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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시대의 기업 리스크 관리

김정수 | 8호 (2008년 5월 Issue 1)
최근 매출 380조 원의 공룡 기업 월마트가 내부 행사 비디오를 제작하던 소규모 업체 때문에 큰 수난을 겪고 있다. 플래글러라는 이 업체는 월마트가 계약을 연장해주지 않은 데 대한 보복으로 월마트 임원들의 내부 회의 장면 등을 담은 1만5000여 개의 비디오를 내다 팔기 시작했다. 이 비디오에는 한 전직 임원이 “노조 결성을 계속 저지하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포함돼있다. 또 최근 폭발사고를 일으켜 문제가 된 플라스틱 가스통에 대해 실험을 해 보며 “불을 갖다 대니까 확 붙어버리는군”이라고 말하는 장면도 있다. 월마트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중인 변호사들에게는 호재임에 틀림없지만, 월마트에게는 재앙이다.
 
만일 우리 회사에도 이런 비디오가 있다면, 그리고 외부에 유출됐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필자가 컨설팅을 시작하면서 받은 교육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이 ‘선샤인 테스트(sunshine test)’였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내일 아침 ‘뉴욕타임스’ 1면에 실려도 당당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 보라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 기업들도 이러한 질문을 던져봐야 할 때가 왔다. 이것이 바로 ‘기업 투명성’의 문제다.
 
나쁜 이익’ 고객이 먼저 알아
사전적 의미에서 기업 투명성은 ‘기업의 이해 관계자가 필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가격 결정이나 제품 안전성, 환경 친화적 생산 공정, 기업 지배 구조, 사회 공헌 활동 등 기업 투명성에 대한 요구는 명확히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광범위하다.
 
많은 기업들은 “우리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업 투명성은 더 이상 사회 공헌 차원의 일이 아니라 기업으로서 존속하기 위한 필수 사항이 되고 있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 투명하지 않은 기업은 더 이상 글로벌 기업들과 거래 관계를 지속하기 어렵다. 미국의 가정용품 유통업체 홈디포(Home Depot)는 특히 목재, 건자재, 건축 도구 등을 파는 대표적 대형 유통 체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열대우림 행동연대(RAN, Rainforest Action Network)’라는 환경 단체의 경고를 받았다. 무분별하게 벌목된 목재 판매를 중지하라는 것이었다. RAN은 연 5조 원 규모의 목재를 판매하는 홈디포를 상대로 불매 운동을 전개했다. 결국 1999년 말 홈디포는 “2003년부터는 환경 인증을 받고 벌목한 목재만을 판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일을 계기로 홈디포는 모든 납품 업체 선정에서 투명성을 고려하게 됐다.
 
또 다른 사례가 세계적 식품 업체인 네슬레다. 1999년 영국 BBC 방송은 아이보리코스트의 코코아 농장에 일어나는 노예 노동 실태를 보도했다. 당시 네슬레는 국제 농산물 시장에서 경매를 통해 사오는 것일 뿐 노예 노동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이와 무관하게 많은 시민단체가 네슬레 불매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네슬레 등의 초콜릿 업체들이 노예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 기금을 내고, 정부와 함께 해결 방안을 찾기로 하면서 최악의 상황을 면했다.(Don Tapscott and David Ticoll, The Nak-ed Corporation 참조)
 
둘째, 투자자는 투명하지 않은 기업을 외면한다. 현재 UN의 ‘책임 투자 원칙(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에 가입한 펀드 규모만 약 4000조 원에 달한다. 이 펀드들은 앞으로 투명성이 확보된 기업에만 투자하겠다고 공언했다. 엔론, 월드콤처럼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한 초대형 기업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는 사실을 생생히 목격한 투자자들은 기업 투명성이 리스크 최소화는 물론, 장기적 수익 극대화를 가져다준다고 판단한 것이다.
 
셋째, 투명하지 않은 기업의 ‘나쁜 이익’을 고객이 먼저 아는 시대가 됐다. 베인앤컴퍼니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속 가능한 성장은 고객 만족도와 로열티 없이 절대로 달성할 수 없다. 즉 ‘좋은 이익’만이 지속 가능하다는 뜻이다. 좋은 이익과 나쁜 이익이란 무엇일까. 가족과 함께 즐거운 여행에 나섰던 때를 기억해보자. 호텔에서 국제 전화 한 통화 가격이 하루 숙박비와 비슷하게 나왔다. 렌터카를 반납하는데 30분 늦게 도착해서 여지없이 반일치 비용을 더 물어야 했다. 이런 회사들은 양심적으로 고객의 처지에서 서비스를 제공한 기업들에 비해 더 높은 수익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는 없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고객들의 ‘입소문’이 이를 그냥 두지 않는다.(Fred Reichheld, The Ultimate Question 참조)
 
넷째, 투명하지 않은 기업은 종업원들의 로열티를 기대할 수 없다. 1990년대 후반 IBM은 경쟁력 있는 기술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일반직 종업원의 연금 혜택 축소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을 비밀리에 추진했다. 이는 곧 인터넷으로 알려졌고 종업원들 사이에 조직적인 반대 운동이 전개됐다. 비밀 의사 결정이 많은 조직에서 종업원 로열티는 낮아진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려면
결국 기업들은 경영의 모든 의사결정이 낱낱이 공개되고, 고객과 협력사, 투자자, 종업원 등이 이것을 평가할 수 있으며, 그 결과가 여론의 심판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탭스콧과 티콜이 지적한 ‘Naked Corporation’이라는 새로운 기업 경영 패러다임이다. 더 나아가 이런 상황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활용하기 위한 체계적 전략을 갖춘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수적인 사항이 있다.
 
첫째, 우리 기업에 적절한 리스크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나이키는 매출 16조 원 규모의 스포츠 용품 회사다. 하지만 신발 공장은 없다. 본사는 R&D와 마케팅만 담당하고 모든 생산은 주로 아시아의 파트너 공장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나이키의 최대 리스크는 바로 공급 업체다. 품질 관리는 제대로 되고 있는지, 미성년자 불법 고용이나 노사 분규는 없는지 등이 핵심 리스크 요인이다. 반면 통신 회사인 보다폰은 휴대전화가 뇌암 등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하는 의학계 연구 결과가 가장 큰 리스크 중 하나다. 이처럼 기업의 특성과 가장 치명적인 리스크 발생 가능성에 따라 실행 계획의 우선순위를 설정해야 한다. 이런 ‘리스크 대응’ 단계가 어느 정도 이뤄지면 노사 관계, 사회 공헌 활동 등 2단계와 투명성 및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바탕으로 새 시장을 창출하는 3단계로 진화할 수 있다.
 
둘째, 기업 투명성의 관점에서 현 상황을 체계적으로 측정하고 관리하는 지표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제품의 질이나 가격뿐 아니라 기업에 대한 감성적인 판단과 타인의 추천에 의해서 만족도가 크게 좌우된다. 즉 신뢰할만한 기업이 되지 않고서는 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양한 지표를 기반으로 ‘민심’을 관리해야 한다.
 
셋째, 적절한 이해 관계자를 찾아 능동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 1980년대 미국 일회용 종이 기저귀 회사들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다. 환경론자들이 일회용 기저귀의 환경오염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고, 각종 규제를 도입하라고 주장한 것이다. 일회용 기저귀 회사들은 자사의 제품이 가장 필요한 고객군, 이른바 ‘워킹 맘’들을 시작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전개했다. 이들은 쓰레기 양을 줄인 신제품과 환경 친화적인 재활용 포장재 도입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그리고 천 기저귀 세탁에 소요되는 세제와 전기로 인한 환경오염과 비교 평가를 통해 일회용 기저귀의 환경 친화성을 홍보했다.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업계는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Eric Dezenhall and John We-ber, Damage Control 참조)
 
이제 기업 투명성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았다. 100년 이상 성장을 지속한 기업은 패러다임 변화를 남보다 앞서 수용하고, 과감하게 받아들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1800년대 화약 회사로 시작한 듀퐁은 TNT가 개발되자 화학 기업으로 변모했고, 이후 생명 공학, 소재 기업으로 변신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기업 투명성이 위기가 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도래했다. 어떤 기업이 이를 기회로 받아들이냐가 관건일 뿐이다.
 
필자는 산업자원부 사무관으로 국제통상 및 기획예산 담당으로 일하다 2001년 베인앤컴퍼니 컨설턴트로 입사했다. 금융, 소비재, 물류 부문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편집자주 스페셜 리포트로 위기관리 방법론을 다뤘던 동아비즈니스리뷰(DBR) 6호(4월1일자) 발행 후 추가 분석을 해달라는 독자 여러분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이번 호에는 ‘투명성과 위기관리’라는 주제의 글을 게재합니다.
  • 김정수 | - (현) GS칼텍스 전략기획실장(부사장)
    - 사우디아람코 마케팅 매니저
    - 베인앤컴퍼니 파트너
    - 산업자원부 사무관
    jungsu.kim@gscalte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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