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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서울대CFO전략과정 CASE STUDY

천천히 지분확보, 실적회복은 빨리… 조용한 혁명

하정민 | 68호 (2010년 11월 Issue 1)
 
 
 
 
한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날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한국 기업이 세계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하다. 세계 일류 기업을 여럿 보유하고 있지만 M&A 분야에서 세계적 흐름을 주도하는 기업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반면 중국 기업들은 지난 몇 년 사이 공격적으로 외국 기업 사냥에 나서고 있다. 금융위기 전에는 유동성 과다로 세계 M&A 시장의 과열이 심했다. 이 기간에 M&A를 시도했던 기업들은 과도한 웃돈을 지불하는 바람에 ‘승자의 저주’를 경험했다. 하지만 금융위기로 거품이 꺼지면서 M&A 시장이 실수요자 중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중국 기업들은 이 점을 포착, 세계 각국의 대표 기업들을 사들이고 있다. 2008년 이후 중국이 사들인 유명 기업만 해도 미국의 볼보와 델파이, 일본의 닛코전기와 혼마골프, 독일 모터 보딘, 스위스 석유회사 아닥스, 호주 광산회사 펠릭스 리소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스탠더드 은행 등이다.
 
한국 기업들은 이런 움직임에서 뒤떨어져 있다. 한국 기업들의 해외 투자는 여전히 M&A보다 현지에서 공장을 짓고 회사를 직접 설립하는 ‘그린필드(Greenfiled)’ 방식이 주류를 이룬다. 설사 현지 기업을 인수했다 하더라도 한국보다 발전 단계가 낮은 개발도상국의 기업을 사들이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리딩투자증권은 다른 한국 기업과 차별화된 M&A 전략을 수립했다. 국내 증권회사 중에서도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하는 리딩투자증권은 일본 증권회사, 영국 브로커리지(주식 위탁 매매) 관련 업체를 잇따라 사들이며 선진국 기업 인수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리딩투자증권은 세계 경제가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2008년 11월 일본의 소형 증권회사였던 지크증권(현 일본 리딩증권)을 인수했다. 이는 국내 증권회사가 일본 증권회사를 인수한 최초의 사례로 많은 화제를 낳았다. 리딩은 이에 그치지 않고 올해 초에는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브로커리지 의사결정 솔루션을 제공하는 영국의 아이앤디엑스(IND-X) 홀딩스도 인수했다. 영국과 홍콩에 자회사를 둔 INDX 홀딩스의 고객은 주로 유럽의 기관투자가들이다.
 
리딩투자증권은 2000년 출범해 기업 역사가 10년 밖에 안 되고, 자본금도 1500억 원에 불과하다. 자본금 규모로만 보면 61개 한국 증권사 가운데 45위에 해당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었던 금융위기의 와중에 소형 증권사가 해외 M&A에, 그것도 선진국 기업 인수에 나선다는 점에 대한 안팎의 우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리딩투자증권은 치밀한 준비와 과감한 결단으로 선진 금융시장에 효과적으로 진출했다. 적자에 시달리던 피인수 회사도 예상보다 빨리 흑자로 변모시켰다.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DBR이 서울대 CFO 전략과정과 공동으로 리딩투자증권의 지크증권 인수 사례를 통해 그 성공 요인을 심층 분석했다.
 
틈새시장 특화 증권사로 ‘작지만 알찬 성장’
리딩투자증권은 지난 2000년 LG증권 런던 법인장 출신인 박대혁 리딩투자증권 부회장이 설립했다. 박 부회장은 국제 금융의 중심지인 영국 런던에서 오랫동안 선진 투자 금융을 익히고 돌아와 회사를 세웠다. 설립 초기부터 리딩투자증권은 여러 모로 달랐다. 리딩은 규모의 경쟁으로는 오랫동안 시장을 선점한 대형 증권사와 경쟁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많은 비용 투자가 불가피한 지점망 위주의 영업 대신 강남 본사에서 모든 업무를 총괄토록 하는 운영 체계부터 만들었다.
 
특히 리딩투자증권은 해외 주식투자를 회사의 핵심 사업으로 내세웠다. 내수시장은 이미 경쟁이 치열한데다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 이 같은 전략을 취한 것이다. 리딩투자증권은 2002년 국내 최초로 미국 주식을 안방에서 실시간 매매할 수 있는 홈 트레이딩 시스템(HTS)을 구축한 후 미국 주식 거래에 나섰다. 이후 2004년 중국, 2005년 일본, 2007년 인도네시아 및 베트남 등지로 주식 거래 가능 지역을 확대했다. 리딩투자증권이 제공하는 HTS서비스는 한 화면에서 국내외 주식거래 서비스뿐만 아니라 해외주식에 대한 다양한 분석 툴을 제공해 왔다. 대형 증권회사도 이를 벤치마킹해 유사한 시스템을 내놓았을 정도다. 현재 리딩투자증권의 해외 주식투자 부문 시장 점유율은 40%로 독보적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흥제 리딩투자증권 최고 운영책임자(COO·Chief Operating Officer)는 “주식 펀드 붐이 일어난 후 지금은 해외 주식에 직간접 투자를 하는 일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2000년대 초반 개인이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사례는 드물었다”며 “위험을 분산하고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기회를 발굴하려면 해외 투자가 불가피한데도 이런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는 증권사가 드물었다. 창립 초기 개인이 설립한 증권회사가 얼마나 오래 가겠냐는 우려의 시선도 많았지만 우리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리딩투자증권의 틈새시장 발굴 능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이어졌다. 리딩은 최근 몇 년간 중소기업 전문 자금 조달이라는 시장을 개척했다.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이 경영 안정성 강화에 초점을 두면서 가뜩이나 돈을 빌리기 힘든 중소기업들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설사 가능성이 보이는 중소기업을 발견했다 해도, 상환 불능 위험을 감수하면서 중소기업에 대출해주려는 은행들은 많지 않았다. 리딩투자증권은 제1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알짜 중소기업을 발굴해 이들에게 자금을 지원해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바로 메자닌(mezzanine) 금융이다.
 
메자닌 금융은 주식과 채권의 중간 형태인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이용해 수익을 올리는 금융 기법을 말한다. 리딩투자증권은 될성부른 중소기업을 발굴해 이들에게 CB 및 BW 발행 등을 통한 자금 조달 방법을 컨설팅했다. 틈새시장을 발굴한 일은 좋았지만 이를 통해 돈을 벌기는 쉽지 않았다. 최고경영자(CEO)를 겸직하고 있는 대부분의 중소기업 오너들은 주식 발행을 통해 자신의 지분이 낮아져 경영권이 침해받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또 이름없는 중소기업에 적극 투자하려는 투자자들 또한 많지 않았다. 리딩투자증권은 보유 지분 희석을 우려하는 중소기업 오너에게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한다’는 점을 각인시켰다. 현 단계에서 자본 확충에 나서지 않으면 기술 개발이나 생산성 향상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회사의 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오너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 투자를 꺼리는 투자가에게는 대기업에 비해 신용 등급이 낮지만 기대 수익이 훨씬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리딩투자증권은 2010년 한 해 동안 동부제철 공모 BW 500억 원, KIC 공모 CB 250억 원, 모린스 사모 BW 200억 원 등 총 2000억 원에 달하는 발행 실적을 올렸다. 이는 대우, 삼성, 우리투자증권 등 메이저 증권회사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는 수치다.
단계별 주식 확보와 100% 고용 승계로 잡음없이 3개월 만에 인수 완료
설립 때부터 남다른 행보를 보여온 리딩투자증권은 세계 경제가 금융위기로 휘청이던 2008년 중반부터 해외 증권사 인수를 추진했다. 피인수 대상인 지크증권은 도쿄 인근의 이바라키 현을 기반으로 위탁매매 위주의 증권업을 60여 년간 영위해 온 소형 증권사였다. 오랫동안 지역민을 상대로 한 대면 영업을 주로 해와 충성도 높은 고객 기반을 확보했지만 수익 구조 자체가 너무 단순해 성장의 한계에 직면했다.
 
결국 2006년부터 적자에 빠진 지크증권은 2008년 3월 말 기준 4억2500만 엔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적자 폭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금융위기까지 발생하자 지크증권의 대주주인 일본 모 제지업체는 자발적으로 기업 매각을 추진했다. 오랜 해외 주식투자 경험으로 일본 상황에 정통했던 리딩투자증권은 이 소식을 듣고 인수 여부를 검토했다. 비록 당시 실적은 좋지 않았지만 충분한 투자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
 
리딩투자증권은 2008년 8월 대주주로부터 매도 의사를 확인하고 곧바로 지크증권 인수 작업에 돌입했다. 그리고 불과 3개월 후인 2008년 11월 모든 계약을 완료했다. 직원 120여 명의 작은 회사라고 해도 자국 기업도 아닌 해외 기업의 인수를 3개월 만에 마칠 수 있었던 비결은 철저한 준비, 단계적 주식 확보, 100% 고용 승계를 통한 조직원들의 불안 완화 덕분이다.
 
리딩투자증권은 인수 추진 과정에서 가장 걸림돌이 될 문제를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 △ 소액주주의 지분 인수 요구 대처 △인수 후 부작용 최소화로 보고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미리 마련했다. 우선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위해서는 인수 자금을 단계별로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 재무 부담을 최소화했다.(그림1)
 
 
리딩투자증권은 2008년 11월 구주 인수 및 3자 배정 증자로 지크증권 주식 59%를 인수했다. 인수 가격은 주당 950엔이었다. 당시 환율인 1559원을 기준으로 약 124억 원(7억 5000만 엔)의 돈이 들었다. 이후 경영이 안정되자 리딩은 1년 후인 2009년 12월 주주배정 증자를 단행해 지분율을 68%로 늘렸다. 환율이 떨어진 덕도 있지만 취득 단가 자체가 주당 950엔에서 400엔으로 대폭 하락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불과 65억 원(5억 엔)만 지출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리딩투자증권은 평균 취득 단가를 대폭 낮출 수 있었다. 1단계 주당 인수가격이 1만 5000원 대였지만 2단계에서는 4900원에 불과했기에 전체 평균 인수 단가를 8000원 대로 낮출 수 있었다.(표1)
 
 
조직원의 동요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용도 100% 승계했다. 리딩은 120여 명에 달하는 지크증권의 직원들을 모두 떠안았다. 이는 이름도 잘 모르는 타국의 조그만 회사에 팔리는 일을 두려워하던 직원들의 불안감을 누그러뜨리는 데 큰 효과를 발휘했다. 동시에 리딩투자증권은 이사회에 리딩측 인물들을 대거 투입해 지배구조를 신속히 재편했다. 즉, 조직의 동요를 막으면서 이사회를 장악해 조직 운영 면에서도 경영권을 완전히 확보했다. 빠른 시일 안에 경영권을 확보한 일은 소액주주들의 불안과 동요를 완화시키는 데도 상당한 영향을 발휘했다.
 
인수 후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제도도 마련했다. 지속적인 모니터링은 물론 현금 관리에 집중해 월간 단위로 현금 보유액 증감 상황을 점검하는 시스템도 만들었다. 화상회의 등을 통해 한국-일본의 보고 및 관리체계 통합화를 시도했다. 이렇듯 8월 매도의사 확인에서 시작된 인수 작업은 LOI 체결, 실사, MOU 체결, 협상, 본계약 체결 및 클로징의 5단계를 거쳐 3개월 안에 신속히 마무리됐다.(표2)
 

 

 

 
주식 인수가격 평가 방식도 남달라
초고속으로 인수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원동력은 남다른 인수가격 평가 방식이다. M&A가 종종 기약없는 난항에 빠지는 이유는 인수가격에 대한 양자의 극심한 견해 차이 때문이다. 리딩투자증권은 이 점을 고려해 인수 가격 평가 시 초과이익 모형(RIM·Residual Income Model)을 사용했다.
 
RIM은 회계학 분야의 대가인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의 제럴드 펠섬 교수와 미국 뉴욕대(NYU)의 제임스 올슨 교수가 1990년대 중반 개발한 기업 가치 평가 도구다. 여러 회계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통해 과거 널리 쓰이던 배당 할인 모형(dividend discount model), 현금흐름 할인 모형(cash flow discount model), 잉여 현금흐름 할인 모형(free cash flow discount model)에 비해 훨씬 더 정확한 평가 수치를 제공하는 우수 지표로 밝혀졌지만 아직 한국 기업은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있다. 최근 기업들이 성과평가 및 보상 지표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EVA(Economic Value Added, 경제적 부가가치)의 개념도 RIM에 근거하고 있다.
 
RIM은 투자 원금인 자기 자본(BV·Book Value)과 자기자본비용(COE·Cost of Equity)을 초과하는 이익(RI·Residual Income)의 현재 가치를 합한 금액을 자기자본 가치(EV·Equity Value)로 산정한다. 즉 자기자본 가치(EV)=자기자본(BV)+미래 잔여이익의 현재가치 합(PV of RI)이라는 공식이 설립한다.
 
RIM이 기존 모형보다 우수한 점은 불필요한 가정을 줄여 가격의 객관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주 쓰이는 현금흐름할인(DCF) 방식은 영업 이익을 산정할 때 매출이나 판관비에 대한 가정을 포함시켜야 한다. 이 가정치를 할인할 때 적용하는 할인율 또한 기업이나 업종 상황에 따라 주관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도출된 숫자에 대한 객관성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가중평균 자본비용(WACC·Weighted Average Cost of Capital) 또한 이런 식의 추정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RIM에서는 이런 주관적 요소의 개입을 최소화할 수 있다. 때문에 왜 이런 인수가격을 산정했는지에 관해 매도자에게 명확히 설명할 수 있고, 쉽게 납득시킬 수도 있다. 물론 RIM이 완전 무결한 방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기존 방법보다는 객관성과 정확성 면에서 우수하므로 M&A 시 발생하는 가격 불일치를 해소하는 데는 도움을 줬다.
이흥제 전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에서도 아직 RIM을 적극 이용하는 기업이 많지 않지만 일본은 더했습니다. 지크증권 관계자들도 이 방식을 잘 몰랐어요. 그래서 가격 협상에 돌입하기 전부터 우리의 가격 산정 방식에 대해 상대방 측에 충분한 사전 설명을 해줬습니다. 기존 가치 산정 방식이 가지고 있는 불필요한 가정들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자 그 쪽에서도 왜 RIM을 택했는지도, RIM 방식을 통해 얻은 가격에 대해서도 신뢰하는 눈치였습니다. 일단 충분한 사전 준비를 통해 과거의 가치평가 방식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음을 적극 설명한 점, 우리가 인수가격을 제시할 때 최대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려 노력했다는 점을 보여준 게 가격을 둘러싼 지루한 공방을 막아줬습니다.”
 
 

 
 회계학적 측면에서 RIM이 지니는 또 다른 중요성은 기업의 본질 가치에 대한 관점을 배당금 지급이라는 ‘부의 분배’에서 투자를 통한 초과 이익 창출 역량이라는 ‘부의 창출’로 이동시켰다는 데 있다. 즉 주주 배당을 늘리는 일 만큼 적극적인 투자 등을 통해 주주나 금융시장의 요구 수익률을 초과 달성하는 역량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새로운 해석을 제공한다. 때문에 RIM은 앞으로 기업가치평가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도 많은 응용이 가능할 것이다. 최근 한국 기업의 성과평가 및 보상 지표로 널리 쓰이는 EVA(경제적 부가가치) 또한 바로 RIM의 개념을 성과평가 및 보상에 적용한 도구다.
 
 
사기 진작 위해 보상체계 변경 등 PMI에 주력
특수한 기술이나 제품으로 경쟁하는 제조업과 달리 금융업의 핵심은 사람이다. 즉 조직원의 마음을 얻고, 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하지 못하면 아무리 싼 값에 해당 기업을 인수했다 하더라도 이후 좋은 성과를 내기 힘들다. 리딩투자증권이 지크증권을 인수했을 당시 지크증권 직원들의 불안감은 상당했다. 당시 지크증권의 핵심 고객층은 젊었을 때 도쿄 시내에서 일하고 거주하다 은퇴 후 도쿄 외곽으로 거주지를 옮긴 노인들이었다. 지크증권은 이 틈새시장을 잘 공략해 60여 년 동안 큰 풍파없이 회사를 영위했다. 안정적인 상황에 익숙했던 직원들은 회사가 다른 나라의 회사, 그것도 소형회사에 인수된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이에 리딩투자증권은 100% 고용 승계에 동의했고, 경영권 확보 후에도 직원 사기 진작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직원 의사를 반영한 임원진 개편 △수직적인 업무 지시 지양 △보상 체계 변경 등이 대표적이다. 인수 과정 그 자체보다 인수 후 통합(PMI·Post Merger Integration)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
 
이번 인수 작업에 처음부터 관여했던 리딩투자증권 박대혁 부회장은 한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인수 과정 중 일반 직원들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대주주와 직원들 사이에서 고의적으로 의사소통 장애를 발생시키는 등 문제를 야기한 임원이 있었음을 파악했습니다. 제지업계 출신인 기존 대주주가 증권업을 잘 모르다 보니 그런 일이 발생한 거죠. 그래서 인수 작업이 끝나기 전에 일부 임원을 교체했습니다. 오너의 눈과 귀를 가리며 의사소통을 차단한 사람을 교체하자 남아있는 직원들의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졌고, 저희를 대하는 태도 또한 호의적으로 변했습니다.”
박 부회장은 인수 후 예상하지 못한 문제점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120명 직원의 대부분은 영업 직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능력 수준이 저희의 기대와는 좀 달랐습니다. 일본 증권회사들은 규모에 따라서 능력의 차이가 큰 편입니다. 대형 증권회사는 세계적인 투자은행과 직접 겨룰 정도지만 소형 증권회사는 HTS 등 신 문물에 밝지 않아요. 지크증권 직원들도 워낙 안정적인 틈새시장에서 일해왔던 탓인지 한국에서는 거의 사라진 실수가 가끔 발생하더군요. 한국에서는 객장에 나가는 손님이 거의 없잖습니까. 절대 다수가 HTS를 이용하고요. 하지만 그곳에는 주문지 작성을 통해 매매를 하는 고객이 아직도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문실수 혹은 내부통제 상의 문제점이 발생할 소지가 있었습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딩 증권은 영업 직원의 능력 향상을 위해 일방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운용하는 일을 자제했다. 수직적인 업무 지시처럼 느껴지는 행동이 일본 직원들의 불만을 야기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한국에서 영업을 독려하기 위해 종종 쓰이는 정신 교육은 아예 배제했다. 일본인 특유의 혼네(本音, 본심)와 다테마에(建前, 겉으로 드러난 명분) 차이 때문이다. 박 부회장은 “싫든 좋든 우리가 모회사니까 표면적으로는 ‘예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죠. HTS를 안 쓰는 것도 우리 입장에선 답답해 보이지만 자본시장의 발전 상황이 달랐던 만큼 억지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고 설명했다.
 
리딩투자증권은 대신 간접적이면서 은근한 방법을 썼다. 우선 영업 능력이 우수한 몇몇 직원을 서울로 불렀다. 업무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서울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 후, 한국의 영업 현황을 보여줬더니 직원들이 놀라는 게 느껴졌다. 그는 “바로 옆에 있는 나라임에도 직원들 중 상당수가 한국의 IT 환경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금융업에도 그런 특성이 얼마나 많이 반영됐는지를 잘 모르더군요. ‘한국에서 뭐 배울 게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가 적잖이 충격을 받은 눈치였습니다. 굳이 한국 식으로 시시콜콜 지시하지 않고 분위기를 체감하도록 했던 게 긍정적 효과를 냈습니다”고 말했다.
 
일본 리딩증권에 대한 본사의 인력 파견도 최소화했다. 3개월의 인수 과정 중에는 M&A를 담당하는 5명 정도의 본사 직원이 일본에 잠시 상주했지만 이후에는 본사 파견 직원이 없었다. 대표도 마찬가지다. 피인수 기업에 본사 출신 관계자를 단독 대표로 내려보내면 피인수 기업 직원들은 알게 모르게 ‘점령군처럼 행동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리딩투자증권은 본사 측 인사와 M&A 자문을 담당했던 일본인 전문가로 이뤄진 공동 대표 체제를 택했다.
 
 
영업 직원의 인센티브 체계도 직원들에게 유리하게 변경했다. 과거에는 개별 영업 직원의 실적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부서나 회사 전체 실적을 감안해 인센티브를 지급했기에 직원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 리딩투자증권은 1인당 생산성 지표를 새로 도입하고 개별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가 공정하게 지급될 수 있도록 체계를 개선했다. 리딩 인수 전에는 인센티브에 개개인 실적의 50%도 반영되지 않았지만 제도 변경 후 거의 100% 반영됐다.
 
직원들의 마음을 얻은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일본 리딩증권은 2006년부터 3년간 적자를 기록했지만 2008년 11월 인수 후 불과 1년이 지난 2009년 말부터 흑자 궤도로 돌아섰다. 당초 3년 정도는 적자를 각오해야 할 거라는 리딩 측의 예상보다 빠른 기간이었다. 일본 리딩증권은 올해 약 10억 원 이상의 영업 흑자를 기대하고 있다. 부채가 줄어 자기 자본 비율도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다. 2008년 3월 16.83%에 불과했던 자기자본비율은 2010년 8월 현재 30%로 대폭 증가했다.
 
한일 양국에서 새로운 수익원도 발굴
리딩투자증권의 강점을 이식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도 확립했다. 지크증권 직원들은 오랫동안 거래해 온 장기 고객을 대상으로 한 주식 소매 영업에만 익숙했다. 때문에 주식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실적이 요동쳤다. 시장이 호황일 때는 괜찮지만 불황이면 적자가 불가피했다. 이에 리딩은 자사가 강점을 지닌 투자은행(IB) 업무, 그 중에서도 해외 증권 판매를 지크증권에 이식하기 시작했다. 즉 대도시 근교에 거주하는 장년층이라는 지크증권의 안정적 고객 기반에다 리딩투자증권이 강점을 지닌 해외 주식 거래를 합해 신규 고객을 유입할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이흥제 전무는 새로운 상품에 대한 일본 고객들의 반응이 긍정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일본 고객들은 저축을 많이 하니까 여유 자금이 있죠. 하지만 제로 금리라 자금을 은행에다 두지도 않습니다. 과거처럼 일본 주식과 채권만 가져다 주면 당연히 고객들의 반응이 시큰둥하죠. 그래서 한국에서 하듯 미국 주식, 브라질 헤알화 국채 등 다양한 해외 증권 관련 상품을 선보였습니다. 저희가 이런 상품을 소개하니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고객들이 많았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조그마한 가게 하나도 4대가 이어가며 운영하잖습니까. 고객관계도 마찬가지예요. 한 번 고객관계를 맺으면 쉽게 안 움직여요. 어떤 고객이 A라는 영업 직원하고 거래한 후 그와의 거래가 익숙해지면 A가 소개하는 상품만 계속 사고파는 거죠. 사실 일본 고객들의 평균 회전율 자체는 절대 한국보다 낮지 않아요. 노인 계층이 주 고객이라고 해서 그 사람들의 매매 횟수가 적거나 평균 보유기간이 긴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투자 상품의 종류와 다양성은 훨씬 떨어져요. 자신의 담당자가 ‘이런 신상품이 있다’고 소개하지 않으면 애초에 새로운 상품에 관심도 안 가지는 문화니까요. 하지만 오래 거래해온 영업 직원이 신상품을 제안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래서인지 헤알화 국채 등을 소개하자 바로 반응이 왔습니다.”
 
일본 증권회사를 인수한 덕에 한국에서도 새로운 수익원 발굴 기회를 얻었다. 최근 리딩투자증권은 한일 양국 부품업체 M&A의 연결 고리 역할을 적극 담당하고 있다. 즉, 앞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나 일시적인 자금난에 빠진 일본 업체를 찾아내 이 기업을 인수하고 싶어하는 국내 기업에 소개하는 역할이다. 당연히 M&A 과정에 대한 자문 및 주간 업무는 뒤따라올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 부총재 출신으로 2006년부터 리딩투자증권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박철 회장은 이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 부품소재 업체 중 2차 대전 후 회사를 설립한 창업주가 제대로 된 후계자를 찾지 못해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에 몰린 사례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업체 중 알짜 기업을 골라 국내 업체업체에 소개하는 겁니다. 국내 업체는 이를 통해 신기술 확보 및 일본 시장 진출이라는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으니까요.”
 
 
 
리딩투자증권의 핵심 성공 요인 분석
1)Upward Investment로 M&A의 새로운 영역 개척 M&A를 성사시키거나 시도한 한국 기업들은 대개 한국보다 선진국 기업, 혹은 동종업계에서 자사보다 높은 기술력이나 입지를 지닌 회사를 인수하는 상방 투자(Upward Investment)보다 그 반대인 하방 투자(Downward Investment)에 주력하는 편이다. 두산의 미국 중장비업체 밥캣 인수 등 상방 투자의 사례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유독 금융업계에서는 한국 기업이 선진국 기업을 사들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내로라 하는 한국 대형 은행들도 동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 금융회사 중 부실에 빠진 회사를 사들이거나 지분 투자를 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리딩투자증권은 하지만 처음부터 상방 투자를 계획해 왔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주식 거래 시장에 남들보다 먼저 진출한 리딩은 개발도상국에서 사업을 벌이는 일이 얼마나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M&A 자체도 피곤하고 힘든 일인데 개도국에서는 업무 외에 신경 써야 할 점들이 너무 많다는 이유다.
박 회장은 “정부나 규제당국과의 관계, 로비, 느린 업무 처리 속도 등의 어려움은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잘 모릅니다. M&A처럼 복잡하고 사후처리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을 하려면 최소한 상식이 통하는 나라에서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정적으로 리딩은 작은 회사입니다. 자본도 브랜드 인지도도 큰 회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요. 개도국일수록 이름 값이나 회사 크기가 실력보다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실력만 가지고 먹고 살아야 하는 리딩의 상황을 감안하면 오히려 선진국 시장이 더 잘 어울립니다. 무형자산이 핵심인 금융산업의 특성상 피인수 국가의 금융 노하우나 핵심 인재를 보유하기 위해서도 배울 만한 점이 있는 선진국 회사를 인수해야 했습니다”고 말했다.
 
문휘창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Downward Investment의 목적은 해외 시장에서의 매출 및 시장 점유율 확대, 즉 재무적 요인에 치우쳐 있을 때가 많지만 Upward Investment의 목적은 브랜드 인지도 등 전략적 자산 확보에 있다”며 “돈을 버는 게 직접적인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단기간에 돈을 벌지 못했다 해도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 손익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초일류 기업이라면 Downward Investment만 해도 괜찮지만 한국 기업처럼 강약점이 혼재하는 기업은 두 방법을 적절히 혼합 구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업체들이 선진국 기업 인수를 꺼리는 이유는 자사와 피인수 기업의 관계를 전형적인 갑과 을이라고 여기는 한국식 사고방식과도 관련이 있다. 즉 우리 회사가 피인수 기업 위에 있어야 하는데 기술력이나 인지도가 높은 선진국 회사를 인수했다간 소위 ‘말빨’이 안 설지도 모른다는 속내가 존재한다. 박 회장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미국, 유럽, 일본은 한국보다 금융산업 역사가 훨씬 오래됐고, 세계적인 기업도 많죠.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다 최첨단을 달리는 건 아닙니다. 앞서 언급했듯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일본에서도 HTS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금융회사도 있습니다. 무조건 선진국의 방식이 저만큼 앞서고 있는 게 아니라 한국이 더 발전한 부분도 많아요. 그런 점을 잘 보여주면 선진국 직원들의 반발도 누를 수 있습니다.”
 
2)역 통합(Reverse Integration) 위주의 PMI  한국 기업들은 M&A 준비 단계에서 지나치게 재무 분야의 실사만 강조하는 편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기업을 싸게 샀다 해도 피인수 기업의 핵심 인재를 보유하지 못하거나, 조직원들의 집단 반발에 직면한다면 해당 회사의 껍데기만 사는 꼴이 된다. PMI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 PMI가 대부분 피인수 기업이 인수 기업의 조직 문화와 업무 방식을 따르는 식으로만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이런 방식은 조직 내 반발과 동기부여 수준 저하 등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실제 리먼 브러더스를 인수한 일본 노무라 홀딩스는 기업 문화 차이로 조직 통합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라가 리먼의 신입 사원 연수 때 여자만 따로 골라 머리 관리 및 의상 선택법, 녹차 타는 방법을 교육시키는 바람에 하버드 출신 여직원들이 분노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애초부터 직원 처우나 의사결정 방식 등이 워낙 달랐던데다 노무라가 섣불리 동양식 방식을 강요하는 바람에 합병을 통해 글로벌 금융기관으로 도약하려는 시도가 타격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런 문제를 막으려면 기업 실사 단계 때부터 HR 부문을 실사의 주요 항목에 포함시키고, 인수 후에도 피인수 회사 직원들의 마음을 얻으려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인수 회사가 피인수 회사의 문화에 맞추려는 노력을 하거나, 아예 당분간 분리 운영을 하는 식의 역 통합(Reverse Integration)이 어설프게 PMI를 추구할 때보다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리딩투자증권 역시 섣불리 한국 식을 강요하지 않고 일본 영업직원의 업무 방식을 최대한 존중해줬다. 특히 PMI 과정에서의 ‘완급 조절’ 능력도 돋보였다. 즉 본계약은 최대한 신속하고 빨리 체결해 조직원들의 동요를 막고, 정작 인수 후에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인수 회사에 마음을 열기를 기다리며 몰아붙이지 않았다.
 
3) 스몰 딜(small deal)로 투자위험 최소화 M&A를 단행할 때 많은 기업들은 ‘이왕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일인데 기왕이면 더 큰 기업을 사자’는 유혹에 빠진다. 리딩투자증권처럼 한국 내에서 규모의 경쟁을 할 수 없는 회사라면 더더욱 이런 욕심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하지만 리딩투자증권은 규모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 위험은 줄이고 가치 창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레버리지를 일으키지 않고 리딩이 보유한 돈으로 살 수 있으며 △리딩의 핵심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회사를 찾는 데 주력했다.
 
박 회장은 “인수 대상 기업을 물색할 때 지크증권보다 규모가 큰 회사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회사를 사려면 레버리지를 많이 일으켜야 하는데 우리의 전략과는 맞지 않았습니다. 리딩투자증권 역시 한국 내의 틈새시장을 공략하며 커왔는데 기업 규모가 지나치게 큰 회사는 PMI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을 것 같았습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에는 조금 부족하고, 사업 영역이 넓지 않으면서, 리딩의 노하우를 접목했을 때 성장 가능성이 큰 회사를 선택하니 답은 금방 나왔습니다”고 말했다.
 
리딩이 지크증권을 인수할 때 참고한 역할 모델은 바로 스페인 산탄데르은행이다. 스페인의 작은 은행에 불과했던 산탄데르는 150여 년의 역사 동안 국내외에서 무려 100회 이상의 M&A를 단행하며 글로벌 은행으로 발돋움했다. 산탄데르는 스페인에서 1위 은행이 된 뒤 문화적 동질성이 강한 중남미로 눈을 돌려 내수 시장에서보다 큰 성공을 이뤄냈다.
 
박 회장은 “산탄데르가 브라질에 들어갈 때의 일입니다. 이미 상당한 규모의 은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산탄데르는 브라질 대형 은행들을 노리지 않았어요. 매우 조그만 은행부터 차근차근 인수했죠. 실수할 위험이 적고, 설사 실수를 해도 그룹 전체에 큰 문제를 끼치지 않을 만한 인수 대상을 찾은 거죠. 피인수 기업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의 노하우를 접목할 수 있고, 상대에게 배울 점이 있어서 한 번 성공 사례를 정착시키면 그 경험을 계속 써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 말했다.
 
이런 식의 스몰 딜(small deal)은 금융위기 후 전 세계에서 각광받고 있다. 작지만 경쟁력 있는 회사를 사들여 핵심 사업을 보강하거나 무리하지 않은 수준에서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전략이다. 조 단위의 거액을 투자해야 하는 대형 M&A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금 조달이 수월하고, 실패해도 위험이 적다는 이점 때문이다. 특히 금융위기 전 이뤄진 대형 M&A 중 ‘승자의 저주’에 휘말린 사례가 많았던 탓에 기업들의 실속 투자 경향이 더욱 뚜렷하다. 국내에서는 LS그룹이 최근 이런 식의 스몰 딜을 통해 빠르게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인수 시점도 절묘했다. 모든 사람들이 몸을 바짝 움츠리던 시기에 M&A를 단행했고, 단계적인 지분 확보에 나섰기에 인수 비용도 예상보다 30% 이상 줄일 수 있었다. 박 회장은 “금융위기 전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M&A가 이뤄졌지만 대부분 지나치게 웃돈을 주고 사는 바람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돈은 넘쳐나고, 여러 기업이 달려드니 100에 사면 적당한 기업을 200에 사서 다같이 망하는 꼴이랄까요. 일단 금융위기가 발발하고 인수에 나서려는 사람이 적은 상황에서 협상을 시작했기 때문에 ‘승자의 저주’ 우려를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고 말했다.
 
도전 과제
지난 10년 간 리딩투자증권은 효과적으로 틈새 시장을 개척했지만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적지 않은 과제도 해결해야 한다. 첫째, 일본 시장에서의 성공 방정식이 다른 나라, 특히 리딩투자증권이 궁극적으로 목표하고 있는 미국 시장에서 그대로 통할지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미국 기업 인수는 같은 유교 문화권인 일본 기업 인수보다 훨씬 까다롭고 복잡할 수 있다. 동양 문화권에서 먹혔던 방식이 서구 문화권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 대비한 적절한 전략과 역량을 확보하고 있는지 자문해보고, 이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둘째, 성장의 방향성도 고민해야 한다. 향후에도 현재처럼 증권업계의 틈새시장 업체로 남을지, 공격적으로 성장을 추구하며 업계의 선도 업체가 될 기회를 노릴지 진지하게 고려할 시점이다. 리딩투자증권의 역사는 불과 10년이다. 하지만 2000년 출범한 창업 동기 미래에셋증권, 키움증권이 같은 기간 국내 굴지의 증권사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외형 확장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리딩투자증권 역시 해외 주식 투자라는 특화 영역을 개척하긴 했지만 다른 창업 동기들의 특화 사례, 즉 펀드(미래에셋)나 온라인 매매(키움)에 비해서는 대중성과 성장성에서 한계가 있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 연구원 김현경(23, 이화여대 문헌정보학과 3학년)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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