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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형 혁신 전략

기업 경계 허무는 4세대 R&D, 개방형 혁신

김남국 | 45호 (2009년 11월 Issue 2)
기업 부가가치 창출의 핵심 동력은 연구개발(R&D)입니다. R&D는 혁신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R&D 생산성 저하로 고심하고 있습니다. 이제 혁신 과정 자체를 혁신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새로운 움직임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개방형 혁신입니다. 과감하게 내부의 지적재산을 공개하거나, 외부의 아이디어를 수용해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또 기술전략을 사업 전략과 일치시켜야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한국 최고 전문가들과 함께 혁신과정 자체의 혁신을 추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종합했습니다.
 
 
현대 정보기술(IT)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기업은 어디일까. IBM이나 애플, 인텔,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이 유력 후보로 떠오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의외의 기업을 꼽는다. 바로 복사기업체인 제록스다.
 
제록스는 1970년 팔로알토리서치센터(PARC)를 설립했다. 당시 컴퓨터 기술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원이 줄어들고 있는 틈을 타 PARC는 손쉽게 세계 최고의 공학자들을 영입했다. 이후 PARC는 IT 산업의 물줄기를 바꾼 역사적 기술을 줄줄이 개발했다. 레이저 프린팅, 분산 컴퓨팅, 네트워크의 표준인 이더넷(Ethernet), 맥킨토시와 윈도의 모태가 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raphic User Interface·GUI), 워드프로세서, 유비쿼터스 컴퓨팅 등이 PARC의 대표작들이다.
 

 
폐쇄형 혁신의 한계
그러나 경영 측면에서 매우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정작 제록스는 이런 눈부신 기술들의 성과를 거의 향유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제록스가 부가가치를 창출한 것은 프린팅 관련 기술이 전부였다. 나머지 획기적 기술의 대부분은 다른 기업에 이전돼 애플, MS, 3COM, 어도비시스템즈 등에서 꽃을 피웠다.
 
당시 제록스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미래 기술에 꾸준히 자원을 투입하는 등 최고의 연구개발(R&D) 지원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PARC 연구원들도 기술 자체에만 집착하지 않고 상용화를 위해 애플리케이션을 함께 개발하는 등 비즈니스 마인드도 갖췄다. 회사 경영도 매우 효율적으로 이뤄졌고 혜안과 리더십을 갖춘 훌륭한 간부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제록스는 왜 엄청난 사업 기회를 놓쳤을까.
 
헨리 체스브로 미국 버클리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이런 의문에 해답을 찾기 위해 100명에 달하는 제록스 임직원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했다. 연구 결과, 제록스는 경영을 잘 못해서 사업 기회를 놓친 게 아니었다. 제록스의 발목을 잡은 것은 오히려 당시 최고의 관행, 즉 베스트 프랙티스였다.
 
제록스는 최고의 인재를 모아 내부적으로 기술 역량을 축적하고 이를 활용해 생산과 판매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직적 통합 구조로 성장을 구가했다. 이는 독점적 내부 역량을 토대로 성장하는 폐쇄형 혁신(closed innovation) 모델이다. 당시 우량 기업 대부분은 이를 베스트 프랙티스로 여겼다. 이런 체제하에서 주력 사업과 관련성이 높은 프린팅 기술은 즉각 상업화됐으며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주력 사업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혁신적 기술은 회사 내에서 사업화 기회를 찾지 못했다. 따라서 이런 기술에 대한 무한정 자금 지원이 불가능했다. 결국 연구원들은 상업화를 위해 벤처기업 등으로 옮겨가 새 사업을 일궈냈다. 폐쇄형 모델을 고집했던 제록스는 외부로 유출된 기술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했다. 체스브로 교수가 분석한 결과, PARC 출신들이 만든 기업 24개 가운데 10개가 상장에 성공했다. 보통 벤처기업의 성공 확률이 5%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PARC 기술이 얼마나 위력적이었는지 실감할 수 있다.
 
제록스의 사례는 폐쇄형 혁신 모델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고의 인재를 영입해서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내부적으로만 활용하는 모델로는 급격한 환경변화에 대처할 수 없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개념이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이다.(표1)
 

 
개방형 혁신의 개념과 사례
개방형 혁신이 기업에 새로운 경쟁 우위를 제공하는 4세대 R&D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1세대 R&D에서는 우수한 연구자를 뽑아 관리를 잘하는 것이 초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우수한 연구자를 뽑더라도 프로젝트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2세대 R&D는 프로젝트 관리에 집중했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잘 관리해 기술 개발에 성공했더라도 사업화에 실패하는 사례가 많았다. 따라서 비즈니스 모델과 R&D를 통합하려는 전략적 노력이 이어졌고, 이 단계가 3세대 R&D로 불렸다. 하지만 기업의 경쟁 강도는 갈수록 강화됐고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는 초경쟁 환경이 등장하면서 전통적 기업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개방형 혁신이 급부상하고 있다.
개방형 혁신은 ‘내부의 혁신을 촉진하고 더 큰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외부의 지식이나 기술을 받아들이거나 내부의 지식을 유출하는 의도적 행동’을 의미한다. 이는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면서 자체 역량에 의존해 기술 개발을 추진했던 폐쇄형 혁신 모델과 큰 차이가 난다.(그림1) 개방형 혁신 모델에서는 외부의 아이디어가 기업 내부로 유입돼 연구개발 과정을 거쳐 상업화되기도 하며, 자체 개발한 기술이 외부 기업으로 유출돼 다른 회사에서 상용화가 이뤄지기도 한다.
 


 
개방형 혁신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생활용품 업체인 P&G다. 이 회사 A G 래플리 회장은 수년 전 충격적인 내부 보고서를 접했다. 연구개발비로 연간 15억 달러나 지출하고 엄청나게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상용화된 기술의 비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충격적 현실을 목도한 래플리 회장은 R&D 전략을 완전히 바꿨다. 핵심 기술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P&G의 특허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또 외부 전문가와의 협업을 강화했다. 내부 연구원은 7500명이지만 외부 전문가는 150만 명이 넘는다는 판단에서다. 혁신적 상품의 50%를 외부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만들겠다는 과감한 목표도 제시했다. P&G가 R&D 대신 C&D(Connect & Development)란 용어를 쓰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개방형 혁신으로 성과를 낸 P&G의 ‘프링글스 프린트’ 사례는 이제 케이스 스터디의 고전이 됐다. 감자칩 프링글스에 이미지를 새기는 작업은 매우 쉬워 보이지만 기술적으로는 난제가 많았다. 온도와 습도가 매우 높은 제조 과정 중에 프린트 작업이 이뤄져야 하고 식용 잉크도 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과거 방식대로 내부 R&D에 의존했더라면 제품 개발에서 출시까지 2년은 족히 걸렸다. P&G는 대신 기술적 문제를 잘 정리해 외부 전문가에게 해결책을 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 제과점을 운영하던 한 대학 교수에게서 해답이 나왔다. 워낙 좋은 대안이 제시됐기 때문에 제품 개발에는 1년도 채 걸리지 않았고 이후 프링글스 매출은 두 자릿수로 뛰어올랐다.
 
과거 폐쇄형 혁신 모델을 고집했던 IBM도 개방형 혁신을 통해 큰 성과를 냈다. IBM은 전통적인 관행에서 벗어나 인텔, 모토로라,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 외부 업체에 기술 특허를 개방해 새로운 수익원을 마련했다. 또 리눅스 관련 소스코드를 공개하는 한편, 내·외부 아이디어를 흡수하기 위해 ‘이노베이션 잼’과 같은 대규모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인텔도 개방형 혁신으로 돌파구를 마련했고 구글이나 애플도 적극적인 개방 정책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
 
선도적인 기업들이 개방형 혁신 전략을 채택한 이유는 지식과 인재의 분산 현상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벤처 캐피털 활성화로 지식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업이 가능해졌고, 중소기업이나 대학, 연구소 등도 독자적인 기술 역량을 확보하면서 글로벌 차원에서의 지식 분산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아무리 규모가 큰 대기업도 독점적으로 인재나 지식을 관리할 수 없다. 또 제품의 수명주기가 짧아져 R&D 비용 부담이 커졌고 연구 프로젝트 자체도 대형화하고 있다. 실제 제약업계에서는 신약 후보 물질 가운데 임상 실험이 이뤄지는 물질은 10만 개 가운데 6, 7개에 불과하기 때문에 장기간 엄청난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기술 융복합화 현상으로 특정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기술을 갖고 있더라도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서는 외부와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IT의 발달과 글로벌화로 외부 전문가들을 손쉽게 찾아내 네트워킹을 맺을 수 있다는 점도 개방형 혁신을 촉진한 요인이다. 특히 혁신은 본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아니다. 거의 모든 혁신은 ‘이미 존재하는 지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거나,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의 지식이나 아이디어를 결합하는 것’이다. 개방형 혁신을 도입해 과감하게 문호를 열면 외부의 이질적인 아이디어를 결합해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개방형 혁신과 기업 성과
일부 경영학 연구자들은 개방형 혁신이 기업의 성과에 실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증적 분석을 했는데 그 결과가 흥미롭다. 개방형 혁신은 두 종류로 구분된다. 외부의 지식이나 기술을 기업 내부로 받아들이는 ‘인바운드(in-bound)’와 내부의 지식을 외부로 유출하는 ‘아웃바운드(out-bound)’ 개방성이 그것이다.
 
덴마크 코펜하겐대 경영대학원 켈드 러슨 교수 연구팀이 영국 기업 2702개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했는데, 인바운드 개방성이 높을수록 기업의 성과가 좋아지다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성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적정한 수준에서 외부 정보의 원천을 활용했을 때 혁신 성과가 가장 좋았고, 너무 적거나 혹은 너무 많은 정보 원천에 의존해서 혁신 활동을 하면 성과가 낮았다.
 
연구팀의 통계분석 결과를 단순하게 해석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올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활용하는 정보 원천은 10개 안팎,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정보 원천은 3개 수준일 때 성과가 가장 좋았다. 여기서 정보 원천의 숫자는 개별 기업이나 전문가 수가 아니라 고객, 공급업체, 대학, 컨설팅사, 민간 연구소, 공공 연구소, 각종 포럼, 전시회 등 16개 정보원 가운데 기업이 혁신 과정에서 활용한 원천이 몇 개인지를 의미한다.
일정 수준을 넘어선 개방성이 성과에 악영향을 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팀은 외부의 정보를 활용하는 데 비용이 들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외부 정보 원천을 찾고, 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협력을 이끌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투자돼야 한다. 따라서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과도한 개방성은 비용대비 효과를 내지 못해 기업의 성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설명이다.
 
아웃바운드 개방성이 성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연구됐다. 독일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아웃바운드 개방성은 성과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외부로의 기술 유출은 경쟁사의 악용 등과 같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적절한 파트너를 만나면 상업화 성공으로 훨씬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연구 결과들은 개방형 혁신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다. 하지만 많은 한국 기업들은 내부 역량에 의존한 폐쇄형 혁신 체제를 고집하고 있다. 특히 외부 정보나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인바운드 개방성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더라도 아웃바운드 개방에는 소극적인 사례가 많다. 실제로 필자가 한국의 중소기업 연구개발 책임자 3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인바운드 개방성 수준에 비해 아웃바운드 개방 정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을 보였다.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 때문에 과감하게 문호를 열지 못하는 기업이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외부 기업에 기술을 개방하면 시장 창출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금은 ‘노하우(know how)’보다 ‘노후(know who)’ 혹은 ‘노웨어(know where)’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자체 역량에만 의존하는 성장보다는 외부와의 협력이 비즈니스 모델 혁신의 기회를 훨씬 키우기 때문이다.
 
 
개방형 혁신을 위한 제도와 인프라 구축
내부 협력 확대: 개방형 혁신을 추진하면서 외부 전문가들과의 연결 고리부터 찾으려는 기업들이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접근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내부의 개방성부터 먼저 돌아봐야 한다. 폐쇄적 혁신 문화를 가진 기업들은 내부 연구원들조차 서로 어떤 주제로 연구하고 있는지 제대로 모른다. 또 기업 내부의 지식과 기술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지 않아 자체 보유 자산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외부의 지식을 받아들이기 위해 아무리 강력한 제도와 시스템을 구축해도 성과를 내기 어렵다.
 
P&G는 사내 전산망에 이노베이션넷(InnovationNet)을 만들어 전 세계 지사에서 흩어져 근무하는 연구원들이 자유롭게 지식을 교환하고 서로 네트워킹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P&G 직원들은 이노베이션넷을 ‘글로벌 구내식당(global lunchroom)’이라고 부른다. 한 해에만 수백만 페이지 분량의 새로운 지식과 기술, 정보가 이곳에 올라온다. 또 아마존이 사용하는 것과 유사한 데이터 마이닝(데이터 간 유용한 상관관계를 추출하는 기술) 솔루션을 도입해 연구자들이 관심 분야의 정보를 손쉽게 업데이트할 수 있다. P&G는 또 수천 명의 연구원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를 개최해 사업화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교환하는 장도 마련했다. 한 번의 행사에서만 2000개 이상의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에서 개방형 혁신 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LG화학도 유사한 접근법을 취했다. 이 회사는 ‘테크페어(Tech Fair)’ 같은 공식 행사나 다양한 비공식 모임을 통해 연구원들이 자발적으로 교류하면서 협력하도록 유도했다. 또 내부 지식경영 시스템을 통해 지식을 공유함과 동시에 협업을 통한 문제 해결이 이뤄지도록 유도했다. 연구원 개개인이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기술적 문제를 공유해 다른 연구원과 협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또 해결하지 못한 기술적 문제를 제시한 후 상금을 걸고 공모전을 실시해 성과를 내기도 했다.
 
외부 혁신 네트워크 활용: 개방형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외부와의 연결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보한 지식 및 기술 중개 사이트를 이용하면 손쉽게 외부 전문가들과 네트워킹을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이트는 <표2>에 정리돼 있다. 이들 기관을 활용해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에는 특정 업계 관계자만 알 수 있는 용어는 사용해서는 안 되며, 상품과 관련한 문제를 직접 언급하는 것은 좋지 않다. 예를 들어 ‘저온에서 세탁이 가능한 세제를 만들고 싶다’는 식으로 질문해서는 안 된다. ‘특정 온도에서 특정 이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기능을 구현하는 기술을 찾는다’는 식으로 질문을 올려야 한다. 혁신적 아이디어는 세제 관련 분야의 연구자가 아닌 전혀 다른 분야에서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도록 기술적 과제를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또 이런 사이트를 이용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통상 해결하길 원하는 문제의 30% 정도가 해결된다.
 

 
개방형 혁신 전담조직 신설: 개방형 혁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 LG화학은 전략기획 팀 내 3명으로 개방형 혁신 추진 팀을 별도로 구성해 각종 제도적 장치와 인프라를 구축하는 활동 등을 벌였다. 생명공학 업체인 DSM은 DV&BD(DSM Venturing & Business Development)라는 별도 조직을 만들어 벤처캐피털 투자, 전략적 제휴, 기업 인수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화학업체인 APD도 CRADAs (Collaborative and Development Agreements)라는 조직을 두고 연구기관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P&G는 ‘기술기업가(technolgoy en-treprenuer)’ 제도를 운영해 톡톡히 효과를 봤다. P&G는 세계 각지에서 활약하는 70여 명의 기술기업가를 두고 있다. 이들의 역할은 온·오프라인을 누비며 새로운 기술을 파악하고 사업화 아이디어를 내는 일이다. 과학 논문이나 특허 데이터베이스(DB)는 물론이고, 전 세계 상점이나 전시회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다. 실제 일본에 근무했던 한 기술기업가는 우연히 오사카 잡화점에 들러 가정용 세척 스펀지를 발견했다. 한 일본 중소기업이 독일 바스프(BASF)사가 자동차 부품으로 개발한 원재료를 활용해 만든 상품이었다. 그는 이 제품을 구입해 사용해봤고 성능이 매우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기술기업가는 즉시 본사에 관련 제품을 보냈고, 본사 R&D팀은 독일 BASF와 협력해 제품을 개발했다. 이 제품이 스펀지에 물만 묻혀 바닥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미스터 클린 매직 이레이저(Mr. Clean Magic Eraser)’로 당초 전망치의 2배가 넘는 매출을 올리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
 
협력 경험 축적: 개방형 혁신을 추진하다 보면 외부 기관이나 전문가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외부와의 협력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 앞서 살펴봤듯 개방형 혁신 정도가 지나치게 높았을 때 성과에 악영향이 나타난 것도 바로 협력 비용 때문이다. 협력 비용을 줄이려면 외부와의 협력 경험을 통해 학습을 하면서 노하우를 축적해야 한다.
 
외부와의 협력 경험이 적은 기업들이 범하는 가장 전형적인 실수 가운데 하나는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국내 한 굴지의 대기업은 위기에 처한 외국 기술기업과 협력을 추진하면서 철저하게 유리한 계약을 추진했다. 상대 외국 기업은 사정이 워낙 어려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리한 계약 조건을 수용했다. 하지만 나중에 상황이 개선되자 한국 기업과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해버렸다. 한국 대기업이 계약을 위배했다고 압박하자 ‘소송할 테면 하라’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소송해봐야 별로 실익이 없었다. 결국 이 대기업은 중요한 기술 제휴선을 놓치고 말았다.
 
아무리 상대방이 어렵고 힘든 처지라 해도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좋지 않다. 많은 한국 기업들은 상대와의 협상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내는 데에만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단기 전투의 승리가 전쟁에서의 승리를 보장하지 못한다. 계약 조건이 불리할수록 해당 기업은 진심으로 협력하지 않게 된다. 또 협력 과정에서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일정이 지연되고 상대방의 사기가 떨어진다. 오히려 상대방의 동기부여가 이뤄지도록 잠재 수익을 공정하게 배분하면 협력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게 장기적으로 훨씬 유리할 수 있다.
 
협력 파트너와의 관계도 인간관계와 유사하다. 자주 만나서 신뢰를 형성해놓으면 나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반면 인적교류 없이 계약에만 의존하면 사소한 문제 때문에 관계가 단절될 수 있다. ‘악마는 사소한 일에 숨어 있다(devil’s in the details)’는 말처럼 작은 일이 단초가 돼 협력 관계 자체가 위기를 겪지 않도록 지속적 교류와 이해가 필요하다.
 
이밖에 과도한 관리와 잦은 평가, 지나치게 세세한 영역의 간섭 등도 기술 협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또 유망하지만 현재 저평가된 기술을 찾는 선구안도 길러야 한다.
 
 
기업 문화 정착이 성공 열쇠
개방형 혁신이 업계의 관심사로 등장하자 많은 한국 기업 관계자들이 P&G를 방문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큰둥했다. 별로 보고 배울 게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한 반응이다. P&G가 개방형 혁신으로 기업의 체질을 바꿨지만 물리적으로 눈에 보이는 요소가 바뀐 것은 별로 없다. 정작 달라진 것은 기업 문화다. 안타깝게도 기업 문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한 국내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는 기막힌 기술 제휴선을 찾아내고 들떠 있었다. 회사의 미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혁신적 제품 출시에 결정적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회사에 보고하자 엉뚱한 문제가 생겼다. 내부 R&D 부서에서 “그 정도 기술은 우리도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다”며 반발했다. 해당 업체의 기술력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기술과 관련한 지식이 부족했던 마케팅 담당자는 결국 외부업체와의 제휴를 포기하고 말았다. 기업 현장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런 현상은 ‘NIH(Not Invented Here) 신드롬’으로 불린다. 스스로 추진한 혁신이 아니면 일단 정서적 거부감을 갖게 마련이고 이는 개방형 혁신을 추진하는 데 결정적 걸림돌이 된다. P&G가 성공한 것도 이런 조직원들의 태도를 고쳤기 때문이다. P&G는 ‘PFE(Proudly Found Elsewhere) 문화’를 만들었다. 이런 조직 문화를 만드는 정해진 공식은 없다. 다만 변화에 대한 저항을 극복하고 새로운 문화 이식을 촉진하는 지침을 활용하는 게 좋다. 조직 문화 변화를 위한 자세한 지침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4호(2009년 1월 1호, 22∼30쪽)에 실려 있다. 여기에 실린 주요 지침을 토대로 개방형 혁신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팁을 간추린다.
①희망적 위기의식을 심어라: P&G는 내부 R&D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조직원들과 공유하면서 변화의 계기를 마련했다. LG화학도 연구 생산성 저하와 같은 위기감을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변화를 시작했다. 물론 절망적 위기의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조직의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실천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적 위기의식을 불어넣어야 한다.
 
②대담한 목표, 심플한 메시지를 반복하라: 개방형 혁신에 성공한 주요 기업들은 외부와의 협력, 내부의 지식 공유가 필요한 이유를 최고경영자(CEO)와 연구소장이 지겨울 정도로 언급했다. 또 P&G처럼 신제품의 50%를 외부 아이디어로 채우겠다는 대담한 목표를 제시해야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③행동 변화를 위한 제도적 힘을 이용하라: 조직원들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인사제도 개선이다. 한 예로 LG화학은 간부 평가를 할 때 개방형 혁신 성과를 일부 반영했다. 인사제도를 바꾸면 개방형 혁신이라는 이니셔티브가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조직원에게 전달된다.
 
④변화 성과를 공유하라: 개방형 혁신을 통해 성과를 낸 사례를 조직원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성공 사례에 대한 시상을 하는 등 성과를 공유해야 조직원들의 자발적 참여가 이뤄진다. LG화학은 격월 개최되는 열린 모임을 통해 성공 사례를 공유하며 매년 1회 ‘Open Innovation Award’를 운영하고 있다.
 
⑤상시 변화의 DNA를 심어라: 새로운 이니셔티브가 조직 문화로 자리 잡으려면 개방형 혁신 문화가 조직원들의 습관처럼 자리 잡아야 한다. 문제를 해결할 때 홀로 연구실에 갇혀 고민하지 말고 웹사이트를 검색하고 사내 전문가와 의견을 교환한 다음, 외부 전문가를 물색하는 관행이 자리 잡아야 한다. 또 신입 사원을 대상으로 개방형 혁신이 중요하다는 점을 교육해 조직의 DNA가 형성되도록 도와야 한다.
 
개방형 혁신을 추진했던 많은 기업들은 외부 정보 원천을 찾는 일에 집중한다. 하지만 개방형 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내부 조직 문화와 프로세스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외부에 수많은 기술과 가능성이 있지만, 이를 받아들일 자원과 역량이 없다면 성과로 연결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개방형 혁신으로 새로운 동력을 찾으려면 내부의 조직과 역량 강화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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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국 김남국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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