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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rdling the Growth Trap: The Case of Hanssem 제조-서비스 양 날개로 ‘5000억의 덫’을 넘다

박용 | 64호 (2010년 9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진경(성균관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국내 부엌 및 인테리어 가구 1위 회사인 한샘은 2002년 이후 ‘롤러코스터’를 탔다. 2002년 연 매출액이 4700억 원을 돌파하며 창사 이후 처음으로 연 매출 4000억 원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2005년 매출액이 전년보다 743억 원이 줄어든 3885억으로 급감하며 위기가 찾아왔다. 국내 선두 업체라는 명성마저 무색해졌다.
 
한샘은 이후 원가를 절감하고 새로운 사업을 모색하며 절치부심 노력한 끝에 2007년 매출액 4000억 원선을 회복했다. 그러나 엎친 데 덮친다고 이번에는 세계 경제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환율은 폭등했고, 원부자재 수입 가격은 치솟았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부엌가구 교체 수요가 줄면서 재고가 쌓였다. 매출액은 또 다시 뒷걸음질 쳤다.
 
한샘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새로운 성장전략과 탄탄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원가절감 노력을 펼친 끝에 경기 순환에 따른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2009년 매출액 5000억 원을 돌파하며 부활을 알렸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2881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반기 기준으로 창사 이후 최대다. 영업이익도 151억7000만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4% 증가했다. 경기 변동과 시장의 한계를 딛고 부엌가구 제조업 중심의 사업 모델을 토탈 인테리어 서비스 모델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서서히 결실을 본 것이다.
 
한샘은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제품 중심에서 벗어나 고객 중심의 비즈니스 프로세스 혁신을 단행하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점진적 혁신(Incremental Innovation)을 실행에 옮겼다. 이는 제조업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탈피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한국 대기업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DBR은 서비스 모델을 중심으로 시장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한샘의 도전과 성과를 최양하 회장과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심층 분석했다.
 
1.한샘, 5000억 원의 덫에 빠지다
국내 부엌가구 시장은 1조5000억 원 안팎으로 추산되지만, 한샘과 같이 대량 생산을 통한 원가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 브랜드 제품의 시장 점유율은 15%에 불과했다. 대규모 영업이나 마케팅비용을 지출하지 않고 지역 고객을 대상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영세 사업자가 생산하는 이른바 ‘비() 브랜드 제품’이 시장의 85%를 장악하고 있었다. 디자인, 품질 등의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아 시장 진입장벽이 낮고 가격 경쟁이 치열했다. 대기업이 새로운 디자인을 개발해 신제품을 내놓으면, 곧바로 훨씬 저렴한 가격에 비슷한 디자인을 갖춘 ‘비 브랜드’ 경쟁 제품이 시장에 나오는 상황이 반복됐다. 이런 상황에서 부엌가구 제품의 수명주기는 짧을 수밖에 없었다. 디자인과 품질에 투자하더라도 과실을 얻어가기 어려운 구조였다. 게다가 시공과 물류 과정이 복잡해 대기업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 결과 한샘과 같은 대기업들은 일반 소비자 시장보다 중대형 아파트 건설현장에 부엌가구를 납품하는 건설회사 특판 사업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부엌가구 제조업 중심의 사업 모델은 한계에 부딪혔다.
 
전체 시장의 80% 이상인 중저가 시장을 공략하지 못한다면 부엌가구 시장에서의 성장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주력 사업 중 하나인 건설사 특판 사업은 부동산 경기에 민감했고, 시장 변동성이 컸다. 특판 시장도 더는 대안이 될 수 없었다.
 
시장 상황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소득이 늘면서 삶의 질과 주거 환경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늘었다. 부엌가구만 단순히 교체하는 수요보다 주택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부엌가구를 함께 교체하는 리모델링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부엌가구 전문 대리점 대신 고객들이 리모델링을 맡기는 인테리어 전문점이 소비자와 제품이 만나는 접점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2.사업모델 전환을 위한 도전과 한계
①특판 사업 축소와 중저가 시장 진출 한샘은 2000년 이후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 상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식의 제조업 사업 모델을 유통 산업으로 확장하고 건설사 특판 중심의 B2B 사업에서 일반 소비자 대상 사업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실험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제조업 중심의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대한 전반적인 혁신이 필요했다.
 
한샘은 먼저 중저가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2001년 중저가 모델 ‘밀란’을 내놓으면서 중저가 시장 공략의 고삐를 죄었다. 기존 유통 채널인 대리점을 통해 가격을 크게 낮춘 ‘밀란’을 선보여 첫해 매출이 30% 정도 상승하는 성과를 거뒀다.
 
밀란의 초기 성공으로 자신감이 붙은 한샘은 2005년 회사의 주력사업을 건설사 특판시장에서 소비자시장으로 바꾸는 야심찬 사업모델 개조에 나섰다. 건설사 특판 영업을 줄이는 대신 중저가 부엌가구 사업과 소파, 테이블, 장롱 등 인테리어 가구 사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키우겠다는 복안을 세웠다.
 
특판 사업은 부동산 시장의 변화에 따라 요동을 쳤다.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도입 방안을 뼈대로 한 2003년 10월 ‘부동산 보유세 개편방안’을 내놓고 강력한 부동산 투기 억제에 나섰다. 정부의 규제 강화와 경기 침체로 2002년 급등했던 부동산 시장은 2004년 꽁꽁 얼어붙기 시작했다.
 
최양하 한샘 회장은 “건설사 특판 영업은 낮은 수익성, 경기 변동의 리스크, 현금이 아닌 어음 중심의 결제 조건 등 세 가지 약점이 있다”며 “2005년 이후 건설사 특판 사업 중 수익성이 떨어지는 거래를 대폭 줄였다”고 말했다.
 
②소비자 변화에 따른 인테리어 시장 공략 시도 한샘은 중저가 시장 공략과 함께 부엌가구 시장의 새로운 소비자 접점으로 떠오른 인테리어 전문점 공략에 나섰다. 이를 위해 2004년 인테리어 사업자를 겨냥한 ‘인텔’ 상품을 새로 내놨다. 하지만 옥상옥(屋上屋)처럼 유통 채널은 더 복잡해졌다. 기존 대리점 중심의 유통 채널은 인테리어 사업자 중심으로 형성되는 시장을 공략하는 데도 한계를 보였다. 제품이 25∼30%의 마진을 보장해주는 대리점 유통 채널을 거치다보니 판관비 부담이 없는 영세 사업자들이 내놓는 중저가 제품보다 여전히 30∼40% 비쌌다. 게다가 인테리어 사업자를 공략해야 하는 대리점들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주력 사업이었던 건설사 특판이 크게 줄자 2005년을 기점으로 매출이 급격히 감소하는 외형축소 현상이 나타났다. 특판 매출 감소분을 상쇄할 만큼 중저가 브랜드와 인테리어 가구 매출의 성장이 기대만큼 따라주지 못했다. 결국 2005년 매출액은 전년보다 무려 742억 원이 줄어든 3886억 원으로 감소했다. 기존 유통 채널과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그대로 유지하며 제품의 질과 가격을 동시에 낮추는 전략으로는 중저가 시장을 제대로 공략하기 어려웠다. 가격 경쟁에서의 열세를 뒤집지 못한 채 고급상품이라는 한샘의 브랜드 이미지만 훼손하는 어정쩡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2006년에도 한샘의 매출은 전년보다 6억 원이 줄어든 3880억 원에 머물렀다. 매출이 2년 연속 하락하자 회사에 위기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한샘이 탄탄한 재무구조와 수익성 중심의 경영을 하지 않았다면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불가피했을 정도로 큰 타격이었다.
 
 

 

③기존 대리점 중심 유통 채널 혁신 시도
한샘은 2005, 2006년의 경험을 통해 단기간에 사업모델을 전환하고 성장모델을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중장기 목표를 내걸고 변화와 혁신에 나섰다.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조직 문화를 바꾸는 일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중저가 시장 공략을 위해서는 제품 가격만 낮추는 식이 아니라 기존의 유통 채널과 서비스 등 가치사슬 전반과 조직 문화를 혁신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한샘은 과거의 실패에서 배운 교훈을 토대로 2008년 하반기 새로운 사업모델을 다시 선보였다. 이번에는 제품 가격을 내리면서 기존의 핵심 역량이던 대리점 유통 채널에까지 손을 댔다. 본사가 대리점을 거치지 않고 인테리어 사업자를 바로 상대하는 ‘인테리어 키친(Interior Kitchen·IK)’ 사업이었다.
 
한샘은 전국 2만5000개 인테리어 사업자를 1차 고객으로 설정했다. ‘본사-대리점-인테리어 사업자’로 이어지는 유통 경로를 ‘본사-인테리어 사업자’로 단순화했다. 대리점 대신 인테리어 제휴점 채널을 확보해 유통구조를 단순화하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시도였다. 영업의 프로세스도 본사 영업 담당자가 대리점을 거치지 않고 개별 인테리어 사업자를 상대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그 결과 중저가 시장 제품과 가격 차이도 10%대로 좁아졌다. 2010년 7월 현재 한샘은 전국 인테리어 사업자의 10% 정도인 2500개를 제휴점으로 확보했다.
 
품질, 브랜드, 가격 경쟁력을 갖춘 IK 제품으로 인테리어 전문점 중심의 소비자 리모델링 시장을 공략하자 실질적인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난공불락처럼 여겨지던 중저가 시장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IK 사업은 2009년 금융시장 불안과 내수 침체 속에서도 전년 대비 308.3% 증가한 391억 원으로 성장했다. 이 결과 2009년 연 매출 5000억 원 돌파의 효자 노릇을 했다. 기존 230여 개 대리점 중심의 유통 채널은 ‘키친바흐’ 등 고가 제품을 중심으로 시장을 세분화했다.
 
김동성 한샘 홍보팀 대리는 “현재 주문 물량이 크고 부엌 공사를 모두 한샘에 소개해주는 우량 인테리어 점포는 약 500개 정도로 추산된다”며 “앞으로 우량 제휴점을 3000곳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3.
성장을 위한 비즈니스프로세스 혁신
①성장을 가로막는 문제 파악 순항하던 IK 사업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지난해 하반기였다. 사업의 성장세가 눈에 띄게 둔화됐기 때문이다. 매출액 1조 원 시대를 열 성장 동력인 IK 사업의 활력이 떨어지자 뼈저린 실패의 기억과 위기감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한샘은 시장 진입에 성공한 IK 비즈니스의 성장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비즈니스 프로세스 전반을 혁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먼저 본사 IK 담당 영업직원과 제휴 인테리어 사업자를 대상으로 현재 IK 모델의 문제점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 결과 “IK모델은 유통구조를 대리점에서 인테리어 제휴점으로 바꾸고 가격을 기존 시장의 영세 브랜드와 비슷한 가격에 내놓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는 비즈니스 프로세스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영업사원들이 저렴한 상품을 판매하면서도 과거 대리점 판매 방식대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영업 프로세스를 그대로 밟아야 했다.
 
한샘은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하고 해법 찾기에 나섰다. 부엌유통사업본부의 총책임자였던 노지영 상무가 본부장 자리를 내놓고, 백의종군의 심정으로 TF팀을 맡았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비장한 각오였다. 매출액이 3000억 원대로 떨어졌던 2005년의 악몽을 털고 매출 1조 원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승부수였다. 노 본부장과 5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TF팀은 한샘DBEW디자인센터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해법 찾기에 들어갔다. 이 팀은 제품이나 서비스로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대응에서 벗어나 제품 생산, 유통, 고객서비스 전반에 걸쳐 비즈니스 프로세스 혁신을 모색했다.
 

 

②고객 상담 프로세스를 3단계로 개선
TF팀은 먼저 IK사업의 고객 상담 프로세스를 면밀히 분석했다. IK사업의 고객 상담 프로세스는 모두 6단계였다. 고객이 상담을 요청하면 영업사원들은 고객 부엌의 치수를 재는 실측 상담을 한다. 이어 설계도면을 그리고 고객과 설계 상담을 시작한다. 설계 상담이 끝나면 견적을 내고 협의한다. 견적 상담이 끝난 뒤에 계약 상담과 시공이 이뤄진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려면 고객을 적어도 대여섯 번은 만나야 했다. 본사 영업사원, 인테리어 업체, 고객이 이 과정을 협의하면서 최종 시공까지 10여 일 이상 걸렸다. 중저가 제품인데도 과거와 같은 고객 상담 프로세스를 밟다보니 영업사원의 실적이 구조적으로 일정 규모 이상을 넘어서기 어려웠다. IK사업 성장 정체의 근본원인이 비즈니스 프로세스의 병목 현상에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장우순 부엌유통사업본부 차장은 “기존 방식으로 본사 영업사원이 IK 부엌가구 20세트를 판매하려면 고객과 100번 이상 상담해야 한다. 영업사원이 하루에 세 명꼴로 고객과 상담하는 셈이다. 게다가 물류, 시공, 감리를 하고 새로운 영업망도 발굴해야 한다. 프로세스를 바꾸지 않고서는 물리적으로 매출을 늘리거나 신규 고객을 발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TF팀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고심했다. 먼저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테리어 제휴점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본사 영업사원이 설계, 견적 등의 과정을 담당하는 식으로 바꾸는 시도를 해봤다. 심지어 저가 상품을 판매하는 영세 사업자들이 사용하는 방식까지도 벤치마킹했다. 하지만 모두 근본적인 대안은 될 수 없었다. 겉으로 보이는 고객과의 상담 프로세스는 줄었지만 영업사원 등 본사 백오피스의 부담이 오히려 더 늘었다. 인테리어 제휴점의 마진을 확대하는 인센티브 방식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샘은 고객 상담과정 프로세스를 정보기술(IT)을 이용해 단순화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검토했다. 고객의 선호도를 반영한 부엌가구 세트를 표준화하고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면 까다로운 설계와 견적 상담 프로세스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TF팀은 국내 아파트 거주자의 80%가 20,30평형대에 산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작은 평형대 아파트의 부엌 구조는 ‘ㄱ자’ 형이나 ‘ㄷ자’ 형으로 비슷했다. 한샘은 30여 년 넘게 부엌가구 사업을 하면서 쌓인 부엌가구 설계 노하우를 토대로 국내 20,30평형대 부엌구조에 맞는 4800여 개의 부엌가구 세트 모듈을 데이터베이스화했다. 인테리어 제휴점을 방문한 고객들이 컴퓨터에 부엌 치수를 입력하고 해당되는 세트 모듈 중 맘에 드는 세트를 선택하면 자동으로 설계와 견적이 이뤄지는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한샘은 TF팀의 결론을 토대로 2010년 7월 ‘한샘 이노(INNO)’ 키친 브랜드를 선보였다. 이 결과 고객이 부엌 실측 데이터에 맞는 타입의 부엌가구 세트를 컴퓨터 화면에서 7,8번 클릭하면 곧바로 견적과 계약 조건을 얻을 수 있도록 상담 프로세스가 단축됐다. 설계 상담과 견적 상담을 하지 않고도 3단계 프로세스만으로 계약 상담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 결과 실측 상담 이후 시공까지 사나흘이면 모든 과정이 끝났다. 기존의 절반 미만으로 공기를 단축한 것이다.
 
장 차장은 “한샘 이노 데이터베이스의 세트 모듈이 국내 20,30평형대 아파트 부엌의 98% 정도의 구조를 포함할 수 있다”고 말했다.
 
 

 

③디자인, 생산, 가격의 토탈 혁신
한샘 이노 키친은 고객상담 프로세스만 혁신한 것이 아니다. 4800여 개 부엌가구 세트 모듈에 맞게 생산 프로세스도 바꿨다. 과거에는 고객들이 부엌가구에 들어가는 부엌장 등을 모두 골라야 했다. 고객의 주문이 다양했기 때문에 부엌장의 종류도 60여 개나 됐다. 생산이나 물류도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한샘 이노 키친은 다양한 부엌 사이즈에 맞춰 이미 설계된 부엌가구 세트 전체를 고르는 식이다. 고객은 전체 세트를 고르고 약간의 부분 변형만 선택한다. TF팀은 모듈화를 위해 60여 개에 이르던 부엌장의 종류를 20개로 정리했다.장 차장은 “모듈화를 통해 생산 시간이나 비용이 약 20% 절감됐다”며 “주문 물량이 늘어날수록 생산시간은 더 빨라져 기존 방식의 절반으로 단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프로세스에 맞게 제품 혁신도 동시에 진행했다. 손잡이 등의 마감재를 최소화해 시공이 간편하고 디자인이 뛰어난 유럽 스타일을 채택했다. 부엌장과 천장 사이의 마감재인 ‘서라운딩’을 없앤 파격적인 디자인을 도입해 공사 시간을 두 시간 정도 단축했다. 기존에는 부엌가구를 시공하려면 8시간 정도 걸렸다. 오후 12시에 시작한다면 오후 8시께 공사가 끝나게 되는 셈이다. 저녁시간까지 공사가 이어지면 저녁 식사나 잠자리를 준비해야 하는 소비자의 불만도 커지게 된다. 하지만 두 시간 정도 단축하게 되면 저녁 식사 전에 공사를 끝낼 수 있다.
 
한샘 이노는 품질을 낮춰 가격을 인하하는 과거의 중저가 전략이 아니라 제품 디자인, 생산 공정, 고객 상담, 시공 등 비즈니스 프로세스 전반을 혁신해 품질과 브랜드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이 결과 한샘 이노 브랜드 제품은 비슷한 사양의 저가 제품과 비교해 가격 차이가 부가세를 포함해 5% 이내로 줄게 됐다. 한샘이 지속적으로 추구했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한샘은 한샘 이노가 기존 IK 사업 매출액의 세 배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고객이 저렴한 가격에 편리하게 원하는 디자인을 직접 선택해 고를 수 있도록 표준화된 부엌가구 세트 모델을 제공하는 한샘 이노 모듈화 방식을 다른 사업 영역으로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장 차장은 “제품, 가격, 비즈니스 프로세스 모두를 바꾸는 ‘토탈 혁신’은 한샘 이노가 처음”이라며 “초기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교훈을 토대로 부엌가구는 물론 인테리어 가구로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4.7가지 서비스 혁신 성공요인
①변화를 위한 기초체력 확보 한샘은 2002년 이후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매출액이 700억 원 이상 줄어드는 외형 축소의 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및 경기 침체를 겪었다. 한샘은 이 같은 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사업모델로의 변화를 멈추지 않았다.
 
이는 한샘이 탄탄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수익성 경영을 지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규 사업 발굴에 실패해 매출이 급격히 감소할 때 수익성마저 훼손됐다면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또 새로운 사업은 역풍을 맞고 좌초했을 수도 있다.
 
최 회장은 “지금까지 견지한 경영의 원칙은 수익성이다. 대형 건설사라도 수익이 나지 않으면 사업을 걷었다. 중저가 시장에 진출하더라도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안 된다.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해 무너진 중소 부엌가구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2009년 한샘의 매출액영업이익률과 매출액순이익률은 각각 5.1%, 4.2%로 산업평균 3.0%, 1.4%를 웃돌고 있다. 자기자본순이익률(ROE)도 13.9%로 산업평균 7.9%보다 뛰어나다. 부채비율도 84.6%로 산업평균(161.2%)보다 낮다. 2009년말 현재 현금보유액은 629억 원이다.
 
②새로운 서비스 시스템 개발 서비스 모델은 직접 고객을 상대한다는 점에서 생산한 제품을 유통 채널을 통해 고객에게 전달하는 제조 모델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고객이 원하는 바도 저마다 다르다. 이 욕구를 충족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필연적으로 비용 부담이 따른다. 결국 고객을 만족시키며 비용을 최소화해야 하는 문제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변화를 원하는 기업은 이 문제를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조직에 관한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한샘은 인텔 브랜드를 통해 인테리어 제휴점을 공략하면서 과거와 같은 대리점 유통 모델을 유지했다. 이 결과 원가 경쟁력에서 비()브랜드를 압도할 수 없었다. IK 사업을 시작하면서도 비슷한 실패를 반복했다. 영업사원들이 저렴한 제품을 판매하면서도 과거 대리점 판매 방식과 동일한 시간과 비용이 드는 영업 프로세스를 그대로 유지했다. 이 결과 매출액이 목표만큼 늘지 않는 성장 한계에 부딪혔다. 한샘은 제품 생산, 유통, 고객 서비스 전반에 걸친 변화의 필요성을 깨닫고 프로세스를 바꿔 나갔다. IK 사업을 시작하면서 대리점 유통 채널을 건너뛰는 시도를 했다. 한샘 이노 키친 브랜드를 통해서는 IT를 이용해 모든 부엌가구 세트를 표준화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해 세트 모듈화를 시도했다. 이 결과 설계와 견적을 단시간 내에 끝낼 수 있게 됐다. 고객 맞춤형의 대량 생산체제인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Mass Customization)’ 개념을 사용해 부엌가구 세트를 이미 설계된 세트대로 모듈화하고 생산과 유통에 적용했다.
 
③기존 조직, 관행과의 갈등 해결 제조업체가 새로운 서비스 모델을 도입할 때 기업 내 오랫동안 누적된 제조업 중심의 관행, 기업 문화가 변화를 막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한샘도 새로운 전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존 브랜드와 채널과의 충돌이라는 문제에 직면했다. 한샘은 이를 밀란, 네오밀란, 인텔, IK, 한샘 이노 등의 중저가 브랜드 상품을 새로 내놓는 방식으로 고객을 세분화하고 기존 고급 브랜드 시장과의 충돌을 최소화했다.
 
기존 사업 조직과 새로운 조직간 갈등 및 브랜드, 종업원, 구매, 생산, 채널과 같은 자원의 공유도 새로운 사업에 걸림돌이 된다. 브랜드 이미지, 고객과 채널의 혼란, 서로 다른 목표 등이 대표적인 갈등의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갈등의 정도가 심하고 공유할 수 있는 자원의 종류가 적으면 조직을 분리하는 편이 낫고, 반대로 공유자원이 많고 갈등 정도가 약하면 같은 조직 내에 있는 게 유리하다. 분리하게 되면 새로 설립된 조직이 독자적인 비즈니스 프로세스, 문화, 평가 시스템을 신속하게 정착시키고 시장에 적응할 수 있다. 반면, 모기업의 자원을 공유하기 힘들고 조직 간의 시너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한샘은 새로운 조직을 설립하고 단기간에 사업모델을 전환하는 급진적 혁신(Radical Innovation)보다 점진적으로 변화를 확산시키는 혁신 모델을 선택했다. 기존 조직 내에 새로운 사업부를 신설하는 방식으로 조직끼리의 시너지를 노렸다. 이 과정에서 대리점 유통망 등 기존의 핵심역량도 최대한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중저가 시장 초기 기존 대리점을 통한 시장 진출을 꾀했지만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해 번번이 한계에 직면했다. 한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리점을 건너뛰어 본사가 직접 지역 인테리어 전문점과 제휴하는 IK 모델을 도입했다. 이는 기존 대리점의 반발을 불러왔다. 한샘이 인테리어 제휴점을 직접 공략하고 직매장을 내기 시작하자 가장 수익성이 뛰어난 전국 2000여 곳의 대리점 유통 체계가 흔들릴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부 대리점주들은 “인테리어 사업자를 중심으로 중저가 시장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본사가 직매장까지 내 대리점 시장이 고사할 처지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한샘은 최 회장은 물론 창업자인 조창걸 명예회장까지 나서 대리점주 설득에 나섰다. 이들은 지방까지 돌며 대리점 사장을 대상으로 “시장은 이미 인테리어 사업자를 중심으로 한 리모델링 시장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이 시장을 놓치면 한샘도 망하고 대리점도 망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대리점을 통한 인테리어 사업자 공략 전략인 인텔 브랜드가 이미 실패했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한샘은 새로운 사업모델이 대리점 시장을 위축시키는 자기잠식 효과를 피하기 위해 부엌가구 대리점 시장은 ‘키친바흐’ 등의 고가 제품 중심의 브랜드로 차별화했다. 인테리어 가구 대리점은 신혼부부, 직매장은 그 이상 연령대로 차별화하는 식이다. 대리점에서는 키친디자이너(KD)로 불리는 직원들을 두고 고객의 니즈를 최대한 반영한 상품을 설계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샘은 부엌가구 컨설팅 서비스의 표준화를 위해 고객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77가지 설문항목을 토대로 실측 프로세스를 수립하고 매뉴얼화했다. 이 설문항목을 토대로 KD가 개별 고객에게 적합한 부엌가구 맞춤 컨설팅을 해준다. 전업 주부는 조리 공간, 직장인은 수납공간을 더 배려하는 식이다.
 
본사가 홈쇼핑 사업을 통해 받은 고객 주문도 대리점 몫으로 돌렸다. 새로운 사업 모델이 도입되면서 일시적으로 매출이 감소하는 대리점 사장들의 매출을 챙겨주기 위해서였다. 이 결과 오히려 본사와 대리점의 매출이 모두 늘어나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④고객 중심의 조직 문화 구축우리 회사에서 제일 중요한 말은 ‘고객 중심’이다. 고객 접점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제조업은 이 ‘고객 중심’ 마인드가 없다. 한샘은 오랫동안 조직문화에 서비스를 이식하는 작업을 해왔다.”(최 회장)
 
한샘의 올해 경영화두가 ‘고객 감동 차별화’다. 중기 목표로 ‘단골 고객 50%’라는 수치까지 제시했다. 그리고 이를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한샘 본사 사무실 벽 게시판에는 매달 고객 감동을 펼친 우수 사원의 스토리가 내걸린다. 가치 창출의 원천이 제품에서 시스템으로, 이제는 ‘고객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들고 팔면 그뿐’이라는 제조업 마인드를 버리는 게 가장 급선무였다.
 
한샘은 먼저 고객과의 접점을 크게 여섯 가지로 정리했다. 제품, 매장, 광고판촉, 영업직원, 시공직원, AS직원이다. 제품은 품질과 디자인을 높이고, 매장은 고객 경험을 유도하는 인테리어나 직원 서비스를 강화하면 된다는 계산이 섰다. 광고 판촉의 질도 비용을 들여 높일 수 있다. 문제는 사람이었다. 특히 영업, 시공, AS 사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한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3년께 AS직원을 대상으로 고객감동 포인트 제도를 도입했다. AS직원들이 수리를 마친 뒤 고객에게 만족도 평가를 받게 하고 이를 개인별로 포인트로 환산해 관리하는 제도였다. 도입 초기 AS직원들의 반발이 거셌다. 제품에 문제가 있어 AS를 신청한 고객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제도가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회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편지, 엽서, 홈페이지에 올린 고객들의 의견을 종합해 포인트로 환산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그리고 이 제도를 영업 직원은 물론 자회사인 한샘서비스원의 시공 직원으로까지 확대했다. 이어 직매장 직원과 본사 직원이 아닌 대리점 직원들도 대상에 포함시켰다.
 
‘고객 감동’ 경영을 제도화하자 직원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직원들이 고객을 어떻게 감동시킬 것인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한 AS직원은 “AS를 마치면 고객이 음료수를 내줄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고객에게 폐를 끼쳤으니 오히려 음료수를 사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커피를 사들고 고객을 방문했다. 적극적인 AS직원의 태도에 놀란 고객들은 홈페이지에 사연을 올렸다.
 
AS 직원들은 고객이 요청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이고 문짝경첩, 배수구, 가스레인지, 후드, 수도 등과 같은 부엌에서 발생하기 쉬운 ‘5대 항목’을 함께 점검하는 ‘플러스 원’ 서비스도 시작했다.
 
최 회장은 “고객 감동포인트 제도를 도입한 초기에는 일부 직원들이 아는 사람들을 동원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게 하는 부작용도 나타났다”며 “부작용을 처벌하기보다는 우수 사례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인센티브를 줬더니 조직원들의 태도가 차츰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샘의 서비스에 감동했다며 김밥, 장난감 등과 같은 선물을 사서 본사를 찾아오는 고객이 월 70∼80명이나 된다”며 “직원들 덕분에 나도 고객에게 그림을 선물 받았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⑤성과 시스템을 통한 변화 관리
한샘은 고객 중심의 서비스 경영을 조직에 정착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고객 만족이 성과로 이어지도록 제도화하는 방안을 고심했다. 한샘은 당시 고객 만족도를 5점 척도로 나눠 ‘매우 만족’에 대한 응답률을 높이는 ‘매우만족률’ 지표를 운용하고 있었다. 직원들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매우만족률’은 높아졌지만, 구체적인 성과와의 인과관계는 불확실했다.
 
김원철 CS기획팀 차장은 “만족도 조사를 통해 ‘AS 후 청소를 하지 않으면 고객 불만이 나온다’는 서비스 개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만족도가 성과로 이어지도록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막연했다”고 말했다.
 
한샘은 2007년 만족도와 성과를 연계하기 위해 고객 데이터를 심층 분석하고 단골 개념을 정립했다. 고객의 구매패턴을 분석한 결과 구매 후 90일 이내에 본인 또는 다른 고객 추천을 통한 재구매가 일어나는 비율이 50∼6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이내 재구매율은 70∼80%, 1년 후가 20% 정도로 분석됐다. 이는 ‘내구성 소비재인 가구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재구매가 일어날 것’이라는 이전까지의 막연한 추측과는 다른 결과였다.
 
김 차장은 “서비스에 만족한 고객은 신속하게 재구매를 일으킨다는 점에 착안해 단골 고객을 대상으로 재구매를 높이는 방안을 고민하게 됐다”며 “실제 재구매 패턴을 분석한 결과 서비스에 만족한 고객이 주문한 가구가 들어오기도 전에 다른 고객을 추천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5000
억 원의 벽을 돌파한 한샘은 앞으로 3년 내에 매출액 1조 원 돌파라는 중기 목표도 내걸었다.
 
최양하 회장은 “지금까지 새로운 성장모델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매출 목표 달성이) 앞으로는 더 쉬울 것”이라며 “IK, 인테리어 직매장, 온라인의 세 가지 성장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①IK 매출액, 현재의 3배로 한샘은 숱한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중저가 시장 공략모델인 IK 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매출액을 현재보다 세 배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끊임없는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IK 사업팀 내에서는 “외부에서는 성장 속도가 빠르다고 얘기하지만, 내부에서는 오히려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신규 시장인 인테리어점을 통한 중저가 시장 공략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품 가격을 내리거나 유통 구조를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기존의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치는 혁신이 필요했다. 2010년 7월 새로 내놓은 ‘한샘이노(Inno)’ 브랜드가 바로 매출액 1조 원을 향한 한샘의 비즈니스 프로세스 혁신 노력의 산물이다.
 
②‘이케아+홈데코’ 만들 것 이 회사는 또 가구, 조명, 욕실, 벽지 및 바닥재, 소품 등 인테리어 직매장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인테리어 가구는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가장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이다. 한샘이 1997년 새로운 성장 동력 육성을 위해 시작한 인테리어 사업은 4년 만에 동종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지난해에는 매출액 1795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이제는 특판 사업을 제외한 부엌가구 매출보다 더 크다.
 
한샘은 인테리어 가구와 소품의 원 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서울 방배·논현·잠실점과 경기 성남시 분당점 등 수도권에 4개 직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내년 9월에는 부산에 첫 매장을 내고 지방 인테리어 유통 시장 공략을 강화할 계획이다.
 
직매장 확대 외에 한샘은 부엌가구 제조업 모델에 익숙한 조직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도 고심하고 있다. 인테리어 가구는 대리점 유통 외에 본사가 직영하는 매장과 온라인을 통해 고객에게 직접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 때문에 조직 내부에 고객 지향적인 서비스 마인드가 중요해졌다.
 
인테리어 사업에서 성공하려면 한국적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 소비자들의 특징은 부품형태의 가구를 사서 스스로 조립하는 가구인 ‘DIY(Do It Yourself)’를 선호하지 않는다. DIY를 기본으로 하는 이케아 모델이 한국에서 쉽지 않은 이유다. 유럽 최대 인테리어 자재 유통회사인 B&Q도 이 같은 한국 시장의 특성 때문에 고전하다가, 시장 진출 2년만인 2007년 결국 철수했다.
 
또 인테리어 건자재와 가구의 통합을 통한 신규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보통 아파트 공사는 골조 공사, 신발장·벽지·천장·욕실 등 인테리어 건자재 공사, 인테리어 가구 설치 등의 순으로 이뤄진다. 가구는 소비자들이 선택하지만 골조 공사는 건설사, 인테리어 건자재는 인테리어 업체들이 주로 맡게 된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선호하는 가구를 들여놓고 싶어도 바닥재, 벽지 등 시공된 인테리어 건자재와 어울리지 않아 포기하는 일이 벌어진다. 한샘은 이처럼 채워지지 않은 소비자 욕구에 주목했다.
 
최 회장은 “인테리어 건자재 전문점 홈데코와 인테리어 가구 전문점인 이케아를 합친 개념이 한샘이 추구하는 인테리어 사업의 콘셉트”라며 “브랜드 아파트에 한샘이 디자인한 인테리어 건자재와 가구가 들어가는 ‘인사이드 한샘’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현재 중소회사와 협의가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테리어 가구에 대한 한국 소비자의 니즈는 결국 원스톱 쇼핑 서비스와 공간 설계에 대한 컨설팅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인테리어 가구는 경쟁사 대비 제품 품질은 떨어지지 않으면서 가격은 30% 정도 싼 베스트셀러 제품을 내놓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③온라인과 모바일은 차세대 먹을거리 최 회장이 입사한 1979년부터 약 20년간 한샘은 부엌가구를 만들어 판매하는 제조회사였다. 유통 채널도 본사-대리점으로 단순했다. 하지만 소비자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시장 환경이 급변하면서 대리점 중심의 유통채널로는 성장이 어려웠다.
 
변화에 적응하면서 한샘의 현재 모습은 유통서비스 회사에 더 가까워졌다. 타깃 고객에 따라 대리점, 인테리어 전문점, 온라인, 홈쇼핑, 직매장 등 다양한 유통 채널을 확보하고 있다. 최근에는 온라인과 모바일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샘 내부에서도 온라인 가구 시장의 급성장에 놀랄 정도다.
 
“온라인 비즈니스는 큰 투자를 하지 않았는데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20대 등 젊은층이 인터넷 쇼핑을 했지만 지금은 중장년층도 한다. 앞으로 상품구매팀을 강화하고 상품을 보완할 계획이다. 올해 하반기에 월 50억 원 정도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최 회장)
 
한샘은 신세대 부부를 타깃 고객으로 한 온라인 가구 전용 브랜드 ‘하우위즈(HOWIZ)’를 내놨다. 온라인 제품 브랜드인 ‘샘(SAM)’에 이어 ‘샘베딩(SAM Bedding)’ ‘샘리빙(SAM Living)’ 등의 신제품도 속속 내놓고 있다. 브랜드에 따라 분산됐던 홈페이지도 한샘 대표 주소(www. hanssem.com)로 통합했다. 이 결과 온라인 매출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07년 173억 원에서 2009년 280억 원으로 증가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500억 원으로 늘려 잡았다. 올해 상반기에만 전년대비 57.3% 증가한 184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샘은 온라인 상에서 고객 기반을 확보하고 지속적인 고객 관계 관리를 하기 위해 인테리어 외에도 육아, 요리 정보 등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블로그인 ‘와이프로그(Wife-log)’와 인테리어와 관련된 사진과 시공사례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도 구축했다. 최근에는 가구업계 최초로 가구 카탈로그를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제작해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샘은 초기에 단골 고객 데이터를 토대로 90일 이내의 재구매 활성화에 주력했다. 2007년부터는 단골 고객 개념을 체계화하고 ‘연고소개 매출’ 개념을 새로 도입했다. 이는 컨설팅회사 베인앤드컴퍼니가 제안한 순고객추천지수(NPS·Net Promoter Score,회사 제품을 추천하는 고객의 비율에서 비추천 고객의 비율을 뺀 값)에 착안해 입소문을 통한 매출을 지표화한 것이다. 한샘은 연고소개 매출을 토대로 한샘의 서비스에 만족한 소비자의 소개로 발생한 매출을 계량화했다.
 
연고소개 매출을 영업사원 등의 인센티브와 업무 평가에 반영하는 평가시스템도 마련했다. 직접 고객을 상대하는 직매장 직원들을 대상으로는 연고소개 매출 금액, 점수, 피드백 등의 지표를 토대로 서비스 인센티브 제도도 도입했다. 대리점 평가나 직매장 점장 평가에도 연고소개 매출 지표가 반영됐다.
 
김 차장은 “연고매출 지표를 도입한 이후 직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한 번 보고 팔면 끝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직원들이 이제는 고객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식으로 인식이 전환됐다. 입사 한달 반 만에 연고매출을 올리는 직원도 나왔다. ‘우리 딸처럼 잘해줬다’는 메일이 왔다”고 말했다.
 
이 결과 고객감동지수와 연고매출이 동시에 상승하기 시작했다. 한샘의 연고소개 매출은 2008년 소비자판매 매출액의 10%로 증가했다. 2009년 연고매출은 700억 원 이상으로 늘었고, 연고소개 건수도 2만8000여 건으로 증가했다. 2010년 7월 현재 연고매출은 전체 소비자 매출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한샘은 3년 내에 이 비중을 5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⑥새로운 인적자원 육성 새로운 서비스 시스템은 기존 제조 중심의 인력과는 전혀 다른 인적 자원을 필요로 한다. 한샘은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내부 인력 양성 시스템을 바꿨다. 그리고 훌륭한 직원이나 경영자의 자질로 시장과 고객을 이해하는 능력, 상대방을 설득하는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제조 중심의 모델보다는 시장과 고객에 대한 이해력과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공채 시스템부터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현재 한샘에 사무직으로 입사한 사원들은 의무적으로 1년간 IK 영업을 해야 한다. 시장과 고객을 이해하고 설득하는 역량을 입사 초기부터 배양하기 위해서다. 실무 능력을 중시하는 평가 시스템도 도입했다. 예를 들어 디자인 관련 직군은 2007년부터 한달의 인턴십 과정을 거쳐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다. 한샘은 새로운 서비스 시스템 모델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로 디자인을 꼽고 디자인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디자인 인턴 제도는 한샘의 디자인 철학을 실행에 옮길 역량을 갖추고 있는 인재를 걸러내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서비스 품질 관리와 표준화를 위해 내부 인재육성 과정도 확대하고 있다. 고객과 직접 상대하는 직종을 대상으로 KD 코스, 인테리어 코디네이터 코스 등 내부 교육 과정을 개설했다.
 
⑦정보 기술 인프라 구축 한샘의 고객 중심 서비스는 IT를 활용한 우수한 경영정보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샘은 연고소개 매출제도를 도입하고 이를 경영정보시스템을 통해 제도화했다. 예를 들어 부엌가구 세트를 구입한 고객을 대상으로 시공 후 3일 내에 서비스에 대한 불만 여부 등을 묻는 ‘해피 콜’을 한다. 30일이 지나면 콜센터 직원이 전반적인 서비스에 대한 모니터링을 한다. 고객 상담, 시공, 사용 과정에 대한 견해를 입체적으로 묻는 식이다. 이 결과를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에 고객별로 입력, 관리한다. 고객 반응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시스템은 고객 서비스를 강화하는 경쟁력이 된다. 고객이 새로운 고객을 추천했다는 내용이 시스템에 입력되면, 곧장 이 추천 고객의 담당 영업사원 휴대전화로 이 사실이 전송된다. 이 문자 메시지를 받은 해당 영업사원은 추천 고객에게 감사 전화를 거는 식이다.
 
ERP 도입을 통해 회사의 가치사슬 전반의 효율성도 높아졌다. 한샘의 최대 강점 중 하나가 신속한 물류시스템이다. 한샘은 한 번 방문으로 부엌가구 설치 작업을 끝내는 1회 시공비율을 약 98% 정도로 유지하고 있다.
 
보통 부엌가구 세트를 하나 설치하려면 부엌장, 문 등 각종 가구 부품을 담은 약 60여 개의 상자가 필요하다. 한샘이 고정적으로 거래하는 협력업체는 100개 안팎이다. 다양한 부엌가구 부품을 제때 공급받아 시공하기 위해서는 내부 사업부와 협력업체 간의 효과적인 정보 공유와 업무 처리가 필수적이다. 한샘에서는 ERP를 통해 고객 주문 내용이 생산, 구매, 물류 부서로 실시간 전송되며, 외부의 2,3차 협력업체까지 전달된다. 주문이 들어오면 실시간으로 시공직원들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빈자리를 선택하게 돼 수요를 분산한다.
 
김홍광 한샘 생산기술연구소 부장은 “ERP 시스템의 도입으로 제품 납품과 시공 기간이 ‘3일 납기, 1일 시공’으로 줄었다”며 “업무의 정확성과 투명성이 높아지고 고객 주문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5.‘N=1’, ‘R=G’의 서비스 혁신을 위한
향후 과제
C.K. 프라할라드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저서 <새로운 혁신의 시대(The New Age of Innovation)>에서 새로운 기업 경영 변화의 트렌드로 5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가치는 제품 생산에서 소비자의 경험으로 이동하며 B2B와 B2C는 융합된다는 것이다. 고객 하나하나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N=1(Number=1)’의 개념이 중요해진다. 둘째,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개별 소비자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자원을 모두 갖고 있지는 않다. 기업들은 외부 원천을 통해 생산, 인력, 서비스와 같은 경쟁력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자원을 세계에서 조달할 수 있는 역량(R=G, Resource=Global)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새롭고 유연한 기업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넷째, 글로벌 생태계의 자원들을 지속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다섯째, 수만 명의 소비자들 중 단 1명의 소비자에게 초점을 맞출 수 있는 특별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한샘의 서비스 혁신은 ‘N=1’과 ‘R=G’로 나아가는 과도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한샘의 서비스 모델이 고객 중심 서비스로 전환하고 있지만 서비스 전 과정에 고객 참여의 폭은 제한적이다. 한샘은 제품 리스트에서 색상과 사양을 직접 선택하고 자신이 원하는 컴퓨터 부품을 골라 주문하는 델 컴퓨터의 모델과 비슷한 이노키친과 같은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와이프로그(Wife-log)’ 등 고객 커뮤니티를 통해 디자인이나 제품 아이디어를 얻고 서비스에 대한 피드백을 얻고 있다. 하지만 고객이 직접 가구를 디자인하고 주문하며 서비스 프로세스 전반의 가치 창출 과정에 적극 개입하거나, 이를 가능하게 하는 자원의 네트워크를 구축하지는 못했다.
 
최 회장은 “고객이 집 평면도를 보고 인테리어를 스스로 꾸미고 가구를 골라 구매하도록 하는 서비스를 구상 중”이라며 “현재는 회사가 제품을 디자인해 제공하지만 앞으로는 회사의 컴퓨터지원설계(CAD) 시스템을 소비자에게 개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원, 인력, 기술 등을 글로벌 시장에서 유연하게 조달하고 현지 시장을 개척하는 글로벌 역량도 필요하다. 한샘은 미국, 중국, 일본 등 해외 시장에 진출했지만 현재 중국과 일본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미국은 유통 서비스 모델로 진출한 반면, 중국과 일본은 건설사 특판 사업모델을 갖고 현지 시장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한국에서와 비슷한 수익성 악화와 경기 변동에 따른 리스크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최 회장은 “중국 시장은 기회가 큰데 엄청나게 어려웠다”며 “중국과 일본은 B2B 사업은 축소하되 인테리어 직매장 등 유통 사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편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장 국내 생산 설비에 투자할 계획은 없다. 2020년 한샘은 인테리어 가구 및 건자재 유통회사가 될 것이다. 생산직 직원보다 유통 서비스를 담당하는 직원이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고 밝혔다.
 
최 회장의 장기 비전은 2020년 한샘을 세계 500대 기업으로 키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특히 현재 과도기에 있는 서비스 혁신의 완성을 통해 새로운 사업모델을 정착시키고 유통 사업에서 성장 동력을 다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내는 물론 글로벌 인테리어 유통업체와의 경쟁도 이겨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 박용 박용 | - 동아일보 기자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설 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 연구원
    -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정책연구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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