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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CEO Briefing

日 데루모, 고객과 핵심가치를 나누다

황래국 | 86호 (2011년 8월 Issue 1)
편집자주 SERICEO는 삼성경제연구소가 운영하는 회원제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로 국내 주요 기업 경영자들에게 경제, 경영, 인문학 등 다양한 지식을 제공하고 있다. (http://www.sericeo.org)
 
1921년 일본 기타사토 시바사부로 박사와 몇 명의 의학자들은 우수한 체온계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 국산화하자는 목표로 의료회사를 세웠다. 그 후 40년 가까이 체온계만을 만들던 회사는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분야를 넓혔다. 1963년 일본 최초의 일회용 주사기와 혈액백을, 1964년 주삿바늘을 선보였으며 2007년에는 세계 최초로 자기부상형 좌심보조 인공심장인 Duraheart를 개발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이 회사가 바로 일본 의료기기 제조업체인 데루모다.
 
데루모의 매출액은 2010년 3월 결산기준 3160억 엔(미화 34억 달러) 규모로 존슨&존슨의 619억 달러, 보스턴사이언티픽의 82억 달러 등 글로벌 상위기업에 비해 적다. 그런데도 업계의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경영이념 때문이다. 데루모는 “의료를 통해 사회에 공헌한다”는 기업이념을 바탕으로 의료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와치 다카시 데루모 회장은 1995년 사장으로 취임했을 때 장장 2년 6개월에 걸쳐 전국을 돌며 당시 4200명이나 되는 전 직원을 모두 면담했다고 한다. 공유해야 할 핵심가치를 직원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전달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렇다면 데루모는 과연 어떻게 기업이념을 실천하며 지속성장을 이뤘을까?
 
데루모의 대표 히트제품은 ‘아프지 않은 주삿바늘’이다. 나이가 들어도 주삿바늘은 우리를 긴장시킨다. 그런데 매일같이 주사를 맞아야 한다면 어떨까? 데루모는 당뇨병으로 인슐린을 매일같이 투약해야 하는 환자들, 소아병동 환자들이 주사 때문에 받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새로운 주삿바늘 개발에 착수했다. 일본 금속제조업체 중에서도 장인급으로 불리는 오카노와 손을 잡고 5년 동안 끈질기게 연구해 개발에 성공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가느다란 인슐린용 주삿바늘로 ‘나노패스33’이다. 2005년 일본 ‘굿디자인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반되는 불편함과 고통을 그냥 넘기지 않고 환자들의 삶의 질을 조금이나마 높이려는 시도가 이런 성공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또 데루모가 집중하는 것은 범용품에서의 차별화다. 의료현장에서 범용품은 심장 혈관치료의 필수품으로 가느다란 튜브 모양의 카테터의 사용을 도와주는 가이드와이어 등을 말한다. 범용제품은 이미 널리 보급돼 있기 때문에 차별화가 어려워 제조사는 결국 가격으로 승부하게 된다. 그럼에도 데루모는 새삼스럽게 이런 범용품에 집중했다. 현장 방문조사와 분석을 통해 실제 범용품을 사용하는 의료진의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범용품의 품질은 어느 분야에서나 중요하겠지만 의료업에서는 특히 더 중요하다. 범용품이 불편하거나 품질이 떨어져서 의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치료에 집중할 수 없고 환자도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데루모가 현장 의료진의 의견을 수렴해서 만든 새로운 카테터는 무엇일까? 기존 카테터는 발에 삽입해 치료하기 때문에 최소 하루나 이틀가량 입원을 해야 한다. 불편함도 불편함이지만 경제적 부담도 크다. 이에 데루모는 손목에 삽입할 수 있는 카테터를 제품화했다. 가격도 저렴한데다 카테터를 이용하면 당일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병원과 환자 모두에게 환영받았다.
 
데루모는 업계 전체를 위한 공헌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데루모는 2007년 4월 가나가와현에 19억 엔을 투자해 의사, 간호사 등 의료관계자를 위한 최첨단 연수시설을 만들었다. 설립 이래 4만 명이 넘는 의료관계자들이 방문했으며 이곳에서는 데루모가 개발한 고급 의료기기를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경험하고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 전문의 과정에 들어간 레지던트들에게도 연수과정을 제공한다. 실습과정에서 제품의 문제점과 개선점 등을 파악해 신제품 개발에 반영하고 있다. 전문의들은 미래 고객이기 때문에 이러한 관계강화를 통해 마케팅 효과도 동시에 얻고 있다.
 
기업과 의사, 그리고 환자가 공유할 수 있는 데루모의 노력은 2010년 포터상 수상을 통해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포터상은 일본 히토쓰바시대 대학원 국제기업전략연구과가 2001년부터 독창적이고 우수한 경쟁전략을 실천해 높은 수익을 낸 기업이나 사업에 수여하는 상이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포터 교수는 데루모의 선정 이유를 “범용품에서 자사의 독자적인 기술을 활용해 높은 사용편의성과 치료 효율성을 실현했고 환자의 육체적 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여주고 종합적인 비용절감에도 기여했다”라고 말했다.
 
데루모의 사례를 통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기업 전체, 나아가 우리의 고객까지 함께 나눌 수 있는 굳건한 핵심가치는 그 어떤 전략보다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데루모의 성공을 보면서 항상 당연하다고 여기는 곳에 기업 성공의 포인트가 있는 것은 아닌지, 고객과 공유할 수 있는 핵심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황래국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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