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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제 정착이 어려운 이유와 해결책

임원이 팀장? 관료주의 넘어서야 팀이 산다

이홍 | 67호 (2010년 10월 Issue 2)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팀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 기업들은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팀제 조직이 당시 혁신의 대상이었던 과부장제도(직제조직)와 무엇이 다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했다. 어떤 기업들은 명칭만 바뀌었지 하는 일은 과거의 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강력히 추진됐던 팀제조직이 왜 옛날과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일까?
 
팀제조직과 직제조직의 차이
 
 
먼저 직제조직과 팀제조직의 차이를 살펴보는 데서 출발하자.(표1) 직제조직의 조직화 원리는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업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수행할 것인가에 초점을 둔다. 목적은 두 가지. 기업의 경제성과 수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경제성이란 다름 아닌 효율성이다. 단위 투입당 산출을 극대화하는 것이 효율성이다. 수단성이란 X단위의 투입을 넣으면 Y개의 산출이 만들어지는 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좋은 예가 품질이다. 품질이 좋아야 기업의 수단성이 좋아진다. 10단위의 자재를 넣어 5개의 완제품이 만들어지는 공정이 있다고 하자. 만들어진 5개가 모두 양품이면 수단성이 매우 좋은 것이다. 그렇지 않고 불량이 생겨 3개 밖에 만들지 못했다면 수단성은 나쁜 것이다.
 
경제성과 수단성이 좋으려면 가급적 표준화된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적의 조직화 방식이 직제조직이다. 직제조직에서는 구성원들의 일이 매우 단순하다. 자신에게 할당된 전문적이고 좁은 범위의 일을 숙련된 솜씨로 처리하면 된다. 이들에게 복잡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는 없다. 필요한 최소량의 정보만이 제공된다. 리더의 역할도 단순하다. 하위 계층에서 해야 할 일들이 제시간에 진행되고 있는지를 감독하고 지시하는 것이 주요 업무다.
 
이에 비해 팀제조직은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조직화된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빠르면 직제조직은 대응하기 어렵다. 한 가지 제품만 팔아도 되는 시절에는 직제조직이 매우 효율적이지만 소비자의 입맛이 빠르게 변하고 다양한 제품을 내놓아야 하는 세상에서 직제조직은 효과적이지 못하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 팀제다.
 
직제조직과 비교할 때 팀제에서는 구성원들의 역할이 다르다. 환경이 변하면 그때마다 대응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아진다. 그래서 이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문제 발견과 해결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려니 조직 내 다른 프로세스에 속한 구성원들과도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어떤 때에는 여러 기능도 수행해야 한다. 이럴 경우 환경변화에 대한 정보를 개별 구성원들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구성원들 간의 정보공유가 필수적이다. 리더들은 자신의 부하들이 빠르게 변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변화라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기 때문에 이를 돕는 코치로서의 역할과 후원자로서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팀제조직의 또 다른 특징은 팀의 생존과 사멸이 직제조직보다 자유스럽다는 점이다. 팀은 생겨날 수도 있고 사라질 수도 있다. 직제조직에서는 할당된 정원에 따라 과와 부가 운영되기 때문에 신설과 폐지가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1990년대에 두 가지 큰 변화가 발생했다. 하나는 한국 기업들의 경영환경이 빠르게 변화한 것이다. 특히 고객 환경이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달라졌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기업들이 접한 새로운 단어가 있다. 바로 고객만족이다. 고객 위에 군림만 하던 기업들에 이 단어는 매우 생소한 것이었다. 고객의 힘은 날로 세져 갔다. 고객들의 입맛도 매우 까다로워졌다. 한두 가지 제품으로 만족하던 소비자들이 다양한 제품을 내놓으라고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1990년대 중반 한국 시장이 개방되기 시작했다. 외국 제품들이 국내로 침투하기 시작했고 한국 제품은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를 맞게 됐다. 이때 팀제가 경영자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크게 두 가지 반응이 있었다. 하나는 경영환경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선제적인 노력으로 팀제를 도입한 기업들이다. 다른 하나는 다른 기업들이 도입하니 따라서 도입한 기업들이다. 어쨌든 한국 기업들은 유행처럼 직제조직을 팀제조직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동시에 일어난 일이 있다. 조직의 계층수를 줄이려는 노력이다. 환경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려면 의사결정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의 의사결정 계층을 줄일 필요가 있다. 먼저 ‘대과(大課)대부(大部)제’로의 전환이 일어났다. 여러 개의 부서를 합쳐 하나로 만들고 이것을 팀이라고 불렀다. 이로 인해 과거 ‘사원→계장(대리)→과장→차장→부장’이라는 계층구조는 ‘팀원→팀장’ 구조로 축소됐다. 외견상 3, 4개의 계층이 단일 계층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생겼다.
 
팀제가 작동하지 않는 이유
이렇게 야심적으로 도입된 팀제가 왜 오늘 날에 이르러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 것일까? 비난의 핵심은 이렇다. 팀이라고 불리고 있는 부서들의 역할을 보면 과거 과부제도에서의 역할과 큰 차이가 없다. 팀제에서의 주요한 업무는 변화에 대응하는 것인데 실상은 과거와 같이 반복적인 일을 한다. 의사결정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줄인 계층의 숫자도 과거로 돌아갔다. 최근에는 팀장 직책을 임원들이 맡는 기업들이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팀장 밑에 그룹장 직제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 밑에 파트장이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의사결정의 단계가 ‘팀원→파트장→그룹장→팀장’이라는 다단계 구조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팀장의 역할이 코치와 후원자인 것도 아니다. 지시와 감독만을 하기는 마찬가지다. 생성과 소멸이 자유스럽다는 팀제의 심리적인 효과를 제외하면 현재의 팀제 모습은 과거의 직제조직과 별로 다를 게 없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그 이유는 조직의 특성을 결정짓는 요인들을 따져보면 알 수 있다. 조직의 특성은 몇 가지 힘에 의해 결정된다. 이 요인들은 조직의 특성을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구성원들의 힘으로 아무리 팀제를 하고 싶어도 이 힘들이 직제조직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팀제는 작동할 수 없다. 조직의 특성에 영향을 주는 힘은 크게 5가지다.(그림1) 이들을 살펴보면 왜 팀제가 작동하지 못하는지를 알 수 있다.
전략적 요인
전략에 따라 조직의 구조는 달라진다.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기업들을 둘로 분류하면 크게 선도자(first mover)와 추격자(follower)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기업들은 선도자보다는 추격자의 위치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전략은 팀제조직보다는 직제조직적 성격을 더 필요로 한다.
 
추격자 전략은 아이디어의 생성, 문제 해결, 시장설득이라는 창조단계에서 오로지 문제 해결에 치중하는 전략을 말한다. 선도자가 만들어 놓은 제품을 역으로 분해해 제품이나 서비스의 구조를 이해하고 이를 빠르게 따라가는 전략이 추종자 전략이다. 시장은 선도자가 이미 개척했기 때문에 별도로 소비자를 설득할 필요가 없다. 한마디로 창조단계에 있어서 가장 애매하고 불안정한 아이디어 생성과 시장설득 과정을 모두 생략한 것이 추종자 전략이다. 이 전략을 취하면 시장에서 야기될 수 있는 불안정성과 조직 내부에서의 불안정성이 크게 줄어든다. 따라서 불안정성에 대응해야 하는 조직 구조가 필요하지 않다. 이미 답안지는 나와 있으니 그대로 실행만 하면 된다(‘수단성의 확보’). 여기에 경제적으로 저렴하게 만들면 된다(‘효율성의 확보’). 한국 기업들이 팀제를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왜 직제조직적 특성으로 남아있는지를 알 수 있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
 
추종자 전략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 전략은 제품개발과 시장에서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선도자가 항상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코닥은 1970년대 중반 세계에서 처음으로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었다. 하지만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로 별 돈을 벌지 못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필름 카메라가 대세였다. 필름이 필요 없는 카메라를 만들었다고 해도 시장이 반응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활을 걸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아니었다. 디지털 카메라 사업은 코닥 내에서 기존의 필름 사업과 경쟁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아무도 돈을 잘 벌고 있는 기존 비즈니스의 경쟁자인 디지털 카메라 사업에 목숨을 걸지 않았다. 디지털 카메라는 개발하느라고 엄청난 돈만 잡아먹은 애물단지가 됐다. 그런데 어느 날 시장이 바뀌었다. 다른 기업들이 코닥이 만든 디지털 카메라를 따라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시장이 크게 요동치면서 필름 사업에 큰 어려움이 닥쳤다. 코닥은 자신들이 처음 만들어 놓은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는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하면서 기업은 어려워지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이처럼 선도자 전략이 항상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어쨌든 한국 기업들은 대부분 선도자 전략이 아닌 2등 전략 또는 3등 전략을 취했다. 그 결과 선도자만큼 기술환경의 불확실성과 이로 인한 내부환경의 불확실성은 적게 느끼게 됐다. 팀제로의 대대적인 변신에도 불구하고 직제조직적 특성이 남게 된 이유다.
 
기술적 요인
기술적 요인도 팀제조직이 잘 작동되지 못하게 하는 한 원인이 된다. 애플과 삼성전자는 돈 버는 방식이 다르다. 애플은 제조공장이 없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는 제조공장을 가지고 있다. 제조를 하지 않는 기업과 하는 기업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제조를 하지 않는 기업들은 제조로부터 최소한의 간섭만 받는다. 새로운 제품 아이디어가 생기면 이것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을 밖에서 찾으면 된다. 자신들은 자유롭게 최상의 아이디어만을 생각하면 된다. 이런 기업에서의 일은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한다. 신제품이나 신서비스를 위해 뭉쳤다 목적이 달성되면 해체되는 팀제조직이 자연스럽게 조직화 원리로 자리 잡게 된다. 영화를 만드는 방식과 동일하다.
 
하지만 제조를 중심으로 하는 기업은 다르다. 이들은 경제성과 수단성을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조직에서는 프로젝트가 아닌 프로세스 관리가 경영의 핵심으로 등장한다. 프로세스란 제품이나 서비스를 정해진 절차와 작업에 의해 만들기 위해 마련된 일련의 흐름을 말한다. 경쟁사보다 저렴한 가격(경제성)에 높은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수단성)를 만들어내는 게 생명이다. 이는 프로세스형 조직에서는 직제조직적 성격이 팀제조직적 성격보다 우세하게 나타남을 의미한다. 특히 기능을 중심으로 하는 조직에서는 수직적 프로세스가 강하게 작동된다. 공장에는 지금도 과부제의 명칭을 쓰는 곳이 많다. 수직적 프로세스를 가질 수밖에 없는 조직 특성상 지시와 감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직제조직적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오히려 제조의 직제조직적 현상이 가장 팀제다워야 할 연구개발 조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한국 기업에서의 현실이다.
 
금융업과 같은 서비스업도 프로세스로 운영되기는 마찬가지다. 은행은 반복적인 성격을 갖는 다양한 프로세스로 운영된다. 따라서 효율성과 수단성을 기반으로 조직을 운영하게 된다. 이들 조직에서도 직제조직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는 이유다.
 
리더십 요인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리더가 어떤 성향을 갖느냐에 따라 조직의 성격은 큰 영향을 받는다. 많은 한국 기업들의 의사결정자들은 단기성과를 중시하고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단기성과를 높이려 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큰 리더는 아무래도 하부조직에 대한 간섭의 양을 늘리게 된다. 한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상위 계층이 자동차 디자인에 간섭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무리 디자이너가 소비자와 시장을 연구해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아도 의사결정 계단을 한 단계씩 올라갈 때마다 디자인에 변형이 일어난다. 결국에는 디자이너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차가 만들어질 때가 많다. 실패에 대한 불안감과 올해에도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이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무난한 디자인을 선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기업에서는 자신들의 최고의사결정자를 대리급 사장이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그 만큼 세밀한 일까지도 간섭한다는 말일 것이다. 간섭이 늘어나면 지시의 양도 증가한다. 이러한 모습은 직제조직에서의 관리자의 모습과 유사하다. 이런 리더들은 환경의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도 하위직에 권한 위양을 하지 못한다. 변화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많은 지시와 간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기아자동차의 디자인이 좋아진 이유를 경영층으로부터의 간섭을 적극적으로 막아준 외국계 임원과 이를 옹호해 준 최고의사결정자의 지원으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의 기업들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규모 요인
규모가 커지면 조직의 관료화 현상이 크게 증가한다. 관료화란 분업을 통한 전문화와, 상층에서 권력을 갖는 집권화, 규정이나 표준에 의해 일하는 공식화가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 누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지 알기 어려워진다. 조직을 조정하고 통제하는 것도 더 어려워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이 관료제다. 일을 잘게 자르고 (‘전문화’), 일을 맡은 사람들을 규정에 의해 움직이게 하며(‘공식화’), 필요한 의사결정은 상층에서 하도록(‘집권화’) 해 놓으면 조직을 하나의 기계처럼 움직일 수 있다. 이것을 기계적 관료주의라고 한다.
 
기계적 관료주의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기업 환경이 안정적이고 외부 환경에 대한 기업의 힘이 세다면 기업의 성과를 높이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문제는 환경의 변화속도가 빨라질 때다. 관료주의가 강한 조직은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없다. GM이 어려움에 처한 이유도 잘 들여다보면 기계적 관료주의의 영향 때문이다. 자동차 시장이 과거 마력중심에서 연비중심으로 급격히 변하고 있었음에도 GM은 과거의 대형차(마력)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소형차의 필요성이 강력히 제기되자 안 팔리는 대형차 라인을 조정해 소형차를 공급하기보다는 대우자동차를 사들여 대처하는 전략을 폈다. GM은 다른 한편으로는 조직 비용을 줄이기 시작했다. 특히 비용 절감의 시작을 자신들이 생산하는 대형차 간 플랫폼을 공유하는 것에서 찾았다. 원가는 낮아졌지만 문제가 일어났다. GM은 GM이 생산하는 서로 다른 브랜드 차종 간에 차별성을 유지하는 회사로 유명했었다. 그런데 이 차별성이 플랫폼 공유로 사라졌다. 결국 소비자들은 대형차 시장에서마저 GM을 외면했다. 결과는 100년이 넘는 기업의 파산이었다.
 
규모는 기계적 관료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몰고 간다. 팀제와 같은 조직의 유연화 수단을 통해 이것을 막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기업의 규모가 주는 힘 때문에 관료주의를 막는 것은 역부족이다. 한국의 기업들은 규모를 늘리는 것을 좋아한다. 당연히 관료적 성향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팀제가 설 자리도 그만큼 줄어든다.
 
환경 요인
한국에서의 경영환경은 과거에 비해 기업들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그 변화속도가 과거와 비교해 매우 빠르다. 소비자들은 과거에 비해 더 까다로워지고, 시장 개방으로 시장환경의 변화속도와 적대적 속성은 훨씬 증가했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과부장제도를 택하고 있어도 조직이 팀제처럼 움직이는 현상이 일어난다.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국에서는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환경은 과거와 달리 훨씬 유동적이고 적대적으로 변해 가는데 애써 만들어 놓은 팀제도 직제조직처럼 움직이는 기이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유는 한국의 기업들이 환경의 영향을 이길 만큼 힘이 세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를 보자. 반도체 시장에서의 치열한 원가경쟁, 소위 ‘치킨게임’의 승자가 된 이후 이 회사의 시장 지배력은 더욱 커졌다. 스마트 폰을 제외한 휴대폰 시장과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도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크게 강해졌다. 현대자동차도 마찬가지다. 기아차와 현대차가 하나의 그룹 속에 편입된 이후 이 두 회사의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늘었다. 이들 기업만 그런 것은 아니다.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외환위기 이후 위기관리 능력을 갖게 되면서 경쟁력이 크게 좋아졌다. 반대로 세계시장에서 경쟁관계에 있던 기업들은 오히려 2008년 금융위기에서 큰 타격을 입고 뒤처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런 이유들이 겹치면서 한국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은 과거에 비해 월등히 좋아졌다.
 
 
힘이 세졌다는 것은 환경을 안정화할 수 있는 능력도 생겼음을 의미한다. 힘이 세지면 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려고 한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환경이 나타나지 않도록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것을 환경지배력이라고 한다. 그런데 환경지배력이 커지면 반대로 실제 환경의 변화를 지각하는 인식능력은 약화된다. 그만큼 환경에 다급하게 대응하고자 하는 욕구도 낮아진다. 환경의 위협에 대한 인식이 약해지면 기업은 기계적 관료주의의 모습을 가지려고 한다. 이것이 팀제가 직제조직의 모습으로 회귀하는 또 다른 이유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한 것이 <표2>다.
 
시사점
문제는 무엇인가? 불행히도 경영환경은 직제조직을 선호하기보다는 팀제를 선호하는 쪽으로 급속히 움직여가고 있다. 과거에 비해 경영환경이 훨씬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다. 전통적 휴대전화의 강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아이폰으로 인해 고전하고 있다. 이런 일들이 앞으로는 다반사로 일어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만들어 놓은 팀제조직이 직제조직화하고 마는 현실이 한국 기업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는 불행히도 오래지 않아 한국 기업들에 재앙이 닥쳐올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재앙을 피하려면 <표 2>가 제시하는 주요 요인들을 팀제가 작동하기 쉬운 쪽으로 움직여 줘야 한다.
 
첫째, 환경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최고로 끌어올려야 한다. 환경은 이미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다. 힘이 세어진 한국 기업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이다. 최고경영자를 포함한 기업의 모든 구성원들이 환경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실제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이것을 느껴야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느끼지 못하면 대응력은 떨어진다. 팀제가 안 되는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시에 리더십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 한국 기업들의 단기성과주의는 유명하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방식이 가능할까? 불행히도 그렇지 못할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추종자 전략으로 앞서 있는 기업들을 뛰어 넘기 시작했다. 이제는 오히려 경쟁의 맨 앞 열에 서게 됐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하다 보니까 선도자의 위치까지 온 것이다. 문제는 선도자 전략을 어떻게 펴야 하는지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분명한 한 가지는 지금과는 다른 경영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장기적인 시각과, 구성원들의 창조적 역량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회사 밖의 그 누구도 답을 제공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경영방식이 정착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날 필요하다고 갑자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어렵고 힘들어도 리더부터 팀제를 살려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프로세스 중심의 사고에서 프로젝트 중심의 사고로 기업경영의 축을 빠르게 옮겨줘야 한다. 제조업을 영위하는 관점에서 보면 제조중심의 사고에서 연구개발 중심의 사고로 옮겨가는 것을 말한다. 그 속도는 개별기업의 전략에 달려 있지만 느리면 느릴수록 불리하다. 최근 구글과 애플은 TV산업의 전통적 강자인 삼성전자와 LG전자에 위협적인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표면적으로 절대 경쟁이 될 것 같지 않은데도 경쟁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시장의 판을 바꾸는 전략을 통해서다. 이런 무모한 생각이 가능한 이유는 이들 기업은 제조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제조를 버리자는 말은 아니다. 제조(프로세스 조직)가 구개발(프로젝트 조직)을 제약하는 상황을 최소화하자는 뜻이다. 지금까지는 연구개발 부서가 생산 부서의 효율성을 제약조건으로 일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들 부서가 제조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경쟁에서 지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효율성과 수단성을 확보할 수 있으면 이들이 하자는 대로 해야 한다. 제조의 편의를 위해 개발과 디자인이 제약 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노키아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것이다. 이 회사는 저렴한 휴대전화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개발자들에게 족쇄를 채웠다. 원가를 낮추기 위해 반드시 공통의 플랫폼을 활용해 개발을 하라고 시켰다. 그러다 보니 개발자의 상상력이 사라졌다. 동시에 노키아 디자인의 차별성도 사라졌다. 노키아가 내리막길을 걷는 이유다. 서비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프로세스를 만들거나 기존 프로세스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문제 해결형 프로젝트 조직의 운용량을 늘려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무작정 거대 조직으로 가는 전략도 지양해야 한다. 고어텍스를 만드는 고어는 거대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인원수가 200명이 넘으면 조직을 분할한다. 조직분할로 발생하는 비용보다 관료화로 인한 비용이 더 크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규모로부터 오는 관료화 경향을 줄일 수 있다. 물론 깊은 생각이 필요하다. 하지만 규모 키우기로 기업의 자존심을 살리는 경쟁은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 구성원들의 창조성도 죽고 팀제의 유연성도 죽기 때문이다.
 
팀제는 팀제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다.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 살아남기 위해서 택하는 행위이자 수단이다. 그런데 한국 기업은 겉은 팀제인데 속은 과거의 직제제도다. 누가 이런 역행적 구조를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느냐가 미래 성장의 관건이 될 것이다.
 
 
필자는 KAIST에서 경영학과를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광운대 경영대학장을 역임했다. 한국인사조직학회 편집위원장과 한국지식경영학회장, 정부혁신관리위원회 위원장도 역임했다. 저서로는 <한국기업을 위한 기업경영>, <지식점프>,<지식과 창의성 그리고 뇌><자기창조조직><창조습관>등이 있다.
  • 이홍 | - (현) 광운대 경영대학장
    - 한국인사조직학회 편집위원장
    - 한국지식경영학회장
    - 정부혁신관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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