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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Management

성능 좋고 예쁜 쥐덫이 실패한 이유

정현천 | 70호 (2010년 12월 Issue 1)

한 사람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천재를 천재로 만드는 것은 바로 그 만 명이다. 만 명이 필요로 하는 것,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 먹여 살릴 수 없다. 만 명과 동떨어진 한 사람만의 생각으로 세상의 이치를 밝히거나, 윤리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시장에서는 성공할 수 없다.
 
미국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만약 어떤 사람이 남들보다 더 좋은 글을 쓰거나 더 좋은 설교를 하거나 혹은 조금 더 개량된 쥐덫 하나라도 만들어낸다면, 사람들은 그의 집이 아무리 울창한 숲 속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 문 앞에까지 길을 내고 찾아 갈 것이다”는 말을 했다. 이 말로 인해 ‘더 좋은 쥐덫(a better mousetrap)’은 좋은 제품을 나타내는 관용어구로 굳어졌다.
 
그러나 비즈니스 용어로 널리 사용되는 이 말은 사실은 반쪽짜리 진리에 불과하다. 누가 봐도 더 뛰어난 제품이 시장에서 실패하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실제로 미국 울월스(Woolworth) 사장 체스터 울워스는 오랜 연구 끝에 아주 뛰어난 쥐덫을 만들어냈다. 한 번 잡힌 쥐는 절대로 놓치지 않을 뿐 아니라 예쁜 색깔의 플라스틱 제품인 이 쥐덫은 깨끗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에 위생적이며 값도 기존 제품에 비해 약간만 더 높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더 좋은 쥐덫’은 처음에는 잘 팔리는 듯하다가 금세 매출액이 떨어지더니 결국 실패한 제품이 되고 말았다. 이유를 분석해보니 고객들은 쥐가 잡혀있는 쥐덫을 처리하기 어려워 쥐와 함께 쥐덫째로 버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좋은 쥐덫은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 예쁘고 아까워서 차마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쥐가 죽은 후 꺼내서 쥐덫을 깨끗이 씻은 후 다시 사용하려고 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 징그럽고 불쾌해서 사람들은 구식 쥐덫을 사용하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처럼 ‘더 좋은 쥐덫’도 고객이 원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울워스 사장은 “에머슨이 철학자였기에 망정이지 기업의 사장이었다면 큰일 났을 것이다”며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경영자에게 필요한 감수성
우리나라 경영학의 대가인 윤석철 교수는 그의 책 <경영학의 진리체계>에서 “고객의 필요, 아픔, 기호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경영자의 인식능력을 감수성(Sensitivity)”이라고 정의할 것을 제안하면서 켈로그의 탄생 배경을 소개했다.
 
켈로그의 창립자 윌 키스 켈로그(Will Keith Kellogg)는 초등학교 교육 밖에 받지 못한 채 미국 미시간주의 작은 도시 배틀 크릭(Battle Creek)에 있는 한 내과병원에서 25년간 잡역부로 일하고 있었다. 입원환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일을 하던 그는 소화기 계통 환자들로부터 빵을 먹으면 속이 편치 않다는 푸념을 듣게 됐다. 이때 그는 환자들에게 마음으로부터의 연민을 느꼈다. 병원의 급식메뉴 중 빠질 수 없는 것이 곡물들로 만든 빵이었다. 그런데 그는 빵 속에 남게 되는 이스트의 부작용으로 환자들의 속이 불편해진다고 생각하고, 이스트가 없는 곡물음식을 만들려고 했다. 그는 곡물을 삶아서 눌러내는 방법으로 오랫동안 여러 가지 실험을 거친 끝에 결국 시리얼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시리얼은 섬유질이 많은 밀껍질을 그대로 포함하고 있어서 영양가도 빵보다 높고 소화기 건강에 도움이 됐다. 환자들은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도 켈로그에게 계속 우편으로 시리얼을 주문했다. 이렇게 해서 시리얼은 환자들뿐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아침식사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켈로그는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윤석철 교수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의 이면에도 세종대왕이 백성들에게 가진 연민의 정이 큰 작용을 했다고 해석한다. 말이 있어도 글이 없어 뜻하는 바를 제대로 펴지 못하는 백성들의 불편, 특히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백성들에게 제대로 농사짓는 법을 가르칠 책 농사직설(農事直說)이 한문으로 돼 있는 현실에 세종대왕은 아픔을 느꼈다. 그 감수성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로 평가 받는 한글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윤석철 교수는 한걸음 더 나아가 감수성을 키우는 방법까지 제시한다. 그것은 “낮은 곳으로 임하라”는 종교적인 가르침과 같다. “미천한 백성이 글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군왕과 귀족의 오만, 소화기 환자들의 속이 불편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건강한 자의 오만에 머물고 말았다면 한글과 시리얼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고층건물 속의 호화로운 사무실, 고급 승용차의 검은 유리창 속에서 가진 자의 오만 속에 사는 사람은 일반 소비대중의 필요, 아픔, 정서를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경영자의 감수성은 고객이 존재하는 현장에서 그들과 직접 접촉하는 가운데 형성된다. 나아가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아내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사업 성공의 비결이고 핵심이라는 것이다.

훌륭한 감수성, 역지사지에서 나온다
훌륭한 감수성을 갖는 방법은 바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것이다. 내가 약속시간에 늦으면 차가 막혀서 그런 것이고, 남이 약속시간에 늦으면 무책임하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상대방이 늦는 것을 차가 막혔기 때문으로 양해해줄 수 있고, 내가 늦었다면 혹시라도 미리 서두르지 않은 잘못이 나한테 있지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세상의 많은 갈등과 오해 및 충돌은 자기라는 틀에 갇혀서 바깥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생겨난다. 그 틀에서 나와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면 분명 세상은 달라 보인다. 알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 즐길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사람 사이의 일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티격태격하던 사이라도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면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해하고 나면 타협책을 찾거나 윈윈하는 방법을 만들어내기가 쉽다. 적어도 상대방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영원한 원수로 만들지는 않는다.
 
이솝 우화의 ‘여우와 두루미’가 바로 역지사지에 대한 이야기다. 원래는 꾀 많은 여우가 여행에서 돌아온 두루미에게 음식을 대접하겠다며 넓은 접시에 음식을 담아와서 골탕을 먹였고, 두루미가 나중에 목이 긴 병에 음식을 담아 여우에게 대접함으로써 통쾌하게 복수를 했다. 그런데 여우가 꾀가 많은 것이 아니라 남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고 뒤집어 생각할 줄 모르는 미련한 존재였다고 생각해보자. 외출에서 돌아온 두루미를 제대로 대접하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두루미의 입장을 모른 채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넓은 접시에 음식을 담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말 나쁜 쪽은 두루미다. 우리는 대개 고의성을 기준으로 잘잘못을 따지는 경향이 있다. 여우는 모르고 실수를 한 것이지만, 두루미는 알면서도 고의로 여우를 골탕먹인 것으로 생각하고 더 나쁘게 여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여우와 두루미가 행한 행동의 결과는 어쨌든 같았다. 잘 모르고서 남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나 고의적으로 남을 골탕먹이는 것은 결과적으로 다를 바 없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역지사지를 실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빨라진다.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으로 변해가고, 역지사지의 여유를 부리다가는 나에게 불이익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지금 상대방이 처한 상황이 조만간 내가 맞닥뜨릴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엘리베이터 안에서 뛰어오는 이웃을 보고도 닫힘 버튼을 눌렀다면 조만간 닫히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길을 건너는 할머니에게 경적을 누른 운전자는 조만간 건널목을 건너다 시끄러운 경적소리에 인상을 찌푸리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한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상대방이 나라면 어떤 느낌을 받게 될지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한층 더 나은 사회가 될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 선다는 것이 단지 상대방에게 양보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바로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자기가 하는 말이 상대방의 귀에 어떻게 들릴지를 항상 염두에 두는 사람이다. 훌륭한 판매원이나 협상가는 상대방의 문제를 잘 듣고 해결해줄 줄 아는 사람이다.
 
1993년 인텔이 펜티엄프로세서를 출시한 후 부동소수점의 계산에서 극히 드문 오류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때 인텔은 일반적인 사용자가 그런 오류에 접할 가능성이 2만7000년에 한 번 정도이기 때문에 굳이 바로잡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했다. 그러나 1년 반 정도가 지난 뒤 어느 수학교수가 그 오류를 발견했고, 이후 수백 명의 사용자가 그 문제를 알게 되면서 인터넷 뉴스그룹에서 논쟁이 일어났다.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인텔의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사용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지만 바로 그 문제가 내게 닥칠지도 모르며, 그 오류로 비행기가 추락하거나 공장이 멈춰설지도 모를 일이었다. 인터넷은 시끌벅적했고, 인텔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결국 인텔은 오류를 바로잡고 그 동안 팔려나간 모든 펜티엄프로세서를 교환해주기로 했다. 문제의 크기를 객관적(객관적이라는 이름 하에 결국은 자기 입장에서)으로 보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불안과 불만을 처음부터 나의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출시 초기에 회수를 해서 큰 손실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늦게라도 회수조치를 단행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인텔은 시장에 존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상대방의 처지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는 기업에도 손실을 줄이고 큰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고객의 입장을 잘 헤아리는 기업은 고객의 사랑을 받고 더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경영자는 종업원의 입장에서, 또 종업원은 경영자의 입장에서, 공무원은 시민의 입장에서, 시민은 수고하는 공무원의 입장에서 한 번씩 더 생각하고 돌아보게 되면 결국 각자의 위치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삐걱거리는 일 없이 아주 잘 돌아갈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1986년 SK그룹에 입사해 회계, 국제금융, 투자가 관리, 구조조정, 해외사업, 전략수립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현재는 SK에너지 상무로 근무중이다. 경영학, 경제학, 심리학, 생물학, 인류학, 역사 등 여러 분야의 책을 가리지 않고 읽는 多讀家이며 변화 추진을 위한 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음악애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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