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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컨설팅 경제자유구역, 미래의 성장엔진

세계20개 경제자유구역에서 배우는 지혜-5가지 차별성이 ‘알짜특구’ 만든다

박용 | 58호 (2010년 6월 Issue 1)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의 경제특구 경쟁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수출 진흥 등 제한된 목적을 가진 과거의 경제특구 모델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제특구 실험도 진행되고 있다. 새로운 성장엔진을 확보하거나 침체된 지역 경제를 되살리고 경제 구조를 다각화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이 경제특구를 통해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와 모니터그룹은 인천, 부산·진해, 광양만 등 국내 경제자유구역 3곳을 포함해 세계 20개 경제자유구역의 경쟁력을 평가하고, 한국 경제자유구역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 특별취재팀은 또 중국, 싱가포르, 홍콩, 아랍에미리트, 폴란드, 인도, 스페인 등 7개 국가의 경제자유구역 현장을 직접 취재했다. 통계 자료와 문헌 조사 등으로 드러나지 않는 베스트 프랙티스를 확인했다.
 
1.알면서도 당하는 실행력
싱가포르는 고객보다 한발 앞서 제도와 인프라를 갖춘다. 싱가포르는 최근 영화 분야에서 세계 1위인 미국 뉴욕대의 티시예술대와 세계 5위권인 미국 채프먼대를 잇달아 유치했다. 과거 글로벌 기업의 지역본부를 유치하기 위해 세계 유수의 경영대학원 분교를 유치했듯이 싱가포르를 미디어산업의 허브로 도약시키기 위해 세계적인 교육기관 유치에 나선 것이다. 민간 투자사와 협력해 총 13억 달러 규모의 미디어 펀드도 조성했다. 미디어 산업이 성장하려면 막대한 규모의 제작비용을 조달할 수 있는 능력과 우수한 제작 인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루커스필름 등 콘텐츠 제작사들과 BBC, ESPN 등 유수의 미디어 기업이 싱가포르에 진출했고, 현재 7억 달러 이상의 자금이 미디어 프로젝트에 투자되고 있다.
 
가우텀 배너지 PWC 싱가포르법인 회장은 “잘 알려지지 않은 싱가포르의 성공 요인이 바로 실행력(getting it done)”이라며 “전문성을 갖춘 공무원들은 정책과 제도, 계획이 수립되면 이를 정해진 기한 내 어김없이 실행한다”고 말했다.
 
2.글로벌 스탠더드 이상의 고객 중심 서비스
두바이의 경제특구인 제벨알리프리존(JAFZ) 관리청의 아데티 찬구라니 홍보담당 매니저는 “사업자등록 갱신 등 인허가 업무의 80%는 온라인으로, 나머지 20%는 고객지원센터에서 ‘원 스톱’으로 해결해 준다”며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 경제자유구역 시스템을 수출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두바이는 고객가치를 높이는 차별화된 서비스에 주력하고 있다. 후발주자들이 세금 감면과 각종 혜택만 늘려서는 두바이를 따라잡을 수 없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JAFZ관리청은 입주 기업의 각종 민원을 한꺼번에 처리해주는 ‘아흘란’(아랍어로 환영한다는 뜻) 팀을 운영하고, 온라인에 입주기업들이 회사 소개, 상품 전시, 각종 무역 정보를 공유하는 가상 경제자유구역인 ‘JAFZ 링크(Link)’도 개설했다. 두바이 경제개발부 내에는 입주기업의 시장 개척을 지원하는 전담조직이 따로 있다. JAFZ는 1996년 세계 경제자유구역 최초로 국제표준화기구(ISO)의 9001:2000 품질경영시스템 인증도 받았다.
 
모하마드 알 바나 JAFZ관리청 부사장은 “고객의 성장이 우리의 성장”이라며 “‘가격 경쟁’보다는 글로벌 스탠더드보다 뛰어난 ‘두바이 서비스’로 승부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싱가포르 EDB는 해외기업이 찾아오기 전에 한발 앞서 움직인다. 세계 21곳의 해외 사무소를 운영하는 글로벌 운영그룹이 해당 지역의 투자유치 유망기업을 선정하면 업종별 전문성을 보유한 10개의 산업그룹이 맞춤형 지원 방안을 마련해 목표 기업의 문을 두드리는 식이다. 이는 지역별 담당부서와 사업별 담당부서가 유기적으로 협력해 성과를 높이는 ‘매트릭스(Matrix) 구조’로 일하기 때문에 경쟁자보다 한발 앞서 전략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
 
홍콩투자청의 운영 방식도 규모만 작을 뿐이지 고객과 업무를 중심으로 편성된 매트릭스 구조의 싱가포르 EDB와 판박이처럼 비슷하다. 홍콩투자청은 산업별로 구분된 10개 부서에서 100여 명이 근무한다. 27개 해외사무소도 가동하고 있다.

3.우수한 전문인력
싱가포르와 홍콩 현지의 전문가들은 “조직 구조만 흉내낸다고 해서 투자유치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끌어올릴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고객 지향적인 사고와 전문성을 갖춘 인적 자원부터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500여 명의 투자유치 전문가가 근무하는 싱가포르 EDB에는 기업의 전략기획실처럼 장기 전략을 고민하는 ‘두뇌집단’도 있다. 싱가포르의 성장동력을 고민하고 투자유치 전략을 수립하는 신사업그룹, 관련 정부기관과 협력해 투자유치에 필요한 각종 정책을 수립하고 다듬는 기획정책그룹이 EDB의 핵심 브레인들이다.
 
홍콩투자청 직원은 대부분 민간 기업 출신인 데다 영어 중국어를 포함해 3개 언어를 구사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실제로 금융담당 부서장은 GE캐피털에서, 물류담당 부서장은 DHL에서 10년 가까이 일한 베테랑이다. 민간기업에서 일하면서 쌓은 전문적인 지식과 노하우를 살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홍콩투자청 관계자는 “직원을 뽑을 때 부서장급은 해당 분야의 민간부문에서 최소 10년, 매니저급은 5년 이상 근무한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EDB는 최상위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민간기업 현직 임원을 참여시킨다. EDB의 이사회 멤버로도 활동하는 배너지 PWC 회장은 “PWC에서 EDB로, EDB에서 PWC로 수시로 인력이 이동한다. 싱가포르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고 말했다.
4.균형 잡힌 산업 포트폴리오
이번 경쟁력 평가에서 상위권을 휩쓴 싱가포르, 중국 등 ‘우등생’들은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균형 발전에 주력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최근 서비스업과 제조업의 동반 성장을 추구하겠다는 ‘두 개의 엔진’ 전략을 내놨다. 싱가포르는 금융, 물류 등 서비스업의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석유화학, 전자 등 제조업의 국내총생산(GDP) 비중도 20%가 넘는다.
 
제조업 중심의 대형 경제특구를 잇달아 건설하며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은 금융 및 무역 등 지식기반서비스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한국 기업으로 2008년 3월 이곳에 입주한 잘만테크 중국법인 장영기 부총경리는 “유해 물질을 배출하지 않고 선전 시가 인정하는 핵심 기술을 보유한 회사만 이곳에 입주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1980년 중국 최초로 경제특구로 지정된 선전은 과감한 체질 개선을 하고 있다. ‘선전 스피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계의 자본과 기업을 빨아들이며 1980년부터 2005년까지 연평균 27%씩 성장했지만 2006년 이후 성장세가 10%대로 둔화됐다. 선전은 재도약을 위해 인터넷, 바이오, 신에너지 등 3개 산업을 선정하고 과감한 투자를 시작했다. 선전경제특구 업무를 관할하는 선전시과기공무정보화위원회 가오린(高林) 부주임은 “향후 5년간 인터넷, 바이오, 신에너지 산업에 각각 5억 위안씩 모두 15억 위안을 투자해 5년 이내에 3개 업종의 경제 규모를 6000억 위안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고부가가치 산업 중심의 투자 유치에 주력하는 한국의 FEZ와 정면 승부가 불가피하다.

5.시장 환경에 맞는 유연한 정책
2010년은 중국이 선전을 시작으로 경제특구를 설립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강산이 세 번 바뀌어도 중국의 경제특구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시장의 변화를 읽고 이에 맞춰 발 빠르게 대처하는 유연함 때문이다.
 
초기 중국 경제특구의 전략은 값싼 노동력과 저렴한 용지 등 생산요소의 경쟁력을 앞세워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인 혜택을 제공하며 외국인직접투자(FDI)를 끌어 모으는 방식이었다. 선전은 2007년까지 국내 기업들엔 33%의 기업소득세를 부과한 반면 특구 내 외국 기업에는 15%의 낮은 세율을 적용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세계 500대 기업 중 166곳이 선전에 진출했다.
 
중국 로컬 기업들의 성장과 더 저렴한 생산 요소 경쟁력을 보유한 후발주자들이 추격을 시작하자 과거의 ‘중국 모델’은 한계에 부딪혔다. 선전은 2008년 역차별 논란을 불러온 외국 기업에 대한 일률적인 세제감면 혜택을 없앴다. 그 대신 업종별 인센티브 차별화로 전략을 바꿨다. 무분별한 인센티브를 지양하고 전략적 목표로 선정한 첨단 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국내건 외국 기업이건 핵심 기술을 보유한 첨단 기업에 대해서는 15%의 기업소득세를 적용하고, 최고 1500만 위안 규모의 장려금을 지급한다.
 
정치 논리에 휘둘리는 ‘무늬만 경제특구’ 경계해야
세계은행 산하 외국인투자 자문기관인 ‘FIAS(Foreign Investment Advisory Service)’는 2008년 ‘경제특구-성과와 교훈, 지역 개발에 주는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내놓고 바람직한 경제특구 개발 전략을 제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경제특구는 119개국 2301개로 1975년(25개국 79개)보다 30배 가까이로 늘었다. 화려한 경제특구의 성공 사례 이면에는 씁쓸한 실패 사례도 적지 않다. 시장 환경이나 기업의 수요와 무관하게 관료주의나 정치 논리로 특구를 지정·운영할 경우 실패 위험이 크다.
 
이집트나 시리아의 경제특구는 중앙정부에 권한이 과도하게 쏠려 토지 임대료를 조정하려면 정부 각료 회의까지 거쳐야 한다. 특히 이집트의 경제특구 관련 기관의 직원은 4000명이 넘는다. 투자 승인을 받으려면 40쪽이나 되는 문서를 준비해야 한다. 승인 기간도 1224개월이나 걸린다. 요르단 경제특구는 입주기업에 토지 소유권을 주지 않고 임차만 허용한다. 그 결과 기업들은 토지를 이용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다.
 
경제 상황이나 기업의 수요와 무관한 개발도 ‘무늬만 경제특구’를 만든다.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 경제특구는 늪지에 경제특구를 개발했다. 당연히 천문학적인 개발비용이 들어갔다. 과테말라의 솔리크 경제특구는 2만4000m²가 넘는 공장 용지를 개발해 놓고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아 2년 내내 용지를 놀리기도 했다.
 
취재팀은 인도 현지에서 경제특구의 난개발이 초래하는 문제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인도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05개의 경제특구(SEZ)를 보유하고 있다. 설립 허가를 받은 곳은 무려 575개로 양적인 규모는 단연 세계 최대다. 하지만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곳은 마힌드라그룹이 건설한 마힌드라 월드시티, 아다니그룹이 건설한 문드라 포트 등 대여섯 개에 불과했다. 인도 정부가 체계적인 경제특구 전략을 세우지 않은 채 허가만 남발한 데다 재정적자를 이유로 인프라 건설조차 민간업체에 맡겼기 때문이다. 일부 개발업체는 세제 혜택과 개발 차익만 노리고 인프라 투자는 뒷전이다. 경제특구에 대한 국민적 합의나 투명한 절차가 없다 보니 토지 선정을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는다.
 
인도의 사례는 경제특구 개발 과정에서 국가 차원의 청사진과 국민적 합의 선택과 집중 개발을 위한 안정적인 재원 마련 민간 개발업체를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투명한 절차가 필수라는 점을 보여준다.
  • 박용 박용 | - 동아일보 기자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설 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 연구원
    -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정책연구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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