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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중국, 질주하는 초광역경제권

DBR | 38호 (2009년 8월 Issue 1)
2009년 6월 5일 톈진(天津)시 빈하이(濱海)신구 타이다(泰達)금융광장. 하늘을 향해 거꾸로 세운 쐐기 모양의 유리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 유리건물들에는 영국계인 HSBC, 중국은행, 중국민생은행, 톈진은행, 중국건설은행 등 국내외 은행들이 입주해 있었다.
 
위풍당당한 지역투자청 건물 양옆으로 늘어선 미래적인 디자인의 은행 건물들은 마치 왕 앞에서 지시를 기다리는 신하들 같았다. 이미 들어선 4000개 이상의 외국계 기업과 앞으로 입주할 기업들을 위해 투자청과 은행들을 한 자리에 모아놨다는 설명이었다.
 
‘2000년대의 푸둥(浦東)신구’라고 불리는 빈하이신구의 첫 인상은 쾌적하다는 것이었다.
 
건물들의 높이는 서울 도심 못지않은데 하늘이 탁 트여 보였다. 용적률이 서울에 비해 대단히 낮기 때문이다. 건물들은 널찍하게 떨어져 있었고, 체감 녹지비율은 서울보다 높았다. 빈하이신구의 면적은 2270㎢. 서울의 4배에 가깝다.
 
타이다금융광장 주변 거리에는 나무와 잔디가 가득했고, 호수와 연못도 보였다. 타이다금융광장 한가운데에는 큰 정원이 있었고, 이 지역에서 부족하다는 물을 자동 스프링클러가 360도로 회전하며 뿌리고 있었다.
 
초기 개발에 참여한 중국사회과학원 수량경제및기술경제연구소의 리칭(李靑·여) 교수는 “빈하이신구는 ‘에코시티’로 만든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2.3.1 한국 전체와 맞먹는 거대한 경제권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와 모니터그룹의 세계 20개 메가시티리전(MCR) 경쟁력 조사에서도 베이징권(베이징, 톈진)과 상하이권(상하이)은 각각 12위와 13위로, 11위를 차지한 한국의 경인권을 바짝 뒤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 성장잠재력은 상하이권이 이미 경인권을 앞선 것으로 분석됐다.
 
중국 정부는 한 발 더 나아가 집적에 따른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거점도시와 성 단위의 광역지역을 한데 묶는 거대 광역경제권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각 경제권이 독자적으로 경쟁국가와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을 만들겠다는 포석이다.
 
서울과 인천을 합한 것보다 더 넓은 빈하이 신구지만 중국 정부 차원에서 보면 베이징권(베이징과 톈진)을 견인하기 위한 여러 거점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중국 정부는 인구 2100만 명의 베이징권을 인근 탕산(唐山) 지역을 포함해 ‘징진탕(京津唐·베이징-톈진-탕산)’ 경제권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발해만을 아우르는 베이징권 전체는 인구 2122만 명 규모이며, 도시군이 비교적 형성된 상태인 ‘베이징(北京)-톈진-탕산(당산)’의 이른바 ‘징진탕(京津唐)’ 경제권 인구는 4418만 명이다. 경제권 한 곳이 한국 전체와 맞먹는 압도적인 규모다.
 
최근에는 징진탕보다 조금 더 규모가 큰 ‘징진지(京津冀)’ 경제권도 거론된다. ‘베이징(北京)-톈진-허베이성(河北省)’을 잇는 용어다. 이 지역은 2007년말 총인구가 9691만명이고, 이중 농촌지역을 뺀 도시지역 인구만도 5026만명으로 한국 총인구보다 많다.
 
2.3.2 주장 강 삼각주, ‘경쟁상대는 한국’
베이징권은 주장(珠江) 강 삼각주, 상하이권과 함께 중국의 3대 광역경제권이면서, 그중 본격적인 투자가 가장 늦게 이뤄지고 있다.
 
주장 강 삼각주는 홍콩·마카오와 연접한 광둥(廣東)성 일대를 가리킨다. 개혁개방 초기인 1980년대부터 선전(深?) 경제특구를 중심으로 개혁개방의 실험장 역할을 하며 급속히 발전했다.
 
중국 3대 광역경제권 특징
주장 강 삼각주
-홍콩, 마카오와 연접한 광동성 광저우, 선전, 포산, 장먼 일대
-지구 내 총 인구 3050만 명(2003년 기준), 도시인구 비율 59.2%
-다수의 중소도시가 동시에 급속히 발전하고 있음
-광저우∼선전을 중심축으로 홍콩·마카오와 지역경제 일체화를 추진

창장 강 삼각주
-상하이시와 장쑤성의 난징, 쑤저우, 저장성의 항저우 일대
-초기에는 상하이와 장쑤성, 저장성의 14개 시를 포함하는 15개 시로 구성됐으나 현재는 안훼이성의
허페이시를 포함한 16개 도시로 구성
-중심도시인 상하이의 영향력이 크며 제조업 기반이 막강함
-질적 발전 단계에 도달했으며 세계 금융·물류 중심으로 성장 추진

징진탕(베이징-톈진-탕산)
-베이징, 톈진과 허베이성 탕산, 친황다오 일대
-지구 내 총 인구 4418만 명, 도시화 인구 53.8%
-베이징과 톈진의 행정적 지위는 높지만 지구 내 도시들 간의 연계가 미약하고 발전 수준 격차가 큼
-베이징∼톈진을 중심축으로 환발해만 지역의 경제발전을 선도

상하이권도 저장(浙江) 성, 장쑤(江蘇) 성 일대까지 포함한 창장(長江) 강 삼각주의 거대 광역경제권으로 발전하고 있다. 창장 강 삼각주의 경우 1990년대 푸동신구의 개발이 추진되면서, 개혁개방 이후 장쑤성과 저장성에서 발전해 온 향진기업과 민영기업의 발전도 더욱 촉진됐다.

이에 비하여 동부연해지구중 북부지구, 즉 베이징-텐진축을 포함하는 환발해만지역은 상대적으로 발전속도가 느렸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선 이후 침체된 북부지역의 경제성장을 촉진시키기 베이징-텐진축의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텐진 빈하이신구 개발은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이들 광역경제권 하나하나는 인근 국가 전체 규모와 맞먹는다. 실제로 홍콩·마카오와 연접한 광둥(廣東) 성을 포함하는 주장 강 삼각주는 경쟁 상대를 한국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광둥 성 정부는 올해 4월 ‘주장 강 삼각주 개혁발전계획’에서 2020년까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을 따라잡겠다고 발표했다.
 
이들 3대 광역경제권은 그 개발 방식이 놀랍도록 닮아 있다. 체제 개혁 면에서는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개방을 추진한 방식이 그렇다. 공간적으로 이들 경제권 내에 특구 또는 신구를 만들어 그 지역에 집중 투자해 주변 일대의 발전을 견인한 방식도 비슷하다.
 
2.3.3 특구와 신구 통한 거점 개발 전략
각각의 경제권에서 거점이 된 지역은 주강삼각주에서는 선전이었고, 장강삼각주에서는 푸둥이었다. 푸둥을 제2의 선전이라고 부르고, 빈하이를 제2의 푸둥이라고 하는 것은 본질에서도 정확한 표현인 셈이다.
 
중국 정부는 3대 거대 광역경제권의 특구와 신구에 대한 세금 감면 등의 특혜를 더욱 늘릴 계획이다. 2007년 11월 중국 공산당 17차 대회는 “앞으로도 경제특구와 푸둥(浦東) 신구, 빈하이 신구가 더욱 적극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기본방침을 정식으로 채택, 확정했다.
 
저장(浙江)대 토지관리학과 박인성 교수는 중국 광역경제권 발전의 특징을 △전략적 접근 △거대한 스케일과 과감한 추진 △집권체제하의 계획적 배치와 기능 분담 등을 꼽았다.
 
징진탕 내의 베이징과 톈진은 상호보완적인 분업과 협업 관계를 이루며 성장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베이징을 문화와 3차산업 중심, 톈진을 물류와 제조업 중심으로 개발하고 있다.
 
수도경제무역대 주얼쥐안(祝爾娟·여) 교수는 “국무원 국가발전기획위원회가 연구와 토론을 통해 도시의 성격과 위상을 정하면 각 성과 시가 그 틀 안에서 구체적인 개발 계획을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전략적 접근과 개발 계획, 도시들의 기능 분담은 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한 중국의 특성 탓에 가능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개발이 마구잡이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푸둥신구 개발 정책 결정은 1980년대 초반 상하이시 도시계획 수립 때부터 진행됐고, 10년 가까이 국내 전문가 토론과 프랑스, 이태리, 일본, 영국 등 외국 전문가의 자문 및 국제현상설계 등의 과정을 거쳤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은 1990년 푸둥 지구 개발 개방 방침을 확정했고, 1992년 ‘푸둥신구총체계획’을 만들 때까지 준비 작업을 진행했다.

2.3.4 ‘규모와 속도’로 가치 창출
광역경제권의 전례 없는 성장은 그 자체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IBM은 6월 11일 세계철도혁신센터(GRIC)를 베이징에 열었다. 철도산업 분야의 혁신이 중국에서 나올 것이란 판단에서다.
 
키스 디억스 IBM 이사는 “유럽이 고속철을 먼저 만들었지만 앞으로는 고속철과 관련한 기술 개발과 운영 노하우를 중국이 유럽에 가르쳐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개통한 베이징-톈진간 쾌속열차는 시속 330km의 속도로 베이징남역과 톈진역 사이 시간 거리를 종전 1시간 반 에서 29분으로 단축시켰다.
 
상하이 푸둥공항과 룽양루(龍陽路)지하철역 간 30키로미터 구간에서는 자기부상열차의 기술은 내년 5월 개최되는 상하이 엑스포 기간 전에 항저우까지 연결되어 현재 약 2시간 걸리는 상하이-항저우간 시간거리를 38분대로 단축시켜, 상하이-항저우 도시권 일체화를 추진하고 있다.
 
거침없는 성장을 하고 있는 중국의 광역경제권들도 고민은 있다.
 
주장 강 삼각주는 개혁개방의 선두 주자와 ‘중국의 관문’ 역할에서 장강삼각주 푸동신구와 빈하이신구 등과 차별성이 거의 없어졌고, 제조업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성장의 한계가 온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있다.
 
창장 강 삼각주지구 등의 대도시들도 교통 혼잡과 환경오염, 인구 고령화 등의 문제에 당면하고 있다. 징진지지구는 황하의 고갈로 인한 물 부족 문제가 심각하여, 장강의 물을 끌어오는 ‘남수북조(南水北凋)’와 바닷물 담수화 등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2.3.5 제 4, 5의 경제권들도 ‘전진 앞으로’
광역권이 커지면서 행정 체계와 구역이 중복되는 것도 골칫거리다. 이와 관련해 상하이 시에서는 토지를 효율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작년에 다른 지역에서는 모두 이원화돼 있는 토지관리와 도시계획 체계를 통합했다. 다수의 행정구역 중복 문제가 있는 빈하이신구는 단일 행정구로 통합을 결정한 상태다.
 
중국 전체적으로는 이들 3대 광역경제권을 포함하고 있는 동부연해지역과 중·서부 내륙지역 간의 격차 문제도 갈수록 심각하게 돌출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06년부터 시작한 11차 5개년 계획에서 다른 지역의 발전도 도시군(광역경제권) 형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3대 광역경제권 외에도 타이완 맞은 편인 해협양안 경제권, 산둥(山東) 반도 일대, 랴오닝(遼寧) 성 중남부, 쓰촨(四川) 성-충칭(重慶) 경제권 등이 개발되고 있다.
 
최근 중국은 대만과 마주보는 푸젠성 일대를 대상으로 ‘해서(海西)경제구’라는 명칭의 제4경제권 세우기에 돌입했다.
 
일각에서는 해서경제구에 위안화와 신대만폐(대만달러)가 통용되는 ‘통화 특구’가 건설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실화된다면 광역경제권 형성에 강력한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반포(反哺)’ 통하는 중국, “새끼 까마귀가 자라면 어미 봉양”,
 
광역권 선(先) 개발에 지방 반발 없어
개방 개혁이 먼저 이뤄진 선전(深) 특구, 푸둥(浦東) 신구, 빈하이(濱海) 신구와 서부 내륙 등 중국 내 다른 지역 간의 경제적인 격차는 한국의 관점에서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2007년 기준 간쑤(甘肅) 성의 주민 1인당 역내총생산(GRDP)은 6835위안(약 129만여 원). 반면 상하이 시는 6만5347위안(약 1241만여 원)으로 그 10배에 가까웠다. 도농 격차 역시 심각하다. 2007년 기준 농촌 지난해 농촌 주민의 순수입은 4140위안으로 도시 주민의 가처분 소득 1만3786위안의 30% 수준에 불과했다. 같은 해 기준 중국의 상위 10%가 벌어들인 소득은 하위 10%가 벌어들인 소득의 무려 55배라는 보도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의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지는 특구나 신구에 대해 한국의 수도권 규제와 같은 개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나오지 않는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가 강조하는 ‘반포(反哺)’ 개념이 그만큼 잘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미가 물어다 준 먹이를 먹고 자란 자식 까마귀가 나중에 어미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준다는 뜻의 ‘반포지효(反哺之孝)’에서 나온 이 말은 거점개발전략을 중국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주장(珠江) 강 삼각주와 창장(長江) 강 삼각주, 징진탕(京津唐)을 먼저 개발시키면 이들 지역이 외화를 벌어 들어와 다른 지역에 은혜를 갚으리라는 논리다.
 
같은 뜻으로 ‘두가지 대국(大局)’이라는 말도 쓰인다. 주장 강 삼각주와 창장 강 삼각주, 징진지 등이 먼저 발전하는 것이 첫 번째 대국, 이들 지역이 내륙의 낙후 지역에 ‘반포’하는 게 두 번째 단계의 대국이라는 설명이다. 저장(浙江)대 박인성 교수는 “반포나 ‘두 가지 대국’은 모두 개혁개방 이전 평균주의를 추구했으나, ‘공동빈곤’(共同貧困)의 결과를 맛본 쓰라린 교훈을 체득한 결과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사회과학원의 보고서도 지역 간 격차에 대해 다 같이 잘 사는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위한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역사적 진보’로 해석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사회과학원 리칭(李靑) 박사는 “지역 간 격차는 다 같이 잘 사는 ‘공동부유’(共同富裕)로 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난카이(南開)대학 빈하이개발연구원의 저우리췬(周立群) 상무부원장은 “경제 성장을 하려면 조건이 좋은 지역에 먼저 투자해야 한다”며 “다만 개발 순위가 밀리는 지역 주민이라도 복지, 교육, 위생 등 공공서비스에서는 차별 받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거점을 어디로 정하느냐를 두고 주변 도시의 불만은 있다. 그러나 창장 강 삼각주의 개발 거점을 푸둥으로 정할 때 장쑤성이나 저장성에서 “난징(南京)이나 닝보(寧波)도 있다”는 의견을 내는 정도이지, 고도의 중앙집권국가인 중국에서 중앙 정부가 결정한 사항에 지방이 반발하는 경우는 없다.
 
그럼에도 지역 간 격차가 지나치게 커지면서 중국 정부는 현재 시행 중인 11차 5개년 계획에서 지역 격차 해소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서부대개발’ ‘동북진흥’ ‘중부궐기’ 등 내륙 지역에 다른 성장 거점을 만들어 발전시키는 형태이지 앞서 가는 지역의 개발을 억제하는 것은 아니다.
 
저우 부원장은 “균형 발전이라는 말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대도시 중심으로 성장 극(growth pole)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상하이와 베이징만 성장 극으로 지정하고 지원할 게 아니라 충칭, 쓰촨 등 다른 지역들도 성장 극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보완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개발억제 정책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대도시에 대한 과밀억제 정책이 없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거주자가 등록된 행정 구역 안에서만 각종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중국의 호구제도는 상하이나 베이징 등 특정 지역에 대한 인구 쏠림 현상을 막는 강력한 과밀억제책으로 기능한다.
 
‘푸둥의 기적’ 일군 상하이 정책실험
 
‘외국인에 파격적 감세혜택 …진흙밭이 국제금융 허브로’
2009년 6월 찾은 상하이(上海) 시내는 푸둥(浦東), 푸시(浦西) 할 것 없이 거리 곳곳이 공사 현장이었다. 조금 규모가 큰 공사장에는 2010년 엑스포의 표어인 ‘베터 씨티, 베터 라이프(better city, better life)’라는 문구가 써 있었다.
 
고개를 들면 높이 468m인 둥팡밍주(東方明珠)타워와 함께 푸둥신구의 요란한 스카이라인이 보였다. 다소 과하게 화려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지만,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강렬한 개성을 풍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면 때문에 할리우드 영화 ‘미션 임파서블 3’나 ‘다크 나이트’도 이곳을 배경으로 삼았던 것이리라.
 
중앙 정부의 막대한 지원으로 ‘푸둥 속도’ 이뤄”
상하이에서 만난 호남석유화학의 중국 현지법인인 호석화학무역(상하이)유한공사의 서재윤 이사는 1991년 상하이시 공무원에게서 처음으로 푸둥 발전계획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코웃음을 쳤다고 했다.
 
허허벌판에 차도 없고 진흙에 발이 푹푹 빠지는 곳에서 설명을 듣는데 함께 있던 한국 기업인들 모두 ‘참 꿈도 야무지다’는 반응이었죠.”
 
그 진흙 밭을 20∼30년 안에 뉴욕 맨해튼처럼 개발한다는 얘기는 꿈처럼 들릴 수밖에.
 
그러나 1990년대 초부터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은 상하이는 ‘푸둥 속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빠르게 발전했다. 상하이는 꿈을 현실로 이뤄냈고, 푸둥 발전에 힘입어 2006년까지 상하이시의 역내총생산(GRDP)은 연속 15년 간 두 자릿수 성장을 유지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전부터 중국 최대의 공업 중심지였고 푸둥신구 개발 전에도 ‘세계의 공장’소리를 듣던 상하이였지만 1990년대 이후 발전 양상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1990년 시점의 상하이가 연해지구의 공업기지였다면 2009년 시점에서 상하이는 국제금융과 물류의 도시다. 1991∼2005년 상하이 역내총생산(GDP)이 경이적인 성장을 하는 동안 제조업 비중은 오히려 떨어졌고 대신 3차 산업 비중이 높아졌다.
 
기반시설 건설 등 직접적인 투자도 막대했지만 푸둥 발전을 이끈 원동력은 파격적인 규제 완화였다. 1990∼1995년 중국 중앙 정부는 상하이와 푸둥에 3차례에 걸쳐 특혜 정책을 실시했다. 투자 심사와 재정수입 확보 등에서 상하이시 정부의 자주권을 확대하고 투자자에게 세금 감면 혜택을 부여하는 등의 내용이었다.
 
상하이시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금지되는 외국기업의 은행 설립이 허가되고, 시 정부는 투자항목 심사비준 권리를 갖게 됐다. 저장(浙江)대 박인성 교수는 “푸둥과 관련된 정책은 매우 짧은 시간에 제정되고 발표됐다”며 “다른 경제특구에서는 실시된 적이 없거나 있었더라도 푸둥에 대한 지원 의지가 더 강한 정책들”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푸둥은 특히 토지사용과 대외개방 면에서 집중적인 지원을 받았다”며 “중앙 정부는 상하이와 푸둥에 대해 경제특구인 선전(深)보다도 강도가 높은 특혜를 주는 신(新)정책을 폈다”고 분석했다.
 
지금도 진행 중인 상하이의 정책 실험”
이 같은 규제 완화 정책을 외국 기업들은 입주 러시로 호응했다. 멍판천(孟凡辰) 중국지멘스 수석부사장은 “상하이시 자체만 해도 인구가 홍콩과 타이페이를 합한 것보다 많은데 13억 명이 있는 내수 시장의 관문이고, 거기에 제조업 기반까지 갖추고 있다”며 “외국 기업으로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할 도시”라고 말했다.
 
멍 부사장은 “홍콩과 비교해 상하이의 이점 중 하나가 제조업 기반이 있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인도나 베트남 등과 경쟁을 벌이는 것은 상하이 제조업이 나아갈 방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멩 부사장은 첨단 의료 기기, 궤도 교통, 에너지 공급 및 관리 분야를 유망 시장으로 꼽았다.
 
상하이시의 정책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상반기 상하이시는 도시계획을 맡는 성시규획관리국과 토지이용계획을 담당하는 국토자원관리국을 하나로 합쳤다. 식량 자원 확보를 중히 여기는 중국은 토지이용계획을 도시계획에서 분리해 농지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지만 상하이시에는 필요한 용지를 효율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예외를 둔 것이다.
 
올해 3월 중국 국무원은 2020년까지 상하이를 금융과 해상 수송센터로 발전시키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중국 정부는 이를 위해 외국인 기업들의 상하이 증시 상장 허용, 외국인의 주식 거래 확대 등의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항만 이용비도 낮추기로 했다.
 
상해시성시규획설계연구원의 선궈핑(沈國平) 연구원은 “상하이는 뉴욕, 런던, 파리와 경쟁하는 국제금융도시를 지향한다”며 “홍콩은 상하이가 목표로 하는 도시에 못 미친다고 본다. 홍콩은 동아시아의 금융 중심 정도고 상하이는 그걸 넘어서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셴 박사는 “항운 물동량에 있어서도 곧 상하이가 홍콩을 추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Interview 1 상해시성시규획설계연구원 선궈핑(沈國平) 연구원
 
중국 상하이(上海) 시의 도시계획연구원인 상해시성시규획설계연구원의 선궈핑 연구원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홍콩은 동아시아 지역의 금융 중심 수준이고 상하이는 그걸 넘어서서 세계의 금융 중심을 향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 연구원은 “그러기 위해서는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문제와 교통 문제 등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하이 시가 세계의 다른 도시 중 경쟁상대로 여기는 곳은 어디인가.
상하이는 현재 두 가지 분야에서 세계의 중심 도시가 되려고 하고 있다. 하나는 국제항운 중심이고, 또 하나는 국제금융 중심지이다.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미국 뉴욕, 일본 도쿄는 경쟁 상대라기보다는 참고가 되는 사례도시다. 이 도시들과 비교해 상하이 시는 더 노력해야 한다. 상하이는 국제금융 중심 중에서도 국제 외환거래와 무역의 중심지가 되려고 하고 있다. 달러가 아닌 인민폐로 거래하는 경제 중심지가 되는 것이 목표다.”
 
-아시아 금융 중심지라는 위상을 놓고 홍콩과 다투게 되지 않나.
홍콩은 1997년에 중국 대륙으로 반환됐을 때 이미 금융 중심 도시였다. 그러나 홍콩이 상하이가 목표로 하고 벤치마킹 하고 있는 파리, 런던, 뉴욕, 도쿄 수준까지는 못 미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홍콩은 동아시아 지역의 금융 중심 정도고 상하이는 그걸 넘어서서 세계의 금융 중심을 지향한다고 이해하고 있다.
 
-국제금융 중심을 지향하는 도시로서 상하이의 잠재력이나 장점은 뭔가.
우선 중앙 정부가 상하이를 외화 결제의 중심과 국제 항운 중심이라는 기능을 설정했다. 항운 중심의 면에서도 곧 상하이의 컨테이너 물동량이 홍콩을 추월한다.”
 
-상하이를 포함해 창장(長江) 강 삼각주가 겪고 있는 문제는 뭔가.
교통 문제와 주택 문제 등이다. 주택의 총량을 공급하는 것은 쉬운데 중·저소득층에 대한 주택 문제는 시장에만 맡겨서는 해결이 안 된다. 상하이도 신도시들을 건설하면서 부동산시장에 내놓을 주택 위주로 건설했는데 지금은 염가 임대 주택 등을 공급하고 있다.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문제는 교통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지하철 등 대중교통 수단을 확충하지 않으면 교외에 저소득층 주택을 지어본들 소용이 없다.
주택 문제는 그렇게 새로 집을 지어서 공급하면 되는데, 교통 문제는 정말 방법이 없다. 우선 자동차 관련 세율을 높이는 등 자가용 승용차 수를 낮추려 하고 있다. 2012년까지 궤도교통의 수송분담률을 30%로 높인다는 목표 아래 3년 단위로 대중교통정책 행동계획을 수립해서 발표하고 있다.”
 
-창장 강 삼각주에서 도시들 간의 이해관계는 어떻게 조정하나.
창장 강 삼각주는 다른 광역경제권인 주장(珠江) 강 삼각주와 비교해서도 복잡한 편이다. 주장 강 삼각주는 광동성 한 성 안에 있지만 창장 강 삼각주에는 상하이 시, 저장(浙江)성, 장쑤(江蘇)성 등으로 성 자체가 다르다. 처음에는 상하이 시를 포함해서 15개 시의 대표들이 모이는 정기회의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안후이(安徽)성의 성도인 허페이(合肥) 시가 최근 더해져서 16개 도시대표 정기회의가 열린다. 이 회의에서 산업 배치나 사회보장제도와 의료제도의 일치 문제, 기반시설 건설 등을 논의한다.”
 
Interview2 멍판천(孟凡辰) 중국지멘스 수석부사장 인터뷰
 
중국지멘스 전체의 수석부사장이자 중국 동부 지역 및 상하이 지사장을 맡고 있는 멍판천 부사장은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이 이룬 모든 성과가 상하이에 집중돼 있다”며 “창장(長江) 강 삼각주의 잠재력은 홍콩과 비교할 수 없이 크다”고 말했다. 중국 상하이 동제대를 졸업하고 독일 보훔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AT커니에서 13년 간 일했으며, 중국 상하이 동제대학교에서 겸임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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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광역경제권과 비교해 상하이권의 특징과 장점은 무엇인가?
우선 상하이는 지리적인 조건이 매우 우수하다. 연해 지구이면서도 창장 강 삼각주의 최하류에 속해 있다. 해운 물류에서도 뛰어난 조건이지만 항공 면에서 봐도 서울, 도쿄, 타이페이, 홍콩 등의 대도시가 모두 비행기로 1시간 안에 갈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다. 둘째로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이 이룬 모든 성과가 상하이에 집중돼 있다. 내수 시장만 봐도 상하이 시의 인구 1800만 명이 홍콩과 타이페이의 인구를 합한 것보다 더 많다. 그런데 그 뿐 아니라 상하이는 13억 명의 인구가 있는 중국 내수 시장의 관문이기도 하다. 선진 기술과 산업의 수요가 가장 큰 도시이기도 하다. 외국 기업의 관점에서 중국을 볼 때 가장 먼저 선택할 도시가 상하이다.”
 
-홍콩과 상하이를 비교한다면 어떤가.
우선 홍콩의 경우는 제조업 기반이 전혀 없다. 그러나 상해는 산업고도화를 추진하고 있으면서도 결코 제조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제조업이 창출하는 고용과 시장이 엄청나게 크다. 홍콩은 제조업을 포기하고 공장을 선전으로 옮겨서 ‘선전은 공장, 홍콩은 점포’라는 말이 나오는데 상하이 시의 경우 인구로 보나 배후지구의 잠재력으로 보나 홍콩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크다. 상하이는 중심 도시에서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다른 일도 차로 2시간 이내 범위 내에 있는 주변 지역에서 할 수 있다. 그러나 홍콩은 홍콩을 벗어나면 바다뿐이지 않나. 주변 지역이 너무 없다.”
 
-상하이 발전에 걸림돌이 있다면.
우선 교통 혼잡과 환경오염, 인구 고령화 문제 등이다. 세계 모든 도시가 다 같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상하이는 굉장히 심각하다. 교통 사정의 경우 몇 년 전만 해도 하루에 4개 정도의 회의를 참석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이동 시간이 길어져서 2개 정도밖에 참석을 못 한다. 공업 측면에서도 극복해야 할 점들이 있다. 지금까지 값싼 에너지와 원자재, 노동력으로 공업 발전을 해 왔는데 이제는 인도나 베트남을 경쟁상대로 삼을 때는 지났다. 선진국을 상대로 하이테크 경쟁을 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있다.”
 
-지멘스는 상하이에서 어떤 사업 기회에 주목하고 있나.
궤도 교통이나 시스템 관리, 에너지 절약 등을 주목하고 있다. 1000∼5000세대 정도 규모의 주거단지를 건설할 때 안전, 에너지, 주차 등의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창장 강 삼각주에만 지멘스 직원이 3만 명 정도 있으며 최종 목표는 ‘제로 이미션’(zero emission) 도시다. 인구고령화에 따라서 의료 시장이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는데 일류 병원과 의료 설비 공급 등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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