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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SM연구회

M&A 포도밭에선 똑똑한 여우가 살아남는다

조길수 | 106호 (2012년 6월 Issue 1)



편집자주

강진아 서울대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 교수가 주도하는 PRiSM(Practice & Research in Strategic Management) 연구회가 DBR을 통해 연구 성과를 공유합니다. 학계와 업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략 연구회인 PRiSM은 기업이 취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의 면면을 상세히 분석, 경영진에게 통찰과 혜안을 제시해줄 것입니다.

 

배고픈 여우가 길을 걷다가 작은 구멍이 있는 울타리 너머 포도밭을 발견했다. 너무 배가 고팠던 여우는 얼른 구멍으로 들어가 포도를 마구 먹었다. 배가 가득 찬 여우는 다시 그 구멍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살이 쪄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부른 배가 다시 꺼진 후에야 구멍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솝우화로 유명한 이야기다. 이 우화를 들을 때 우리는 여우의 어리석음과 욕심에 웃음짓지만 오늘날 기업 환경에서 이런 여우들은 우리 주변에 심심치 않게 널려 있다.

 

배고픈 여우들

기술적 M&A(Technological M&A)의 전성시대다. 일례로 요즘 가장 뜨는 기업인 페이스북(Facebook)은 무려 10억 달러에 전 직원이 13명밖에 되지 않는 인스타그램(Instagram) M&A한 데 이어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모바일 앱 강화를 위해 태그타일(Tagtile)를 인수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 살고 있는 지금의 기업들은 자꾸 배가 고파지고 울타리 바깥의 포도밭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포도를 발견한 기업은 기업 외부의 지식, 기술 등을 흡수하기 위해 공격적인 M&A를 진행한다. 하지만 이솝우화의 여우처럼 마구잡이로 포도를 먹으면 다시 배고픈 신세가 되고 만다.

 

IT계의 거성,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구글(Google)이 온라인 광고업체인 더블클릭(DoubleClick)을 인수한 데 자극을 받아 아콴티브(aQuantive)를 인수했지만 프로젝트 한번 같이 진행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다. 미국의 이동 통신사인 AT&T 또한 1991년 컴퓨터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컴퓨터 제조사인 NCR을 인수했지만 컴퓨터 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과 상보성 부족에 따른 시너지 확보 실패로 2년 뒤 컴퓨터 산업에서 퇴장했다. 이처럼 세계를 호령하는 글로벌 기업들까지도 어리석은 여우의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밴드웨건 효과(Bandwagon Effect)1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람들의 소비 행태에 대한 모습을 보여주는 말이지만 M&A의 관점에서는 기업에도 적용될 수 있다. 계속해서 가속화되는 기술 변화와 복잡해지는 고객의 요구로 기업은 시장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생존에 대한 초조함에 시달리게 된다. 또한 패러다임 변화로 인한 기술 진부화와 새로이 등장한 유망 기술 획득에 대한 의무감이 그 초초함을 배가한다.

 

이러한 강박관념과 초조함은 기업이 근시안적 시각에서 합리적인 분석 없이 섣부른 기술적 M&A를 시도하게 만든다. 그 결과는 당연한 실패다. 초조한 기업들이 지불한 M&A 프리미엄이 그들의 발목을 붙잡기 때문이다. 2001년 타임 워너(Time Warner)는 소위닷컴 열풍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AOL M&A를 단행한다. 무려 1240억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으로 역대 M&A 규모 2위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 딜은 현재 대표적인 M&A 실패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모바일로 변해가는 컴퓨팅 시장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 PDA 업계 선두였던 팜(Palm)을 인수한 HP도 시장으로부터 차갑게 외면당했다. 이처럼 단순히 기술이 유행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더 빨리 기술을 획득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M&A를 할 경우 피인수 기업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잠재력을 활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수 기업에도 큰 타격을 준다. 그렇다면 어리석은 여우에서 벗어나 똑똑한 여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똑똑한 여우가 되기 위한 키워드, 기술 소화성

기술적 M&A를 활용하고자 할 때는 다른 목적의 M&A에서 주의해야 하는 점 외에 추가적으로 유의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기술 소화성이다. 1988년 헤너트(Hennart) 교수는 기술 소화성(Technology Digestibility)이라는 개념을 통해 기업 간 지식 이전에 있어서 두 기업의 상대적 크기가 인수기업이 기술을 소화하는 정도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밝혔다.구체적으로 헤너트 교수는 인수 기업의 상대적 크기가 피인수 기업보다 클 때 많은 지식을 이전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비록 헤너트 교수는 두 기업의 크기만을 언급하며 기술 소화성에 대한 논의를 끝마쳤지만 소화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봤을 때 함께 고려해봐야 할 사항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바로 피인수 기업으로부터 얼마나 많이 흡수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일단 흡수한 것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지다.

 

 

 

 

 

①충분히흡수할 수 있는가?기술적 M&A를 통해 피인수 기업의 자원에 무제한 접근 가능해졌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가지고 올 수 있는 건 아니다. 뛰어난 선생님에게 11 과외를 받는다 해도 학생의 기본 실력이 뒷받침돼 있지 않으면 배울 수 있는 건 한정돼 있는 것처럼 인수기업도 피인수 기업의 자원을 더 많이 흡수하기 위해서는 흡수 능력(Absorptive Capacity)2 이 필요하다.

 

흡수 능력은 평소에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튼튼한 기본기를 갖춰 준비가 잘돼 있는 학생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듯, 기초가 부실한 학생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깨우치곤 한다. 기업 M&A도 마찬가지다.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 동종 혹은 유사 업계 기업을 인수하는 경우 자신이 필요한 지식을 어디에서 어떻게 가져와야 할지 알고 있기 때문에 피인수 기업의 지식을 더 많이 인식하고 흡수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전혀 모르는 분야는 지식의 새로움 측면에서는 장점이 있지만 흡수 측면에서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소니(Sony), 마쓰시타(Matsushita) 등 가전 기업이 콜롬비아 픽처스(Columbia Pictures), 유니버설 스튜디오(Universal Studio) 등 콘텐츠 기업을 인수해 실패한 사례들은 기반이 다른 기업들의 인수가 얼마나 힘든지 잘 보여준다. 유사성뿐 아니라 인수 기업의 지식적 깊이와 넓이도 흡수 능력에 영향을 준다. 영국의 프랜시스 베이컨은아는 것이 힘이다(Scientia est potential)”라고 말했다. 기술적 M&A 전략 활용의 대표적인 아이콘인 시스코(Cisco) 73 법칙을 항상 준수했다. 70%는 자체개발하고 30% M&A를 통해 기술을 확보한다는 이 법칙은 M&A를 통해 얻은 자원과 지식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②제대로활용할 수 있는가?피인수 기업의 자원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면 흡수한 자원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같은 재료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요리 방법에 따라 다른 요리가 나오듯이 지식을 흡수하는 것과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다.

 

2001년 코닥(Kodak)은 오포토(ofoto)라는 사진 공유 사이트를 인수했다. 디지털화에 뒤처진 코닥이 또 다른 디지털 시장인 온라인 기반의 사진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코닥은 이 사이트를 사진 인화 주문 사이트로만 활용하는 데 그쳤다. 현대전자( 하이닉스반도체) 1994년 삼성전자가 인수를 고려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제조사인 맥스터(Maxtor)를 인수한 후 적자를 면치 못했다. 이와 같이 향후 활용 방법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단지 남들에게 뒤처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무리하게 진행하는 M&A는 그 어떤 성과도 만들어내지 못할뿐더러 기업을 더 배고픈 여우로 만들어 버린다.

 

자기 잠식(Cannibalization)에 대한 문제도 활용의 측면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맥킨지(Mckinsey) 파트너인 패트릭 비거리(Patrick Viguerie)는 그의 저서에서 M&A 후 기존 제품, 유통채널과의 충돌 없이 성장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M&A는 인수 기업으로 하여금 상당한 양의 자원을 사용하게끔 만들기 때문에 단순 제품군을 넘어 기존 사업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자기잠식에 대한 영향력을 M&A 전 미리 고려하는 게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 문화적 요소도 사전에 고려해야 한다. 기술적 M&A 성공 사례를 이어가고 있는 시스코(Cisco)에서는문화 경찰(Culture Cop)’이라는 조직을 통해 인수 대상 기업의 문화와 문화 차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대응 방식 등을 실제 M&A에 나서기 전 미리 조사·분석한다. 피인수 기업이 변화에 적대적인 태도를 지니면 자원을 이전받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 소화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술 소화성에 대한 고려는 배고픈 여우가 포도를 맛있게 먹고도 울타리의 구멍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해준다. 기술 소화성을 높이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무엇보다 철저한지피지기(知彼知己)’ 전략이 필요하다. 피인수 기업에 대한 충분한 사전적 지식은 피인수 기업의 자원에 대한 인수 기업의 흡수력을 높여줄 수 있다. 특히 사전적 지식을 기반으로 비판적인 시각에서 M&A 대상 기업을 바라보면 M&A 후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분석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나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기초체력(자사의 핵심 역량)을 높여야 새로운 것도 제대로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기초 체력을 갈고 닦는 과정 속에서 진정으로 자사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 자기잠식으로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이나 인수 기업의 자원이 가진 강점 등을 정확히 파악해 M&A 후 발생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최대화할 수 있다.

 

기술 소화성을 높이기 위한 또 다른 요소는 피인수 기업의 핵심인력(Acquihire)3 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직의 지식에 대해 연구한 여러 학자들에 의하면 조직의 지식은 지식 저장소(Knowledge Reservoir)라고 불리는 곳에 축적된다. 여러 지식 저장소 중 사람은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지식 저장소로 다른 유형의 지식 저장소보다 명시적 지식(Explicit Knowledge)4 과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5 모두의 전달에 더 효율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M&A를 통해 피인수 기업의 지식과 기술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피인수 기업의 핵심 인력을 반드시 유지시켜야 한다.

 

오라클(Oracle) CEO인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 “M&A 후 배를 버리고 떠나는 사람의 대부분이 조직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칭 ‘Mr. M&A’로 불리는 두산의 박용만 회장 또한 피인수 기업의 인력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최대한 끌어내는 게 M&A 성공의 비결이라고 강조한다. 시스코 또한 피인수 기업의 직원이 퇴사 시 양사 CEO가 결재를 해야 하는 등의 장치를 통해 피인수 기업의 인력들을 인수 전부터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결론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유작인 아이폰 4S의 핵심 기술, 시리(Siri), 그리고 구글(Google)이 제공하는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Android) 모두 M&A를 통해 획득한 기술이다. 패스트컴퍼니(Fastcompany)에서 선정한 2012년 가장 혁신적인 기업 1위와 3위에 오를 정도로 혁신에 능숙한 두 기업이 선택한 기술적 M&A라는 전략은 기술 획득과 함께 M&A의 강점인 시너지 창출 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불과 얼마 전인 1960년대까지만 해도 가나와 경제 규모가 비슷했던 우리나라는 외부의 지식과 기술을 열심히 배워온 결과 오늘날의 모습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기술적 M&A라는 무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똑똑한 여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조길수 PRiSM연구회 연구원 gilsoo.cho@temep.snu.ac.kr

필자는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대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 석박사통합과정에 재학 중이다. 주 연구 분야는 라이선싱, 제휴, M&A 등 기업 간 협력과 혁신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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