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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Study

성도GL의 문화경영, 고객 직원 지역 간 창조적 소통을 가능케하다

신수정 | 62호 (2010년 8월 Issue 1)

Art & Business
“보드카 병 느낌이 좋아요. … 이걸로 뭔가 해보고 싶은데….”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이 1985년 보드카 업체 앱솔루트(Absolut) 관계자를 만나 이런 말을 한 후 보드카 병을 소재로 ‘앱솔루트 워홀’이란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데미안 허스트, 백남준, 키스 해링 등 400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앱솔루트를 소재로 창작 활동을 벌였습니다. 결국 앱솔루트는 ‘일개 보드카’에서 ‘문화의 아이콘’으로 격(格)이 높아졌습니다.
소비자들에게도 예술가에게 모티브를 준 ‘영감의 원천’을 구입한다는 정신적 가치를 제공했습니다. 기업의 재무적·사회적 성과가 높아졌음은 물론입니다. 글로벌 초경쟁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이제 브랜드와 제품의 격을 높여야 합니다. 소비자들도 단순히 제품의 속성(attributes)보다는 미적(aesthetic), 상징적(symbolic) 가치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미와 상징을 창조하는 예술이 주목받는 이유입니다.
이제 기업들은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술혁신(technology innovation)’에만 치중하지 말고 제품이나 브랜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상징혁신(symbolic innovation)’도 함께 추구해야 합니다. 국내 최고 전문가들과 함께 성공적인 문화예술경영을 위한 전략 및 솔루션과 우수 사례들을 종합했습니다.
 
 
 
1984년 어느 여름날, 미국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에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 손에는 와인, 다른 한 손에는 담요를 든 채 대부분 편안한 복장이었다. 인근 빌딩에서 근무하던 회사원들도 셔츠를 걷어붙이고 공원으로 향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이 뉴요커들의 표정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수만 명의 뉴요커를 센트럴파크에 삼삼오오 모이게 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 중 하나면서 뉴욕의 자랑인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였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매년 여름이면 센트럴파크를 비롯한 뉴욕의 공원에서 무료 야외 콘서트를 연다. 공원을 둘러싼 울창한 나무와 그 위로 솟은 마천루 속에서 공연이 절정에 오르면 하늘은 황혼에 물들면서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는다. 미리 준비해간 와인을 마시면서 연주를 듣는 사람, 담요 위에 누워 눈을 감고 음악을 음미하는 사람, 아이들과 박자를 맞춰가며 흥겨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 등 다양하다.
 
당시 씨티은행 뉴욕 본사에 근무하고 있던 김상래 성도GL 대표이사 사장은 이 풍경에 흠뻑 빠져들었다. 입장권이 비싸기로 소문난 뉴욕 필하모닉의 무료 공연도 감동적이었지만 그보다도 반바지 차림에 가족, 친구, 연인과 와인을 마시며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몰입하는 뉴요커들이 인상적이었다.
 
김 사장은 씨티은행 동료들과 이 공연을 같이 보면서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바로 뉴요커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스폰서가 자신이 다니고 있는 씨티은행이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이 뉴욕 본사로 출근한 첫날, 회사에서는 업무 교육이 아닌 브로드웨이 쇼 티켓을 줬다. 씨티은행은 뉴욕에 처음 근무하게 된 그에게 “뉴욕에 왔으니 뉴욕의 문화부터 먼저 아는 게 중요하다”며 200달러짜리 브로드웨이 쇼 티켓을 건네준 것이다.
 
김 사장은 뉴욕에 근무하면서 문화의 힘을 누구보다도 실감했다. 특히 문화와 예술에 대한 기업의 투자는 지역 주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내부 조직원들의 자부심까지 키워준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02년 부친이 운영하던 그래픽 솔루션 회사인 성도GL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문화경영을 본격화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게 문화 마케팅이다. 그 전까지는 주로 음주가무 접대가 관행이었지만 그는 과감히 문화 접대를 시작했다. 좋은 문화예술 공연을 예매해 고객사 임직원들에게 보여줬다. 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 프로그램도 가동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역 사회를 위해 경기도 파주 예술마을 헤이리에 복합 예술 공간인 ‘공간퍼플’을 세우고 헤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대한 후원을 지속하고 있다.
 
최고경영자(CEO)의 굳은 의지로 8년 넘게 문화경영을 지속해온 성도GL은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전체 직원 수가 60여 명 밖에 되지 않지만 올해 예상 매출액은 650억 원이다. 문화경영 이후 경영 성과도 매년 좋아져 2002년 300억 원대였던 매출액이 지난해에는 두 배 가량 불어났다. 외부에서도 문화경영의 성과를 인정 받아 2005년에는 기업혁신대상 국무총리상, 2007년 사회책임경영 부문 중소기업청장 표창, 지난해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중소기업중앙회가 주최하는 중소기업 문화대상을 받았다.
 
성도GL 김상래 사장, 문화사업 부문을 맡고 있는 김효린 마케팅 팀장과의 인터뷰 및 광범위한 자료조사를 통해 성도GL의 문화경영 성공 요인을 집중 분석했다.
 

문화경영, 행복한 일터를 만들다
김 사장에게 문화 경영이 무엇이냐고 묻자 “문화예술을 통한 이해관계자들과의 공감과 소통, 창조경영의 모멘텀”이라며 “문화 경영이야말로 창조적 소통과 윤리 경영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①업을 재조명하다
김 사장은 문화경영을 시작하면서 성도GL의 문화경영이 단순히 CEO의 취미생활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를 위해 직원들과 함께 문화경영이 왜 성도GL의 핵심 가치가 될 수 있는지를 탐구했다.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오랫동안 생각한 결과, 업(業)의 본질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 이전에는 단순히 인쇄용 필름, 기자재 판매로만 인식했던 회사의 핵심 가치를 문화와 연결시켰다. 성도GL의 비전이 ‘문화 콘텐츠를 세상에 구현시키는 일종의 문화지원 사업’이라는 가치관을 정립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우리의 신념’이다. 우리의 신념은 ‘성도GL은 개인과 조직이 가지고 있는 그래픽의 꿈과 상상을 세상에 구현하게 함으로써 인류문화 발전에 공헌하고자 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해 ‘문화경영을 통하여 고객과 지역사회에 대한 우리의 참여와 책임은 지속될 것이다. 성도GL은 그래픽 드림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문화발전에 공헌하는 그래픽 솔루션 파워하우스이다’로 끝난다.
 
김 사장은 전 직원이 문화경영을 강조하는 가치관을 공유하는 것이 문화경영의 시작이라고 봤다. 전략, 전술, 시장, 제품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전 직원이 공유하는 가치관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게 김 사장의 생각이다. 업의 재조명을 통해 문화경영을 기업 철학으로 격상시킨 것이다.

②문화가 생활이 되다
2005년 성도GL에 입사한 김효린 문화마케팅 팀장은 회사에 취직하고 생애 처음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에서 클래식 공연을 감상했다. 성도GL은 신입직원들에게 품격 있는 클래식 연주회를 가게 하는 것을 시작으로 매년 10회 가량 각종 문화행사를 체험하게 한다. 문화경영을 하는 회사로서 내부 직원들의 문화적 감수성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지난해 성도GL 직원들은 신년음악회와 송년음악회를 비롯해 재즈콘서트, 헤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 등 최소 8번의 문화공연을 관람했다.
 
직원들만 문화공연을 즐기는 게 아니라 직원들의 가족들까지 함께 한다. 특히 성도GL에서 후원하는 헤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에는 전 직원이 가족들과 함께 참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부부동반, 자녀동반 행사를 자주 기획해 직원 가족들끼리도 서로 잘 알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다같이 공연을 보고 온 다음날에는 주로 공연을 소재로 대화가 이어진다.
 
직원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려는 취지로 오페라 전문가, 큐레이터 등을 초빙해 문화 소양 교육도 시키고 있다. 8년 넘게 문화 공연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결과 이젠 문화에 조예가 깊은 직원들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졌던 클래식, 오페라 공연을 이젠 자발적으로 티켓을 구매해 감상하는 직원들도 생겼다. 감상에서 더 나아가 아예 기타나 재즈댄스 등 직접 문화활동을 하는 직원도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③Great Work Place
성도GL이 적극적인 문화경영을 펼치는 이유는 문화활동을 통해 직원들이 예술가들의 창조성과 감수성을 느꼈으면 하는 취지 외에 애사심을 높이고자 하는 이유도 있다. 애사심은 일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 결국 업무 성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김 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직원들이 문화를 제대로 향유하고 즐기기 위해서라도 복리후생에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성도GL은 웬만한 대기업 못지 않은 복리후생을 자랑한다. 4대 보험 가입 외에 직원 본인은 물론 배우자와 자녀의 의료비 지원을 위해 일반 보험에 가입해 의료 실비를 지원하고 있다. 자녀의 초등학교∼대학교의 학자금 외에 미취학 자녀의 교육지원을 위해 매달 10만 원씩 현금을 지급한다.
 
탄탄한 복리후생 제도 외에 행복한 직장을 만들기 위해 김 사장이 강조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그가 직원들에게 보이는 관심과 애정이다. 김 사장은 직원들에게 자주 친필로 된 편지를 보내거나 직원 가족들에게 전화를 건다. 여직원들이 결혼할 때는 예비 시어머니를 초청해 식사를 대접한다. 중소기업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어른들이 많아 결혼 후 회사를 그만두는 여직원들이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다. 시어머니를 만난 자리에서 김 사장은 성도GL의 각종 복리후생 제도를 설명하고, 해당 여직원이 매우 일을 잘하고 있는 인재라고 얘기한다. 고향이 지방이어서 서울에 혼자 올라와 자취하고 있는 직원의 부모에게는 전화나 편지를 통해 자식이 회사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출산한 여직원에게 최고급 미역을 선물하고, 결혼기념일에는 배우자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한다고 말하고, 생일에는 전 직원의 축하 메시지가 적힌 책을 선물한다.
 
적극적인 휴가 사용도 성도GL의 문화다. 아무리 실적이 좋은 직원이라도 휴가 일수를 채우지 않으면 승진 대상자에서 누락된다. 무조건 휴가를 가란 얘기다. 김 사장은 열심히 일한 직원일수록 떳떳하게 휴가를 쓴다며 휴가를 위해 백업 플랜을 만들어 실천하는 것도 중요한 역량이라고 말한다. 휴가 동안 동료의 업무를 대신 해주면서 다른 업무를 체험해볼 수도 있고, 자신의 일을 동료에게 맡김으로써 업무의 투명성은 물론 업무 개선점까지 발견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인사팀에서 수시로 휴가사용을 독려하는 메일을 보내고, 길게는 최장 한 달까지 붙여서 휴가를 쓰는 직원도 있다. 4주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직원은 에펠탑 사진을 근사하게 찍어 김 사장에게 선물했고, 이 사진은 그의 집무실 한쪽에 걸려있다. 김 사장은 직원과 CEO 간에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커뮤니케이션, 휴가를 적극 장려하는 조직 문화도 문화경영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성도GL의 문화경영은 실제 효과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4월 문화체육관광부, 숙명여대, 한국메세나협회 주관으로 실시된 문화경영 효과 조사에서 성도GL은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성도GL은 문화예술경영을 실시한 17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평균치보다 높은 충성도를 나타냈다.
 
동종업계의 평균 이직률이 30%인데 반해 성도GL의 이직률은 1∼2% 대다. 김 사장은 “문화경영을 한다고 해서 업무강도가 약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1인당 생산성이 동종업계보다 3배는 높다”며 “문화경영을 통해 직원들이 일할 땐 집중해서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행복한 직장 생활을 하도록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성도GL의 문화예술경영이 알려지면서 우수 인재들이 모이는 효과도 가져왔다. 기업의 이름이 알려지니 따로 홍보를 하지 않아도 지원자가 많아졌다. e메일을 통한 지원은 너무 많아서 우편 접수만 받는데 최근엔 한 명을 뽑는 신입사원 모집에 100명이 몰렸다.
 
문화마케팅으로 고객과 더욱 가까워지다
①신뢰의 파트너십
김 사장은 문화접대야말로 음주 접대, 리베이트와 같은 관행적인 불투명함을 없애주는 가장 생산적이면서도 윤리적인 방법이라고 믿는다. 지금은 주요 대기업들도 문화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지만 2002년 당시에는 많지 않았다. 처음 문화접대를 시작했을 때 기존 접대 관행에 익숙했던 일부 고객들은 아예 김 사장에게 “수억 원짜리 기계를 사줬는데 술 한잔 안 사느냐”고 노골적으로 협박하기도 했다. 김 사장은 감사의 표시가 제도권 내 합리적인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 문화접대를 밀고 나갔다. 술이 아니면 관계 형성이 되지 않는 문화를 근절하고, 문화마케팅을 통해 고객 가치 증진에 기여함으로써 고객들에게 평가 받자고 영업부 직원들과 다짐했다. 음주가무를 즐길 시간에 고객의 가치 증진에 도움이 될 창의적 대안을 더 생각해내자는 자세로 임했다.
 
처음엔 공연 티켓의 절반 가량을 날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오기로 했는데 정작 공연 당일 날 나타나지 않은 고객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름표도 미리 제작하기 어려웠다. 본인이 가지 않고 당일 날 부하 직원들을 보내는 고객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효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점차 고객의 가치를 우선한다는 문화접대의 취지에 동감하는 고객사들이 늘어났다. 또 부부동반 및 가족동반 초청 행사를 자주 하면서 고객사 임직원들의 부인들이 누구보다도 좋아했기 때문이다. 일부 고객사 대표의 부인들은 성도GL 홈페이지에 직접 감사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30년 동안 남편이 어떤 일을 하는지도 잘 몰랐는데 성도GL의 문화공연 초청 행사에 참석해 남편이 하는 일의 중요성은 물론이고 좋은 공연을 같이 봐서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초청해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헤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 때는 가족 모두를 초청하는데 주말에 온 가족이 헤이리에서 함께 클래식을 즐기면서 아버지가 하는 일에 대해 자식들이 자랑스러워 해 꼭 초대해달라는 고객들이 늘어났다. 가족들이 좋아하니 성도GL에 대해 호감을 갖고 문화접대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고객들이 많아졌다.
 
김 사장은 “나는 책임, 믿음을 갖고 문화 경영을 하고 있다. 사업을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탁월한 소통을 촉진하는 것이 바로 문화 경영이다. 문화가 주는 감동을 고객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싶다”고 말한다. 현재 전국의 인쇄/제판용 필름의 45%, CTP(Computer To Plate Digital) 출력장비의 30%가 성도GL의 제품이다. 해당 업계에서 유일한 토종 기업으로 선두 업체 자리를 지키고 있다.
 
②한국의 문화를 선물하다
성도GL의 주요 고객 중에는 외국인들도 많다. 김 사장은 과거에는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특급호텔의 양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하곤 했다. 그러나 본인이 손님으로 일본에 가면 스모 경기장에 데려가거나, 뉴욕에 가면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보여주는 식의 문화접대를 받으면서 외국 손님들을 위한 문화접대를 고민하게 됐다.
 
요즘에는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넌버벌(non-verbal) 공연인 난타와 점프 공연을 보여주고 창경궁을 함께 걷는다. 트래킹을 좋아하는 손님과는 북한산 등반을 함께 한 뒤 광화문의 빈대떡 가게에서 빈대떡과 막걸리를 먹는다. 돌아갈 때는 국산제품인 K2 등산화를 선물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에 대해 외국 손님 대부분은 환호한다고 한다. 프로그램의 내용도 좋거니와 한국의 각종 문화를 생생하게 체험하게 해주는 김 사장의 배려에 감동을 받는다는 것. 미술을 좋아하는 손님과는 한가람 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같이 본다. 김 사장이 외국 손님들에게 자주 선물하는 것은 한국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영문 사진첩, 배병우 작가의 소나무 사진집, 성악가 조수미, 소리꾼 장사익 씨의 CD다. 비싼 선물은 아니지만 모두 한국의 대표적인 예술가들로 손님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외국 손님들의 이러한 문화 체험은 끈끈한 사업 파트너십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문화경영으로 지역 사회와 소통
①예술을 통한 사회 환원
성도GL은 직원과 고객뿐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한 문화지원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2008년에는 50억 원을 들여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 연면적 1990㎡(602평) 규모인 복합 예술관 ‘공간 퍼플’을 세웠다. 공간 퍼플은 복합 예술 공간으로 다양한 미술 전시를 무료로 보게 한다. 미술관 운영 비용과 상주 직원들의 인건비로 전시회 비용을 제외하고도 연간 4억 원 이상이 든다. 지금까지 아오키 노에, 최만린, 이강소, 곽인식, 이우환 등 국내외 최 정상급 예술가들의 작품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예술을 통한 사회 환원을 실천하고 있다.
 
전시회가 있는 주말에는 관람객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감안해 상주직원 외에 성도GL의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조를 짜서 일손을 돕고 있다. 1년에 4∼5차례 가량 순서가 돌아오는데 직원들은 자기 차례가 되면 가족들과 헤이리를 방문해 상주직원을 돕는다. 일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바리스타인 상주직원으로부터 커피 만드는 법도 배우고, 관람객들과 함께 전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관람객들에게 전시회를 설명해주면서 큐레이터로서의 경험도 해본다.
 
한국메세나협의회의 중소기업 매칭펀드를 통해 지원하게 된 헤이리 오케스트라 후원도 2007년부터 꾸준히 지속하고 있다. 연간 두 번 열리는 오케스트라 공연 때는 직원, 고객 가족은 물론 해외 귀빈들도 초대해 한국 문화에 대한 저변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②직원과 함께하는 사회적 책임 성도GL은 삼더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삼더펀드란 아름다운 재단과 함께 2003년 설립한 낙후지역 아동들의 문화체험 활동을 위한 기금이다. 스마터(Smarter), 스피디(Speedy), 스마일(Smile) 등 ‘3S’를 더 하자는 성도GL의 삼더 정신에서 이름을 따 삼더펀드라고 지었다. 삼더펀드의 기금은 직원들이 매달 급여의 1%를 기부하고, 회사가 직원의 기부금액과 같은 금액을 기부해 만들어진다. 아름다운 재단과의 정기미팅을 통해 수혜 대상 선정에 직원들이 참여한다. 얼마 전에는 2년간 모은 1억4000만 원을 기부했다. 단발성 지원이 많은 가운데 펀드를 만들어 지속적인 후원을 한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부터는 수혜 대상 아이들을 직원들의 집으로 초청해 묵게 하는 홈스테이도 계획하고 있다.
 
성공요인 분석
①CEO의 확고한 의지
성도GL이 성공적인 문화예술경영을 실천할 수 있었던 비결로는 최고경영자(CEO)의 강렬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단기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 기업의 문화경영 특성상 CEO의 의지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성공적인 문화예술경영을 한 기업에서는 문화 CEO들이 있었다.
 
김 사장은 문화예술경영의 힘을 누구보다도 신뢰해 취임 직후부터 강력히 추진했다. 일부 직원들과 고객들이 “차라리 문화예술경영을 할 돈으로 다른 것을 하지”라고 말했을 때도 그는 굽히지 않았다.
 
문화경영에 대한 김 사장의 리더십은 VCM 리더십 모델로 설명할 수 있다. VCM은 V(Vision·비전), C(Commit-ment·몰입), M(Management Skill·관리)을 뜻한다. 그는 ‘문화경영을 통해 고객과 지역사회에 대한 참여와 책임을 지속할 것’이라는 비전을 갖고 문화경영에 몰입했다. 직원들이 문화경영에 동참하도록 각종 문화체험 프로그램과 문화교육을 통해 문화경영이 기업 경영 철학으로 완전히 뿌리내리도록 했다.
 
②문화경영을 향한 조직 내 높은 목표 일치성
조직 내 개인들 사이에 목표가 일치할 때 집단의 생산성은 높아진다. 이를 목표 일치성(goal congruence)이라고 한다. 성도GL은 문화경영이 전사적으로 목표 일치성을 갖도록 문화경영을 하나의 기업 철학으로 승화시켰다. 이를 위해 업의 본질을 탐구했다. 김 사장은 2002년 CEO가 된 뒤 가치관 정립에 온 힘을 쏟았다. 문화경영이라는 가치관을 모든 직원들과 공유하기 위해 노력했다. 필름, 기자재 판매 회사로만 인식되어 온 회사를 업의 재조명을 통해 문화 콘텐츠를 세상에 구현시키는 문화 창조 기업으로 바꾼 것이다.
 
기업의 경영 철학으로 문화경영이 자리를 잡자 직원들이 문화경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몰입하게 됐다.
 
③문화기업으로의 확실한 포지셔닝
지금은 문화예술경영이라는 단어가 일반화했지만 2002년만 해도 생소했다. 특히 문화예술경영을 실천한 중소기업은 드물었다. 처음에 문화접대를 시작할 때 고객들이 인정해주지 않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지속적이고 전사적으로 문화경영을 하면서 다른 경쟁업체와 차별화된 역량을 키울 수 있었다. 문화경영을 하고 있는 선도적인 기업으로 포지셔닝하게 된 것이다.
 
고객과 함께 하는 문화 프로그램을 하면서 문화기업으로서 좋은 이미지를 확립해 고객과의 관계도 유리해졌다. 중소기업의 어려움 중 하나인 인재 선발에도 문화기업으로서의 확실한 포지셔닝은 큰 도움이 됐다. 문화기업이라는 평판이 안팎으로 알려지면서 이에 호응하는 우수한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④고객-직원-지역 간 소통으로 시너지 창출
문화경영을 직원들은 물론 고객, 지역과 함께 해나가면서 소통의 저변을 확대했다. 김 사장은 고객을 가장 가까이 접하는 직원부터 문화와 친숙해져야 진심으로 문화경영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내부 구성원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쌓은 직원의 문화적 품격은 곧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무기라고 여겼다. 실제로 성도GL의 직원들은 고객과 문화공연 등을 관람하면서 고객과 더욱 긴밀히 소통하면서 커뮤니케이션 장벽을 허물 수 있었다.
 
고객은 물론 지역 사회를 위해 펼치고 있는 성도GL의 문화예술 지원은 문화 기업이라는 평가 외에 윤리적 기업이라는 평판까지 얻게 했다. 문화예술 단체를 대상으로 한 지속적인 스폰서십 활동으로 기업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부각되면서 직원들은 자부심을 느끼게 됐다.
 
⑤꾸준한 학습 통한 직원 역량 강화
김 사장의 철학 중 하나가 꾸준한 학습을 통한 개인의 역량 강화다. 직원들이 낮은 수준에서 단순히 공연을 관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화체험을 통해 리더십과 창조성을 획득할 수 있도록 문화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예술의 전당 수석 큐레이터를 초빙해 강의를 듣거나 각종 미술관 체험학습, 예술 강좌 등을 듣게 하고 있다. 지난해 1인당 교육비용은 약 300만 원 수준이다. 성도GL의 직원들은 연간 200시간 이상 교육에 참여한다. 개인의 선택과 부서에서 필요한 역량에 따른 외부강좌 교육과, 내부 교육으로는 직급, 업무, 교육 정도에 따른 맞춤 교육이 이뤄진다. 내년부터는 개인이 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작성해 반드시 이수한 뒤 이를 성과 평가에 반영할 계획이다. 김 사장이 직원들의 학습을 강조하는 이유는 지식역량 축적으로 고객이 기대한 것 이상의 만족을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김효린 마케팅 팀장은 “문화경영을 도입한 후 외부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저녁 접대 시간이 줄어들어 직원들 개개인이 자기계발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최윤선(22·연세대 심리학과4)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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