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치열한 토론과 역할극...그 뒤에 남는 진한 감동

안찬호 | 69호 (2010년 11월 Issue 2)
하버드에서 필자가 흥미롭게 들었던 수업은 토머스 디롱(Thomas J. DeLong) 교수의 ‘리더십과 조직 행동’이다. 모건스탠리에서 최고 인사 담당 책임자를 맡았던 디롱 교수는 인간과 사회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자극하고, 활발한 토론을 유도해낸다. 최근 그는 캐런 리어리라는 메릴린치 시카고 지점장의 사례를 수업에 사용했다. 필자는 이 수업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런 점을 배우기 위해 사람들이 하버드에 오는구나’를 느꼈을 정도다.
 
케이스 소개
캐런 리어리(Karen Reary, 37)는 메릴린치 증권 시카고 지점장이다. 그녀는 시카고 근교에 거주하는 대만 화교들이 아직 증권사를 많이 이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알고 시장 개척에 나섰다. 그녀는 대만계 미국인인 테드 청(Ted Chung, 41)을 고용했다. 청은 일을 시작한 지 몇 달 만에 600만 달러를 보유한 VIP 고객 한 명을 데려왔다.
 
청이 지점에서 가장 중요한 고객을 데려 왔지만 리어리 지점장은 맘이 편하지 않다. 우선 청은 지점의 문화에 잘 융화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리셉션 데스크에서 일하는 젊은 여비서가 청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나한테 그 따위 일을 시키다니”라고 화를 내면서 단칼에 요청을 거절했다.
 
특히 청은 고객에게 자주 콜드 콜(Cold Call, 영업 직원들이 사전에 고객의 동의를 얻지 않고 불시에 고객에게 전화하는 행동. 사전 예고 없이 고객을 방문했기에 고객들의 반응이 싸늘할 때가 많다는 점에서 유래한 단어)을 하라는 자신의 지시를 무시했다. “대만계 고객은 전화보다 점심을 같이 하는 걸 더 좋아한다”고 주장하며 고객과의 점심에만 몇 시간을 쓰는 일도 예사다. 메릴린치가 권유하는 주식을 거래하지 않고 고객이 원했다는 핑계를 대며 엉뚱한 주식을 사고 팔 때도 많다. 리어리는 청의 고객에게 정말 그런 거래를 원했는지 물어보고 싶다. 하지만 그녀는 중국어를 못하고, 대만계 고객은 영어를 잘 못하니 물어볼 수도 없어 답답하다.
 
어느 날 청은 리어리 지점장에게 자신만의 사무실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지점에서 20년 이상 근무했던 직원들도 아직 사무실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리어리는 형평성 때문에 사무실을 내주긴 어렵다고 말했다. 청은 “사무실을 주면 더 많은 고객들을 데려오겠다”며 재차 요청한다. 당신이 리어리라면 청에게 사무실을 주겠는가?
 
케이스 토론과 상황극
크리스, 자네가 리어리라면 청에게 사무실을 주겠나?” 디롱 교수의 목소리가 교실을 울린다. 오늘은 크리스가 교수로부터 콜드 콜을 받았다. 교수가 90명의 수강생 중 무작위로 한 명을 뽑아 그에게 긴 발표를 하게 하는 방식은 이제 익숙할 때가 됐는데도 언제나 떨린다. 그 학생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나머지 학생들도 자신이 다음 타깃이 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다행히 크리스는 케이스에 관한 예습을 잘해 왔다.
 
저라면 절대 사무실을 주지 않겠습니다. 첫째, 청이 다른 직원에 비해 더 나은 성과를 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직 고객을 한 명 밖에 데려 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고객은 VIP지만 한 명이라는 숫자만으로는 그가 정말 영업력이 뛰어난지, 그냥 운이 좋았는지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둘째, 그는 조직 문화에 잘 융화되지 못한 직원입니다. 그에게 사무실을 준다면 시카고 지점 전체의 분위기나 다른 직원들의 업무 의욕에 악영향을 미칠 겁니다. 셋째, 지점장의 권한에 도전하는 부하 직원에게 순순히 사무실을 준다면 이는 리어리의 리더십에도 큰 타격을 줄 겁니다. 리어리가 다른 직원들을 통솔하는 데도 문제를 낳을 소지가 큽니다.”
 
디롱 교수는 열심히 칠판에 크리스가 말한 내용을 적고 있었다. “더 얘기해 보죠. 맥스, 크리스의 의견에 동의하나요?” 여성 운동가 출신으로 MBA와 정치학 석사를 함께 공부하고 있는 맥스가 손을 든다. “동의합니다. 과거 청이 보여준 행동은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일 때가 많았습니다. 상사의 권위에 도전한 일도 많았고, 여비서의 간단한 요청을 무시하는 등 여성에게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상사가 여성이라 상사의 권위를 더 무시하는 듯 합니다.” 그 후에도 학생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청이 정말 고객의 요청대로 거래를 하고 있는지, 왜 청은 회사에서 다른 동료들과 어울리지 않는지 등등 청이 사무실을 받지 않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언급만 쏟아졌다.
 
디롱 교수가 나섰다. “여러분들이 리어리였다면 청은 사무실을 얻지 못했겠네요. 사무실을 주어야 한다는 의견은 없나요?” 교실이 조용해졌다. 지난 몇 분간 청에게 불리한 내용만 오가다 보니 사무실을 주는 일도 전략적 선택이란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필자는 ‘이 기회에 발표 한 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교수가 필자의 영어 이름을 부른다. “좋아. 션, 왜 청에게 사무실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모두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청이 과연 자신을 위해 사무실을 달라고 했느냐는 점입니다. 청은 리어리에게 사무실을 주시면 더 많은 고객을 모시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아시아에서 일한 경험으로 말씀드리자면, 한 사람의 사무실은 자기 만족을 위한 것도 있지만 타인 특히 고객에게 본인의 회사 내 입지나 위상을 알리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VIP 고객을 끌어 오기 위해 사무실이 필요하다는 청의 요청은 나름 타당성을 지닙니다.” 교실이 술렁였다.
 
중국 GE에서 일했었던 헬렌도 거들었다. “동의합니다. 청의 행동에 의문을 가졌던 다른 분들께 중국인으로서 중국 문화에 관한 설명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유교 사상이 강한 아시아에서 나이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청은 41살로 지점장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젊은 여비서가 일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건 그의 관점에서 보면 오만불손한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사생활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섞으려는 건 조직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그런 행동은 무능력한 직원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디롱 교수의 표정이 달라졌다. ‘이제야 내가 기대했던 토론이 이뤄지는구나’라는 표정이었다. “좋아요. 그럼 상황을 달리 해보죠. 마이클. 자네는 리어리가 되는 거야. 제레미는 청의 역할을 하게. 여러분. 두 사람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나 봅시다.”
 
마이클과 제레미는 졸지에 상황극의 주인공이 됐다. 리어리와 청이 된 두 사람은 각자 왜 사무실을 줄 수 없는지, 왜 사무실을 얻어야 하는지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88명의 학생과 교수는 두 사람의 상황극을 샅샅이 지켜봤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내 손에서 땀이 다 났다. 발표를 했기에 망정이지, 발표를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저기서 연극의 주인공이 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다.
 
결론
상황극이 끝난 후 디롱 교수는 실제 어떤 결론이 났는지를 설명했다. 리어리는 청에게 사무실을 주지 않았다. 청은 자신이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는 회사에서는 일할 수 없다며 회사를 그만뒀다. 리어리는 다른 대만계 직원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적당한 인물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디롱 교수가 말한다. “여러분, 이 케이스의 결론보다 중요한 건 학교를 졸업한 후, 여러분도 청이나 리어리처럼 문화적, 인종적 배경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과 일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고 소통할지 지금부터 미리 익혀둬야 합니다. 아시아에서 산 경험이 없는 많은 분들은 청이 오만하고 여성을 차별하는 사람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게 여러분의 선입견이며, 여러분은 청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리더가 되려면 그 선입견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선입견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소통하십시오. 수많은 배경과 수많은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있는 이곳 하버드에서 우정을 쌓고, 졸업 후에도 그들과 진정으로 교류하십시오. 우리는 완벽한 인간이 아닙니다. 기억하세요. 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교수의 말이 끝나자 우렁찬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필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금융을 전공했다. 베인 앤 컴퍼니의 싱가포르 및 샌프란시스코 지점에서 근무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HBS)은 1908년 설립된 세계 최고의 경영대학원이다. 경영학 석사(MBA) 과정 외에 경영학 박사, 고위 경영자 과정(Executive Program) 등 3개 과정을 운영한다. MBA 과정에는 매년 900명이 넘는 신입생들이 들어온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이해하려면 특유의 ‘케이스 메소드(Case Method)’ 교육을 이해해야 한다. 이론이 아니라 실제 기업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배워나가는 시스템이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은 1920년대 케이스 스터디를 핵심 교육 과정으로 삼은 이후 80년이 넘도록 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편집자주 DBR이 세계 톱 경영대학원의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MBA 통신’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명문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젊고 유능한 DBR 통신원들은 세계적 석학이나 유명 기업인들의 명강연, 현지 산업계와 학교 소식을 전합니다.
  • 안찬호 | -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Class of 2012
    - 베인 앤드 컴퍼니의 싱가포르 및 샌프란시스코 지점 근무

    이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