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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플래닝의 회고와 전망

미래를 읽는 기술 ‘시나리오 플래닝’ 하나의 견해에 올인하는 습관을 고쳤다

피터 슈워츠(Peter Schwartz) | 91호 (2011년 10월 Issue 2)
 
 
 
편집자주
시나리오 플래닝의 대가 피터 슈워츠가 <미래를 읽는 기술(The Art of The Long View)>이란 책의 출간 20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성공 및 실패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을 정리한 글을 글로벌 컨설팅사 모니터가 발행하는 ‘Monitor Insight’에 실었습니다. <미래를 읽는 기술>은 주요 MBA스쿨 학생들의 필독서 중 하나입니다. 지난 20년간 시나리오 플래닝 방법론을 발전시켜온 그는 이번 기고의 목적을 “<미래를 읽는 기술>에 대한 회고, 속죄, 그리고 새로운 미래 지도의 공유”라고 설명합니다. DBR은 두 차례에 걸쳐 피터 슈워츠의 메시지와 한국적 상황에서의 시사점을 전하는 글을 연재합니다. 피터 슈워츠의 최신 아이디어로 극도로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시대에 대처하기 위한 현명한 대안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왜 필요한가?
“오늘날 미국 안보상 최대 리스크는 미국 심장부인 워싱턴-뉴욕의 주요 건물들에 대한 대대적인 테러 공습이다. 수많은 생명이 희생될 수 있다.”
 
9.11 테러가 일어나기 7개월 전인 2001년 2월 부시 행정부의 국가안보위원회 일원이었던 필자(피터 슈워츠)는 테러의 위험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보고서를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딕 체니 부통령에게 “딕, 머리 아픈데 당신이 알아서 처리해주지”라고 말하며 일축했다. 딕 체니 부통령 역시 시나리오를 가볍게 무시해 버렸다. 부시 행정부는 왜 9.11 테러 시나리오를 무시했을까? 네오콘의 시각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오류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국을 가장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은 테러리즘이 아니라 새로운 슈퍼파워 ‘중국’의 부상이라 단정했다. 따라서 9.11 테러가 일어나기 전까지 미 행정부의 관심은 온통 중국에만 쏠려 있었다. 그들에게 중동발 테러 위협이라는 시나리오는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시나리오 플래닝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차이는 매우 크다. 실제로 20년 전 GBN이 최초로 시나리오 플래닝을 소개했을 때만 해도 예측이나 시나리오 플래닝 없이도 기업 경영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오히려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않아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9.11 테러에 대한 GBN 보고서를 접한 부시 전 대통령의 마음 또한 이와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최근의 상황은 더 이상 미래를 강 건너 일로만 치부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변화의 속도는 더 빨라지고, 변화의 방향은 더 불연속적으로 변하고 있으며, 변화의 양상은 더 복잡해지고 있다.
 
국제유가는 이러한 환경적 변화를 설명하는 데 가장 적절한 예다.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약 20년간 국제유가는 배럴당 20∼30달러 수준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BRICs 경제의 성장이 본격화된 2000년대 중반부터 2008년 초까지 약 4년간 유가는 과거 20년 평균가격의 3∼4배에 이르는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반면 2008년 가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직후에는 소비심리 위축으로 직전 4년간의 상승폭을 단 6개월 만에 반납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림 1) 글로벌화 및 디지털 경제의 확산에 따라 이제는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 한쪽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바로 그날 유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급격한 변화의 상황에서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기업은 자신의 예상, 또는 관심 사항과 전혀 다른 환경이 전개될 경우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음반업계이다. 이들은 90년대 고성장 시기의 사업 모델을 고수하다 MP3플레이어와 iTunes 등 온라인 사이트의 등장으로 초토화가 됐다. 2000년 이후 음반 시장은 단 5년 만에 반 토막이 났다.
 
시나리오 플래닝의 5가지 유의점
우리는 시나리오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미래에 대한 전략은 미래 환경변화의 불확실성이 야기하는 ‘위험의 간과’와 ‘기회의 상실’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하며 좋은 시나리오는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한 시사점과 대안을 담아야 한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최선의 방법론 중 하나지만 늘 최선의 결과를 보장해왔던 것은 아니다. 때문에 시나리오 플래닝을 고려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좋은’ 시나리오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개발하고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지 못했거나 예측했다 하더라도 그 파급 효과를 간과했던 지난 몇몇 사례를 통해 도출된 다섯 가지 유의점은 다음과 같다.
 
하나. 시나리오로 하나의 미래를 예단하지 말라
- 쿠웨이트 – 이라크 갈등에 대한 예측 실패 사례 및 교훈
1990년 8월1일 필자(피터 슈워츠)는 인랜드스틸(Inland Steel)의 CEO인 밥 다날(Bob Darnall)과 함께 저녁 모임에 가는 길이었다. 필자는 다음날 인랜드스틸 이사회에서 에너지 비용에서부터 경쟁 현황에 이르기까지의 전반적인 에너지 산업의 미래에 관한 프레젠테이션을 할 예정이었다. 식사 장소에 도착할 때쯤 밥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들었다. 이라크 군대가 쿠웨이트 국경 근처에 집결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철강제품을 만들고 운송하는 데 있어 에너지는 비중이 큰 간접비 중 하나다. 만약 중동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석유 가격이 솟구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쿠웨이트 침공은 세계 경제 성장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인데 이는 곧 철강 수요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인랜드스틸에는 치명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필자는 1980년대 중반 오일 트레이딩 비즈니스에서 겪은 경험을 잠시 떠올리고는 “밥, 심각하게 걱정할 일이 아닌 것 같아요. 허풍 같네요”라고 말했다. 이라크는 큰 계약에 대한 재협상 시기가 오면 시장을 경직시키기 위해 정유소나 탱커를 폭파시키곤 했다. 사담 후세인은 이라크의 석유 협상 전략 중 하나로 군사 행동을 활용해온 이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이사회가 열릴 시간이 됐을 때 이미 사담 후세인은 쿠웨이트 침공을 마쳤고 미국은 전쟁으로 향하고 있었다. 허풍은커녕 엄청난 글로벌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많은 CEO들이 하나의 정답을 원하지만 시나리오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예언자의 수정 구슬이 아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무한한 가능성과 불확실성 가운데 중요한 요소를 찾아낸 후 3∼4개의 ‘있을 법한 미래’를 그려보는 작업이다. 그러나 보통 많은 사람들은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판단과 전망을 내리려는 유혹에 빠진다. 위 사례에서 필자(피터 슈워츠) 또한 과거 오일 트레이딩 경험에서 얻은 지식을 토대로 섣불리 미래에 대한 하나의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과거의 경험들로 볼 때 가장 출현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 즉 ‘정답’은 최상과 최악의 시나리오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복잡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시나리오화하는 데 있어 단 하나의 미래만을 상정해 기업의 자원과 역량을 모두 투입하는 것은 투자의 위험 부담을 가중시킨다. 미래 예측 기법으로서의 시나리오 플래닝은 가장 정확한 하나의 예측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항상 다른 각도에서 질문을 던지고 어떤 경우에 현재의 판단이 틀릴 수 있을지를 반문해야 한다.
 
둘. 한정된 시나리오를 개발하지 말라
- 멕시코 페소화 가치 폭락 예측 실패 사례 및 교훈
1990년대 GBN은 월드뷰(Worldview)라는 멤버십 서비스를 운영했다. 이 서비스는 50∼80개의 기업 네트워크를 GBN이 보유한 100명의 미래지향적 사상가, 다시 말해 ‘주목할 만한 사람들(Remarkable People)’ 네트워크와 연결해주는 서비스다. 각 산업의 전문가와 미래지향적 사상가들은 월드뷰의 네트워크하에 한자리에 모여 미래의 다양한 주제와 동향에 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누며 시나리오를 개발해 나간다.
 
1994년 12월 멕시코시티 근교 리조트에서 회의가 개최된 적이 있었는데 회의 주제는 멕시코의 미래였다. 그 당시 멕시코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론이 대세였다. 에르네스토 세디오가 압도적인 표차로 신임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카를로스 살리나스 대통령으로부터의 정권이양이 진행되고 있었다. 경제학자이자 교육부 장관 출신인 세디오 대통령은 멕시코의 현대화와 발전을 이루게 할 인물로 평가받고 있었다. 낙관론이 팽배한 데는 다른 원인도 있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1994년 발효돼 대부분의 무역 관세가 폐지됐다. 당시 멕시코 경제는 낮은 인플레이션과 재정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도시 인구는 젊은 계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으며 그 외 현대화의 징표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이처럼 멕시코의 미래는 밝게만 보였다. 그러나 다른 시나리오는 없을까? GBN의 회의는 바로 이러한 ‘다른 미래’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됐다.
 
살리나스 대통령이 물러나고 세디요 대통령이 새롭게 들어서는 시점에 우리는 30명 이상의 회원을 한자리에 모았다. RP 네트워크 멤버, 멕시코의 기업 리더, 경제학자와 사상가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이틀에 걸쳐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토론하고 멕시코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총 8개의 시나리오를 개발했다. 모든 시나리오는 그럴 듯했고 현실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바로 2 주 후 멕시코의 페소 가치는 완전히 폭락해 버렸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대통령 선거 이전 살리나스 대통령은 멕시코의 부채가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고정환율제를 유지했다. 페소 가치의 하락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었고, 또한 신임 대통령이 화폐 가치를 절하하는 것도 이례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세디요 대통령이 당선되고 얼마 되지 않아 변동환율제를 채택했고 이 결정이 참담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미화 1달러당 4 페소였던 화폐 가치가 일주일 사이에 달러당 7페소까지 떨어졌다. 시장의 불안감은 증폭됐다. 멕시코 경제가 위기를 극복하는 것 자체가 불확실하게 보였다. 우리가 개발한 시나리오 중 그 어느 하나도 이러한 조짐을 예견한 것은 없었다. 페소화 위기는 국제 사회로부터 500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받고서야 진정됐다.
 
이 사례에서 GBN이 개발한 시나리오는 완전히 빗나갔다. 많은 전문가들이 함께 한 자리였지만 이들의 시나리오는 먼 미래도 아닌 바로 가까이 있는 위기를 완전히 간과해 버렸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과거에도 멕시코 대통령 선거 이후에 종종 화폐 가치가 하락하는 사례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누구도 이에 주목한 이는 없었다. 어찌된 일일까?
 
당시 GBN의 관점은 그리 다양하지 못했다.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동일한 지적 사회의 일원으로 유사한 관점에서 대화에 참여했고 보편적으로 예상되는 ‘일어날 법한 미래상’에 관해 의견 일치를 보인 것이다.
 
하나의 현상이 과거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났다면 1) 왜 이번에는 일어나지 않을지를 설명해야 하고 (멕시코의 경우엔 일어났다) 2) 재차 반복돼 일어날 가능성을 살펴봐야 한다 (우리는 살펴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미래는 공감의 대상이 아닌 검증과 도전의 대상으로서 다뤄져야 하며 특정한 방향으로의 편견은 경계의 대상이 돼야 한다.
 
셋. 변화의 파급 효과에 주목하라
- 금융위기의 파급효과 전망 실패 사례 및 교훈
지난 금융위기의 도래는 사실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다. GBN은 2003년도에 출간된 <이미 시작된 20년 후 (‘Inevitable Surprises’)>나 지난 10년 동안의 수많은 시나리오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시장에 대한 전망이 아무리 분홍빛이더라도 십 년마다 세계는 주식시장 붕괴를 경험한다고 언급했다. 미국 또는 중국에서의 대형 금융위기 발발 가능성을 언급했으며 잠재적 근원지로 은행 시스템을 지목하기도 했다. 그러나 GBN은 위기의 규모를 가늠하지 못했다. 위기는 일부 지역이 아닌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났고 그 파급력 또한 GBN의 예상을 훨씬 상회했다.
 
 
GBN은 전 세계 은행 시스템이 매우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많은 부채가 증권화돼 다양한 금융기관을 통해 유통돼 전세계의 투자자들은 예상보다 훨씬 복잡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세인트 루이스에서의 갑작스러운 압류 조치로 멀리 떨어진 독일의 소규모 지역 사회가 파산하게 되는 등 은행 시스템은 국경을 초월해 서로 얽혀 있다. 전 세계적인 자본 이동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아이슬란드는 자국 은행 고객들에게 커다란 수익을 제공하고 있었으나 더 이상 해외 차입이 불가능해지자 자국통화가치를 평가절하시켰고 그 결과 주요 은행 3곳이 파산했다.
 
그림자 경제의 규모 또한 과소평가했다. 은행은 파생상품 또는 부채 담보부 증권(CDO)과 같은 복잡한 금융상품의 판매 및 거래로 엄청난 수익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 금융상품은 장부에 기재되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돈이 여기에 투자됐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실제 위기가 터지고 보니 그 규모는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이 생각한 것의 대략 10배가 넘었다.
 
 
당시 GBN이 사태의 본질을 좀 더 깊이 파헤쳤다면 위기의 규모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GBN은 그 위기의 여파가 상당하겠지만 봉쇄 가능한 수준일 것이라 생각했고 더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와 국제통화기금, 그리고 국제결제은행(BIS) 같은 기관들이 과거의 경험을 통해 효과적인 대처 방안들을 습득했을 것이라고 믿고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만약 적절한 전문가에게 적절한 질문을 던졌더라면 그림자 경제의 규모가 얼마나 크고 은행의 부채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2005년에 이미 주택거품에 관해 월가에 경고했던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같은 비관론자를 찾아가 위험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GBN은 부채로 인한 위기 발발 시나리오는 그렇게까지 암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을 보니 루비니 교수조차도 그림자 경제에 얼마나 많은 부채가 존재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시나리오를 개발할 때는 항상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잠재적 문제들이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엄청난 규모로 발생할 가능성은 없는가? 변화의 깊이와 범위에 대해 현재 가지고 있는 확고한 가정은 어떻게 도전받을 수 있을까? 종말론적 시나리오를 그리는 것은 종종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필요 이상의 우려를 낳는다. 그러나 2008년 10월 세계가 직면했던 것처럼 그 재앙의 벼랑 끝까지 다가가 기존 시스템으로 대처 불가능할 규모의 위기가 닥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은 해봐야 한다. 비록 그 결론이 종말론적 시나리오로 귀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러한 질문을 통해 미처 보지 못했던 위기의 단면을 잡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넷. 조직원에게 시나리오적 사고와 소통을 독려하라
- 시나리오 플래닝을 통한 텍사코(Texaco)의 성공적인 미래 대응 사례 및 교훈
1990년대 초 GBN은 미국 댈러스에 기반을 둔 텍사코(Natural Gas Group of Texaco)와 함께 천연 가스의 미래를 살펴보기 위해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개발했다. (1902년에 설립된 Texaco는 매출이 300억 달러가 넘는 글로벌 에너지 기업이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텍사코의 생명줄이 끊겼다. 더 많은 산유국들이 지분 소유를 요구하지 않는 혁신적인 기업들의 도움으로 유전을 스스로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냈다.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중간 상인이 부상했다. 영리한 기업들이 생산지와는 상관없이 에너지를 포장해 소비자와 기업들에 판매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냈다. 이 경우 텍스코와 동종 기업들은 단지 대량 공급업체로 전락해버린다. 세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새로운 기술들이 내연 기관을 빠르게 대체한다. 소비자들은 전기차, 하이브리드, 그리고 수소연료전지 자동차를 운전하기 시작한다.
 
 
Monitor Group
모니터그룹 (Monitor Group)은 1983년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를 비롯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들이 설립한 세계적인 경영전략 컨설팅 회사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10개 사무소를 포함한 전 세계 17개 국 25개 지사에서 1,200명 이상의 컨설턴트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전략 컨설팅에 특히 집중하고 있으며 기업 전략 및 경쟁 전략에서의 강점을 기반으로 마케팅, 신사업, 조직 및 리더십, 혁신, 기업 금융 등을 망라하는 다양한 방면의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에는 1989년 외국계 경영전략 컨설팅 회사 중 최초로 진출했으며 현재 전자, 자동차, 소비재, 화학, 에너지 및 금융, 비영리 기관 등 다양한 산업 분야의 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Global Business Network (GBN)
모니터그룹의 자회사인 Global Business Network(GBN)는 피터 슈워츠(Peter Schwartz) 등 세계적인 미래학자 및 전략가들이 설립한 시나리오 플래닝 전문 회사로 새로운 트렌드와 그 파급 효과에 대해 연구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처하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 조직을 둘러싼 중요한 미래의 불확실 요소를 확인한 후 이를 활용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것은 물론 각 시나리오의 위험과 기회를 고려한 대응 전략까지 제안한다.
 
 
이 시나리오들에 놀란 CEO는 그룹 전체를 대상으로 이를 주제로 연설을 했다. 그리고 행동으로도 텍스코를 에너지 업계 내 전환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변모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는 핵심 사업에 수많은 위협 요인이 존재함을 깨닫고 더 이상 혼자만의 힘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조만간 업계에 합종연횡의 바람이 불 것이고 텍스코가 대형 석유회사인 셰브런(Chevron), 엑손(Exxon), 쉘(Shell), 또는 BP 중 하나와 합병하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그는 인수대상이 되기보다는 합병을 주도하는 기업이 되는 것이 올바른 전략이라 판단했고 바로 2001년에 셰브런을 합병했다. 주주들은 그 결과에 만족했고 그 후 회사의 주가는 시장과 경쟁사 대비 지속적인 강세를 보이고 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자세와 미래에 관한 사고 과정을 학습하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결과를 창출한다. 수년 동안 시나리오 플래닝을 지속한다면 조직 내에서 자연스럽게 전략적 대화가 활성화될 것이다. 그리고 의사 결정자, 조직 내 영향력이 큰 사람, 그리고 사업과 업계에 대한 심도 깊은 지식을 보유한 사람들의 다양한 조합, 광범위한 시각, 경험을 통해 이러한 전략적 대화는 보다 빠르고 효과적으로 실행력을 얻을 수 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전통적으로 위계적인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조직 구성원의 사고 및 의사소통의 범위나 자유도가 경직돼 있다. 한국 기업에서 시나리오 플래닝의 근본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구성원이 주로 최고위경영진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승리하고 더 성장하려면 보다 넓은 시야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조직원들의 상상력이 담겨 있는 도전적인 의사소통 문화를 만드는 것이 첫걸음이다.
 
다섯. 경영진을 적극 참여시키되 그들의 의견에 의존하지 말라
- 미디어 및 탄광 회사의 시나리오 플래닝 사례 및 교훈
1992년 5개 기업이 GBN에 미래의 전자 광고에 관한 프로젝트를 의뢰했다. 이 다섯 기업은 방송국, 영화 스튜디오, TV 콘텐츠 제작 스튜디오, 글로벌 광고회사, 그리고 세계적인 소비재 기업이었다. 이 기업들 모두에 TV 광고는 수익의 원천이었다. 따라서 향후 신생 기술이 어떻게 광고 시장을 변화시킬지에 관해 알고 싶어했다. 미디어는 광고 측면에서 어떤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인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고려해야 할 점은 그 당시에는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DVD나 Tivo, 또는 웹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최초의 웹 브라우저인 모자이크는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상태였고 위성TV는 미국에서 입지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었다. (DirecTV의 출시는 2년 후에나 시행됐다.) 그 어느 누구도 VOD를 시험해 보는 사람이 없었고 케이블 채널은 모두 아날로그 방식으로 방송되고 있었다. 그 당시 고객사의 가장 큰 걱정은 VCR로 소비자들이 비디오를 시청할 때 모든 광고를 빨리감기로 건너뛴다는 사실 정도였다.
 
GBN은 2006년을 예측하는 네 가지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첫 세 시나리오는 기존 산업 구도의 상당 부분이 유지되는 것을 가정한 온건한 것이었지만 네 번째는 ‘상호연결’이라고 명명한 현상과 함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시나리오였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통신회사와 케이블업체들이 경쟁적으로 고속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다가 2006년에 이르면 인터넷상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개개인들이 서로서로 연결(즉 ‘상호 연결’)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브로드밴드 인터넷 보급률이 전 가구의 50%를 넘게 되고 TV 프로그램 대부분의 온라인 시청이 가능해진다. HDTV가 널리 보급되고 네트워크상에서는 친구 또는 낯선 사람과 다채로운 인터랙티브 게임을 즐기게 된다. 소프트웨어는 광고가 붙으면 무료로 제공되지만 광고 없는 버전을 위해 일부 사용자들은 돈을 내고 구매하기도 한다. 이동통신사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음성 및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많은 미국인들은 재택근무를 통해 얻게 된 자유시간을 온라인 비디오를 시청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친구들과 교류하는 데 이용한다.
 
1992년 당시 고객사들에게 이 시나리오는 매우 도전적으로 다가왔다. 그들이 알고 있는 광고 시장에 대한 거의 모든 상식을 뒤엎는 시나리오였고 그들에게 새로운 사고를 요구하는 동시에 나머지 세 가지 시나리오를 헛된 희망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유니버셜스튜디오의 딕 린드헤임(Dick Lindheim)은 온라인 환경에 대한 비전을 본 후 필름에서 가상현실로 그의 커리어 방향을 변경했다. 고객사 중 TV 방송국은 곧 성공적인 합병을 단행했고 광고 대행사는 새로운 미디어 마케팅 시장에 조기에 진입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통신회사는 이 시나리오를 성공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사람도 CEO보다 세 단계 낮은 직급의 임원이었다. 결국 회사는 인터넷 붐이 바로 코앞에 닥칠 때까지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시나리오 플래닝 과정에서 개발되는 미래상은 분명 회사에 가장 높은 수준의 변화와 영향을 줄 것이다. 시나리오 개발자가 조직 내에서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치에 있을수록 작업의 결과는 더 효과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만약 시나리오가 직급이 낮은 참여자들에 의해 개발된다면 최소한 인터뷰나 보고형식을 통해 의사 결정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반면 경영진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거나 자신의 미래상을 너무나 확고히 믿고 있는 경우 시나리오 플래닝은 온전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다음은 시나리오의 시사점을 무시한 CEO의 독단이 결과적으로 기업의 미래 또한 해치게 한 사례다.
 
1992년 귀금속의 채굴, 정련 및 판매 사업을 하는 한 탄광회사가 원자재 가격이 향후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전망을 주제로 프로젝트를 의뢰했다. 당시 귀금속 가격은 10년 전 최고가를 기록하다가 1990년대 초반에는 그 절반 가격으로 떨어지는 등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이 회사는 대규모 기업 인수를 진행하고 있었다. 새로운 인수 안건이 이사회에 상정될 때마다 이 회사의 CEO는 귀금속의 가격이 머지 않아 상승해 꽤 수익성이 높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회사의 이사회 임원 중 한 명은 CEO가 자신이 믿는 미래를 위해 기업을 담보로 도박을 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결국 이사회의 요청에 따라 CEO는 GBN과 함께 귀금속 가격 전망을 살펴보는 시나리오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로 합의했다. 우리는 CEO를 포함한 최고임원진 약 12명과 총 5개의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작업을 수행했고 개발된 각각의 시나리오는 꽤 그럴듯해 보였다. 모든 시나리오에서 명백한 결론은 가격 정책상의 불확실성의 범위가 크기 때문에 현재의 공격적 인수가 상당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프로젝트 최종 결과물을 제시한 후 고객사에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믿으면서 나왔다.
 
그러나 불과 몇 주 후에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인원의 절반이 해고됐다는 사실을 접했다. 재무, 기술 및 운영 부문의 책임자들이 다 해고됐다. 알고 보니 CEO는 자신이 선호하는 시나리오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정리하려고 프로젝트를 발주했다. CEO의 주장은 회사를 한 방향으로 이끌고 나가려면 그의 전략에 동의하는 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GBN은 이 프로젝트와 관련된 모든 비용을 되돌려주는 형식으로 프로젝트를 종료했다.
 
 
이 탄광 기업은 어떻게 변했을까? CEO는 본인의 자리를 고수할 수 있을 만큼 이사회에 아군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몇 년 동안 귀금속의 가격이 낮게 유지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CEO는 작은 회사들을 인수하기를 고집했다. 회사는 거의 파산지경까지 갔고 이사회는 결국 CEO를 해고했다. 그러나 때가 이미 늦어 회사는 큰 손실을 보고 있었고 결국에는 더 큰 경쟁사에 인수되고 말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귀금속 가격은 2000년 중반에 급격하게 상승했다. CEO가 인수에 덜 공격적이었다면 아마도 회사는 살아남아 있었을 것이고 그의 신념은 시장에서 크게 인정받았을 것이다. 필자가 그에 관해 들은 마지막 소식은 서부에서 아주 조그마한 탄광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위 사례에서 CEO는 시나리오 플래닝을 왜곡되게 사용했고 그 대가는 본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재앙이 됐다. 주요 의사결정자는 시나리오 플래닝에 참석하는 것 못지 않게 본인의 생각과 다른 불편한 진실이나 다양한 시각을 편견 없이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의 리더가 시나리오 플래닝을 사전에 가지고 있던 자신만의 각본을 확정짓는 방안으로 생각하는 오류는 없어야 한다.
 
한국 기업을 위한 제언: 시나리오 플래닝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적용
생각하지 못한 위험이 현실이 되면 ‘발등의 불 끄기’와 같은 임기응변식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위험의 종류와 영향을 미리 파악해 놓는다면 선제적인 준비와 체계적인 대응이 가능해진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바로 이런 점에서 그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명심해야 할 사실은 시나리오 플래닝 역시 만능은 아니라는 것이다. 시나리오 플래닝이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예견하지 못한 환경적 변화 앞에서는 실패 사례도 있었다. 그만큼 미래에 어떠한 상황이 도래할지 파악하는 것은 그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시나리오 플래닝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 미래의 모든 불확실성을 일일이 대응하겠다는 식의 자세 역시 바람직하지 못하다. 미래란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인정하고 불확실성이 큰 변수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대응책을 미리 마련하는 것만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기업들에 최선임을 명심해야 하겠다.
 
 
피터 슈워츠(Peter Schwartz) GBN 회장, 장승세 모니터그룹 서울사무소 부사장
 
피터 슈워츠(Peter Schwartz)는 모니터그룹 시니어 파트너이자 GBN의 공동창립자이며 미래를 예측하는 독특한 기법 중의 하나인 시나리오 플래닝의 대가로 수많은 정부기관과 민간기업들을 도와 미래 경영 전략과 관련된 시나리오를 개발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미래를 읽는 기술(The Art of the Long View)> <장기 호황(The Long Boom)> <좋은 기업의 부도덕성(When Good Companies Do Bad Things)> <중국의 미래(China’s Futures)> 등이 있다. 또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The Minority Report)’ ‘딥 임팩트(Deep Impact)’ ‘스니커즈(Sneakers)’ ‘워 게임(War Games)’ 등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해 대중들에게 미래 사회의 모습에 관한 자신의 상상력을 놀랍도록 생생하게 보여줬다.
 
장승세 부사장은 서울대학교 섬유고분자공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모니터그룹 서울사무소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12년 이상의 전략 컨설팅 경험을 갖고 있으며, 특히 시나리오 플래닝 분야의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국내외 에너지, 화학, 철강, 중공업 회사를 대상으로 성장 전략, 경쟁 전략, Turnaround, M&A, 시나리오 플래닝 프로젝트 등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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