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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정의 달인 만드는 6가지 기술

DBR | 51호 (2010년 2월 Issue 2)

당신은 친구와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근사한 레스토랑을 찾았다. 당신이 자리에 앉자마자 와인 소믈리에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이 이곳 레스토랑의 와인 관리를 책임지고 있다고 소개한 뒤 고급 와인이 즐비한 메뉴판을 건넨다. 그런데 200∼600달러 사이인 와인 가격 위로 모두 빨간 줄이 그어져 있는 게 아닌가. 와인 담당자의 한마디. “오늘밤 와인 가격을 흥정하실 수 있습니다. 손님이 원하는 와인 가격을 제시해주시겠습니까?”
 
믿기 힘들지 모르지만 ‘데이비드 버크 타운하우스’라는 뉴욕의 한 고급 레스토랑은 와인 애호가에게는 꿈 같은 얘기로 들릴 이 판매 전략을 작년 5월 실제로 선보인 바 있다. 주방장이자 레스토랑 주인인 데이비드 버크는 불황 타개를 위해 이 전략을 내놨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이 레스토랑에서는 차림표에 ‘세일’이라는 말만 적어넣은 게 아니라 이 와인 경매도 함께 선보였다.
 
과연 이 전략은 먹혔을까? 식당의 와인 담당자에 따르면 하루에 평균 5병의 와인이 최저 흥정가, 즉 레스토랑 측에서 흥정이 가능하다고 본 가격 하한선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높은 가격에 팔렸다. 맨해튼의 대다수 고급 레스토랑들은 2009년에 2008년 대비 평균 15%의 매출 감소를 겪었다. 그러나 이 유연한 가격 정책에 힘입어 데이비드 버크 타운하우스의 매출 감소율은 8%에 그쳤다.
 
이 일화는 요즘 추세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가격 흥정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기던 가게들조차 이제는 기꺼이, 혹은 적극적으로 흥정에 뛰어들었다는 것. 주택, 자동차 같은 씀씀이 큰 물건이 아니라 가구, 전자 제품, 와인, 보석 같은 ‘소소한 씀씀이’도 최근에는 흥정거리가 되고 있다. 옛날에나 통했을 법한 옥신각신 실랑이 끝에 서로 합의를 보는 흥정의 기술이 이제 그 귀환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꼭 흥정을 해야 하나?
일부 문화권에서는 시장이나 장터에서 으레 흥정을 해오던 관행이 산업화 이후에 일반 가게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미국이나 다른 여러 문화권에서는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실랑이는 자연스러운 관행이 아니며 가격 흥정은 자동차나 부동산에만 국한된다. 때문에 서구 국가에서는 가격 흥정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은 상품에 대해서는 흥정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일상 생활에서 흥정할 기회를 놓치고 있는 셈이다. 가격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게 행여 판매자를 난감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기도 하고, 흥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며, 어딘지 마음이 불편한 기분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어쨌든 당신은 돈을 절약할 기회를 놓친 셈이다. 2009년 5월에 실시된 소비자 조사 자료에 따르면 과거 6개월간 가격 흥정을 시도해 물건값을 깎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미국인 수가 66%에 달했다. 특히 호텔 숙박료 할인을 받은 응답자가 83%였다. 그리고 의류 및 휴대전화 이용료 할인이 81%, 전자 제품 및 가구 할인이 71%, 신용카드 수수료 할인이 62%를 차지했다.
 
이 정도는 아껴봐야 푼돈이라고 생각한다면, 상대적으로 위험 부담이 적은 목표를 놓고 협상의 기술을 연마해보는 것은 어떨까. 가전 제품 대리점에서 세탁기 가격을 잘 협상한 일을 계기로 직장에서도 중요한 업무 사항을 협상할 때 더 자신감을 갖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임대료, 이동 경비, 사무 용품 등을 협상할 때도 보다 회사에 유리하게 협상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게다가 요즘은 물건을 파는 사람도 배짱을 부릴 형편이 아니다. 손님과 흥정을 하느냐, 아니면 손님을 놓치느냐의 기로에 선 마당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꺼이 가격 흥정을 택하기 마련이다. 건물을 임대하거나 판매하는 사람들 역시 해고나 소득 감소 등으로 재정난을 겪고 있는 임차인이나 세입자를 붙잡아 두기 위해 기존 계약 조건을 다시 협상대에 올려놓기도 한다.
 
요즘 상황에서는 가격 협상 시 구매자가 판매자보다 유리한 위치일 때가 많다. 제대로 흥정을 해보겠다는 결심이 섰다면, 다음 6가지 전략을 염두에 두자.

1.당신은 어떤 카드를 쥐고 있는가 데이비드 버크 타운하우스의 와인 경매나 여행 중 우연히 들른 보석 가게에서처럼 흥정의 기회는 예기치 못한 때에 찾아오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아무런 또는 별다른 준비 없이 흥정에 뛰어들 수밖에 없지만, 대부분의 흥정에서는 미리 준비를 해가는 편이 유리하다. 텔레비전이 고장 나 급히 새 TV를 사긴 사야겠는데 제값을 다 주고 사기에는 억울한 생각이 들 때를 가정해보자. 가까운 전자 대리점을 찾기 전에 집이나 차를 산다고 생각했을 때와 동일하게 사전 조사를 해가면 어떨까. 만약 사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불필요하게 많은 돈을 지불하거나 만족스러운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다.
우선 배트나(BATNA), 즉 더 이상 협상이 불가능할 때 내밀 대안을 정하고 갈 필요가 있다. TV라면 온라인 판매나 TV 수리 등이 배트나의 예다. 와인 경매의 예에서처럼 뜻하지 않게 흥정이 붙었다 하더라도 배트나를 정할 만한 시간 여유를 벌 수 있다. 그러다 흥정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차림표에 없는 값싼 와인을 주문하거나 글래스 와인을 주문하는 대안도 일종의 배트나다. 협상이 결렬됐을 때 어떤 대안을 취할지를 미리 고민해뒀다면 흥정에서도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배트나를 미리 정해둔다면 협상 상한선, 즉 흥정을 통해 와인 1병, TV 1대, 세탁기 1대를 사는 데 얼마를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를 가늠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당신이 사고 싶어 하는 TV가 동네 전자 제품 대리점에서는 1100달러, 내일이 마감일인 가전제품 할인 행사를 실시하는 아마존닷컴에서는 900달러에 판매되고 있다고 가정하자. 단순 비교를 위해 부가세 및 운송료는 900달러에 포함됐다고 치자. 대리점을 찾기 전, 당신이 정한 배트나는 아마존닷컴에서 TV를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구매 당일에 바로 TV를 가져갈 수 있는 것과 배송 후 제품이 마음이 들지 않아 반송했을 때의 번거로움을 고려해 아마존닷컴보다 75달러 높은 가격인 975달러로 협상 상한선을 정할 수 있다.
 
2.상대방은 어떤 카드를 쥐고 있는가 이제 흥정을 통해 최상의 결과를 찾아내야 할 때다. 이때 어느 선까지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고 싶다면, 하버드대 교수인 디팩 마호트라, 맥스 배저먼이 <협상의 천재(Negotiation Genius: How to Over Come Obstacles and Achieve Brilliant Results at the Bargaining Table and Beyond)>에서 언급했듯, 상대방이 생각하는 하한선이 어디인지를 알아야 한다.
 
상대방의 배트나가 뭔지부터 살펴보자. 당신이 제시한 가격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는 어떻게 나올까? 대부분의 판매원들이 그렇듯 다른 손님이 오기를 기다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판매원에게 제품 판매가 얼마나 절실한 상황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얘기인데, 이는 매장을 한 차례 둘러보고 지금 이 대리점의 재정 상황이 어떠한가를 점쳐보는 것으로도 짐작을 해볼 수 있다. 대개 영업 실적이 나쁠수록 적극적으로 흥정에 나서기 마련이고, 고객이 원하는 가격에 맞춰주기 마련이다.
 
이 판매원이 얼마나 낮은 가격에 TV를 넘겨줄 것인가를 판단하려면 자동차를 살 때처럼 인터넷 판매가를 조사하고, 해당 매장에서 어떤 식의 가격 할인, 반송, 품질 보증 방침을 도입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라. 심지어 매장에서도 조사가 가능한데,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포장재에 찍힌 제품 출고일을 확인하는 일만으로도 이 상품이 얼마나 오래 팔리지 않은 상태였는지를 알 수 있다. 매장에서 오래 보관중인 물건일수록 판매원이 흥정에 적극성을 띤다.

3.협상의 순서 사전 조사 결과 당신이 원하는 TV가 최신 상품이었다고 하자. 인근 전자 제품 대리점을 방문해 협상을 한다면 아마존닷컴 가격인 900달러 선도 엄두를 내볼 만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은 협상 가능 범위를 의미하는 조파(ZOPA), 즉 900달러(대리점 측이 내세울 거라 예상하는 협상 최저선)∼975달러(당신이 생각하는 협상 상한선)의 협상 범위를 설정해야 한다. 따라서 곧 있을 협상에서 되도록 900달러에 가까운 협상가를 이끌어내는 게 당신의 목표다.
 
일단 조파를 정했다면, 이제 협상 성공을 위한 수순을 밟아나가야 할 때다. ‘소비자 조사’에서는 손님이 적은 시간인 개장 또는 폐장 시간에 맞춰 방문할 것을 권한다. 특히 월말이라면 영업사원들이 할당량에 신경을 쓸 시기이니 가히 적기라 할 수 있다. 일반 영업 사원이 가격 흥정을 할 만한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한 대리점에서라면 매니저와 협상을 벌일 수도 있다. 다른 손님들에게 들릴 만한 목소리로 흥정을 벌이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이때 매장 직원들은 다른 손님들이 행여 눈치라도 챌까 마음을 졸인다. 경쟁업체의 가격이자 당신이 설정한 배트나에 관한 최신 정보를 제시하고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는 것 또한 하나의 전략이다.
 
흥정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정중하고 솔직한 태도를 유지해야 하며 상대방이 거절 의사를 밝히더라도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개 가게들은 신용카드 결제에 따른 수수료를 부담하는 만큼, 결제를 현금으로 한다면 할인된 가격에 물건을 살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4.제안 가격 제시 원하는 제품 구매의 장단점을 꼼꼼히 제시한 후에도 판매자가 가격 할인 의사를 비치지 않는다면, 이제 본격적인 가격 흥정에 나서야 할 때다. “이번 주에 인터넷에서 TV 할인 행사를 하고 있더군요. 인터넷에서 더 싼 가격에 살 수도 있는데 여기서는 가격선을 맞춰주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이때 영업사원이 흥정에 나설 태세라면, 그리고 당신도 조파를 확실히 정했다면, 이제 가격을 제시해보자. “아마존닷컴에서는 900달러에 판매 중이더군요. 제가 현금으로 결제를 할까 하는데 그보다 싼 가격에도 가능한가요?”
 
만약 영업사원이 우리 매장은 인터넷보다 더 싼 가격은커녕, 그에 준하는 선으로 가격을 낮추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대답했다고 하자. 그 사원은 인터넷 할인 행사가 곧 끝나지 않느냐는 말까지 덧붙였다. 첫 번째 ‘밀고 당기기’에서는 당신이 열세에 놓였다 해도 상관없다. 어쨌거나 원래 매장에 붙어 있던 TV 가격인 1100달러보다는 더 싼 가격, 즉 당신이 생각했던 조파에 보다 가까운 수준으로 일단 매장 직원이 한 발 물러서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신이 사전 조사를 이미 하고 왔음을 상대방이 알게 된 만큼, 상대방도 당신의 흥정가를 100퍼센트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전혀 얼토당토않은 가격으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5.밀고 당기기 자, 이제 흥정이 시작됐다. 양측이 첫 번째 흥정가를 제시했고, 이제 밀고 당기기에 들어간다. TV 흥정에서 대리점이 제시한 첫 번째 제안가는 정찰가 1100달러다.
 
누군가에게는 신나는 일이, 또 누군가에게는 초조한 일이 될 수도 있는 흥정판이 벌어진 것이다. 이때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서는 나의 배트나가 무엇이었나를 다시 한 번 떠올릴 필요가 있다. 흥정이 잘 안 되더라도 물러설 곳이 있다면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 900달러까지 가격을 낮춰줄 수는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하자. “대신 75달러 낮춰서 1025달러에 드리겠습니다.” 애초에 당신이 정한 협상 하한선인 975달러보다는 50달러 높은 가격이므로 당신은 다시 한 번 협상에 도전한다.
 
“오늘 바로 구매를 할 테니 925달러에 주세요” 점원은 이번에는 대답 대신 제품 설명을 다시 늘어놓기 시작한다.
디팩 마호트라와 맥스 배저먼 교수에 따르면, 노련한 협상가는 어떤 흥정가가 들어왔을 때 바로 대답을 하기보다는 시간을 버는 쪽을 택하는데, 그래야 상대방이 초조함을 느껴 다른 조건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덥석 다른 조건을 제안하고 나서지는 마시라. 약삭빠른 흥정꾼이라면 상대방이 멈칫하다 다른 조건을 제시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점원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더라도 오히려 잘 된 일일 수 있다. 당신이 ‘난 다른 가게에서 알아보겠소’라는 시늉만 해도 그 점원은 당신을 붙잡을 가능성이 높다.
 
6.부수적 이익 챙기기 흥정에 관한 잘못된 상식 가운데 하나는 흥정의 대상은 단 하나, 가격뿐이라는 고정관념이다. 물론 가격만큼 중요한 게 또 있겠는가 마는, 가격 외에도 배송, 할부, 다른 상품 구매 등이 모두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는 직접적인 질문을 통해서도 가능하며, 디팩 마호트라와 맥스 배저먼의 표현대로 이른바 ‘부수적 합의’, 즉 다른 구체적인 사항에 대한 협의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TV 흥정에서 당신이 제시한 마지막 협상가에 대해 점원이 950달러 선 이하로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고 하자. 물론 당신이 미리 염두에 두고 있던 협상 범위 안에 드는 금액이다. 또는 975달러 선에서 합의를 보고 그 대가로 대리점 측에 당신이 쓰던 TV를 처분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인터넷에서보다 매장에서 직접 TV를 구매할 의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원 또는 매니저가 도무지 흥정할 의사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때는 방법이 없다. 당신은 최선을 다한 셈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매장을 나와도 좋다.
 
때로는 흥정의 대상인 상품을 바꿈으로써 모든 면에서 성공적인 흥정 결과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레스토랑 와인 흥정의 예로 돌아가서 만약 당신이 고급 와인에는 관심이 없는 대신 값비싼 전채 요리에 구미가 당긴다고 해보자. “와인은 필요 없습니다. 대신 우리 세 사람이 송로버섯을 좀 먹어볼까 하는데, 싸게 해주실 수 있나요” 이런 제안이라면 주방장 버크도 선뜻 흥정에 나서지 않을까.
 
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대 로스쿨의 협상프로그램연구소가 발간하는 뉴스레터 <네고시에이션>에 실린 ‘Master the Art and Science of Haggling’을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NYT 신디케이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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