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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어그부츠가 짝퉁에 밀린 이유

이정민 | 51호 (2010년 2월 Issue 2)

 “처음 봤을 때에는 무슨 이런 해괴망측한 신발이 있었나 싶었다. 날렵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예쁘지도 않다. 모양이 울퉁불퉁하고 균형미도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겨울이 다가오자 약속이나 한 듯이 이런 신발을 신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미국 뉴욕에 오면 뉴욕 법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 어그부츠를 딸에게 사주려고 매장에 갔다. 그런데 가격표를 보고 그만 눈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일반적으로 어그부츠 한 켤레에 150달러. 의류나 신발은 미국이 훨씬 싸다는 점을 감안하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 딸이 ‘아빠, 사실은 우리 반 아이 중 어그부츠를 신고 오지 않는 아이가 딱 두 명이 있는데 나하고 이집트 출신 ○○이야. 요즘 우리 반 애들은 모두 어그부츠를 신고 와.’ 그래서 딸에게 자세히 물어보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 아이는 색깔이나 모양 등 다양하게 네 켤레까지 신고 다니는 애들도 있다고 했다.”
 
뉴욕 특파원을 지낸 동아일보의 한 기자는 어그부츠와 관련된 일화를 자신의 블로그(http://www.journalog.net/kingjs1999)에 이렇게 소개했다. 미국 뉴욕을 휩쓸었던 어그부츠의 열풍은 이번 겨울 한국에도 맹위를 떨쳤다. 기습 한파와 폭설이 잇따르면서 여성들 사이에서 어그부츠 수요가 급증했다. 여기에 달라붙는 바지인 스키니진까지 유행했다. 바지를 부츠에 넣어서 입을 수 있으려면 어그부츠가 제격이었다. 실제로 ‘빅3’로 꼽히는 대형 백화점인 A백화점에서의 어그부츠 매출액은 100억 원(2009년 9월∼2010년 1월)에 육박했다. 같은 기간 전국 60여 곳에 매장이 있는 신발 체인인 ABC마트에서는 어그부츠의 ‘품귀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고, 인터넷 쇼핑몰인 G마켓에서도 어그부츠 판매량이 109% 폭증했다.
 
그렇다면 이번 ‘어그부츠 전쟁’의 승자는 누구일까. 국내에 판매되는 어그부츠 브랜드는 ‘어그 오스트레일리아(UGG Australia)’와 ‘베어 파우(Bear Paw)’ ‘에뮤 오스트레일리아(Emu Australia)’ ‘반스(VANS)’ 등이 있다. 이 중 ‘원조 브랜드’는 단연 어그 오스트레일리아다. 하지만 A백화점에서 가장 많이 팔린 브랜드는 베어 파우(50억 원)였다. 어그 오스트레일리아는 37억 원으로 원조 효과를 톡톡히 누리지 못했다. 왜일까.
 
원조 브랜드 약(藥)일까 독(毒)일까
우선 어그 오스트레일리아가 원조로 불리게 된 배경부터 보자. 어그부츠의 유래는 이렇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조종사들이 신었던 퍼그부츠(FUG·flying ugg boots)를 시작으로 1920년대 호주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1960년대에 호주의 ‘서퍼’들에게는 보온성과 자연적인 흡습성이 뛰어난 어그부츠 착용이 보편화됐다. 그 후 호주 출신의 서퍼인 브라이언 스미스가 어그부츠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1979년 미국으로 어그부츠를 가져가 ‘어그 홀딩스(UGG Holdings Inc.)’라는 회사를 세워 어그부츠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스카치테이프(Scotch tape: 3M)’, ‘밴드 에이드(Band-aid: 존슨앤존슨)’나 ‘버버리 코트(Burberry trench coat: Burberry)’와 같은 맥락에서 어그부츠의 명칭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사용하는 스카치테이프와 버버리 코트는 각각 3M사의 셀로판테이프의 브랜드 명이고,트렌치코트로 유명한 버버리 사의 대표 상품일 뿐이다. 이렇게 해서 어그 오스트레일리아라는 특정 브랜드는 일반 명사처럼 사용됐다.
 

 
특정 브랜드가 이렇게 일반 명사로 소비자들에게 받아들여졌을 때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장점과 단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원조 브랜드의 가장 큰 장점은 소비자들에게는 확실한 경쟁 우위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된다는 점이다. 혁신이나 변화를 처음 시도한 브랜드로 소비자들에게 인식되면서, 추종하는 브랜드가 아닌 시장을 선점하고 개척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른 모든 브랜드에서 트렌치코트를 내놓지만 그중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를 가장 높이 평가하는 데에는 버버리가 트렌치코트의 ‘대표 브랜드’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런 자사 브랜드가 일반 명사처럼 불리는 현상이 해당 브랜드를 심각한 위협에 놓이게 하기도 한다. 지속적으로 브랜드에 대한 권한을 보호하지 않으면, 유사 브랜드에 의해 시장을 잠식당하기도 하고, 혹은 브랜드 자체가 갖는 차별성을 잃을 수도 있다.
유사 브랜드나 짝퉁이 만들어내는 위기
어그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몇 가지에 유의했더라면 원조 브랜드로서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그부츠의 고난은 1995년 브라이언 스미스가 미국 유통업체인 데커스 아웃도어에 어그 홀딩스를 매각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데커스 아웃도어는 호주 기업들을 대상으로 ‘UGG boots’라는 상표를 쓰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데커스 아웃도어에서 자사 상표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진행했던 일련의 소송들도 어쩌면 현재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사 브랜드들의 시장 확대로 인해 어그 오스트레일리아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호주의 상표권 소송에서 호주 생산 업체는 호주에서는 UGG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미국과 유럽 지역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 여기서 안타까운 점은 어그부츠 단어의 유래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의문점들과 호주에서의 패소로 인해 오히려 회사의 적극적인 대응 대책들이 힘을 잃은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브랜드 관리의 실책-중국으로 생산 기지 이전
어그 오스트레일리아의 브랜드 관리상의 실책은 바로 유사 브랜드 혹은 짝퉁 브랜드와의 충분한 차별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어그 오스트레일리아는 진정성(authenticity)을 보여주지 못했다.
 
어그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시장 확대에 따른 안정적인 공급량을 가져가기 위해서 전 제품의 생산 기지를 중국으로 이전했다. 이는 다른 유사 브랜드들이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UGG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정체성인 ‘Made in Australia’를 포기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유사 경쟁 브랜드인 미국의 베어 파우나 심지어 에뮤 오스트레일리아가 갖고 있는 호주 브랜드로서의 정통성도 갖추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만 것이다. ‘호주의 양털과 양가죽으로 정통 어그부츠를 만든다’는 버리지 말아야 할 가치(value)를 버린 것이다.
 
물론,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릴 정도로 다양한 제품이 ‘made in China’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그러나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UGG 부츠에 대한 몇몇 비판들(한국보다는 외국 사이트)을 유심히 살펴보면, 어그 오스트레일리아의 생산 정책상에서의 몇 가지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데커스 아웃도어가 ‘UGG Australia’라고 표기하지만 실제로는 정통성이 없다는 공격을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실제 어그부츠 생산이 모두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어그 오스트레일리아는 30만 원대로 어그부츠 중에서도 비교적 고가 정책을 펴고 있다. 누리꾼들도 ‘똑같이 중국에서 만드는데도 30만 원대이고, 다른 브랜드의 부츠는 10만 원대이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라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똑똑한 소비자들 포진한 세상,
셀럽 마케팅이 전부는 아니다
또 전 세계 시장에서 어그부츠가 유행하게 된 것은 어그 오스트에일리아에서 진행한 적절한 유명인을 활용한 ‘셀럽(celebrity) 마케팅’ 전략 덕택이다. 실제 미국의 UGG 부츠는 파멜라 앤더슨이 시작했다는 기사들이 있다(아이러니하게 그녀는 지금 UGG 부츠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2007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크리스마스 시즌 베스트 선물 목록으로 어그부츠를 소개하면서 폭발적인 확산이 이루어졌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이효리를 비롯한 수많은 연예인들이 어그부츠를 신으면서 일반 대중들의 추종으로 확산되는 형태를 보였다.
 
그러나 연예인에 대한 적절한 지원(협찬이나 광고)을 통해 일시적인 시장 점유율 확보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이를 장기적으로 기업의 브랜드 운영 정책으로 활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보다 지속가능한 경영 체계를 갖추고 있는 기업들이 만들어내는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선호가 서서히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강력한 마케팅 활동이 일시적인 시장 확대에 기여하고 인지도를 높이는 만큼 여러 위협 요소도 있다.
 
 ‘풋프린트’ 관리해야 원조 브랜드 정통성 지킨다
최근 어그 오스트레일리아는 브랜드를 강화하기 위한 마케팅 활동의 일환으로 ‘섹스앤더시티’로 유명해진 지미 추(Jimmy Choo)와의 콜래보레이션 라인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UGG 부츠의 진품과 모조품 가려내기 동영상이 유튜브를 휩쓸고 있는 현 시점에서 어그 오스트레일리아가 내린 이 전략적 결정이 아쉬운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지금 세계 패션 시장에서 원하는 것은 지미 추와 같은 유명 브랜드가 아니라 제조의 모든 과정을 한눈에 읽어낼 수 있는, ‘풋프린트(footprint) 시스템’과 같은 보다 근본적인 브랜드 운영 전략이기 때문이다. 풋프린트 시스템을 관리하지 않으면 똑같이 중국에서 만들면서도 가격은 어그 오스트레일리아의 절반 정도인 유사 브랜드 제품에 시장을 잠식당할 수 있다. 원조 효과를 톡톡히 누리려면 ‘모든 단계에서 진품을 만들고 있다’ ‘고객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기업이다’ 등의 진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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