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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과 기술 통합 방법론

기술 로드맵 작성, 全 부서 참여하라

이철원 | 45호 (2009년 11월 Issue 2)
신성장동력 창출은 한동안 정부와 민간 모두에서 화두가 됐던 핵심 키워드다. 이는 쉽게 말해 ‘향후 5년 또는 10년 뒤에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현 정부가 내세우는 ‘저탄소 녹색성장’도 사실 경쟁력 있는 미래의 수종사업을 찾는다는 점에서 과거 논의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은 생존과 성장을 위해 정태적 효율성(static efficiency·현 사업 영역에서의 경쟁력)과 동태적 효율성(dynamic efficiency·새로운 역량과 가능성으로 새로운 사업을 개척해나가는 능력)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문제는 시장성이 불투명한 미래 신사업에 대한 투자 및 그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신기술 사업화의 딜레마
신기술의 전략적 가치 및 잠재적 영향력을 처음부터 정확히 이해하고 대응하기는 매우 어렵다. 흔히 기술에 대한 전문성 부족이 원인이지만, 기술에 대해 잘 안다고 해도 신기술의 가치를 정확히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하버드대의 크리스텐슨 교수는 시장 지배력과 기술력 모두에서 1위인 기업이 특별히 잘못한 것 없이 열심히 기술적 개선을 이뤄냈음에도 신기술의 출현으로 시장에서 사라지는 사례를 연구했다. 그는 성숙한 고급 기술의 경쟁 우위를 일순간에 파괴해버리는 저급한 신기술을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라고 명명했다. 1 그런데 아무리 훌륭한 역량을 갖춘 선도 기업이라 해도 어떤 저급한 최신 기술이 장래에 파괴적 기술로 진화해나갈지 여부를 쉽게 예단하기는 어렵다.
 
선진 기술의 모방을 통해 산업화를 이룩한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기술 잠재력 파악이 매우 중요한 이슈다. 한국의 많은 중견 기업들은 새로운 먹을거리와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진정한 의미에서 기술사업화 역량을 보유한 기업이 드물다. 게다가 많은 경영자들이 미래가 불확실한 신사업 분야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과거 선진 기술을 도입하거나 국산화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해온 경영자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를 해본 경험이나 노하우가 거의 없다.
 
한국 경영자들의 이런 태도는 일견 충분히 이해가 간다. 대규모 기술 개발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 회사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방 개발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으며, 선진 기술 도입을 통한 사업화도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는 게 문제다. 사업화에 성공한다 해도 막대한 기술료를 지불해야 한다면 수익성 측면에서 매력도가 크게 떨어진다.
 
이에 반해 기술 벤처기업들은 비교적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한국 벤처기업의 생존 확률은 3%대로 추산된다는 데 있다. 2 벤처기업이 초기 사업 아이템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 이외에도 장애물이 많다. 신기술 상업화보다 그 이후에 지속적으로 차세대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공 신화’를 만든 1세대 벤처기업 중 상당수가 지속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졌다.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수익성이 떨어지는 기존 사업을 대체할 새로운 사업을 계속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기술적 가능성을 성공적 비즈니스로 만들어가는 핵심 역량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기술’ 그 자체보다는 기술을 이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그릴 수 있는 역량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이 우수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면, 기술력 부족은 외부로부터의 인력 및 기술 도입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다. 반면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이 없는 회사는 아무리 우수한 기술을 갖고 있어도 성공하기 어렵다. 애플(Apple)의 ‘아이팟(iPod)’ MP3 플레이어의 개발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외부 기술을 엮어 성공적인 비즈니스로 만든 대표적인 혁신 사례로 꼽힌다(DBR TIP ‘아이팟의 성공 요인’ 참조).
 
기술의 가치는 그것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하지 않은 채 기술의 가치만을 보여준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결국 기업이나 정부가 추구하는 신성장동력이란 ‘가능성 있는 기술을 포함한 비즈니스 모델의 형태’를 취해야 한다.
 
5년 또는 10년 후 비즈니스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사업 부서와 기술개발 부서가 공동으로 성장 잠재력이 높은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야 한다. 문제는 한국 기업들이 그동안 모방개발 환경에 익숙해져 있었고, 기존 시장에 없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시도를 해본 경험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DBR TIP 아이팟의 성공 요인
 
애플(Apple)의 아이팟은 개방형 비즈니스 시스템 혁신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알려져 있다. 아이팟의 사업 아이디어는 혁신적 개인 창업가라 할 수 있는 토니 파델(Tony Fadell)에 의해 만들어졌다. 파델은 애플을 찾아가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사업을 제안했다. 그의 계획이 마음에 들었던 애플은 보다 구체적인 제안을 요청했다. 파델은 8주 후에 아이팟과 아이튠스 개발 계획을 정식으로 제안해 애플로부터 사업추진 승인을 받았다.
 
애플은 즉시 아이팟 개발을 위해 총 35명의 다기업 팀을 구성하고 사업 제안자인 파델을 책임자로 임명했다. 35명의 아이팟 개발 팀에는 애플사 직원뿐만 아니라 도시바, TI(Texas Instrument), 뱅앤올룹슨, IDEO, 필립스, 제너럴 매직(General Magic), 웹TV, 포털플레이어(Potalplayer) 등 다른 기업의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했다.
 
당시 MP3 플레이어 기술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기에 개발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아이팟은 아이디어 제안 6개월 만에 만들어졌다.
 
아이팟은 초기 시장 개척에 다소 어려움이 있었지만, 음원 서비스를 윈도 운영체제(OS) 사용자 전원에게 확대하면서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애플은 아이팟의 성공으로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고, 향후 아이폰을 통해 휴대전화 단말기 사업의 선도 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자료: (July 21, 2004)에 실린 헨리 체스브로 교수의 세미나 자료를 토대로 재구성
 
 
 
사업 전략과 기술 전략의 결합
과거 범용·모방 개발에 치중했던 시절, 한국 기업들은 선진국에서 성공한 기술 아이템을 잘 선택해 경제적이며 효율적으로 생산, 가공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함으로써 수익을 냈다. 그러나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인터넷 등 일부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우리가 글로벌 리더 그룹에 속하게 되면서, 보고 따라할 수 있는 벤치마킹 대상을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됐다. 이는 물론 일부 분야에 국한된 사례다. 하지만 벤치마킹 대상이 있는 분야에도 큰 문제가 있다. 외국의 선진 기업들이 전략적 자산인 자사의 핵심 기술을 더 이상 쉽게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도 원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선진국 기업과 마찬가지로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기술개발 투자의 ‘확률 게임’에 도전해야 한다. 게임 규칙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방법론을 요구한다. 이와 관련해 지금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그래서 가장 시급히 확보해야 할 것이 바로 기술 포트폴리오 기획 역량이다.
 
기술 포트폴리오 전략은 회사의 사업 전략과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하기 때문에 ‘기술’만을 위한 전략과는 큰 차이가 있다. 사업 전략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기술 포트폴리오 전략을 수립하려면 다음과 같은 원칙을 따라야 한다.
 
우선 기술 포트폴리오 전략은 사업 전략 수립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사업 전략과 일체화된 기술 전략을 하향식(top-down)으로 수립해나가는 방법론이다. 따라서 기술 포트폴리오 분석의 출발점은 회사의 미래 비전 및 그에 따른 사업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자세한 설명을 위해 먼저 회사의 미래 사업 목표를 <그림1>과 같이 가정해보자. <그림1>은 2020년까지 약 10년 동안 현 매출액의 2배인 20억 달러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기술 포트폴리오 분석에서 미래의 매출 증대를 위한 비즈니스 영역은 크게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구체적으로는 ①기존 사업에서의 효율성 및 효과성 추구를 통한 성장(BP #1: momentum growth), ②수출 시장 다변화 등 새로운 시장 개척을 통한 매출 증대(BP #2: geographical expansion), 그리고 ③기존 시장에 없던 신제품, 신사업에 의한 성장(BP #3: new product, new busi-ness development)이다.
 
결국 10년 후의 매출 목표 달성은 이 같은 3개의 비즈니스 영역에서의 사업 계획(Business Plan)에 의존해야 한다. 기술 포트폴리오 분석에서는 이렇게 비즈니스 영역별로 목표치를 사전에 부여함으로써 사업 목표 달성을 위한 정량적 계획 수립을 세우도록 한다. 예를 들어 <그림1>에서는 각 비즈니스 영역에서의 매출 목표 기여도를 각각 30%, 30%, 40%로 가정했다. 전체 목표치의 40%, 즉 4000억 달러에 해당하는 추가 매출은 신제품과 신사업(BP #3)으로 충당하겠다는 뜻이다. 기존 시장 및 신 시장에서는 각각 3000억 달러씩의 추가 매출을 올릴 사업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 3개 비즈니스 영역별 사업 목표치가 정해진 후에는 각 사업 영역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시장, 제품, 기술에 대한 전략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각 비즈니스 영역별 시장, 제품, 기술 분석의 내용을 간략히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 그림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시장 분석:시장에 대한 분석은 가능성이 있는 목표 시장을 구체화하고 그 시장에서 고객들이 원하는 니즈가 무엇이며, 또 그 니즈가 10년이라는 계획 기간 동안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파악하는 일이다. 휴대전화 단말기를 예로 들어보자. 초창기 휴대전화의 성능을 결정하는 핵심 성능 지표는 단말기의 크기(size)와 가격, 배터리 성능 등이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단말기 크기를 줄이고, 배터리 수명을 길게 하는 기술이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단말기의 크기보다는 디자인과 첨단 기능들이 더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이처럼 고객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 성능 요소는 시간이 지나면서 바뀐다.
 
‘시장동인(market driver)’은 시장에서 제품 또는 서비스의 상대적 비교 우위를 결정하는 핵심 성능 요소를 달리 표현한 말이다. 시장동인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오랜 기간 동안 변하지 않고 꾸준히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배터리 성능, 즉 연속 사용 시간이다. 휴대전화 시장에서는 단말기에 여러 기능이 추가되면서 고용량 배터리 기술에 대한 시장 요구가 다시 부상했다. 최근 친환경·고효율 제품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배터리 성능은 당분간 핵심 시장동인의 위상을 계속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시장동인은 각 타깃 시장(market segment)별로 차별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10대 고객을 대상으로 한 단말기 시장에서는 인터넷 접속 속도 및 다양한 첨단 기능이, 그리고 50대 이후의 중장년층 타깃 시장에서는 단순한 기능 위주의 사용 편리성과 경제성 등이 핵심 시장동인이 된다. 시장 분석은 타깃별 시장동인을 파악하고 예상되는 변화 패턴을 분석해 그 결과를 시장 로드맵(market roadmap) 형태로 표현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제품(서비스) 분석:기업은 시장에 대한 분석이 끝나면 제품 또는 서비스에 대한 시장의 구체적인 요구 사항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여기서도 제품 사양의 변화 동향을 분석한 제품 로드맵(product roadmap) 분석이 필요하다. 제품 로드맵 작성은 구체적으로 시장동인 충족을 위해 제품의 기능과 성능 지표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기획하는 것이다. 다시 휴대전화 단말기의 사례를 들어보자. 인터넷 데이터 서비스 속도가 시장동인의 하나라 가정하면, 기업은 이에 대응해 단말기의 데이터 통신 속도를 언제, 어느 수준까지 향상시킬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이같이 시장동인에 의해 단말기에 요구되는 성능 지표들이 단계별로 변해가는 모습을 분석하면 제품 로드맵을 그릴 수 있다.
 
기술 분석:마지막 단계는 제품 및 서비스 개발에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를 알아봐야 한다. 필요기술 분석은 기술 전문가들이 제품 사양 요구조건 분석 결과를 보고 그에 필요한 기술을 도출하는 브레인스토밍 방법을 적용해 마무리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각 셀별 분석은 3개의 비즈니스 영역(사업 포지션) 모두에 대해 동일하게 추진해야 한다. 따라서 이 모든 분석을 종합하면 3개의 비즈니스 영역 각각에 대해 시장, 제품, 기술 등 3개의 셀 기획이 되어 총 9개의 셀(3×3)에 대한 포트폴리오가 구성된다.
 
3개의 비즈니스 계획 추진에 요구되는 기술들을 통합해 재구성하면 전사 차원의 기술 전략을 만들 수 있다. <그림2>는 통합된 기술 전략을 구성하는 필요기술 구성 체계의 개념도다. 설명의 편의를 위해 휴대전화 단말기 기술을 전제로 한 가상의 사례를 제시했다.
 
*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술 전략을 구성하는 세부 기술은 그 특성에 따라 4개의 기술군으로 유형화할 수 있다. 그 첫째는 대학이나 연구기관과의 협력이 필요한 기초과학 및 엔지니어링 지식(basic science & engineering)이다. <그림2>에 예시된 차세대복합디스플레이 기술의 하나인 ‘OLED on Silicon 기술’은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초기 기술로 기업이 대학 또는 국책연구기관과 공동 연구를 통해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는 제품 개발의 근간이 되는 플랫폼 기술(technology platform)이다. 이는 다양한 제품군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기술로 모바일 단말기의 운영시스템(OS)과 데이터 통신, 동영상처리 기술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는 플랫폼 기술을 토대로 다양한 형태의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제품·서비스 기술(product·service technology)이다. 마지막은 목표 시장의 요구 및 특성에 부합하기 위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다양한 형태로 차별화시켜 나가는 데 필요한 시장응용 기술(application technology)이다. 특정 국가의 위성내비게이션 지도(GPS map) 개발 기술이나, 타깃 시장별 수요자 니즈에 부응한 터치스크린 입력 장치 기술 등이 시장응용 기술에 해당한다.
4가지 기술군별 필요기술이 모두 정의되면, 각 요소 기술들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를 탐색하는 기술 확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림2>의 예에서 플랫폼 기술로 확보해야 할 기술은 총 4개다. 현재 회사에서 그중 ‘MPEG4’와 ’Symbian OS’ 기술은 이미 확보하고 있지만 ‘ARM Processor’와 ‘HSUPA/HSPA+’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면 이 기술들을 어떤 방법으로 확보할 것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이때 자체 개발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으며, 개방형 혁신 방법론을 적용해 외부의 협력 파트너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시간과 비용 절감 차원에서 바람직할 수 있다. 이 같은 방법으로 4개의 기술군 모두에 대한 기술 획득 전략이 결정되면, 내부에서 자체 연구개발로 추진할 기술 과제의 도출도 가능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사업 목표 달성을 위한 기술개발 전략이 완성된다.
 
 
전사적 협력이 필수
지금까지 선진 다국적 기업들이 활용하고 있는 기술 포트폴리오 분석의 기본 개념을 소개했다. 기술 포트폴리오 분석에서는 물론 절차와 방법론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부서의 구성원들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3개의 비즈니스 계획을 수립하고, 총 9개의 셀에 대한 기획을 하고, 또 필요기술을 분석하는 것과 같은 일련의 행위는 기술부서 또는 연구소만의 일이 아니다. 기업은 이를 위해 재무, 전략기획, 마케팅, 기술개발 등 다양한 부서의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다기능(cross functional) 팀을 구성해야 한다. 또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경영진(CTO 등)의 참여도 필요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술 전략, 연구개발 전략, 기술 로드맵 등 ‘기술 키워드’가 들어간 전략계획 수립이 기술부서 또는 연구소의 고유 업무로 인식되는 사례가 많다. 또 회사 차원의 발전 비전 및 경영 목표가 구체적이지 않은 상태에서는 연구소만의 기술 전략이 수립되곤 한다. 연구소만의 기술 전략은 연구 사업비 확보를 위한 희망사항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연구소의 엔지니어들이 만든 기술 로드맵도 마찬가지다.
 
이런 관행이 이어지면 연구개발 투자 성과가 수익성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낮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기업 현장에서는 기술의 사업성 부족과 시장 실패에 대한 책임이 대부분 연구자에게만 돌아가고 있다.
 
연구소의 연구원들에게 비즈니스 마인드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은 많다. 하지만 사업 부서의 시장 및 비즈니스 전문가들에게 기술 전략 수립 참여를 독려하는 기업은 적다. 이는 잘못된 관행이고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 기술개발 투자가 실패하는 이유는 연구소보다는 사업 부서의 시장 및 비즈니스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거나 제 역할을 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기술 전략 수립은 반드시 전사 차원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기술 포트폴리오 분석은 회사의 경영 목표 달성을 위해 목표 시장과 제품을 찾고, 그에 필요한 기술역량을 확보해나가는 사업 전략과 기술 전략이 상호 유기적으로 연계된 방법론의 하나다. 과거 한국은 선진국 기술을 모방하며 성장해왔다. 선진 기업 및 시스템을 벤치마킹할 때 눈에 보이는 시설, 장비, 프로세스 등은 비교적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들이 전략적으로 집중 투자하고 있는 분야는 시차를 두고 제한된 범위에서만 확인 가능하다. 또 이 모든 것을 만들어가는 전략 기획 역량은 파악하기가 가장 어렵고 놓치기 쉬운 분야다.
 
글로벌 경영컨설팅사인 맥킨지(Mc-Kinsey)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의 우수 제조업체들은 총 연구개발 예산의 16%를 사전 기획 및 정보 수집을 위한 기초 조사에 투입하고 있다. 반면 비() 우수업체의 지출은 12%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의 비율은 12%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일례로 1000억 원 이상을 투자하는 대형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서 사전 전략 기획 투자비는 3∼5% 수준에 머물러 있다. 철저한 기획 없이 일을 진행시키는 ‘희망의 전략(strategy of hope)’은 오류를 벗어나기 어렵고 성공 가능성도 낮다. 이런 전략은 결과적으로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게 한다.
 
최근 신기술 사업화 비용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어 사전 전략 기획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산업에서 신모델 개발 비용은 자기 자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따라서 기술사업화의 실패는 해당 기업에 치명적 손실을 가져다준다.
 
창조적 혁신 시대에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신제품, 신사업 기획 및 추진을 위한 전략 기획 역량의 확보가 필요하다. 확실한 하나를 골라 성과를 만들어내는 모방 개발은 갈수록 그 입지를 잃어갈 것이다.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미래의 수종사업을 만들어가는 기술 포트폴리오 역량을 확보해야 기업의 지속 가능성이 보장될 수 있다.
 
필자는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했고, KAIST 경영과학과에서 기술경영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서 기술경영, 기술 전략 관련 연구 및 실무를 10년간 수행했다. 2006년부터는 기술경영, 기술 전략컨설팅 및 개방형 혁신 기술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날리지웍스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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