 달러로 떨어지면 C사는 매일 8만 달러씩 손실을 보게 된다. 손실을 감당하지 못한 C사가 파산하면 B사와 A사 역시 연쇄적으로 부도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이처럼 줄줄이 연결된 용대선 체인은 국내 해운사들의 수익성 악화를 가속시키는 데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그림3)

 

③ 해운업계의 영세성 2008년 말 기준 선주협회에 등록된 70개 회원사 가운데 자본금이 100억 원 이상인 선사는 10개에 불과했다. 75% 이상을 차지하는 53개 사는 면허요건인 5억 원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었다. 전체 177개 해운사 가운데 상위 30개 사가 해운업계 전체 매출의 85%를 차지할 정도로 대형 업체들에 이익이 집중되고 있었다. 다수 해운사들은 시장 분석 및 위기 대처 능력을 갖추기는커녕 적자를 막는 데 급급했다. 이런 중에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확산되면서 특히 세계 경제 상황에 민감도가 높은 해운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그중에서도 자본이 충분하지 않고 영업능력이 떨어지는 중소 해운업체들이 위기에 처했다. 수익성 악화가 가속되면서 영세 해운사들이 차례로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2. 해결과정

해운업계 부실을 장기간 방치할 경우 조선 및 금융산업이 동반 부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선박 건조 발주가 줄고 국적 선박이 헐값에 매각될 수 있는데다 담보가치 하락으로 부실채권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는 관련업 동반 부실은 물론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져 실물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정부는 2009 3해운업 구조조정 추진방향을 마련한 데 이어 같은 해 4해운산업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 및 업계 연쇄 부실 방지를 추진할 주체로 캠코가 선정됐다. 캠코에는 해운업계 지원을 위한 구조조정기금이 설치됐다.

 

① 별도의 전문 조직 설립 캠코는 곧바로해운업계 구조개선 지원 추진 TFT’를 꾸렸다. 당시 캠코는 국내 기업의 구조조정 지원과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인수 등을 추진하기 위해 외부에서 전문인력 10명을 특채했는데 이 가운데 3명이 해운업계 구조조정을 위한 TFT에 합류했다. TFT에는 외국계 금융회사 투자업무 전문가, 선박금융 전문가, 변호사, 공인회계사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선박인수 방식과 구조, 인수 기준과 가격산정 방식을 논의하는 동시에 해운사 및 선순위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마케팅 활동에 들어가는 등 본격적인 업무에 착수했다.

 

선박 투자의 법적 근거는 크게 자본시장통합법과 선박투자회사법에서 찾을 수 있다. 캠코는 이 가운데 선박투자회사법을 통한 선박 인수를 선택했다. 선박펀드를 만들어 선박에 자금을 투자, 소유권을 갖는 구조였다. 이를 위해 캠코는 2009 6월 펀드 설정 및 운영 주체로 캠코선박운용을 설립했다.

 

② 선박 인수 운용사를 설립한 캠코는 본격적인 선박 인수 작업에 돌입했다. 선박을 인수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구조조정기금이 출자하는 선박투자회사를 만든다. 이 선박투자회사는 캠코선박운용에 위탁 운용된다. 선박투자회사는 기금이 출자한 자금으로 명목 선주인 특수목적회사(SPC)에 출자 및 후순위 대출을 실행한다. SPC는 금융회사에서 받은 선순위 대출금과 선박투자회사에서 받은 후순위 대출금으로 선박을 매입한다. 이 선박은 해운사에 빌려줘서 용선료를 받게 한다. 해운사는 용선료를 받아 금융기관의 선순위 대출과 선박투자회사의 후순위 대출 등 대출원리금을 상환한다. 선박투자회사는 구조조정기금에 배당금을 지급해 기금이 출자한 자금을 상환한다.이 과정에서 핵심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SPC의 설립

명목상 선주인 SPC편의치적국(FOC Country)’에 세운다. FOC(Flag Of Convenience) Country란 수수료를 받고 선박 국적을 빌려주는 국가를 말한다. 파나마, 마셜아일랜드, 몰타 등 전 세계에 40여 개 국이 있다. SPC FOC Country에 세우는 것은 세금과 인력 관리, 자금 모집상 편의성 때문이다. 일단 세금을 줄일 수 있다. 소득에 물리는 세금이 현저히 낮거나 아예 없는조세피난처(Tax Heaven)’와 같은 원리다. 또한 FOC Country 이외 국가에 선박을 등록할 경우 해당국 선원을 일정 비율 이상 확보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예컨대 우리나라 선박이 자국 국적을 활용해한국 선박으로 등록하면 선원 중 일정 비율 이상을 한국인으로 채워야 한다. 이런 규제는 선원의 자유로운 모집을 방해한다.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가 가능하고 자금 동원력이 우수한 외국계 은행 자금을 좀 더 쉽게 끌어오려는 목적도 있다. 외국 금융기관의 경우 국내법에 따라 등록된 선박에는 잘 투자하지 않는다. 신뢰도가 낮을 뿐 아니라 담보권 실행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때 SPC는 선박 한 척당 하나씩 별도로 설립해야 한다. 그래야 기름 유출 등 예상치 못한 재해가 발생했을 때 연쇄적으로 책임 의무가 발생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만약 하나의 SPC에 수척의 배가 한꺼번에 묶여 있다면 배 한 척에 발생한 손해배상책임이 다른 배에 연대 적용되기 때문에 손실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캠코선박운용 역시 선박 한 척을 인수할 때마다 FOC Country를 골라 별도의 SPC를 세웠다.

 


● 인수가격 산정

인수가격은 쉽게 말해 선박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의 문제다. 선박의 경우 물동량이 많은 경제 호황기에는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지만 거래가 줄고 국가 간 수출입이 감소하는 불황기에는 고철값도 제대로 받기 어렵다고 비유될 정도로 가격이 급락한다. 캠코선박운용이 선박을 매입할 때도 가격을 얼마로 매길지,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가 관건이었다. 특히 국내에서는 선박 매입과 관련한 사례나 경험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둘러싸고 의견 대립이 심했다. 김우석 캠코선박운용 과장은선박 매입을 개시했을 때 국내 감정평가원 등 관련 기관들과 마찰이 심했다. 수차례 토론과 설득을 거친 후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가격 산정방식을 적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캠코선박운용이 선택한 가격 산정방식은 다음과 같다. 해운사에서 선박 매입을 요청하면 일단 캠코선박운용에서 실사를 나간다. 선박 구석구석을 살펴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 후 세계 6대 선박평가전문기관(S&B Broker) 2곳으로부터 평가 보고서를 받아 두 곳의 평가가격을 평균한다. 이어 국내외 회계법인 중 한 곳에서 해당 선박의 사업성 평가를 받은 후 둘 중 낮은 가격을 기준가격으로 정한다. 그리고 이렇게 산정된 기준가격을 상한으로 해운사와 협의해서 최종 인수가격을 결정한다.

 

 

이때 캠코선박운용이 적용한 선박매입 방식은 BBCHP (Bare Boat Charter Hier Purchase·소유권이전부나용선계약)이다. BBCHP는 캠코가 선박을 산 후 일정 기간 동안 해운사에 빌려줘서 임대수익을 얻어 금융상 어려움을 해결하도록 하고 매입 시 약정했던 기간이 종료되면 선박 소유권을 다시 원래 선주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해운사의 단기 수익성을 높여 부실을 떨어내도록 도우면서도 소유권 자체는 일정 기간 후 회복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선박 소유권이 완전히 캠코선박운용으로 이전되는 TC(Time Charter·정기용선계약) BBC(Bare Boat Charter·나용선계약)와 차이가 있다.(1)

 

BBCHP 방식은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첫째, 계약기간이 만료된 후 매각했던 가격으로 선박을 되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소유권이 완전히 넘어가는 다른 방식에 비해 해운사 부담이 작다. 둘째, 선박을 빌려 사용할 해운사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캠코선박운용 입장에서 선박을 빌려갈 제3의 주체를 찾아야 하는 부담이 없다. 셋째, 선박의 유지보수에 대한 의무가 빌려가는 선주에게 있기 때문에 캠코선박운용이 인력 또는 비용상 추가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된다. 즉 유동성 위기로 단기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급한 불을 끄고 나면 경영을 다시 정상화할 것이라고 믿는 해운사와 선박인수 업무를 처음 시작하면서 인력 및 비용 면에서 부담을 가능한 최소화하고자 하는 캠코 모두에 부담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 스와프를 통한 환 헤지

마지막으로 선박 인수 과정에서 체크해야 할 또 다른 요인은 환율 변수였다. 구조조정기금에서 캠코선박펀드(선박투자회사)에 출자한 자금은 원화다. 하지만 SPC가 해운사에 지급하는 매매대금이나 선순위 금융회사와 거래하는 선순위 대출금은 달러화다. 선박투자회사는 기금에서 출자받은 원화를 달러화로 바꿔 SPC에 출자하고 SPC는 이 자금과 선순위 금융기관에서 받은 자금(달러화)으로 선박을 매입한다. 이후 해운사로부터 받은 용선료(달러화)로 선순위 금융회사에서 빌린 자금을 갚거나 선박투자회사에서 받은 후순위 대출을 상환한다. 선박투자회사는 여기서 받은 달러화를 다시 원화로 바꿔 구조조정기금에 배당금을 지급한다. 그런데 이때 계약할 때와 상환할 때 환율 또는 이자율이 크게 차이나면 환율 변동에 따른 환손실이나 금리 변동에 따른 이자율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한 헤지 거래가 스와프(Swap). 캠코선박운용은 경쟁입찰을 통해 금리 조건이 가장 좋은 은행을 스와프은행으로 선정해 환율 및 금리 변동에 따라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차단했다.

 

3. 문제 해결 효과

선박매입 구조, 선박가격 산정 방식과 기준 등을 결정하고 2009 6월 초 선박매입 신청을 접수받은 결과 총 18개 해운사에서 72척의 선박 매입을 요청했다. 이 중 62척이 매입 대상으로 선정됐다. 이어 같은 해 7 17척의 선박을 성공적으로 인수하며 유동성 위기에 몰린 해운사들의 기사회생을 도왔다. 선박을 매각해 현금을 쥐게 된 해운사들이 이 돈을 부채 상환에 사용하면서 금융회사들의 자산건전성을 높이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자국 선박의 해외 헐값 매각을 막고 관련 업종으로의 연쇄적 여파를 차단함으로써 국내 경제 전체에 미치는 부정적 파급효과를 방지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선박가치 평가모델을 수립한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선박은 가격 변동폭이 크고 업종의 특수성이 강해 일반적인 가치평가 방식을 적용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선박인수 작업 초기, 적절한 가격 산정 방식을 놓고 내부에서도 의견 차이가 컸다. 상당기간 논의를 거친 끝에 해운사의 관행을 충분히 반영하면서도 기금 운용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식이 확정됐다. 이 방식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선박평가전문기관 2개 사 평가금액의 산술평균가격과 회계법인이 산정한 현금흐름할인(DCF) 가격 중 낮은 가격을 기준으로 해서 이를 한도로 해운사와 협의해 최종 가격을 산정하는 구조다. 이는 국내에 존재하지 않았던 선박가치 평가 모델의 기준이 됐고 이후 만들어진 선박펀드에서도 이를 준용하고 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캠코는 2009년 총 18척의 선박을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2010 8, 2011 7척 등 총 33척의 선박을 인수했다.

 

4. 성공요인

① 신용도 높은 캠코의 후순위 참여 해운업계의 유동성 위기를 지원하기 위해 시작된 선박인수에서 가장 큰 난관은 선순위로 들어올 금융회사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구조조정기금이 발족된 초기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국내외 금융회사 모두 선박금융을 축소하거나 아예 중단해버려 선순위 금융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해운업계 상황이 워낙 좋지 않았고 글로벌 금융위기의 장기화 가능성이 제기되며 교역량이 언제 반등할지 불투명한 상태라 국내외 할 것 없이 선박인수에 참여하기를 꺼렸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캠코선박운용은 공공기관인 캠코의 신용도를 담보로 후순위 대출을 설정했다. 캠코가 경쟁력 있는 금리를 내걸고 후순위 대출권자로 참여하면서 선순위 금융을 끌어올 수 있었고 선박 매입이 가능해질 수 있었다.

 

② 상황에 맞는 매입방식 선택 선박인수 방법을 결정한 후 우려됐던 점 중 하나는과연 해운사가 선박을 매각하려 할 것인가였다. 해운사는 선박이 가장 큰 자산이자 영업 수단이기 때문에 선박의 소유권을 완전히 넘기는 통상적인 매매 방식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캠코가 선박 매입 방안을 내놨을 때 대부분 해운사의 실무자들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다. 캠코는 고민 끝에 BBCHP 방식으로의 전환을 결정했다. 해운사들을 상대로 BBCHP 방식의 장점을 직접 프레젠테이션하며 선박인수 절차를 자세히 설명하고 설득했다. 접수를 받기 시작하자마자 70척이 넘는 선박 매입 요청이 들어온 점은 이 같은 노력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것을 입증한다.

 

③ 국내 선박금융의 지지선 확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진 이후 국내외 금융기관은 일제히 해운사에 대한 신규 대출을 중단하거나 축소했다. 기존의 선박금융 자산 역시 유통시장(secondary market)에서 다른 금융기관에 넘기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점에 국내 해운사가 신규 대출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때 캠코가 구조조정기금을 활용해 국내 해운사를 지원하기 시작하자 금융기관들에도 긍정적인 연쇄효과가 나타났다. 특히 국내 해운사에 대한 해외 선박금융기관들의 각종 커버넌트(covenant)3 상 제재가 느슨해졌고 일부 선박금융기관들이 높은 금리로 폭리를 취하는 현상도 사라졌다. 오히려 캠코와 손잡고 국내 중소 해운사의 선박금융에 참여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는 국내 선박금융시장이 아예 얼어붙어버리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로 이어졌다.

 

5. 시사점

해운사 선박을 매입해 유동성을 공급한 캠코의 선박금융은 해운사의 실질적인 운영에 큰 힘이 됐을 뿐 아니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이는 시장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져 국내외 금융기관이 자금 공급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최근 구조조정기금 집행은 거의 중단된 상태다. 국내 해운업이 매년 300억 달러 이상의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고 우리나라 서비스업에서 거의 유일하게 국제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세계 경제가 호전되고 해운업이 본격적인 회복 단계에 접어들 때까지 좀 더 지원하는 방안이 강구될 필요가 있다. 또한 해운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데 필요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캠코에 고유회계를 설치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조선이 세계 1, 해운이 5위로 성장해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해운사들이 선박을 확보하는 데 소요되는 자금인 선박금융을 다루는 기법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특히 자금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데는 금융기관의 선박금융에 대한 전문성 부족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불황기에 해운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지원할 선박금융전문기관이 한 곳도 없다는 점도 문제다. 덴마크의 Danish Ship Finance사처럼 선박금융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금융기관을 설립해 해운사들의 선박확보자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덴마크는 충분한 금융 지원을 토대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선대를 구축한 머스크사를 보유한 국가가 됐다. 이 선사가 보유한 선복량(船腹量)4 은 우리나라 선사 전체가 보유한 선복량과 비슷하다.

 

새로운 선박금융전문기관의 설립을 고려할 때 캠코의 선박금융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공적자금을 해운업에 투입해 성공적으로 운영한 경험이 축적돼 있을 뿐만 아니라 다수 전문가를 확보하고 있어 새로운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기관을 설립해 선박금융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인력을 양성해야 선박금융의 국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최근 선박금융을 주도해 온 유럽계 은행들이 선박금융의 신규 대출을 거의 취급하지 않으며 그 역할이 위축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가 선박금융에서 그 역량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다. 선박금융전문기관을 설립해 선박금융의 영역을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이기환 한국해양대 해운경영학부 및 선박금융학과 교수 khlee@hhu.ac.kr

필자는 중앙대에서 경영학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영국 맨체스터대 맨체스터경영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을 거쳐 1995년부터 한국해양대 해운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선박금융을 연구하고 있으며 관련 저서로 <선박금융원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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