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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중심 경영을 위한 전략적 시장 조사

‘애플은 안 하지만...’ 시장 조사는 경영 나침반

안상훈 | 55호 (2010년 4월 Issue 2)

시장 조사를 불신하는 애플이 잘 나가는 이유
배터리가 내장형인데다 배터리 소모 속도도 빠른 휴대폰이 있다. 때문에 외부에서 한 번 방전이라도 되면 속수무책이다. 제품이 고장 나 애프터서비스를 맡기면 내 단말기를 수리해주는 게 아니라 고장 수리가 이미 끝난 다른 사람의 중고 단말기를 대신 내준다. 요즘 세상에 이런 휴대전화를 살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이 제품이 바로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애플의 아이폰이다.
 
애플은 시장 조사나 소비자 조사를 하지 않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브랜드 전문가 로라 리스는 “다른 회사들과 달리 애플은 광범위한 소비자 조사를 하지 않는다. 1인 포커스 그룹, 즉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좋다고 하면 사업을 그냥 추진한다”고까지 말했다. 스티브 잡스 본인은 시장 조사에 떨떠름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레이엄 벨이 전화를 발명할 때 시장 조사를 했는가? 나는 단지 혁신을 바랄 뿐이다.”
 
과거 코카콜라는 달콤한 맛을 내세운 펩시콜라와 전면전에 돌입한 적이 있다. 코카콜라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뉴 코크’라는 새로운 맛의 신제품을 출시하기로 결정했다. 코카콜라는 뉴 코크에 대한 고객 수용도를 검증해보기 위해 400만 달러에 이르는 지출을 감수하며 대대적인 소비자 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소비자 조사의 골자는 고객의 눈을 가리고 맛을 보게 하는 블라인드 테스트였다. 조사 결과, 소비자들이 뉴 코크의 맛을 선호한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코카콜라는 자신만만하게 신제품을 출시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전국 각지 고객들로부터 신제품에 대한 엄청난 반발과 함께 진짜배기(the real thing)를 보존하라는 항의성 요구가 쇄도했다. 코카콜라는 채 석 달도 지나지 않아 뉴 코크를 시장에서 철수시키고, 기존 제품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다.
 
애플과 코카콜라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전자는 소비자 조사를 전혀 실시하지 않으며 고객의 갖가지 불만과 요구 사항을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는데도 큰 성과를 냈다. 반면 후자는 막대한 비용과 고도의 조사 기법을 동원해 신제품에 대한 고객의 수용성을 면밀히 조사했음에도 불구하고, 크나큰 실패를 맛보았다. 이쯤 되면 시장 조사의 필요성에 대해 근본적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실제로 일부 마케팅 전문가나 실무자들 중에서는 시장 조사 무용론을 외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면밀한 사전적 시장 조사 덕에 엄청난 실패를 회피할 수 있었던 사례나 새로운 기회 요인을 포착해 성공을 거둔 일들을 살펴보면 이런 무용론 또한 지나치게 성급한 판단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과연 올바른 시장 조사란 무엇이며, 기업은 시장 조사의 실효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해야 할까?

시장 조사, 왜 해야만 하는가
시장 조사의 실효성을 논박하기 이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기업이 왜 시장 조사를 필요로 하느냐는 문제다. 수단은 목적에 의해 정당화되고 평가될 뿐 그 자체로 해롭거나 이롭지는 않다. 기업이 고객으로부터 뭔가를 알아내기 위해 모종의 조사를 실시하는 이유는 고객 이해를 바탕으로 한 고객 중심 경영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고객 중심 경영의 정의는 <그림1>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기업이 자신에게 적합한 목표 고객을 찾아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그들이 원하는 수준과 방식으로 전달하려는 전략적 활동의 총체다. 고객 중심 경영은 고객이 자신의 필요에 맞는 최적의 제품과 서비스를 가장 적은 비용으로 향유할 수 있게 해준다. 마찬가지로 기업 또한 이를 통해 가장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하고, 차별적 경쟁 우위를 창출할 수 있다.
 
따라서 시장 조사의 필요성과 실효성은 현재 실시하는 시장 조사가 고객 중심 경영이라는 기업의 궁극적 목표에 기여할 수 있는지, 자사의 핵심 고객을 입체적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지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 이때 유의할 점은 고객에 대한 이해가 ‘입체적이고 정확’해야 한다는 점이다. 과연 입체적이고 정확해야 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
 
우선 ‘입체’는 고객을 특정 제품의 기능적 소비자로서 보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살아 숨쉬고, 느끼고, 활동하고, 욕구하는 존재 그 자체로 봐야 한다는 걸 뜻한다. 코카콜라가 대규모 시장 조사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실패를 본 이유는 코카콜라의 전통과 브랜드에 대한 목표 고객의 정서적 애착을 간과한 채 그들을 단지 단편적인 콜라 맛의 음미자로만 바라보는 조사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정확’은 고객의 요구 수준을 계량적으로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고객은 항상 어떤 제품을 원한다. 하지만 어떤 기능을, 얼마에, 어떠한 방식으로 원하느냐는 개별 고객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통상 이에 대한 조사는 잘 이뤄지지 않는다. 특히 첨단 기술이나 정보기술(IT) 산업의 기업들은 소비자가 항상 최신, 최고의 기술을 탑재한 제품을 원할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고객이 신기술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에만 지나치게 주목한 나머지, 이를 얼마나 원하고, 얼마에, 어떠한 방식으로 원하는지를 간과하다 큰 낭패를 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고객을 단 한 번에 입체적이고 정확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연인을 이해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을 생각해보자. 그는 매우 오랫동안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상대방을 탐색한다. 때로는 객관적 사실에 대한 자료 확인을 통해, 때로는 주위의 평판을 통해, 때로는 집요하고 긴밀한 대화를 통해, 때로는 느긋한 관찰을 통해 상대를 파악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한 개인을 이해하는 데도 이처럼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할진대, 기업이 추상적 개념의 무작위 다수인 대규모 고객 집단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하겠는가. 한두 번의 간헐적 시장 조사 결과와 그 성패를 놓고 조사의 신뢰성과 실효성을 논하는 일은 그 자체로 부질없다. 즉, 시장 조사의 유용성은 ‘개별 시장 조사가 고객의 의중을 제대로 드러내주는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기업이 고객을 입체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효과적인 탐색 체계를 지니고 있는가, 각각의 개별 시장 조사는 그 체계하에서 올바로 작동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판단해야 한다.

<그림2>는 전략적 고객 이해 체계하에서 각 시장 조사가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고객의 어떠한 면모를 어떠한 방법으로 밝혀내야 하는지, 이 과정이 고객 중심 경영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기업은 고객의 어떤 점을 알아내 어떤 변화를 이루어냄으로써 자사의 성과를 극대화할 것인지 명확하게 정의해야 한다. 그 다음 이에 부합하는 최적의 조사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이를 시장 조사의 3단계 방법을 통해 알아보자.
고객 중심 경영을 가능케 하는 3단계 시장 조사
시장 조사는 크게 3단계로 이뤄진다. 첫째, 고객의 인지 및 이용 행태를 자세하고 면밀하게 파악하는 단계다. 다양한 브랜드들이 경쟁하는 특정 시장 내에서 고객이 구매 의사결정 과정 및 제품 활용 과정상에서 중요시하는 요인들이 무엇인지를 인지적, 실질적 관점에서 규명하고, 이에 기초해 자사의 위치와 경쟁력을 평가하는 게 이 단계의 핵심적인 조사 및 분석 활동이다.
 
이 단계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방법은 정량적 설문 조사다. 조사 수행 방법이 간단하고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하기 때문에 응답자들이 이해하기 쉬우며, 통계적 검증을 통해 조사 결과를 일반화하기도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응답자의 기억과 표현된 말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잠재적 욕구를 심층적으로 알기는 어렵다.
 
나아가 고객 지향적 개선이라는 전략 목표에 비추어볼 때 이런 조사법은 2가지 오류를 낳을 수 있다. 첫째, 무차별적 조사의 오류다. 그 어떤 기업도 모든 고객을,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특정 브랜드나 특정 제품의 만족도를 조사할 때는 모든 고객에게 모든 항목의 만족, 불만족 요인을 균등하게 질문하면 안 된다. 해당 기업의 목표 고객이 자사의 전략적 경쟁 우위 영역에서 어떤 식의 만족, 불만족 요인을 지니고 있는지를 더욱 깊이 있게 질문해야 한다. 애플의 목표 고객은 젊은 층이며 핵심 경쟁 우위 요인 중 하나는 미니멀한 디자인이다. 이런 기업이 40, 50대 중장년층 고객에게 배터리 문제에 대한 만족도를 설문하는 일이 어떤 전략적 의미가 있겠는가. 이게 바로 스티브 잡스가 평면적인 시장 조사를 회피하는 주된 이유다.
 
기업의 핵심 전략이나 목표 고객과 연계되지 않은 무차별적 조사는 결과 왜곡은 물론, 해당 기업의 경쟁 열위 요인을 담당하는 부서에 대한 마녀 사냥을 초래하기 쉽다. 또한 자사의 핵심 우위 요인에 집중하기보다는 열위 요인을 개선시켜야 한다는, 즉 결과적으로 모든 사안을 무난하게 잘해야 한다는 식의 오류를 피하기 어렵게 만든다.
 
둘째, 즉흥적 조사의 오류다. 시장 조사를 통한 고객 중심 경영이라는 원래 목표를 달성하려면 각 조사 항목을 주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측정해야 한다. 개별 질문 항목이나 내용을 동일하게 유지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대다수 기업들은 이런 조사를 특별한 문제가 있을 때만 이벤트성으로 시행하거나, 해당 시기의 특정 이슈에 따라 조사 항목을 수시로 변경한다. 이는 특정 요인에 대한 고객 반응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게 만든다. 많은 기업들은 시장 조사 결과가 시험 성적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한다. 즉, 특정 시점에 특정 항목에 대한 고객 만족도가 몇 점이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게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지를 파악하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
 
이동통신 업체인 A사는 고객 가치 관리 전담 조직을 구성하여 전략적인 고객 만족도 조사를 실시했다. 우선 고객 가치 요소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구조화된 설문 항목을 개발하고 이를 상당 기간에 걸쳐 주기적으로 조사했다. 이때 자사에 대한 만족도뿐만 아니라 경쟁사에 대한 만족도도 함께 조사했다. 이 조사 결과를 분석할 때는 각 고객 가치 요소별로 고객 만족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자사와 경쟁사 간 고객 만족도 차이가 어떻게 변했는지도 세심하게 관찰했다. 고객 만족도가 하향세를 보인다든지 경쟁사와의 차이가 감소할 때는 그 근본 원인을 세밀하게 조사해 문제를 해결했다. 고객 만족도 상시 1위라는 성과는 이런 주기적이고 면밀한 조사 덕에 얻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언급한 2가지 오류를 피할 수 있다면 기업은 상대적으로 간편한 조사 방법을 통해 자신의 포지셔닝 전략에 부합하는 마케팅 요소들을 끊임없이 개선하며 경쟁 우위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시뮬레이션을 통해 고객의 구매 의사결정을 예측하고, 특정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효용 수준, 지불 의향, 수요 등을 파악하는 단계다. 즉, 기업이 기존 제품에 특정 기능을 보강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신제품을 출시할 때 고객이 이에 대해 얼마나 큰 가치를 느낄지, 그리고 그에 따라 얼마에 구매 의사결정을 내리게 될지를 계량적으로 예측하는 과정이다.
 
대부분의 마케팅 관리자들은 이 과정을 외면한 채 주관적인 감이나 업계의 관행에 따른 임의적 판단을 내린다. 혹은 어설픈 시장 조사 방법이 산출한 왜곡된 분석 결과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오류를 범한다. 하지만 이 단계의 조사 및 분석 방법이 잘못될 경우 고객 가치를 훼손시키거나 경영 성과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개선이 매우 시급한 영역이다.
 
신차를 개발한 자동차 업체 B사는 첫해 판매 목표를 30만 대로 정했다. 신차 가격은 동급 경쟁 차량과 유사한 1만 4750달러로 책정했다. 하지만 B사 내부에서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신차를 경쟁차의 가격에 빗대어 책정하는 게 타당하느냐’는 의문이 등장했다. 이에 B사는 신차에 대한 고객들의 지불 의향을 계량적으로 측정했다. 조사 결과, B사의 목표 고객은 신차의 가치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고, 평균적으로 1만 5500달러를 지불할 의향을 나타냈다.

이에 B사는 신차의 콘셉트를 경쟁차와 완전히 다르게 정의하고, 가격도 1만 5500달러로 책정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B사는 출시 첫해 목표 대수인 30만 대 차량을 팔았고, 한 대당 750달러의 추가 이익을 거뒀다. 고객의 지불 의향에 대한 계량적 시장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면 결코 추가 이익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며 시장 수급 조절 또한 실패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B사와 같은 최적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허술한 시장 조사 결과에 의존해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은 첫 번째 단계에서 사용했던 직접적인 설문 방식을 두 번째 단계에 적용해 구매 의도를 질의하면 자칫 왜곡된 결과를 얻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림3>에서 보듯 ‘어떤 제품을 얼마면 구매하시겠습니까’라는 직접적인 질문으로 고객의 구매 의사를 타진하면 고객이 관대한 답변이나 왜곡된 지불 의향을 표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계통 오차를 줄이기 위해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의 글렌 어반, 존 하우저 교수는 구매 의도 조사법으로 도출한 결과를 고객의 실질 수요로 해석하려면 일정한 가중치에 따라 보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설사 보정을 한다 해도 이 역시 정확한 수요 규모나 지불 의향을 산출해주는 건 아니므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
 
때문에 두 번째 단계에서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고객의 구매 의사결정을 시뮬레이션하는 방법을 취해야 한다. 설문 또한 “(가)라는 제품이 새로 나왔는데 이러저러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제품의 가격이 1000원이라면 구매할 의향이 있으십니까?” 대신 “이러저러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1000원짜리 (가) 제품과 지금 시중에 있는 900원짜리 (나) 제품 중 어느 것을 선호하십니까”라는 식으로 던져야 한다. 즉 고객에게 현실적이고 다양한 여러 가지 구매 대안을 제시하여, 그들이 특정 제품의 브랜드, 기능, 가격 중 어떤 속성에 얼마만큼의 효용을 느끼는지를 알아내는 컨조인트 분석법 등을 사용해야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이 단계에서는 다소 복잡할지라도 전문적인 통계 기법을 활용해 설문 결과를 분석해야 한다. 그래야 각 가치 속성별 고객의 추가 지불 의향, 고객의 포괄적 가격 민감도, 가격 변화 시 자사 제품의 시장점유율 변화 등을 비교적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그림4>는 어떤 생활 소비재 업체가 새로운 특장점을 지닌 신제품을 출시할 때 실시했던 컨조인트 분석의 결과다. 가격이 변화함에 따라 판매량과 매출액이 얼마만큼 성과를 보일지 그리고 책정된 가격에 따라 경쟁 브랜드의 고객 점유율이 어떻게 변화할지를 계량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 동태적 관점의 시나리오에 기초한 추가적 분석을 수행할 경우, 자사나 경쟁사 제품의 가격을 변화시킬 때 어떤 변화의 양상이 나타날지, 경쟁 브랜드가 유사한 모방 제품을 특정 가격에 출시할 때 어떤 변화의 양상이 나타날지 등을 모두 예측해볼 수 있다.

셋째, 고객이 말하지 않는 잠재 요구까지 파악해 시장 조사 결과를 고객 주도형 혁신으로 연결 짓는 단계다. 특정 제품에 대한 만족 및 불만족 요인이나 지불 의향을 넘어 목표 고객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를 그대로 관찰하고, 이에 기초해 특정 제품 및 서비스와 관련된 혁신 기회를 포착하는 단계다. 모든 선입관과 고정관념을 버린 상태에서 고객이 어떤 욕구를 지니고 있는지, 생활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제품을 활용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마케터가 사무실에서는 거의 생각해낼 수 없는 근본적이고 심층적인 혁신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단계다.
 
이를 위해 최근 흥미로운 고객 관찰 방식들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마케터가 목표 고객 집단이 모여 있는 특정 공간을 방문해 함께 활동하거나, 고객의 집을 방문해 생활 환경 정보를 파악하거나, 고객의 생활상을 비디오로 가감 없이 녹화해 분석하거나, 마케터가 아닌 소비자의 친구, 가족 등이 소비자의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하거나, 기업 관계자들이 고객을 연기하는 역할극을 하거나, 완전히 다른 이종 산업의 소비자들을 관찰해보는 방법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이런 행동 관찰을 넘어 고객의 심층 심리를 분석하거나, 특정 자극에 대한 두뇌나 동공의 반응을 측정하는 최첨단 방식들도 등장했다.
가장 기초적인 방식은 고객이 자사 제품을 구매하고 활용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방법이다. 펩시콜라는 슈퍼마켓에서 콜라를 구매하는 고객들이 유리병에 든 콜라를 매우 힘겹게 들고 다니는 모습을 관찰함으로써 코카콜라보다 먼저 페트병에 담긴 콜라를 출시한 바 있다. P&G도 고객들의 집을 방문해 세제 사용 행태를 관찰한 후에야 고객들이 드라이버로 세제 포장을 힘겹게 뜯어내고, 막대기를 휘저어 세제를 물에 풀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해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P&G는 고객의 사용 편의성이 한층 강화된 새로운 포장이나 물에 풀 필요가 없는 세제 등을 만들어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작업 이전에 P&G가 고객들에게 제품 사용에 대한 불만 사항을 설문 조사했을 때는 포장을 뜯는 과정이 번거롭다거나, 물에 푸는 과정이 번거롭다고 응답한 소비자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획일화된 시장 조사로는 고객이 말하지 않거나 고객 스스로도 몰랐던 내재 욕구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목적에 맞는 적합한 조사 방식을 활용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좋은 예다.
 
이보다 진전된 방식은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고객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방법이다. 1990년부터 할리데이비슨은 아예 민족학자와 인류학자들로 구성된 전문 팀을 마니아 집단 속에 투입시켜 그들의 오토바이 사용 문화를 내부자 입장에서 연구하게 했다. 체계화된 인류학적 연구 방법론에 따라 밀착 관찰을 한 결과, 할리데이비슨은 다음과 같은 바이커들의 문화적 특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자유주의, 애국심, 미국적 가치, 남성 우위 등으로 요약되는 종교적 특성의 그룹 문화. 둘째, 커뮤니티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형성된 복잡한 위계 질서 및 집단 구조. 셋째, 최하위 계층의 멤버가 집단의 사상 및 가치를 내면화함에 따라 핵심 멤버로 승인되어가는 사회화 과정 등이다. 이런 특질들은 오늘날 할리데이비슨만의 독특한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호그(HOG)라는 강력한 커뮤니티 체계의 밑바탕이 됐다.
 
최근에는 고급 심리 이론이나 과학 기술을 활용해 고객의 심층 심리나 신경학적 반응을 관찰하는 방법이다. 듀퐁은 팬티스타킹에 대한 여성 고객들의 심리를 분석하기 위해 선발된 일부 고객들에게 다양한 그림들을 제시했다. 해당 그림 중 팬티스타킹의 사용감을 가장 잘 표현한 그림을 선택하게 하자 고객들은 땅에 쏟아진 아이스크림, 플라스틱 포장 속에 들어 있는 말뚝, 고급 승용차 등을 선택했다.
 
듀퐁은 실험 참가자들이 이 그림을 선택한 이유를 심층 분석한 결과, 두 가지 결론을 얻었다. 첫째, 여성들에게는 쉽게 올이 나간다는 등의 이유로 팬티스타킹 사용을 꺼리는 심리가 존재한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티스타킹 착용을 통해 남성들에게 우아하고 섹시하게 보이고 싶어 하는 양면적 심리가 존재한다. 듀퐁은 이 발견에 기초해 광고를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과거에는 훌륭한 직업을 지닌 커리어 우먼이 주로 팬티스타킹을 입는다는 내용의 광고를 내보냈지만, 대신 섹시하고 유혹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집중 부각시키기로 결정한 셈이다. 이 변화를 통해 듀퐁은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미국 식품업체 캠벨은 대표 상품인 농축 수프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고객의 구매 촉발 요인이 무엇인지를 조사했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캠벨의 광고는 상품 판매량과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었고, 고객은 수프를 더 사 먹을지 말지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캠벨의 고객 통찰 담당 부사장은 이 결과에 실망하지 않았다. 그는 언어적 표현에 의존하는 전통적 면접 조사 방식 대신 고객들의 무의식적인 반응을 탐지할 수 있는 신경학적 조사 방법을 활용해보기로 결정했다.
 
캠벨은 선발된 40여 명의 고객들의 시선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카메라를 장착시키고, 피부 습도, 심박수, 호흡, 자세 등의 미세한 변화를 측정할 수 있는 특수 조끼를 입혔다. 이 장비를 착용한 고객들이 매장과 가정에서 상품을 구매하고 이용할 때 어떤 생체적 변화들이 나타나는지를 정밀하게 측정했다. 그 결과, 캠벨은 고객들이 가정에서 수프를 이용할 때 느끼는 따뜻하고 긍정적인 정서적 감흥을 매장에서는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부분을 개선시키는 게 매출을 증가시키는 핵심 요인임을 확인한 셈이다.
 
이런 판단과 각종 기술적인 데이터에 근거해 켐벨은 농축 수프 상품의 라벨을 다음과 같이 바꿨다. 즉 수프 그릇을 바꾸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김을 추가했다. 또 다양한 맛을 대표적인 컬러로 표현하여 고객의 식별을 용이하게 했다. 반면 별다른 정서적 감흥을 주지 못하는 스푼은 없애고, 지나치게 이목을 끄는 켐벨의 로고 또한 하단으로 재배치했다. 캠벨은 이런 라벨의 변화와 매장에서의 진열 방식 변화를 통해 매출을 상당히 증대시킬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라벨을 경험할 때의 생체 반응이 가정에서 수프를 이용할 때의 신체 반응이나 구매 의사결정을 내릴 때의 신체 반응과 유사한 양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고객 중심 경영을 하려면 먼저 고객을 입체적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전략적 고객 이해 체계에 기초해 필요와 목적에 맞는 적절한 조사 방식을 구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나아가 시장 조사의 결과를 기업 내부의 고객 관련 데이터 즉 거래 데이터, 고객 관계 관리(CRM) 데이터, 고객의 소리(VoC), 고객 제안 등과 결합해 통합적으로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3단계의 고객 이해 활동들을 반복해 자사만의 유기적이고 통일된 고객 관점(customer view)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관찰을 통해 확보한 기회 요인을 바탕으로 혁신 제품을 개발했다면 이에 대한 고객의 수용성이나 지불 의향을 시뮬레이션해 최적의 진입 전략을 세우고, 해당 제품이 시장에 어느 정도 안착하면 일상적인 시장 조사를 통해 고객의 활용도나 만족도를 측정해 보완해나가는 게 좋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는 기업은 고객에 대한 심층적인 정보와 통찰(customer intelligence & insight)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가장 원천적이며 모방하기 힘든 전략적 경쟁 우위 요소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마케팅 담당 임원(chief marketing officer)이나 고객 담당 임원(chief customer officer) 산하에 전략적 고객 이해 담당 조직을 배치해야 한다. 시장 조사에서 탁월한 역량을 갖고 있는 기업조차도 때로는 근본적인 고객 통찰을 확보하지 못할 때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각각의 기능 부서 즉 혁신 담당 부서, 마케팅 전략 부서, 고객 만족 부서 등이 당장의 필요에 따라 관련 시장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자신의 한시적 업무 자료로만 활용해버리기 때문이다. 시장 조사를 통해 확보한 고객에 대한 이해를 실질적인 고객 중심 경영의 기초 자료로 활용하려면 조직 구조상에서 통합적인 고객 이해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격려해주는 일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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