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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 위기와 효율성 지상주의의 한계

신동엽 | 51호 (2010년 2월 Issue 2)

현재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리고 있는 도요타의 위기와 이보다 더 큰 충격을 주었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20세기형 경영 패러다임이었던 효율성 지상주의 함정에 빠졌다는 점이다. 최근 GM 등 20세기 대량 생산 시대를 대표하던 기업들이 대거 몰락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지만, 도요타와 월스트리트의 위기는 가히 충격적이다. 한때 20세기형 경영의 한계를 극복한 듯 보였던 이 기업들도 결국 20세기 패러다임인 효율성의 덫(efficiency trap)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20세기 산업 사회의 핵심 가치는 효율성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효율성 지상주의는 치명적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20세기 산업 사회를 가능하게 했던 효율성 논리가 기업의 장기 생존과 경쟁력을 위협하는 덫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사이몬, 마치, 와익, 퍼로우 등 경영학의 전설적 거장들은 조직 경영에서 효율성 지상주의의 위험을 경고하고, 언뜻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는 여유와 느슨함의 장점을 강조하는 ‘의도적 비효율성(deliberate inefficiency)’의 필요성을 일찌감치 역설했다.
 
대량 생산 혁신과 효율성 지상주의
우리가 흔히 현대 사회라고 부르는 20세기 산업 사회와 20세기형 경영 패러다임은 1908년에서 1913년에 이르는 5년간 헨리 포드의 하이랜드 파크 공장에서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세기 후반 교통과 통신의 획기적 발전으로 촉발된 2차 산업혁명은 폭발적 시장 수요를 창출했으나, 대부분 기업들은 여전히 소수 장인들의 기술력이나 몸으로 때우는 식의 노동 집약적인 비효율적 생산에 의존했다. 1905년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자동차 총 생산량은 연간 5만 대에 불과했고, 그마저 당시로는 엄청난 액수인 대당 2000달러를 호가했다. 따라서 당시 자동차는 교통수단이라기보다 일부 부유층들을 위한 사치품에 불과했다.
 
이때 테일러가 제시한 과학적 관리법(Scientific Management)의 영향을 받은 포드는 하이랜드 파크 공장에서 표준화된 단일 모델을 컨베이어벨트와 교환 가능한 부품을 사용해서 조립하는 포디즘(Fordism) 생산 방식을 개발했다. 따라서 비숙련공이라도 단순 반복 작업만으로도 조립을 완수할 수 있었다. 포디즘은 전무후무한 효율성 향상을 달성했다. 일례로 1913년 12월에 포드가 컨베이어벨트 조립 라인을 세계 최초로 소개하면서 새시 조립 시간은 이전의 12시간 30분에서 2시간 40분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포드는 T형 자동차를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싼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었다. T형 자동차는 1914년 한 해에만 50만 대 이상 팔렸고, 1918년에는 미국 전체 자동차 시장의 절반을 넘어서는 점유율을 보였다.
 
포디즘으로 드디어 대량 생산 시대의 문이 열렸다. 대량 생산 시대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효율성 혁신을 가져왔다. 필자가 보기에 그 이후 현재까지 무수히 등장한 어떤 경영 혁신도 포드에 의한 대량 생산 혁명에 비견될 수 없다. 포드의 대량 생산 논리는 전 세계 모든 산업으로 급속히 확산되었고, 효율성 극대화는 20세기 100년 동안 모든 조직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경영 원리로 자리 잡았다.
 
포드의 효율성 극대화 논리를 한 단계 더 밀어붙인 것이 바로 오노 다이이치가 1950년대에 개발한 도요타식 생산 방식(TPS)이다. 도요타는 효율성의 논리를 품질과 재고 관리까지 적용해 무불량(zero defect)과 무재고(zero inventory) 경영을 추구했다. 도요타는 비효율성을 야기시키는 요인을 재작업, 애프터서비스, 리콜 등으로 엄청난 비용을 수반하는 품질 불량이라고 봤다. 이에 따라 별도의 품질 검사 인력이 아닌 현장에서 조립 작업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이 약간이라도 불량의 가능성이 보이면 조립 라인을 정지시킬 수 있는 ‘안돈(Andon) 시스템’과 노동자들에 의한 끊임없는 품질 개선 노력인 ‘카이젠(Kaizen)’을 도입했다. 또 다른 비효율성의 원인은 대부분의 대량 생산 기업들이 시장 불확실성에 대비해 관행적으로 유지하고 있던 3∼6개월 분량의 부품과 완성품 재고라고 봤다. 그래서 당장 사용할 부품만을 그때 그때 조달받는 ‘칸반(Kanban, JIT·Just-In-Time) 시스템’과 시장 수요의 변동에 따라 모델별 생산량을 조절하는 ‘혼류 유연 생산(multi-model flexible production) 시스템’을 도입했다.
 
즉 TPS는 포드가 시작한 효율성 혁명을 완성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도요타는 ‘종잇장같이 얇은 마진만 있어도 생존할 수 있다’는 극단적 가격 경쟁력과, 품질이 비용 효율성으로 연결되는 독특한 장점에 기반한 품질 경쟁력마저 갖추면서 2008년에 드디어 대량 생산의 원조인 GM과 포드를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업체로 등극했다.

효율성 지상주의의 한계와 21세기 창조 경제
그러나 도요타를 비롯한 20세기형 기업들에는 치명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것은 효율성 지상주의가 혁신과 품질 등 효율성 못지않게 중요한 다른 경쟁력들의 발목을 잡는 덫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효율성 지상주의는 무엇보다 갑작스런 시스템 붕괴를 초래할 위험을 안고 있다. 효율성 지상주의에 기반한 ‘효율적 복잡성’이 어떻게 월스트리트 체제를 붕괴시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필자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19호에 기고한 글에서 설명한 적이 있다. 도요타 생산 방식도 마찬가지이다. 무재고를 목표로 재고 관리 효율성 극대화를 추구하는 칸반 시스템은 수요 예측이 어긋나 재고 고갈(stock out) 상태를 맞으면 전체 시스템이 마비되는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다. 따라서 TPS를 채택했던 대부분의 기업들은 위험에 대비하면서도 과도한 재고 비용에서 오는 비효율성에 대처하기 위해 ‘무재고’를 포기하고 ‘적정 재고’ 수준 찾기에 부심해왔다.
 
또 극단적 효율성을 추구하면 적극적으로 아웃소싱을 하게 된다. 하지만 과도한 아웃소싱은 부품의 품질을 통제할 수 없게 만들어서 품질 위기를 초래해 가격과 품질의 동시 경쟁 우위를 추구하는 도요타의 시장 경쟁력을 붕괴시킬 위험도 있다. 특히 급속히 국제화를 시도할 때, 품질과 가격이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도요타 생산 방식의 전파와 체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이 수행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품질이나 비용 효율성에서 통제 불가능한 문제가 발생할 위험도 크다. 최근 도요타의 위기는 바로 와타나베 가쓰아키 전임 사장의 부품 비용 절감 운동을 위한 공격적 아웃소싱과 급속한 국제화 전략이 결합해 발생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즉, 도요타의 극단적 효율성 지상주의가 효율성의 덫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 20세기 효율성 지상주의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21세기 글로벌 초경쟁 환경의 가장 중요한 경쟁 원리인 창조적 혁신의 발목을 잡는다는 점이다. 포드의 T형 자동차 사례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듯이, 20세기 대량 생산 경제의 핵심 원리는 한두 가지의 경쟁력 있는 상품을 선택한 뒤 효율적 시스템을 통해 대량으로 반복 생산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 가장 많은 소비자들에게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을 제품을 가장 싼 가격에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가 게임의 룰이었다.
 
이에 반해 21세기 초경쟁 환경에서는 최근의 애플과 스티브잡스가 잘 보여주고 있듯이 창조 경제가 중요하다. 즉,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상품들을 끊임없이 경쟁자보다 먼저 만들어내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20세기적 효율성 지상주의는 창조적 혁신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상품이나 사업, 경쟁 우위를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현재 수익의 극대화를 통한 단기 성과 관점에서는 심각한 비효율성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래지향적인 창조적 혁신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과 실패의 확률이 높다. 투자 대비 비용 효율성은 그만큼 낮아진다. 또 창조적 혁신을 위해서는 단기 성과 창출과 별도로 시간과 인력, 자원, 역량의 투자가 필요하다. 이는 필연적으로 단기 성과 기준에서의 효율성을 저하시키게 된다.
 
효율성 지상주의를 추구하는 20세기형 기업들은 단기 효율성과 장기 창조적 혁신 사이에서 대부분 단기 효율성의 극대화를 선택하는 근시안적 학습(learning myopia)에 빠지게 되고, 그 결과 끊임없이 새로운 경쟁 우위를 남보다 먼저 만들어내어야 하는 21세기 창조 경제에서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최근 유독 20세기 세계 경제를 주도해온 전통적 강자들의 갑작스런 몰락이 잦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의도적 비효율성의 경영학적 미학
이에 대해 경영학과 조직 이론의 거장들은 일찌감치 효율성 지상주의의 한계를 경고하며, 경영자들에게 의도적으로 어느 정도 비효율성을 조직 내에 창출하라고 제언했다. 의도적 비효율성(deliberate inefficiency)의 장점을 강조한 대표적 학자들은 경영학은 물론 사회과학 분야를 통틀어 최고 거장으로 존경받는 사이몬 교수와 마치 교수다. 이들은 이미 1950년대 말 카네기대 경영대학 동료 시절에 꼭 필요한 최소 분량을 초과하는 여유 자원(slack)의 보유는 새로운 대안들의 공격적 탐색과 혁신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된다며 효율성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적정 여유 자원을 보유하라고 주장했다.
 
또 예일대 퍼로우 교수와 미시간대 경영대학의 와익 교수는 포드나 도요타의 경우처럼 조직 시스템이 약간의 여유 시간이나 동작 낭비도 없이 완벽하게 효율적으로 설계되면, 혁신이 발생할 가능성이 아예 사라질 뿐 아니라 오히려 예상 못한 작은 사건이 전체 시스템을 마비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이들은 조직 설계에서 구성 단위들이 제각각 따로 노는 콩가루 집안 스타일의 ‘분해(decoupling)’된 구조가 물론 최악이지만, 모든 구성 단위들이 완벽하게 효율적으로 설계된 ‘긴밀한 연결(tight coupling)’ 구조보다는 오히려 서로 독립적으로 따로 놀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긴밀하게 연결되기도 하는 ‘느슨한 연결(loose coupling)’ 구조가 최고의 조직 설계 방식이라고 제안했다. 이들은 어느 정도의 느슨함이나 여유, 잉여, 중복 등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비효율성의 지표라기보다는 혁신과 유연성의 필수 요건이라고 보았다.
 
물론 이들이 주장하는 ‘의도적 비효율성’은 경영 관리의 방만함과 실패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의도치 않은 비효율성(unwanted ineffi-ciency)’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최근 21세기 창조 경제를 선도하고 있는 애플, 구글, IDEO, 3M 등에서 강조하고 있는 ‘15 대 85 법칙’ 또는 ‘2 대 8 법칙’ 등은 바로 미래 혁신을 위해 당장의 단기 효율성의 15∼20% 정도를 희생하겠다는 창조 경영의 표현이다. 또 최근 혁신적 게임기 위(Wii)로 세계 게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닌텐도는 재무적 효율성을 추구하지 않고 보유 자산을 현금 계좌에 묶어두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로 인해 재무적 효율성은 낮아지겠지만 항시라도 창조적인 혁신 아이디어가 생겼을 때 과감하게 시도해보려면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닌텐도의 의도적 비효율성 전략 덕분에 닌텐도 위가 탄생할 수 있었다.
최근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한국 대표 기업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출중한 기술력과 스피드, 운영 관리의 탁월성(operation excellency)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플이나 구글처럼 위력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이는 20세기적 효율성 지상주의와 제조업 마인드의 잔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최근 세계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애플의 아이폰이나 아이팟, 아이패드 부품의 80% 내외는 삼성, LG 등 한국 기업들이 납품하고 있다. 즉, 이런 혁신적 제품들의 기술력은 한국 기업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익의 대부분을 애플이 가져가는 것은 한국 기업들이 아직 창조 경제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에서 애플을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숨쉴 틈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효율적으로 설계되고 치밀하게 관리되고 있다. 도요타의 최근 위기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런 20세기적 경영 패러다임을 아무리 완벽하게 구현한다 해도 21세기 창조 경제 시대를 선도할 수는 없다. 21세기 창조 경제를 지배하고자 하는 CEO들은 하루 바삐 20세기적 효율성의 덫에서 벗어나서 ‘한 송이의 완벽한 꽃을 창조해내려면 천 송이 꽃이 피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Let a thousand flowers bloom)’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캔터 교수의 조언대로 의도적 비효율성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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