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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관리 트레이닝

루머 대처에 ‘노(No)’는 없다

김호 | 59호 (2010년 6월 Issue 2)

진로에 대한 악성 루머는 사실이 아닙니다.”
 
진로가 올해 3월 각 주요 일간지에 대대적으로 광고한 내용이다. 진로가 악성 루머로 고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 ‘진로는 일본 기업’이라는 소문이 돌자 진로는 경쟁사였던 두산소주의 광고 프로모션 대행사가 악성 소문을 퍼뜨렸다며 100억 원에 이르는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08년에는 같은 해 출시한 소주 ‘J’가 ‘재팬(Japan)’의 머리글자에서 소주 이름을 따왔다는 루머로 고생했다. 2009년 12월에는 진로의 대표 제품인 참이슬을 리뉴얼하면서 알코올 도수 20.1도의 ‘참이슬 오리지널’은 빨간색으로 19.5도의 ‘참이슬 후레쉬’는 파란색으로 제품 포장을 변경했다. 태극기의 빨간색과 파란색에서 따왔다는 이 아이디어는 오히려 엉뚱한 소문을 증폭시켰다. ‘참이슬 오리지널’의 빨간색이 일장기의 빨간색이라는 소문이 인터넷을 타고 확산됐기 때문이다.
 
악성 루머는 개인이나, 기업, 정부에 악영향을 끼친다. 온 국민을 슬픔에 빠뜨린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서도 ‘4대강 국면 전환설’ ‘인간 어뢰설’ ‘아군 오폭설’ 등 온갖 루머가 퍼졌다. 미국의 수입 쇠고기 파동, 대우자동차 판매, 아이폰, 수많은 연예인과 대기업 오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거의 매일 수많은 루머를 접하고 살며 누구나 한 번쯤 루머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영화배우 최진실도 악성 루머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처럼 루머는 때때로 단순한 소문 수준에 그치지 않고 심각한 피해를 끼친다. 기업의 위기관리 입장에서는 루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베스트셀러 <넛지(Nudge)>의 공동 저자인 캐스 선스타인은 루머의 전파 메커니즘을 세 가지 현상으로 설명한다.
 
첫째, 정보의 폭포(Informational Cascades) 현상이다. 이는 루머를 믿는 사람들의 숫자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믿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그 루머가 거짓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나타나기 전까지 계속된다. 이는 법정과 사회 여론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즉, 법정에서는 피고가 유죄라는 것을 밝힐 때까지 무죄이지만, 여론 속에서는 부정적 이슈로 인한 루머에 휘말리게 되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확실히 증명될 때까지 계속 부정적 여론이 형성된다.
 
둘째, 동조화 폭포(Conformity Cascades) 현상이다. 이는 때때로 루머를 사실로 믿지 않는 사람도 자신이 속한 집단의 사람들이 그 소문을 믿는 것이 대세가 될 경우, 자신의 의견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묵시적으로 그 루머에 동조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현상이다. 이는 거짓 루머가 확산되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셋째, 집단 극단화(Group Polarization) 현상은 한 루머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더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루머는 경영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기업을 괴롭혀왔다. 위기관리 전문가인 캐슬린 펀 뱅크스는 사실이 아닌 대표적 소문들로 P&G의 로고가 악마 숭배를 우회적으로 상징한다는 소문, 코로나 맥주에 소변이 들어 있다는 소문, 맥도널드 햄버거 안에 벌레가 있다는 소문 등을 들었다. 특히 펀 뱅크스는 1991년 벌어진 스냅스 레스토랑 체인의 사례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루머 관리에서 중요한 사례로 꼽힌다. 스냅스는 1990년 플로리다에서는 처음으로 포트피어스 지역에 레스토랑을 개설했다. 하지만 이 레스토랑 지배인이 에이즈에 걸려서 햄버거 고기가 오염되었다는 소문이 레스토랑의 주 고객인 그 지역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퍼졌고, 매출은 50% 급감했다.
 
이들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스냅스는 컨설턴트의 조언을 듣고 ‘정면 돌파’를 택했다. 즉, 소문에 대한 기자 회견을 열었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조치였다. 물론 몇 가지 전략적 조치를 취했다. 기자 회견 장소는 지역 보건소를 택했다. 또 보건소장이 기자 회견에 대변인으로 나와 레스토랑 지배인들에 대한 에이즈 바이러스 음성 반응 결과를 발표했고, 레스토랑의 안전성에 대해 얘기하게 했다. 언론은 매우 호의적으로 반응했다. 동시에 소문을 처음 만든 사람에 대한 정보 제공자에게 현상금을 내걸었고, 사설 탐정을 고용해 16세 여고생이 이 소문을 퍼뜨렸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하지만 이 여고생은 소문을 처음 만들어낸 사람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명예 훼손으로 고소할 수 있었지만, 스냅스는 대신 그 학생으로부터 사과문을 작성하게 해서 이를 전면 광고에 활용했다. 이들은 이 사건 후 레스토랑 이름을 바꿨다.
 
기업들은 루머에 대응하기 위해 보통 어떤 전략을 취할까. 심리학자인 디폰조와 경영학자인 보르디아는 2000년 PR 전문가들이 소문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한 논문을 ‘퍼블릭 릴레이션스 리뷰(Public Relations Review)’에 실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PR 전문가들 중 75%는 루머를 무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소문을 공식화해서 부정할 경우 오히려 소문이 더 확산될 것을 두려워해서이다.
소문에 대한 대응 방식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소문의 분류를 알아야 한다. 먼저 소문의 출처가 명확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다. 예를 들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건국대 송명근 교수의 카바 수술법(대동맥 판막 및 근부 성형술)과 관련한 논란은 한국보건의료원과 대한심장학회 등이 문제를 제기했다. 아직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로 양쪽 ‘설’이 대립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는 소문이나 설의 출처가 명확한 경우이다. 하지만 기업을 경영하면서 겪게 되는 소문의 대부분은 출처가 불분명하다. 이때는 소문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첫째, 소문이 ‘공개화’되었는지 여부를 따져야 한다. 이는 자사에 대한 소문이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공개적으로 다뤄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많은 소문은 공개화되지 않고, 가십 수준에서 머문다. 대표적인 게 대기업 오너의 여자 관계 등에 대한 소문들이다. 이처럼 가십화 단계에 있는 소문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소문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로나 대우차의 경우처럼 소문이 공개화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에는 보다 적극적인 반응을 고려해야 한다.

둘째, 언론이나 제3자로부터 소문에 대한 반응을 요청받는 경우에 ‘노코멘트(no comment)’로 일관하면 의심을 더욱 증폭시킨다. 위기관리 전문가들은 “노 ‘노코멘트(No ‘no comment’)’”라는 말을 한다. 이는 노코멘트라는 말이 가져오는 부정성에 대해 주의하라는 뜻이다. 보르디아, 디폰조를 비롯한 5명의 학자들이 2005년 연구한 결과를 보더라도 루머가 퍼져 있는 상황에서 기업이 ‘노코멘트’로 일관하는 전략은 루머를 그대로 두는 상태보다 비슷하거나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셋째, 루머가 파다하게 퍼져 있는 상황에서 기업이 자사를 보호하기 위해 그런 루머를 들어보지 못했다고 부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해당 기업으로서 당연히 그러한 루머를 알고 있을 텐데, 들어보지도 않았다고 부정하면 신뢰를 더 떨어뜨리게 되며, 오히려 루머를 사실로 확인해 줄 수 있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저희도 그런 루머를 들어보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정도로 반응하는 것이 좋다.
 
넷째, 루머에 대한 반박을 할 때에는 신뢰도가 높은 제3자를 활용하는 게 좋다. 스냅스의 케이스에서 보건소장을 대변인으로 쓴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루머의 피해자인 기업이 스스로 루머를 부정하면 대부분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진로의 악성 루머 반박에서도 주주 현황 데이터를 제시했는데, 신뢰도 있는 제3자의 목소리로 전달하는 것도 바람직한 전략이다. 캐스 선스타인도 루머 대응에서 객관적이고 신뢰받는 제3자를 활용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다섯째, 루머를 공식적으로 반박하기로 하고 루머 반박 메시지를 개발할 때, 단순히 반박만 할 것인가, 아니면 루머의 내용을 다시 한 번 공개적으로 확인하고 반박을 할 것인가의 문제는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보르디아와 디폰조 등의 연구 결과는 이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한다. 이 연구 결과를 진로에 대입해보면 진로는 두 가지 형태의 반박문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루머 내용을 다시 언급하지 않고 ‘진로는 순수 우리 기업이다’라고 발표하는 것이고(반박 전략), 또 하나는 ‘진로가 일본 기업’이라는 악성 루머를 진로가 직접 한 번 이야기하고, 이에 대해서 반박하는 형태이다(루머+반박 전략). 이 결과에 따르면 ‘루머+반박 전략’이 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왔다. 실무에서 컨설팅 경험을 접목해보면, 이런 상황이라 하더라도 루머를 확인하는 메시지의 양이 너무 많거나 자세한 것은 좋지 않다.
 
마지막으로 블로그 등의 소셜 미디어 시대에 루머의 관리가 더 힘들어졌다고 이야기하는데,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과거에는 개인 차원에서 전해지던 루머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로 공개화되는 세상에, 기업 역시 루머에 대한 대응을 공개적으로 해야 할 필요성은 증가했다. 특히, 소문 확산 세력이 루머를 계속 확산시킬 때에는 기업도 아예 소문을 직접 언급하고 반박해나가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 이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예가 GM의 팩츠 앤드 픽션(Facts & Fiction) 사이트 운영이다. 이들은 소비자들이 궁금해하는 루머를 공개적으로 신청을 받아 이와 함께 GM이 사실과 입장을 이야기해주는 식으로 관리했다. 구조조정과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조직 내부에서 이와 같은 채널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장기적으로 루머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쉽지 않겠지만, 루머에 강한 기업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예를 들어보자. 평소에 우리가 신뢰하고 관계가 좋은 친구에 대한 잘못된 소문은 믿지 않고 오히려 보호해주려는 것처럼, 기업도 이를 활용할 수 있다. 바로 기업 블로그와 같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평소에 열어놓고 꾸준히 소비자들과 대화를 해나가며 신뢰를 쌓아간다면 악성 루머가 발생할 때 상당 부분 보호받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루머에 훨씬 강한 기업이 될 수 있다. 결국 루머와 관련해 소셜 미디어는 기업에 병도 주고 약도 주고 있는 셈이다.
 
편집자주 위기는 ‘재수 없는 일’이 아니라 어느 기업에서나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위기관리 시스템을 철저히 정립해놓고 비상시에 현명하게 활용하는 기업은 아직 드뭅니다. 위기관리 전문가인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가 실제 사례들을 중심으로 기업의 위기관리 노하우를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직접 겪은 위기관리 사례를 공유하고 싶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김 대표의 e메일로 보내주십시오. 좋은 사례를 골라 본 글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 김호 김호 | - (현) 더랩에이치(THE LAB h) 대표
    - PR 컨설팅 회사에델만코리아 대표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공인 트레이너(CMCT)
    -서강대 영상정보 대학원 및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 교수

    hoh.kim@thelab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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