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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기술혁신 전략

[김영배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인터뷰] ‘기술력 + 개발력’ 양손잡이 中企가 돼라

김남국 | 45호 (2009년 11월 Issue 2)
상당수의 한국 중소기업들은 기술력을 기반으로 시장에서 승부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 역량을 축적하면서 성장을 지속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인력 및 자원 부족이다. 또 한국 중소기업의 대다수는 대기업 틈바구니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중소기업의 기술경영 전략과 관련해 최고의 연구 성과를 내온 김영배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를 만나 한국 중소기업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기술전략 방향을 들어봤다.
 

 
 
김 교수는 중소기업들이 “외부와의 적극적 협력을 통해 기술 역량을 축적해야 하며, 고객과 시장의 요구 사항에 항상 눈과 귀를 열어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기존 역량을 이용하는 데 그치지 말고 새로운 분야와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성장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양손잡이형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수님께서는 2002년 <Research Policy>에 실린 논문을 통해 대기업 하청에 의존하던 한국 중소기업들이 새로운 기술이나 시장을 개척해 진화하는 경로(표1)를 제시하셨습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자부품 업종에서 과거의 전략적 포지셔닝을 바꾼 기업은 30% 정도였고, 70%는 과거 지위를 유지했는데, 이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까요.
“우선 전략군의 변화 자체가 무조건 긍정적인 것은 아니란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단순 조립에 의존하던 업체가 기술혁신형 기업으로 진화할 수도 있지만, 사업의 실패 혹은 환경 변화에 대한 소홀한 대응으로 기술혁신군에 있던 업체가 한계기업군으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30%란 수치가 작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전자부품 산업의 전략군(strategic group) 변화 비율은 다른 산업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입니다. 이는 산업 자체의 특성 때문입니다. 전자부품 산업은 급격한 기술 변화가 나타나는 역동적인 초경쟁(hyper-competition)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따라서 전략군 간의 이동장벽(mobility barrier·기존의 산업 간 진입장벽 즉, entry barrier의 산업 내 버전)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또 전자부품 산업에서는 레드퀸(Red Queen·자신이 움직이지 않아도 다른 경쟁기업이 계속 앞으로 빠르게 움직이면 결과적으로 뒤로 후퇴하는 현상) 효과가 매우 빈번하게 나타납니다.
 
사실 중소기업이 전략적 포지셔닝을 바꾸는 일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사업의 불확실성이 높고 기술 개발 여력이나 여유 자원이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이 신제품을 개발할 때 많은 관련 부품을 함께 개발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상당한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합니다. 기술뿐만 아니라 시장이나 고객의 불확실성도 크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품목을 잘못 선택할 수도 있고, 품목은 잘 정했더라도 기술 개발에 실패하거나 품질 혹은 납기 측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술을 개발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고객을 확보하지 못하면 중소기업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 고객을 개발할 수 있는 조직 역량과 자금 및 인적 자원이 부족한 중소기업에게는 한 번의 실패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많은 중소기업들이 과감한 기술혁신에 대한 도전을 망설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여유 자원(slack resource)이 매우 빈약한 편입니다. 게다가 기존 사업의 가격경쟁이 심하고 수요업체들로부터 지속적인 단가인하 압력을 받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2, 3년 이상이 소요되는 신규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 여력은 당연히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소기업들이 자원의 제약을 극복하고 새로운 기술 역량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물론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고경영자(CEO)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고 지속적인 연구개발(R&D) 투자를 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이들은 정부의 R&D 지원 과제를 적절히 활용하고, 대학이나 외부 연구소, 혹은 고객 기업과 공동으로 신제품·신기술을 개발해 지속적으로 혁신 성과를 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회사의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과 적극적인 환경 변화 탐색, 올바른 혁신전략의 선택과 실행이 있다면 중소기업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 사업의 성장을 예견하고 이에 필요한 카메라 모듈 사업을 새로 시작한 중소기업이 여럿 있다고 합시다. 이들 모두는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기업이 가장 우수한 외부 엔지니어가 누구인지 파악하고, 이들을 영입할 만한 성장 비전을 제시했다고 하지요. 이 회사가 영입한 인재들과 성과를 공유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으며, 그 인재들이 자유롭게 기술개발에 몰입할 수 있는 조직 환경을 만들어주고 과감하게 지원한다면, 당연히 다른 기업보다 성공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게다가 고객 기업과의 인맥과 신뢰를 통해 시장 개척에 앞장선다면 신기술 확보를 통한 성장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은 실제 성공한 중소기업의 사례입니다. 이 사례는 중소기업의 성공에 특정 분야의 기술능력(technology capabilities)이 필요하긴 하지만, 변화하는 환경에서는 기술 개발 역량(technology development capa-bilities)을 갖추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기술 개발 역량에는 △시장 기회가 큰 기술을 선택하고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투자(자체 R&D뿐 아니라 관련 기업 인수나 외부 전문가의 영입, 공동개발 등)를 확대하며 △이런 투자가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도록 인력 및 조직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이렇게 개발된 기술을 고객 요구에 맞게 상업화하는 노력 등이 포함됩니다.”
 
 
중소기업의 성장과 도약을 위해서는 품목과 시장 다변화가 필수적입니다. 교수님께서는 핵심 역량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활용형 신사업’과 기존 핵심역량과 무관한 ‘탐색형 신사업’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활용형(exploitation) 신사업은 기존 기술능력이나 생산설비, 시장지식 등을 활용해 신규 사업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비교적 불확실성이 낮아 제품 개발 기간이 짧고 비용도 적게 들어가며 성공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활용형 신사업에만 전념하면 회사에 새로 축적되는 기술능력이나 시장지식 등은 별로 없습니다. 특히 기술이나 시장의 변화가 심하다면 기업이 장기적으로 성장의 한계에 봉착하거나 어려움에 처할 수 있습니다. 브라운관(CRT) 모니터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들은 과거에 급속히 성장했지만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로 시장 주도 품목이 변하면서 지금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반면 탐색형(exploration) 신사업은 기존 기술능력이나 시장지식과 관련 없는 새로운 기술이나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을 말합니다. 탐색형 신사업은 불확실성이 높아 제품 개발기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며 성공 확률도 낮은 편입니다. 따라서 장기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여유자금이 없다면 이런 사업을 추진하기 힘듭니다. 더구나 보통 기업들은 탐색형 신규 사업을 추진할 기술자나 영업 인력이 없기 때문에 부득이 외부에서 전문가를 데려오거나 해당 사업을 하는 기업을 인수해야 합니다. 혹은 외부 대학이나 연구소 등과 공동으로 기술 개발을 해야 하지요.(표2)
 
 

 
탐색형 신사업을 하는 CEO들은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어 올바른 전략적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사업을 진행하면서 신규 기술 능력이나 시장, 혹은 고객에 대한 지식을 학습하고 관계를 형성하면 새로운 역량을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또 신규 개발 역량과 기존 핵심 역량을 결합해 차별화된 신제품을 개발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기술이나 시장이 변해도 이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지요. 따라서 전자산업 같이 시장과 기술의 변화가 극심한 분야에서 모든 기업이 단기적인 성과를 위한 활용형 신사업과 장기적인 생존을 위한 탐색형 신사업의 균형을 반드시 추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유 자원이 적은 중소기업이 2가지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중소기업들의 경우 활용형 신사업을 통해 단기 수익을 올리고, 이를 바탕으로 탐색형 신사업에 집중해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후 다시 이를 응용하는 활용형 신사업을 교대로 추진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입니다.
 
저는 20년간 연구해온 중소기업들을 보면서 많은 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1990년 초반에 100억 원대의 매출 규모를 가진 유사한 기업들이 여러 곳 있었습니다. 그중 현재 3000억 원 이상의 규모로 성장한 기업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과거 위치에 머무르거나 아예 사라진 회사들도 있습니다.
 
비약적으로 성장한 기업들은 신규 품목에 대한 지속적인 개발과 상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반면 그렇지 못한 기업들에서는 이런 노력이 실패로 끝났거나 혹은 경영진이 이런 노력을 소홀히 했습니다. 지난 20년간 전자산업의 주력 제품은 TV나 가전제품에서 컴퓨터, 이동통신 제품과 평판디스플레이 제품으로 변했습니다. 앞으로는 신()에너지 관련 제품이 주목받을 것입니다. 이처럼 대기업이 주도하는 주력 전자제품 시장이 변하면 이에 필요한 부품이나 장비가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 이런 변화는 기존 사업에 대한 위협인 동시에 새로운 성장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성장하는 품목에 맞춰 신사업 개발에 성공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들은 극명하게 명암이 엇갈렸습니다.”
 
활용형 및 탐색형 신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구조적 양손잡이 조직’과 ‘환경적 양손잡이 조직’을 대안으로 제시하셨는데 이는 어떤 내용입니까.
 
“많은 연구들이 활용형과 탐색형 신사업을 균형 있게 추진하는 방법으로 구조적 양손잡이(structural ambidex-terity)와 환경적 양손잡이(contextual ambidexterity) 두 방안을 제시합니다.
 
구조적 양손잡이 조직이란 회사 내에 활용형 신사업을 추진하는 기존 사업 조직과 탐색형 신사업을 추진하는 별도의 조직을 분리해서 운영하는 방안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조직을 분리하는 이유는 두 사업의 특성이 매우 달라 각각의 특수성에 맞도록 경영방식을 차별화하고, 두 조직 사이의 불필요한 갈등을 방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존 사업부에서 주력 사업과 연관된 신사업을 개발하는 반면, 중앙연구소나 신규 사업부에서는 기존 사업과 전혀 다른 신수종 사업을 개발하고 있는 많은 대기업들이 구조적 양손잡이 조직에 해당합니다. 만일 이 두 조직을 하나로 묶어버리면 기존 사업 조직의 견제와 간섭으로 인해 탐색형 신규 사업을 추진하기가 힘들어집니다.(그림1)
 

 
 
반면 환경적 양손잡이 조직은 구성원들이 활용형 신사업과 탐색형 신사업의 균형을 스스로 유지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환경을 만들려면 기업 안에 ‘경제적 성과주의 문화(도전적인 목표와 엄격한 규율을 강조함)’와 ‘공동체 문화(구성원 간 신뢰와 상호 협조, 구성원에 대한 조직의 각종 지원이 잘 이뤄짐)’가 공존할 수 있어야 합니다.(그림2) 도시바 직원들은 정규 근무시간에 기존 주류 사업과 관련된 개발 업무를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신규 사업 개발을 추진했습니다. 도시바는 이런 문화를 바탕으로 노트북 사업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활용형 신사업과 탐색형 신사업을 모두 추진하는 한국 중소기업에서는 구조적·환경적 양손잡이 방안이 모두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CEO는 어떤 방안을 추진하든 활용형과 탐색형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며, 이 둘을 균형 있게 관리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여유 자원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두 종류의 신사업을 동시에 추구하기 어렵다면, CEO가 때에 따라 활용형 신규 사업에 초점을 기울여야 할지 혹은 탐색형 신규 사업에 집중해야 할지를 잘 판단해야 합니다. 또 CEO는 활용형 사업을 추진할 때와 탐색형 사업을 추진할 때 차별화된 리더십도 발휘해야 합니다. 특히 탐색형 사업은 불확실성이 매우 높고 CEO 자신도 기술이나 시장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외부에서 전문가들을 영입하는 게 좋고, 일단 영입한 후에는 이들의 아이디어나 의견을 경청하면서 권한 위임을 해줘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특히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인내심 발휘와 신뢰 구축, 재정적·정서적 지원을 해줘야 합니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기술 유출을 우려해 외부와의 제휴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기술 유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외부와의 기술 협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자원이나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이라면 외부 기관(고객을 포함한 대학이나 연구소 등)과의 공동개발이 바람직한 대안입니다. 특히 최근 등장한 개방형 혁신 패러다임(open innovation paradigm)은 대기업이나 다국적 기업들도 성공적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혁신 전략입니다.
 
그런데 기술 유출이 우려된다고 해서 이를 외면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는 기술의 ‘전유성(appropriability)’과 관련한 문제인데요. 기업이 기술을 독점적으로 보유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로 인한 경제적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니란 뜻입니다. 기술의 사업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보완 자산(제조 역량이나 브랜드, 마케팅 역량, 유통 능력 등)이 필요합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공짜로 기술을 공개해서 실질적인 시장 표준으로 만들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가끔 고객사인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적 권리나 노하우를 침해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납품가를 깎기 위해 의도적으로 원가 공개를 요구하거나, 다른 납품업체에 도면의 일부를 알려주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대기업은 특정 부품을 한 납품업체로부터만 공급받으면 불리해지기 때문에 2, 3차 납품업체를 키우려 하지요. 특히 한국에서는 전자나 자동차 등 주요 산업이 한두 회사에 의한 독과점체제로 유지되고 있어 이런 경향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소기업 스스로 각종 제도적 장치를 활용해 독점적 지식 재산권을 확보해야 합니다. 또 정부의 적극적인 모니터링과 공정 거래를 위한 개입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아무리 독점적 기술을 갖고 있어도 고객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란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중소기업들은 전략적으로 기술 관련 기밀을 유지하는 것과 어느 정도의 기술 유출을 감수하면서 대기업과 거래를 지속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좋은지를 판단해봐야 합니다. 실제 제가 알고 있는 중소기업은 자사가 개발한 제품의 기술도면을 제시하라고 요구한 대기업의 사정을 양해해줬습니다. 대신 다른 경쟁사에 비해 훨씬 우수한 원가 및 품질 납기 등의 경쟁력을 갖춰 많은 양의 주문을 받아내 회사를 성장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창출된 여유 자금을 새로운 기술 개발에 투자해 경쟁력을 유지시키기도 했지요.”
 
 
기업들은 외부와의 협력 과정에서 적극적인 학습을 통해 ‘협력 자산’을 확보해야 합니다. 성공적인 협력 자산 확보를 위해 기업들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저는 협력 자산이 기업의 핵심역량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중소기업의 외부 산학 공동개발 프로젝트의 성공 요인을 연구한 결과 ①시장 견인(market pull)에 의한 과제가 기술 추진(technology push)에 의한 과제보다 ②중소기업이 먼저 주도한 과제가 대학이나 연구소가 먼저 주도한 것보다 ③고객과 공동개발한 과제가 대학이나 연구소와 공동개발한 과제보다 성공 빈도가 높았습니다. 또 ④공동개발 파트너와의 신뢰관계가 높을수록(주로 오랫동안 같이 공동개발을 했거나 대학 혹은 연구소의 파트너와 개인적인 관계가 있었던 경우) 그리고 ⑤기술개발 과정에서 인력 교류와 정보 공유 및 커뮤니케이션 빈도가 높을수록 성공 가능성이 올라갔습니다.
 
공동개발 경험이 많고 성공을 더 자주 경험한 기업일수록 협력과 관련한 학습이 많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 더 큰 협력 자산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외부 협력이 아무리 중요한 대안이라 하더라도 중소기업 스스로가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면 성공하기가 어렵습니다.
 
중소기업은 외부 협력과 관련해 우선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개발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회사 바깥의 역량을 활용해야 합니다. 이때 외부 기술개발 협력과 내부 R&D 투자는 선택의 문제(make or buy)가 아닙니다. 오히려 2가지를 다 해야(make and buy) 시너지 효과가 커지고 성공 확률도 높일 수 있습니다. 올바른 외부 기술을 선택할 수 있는 선구안을 갖추고, 또 이 기술을 기업에 내재화하기 위해서는 흡수 능력(absorptive capacity)이 있어야 하는데, 흡수 능력은 바로 기업의 내부 R&D 투자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전략적 방향성과 기술 개발의 방향성을 일치시키는 것도 중요한 과제인데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에는 이런 전략적 분석과 기획을 할 수 있는 전문 경영 인력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 기술경영(MOT) 프로그램에서 중소기업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으니 차차 나아지겠지요. 먼저 커다란 미래의 비전(목표 시장과 사업 영역의 선택, 목표 등)에 대한 공감대는 있어야겠지만, 워낙 기술 및 시장 변화가 빠르고 불확실해서 구체적인 전략은 새로운 기회나 위협 요인의 등장에 따라 유연하게 가져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술 개발과 관련해서는 ‘기술 나무(technology tree)’에 기초한 로드맵을 만들 수 있는데, 이것 자체보다는 나무를 만드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시장이나 기술의 변화에 대해 학습하게 된다는 점이 매우 의미있는 것 같습니다.”
 
 
중소기업들은 기술 포트폴리오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기술에 분산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아니면 한두 가지 분야에 선택과 집중하는 게 나을까요?
“2가지 전략 모두 가능하고 품목에 따라 혹은 기업의 전략적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 전자(마쓰시타 전자부품, 알프스전자 등)보다 후자(무라다, 키엔스 등)의 전략을 취한 기업의 최근 수익률이 더 높긴 합니다. 저는 우리 중소기업에게는 한두 가지 핵심기술 역량을 확보한 후 고객의 니즈에 따라 제품군을 다양화하는 전략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기술개발 예산이 더 큰 성과를 내기 위해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요.
“우선 너무 분산돼 있는 중소기업 지원정책을 통합하고 연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곳에서 제기된 중소기업 지원 이슈에 따라 정책이 덕지덕지 붙여지다 보니 지원체제가 파편화됐고 나눠먹기식 자금도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너무 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다 보니 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선정한 소재 부품 장비 분야의 유망한 품목들 중 중소기업들이 주체가 되어 ‘글로벌 R&D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을 시범적으로 추진하면 어떨까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수요기업인 대기업도 참여하고 대학이나 연구소뿐 아니라 외국의 대학이나 연구기관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기존 전전자교환기(TDX)나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초고속 인터넷 사업 같은 컨소시엄은 주로 대기업 위주의 정부지원 사업이었고, 우리 경제에 신규 산업을 창출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업들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만약 중소기업이 주체가 된 글로벌 R&D 컨소시엄이 추진된다면 소재나 부품, 장비 등에서 대일무역 역조현상을 개선시키고 원천기술 혹은 핵심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히든챔피언을 육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실 원천기술이나 소재기술의 개발은 오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많은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가능합니다. 개별 중소기업 차원에서 이러한 R&D 투자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정부는 최근 글로벌 히든챔피언의 육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중심의 글로벌 R&D 네트워크 추진 사업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김영배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KAIST에서 경영과학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Management Science>와 <Research Policy> 등 저명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으며 기술경영, 조직관리, 전략경영 등의 분야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 김남국 김남국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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