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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ve Facilitation

처칠은 포탄 앞에서도 대화를 했다

이영숙 | 68호 (2010년 11월 Issue 1)

내년도 사업 계획 수립의 시즌이 다가왔다. 전략을 짜기 전 우선 다음의 질문거리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을 기반으로 다른 사람들의 신념이 일치하는지 아닌지 판단하려 한다. 인지과학에서는 이를 허위적 합의(일치)라고 한다.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는 없을까?”
전략적 사고는 ‘보이는 것’의 배후에 있는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해서 그 의미와 메커니즘을 읽는 통찰력을 필요로 한다(영국의 철학자 로이 바스카). 그렇다면 기업이나 사업단위의 전략이 핵심 몇 명만의 전략적 사고만으로 가능할까? 지금처럼 불확실하고 불연속적인 상황에서?”
처칠은 내가 바란 것은 적절한 토론 뒤에 사람들이 나의 의지에 따르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전쟁에서 전략이 필요한 순간에도 그는 대화를 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조직의 메타인지
이 질문들을 우리의 주관에 기초한 생각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시도와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특히 전쟁현장을 방문하기로 유명했던 처칠이 어쩌면 그런 자기 인식을 객관화하려는 능력인 ‘메타인지’의 필요성 때문에 포탄이 날아다니는 순간에도 대화를 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바둑 천재 이창훈 9단은 전략은 ‘상대와의 상호작용’이라고 했다. 승부를 가르는 절대적 순간에서조차 상대와의 무언의 상호 작용이 중요한데, 다수의 이해 관계자와 상호 작용을 하는 기업에서의 상호 작용은 두말할 나위없이 중요하다. 이런 기업의 사업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어 우리는 얼마나 상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고 또 수정하는 걸까?
 
불행히도 대개의 경우 전략계획의 수립 현장을 보면 핵심 몇 명이 모여서, 또는 최고의 컨설턴트를 통해 이 중요한 작업이 이뤄지곤 한다. 막상 전략을 실행으로 옮겨야 할 조직 내부의 구성원들은 전략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다. 따라서 공들여 잘 만들어진 전략도 실행단계에서 실패할 수 있다.
 
전략계획 수립과 실행 사이에 존재하는 이런 간극을 좁히면서도 다양한 관점에서 ‘상대와의 상호작용’인 전략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전략수립 과정에 이해 당사자들을 참여시켜 다양한 관점에서 깊은 대화를 끌어내서 전략과제와 전략과제의 달성방안을 도출해내는 게 그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는 조직이나 핵심리더가 가지고 있는 주관성을 극복하는 조직의 메타인지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이해 당사자들의 관점을 얼마나 잘 끌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여기까지는 잘 이해하면서도 실제 대화가 이뤄지는 현장에서는 비즈니스 리더나 소수의 의견 주도로 끝나는 사례가 많다. 그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퍼실리테이션이다. 갈등관리를 위한 퍼실리테이션과 조직변화에 불을 지피는 퍼실리테이터형 리더에 이어 이번에는 전략계획 수립을 위한 퍼실리테이션을 소개한다.
 
전략을 실행으로 이어주는 전략계획수립 퍼실리테이션
퍼실리테이터는 내용의 전문가라기보다는 프로세스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해당 내용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역할은 프로세스의 운용에 있다. 전략계획 수립을 위해 전체 프로세스를 디자인하고 주어진 시간 내에 다양한 관점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대화할 수 있게 ‘그룹의 역동성’을 관리해나가야 한다. 이는 ‘전략9단’인 사람이라고 해서 다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전략9단은 쉽게 전략에 몰입하기 때문에 프로세스적인 관점에서 보면 가장 많은 오류를 범하기 쉽다. 그래서 전략계획 수립 과정을 제대로 퍼실리테이션하려면 내용과 프로세스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아직까지는 국내에서 전략계획 수립을 위한 퍼실리테이션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와 사례가 거의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전략계획수립 프로세스
전략계획 수립을 위한 프로세스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접근방법이 비슷하다고 해서 도출되는 결과까지 비슷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이 중요하다. 프로세스를 먼저 살펴보자.

<그림1>은 필자가 주로 사용하는 전략 개발 프로세스다. 그러나 워크숍을 준비하기 전 스폰서와 충분히 논의하면서 이 프로세스를 해당 기업이나 조직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 그래서 스폰서와의 대화가 중요하다. 퍼실리테이터는 해당 기업뿐 아니라 해당 산업에 대한 일정 수준의 이해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위의 프로세스가 일반적인 경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첫째의 ‘History 분석’과 마지막 단계의 ‘Learning’이다. 조직은 멈춰있는 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지속해서 환경에 반응하는 동적인 존재다. 따라서 구성원들 또한 바뀌게 마련이다. 외부로부터 영입하기도 하고 때로는 내부에서 적임자를 찾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모두 새로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존과는 다른 시각으로 사업과 조직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통찰력은 조직에 메타인지의 기회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기존 참가자와 새로 합류한 사람들이 지금까지 진행돼 온 핵심사항들에 대해 비슷한 이해수준을 갖도록, 각자 이해하고 있는 것들을 충분히 끌어내서 공통의 이해 단계로 발전하는 게 첫째 단계의 목적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이후의 대화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집중대화를 위한 핵심질문 개발로 기본 Context 구축
<전략의 본질>에 따르면 전략은 사회적으로 창조된다. 전략은 사람과 사람의 상호작용 속에서 생성되고 또 정당화되며 결국 차질없는 실행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심리학은 인간이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지극히 감성적 존재임을 밝혀내고 있다. 전략수립 과정도 과학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참가자들이 만들어낼 주관적 오류의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이 오류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은 상호작용을 최대한 다양하게 디자인해서 넣는 것이다. 참석한 사람들이 다양하고 깊은 수준에서 대화하는 것을 허용해 주관의 껍질을 최대한 벗겨내고 객관성을 띤 전략 대안을 스스로 찾아내게 하도록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퍼실리테이터는 이런 대화를 디자인하고 진행해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전략 전문가와는 다른 역량이 요구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략적으로 생각하게 할 핵심질문을 개발하는 것이다. <실행에 집중하라>에서 래리 보시디는 다음 9가지 질문을 바람직한 전략계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의문이라고 했다.
 
1.외부환경은 어떠한가?
2.기존의 고객과 시장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3.수익성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이며, 성장의 장애물은 무엇인가?
4.경쟁기업이 있는가?
5.계획을 실행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인가?
6.전략을 실행할 역량이 있는가?
7.단기계획과 장기계획이 조화를 이루는가?
8.사업팀이 직면한 핵심이슈는 무엇인가?
9.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을 앞에서 보여준 전략계획수립 단계에 삽입해서 참가자들의 생각을 대화를 통해 끌어내는 것이 퍼실리테이터의 핵심과제다. 질문은 참가자들의 생각을 자극하고, 이로 인해 그들의 뇌는 쉬고 있던 개인적 경험과 지식을 활성화해 산출물을 만들어낸다. 이 핵심질문들이야말로 전략계획수립 프로세스의 근간이 되는 맥락(context)를 만들어준다.

집중적인 대화를 위한 퍼실리테이션 단계
집중적인 대화를 촉진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핵심질문을 갖고 이성적인 단계에서 출발해 경험적 단계로 이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에서 출발해 소그룹, 전체그룹의 순서로 대화를 확장시켜 나가는 방법이다.(그림2 및 그림3 참조)

이성적 단계에서 경험적 단계로
1.핵심질문을 갖고 각 개인이 아이디어를 낼 수 있게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다.
2.사심이 들어갈 수도 있지만 그대로 지켜본다.
3.다양한 아이디어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열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4.각 개인들이 쏟아낸 아이디어들 간의 상호관계를 파악할 수 있도록 진행한다. 이때 하나하나의 아이디어가 충분히 경청되도록 하되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격렬한 논의가 오고 갈수 있게 해야 한다.
5.모든 아이디어가 충분히 공유되고 나면 그룹의 이해수준이 깊어질 뿐만 아니라 넓어져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정도까지 된다.
 
개인에서 전체로
퍼실리테이터는 참석자가 핵심 질문에 대해 개인적으로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줘야 한다. 특히 다른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기 전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집중해서 그 안에서 핵심 질문을 제대로 직면할 수 있게 필요한 모든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사고과정이 탄력을 받을 수 있게 사례나 고전이야기, 또는 경영과는 다른 예술세계와의 연결을 시도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서로 관련성이 있어야 하고 사전에 철저하게 디자인돼야 한다. 개인적인 활동이 끝나면 우선 2,3명이 핵심질문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생각과 경험이 충분히 마찰을 일으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사전에 설명해줘야 한다. 이 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비슷한 생각과 아주 다른 생각들이 어느 정도 일치 단계에 오른다. 그 후 퍼실리테이터는 동일한 절차로 소그룹, 전체그룹으로 대화를 확장시켜 간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핵심질문에 대한 참가자들의 생각에 공통의 이해(shared understanding)가 일어난다. 이 그룹의 역동성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아름다운지는 실제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필자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그룹이 모여서 이런 논의를 하는 것 자체가 무가치하다고 느낀 사람일수록 그룹의 역동성을 통해 얻어지는 일치와 합의의 가치에 감동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쯤 되면 자신의 아이디어에 그다지 연연해하지 않는다. 그룹이 자신의 아이디어에 훨씬 많은 가치를 더해준 것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추출되는 전략적 대안은 당연히 참가자들의 이해를 얻게 되고, 현장으로 돌아가면 그들은 개발된 전략을 멋지게 전달하는 역할을 자청한다. 그룹과 함께 경험했던 역동성이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그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다. 전략이 강력한 실행으로 연결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전략이 사회적으로 창조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과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퍼실리테이터는 이렇게 진행되는 대화 과정을 때로는 충분한 시간을 주면서(divergence), 또 때로는 팽팽하게 당기면서(convergence) 이끌어간다.
 
전략계획이 데이터를 중심으로 지루한 대화를 이어가거나 윗사람의 의중을 알아서 동의해주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게 하려면 참가자에 대한 사전정보를 충분히 파악해둬야 한다. 그들의 경험과 지식이 수준 높은 대화를 창조해낼 수 있도록 최상의 조합(best mix)을 만들어야 한다. 참가자들 가운데 어느 부분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 있는 사람이 없을 경우에는 외부인사를 초대하기도 한다. 사실 퍼실리테이션에 소요되는 시간보다 그것을 위한 준비 시간이 적어도 3배는 더 소요돼야 제반 사항을 두루 고려한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1, 2장에 함축된 전략계획
전략 경영학자 램 차란은 “사업단위 전략은 50쪽 이내여야 하고, 한 페이지로 요약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실행을 염두에 둔 말이다. 수립된 전략계획은 조직 내에 커뮤니케이션해야 하고 직원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굳이 복잡하고 많은 내용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수립과정에서 핵심 이해 당사자는 이미 이해를 한 상태고, 그들이 자신이 속한 부서나 팀 내에서 전략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과정을 아래의 <그림4>처럼 한 장으로 요약할 수 있으면 이들이 그 한 장을 커뮤니케이션 툴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집단지성(Group Intelligence)의 집대성인 전략계획
그동안 비즈니스 리더와 소수의 핵심인재에 의해 독점돼 왔던 전략계획 수립과정을 바꿔야 할 때가 많다. 몇 사람의 지혜만으로 풀기에는 경영현장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더구나 높은 위치에 올라온 사람일수록, 데스크에 앉아 전략작업을 하는 사람일수록 안테나가 무뎌져서 현장과 동떨어진 아이디어를 내기 쉽다. 리스크를 줄이고 불확실성 속에서도 가능한 한 명확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실현 가능한 전략을 수립하고 싶다면 과감히 관련 이해 당사자들을 수립과정에 참여시켜야 한다. 이들의 의견을 듣고 거기서 얻은 통찰력을 전략에 반영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성공을 만들어가는 기업일수록 열린 문화를 지향한다. 자신들이 채용한 인재를 믿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끌어내는 데 적극적이다. 구글은 제품개발 아이디어들을 직원들이 내고 그것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와 결정까지 직원들에게 맡긴다. 직원들이 이런 작업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문화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구글은 걸어가다 만난 사람과 계단에 앉아서도 아이디어를 논의할 수 있도록 공간적인 배려까지 해준다.
 
최고의 인재라고 생각해서 채용한 인재들을 최고로 활용하는 기업은 드물다. 최고를 뽑아 놓고 이류와 삼류로 만드는 기업은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이들이 각자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에 불을 붙여 조직의 공통된 토대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조직의 미래전략을 함께 수립하며, 이들이 현장에서 치열하게 실행의 책임까지 자발적으로 지게 할 수 있는 방법, 이는 바로 퍼실리테이션을 통해 가능하다. 퍼실리테이션은 일방적 지시가 아닌 참여에 의한 자극을 통해 조직이 주관성에 빠지는 것을 막고 창의적인 전략대안을 개발할 수 있게 해준다. 그룹을 토론과 대화의 늪에 빠뜨려라. 그러면 이들은 늪 속에서 진주를 낚아 올릴 것이다.
 
필자는 한국베링거인겔하임, 한국HP, 한국MSD에서 인재계발과 조직개발 등을 맡으면서 다양한 변화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국제경영학으로 헬싱키대 MBA를 취득한 뒤 네덜란드 트웬테대에서 조직개발과 리더십이란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현재 Aligned & Associates 대표로 조직개발 컨설팅과 임원 코칭을 하면서 조직개발 방법으로서의 퍼실리테이션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퍼실리테이터협회 부회장 및 국제인증퍼실리테이터도 겸하고 있다.
 
편집자주 많은 기업들이 조직 내 변화와 혁신을 위해 조직시스템을 정비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개인과 집단의 상호작용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조직 창조성(organization creativity)은 개인의 다양한 통찰력과 경험, 에너지를 결부시킨 집단적 산출물이기 때문입니다. 조직 내에서 개인과 그룹의 상호작용을 촉진할 수 있는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 기법을 연재합니다.
  • 이영숙 | - Aligned & Associates 대표
    - 한국베링거인겔하임
    - 한국HP -한국MSD -한국퍼실리테이터협회 부회장
    - 국제인증퍼실리테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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