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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혁-신동엽교수의 Debate+

조직의 존립 위협할 수도 있지만…그래도 혁신해야 하는 이유는?

김선혁 | 108호 (2012년 7월 Issue 1)


 

혁신에 대한 상호모순적 입장의 공존

김선혁 학계와 실무업계를 막론하고 요즘 혁신만큼 뜨거운 화두가 없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술혁신, 경영혁신, 조직혁신 등 다양한 종류의 혁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21세기 치열한 경쟁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학자들 역시 창조경영으로 불리는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하에서는 끊임없는 혁신이야말로 핵심적인 경쟁우위가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혁신에 대한 관심은 학계나 경영 현장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최근에는 행정관료나 정치인, 문화예술계 종사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혁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대선을 앞둔 유력 대권후보들은 한결같이 쇄신과 혁신을 외치고 정당들은 혁신비대위나 혁신위원회처럼 혁신을 모토로 한 정책 수립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3∼4년 전부터 시행된 혁신학교나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혁신도시 등을 비롯해 우리 주변에서 혁신을 전면에 내세운 사례를 찾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혁신의 시대입니다.

 

신동엽 그러나 뜨거운 사회적 관심에 휩쓸려 혁신의 양면성을 냉철하게 평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우려됩니다. 즉 혁신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고 무조건적·무비판적일 뿐 아니라 맹목적으로 추종할 위험이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토론 역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듯 혁신이 정말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필요하다면 반드시 모두가 혁신을 시도해야 하는 것인지, 혹은 혁신의 위험은 없는 지, 혁신의 위험이 높다면 조직은 어떻게 혁신을 관리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혁신에 대해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인지 등의 이슈들을 냉정하게 검토해 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특히 혁신이 항상 경쟁력을 크게 향상시킬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이 가장 위험합니다. 그동안 발표된 수많은 연구결과들을 보면 혁신만큼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이슈도 없는 것 같습니다.

 

김선혁 실제로 혁신에 대해서는 학계와 실무업계가 서로 반대의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실무업계에서는 모든 조직이 무조건 시행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인 것처럼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데 반해 학계에서는 위험성을 더 강조합니다. 예를 들면 거시 조직이론의 주요 패러다임들은 대부분 혁신이 조직의 생존율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습니다.

 

신동엽 정확하게 말하면 혁신에 대한 상반된 입장은 심지어 학계 내부와 실무업계 내부에서도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경영학계만 해도 거장들 중에 크리스텐슨(C. Christensen)이나 하멜(G. Hamel) 등 실천적 지향성이 강한 학자들은 대부분 혁신의 당위성을 피력하는 데 반해 마치(J. G. March), 해넌(M. Hannan) 등 이론적으로 강한 학자들은 혁신이 위험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데 노력해왔습니다. 기업들을 봐도 일찍부터 혁신을 기업의 핵심 DNA로 강조한 스티브 잡스와 같은 경영자도 있지만 대다수 경영자들 사이에서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혁신이나 창조성 등은 실제 상황을 잘 모르는 학자들의 허황한 담론이라는 입장이 대세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대부분 기업들은 혁신보다는 개선을 통한 효율성 경쟁으로 단기 성과를 극대화하는 데 치중하고 있고요. 이렇게 학계와 실무업계 내에 혁신에 대한 정반대의 관점들이 공존하는 이유를 명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혁신은 과연 기업에 유익한 것인가? 아니면 조직이론가들이 주장하듯이 위험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은 혁신에 대한 기업 경영자들의 의사결정은 물론 학문적 연구에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왜 지금 혁신이 화두인가?: 21세기형 경쟁의 핵심 법칙

김선혁 먼저 혁신이 지금 이 시기에 이렇게 뜨거운 관심과 주목을 받게 된 배경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장 기본적이고 또 근본적인 이슈입니다. 거시적으로 보자면 20세기 말에서 21세기로의 시대적인 대전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20세기를 규정짓는 핵심 키워드로는 규모와 범위의 경제를 추구하는 대량생산-대량소비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에양적 효율성의 극대화는 기업을 포함한 모든 조직이 가장 우선시하는 절대적 가치였죠.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 인터넷 등이 등장하면서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했고 완전히 새로운 21세기형 경쟁환경이 형성된 것을 혁신이 강조된 이유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즉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던 20세기의 대량생산 시대와 달리21세기 환경은 극도로 역동적이고 불확실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의 요구에 따라 기업도 끊임 없이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 같은 이유로 혁신이 최근 갑자기 전 세계적 화두로 부상했다고 봅니다.

 

신동엽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실제로 최근 학계에서도 새로운 21세기형 환경의 성격을 규정하고 이해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한 예로 90년대 이후 새로운 경쟁환경을 가리키는 용어들이 다수 등장했는데요, 대표적으로 신경제(new economy), 신경쟁(new competition), 지식경제(knowledge economy), 창조경제(creative economy), 스마트경제(smart economy), 뉴노멀(new normal), 초경쟁(hyper-competition)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 개념들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조금씩 다른 점이 있기는 하지만 공통적으로 21세기형 경쟁환경의 주요 특성으로무경계성역동성’ ‘불확실성을 강조합니다. 지역이나 시장, 산업별로 경계가 있고 환경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며 예측 가능했던 20세기 환경과 그 성격이 달라진 것입니다. 이 때문에 기존 사업이나 시장에 선택과 집중해서 그 경계 안에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해 양적 효율성을 추구하던 경쟁방식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완전히 달라진 21세기형 환경에서는 환경이 예측 못한 방향으로 급변할 때마다 기업도 이에 맞춰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시장과 가치를 창조해내는 혁신이 새로운 경쟁우위의 핵심 원천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21세기형 경영을상시 창조적 혁신 경영혹은창조경영이라고 부르는데 기존 시장에 선택과 집중해서 효율성 극대화로 경쟁하던 20세기형 경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경영모델입니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이 바로 이런 21세기형 경영을 대표하는 기업들입니다.

 

 

김선혁 근본적으로 달라진 환경에서는혁신이 기존의효율성을 대체하는 새로운 기업경영의 핵심 가치라는 말씀이군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론적으로는 20세기 효율성 경쟁에서 21세기 혁신 경쟁으로의 패러다임 변화를 기존의리카르도적 렌트에서슘페터적 렌트로의 전환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경쟁우위의 원천이 독과점처럼 기존 시장공간 내에서 경쟁자들에 비해 가지는 상대적 시장지배력의 우위와 증대를 추구하는 20세기의 리카르도적 렌트(Ricardian Rent)로부터 기존 경쟁우위를 스스로 창조적으로 파괴(creative destruction)해 새로운 시장과 전략적 자원을 계속 창출하는 혁신을 추구하는 슘페터적 렌트(Schumpeterian Rent)로의 전환이 발생한 것입니다. 또 최근 10∼20년 사이 전략경영 분야를 중심으로 쏟아져 나온 티스(D. Teece)와 동료들이 제시한 동적 역량(dynamic capability)의 개념, 김위찬과 모본(R. Mauborgne)의 블루오션(blue ocean) 전략, 크리스텐슨(C. Christensen)의 교란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등이 모두 21세기형 혁신경쟁과 관련된 개념입니다. 이렇게 보면혁신은 실무업계에서뿐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지난 10∼20년을 대표하는 핵심 경영 화두라는 데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 같습니다.

 

신동엽 혁신의 역할이나 중요성이 21세기 글로벌 기업 경영계는 물론이고 최근 경영학 연구의 학문적 담론도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혁신은 항상 위험하다!

김선혁 최근 학계의 동향을 보면 대다수의 경영학자들은 혁신의 당위성과 필수성을 역설합니다. 그런데 혁신의 전략적 역할을 강조하는 논의들을 좀 더 심층적으로 살펴보면 과연 모든 조직이 혁신을 해야 하는 것인지, 또 혁신이 반드시 긍정적 성과를 보장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점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됩니다.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과정은 당사자들에게도 매우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결과 차원에서도 실패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신동엽 제가 생각하는 오늘 토론의 핵심 부분을 언급해 주셨네요. 혁신 담론의 유행 속에서는 혁신의 지속적 경쟁우위 창출에 대한 긍정적 기여라는 전략적 역할이 강조될 수밖에 없고 당연히 혁신 활동에 내포돼 있는 위험이나 비용은 간과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대규모 데이터를 엄밀한 방법론으로 분석한 심층적 연구들의 결과를 보면 분명히 혁신에는 긍정적 가치 창출과 심각한 위험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조직이론 분야의 조직생태학이나 조직학습 이론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김선혁 조직생태학(organizational ecology)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조직생태학에서의 혁신에 대한 관점이라면구조적 관성에 대한 논의를 말씀하시는 것이죠?

 

신동엽 맞습니다. ‘구조적 관성(structural inertia)’은 해넌(M. Hannan) 교수가 제시한 조직생태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입니다. 구조적 관성 이론에서는 조직이 경쟁전략이나 사업분야 혹은 핵심 기술 등 핵심 특성을 급진적으로 혁신했을 때 바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극도로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하면서 오히려 혁신을 시도한 기업들은 조직 사멸률이 갑자기 증가해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즉 조직생태학의 구조적 관성이론은 혁신이 급진적인 성과 향상을 낳을 것이라는 일반적 주장과 달리 혁신을 조직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한 시도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많은 실증연구 결과들도 대부분 혁신이 조직 사멸률을 높인다는 구조적 관성이론을 강하게 지지합니다. 산업조직경제학 분야의 연구들을 봐도 혁신을 시도한 기업들 중 성과가 향상된 기업보다 낮아진 기업이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연구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사업 분야나 기술, 구조 등을 급진적으로 바꿀 경우 대략 80∼85%가 오히려 성과가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김선혁 대단히 역설적인 결과네요! 기업이 혁신을 시도하는 것은 성과를 급진적으로 높여 생존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인데 결과는 오히려 정반대로 생존가능성이 현격히 낮아진다는 것이네요. 도대체 왜 이런 연구 결과가 나오는 걸까요? 조직생태학에서 그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죠?

 

신동엽 조직생태학에서도 조직들이 혁신을 시도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환경변화에 대응해 다양한 혁신을 시도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급진적 혁신을 시도한 조직들의 사멸 위험이 급격하게 높아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환경적응적 변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구조적 관성이론의 핵심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조직생태학에서는 왜 혁신이 사멸의 위험을 높인다고 주장하느냐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조직생태학의 주요 이론적 기반 중 하나인 해넌 교수의 신생조직의 불리함(liability of newness)’ 이론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신생조직의 불리함이론이란 한마디로 신생조직들은 조직 내부 시스템과 역량의 불안정성이나 미성숙성, 그리고 대내외 이해관계자들과의 신뢰 부족으로 인해 기존 조직들에 비해 여러 면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크고 결과적으로 사멸률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직이 전략이나 타깃 시장과 같은 중요한 기존 특성들을 버리고 새로운 방향으로 급진적으로 혁신하는 행위는 조직을 마치 신생조직과 유사한 상황으로 돌려 놓게 되고 결과적으로 조직 사멸률을 높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조직생태학에서 주장하는 신생조직의 불리함과 구조적 관성 이론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도출될 수 있는 결론은 명확합니다. 혁신은 조직 사멸의 위험을 명백히 높인다는 것입니다.

 

김선혁 그렇지만 성공적 혁신의 가능성을 부정한다면 지난 수십 년 전 과거의 기업들에 비해 최근 기업들이 모든 면에서 발전했고 또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요? 과거 기업들에 비해 현재 존재하는 기업들이 훨씬 더 발전된 형태가 아닌가요?

 

신동엽 그 문제에 대해 조직생태학은 혁신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기업들이 전반적으로 진화하는 것은 개별 기업들의 혁신이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기업들이 탄생하고 낡은 기업들이 사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혁신과 같은 급진적 조직변화란 개별 조직이 자신의 핵심 특성을 바뀐 환경에 적합하게 근본적으로 혁신하는적응의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보다는 전체 조직군 수준에서 환경에 부적합해진 형태와 특성을 가진 조직들이 환경선택에 의해 사멸하고 전혀 다른 새로운 혁신적 조직 특성을 가진 조직들이 만들어지면서 과거 조직 형태를 대체하는, 전체 조직군 수준에서선택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김선혁 그렇군요. 지금 정리해 주신 논리에 따르면 최근 우리 사회를 유행처럼 휩쓸고 있는 혁신 트렌드는 조직생태학 관점에서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조직생태학의 연구 결과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시사점은 혁신의 긍정적인 전략적 역할만큼이나 그 위험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즉 혁신과 관련된 의사결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혁신의 양면성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겠습니다. 혁신의 위험을 강조한 또 다른 이론인 조직학습 이론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조직학습의 대표적인 학자인 조직이론의 거장 마치(J. G. March) 교수는 조직학습의 유형을 새로운 시장이나 자원, 지식, 루틴 등의 창출을 추구하는 혁신 활동인탐색(exploration)’과 과거에 학습된 기존 시장, 자원, 지식, 루틴 등에 반복적으로 의존하는 활동인활용(exploitation)’의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마치 교수에 의하면 활용은 고성과를 창출했던 기존 성공공식을 반복해서 재사용하는 것입니다. 주로 효율성에 초점을 맞춰 기존 역량과 자원을 개선, 재정비, 확장하는 것이지요. 반면 탐색은 과거와는 질적으로 차별되는 새로운 성공공식을 습득하기 위한 것으로 새로운 시장이나 자원을 모색하는 혁신 활동이 중심이 됩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조직학습 유형에 내포돼 있는 위험의 상대적 크기를 분석한 것이탐색과 활용프레임워크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마치 교수는 기존의 성공모형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활용 전략은 실패의 확률이 낮고 기존 모형을 더욱 안정적으로 개선시키는 데 비해 혁신적으로 새로운 대안을 찾는 탐색 전략은 필연적으로 높은 위험을 발생시킨다고 주장합니다. 즉 마치 교수도 혁신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신동엽 마치 교수가 이야기한 혁신적 탐색의 위험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는 혁신적 탐색의 가장 큰 위험이 불확실성에 있다고 봅니다. 즉 기존 역량이나 루틴의 개선적 활용은 이미 그 효율성과 효과성이 검증된 성공공식을 재활용하는 것이므로 불확실성이 낮지만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역량이나 강점을 찾는 혁신적 탐색 활동은 원하는 결과의 달성을 보장해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애초에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어서 결과 예측이 매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혁신을 시도했으나 결과적으로 아무런 소득이 없거나 오히려 부작용만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마치 교수는 설사 새로운 역량을 찾는 데 성공하더라도 그 성과는 탐색 활동을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한참 뒤에야 실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혁신적 탐색 행동과 그 성과 사이의 인과관계의 모호성이 높아져서 조직 내 행위자들의 노력과 주의를 분산시키고 효율성을 떨어뜨리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게다가 혁신적 탐색은 높은 조정비용과 재적응비용 등 다양한 비용을 발생시켜 위험을 가중시키는데 예를 들면 탐색 활동을 통해 새로운 지식이 조직에 도입되면 안팎의 다양한 관계망과 의사소통 구조가 필연적으로 변합니다. 수많은 조직 구성원과 조직 단위들이 새로 바뀐 체제로 통합과 조정을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변화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혁신하지 않는 것은 더 위험할 수 있다!

김선혁 말씀하신 내용에 동의하지만 저는 마치 교수가 혁신이 위험하기 때문에 탐색보다는 활용에 치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마치 교수는 탐색 활동이 항상 높은 위험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대다수 조직들이 보다 안전한 활용에 치중하는근시안적 학습(learning myopia)’의 경향을 보이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근시안적 학습은 기존 역량과 루틴이 더 이상 성과를 창출할 수 없는 급진적 환경변화가 일어날 때 조직에 치명적 타격을 주게 된다는 점입니다. 즉 마치 교수의 조직학습 이론은혁신은 항상 위험하므로 가능하면 회피하는 것이 좋다고 단정짓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치 교수는 혁신의 위험을 강조하고 있지만 동시에 기존 역량 및 루틴의 활용과 개선에만 집중하는 것 역시 그 못지 않은 위험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탐색과 활용이 갖는 각각의 고유한 위험을 이야기하면서 마치 교수는 두 가지 흥미로운을 이야기하는데요, 먼저 혁신적 탐색에만 치중하는 경우 높은 불확실성으로 실패 확률이 높고 그 이전 실패에서 발생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더 과감하고 위험한 혁신을 시도하다가 실패의 확률을 점점 더 높여 결국 사멸하는실패의 덫(failure trap)’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이는 활용과 개선에만 치중하는 근시안적 학습의 경우 기존 성공모형이 더 이상 생존의 기반이 될 수 없는 급진적 환경변화가 발생할 때 갑자기 사멸하게 되는성공의 덫(success trap)’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마치 교수는성공의 덫이라는 개념을 통해 위험 때문에 혁신적 변화를 회피하고 기존 성공공식의 개선과 활용에만 치중하는 경우의 위험이 혁신의 위험 못지 않게 높다는 점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동엽 정말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조직학습이론이 혁신의 위험과 혁신회피의 위험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는 것과 같은 내용을 조직생태학의 논의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구조적 관성 논의로 다시 돌아가봅시다. 여기에서도 조직의 핵심 특성을 변화시키지 않는 경직성이 항상 생존에 유리하다고 보고 있지 않습니다. 조직생태학의 관점에서 보면 조직변화는 개별 조직 수준이 아니라 환경변화의 결과 부적합해져 버린 형태를 가진 대다수 조직들의 사멸과 새 환경에 적합한 형태를 가진 새로운 조직들의 탄생을 통해 조직군 수준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직생태학의 핵심 명제는 혁신적 변화를 시도하지 않고 경직성의 경향을 보이던 조직들은 결국 급진적 환경변화가 발생할 때 한꺼번에 멸종해버리게 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선혁 정리하자면 혁신의 위험을 강조한 두 이론인 조직생태학과 조직학습의 경우 공통적으로 혁신 회피의 위험도 함께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신동엽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두 이론에서 혁신 회피가 위험한 상황으로 언급한 조건이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즉 두 이론 모두 기본적으로는 혁신이 위험하다고 보지만 특정한 상황조건하에서는 오히려 혁신을 회피하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두 이론의 주장을 떠올려 볼까요? 일단 마치 교수가 언급한성공의 덫에서는 기존의 성공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급진적 환경변화가 일어났을 때 활용에만 치중하던 조직들이 위기에 빠질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조직생태학도 마찬가지로 기존 조직군의 형태가 더 이상 환경에 적합하지 않게 되는 급진적 환경변화가 일어날 때 그 조직군에 속한 대다수 조직들이 한꺼번에 사멸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두 이론 모두 혁신은 항상 위험하지만 기존 경쟁우위와 성공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는 급진적 환경변화가 발생할 때는 오히려 혁신하지 않는 것이 조직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불확실성의 시대, 혁신의 전략적 관리가 필요하다.

김선혁 결국 혁신은 일방적으로 위험하다 혹은 위험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조직이 처한 환경 특성에 따라 혁신의 위험성이 달라지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혁신의 긍정적인 전략적 역할을 강조한 최근 논의들 역시 역동적이고 급진적 변화를 수반하는 21세기형 환경의 도래가 혁신의 중요성을 급증시켰다고 전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동엽 맞습니다. 결국 혁신의 전략적 역할을 강조한 논의나 혁신의 위험을 강조한 논의 모두 조직이 처한 환경 특성을 중요한 요인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닙니다. 그러나 혁신의 위험에 초점을 맞춘 논의들은혁신이 기본적으로는 위험하다는 대전제하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데 차이점이 있습니다. 급진적 변화를 수반하는 역동적 환경하에서는 혁신하지 않는 것에 비해 혁신의 상대적 위험이 줄어들고 또 조직의 성과나 생존에 오히려 유리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는 혁신의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혁신의 위험을 강조한 조직이론가들의 핵심 주장입니다. 이 논의들을 참고한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혁신 남발이나 기피보다는 환경의 성격에 따라 혁신 여부와 타이밍을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혁신의 전략적 관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선혁 결국 다시 마치 교수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활용과 탐색이 갖는 각각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두 조직학습 유형 모두 위험을 수반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마치 교수는 두 가지 조직학습 유형 간 균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실무 경영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개념으로 다시 말하자면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강점을 창조하는 혁신과 기존 강점을 더 강화하고 활용하는 개선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두 가지 모두 다 잘하는 균형 유지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활용과 탐색이 본질적으로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상충관계라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이 두 가지 학습 유형 간 균형을 이루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자들은 결국 혁신적 탐색이냐, 개선적 활용이냐의 딜레마적인 상황에 자주 놓입니다. 크리스텐슨(C. Christensen) 교수가 이야기한 현재 고객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 결과적으로 급진적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혁신자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도 결국 어느 한쪽만 선택하기 어려운 어려운 딜레마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죠.

 

신동엽 그렇기 때문에 딜레마적인 상황에 직면한 조직들에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조언이 바로혁신의 전략적 관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혁신의 전략적 관리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만 저는 다음 세 가지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첫째, 자기 조직의 혁신에 대한 접근법을 우리는 혁신을 지향한다거나 혹은 우리는 개선에 치중한다는 식으로 고정하지 말고 환경의 성격에 따라 유연하고 차별적으로 입장을 조정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조직생태학이나 조직학습이론에서 제시하듯 환경이 안정적일 때 불필요한 혁신을 남발하다가 효율성을 저하시키기보다는 개선과 활용에 좀 더 치중하고, 반대로 환경이 역동적이고 불안정할 때는 혁신에 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혁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조직의 여유자원이 있는 시점에 선제적으로 혁신을 시행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마치 교수가 강조하는 슬랙(slack), 즉 여유자원의 순기능을 십분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혁신의 위험은 탐색비용, 재적응비용, 조정비용, 기회비용 등 다양한 형태의 변화비용 발생으로 가중되는데 충분한 여유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면 이런 변화비용들을 상당 부분 충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혁신회피증에 빠져 선제적 대응 타이밍을 놓치고 조직에 심각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 불가피하게 뒤늦은 혁신을 시도하는 경우 여유자원도 고갈됐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변화비용의 발생이 그대로 혁신의 위험으로 연결됩니다. 마지막으로 마치 교수가 제시한 활용과 탐색 활동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량을 가진 조직을 투시만(M. Tushman) 교수가 개념화한 양수겸장 조직(ambidextrous organization)으로 정의해서 구축하는 것이 혁신의 전략적 관리의 궁극적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선혁 말씀하신 세 가지 방안 중 환경 성격에 따른 차별적 대응과 여유자원이 있는 선제적 타이밍의 중요성은 논란의 여지 없이 가장 중요한 혁신관리 전략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세 번째 말씀하신 양손겸장 조직은 실천적 관점에서는 여전히 완성도가 충분하지 않은 개념인 것 같습니다. 투시만 교수가 양수겸장 조직을 제시한 이래 수많은 학자들이 양수겸장 조직이 어떻게 가능할지 토론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구체적 실행 방안 면에서 해결돼야 할 과제가 많습니다. 여전히진행형’인 연구 분야가 아닌가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혁신의 전략적 관리에 대해서는 모든 조직에 통할 수 있는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혁신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조직이라면 각자 나름의 전략적 혁신관리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21세기 창조경영 시대에 무한한 가능성과 엄청난 위험을 동시에 가진 개념인 혁신의 패러독스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혁신을 전략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흥미진진한 토론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선혁 고려대 경상대학 교수 bandit75@korea.ac.kr

필자는 이화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연세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 경상대학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조직설계와 변화, 조직행동, 인적자원관리, 전략경영 등을 강의하고 있다. 주 연구 분야는 CEO 리더십, 변화와 혁신, 문화예술경영, 여성리더십 등이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dshin@yonsei.ac.kr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조직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직이론 분야의 세계 최고 학술지 등 저명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서울 스프링실내악축제 공동 대표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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