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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모델 혁신의 개념과 방법론

사업의 설계도 바꿔 경쟁구도 무너뜨려라

이동현 | 72호 (2011년 1월 Issue 1)
 
 
 
 
제품 경쟁에서 역량 경쟁으로
‘경쟁’은 경영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다. 독점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 경영은 나 홀로 벌이는 게임이 아니라 언제나 상대편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벌이는 상대적인 게임이기 때문이다. 경쟁은 남과 달라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한 환경을 의미한다. 경영자들은 오래 전부터 경쟁자와 뚜렷이 구분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일반적으로 경쟁이라고 하면 주로 ‘제품(혹은 서비스) 경쟁’을 떠올리게 된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나이키와 아디다스, 델타와 아메리칸 항공의 경쟁은 콜라, 운동화, 항공 서비스 등 자신들이 생산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놓고 벌이는 기업 간 경쟁을 의미했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 보이는 제품 경쟁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최종 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모토로라는 휴대전화 시장에서 고전하다가 2004년 하반기 회심의 신제품을 출시했다. 바로 ‘레이저(razor, RAZR)’라는 브랜드의 초슬림 휴대폰이었다. 레이저는 복잡한 기능보다 디자인이 더 중요하다는 화두를 던지면서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모토롤라가 제시한 신제품 콘셉트는 명확했다. 휴대전화 두께를 얇게 만드는 것이다. 얇게 만들려다보니 꼭 필요한 기능만 넣었다. 레이저는 휴대전화를 닫은 채로 14.5㎜라는 두께와 100g도 채 나가지 않는 무게를 자랑했다. 모토로라는 레이저를 앞세워 휴대폰 시장에서 매출과 점유율을 높였다. 2005년 3분기에는 레이저 덕분에 모토롤라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13.5%(2004년 기준)에서 18.7%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 후 모토로라는 마땅한 후속 히트작이 없었다. 결국 당시 휴대전화 1위 업체였던 노키아는 물론 삼성전자와 LG전자에도 뒤처졌다.
 
모토로라의 사례에서 보듯 경영자들은 경쟁을 단순히 눈에 보이는 제품(혹은 서비스) 측면으로만 한정했을 때 범할 수 있는 치명적인 오류를 경계해야한다. 모토로라의 경영자도 이를 간과했다. 휴대전화 산업에서는 히트 제품 출시도 중요하지만, 더 신경 써야 할 점은 우수한 신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역량(competence)을 구축하는 일이다. 물론 역량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운 좋게 신제품을 히트시킬 수 있다. 그러나 유행이 바뀌거나 모방 제품들이 범람하면, 모토로라 사례처럼 1∼2개 히트 제품만으로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경쟁을 제품 측면에만 국한하지 말고 역량 측면으로 확장해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때 역량 경쟁이란 제품 경쟁처럼 당장 고객들 눈앞에 보이는 경쟁은 아니지만, 우수한 자원이나 능력을 확보하려는 기업 간 경쟁을 의미한다. 인력과 자본이 거래되는 노동 시장과 자본 시장을 요소 시장(factor market)이라고 한다면, 역량 경쟁은 바로 이런 요소 시장에서 벌어지는 경쟁을 의미한다. 또 역량 경쟁은 구매가 이뤄지는 실제 시장이 아닌 가상의 시장에서 경쟁하는 경우도 포함한다. 예컨대 노동 시장에서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기업 간에 경쟁하는 것은 요소 시장에서 벌어지는 역량 경쟁의 좋은 예다. 이와 함께 기업들이 앞다퉈 미래를 위한 기술 개발에 투자하는 경우도 가상 시장에서 벌어지는 역량 경쟁의 좋은 사례다. 이런 역량 경쟁의 개념은 경영자들로 하여금 단기적으로 제품에만 집중하는 것에서 벗어나,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제품의 기반인 탁월한 역량에 초점을 맞추는 데 도움을 준다.
 
 
1901년 설립된 질레트(Gillette)는 기술 개발과 브랜드 혁신을 통해 면도기 산업을 개척한 선두기업이었다. 질레트는 카트리지(cartridge) 방식의 탁월한 제품과 혁신적인 디자인, 뛰어난 광고와 강력한 브랜드 파워 덕분에 면도기 사업을 장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경쟁사인 빅(BIC)이 일회용 면도기(disposable razor)를 선보이면서 시장 판도에 변화가 일었다. 빅은 값싼 플라스틱 제조 방법을 개발했고, 볼펜과 라이터와 더불어 면도기를 효율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유통 경로를 개척했다. 급기야 유럽 시장에서 빅은 질레트를 물리쳤고 여기에 자극 받은 질레트는 미국 시장을 지키기 위해 1976년 서둘러 ‘굿 뉴스(Good News)’라는 브랜드의 일회용 면도기를 시판했다. 하지만 문제는 질레트의 낮은 수익률이었다. 경쟁사인 빅에 대응하기 위해 저가의 일회용 면도기에 주력하다보니 질레트의 매출과 시장 점유율은 늘어도 수익성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질레트의 가장 큰 오류는 당장 눈에 보이는 제품 경쟁에 함몰됐다는 점이다.빅이 출시한 일회용 면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유사 제품을 출시한 것이 질레트가 취한 조치의 전부였다. 그러나 애초에 일회용 면도기를 시장에 선보였던 빅과, 카트리지 방식의 고급 면도기를 생산했던 질레트는 서로 다른 역량을 갖고 있었다. 빅의 핵심역량은 플라스틱 제조공법을 중심으로 한 원가 경쟁력이었다. 빅은 값싼 면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저렴한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가의 일회용 면도기를 팔아도 이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반면에 질레트는 상황이 달랐다. 질레트의 핵심역량은 원가 경쟁력이 아니라 고기능 제품을 설계할 수 있는 R&D 역량과 브랜드 파워였다. 질레트는 전통적으로 막대한 R&D 투자를 통해 고급 제품을 출시하고, 이를 통해 높은 마진을 확보했다. 이런 상황에서 저가 제품인 ‘굿 뉴스’의 출시는 질레트에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사실 ‘굿 뉴스’는 질레트의 핵심역량과는 거리가 먼 제품이었다.
 
다행히 질레트는 자신이 범한 실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어차피 질레트는 일회용 면도기 시장에서 경쟁사인 빅을 압도하기 어려웠다. 대신 질레트는 면도기 산업의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는 역량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빅의 싸구려 일회용 면도기 제품에 단순 대응하는 게 아니라, 높은 품질의 고급 면도기 제품이 시장의 주류를 형성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질레트는 전략을 바꿔 자신의 핵심역량을 활용한 제품 혁신에 주력했다. 그 결과 1990년 ‘센서’라는 히트 제품 출시를 필두로 1993년 ‘센서 엑셀’, 1998년 ‘마하3’, 2002년 ‘마하3 터보’, 2004년 ‘마하3 파워’, 2006년 ‘퓨전’에 이르기까지 혁신적인 프리미엄 제품들을 잇달아 선보이면서 면도기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경쟁의 진화, 비즈니스 모델의 경쟁
반면 ‘비즈니스 모델(business model) 경쟁’은 기존의 제품 경쟁과 역량 경쟁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줬다.
비즈니스 모델이란 일반적으로는 어떤 상품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판매할 것인가를 결정한 사업의 기본 설계도를 의미한다. 즉, 시장에서 기업이 어떻게 이윤을 창출하는지를 설명한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 경쟁은 앞서 설명한 제품이나 역량 경쟁과는 다른 차원에서 기업 간 경쟁을 설명한다. 같은 제품이라 하더라도 그 제품을 생산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다를 수 있다. 애플(Apple)과 델(Dell)이 제품 측면에서 같은 PC를 생산하고 있지만,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전혀 다르다. 항공 산업에서 아메리칸 항공과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같은 국내선 항공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비즈니스 모델은 다르다.
 
본래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용어는 인터넷, 정보 기술의 확산으로 소위 온라인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개념이었다. 아마존, 야후, 이베이 등 새롭게 등장한 온라인 기업들은 기존의 오프라인 기업들과 사업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게다가 이들 기업은 벤처기업의 형태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을 지속적으로 조달하는 게 매우 중요했다. 따라서 자신들의 사업이 기존 오프라인 사업과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용어였다. 인터넷 붐과 함께 1990년대 말 널리 퍼진 비즈니스 모델은 이제 기업의 새로운 경쟁방식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개념이 됐다.
 
비즈니스 모델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제품이나 역량 차원에서 경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비즈니스 모델 간에 경쟁이 이뤄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앞서 설명한 제품이나 역량 경쟁이 서로 유사한 게임의 룰, 즉 동일한 비즈니스 모델 하에서의 경쟁이라면, 비즈니스 모델 경쟁은 서로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경쟁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스웨덴의 혁신적인 가구업체인 이케아(IKEA)는 전통적인 가구업체와 달리 가구 부품을 대규모 매장에서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 고객이 할인 매장에서 가구 부품을 구입해서 직접 조립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꽤 훌륭한 디자인의 가구를 얻을 수 있다.
 
비즈니스 모델은 기업의 역량 축적에도 영향을 미친다. 애플과 델은 비즈니스 모델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축적하는 역량도 각각 차이가 난다. 애플은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까지 자체 생산해서 고가의 PC를 생산·판매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델은 철저한 아웃소싱과 프로세스 혁신을 통해 저가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아메리칸 항공은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 중심과 주변 공항 연결방식) 정책을 기반으로 다양한 기내 서비스와 다양한 기종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포인트 투 포인트(point-to-point, 중소도시 간 논스톱 연결방식) 정책을 기반으로 최소한의 기내 서비스와 보잉737 단일 기종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아무리 뛰어난 제품이나 서비스를 가지고 있어도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을 구축하지 못하면 경쟁자들에게 모방 당하듯이, 아무리 우수한 역량을 확보하고 있어도 사업의 기반인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진부하면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PC 산업에서 IBM이 철수하고, 애플이 그래픽이나 출판 등 틈새시장을 차지하는 데 그친 반면, 델이 저가 생산 능력을 무기로 시장을 석권했다. 이 사례에서 보듯 결국 IBM이나 애플이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에 기반을 두고 최선을 다해 역량을 축적했는데도 불구하고, 비즈니스 모델 경쟁에서 델을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PC 산업 경쟁에서 밀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비즈니스 모델의 경쟁은 기본적으로 경쟁 우위의 원천을 ‘혁신(innovation)’에서 찾고 있다. 비즈니스 모델 경쟁의 이론적 근거는 슘페터(Schumpeter)의 경제 이론과 맥을 같이한다. 슘페터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원동력은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다. 새로운 제품과 새로운 기술, 새로운 유통, 새로운 경영방식에 의해 기존의 제품, 기술, 유통, 경영방식이 파괴된다. 사실 대부분의 기업에서 ‘혁신하자’는 구호는 기존 제품에 한 두 가지 새로운 특성을 추가하거나 서비스를 개선하는 정도로 해석된다.
 
비즈니스 모델 경쟁의 유용성
제품이나 서비스 위주의 혁신은 지나치게 혁신을 좁게 해석하는 허점이 있다. 진정한 혁신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과감히 도입하는 데 있다. 혁신의 대상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사업의 설계도인 비즈니스 모델 자체인 것이다. 그리고 비즈니스 모델 혁신은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진부화(obsolescence)시킬 만큼 위협적이다. 따라서 비즈니스 모델 경쟁은 경쟁자들의 공격에 단순히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해서 아예 경쟁자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진부화시켜 버린다.
 
 
기업 간 경쟁은 세 가지 차원에서 설명할 수 있다(표1). 제품이나 역량 경쟁의 분석 단위는 제품이나 역량이다. 반면, 비즈니스 모델 경쟁에서는 비즈니스 모델에 초점을 둔다. 또 제품 경쟁이 미래 환경에 대한 확실성을 기반으로 한다면, 역량 경쟁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예측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반면 비즈니스 모델 경쟁은 불확실성을 염두에 두고 의사결정을 한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제품 경쟁에서의 핵심 전략이 시장에서 경쟁 제품에 비해 어떻게 포지셔닝(positioning)하는 것이라면 역량 경쟁에서는 핵심 역량을 축적하고 활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반면 비즈니스 모델 경쟁에서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도입에 따른 혁신과 기존 비즈니스 모델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진부화로 경쟁 전략의 논리를 요약할 수 있다.
 
그렇다고 현실에서 이런 세 가지 경쟁이 별도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불확실한 환경 변화 속에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들이 등장하고, 각 기업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비즈니스 모델을 기반으로 핵심 역량을 축적하고 제품을 개발한다. 따라서 세 가지 경쟁은 각기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으면서도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사한 제품을 생산 및 판매하면서도 서로 다른 역량을 축적할 수 있고, 서로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활용할 수도 있다.
 
델과 애플은 PC를 생산, 판매하지만 서로 다른 비즈니스 모델과, 서로 다른 핵심역량을 기반으로 경쟁하고 있다. 델타 항공이나 유나이티드 항공이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저가 항공사업에 자극을 받아 각기 ‘송(Song)’과 ‘테드(Ted)’라는 브랜드의 저가 항공서비스를 개시했다. 하지만, 사우스웨스트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철수하고 말았다. 이처럼 비즈니스 모델을 모방할 수는 있어도, 비즈니스 모델이 실제 성과와 연결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역량을 구축하고, 경쟁력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세 가지 경쟁 모델도 서로 대체적인 관점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영자들이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경쟁에 관한 근시안적 시각이다.
 
비즈니스 모델 혁신의 방법론
그렇다면 어떻게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시킬 수 있을까?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파괴시키는 혁신 모델을 어떻게 구상할 수 있을까? 사실 비즈니스 모델 혁신은 본질적으로 창조적인 작업이다. 모든 창조적인 작업이 그렇듯이 비즈니스 모델 혁신도 완벽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기업인 애플의 경우도 흔히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가 모든 것을 주도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 아이팟이나 아이폰의 성공은 잡스를 비롯한 수많은 구성원들의 아이디어와 시행착오들의 최종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고에서는 여러 학자나 컨설턴트들의 연구를 종합해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위한 프레임워크를 제시하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분석틀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위한 가이드라인 역할은 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위해서는 목표 시장, 가치 네트워크, 핵심 가치, 핵심 역량 등 4가지 요인에 대한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그림 1). 이 중 목표 시장과 가치 네트워크는 기업 외부에 초점을 둔 요인이고, 핵심 가치와 핵심 역량은 기업 내부에 초점을 둔 요인이다.
 
 
1.목표 시장
각 연구자들마다 비즈니스 모델의 구성 요소를 약간씩 다르게 규정하지만, 거의 모든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비즈니스 모델의 구성요소는 목표 시장(target market) 혹은 목표 고객에 대한 정의다. 고객 선택(customer selection), 고객과 상호작용(customer interaction), 고객과의 관계(customer relationship) 등 다양한 용어를 사용하지만, 이들이 강조하는 내용은 결국 사업의 목표 시장이 무엇인지, 혹은 어떤 고객이 수익을 창출시킬 것인지에 대해 답을 찾는 일이다. 이는 사업의 가치가 고객으로부터 나온다는 기업 경영 분야의 오랜 정설이기도 하다.
 
목표 시장에 대한 창의적인 접근을 위해서는 산업에서 관행처럼 정의되는 시장이 아니라, 미개척 시장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하다. 아직 접근조차 되고 있지 않는 시장, 아직 파악하지 못한 고객 욕구에서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위한 단초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렌터카 회사인 ‘엔터프라이즈 렌터카(Enterprise Rent-A-Car)’는 기존 선발업체인 허츠(Hertz)나 에이비스(Avis)와 완전히 다른 시장을 공략했다. 기존 업체들은 렌터카 사업의 주요 고객을 공항에서 차를 빌리는 회사원이나 여행객으로 정의했다. 반면 엔터프라이즈 렌터카는 차를 도난당하거나 사고가 난 경우 일시적으로 차가 필요한 고객들을 공략했다. 이 고객들은 여행이나 출장 목적으로 차를 빌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제 렌터카를 위해 공항까지 가는 것이 무척 불편했다. 엔터프라이즈 렌터카는 주로 주택가나 사무실 근처에 영업점을 개설해서 이들을 적극 공략했다. 렌터카 사업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한 것이다. 덕분에 엔터프라이즈 렌터카는 북미에서 가장 큰 렌터카 기업이 됐다. 현재 이 회사는 북미 전역에 5399개(매출의 91%)의 시내 영업소와 419개(매출 9%)의 공항 영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시장이나 고객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은 비즈니스 모델 혁신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과거 CNN이 생방송 비즈니스 모델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미국의 해외여행 인구가 급격히 증가한 게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앞서 설명한 이케아(IKEA) 역시 소득이 적은 신혼부부나 학생들을 목표 고객으로 해서 이들의 셀프 서비스 즉, DIY(Do It Yourself) 욕구를 집중 공략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또 미국의 증권업체인 에드워드 존스(Edward Jones)는 여타 증권사들과 달리 기관 투자가는 상대하지 않고 개인 투자자에 대해서만 서비스한다. 개인 투자자나 영세 사업자들과의 각별한 유대관계 덕분에 에드워드 존스는 금융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고, 메릴린치를 비롯한 대형 증권업체들과의 경쟁에서도 성장할 수 있었다.
 
2.핵심 가치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위한 두 번째 요소는 제품이나 서비스로 대표되는 기업의 제공물(offerings), 즉 핵심 가치를 정비하는 일이다. 이 역시 시장 제공물(marketspace offering), 제품 혁신(product innovation) 등 연구자에 따라 표현이 다르지만, 결국 경쟁자와 차별화 되는 사업의 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이 무엇인가에 대한 검토라고 할 수 있다. 비즈니스 모델에도 경쟁자와 대비해 기업이 제공하는 차별화 된 가치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어야 한다.
 
기업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를 새로운 관점에서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은 김위찬 교수 등이 제안한 블루오션 전략에서도 이미 강조되고 있는 대목이다.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는 특정 산업에서 고객에게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해 ‘가치 혁신(value innovation)’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가치 혁신이란 구체적으로 고객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불만이 있는 가치를 제거하거나 줄이고 고객이 좋아하거나 미처 알지 못하는 가치를 강화하거나 창조하는 것이다.
 
닌텐도는 게임기 산업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경쟁사인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압했다. 새로운 가치의 핵심은 ‘게임은 쉽게, 조작은 단순하게’로 요약된다.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고성능 첨단 기술 개발에 주력한 반면 닌텐도는 고객의 사용 편의성를 강조하는 고객지향적 제품 개발에 주력했다. 덕분에 닌텐도는 여성 및 중장년 남성까지 고객층을 확대할 수 있었다. 최근 화제가 된 애플의 아이폰도 가치 혁신의 좋은 사례다. 애플은 아이폰을 통해 휴대전화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바꿨다. 단순히 하드웨어 기기만 판 것이 아니라 휴대폰을 플랫폼으로 해서 소프트웨어인 콘텐츠를 판매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애플이 제시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덕분에 앞으로 휴대전화 제조사들의 수익 중 제조로 얻는 부가가치 외에 차별화된 콘텐츠를 판매해 수익의 비중이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닌텐도와 아이폰이 고객들이 좋아하거나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가치를 강화하거나 새롭게 창조해서 가치 혁신을 이뤘다면, 사우스웨스트나 세포라(Sephora)는 고객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불만이 있는 가치를 제거하거나 감소시켜서 혁신에 성공한 경우다. 사우스웨스트는 기내식이나 좌석 배정, 항공편 연결 등의 서비스를 제거하는 대신 항공 요금을 대폭 낮춘 저가 항공사업 모델을 도입해서 큰 성공을 거뒀다. 또 세포라는 고객들이 구매에 대한 부담 없이 편안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고, 다양한 브랜드를 비교 구매할 수 있는 새로운 화장품 유통 방식을 고안했다. 기존 백화점에서는 진열대마다 1개 브랜드 제품만 전시되기 때문에 타사 제품과 비교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또 수수료에 집착하는 판매원들의 압력 때문에 편안히 쇼핑을 즐기기도 어려웠다. 세포라는 다양한 브랜드를 한꺼번에 진열했고, 판매원의 강요를 없앴다. 세포라의 핵심 가치인 자유(freedom), 미(beauty), 즐거움(pleasure) 중 자유를 가장 먼저 강조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3. 핵심 역량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위해서는 핵심 가치를 창출하는 데 필요한 자원과 능력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이게 바로 핵심 역량으로 지식 레버리지(knowledge leverage), 전략적 자원(strategic resources), 자원 시스템(resource system) 등 다양한 용어로도 표현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델타나 유나이티드 항공이 사우스웨스트를 따라 잡는 데 실패한 이유는 저가 항공사업에서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역량을 구축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저가 항공사업에서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항공기 운항 가동률을 극대화시켜야 한다. 즉, 항공기가 공항에 도착해서 손님과 화물을 내리고 다시 손님과 화물을 싣고 목적지로 떠나는 턴어라운드(turnaround)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송(Song)’과 ‘테드(Ted)’ 항공은 바로 이 점에서 사우스웨스트를 능가하지 못했다.
 
도요타, 델, 누코(Nucor) 등도 독특한 역량을 구축해서 해당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도요타는 당시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석권하고 있던 미국 빅3의 대량생산방식에서 탈피해서 도요타 생산방식(TPS)이라 불리는 독특한 생산방식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델은 고객에게 직접 주문을 받아 조립, 배달하는 고객 맞춤형 직판 시스템으로 PC 제품의 가격을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마찬가지로 누코는 신일본제철이나 포스코 등의 고로 방식의 일관 제철소(integrated mills) 모델에 대응해서 전기로 방식의 미니밀(mini mills) 모델을 개척했다. 1960년대만 해도 미니밀과 일관 제철소의 시장은 구분됐지만, 1980년대에 들어 미니밀이 일관 제철소들이 생산하고 있는 선재, 대형 형강, 고급 봉강 분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1989년에는 누코가 혁신적인 기술인 박슬라브 기술(thin slab casting)을 이용해 일과 제철소 고유의 제품 영역인 판재류 분야에 진출함으로써 세계 철강업계의 경쟁구도를 변화시켰다.
 
4. 가치 네트워크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위한 마지막 네 번째 요인은 ‘가치 네트워크(value network)’에 대한 검토다. 기업 내부의 자원과 능력에 대한 분석뿐만 아니라 구매자나 공급자, 혹은 경쟁자까지 포함한 외부업체와의 파트너십이나 네트워킹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기업의 가치 활동 중 어떤 것들이 기업 외부에서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에어버스(airbus)는 보잉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프랑스의 아에로스파시알 마트라(Aerospatiale Matra), 독일의 다임러 크라이슬러 에어로스페이스 에어버스(Daimler Chrysler Aerospace Airbus), 영국의 에어로스페이스(Aerospace), 스페인의 카사 (CASA) 등 4개 경쟁 기업들이 연합을 이루어 단일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냈다. 세계적인 전자 제품 위탁생산업체(EMS)인 플랙스트로닉스(Flextronics)는 전 세계 30개국에 효율적인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해, 주요 고객들의 제품을 위탁생산하는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했다. 시스코, 코닥, HP, 마이크로소프트, 모토롤라, 소니 에릭슨 등이 플랙스트로닉스의 주요 고객사다.
 
홍콩의 대표 기업인 리앤펑(Li & Fung)은 전 세계 40개국에 걸쳐 2만4000명의 종업원을 보유하고 87억 달러(2006년 기준)의 매출을 기록한 다국적 기업이다. 리앤펑은 ‘글로벌 네트워크 편성(orchestration)’이라는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다. 전 세계에 산재한 8300개의 공급업자로 이루어진 리앤펑의 네트워크를 조율하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 고객이 남성용 반바지 30만 벌을 홍콩의 리앤펑에게 주문하면, 단추는 중국, 지퍼는 일본, 실은 파키스탄으로부터 조달한다. 파키스탄에서 받은 실은 다시 중국으로 보내, 직물로 짜서 염색하고, 이 모든 것을 꿰매는 작업은 방글라데시 공장에서 담당한다. 리앤펑에는 단 한 곳의 자사 공장이나 단 한 명의 재봉사도 없지만, 다양한 공급업자들을 진두지휘해서 한 달 뒤에 주문을 선적할 수 있다.
 
새로운 경쟁과 새로운 혁신
경영자들은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이해를 통해 기업 경쟁력의 보다 본질적인 원천인 사업의 설계도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이다. 또 비즈니스 모델 혁신은 혁신이라는 다소 막연한 개념을 좀 더 실천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하고 있다. 아무리 경쟁력 있는 제품을 보유한 기업일지라도 역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계속 이어질 제품 경쟁에서 지속적인 우위를 확보하기 힘든 것처럼,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역량을 확보한 기업이라 할지라도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진부화한다면, 기업의 생존 자체를 위협받게 될 것이다.
 
시장의 글로벌화, 급격한 기술 혁신, 잠재적 경쟁자의 출현 등으로 21세기 기업 환경은 더욱 급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운영의 효율성 개선이나 신제품 개발, 단순한 R&D 투자 등이 가져다줄 수 있는 부가가치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개혁, 경쟁의 룰을 바꾸는 의지,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하려는 시도만이 새로운 사업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동현 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 방문 교수로 연구 활동을 벌였다. <MBA 명강의> <경영의 교양을 읽는다: 고전편, 현대편> <깨달음이 있는 경영> <초우량 기업의 조건>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경영학 지식을 다양한 조직에 확산하는 일에 역량을 쏟고 있다.
 
 
  • 이동현 | - (현)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
    -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 방문 교수
    - <경영의 교양을 읽는다: 고전편, 현대편>, <깨달음이 있는 경영>, <초우량 기업의 조건> 저자
    dhlee67@catholi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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