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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사업, 버리는 일부터 시작하라”

박용 | 43호 (2009년 10월 Issue 2)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1970년대 초 사업 포트폴리오 분석 도구인 ‘BCG 매트릭스’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4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쓰이고 있는 이 모델은 성장성과 시장점유율을 기준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단순 명료하게 분석하는 툴로 꼽힌다.
 
BCG 매트릭스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사업의 현재 상황과 대응 방향을 명쾌하게 보여주는 장점이 있다. 윤병석 BCG 파트너는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의 인터뷰에서 “신사업의 시작은 버리는 것”이라며 “돈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면 신사업도 나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윤 파트너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부터 한국 기업의 신사업 개발 전략 등을 조언하고 있는 베테랑 컨설턴트다. 다음은 일문일답.
 
 
신사업 추진에 능한 기업들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나?
“신사업을 시작하려면 버릴 준비부터 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은 사업 포트폴리오 정리를 잘 못한다. 매출의 20∼30%를 차지하더라도 수익성이 떨어진다면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현상을 유지하려고만 하면 신사업 추진의 ‘당위성’도 ‘위기의식’도 나오지 않는다. 미국 GE는 당장 돈을 잘 버는 사업이라도 미래를 위한 가치 창출이 안 되거나 회사의 비전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과감하게 버린다. 돈, 자원, 사람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두 끌어안고 있으면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포트폴리오 작업을 하면서 줄곧 버려야 한다고 외쳤지만, 실제로 버리는 기업은 많지 않았고 속도도 더뎠다. 과거 ‘삐삐(무선호출기)’ 사업을 하던 회사가 있었다. 주력 사업과 전혀 연관성이 없었고, 미래 성장성도 떨어졌다. 그런데도 버리지 못하더라. 돈이 안 되는 사업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데 다른 사업은 오죽하겠나.”
 
 
사업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정리하나?
“예를 들어 투하자본이익률(ROIC)처럼 지표를 정해놓고. 가중평균자본비용(WACC)이 나오지 않으면 과감하게 버리는 식이다. 삼성전자 주식이 85만 원이라고 해서 좋은 주식이 아니다. 이 주식이 200만 원까지 갈 수 있어야 좋은 거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걸 가졌을 때 200만 원이 될 수 있는 사업이냐가 중요하다.
 
내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가져가면 200만 원짜리 사업이 될 수도 있다. GE는 2007년 GE 플라스틱을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화학회사인 사빅에 매각했다. 좋은 사업이긴 하지만 10∼20년 후에는 수익성이 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면 사빅은 이 회사를 웃돈을 주고 인수해 저원가 전략을 추진했다. GE는 매각 대금으로 그린 산업 분야 등의 신성장 동력에 투자할 수 있었다.”
 
 
국내 기업들이 사업 포트폴리오를 쉽사리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몰라서 안 하는 건 아니다. 기업 내에 버리는 용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없다. 한국에서는 오너만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너는 계열사를 마치 자신의 분신처럼 여겨,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금기시한다. 한국의 제약업계를 봐라. 누구나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아무도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창업자들 대부분이 작은 회사들이 살아남기 어려운 시장 환경을 알면서도 팔지 못하고 안고 간다. 반면 외국에서는 전문 경영인이나 이사회가 결정을 내릴 수 있어 포트폴리오 정리가 쉽다.
 
변화에 적응하려면 전기(轉機)가 필요하다. 내부의 위기의식이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다. 새로운 걸 해보려는 사람들은 위기의식이 강하다. 이런 의식이 없으면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겁이 나니까. 신사업 조직을 과감히 분리하고, ‘이거 아니면 먹고살 게 없다’는 위기의식이 있어야 한다.”
 
 
신사업 아이템 발굴에 어려움을 느끼는 기업도 많다.
“아이템 발굴은 비교적 쉬운 편이다. 정보도 많고 아이템도 무궁무진하다. 문제는 무엇을 할 것이냐다. 미인과 결혼한 모든 사람이 행복하지 않듯, 아무리 유망해도 우리 회사에 맞는 사업 아이템이 아니라면 가치가 없다. 요즘 여기저기서 태양광 사업을 하겠다고 덤빈다. 태양광 사업이 아무리 유망해도 우리 회사가 이 사업을 잘할 수 있느냐는 건 별개의 문제다.
 
10∼20년 후 그 산업의 주도권(in-dustry ownership)을 유지할 수 없다면 애초에 신사업을 시작하면 안 된다. 비즈니스 모델의 이노베이션도 중요하다. 웅진코웨이가 정수기 판매에서 렌털 사업으로 바꾸고, 네슬레가 커피 전문점에서 사 먹는 에스프레소 커피를 집에서 만들어 먹게 만드는 네스프레소 사업을 시작한 게 대표적이다.”
 
경쟁자, 학계 등 외부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은 무엇인가?
“회사 내부의 역량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많다. 사회가 빨리 변하고, 정보도 엄청나게 많다. 사내 인큐베이팅이나 회사 내부의 아이디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P&G도 사업 아이디어의 절반 이상을 외부에서 갖고 온다고 한다. 고객, 협력업체, 학계는 물론 경쟁자로부터도 새로운 아이디어와 정보를 얻어야 한다. 아이디어를 내부에서 얻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경쟁의 속도에서 뒤처진다.
 
경쟁자부터 벤치마킹해야 한다.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면 한국 기업은 벤치마킹을 잘하는 편이 아니다. 여러 회사를 벤치마킹해야 경쟁사의 강점과 산업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현대자동차가 일본 자동차의 엔진을 분해하듯 경쟁사의 사업을 역추적해야 한다. 회사의 고객이나 협력업체 중 경쟁사를 함께 이용하는 사람들을 통해 벤치마킹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여전히 벤치마킹을 1000페이지 이상의 방대한 보고서를 만드는 일 정도로 과소평가한다. 숫자나 팩트에만 집착하지 말고 통찰력을 얻어야 한다. 경쟁사가 이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이고, 그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아웃소싱과 네트워킹이야말로 신사업 아이디어의 보고다. 한국 기업은 관련 업계에서만 아이디어를 찾는데, 오히려 학교에서도 가져올 게 많다.”
 
 
신사업 진출의 타이밍과 위험관리도 필요하다.
“진입 장벽의 틈이 생기는 산업의 변곡점을 노려야 한다. 업계의 표준으로 굳어진 어느 생산 방식 때문에 모두가 A라는 제품을 구매한다고 가정하자. 이때 친환경적이면서 생산비도 30% 싼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다. 이때가 바로 산업의 변곡점이자 신규 사업에 진입할 시점이다. 기존 업체는 기존 공법에 많은 투자비를 지출했기 때문에 새로운 공법이 좋은 걸 알면서도 바로 이를 따라잡지는 못한다. 틈이 생기는 셈이다.
 
이미 형성된 시장에 진입할 때와 형성 중인 시장에 진입할 때의 타이밍은 다르다. 후자의 예에서는 반드시 가격 위험을 염두에 둬야 한다. 사람들의 생각보다 제품 가격이 훨씬 빨리 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만 이 시장에 들어간다’가 아니라 ‘내가 들어가면 최소 10명 이상의 후발주자가 더 들어온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많은 기업들이 이 위험을 고려하지 못해 신규 사업에 실패한다.
 
이미 형성된 시장에 진입했을 때는 점유율 경쟁에 따른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많은 회사들이 경쟁업체의 시장점유율을 뺏기 위한 비용을 과소평가한다. 기존 업체가 50을 쓰고 있으니, 우리 회사는 100만 써도 고객을 뺏어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경쟁사 입장에서 보면 이미 50을 투자했기 때문에 50을 더 쓰는 건 일도 아니다. 경쟁사가 50을 지출하는 시장에 100을 투자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최소 300을 쓰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이런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300을 쓸 역량부터 갖춰야 하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 박용 박용 | - 동아일보 기자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설 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 연구원
    -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정책연구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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