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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크기는 곧 리더의 크기

조영호 | 51호 (2010년 2월 Issue 2)
 
일본 소형 정밀 모터 제조업체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 책 <일본전산(日本電産) 이야기>가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목소리 크고 밥 빨리 먹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고 해서 ‘큰 소리로 말하기 시험’ ‘밥 빨리 먹기 시험’ 등으로 공채 사원을 뽑고, 신입 사원에게 1년 동안 화장실 청소를 시키는 회사. 교육은 주중을 피해 토요일과 일요일에 그것도 1년 35주(연 52주 중)나 하는 회사. 하루 16시간 남보다 2배나 일을 하고(‘배의 법칙’), 남들보다 두 배나 빨리 실적 올리는 것(‘절반의 법칙’)을 자랑하는 회사. 사장은 수시로 사원들에게 호통을 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게 하는(‘호통 경영’) 직장.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는 모토를 수시로 복창하는 사원들. 그야말로 ‘전근대적인’(?)인 경영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이런 회사가 21세기 글로벌 초경쟁 환경에서도 존재하고 있나 의아스럽다. 하지만 1973년 단 4명이 3평의 시골 창고에서 출발한 이 회사는 이제 140개 계열사에 13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매출 8조 원대의 규모로 성장했으며 오사카와 교토 증시를 거쳐 2001년에는 뉴욕 증시에까지 상장을 했다. 이러니 ‘전근대적인’ 경영 방식이 ‘성공의 비결’로 주목받지 않을 수 없다.
 
이 <일본전산 이야기>에 감동받은 일부 우리네 사장님들은 얼씨구 좋다 하고, 사원들을 새벽에 출근시키고, 사업장 청소에다 주말 근무까지 시킨다고 한다. 하긴 불황 탈출이라는 명분으로 그렇지 않아도 비상 경영을 하고 있는데, 이게 웬 좋은 구실인가 싶다. 그러나 이렇게 지엽말단적인이고 표피적인 것만 배워 회사에 도입해서는 경영진과 사원 간에 심각한 불신이 생기고 그동안 쌓아둔 자그마한 회사의 강점도 날아가버릴지 모른다. 일본전산식 경영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것을 배워야 한다. 그럼 우리는 일본전산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부분이 아닌 전체를 배워라
우선, 단편적인 것만 배우지 말고 전체를 배워야 한다. 경영은 시스템이고 조직은 여러 요소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성과를 낸다. 10개의 부분들이 모여 100점짜리를 만든다고 했을 때 산술적으로 보면 각 부분이 10점의 가치가 있고 그래서 한 부분을 가져오면 10점을 가져올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부문 하나 하나가 흩어져 있거나 아귀가 맞지 않으면 0점이나 다름없을 때가 많다. 심지어 조합이 잘못되면 마이너스가 되기도 한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영화를 보면 유럽에 여행 온 아프리카인들이 호텔의 수도꼭지에서 물이 철철 나오는 것을 보고 이거다 싶어 수도꼭지를 떼어 고향으로 가져갔다. 물론 물은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 큰 사람이나, 밥 빨리 먹는 사람을 뽑고 싶거나 또는 학력이나 학업 성적을 무시하고 인재를 채용하고 싶다면, 그들에게 학력 콤플렉스를 없애고 자부심을 심어주고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자기계발을 통해 새 인생을 살게 하는 인적 자본 투자(investment in human capital)를 반드시 선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직원들에게 일을 많이 시키고 주말 특근까지 요구하려면 사장은 더 많이 일을 해야 하며 회사의 경영을 완전 투명하게 가져가야 할 뿐만 아니라 오너 가족의 전횡이 있어서는 안 된다. 회사는 직원들 것이고 사회 공기관이라는 아이덴티티를 확립하라는 이야기다. 나가모리 사장처럼 호통을 쳐서 직원들을 긴장시키려면, 호통 친 다음에는 반드시 불러다 차를 마신다든지, 저녁에 술을 마신다든지 하면서 풀어주어야 하고, 칭찬 편지(‘러브레터’)를 간단한 메모지가 아니라 적어도 2장, 많게는 5장까지 길고 자세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
 
회사 경영 상황을 사원들에게 있는 그대로 공개하지도 못하고, 칭찬 편지는 고사하고 직원들 인적 사항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오너 가족들이 주요 보직을 차지하며 전횡을 일삼고 있는 데다, 사장은 골프나 해외여행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너희들은 열심히 해라” “회사에 충성해라” 하는 이야기가 씨알이 먹히겠는가. 더구나 기본 소양도 갖추지 못하고 남의 손가락질을 받는 오너 가족의 젊은이들이 갑작스레 승진하고, 실적도 없이 임원이 된다면 어느 누가 헌신적으로 일하겠는가. 일본전산은 눈에 보이는 ‘전근대적인’ 경영 관행 뒷면에 ‘초근대적인’ 경영 시스템이 뒷받침되어 함께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숨어 있는 원칙을 찾아내라
나아가서는 겉에 나타난 것보다는 속에 숨어 있는 원칙을 찾아내 배워야 한다. 일본전산에서 시행하고 있고, 외치고 있는 많은 구호들은 결국 네 가지 원칙으로 수렴된다. 첫째는 철저한 고객 지향·현장 지향이고, 둘째는 사람(직원)을 통해 성과를 이룬다는 것이며, 셋째는 항상 긴장감을 갖고 꿈과 비전을 지향하는 것이고, 넷째는 리더의 진정성과 솔선수범이다.
 
일본전산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은 철저한 고객 지향과 현장 지향이다. 직원들을 대하는 특이한 관행 때문에 정작 중요한 이 부분을 간과하는 한국 경영자들이 많다. 후발 주자인데다 소규모로 출발한 일본전산은 기존 업체를 물리치고 고객을 확보해야 했다. 따라서 기존 업체들이 생각지 못하는 미래 시장을 선점하는 전략을 취했다. 그래서 ‘기존 거래 업체들이 못 하는 것, 어려운 것’을 하면서 시장을 뚫었으며 다른 선발 업체들이 소홀히 했던 초정밀 소형 모터 시장이라는 블루오션을 찾아나섰다. 일본전산 직원들은 이러한 초창기 생존 전략 때문에 불가능에 도전하고 속도전으로 싸우는 것이 체질화되었다. 기존 업체들은 한마디로 점잖은 ‘엘리트주의’에 기초해 장사를 했지만 일본전산은 폼(브랜드) 잡을 것도 없고, 말로 때울 수도 없고 해서 우직하게 실력으로, 실행력으로 인정받아야 했다. 이것이 바로 일본전산 문화의 시작이요, 나가모리식 ‘전근대적’ 경영의 시발이다. 결국 “엘리트는 필요 없다”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남이 아니라 우리가 답을 만들어야 한다”는 패러다임이 생겨났다.
 
여기에서 바로 두 번째 원리가 탄생한다. ‘직원들을 통해 이룬다’가 그것이다. 엘리트 물이 배어 있거나, 어설프게 일을 안다고 하는 사람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겸손한 사람, 그러면서도 정열과 열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일본전산에게는 딱 맞았다. 밥 빨리 먹는 사람, 변 빨리 보는 사람, 쉬지 않고 오래 달리는 사람을 고르는 일은 일종의 통과 의식이고 ‘브레인 워시(Brainwash)’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의식을 통해 일본전산인은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태어나고 새로운 일꾼이 된다. ‘과거의 실력은 미래의 실력이 아니다’ ‘능력의 차이는 5배, 그러나 의식의 차이는 100배’ 나가모리 사장의 신조다. 그래서 똑똑하고 고자세인 사람보다 회사에 입사시켜준 것을 고맙게 생각하는 ‘고졸 수준’의 사원을 모아 집중적으로 정신 무장을 시켰다. 그리고 회사에 충성한 대가는 확실하게 해주었다. 고용 보장과 복지 혜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보다는 확실한 자기계발과 성취감 부여가 최고의 대가였다.
 
어느 조직이나 초심을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는 쉽지 않다. 타성에 젖기 쉽고, 자만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일본전산은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한 단계 목표를 높이고 꿈을 추구한 점이 놀랍다. 처음에는 ‘남보다 2배 일해보자’였고, 나중에는 ‘해외 수출’이었으며 그다음에는 ‘우리 공장을 갖자’였다. 나아가서는 ‘그럴싸한 공장을 짓는 것’에서 ‘대기업으로부터 대우받는 것’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이제는 ‘2012년까지 30만 명을 고용하자’는 목표와 함께 ‘엔진 없이 모터만으로 달리는 차를 만들자’는 비전을 추구하고 있다. 무한 경쟁 시대에는 어떤 기업도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과거 성공이 오히려 미래 성장의 장애가 되는 시대다. 잠깐 졸다가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위험한 길을 가게 되는 것이 현대 기업이다. 그러나 항상 긴장과 위기의식 속에서만 살 수 없다. 희망이 있어야 한다. 희망과 위기의식의 절묘한 조화, 비전을 향한 긴장감, 일본전산이 가르쳐주고 있다.
 
네 번째 ‘리더의 진정성과 솔선수범’이야말로 원칙 중의 원칙이다. 전문학교 졸업자로서 학력은 높지 않지만 열의와 자기희생이 철저한 사람, 자신이 정한 원칙을 자기부터 실현하는 사람, 조직이 나태해지지 않도록 ‘메기(악역)’가 되는 사람이 나가모리 사장이다. 그는 “경기가 좋아졌지만 우리는 주말에도 나와서 일해야 한다. 회사가 이익을 낸다고 해서 월급을 많이 줄 수 없다”고 솔직히 이야기하고, 직원들이 잘못했을 때는 사정없이 나무란다. 그러나 그는 뒤끝이 없다. 그가 사심이 있다고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진정으로 일에 몰입하고 있으며, 사원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있다는 것을 전 직원이 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의 진정성과 체질화된 솔선수범을 누가 말리랴.
 
따라하기 힘든 문화가 경쟁력 원천
일본전산은 매우 특이한 경영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저변의 원칙과 메커니즘은 철저히 현대적이고 미래지향적이다. 일본전산이 하고 있는 관행들을 일반 기업들이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불가능하기도 할 것이다. 소규모 창업 시절부터 만들어온 것이고 DNA가 그리된 것인데, 전혀 다른 DNA를 가진 기업에서 시도해봤자 그것은 단지 흉내 내기에 불과하다. 대신 일본전산이 지향하고 있는 원칙을 배워야 한다. 그 원칙을 각자의 방식으로 구현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일본에서 일을 가장 적게 한다고 해서 유명해진 미라이(未來) 공업. 하루 근무 시간이 7시간 반이고 주말 특근은 없으며, 5월에는 골든 위크라 해서 10일을 쉬고, 8월 오봉 휴가도 10일을 쉬는 회사. 이점에 있어서는 일본전산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러나 경영 원칙을 들여다보면 일본전산과 미라이는 다를 게 없다. 철저한 고객 지향, 사원을 통한 성과 창출, 비전 추구, 리더의 솔선수범…. 요는 원칙을 실천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앞서가는 미국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일할 맛 나는 일터(great workplace)로 유명한 구글, 사우스웨스트항공, SAS인스티튜트 등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영의 중요한 원칙을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경영 방식이나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으며, 업계의 평균을 따라가는 것으로는 큰 성과를 내기 어렵다. 확률이 낮은(low probability) 가능성을 실현시켰을 때 효과가 크다. 일본전산도 그렇고 미라이도 그렇고 서양의 선진 기업도 그렇다. 쉽게 따라하기 힘든 것을 만들어낸 기업들이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우리 것을 만들어야 한다. 실제로 그런 기업도 많이 있다.
 
일본전산을 배우고 싶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직원 일 더하기’가 아니라 나가모리 사장의 ‘열정, 리더십, 진정성에 기초한 솔선수범 리더십’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아닐까. 나가모리 사장은 말한다. “사장이 정신을 놓으면 아무리 유능한 인재를 모아놓아도, 삼류 오합지졸로 변해버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사장은 ‘내가 먼저 할 테니 너도 하자’ 하고 조직에 불을 붙이는 사람이다.” 조직 문화의 시작은 바로 리더십이고 조직의 크기는 곧 리더의 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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