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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인터뷰

“고객의 가치 사슬 분석해 기회 찾아라”

신성미 | 42호 (2009년 10월 Issue 1)
과연 기업들은 ‘환경’과 ‘수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서비사이징을 통해 제품 일변도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벗어나 서비스와 제품을 결합해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홍대순 아서디리틀(ADL) 부사장은 “서비사이징은 고객, 기업, 그리고 환경을 포괄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에 이익의 선순환을 가져온다”며 “제조업체가 서비사이징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기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아즈니스리뷰(DBR)는 9월 14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ADL 사무실에서 홍 부사장과 황윤일 상무로부터 지속 가능한 서비사이징의 이점 및 구축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기업들이 지금 지속 가능한 서비사이징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홍 부사장
산업의 역사를 보면, 2차 산업인 제조업의 시대가 도래하자 1차 산업인 농업이 쇠락하지 않고 오히려 농업의 투자수익률(ROI)이 극대화됐다. 각종 농기계가 보급되면서 농업의 생산성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하게 3차 산업인 서비스가 제조업에 접목되면 침체기에 머물러 있던 제조업이 성장 곡선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즉 제조업체로서는 서비사이징이 ‘하면 좋은’ 게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서비사이징은 소비자가 ‘제품 자체’를 구입하는 게 아니라 ‘제품의 가치’를 구입하는 개념이다. 카 셰어링(car sharing)을 통해 소비자는 자동차를 사는 게 아니라 이동 서비스를 산다. 극단으로 가면 결국엔 소유라는 개념이 없어진다. 이러한 서비사이징은 ‘친환경’이라는 키워드와 맞물리면서 잠재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지속 가능 경영’이라는 화두에 대해서는 바람직하게 생각하지만, 당장 이익을 내지 못한다는 생각에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서비사이징이 기업의 지속 가능 경영에 실제로 얼마나 도움이 될까?
홍 부사장서비사이징은 기업뿐 아니라 고객, 나아가 사회 전체에도 실질적으로 이익을 줄 수 있는 ‘윈윈 모델’이다.
 
고객은 과거에 비해 제품 소유를 줄이고 원하는 만큼만 사용함으로써 제품의 구매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페인트 제조업체가 고객들에게 단순히 페인트를 팔기보다 페인트를 칠해주는 서비스를 한다고 하자. 각 가정에서 페인트를 직접 구입해 쓸 때는 정확한 사용량을 예측하지 못해 칠한 뒤 남은 양을 버려야 했다. 하지만 페인트 제조업체가 칠해주게 되면 집집마다 조금씩 버려지는 페인트 낭비를 막을 수 있다. 그만큼 고객의 페인트 구매 비용이 줄어들고, 버려지는 페인트로 인한 환경오염도 막을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제조 비중이 줄고 서비스 비중이 늘면서 5개를 만들어야 하는 공장 라인을 4개로 축소할 수 있으며, 최대 생산 능력(capacity)을 좀더 정확히 예측하게 돼 재고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재고 비용이 조금만 줄어도 기업의 수익성은 크게 높아진다.
 
사회에도 이익이 된다. 예를 들어 카 셰어링이 확산돼 자동차 운행 대수가 5대에서 1대로 줄어들면 매연이 감소하고 에너지를 덜 쓰니 환경에 좋다. 자동차 수요가 줄어드니 자동차회사도 공장 가동을 줄이게 돼 친환경적이다. 또 도로 사용량이 줄어 교통 혼잡이 덜해질 뿐 아니라 도로를 개보수하는 비용도 줄어든다. 즉 국가 차원에서도 사회간접자본(SOC)에 들어가는 재정 지출이 절감된다.
 
한마디로 서비사이징으로 인해 고객, 기업, 사회 전체에 이익의 선순환을 가져오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난다.”
 
 
기업이 제품 판매량을 줄이면 그만큼 이익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황 상무
그 때문에 서비사이징을 주저하는 기업들이 많다. 하지만 단순히 판매량이라는 항목만 볼 게 아니라 기업의 전체 비용과 매출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이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제조업체들은 분명 이 패러다임의 변화에 선뜻 따라올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판매 매출이 줄어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서비스를 통해 충성 고객을 오래 유지함으로써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동안 제품을 10개 팔다가 8개만 판다면, 부족한 2개에 해당하는 매출은 고객의 추후 재구매에 따른 이익과 고객 유지에 따른 마케팅 비용 및 영업 비용 절감 등으로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 생산이 줄어들면서 생산 비용이 절감되는 측면도 있다.
 
미국의 조명 제조업체 애퀴티 브랜즈는 고객사 빌딩에 찾아가 빌딩 전체의 전등 수 및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도록 컨설팅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이 회사는 경쟁업체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서비스를 하면서 고객의 욕구를 만족시켜주고 있다. 이처럼 고객에게 ‘비용 절감’이라는 고급 가치를 제공하면서도 ‘고객을 자사에 강하게 묶어두는(strong bind)’ 것이 서비사이징의 핵심이다.”
 
홍 부사장 단기적으로만 보면 기업과 고객이 서비사이징의 개념을 낯설어하거나 불편해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서비사이징 업체의 컨설팅 결과, 팩스 기기를 2대에서 1대로 줄였다고 가정하자. 고객사 직원 입장에서는 원래 책상 바로 옆에 팩스가 있었는데 더 멀리까지 움직여야 하니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점차 비용 절감의 효과를 본 고객사는 서비사이징 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더욱 높이게 될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서비스라는 건 일단 맛을 들이게 되면 마약과도 같아 떨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음식 배달 서비스에 이미 중독돼 간혹 배달이 안 될 때 불편함을 느끼는 게 좋은 예다. 따라서 제조업체는 제품 차별화뿐 아니라 서비스 차별화로 고객 만족을 이끌어냄으로써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뤄야 한다.”
 
황 상무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성장이 침체돼 있던 제조업체가 서비사이징을 통해 새 고객을 확보함으로써 회생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산업의 라이프사이클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시기에 온 기업도 다시 성장할 수 있다는 건 상당한 매력이다. 아마 신생 산업의 기업들은 서비사이징의 필요성을 당장 못 느낄 것이다. 그보다 산업이 상당히 오래돼 도저히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기업들이 서비사이징을 통해 사업을 크게 일으킬 수(jump up) 있다. 결국 기업은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생존을 위한 돌파구(breakthrough)로 자연스럽게 서비사이징을 할 수밖에 없다.”
 
 
서비사이징을 통해 기업과 고객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사례를 소개한다면?
홍 부사장서비사이징이라는 단어가 경영학자들이 쓰는 개념이라 낯설어 그렇지, 사실은 자신도 모르게 이미 서비사이징을 도입한 회사들이 꽤 있다. 국내에선 아직 생소하지만 해외에서는 유통업계에 ‘카테고리 매니지먼트’ 서비스가 활발하다. 예를 들어 대형마트에 과자를 납품하는 제과회사는 과거엔 무조건 ‘우리 회사 물건 많이 팔아달라’고 부탁하는 수준으로 영업을 했다. 하지만 서비스 경제에서는 제과업체의 입장이 바뀐다. 대형마트의 상권과 고객 특성, 매장 안에 과자가 진열돼 있는 공간을 분석해 ‘A사 ○○과자는 얼마만큼, B사 △△과자는 얼마만큼 진열하고, C사 □□과자는 아예 빼버리고, D사 ◇◇과자는 중간 사이즈만 진열하고, 동선은 이러이러하게 꾸미면 대형마트에 최적의 수익을 가져다준다’고 컨설팅을 해준다. 제과업체에서는 고객사인 대형마트 MD들이 가장 가려워하는 부분을 긁어준 것이다. 서비스를 해주는 제과업체에서는 제품뿐 아니라 서비스도 팔아 이익을 얻고, 대형마트와 협의해 카테고리 매니지먼트 결과로 얻은 이익을 나눠 가질(sharing) 수도 있다.
결국 손익계산서를 고객사와 제조업체가 통합해 따져보고 양쪽의 이익 전체를 극대화하는 게 서비사이징의 주요 포인트다. 자칫하면 한쪽은 배부르고 한쪽은 손해 보는 구조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크게 보면 국가 차원에서도 모든 경제 주체들의 이익을 최적화하기 위해서는 각 주체들의 손익계산서를 통합해야 한다.”
 
 
자기 회사에 적합한 서비사이징 사업 모델을 찾기 위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나?
홍 부사장기업의 가치 사슬(value cha-in)이 아니라 고객의 가치 사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고객의 욕구를 파악해 자사가 무엇을 바꿔줄 것인지에 대한 차별화된 전략 과제를 뽑아내는 게 중요하다. 즉 기업만의 관점이 아니라 고객의 관점을 포괄하는 통합적 사고가 필요하다.
 
기업의 가치 사슬은 ‘제품의 개발 → 생산 → 판매 → 애프터서비스(AS)’로 이뤄진다. 그런데 여기까지가 기업이 할 일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고객은 구매 ‘이후’에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고객의 가치 사슬, 즉 제품이 어떻게 쓰이고 소모돼 버려지는지 전체 과정을 봐야 한다. 가치 사슬을 고객에게까지 확장해보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견하고 차별화할 수 있다. 기업의 가치 사슬만 놓고 끙끙대며 고민하다 ‘이제 이 사업 접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가도 고객의 가치 사슬을 보고 나면 기회를 찾을 수 있다.”
 
황 상무고객의 가치 사슬로까지 시각을 넓힌 사례로 ‘모바일 마일리지’를 들 수 있다. 과거에는 통신사나 유통업체, 레스토랑별로 각각 마일리지 카드를 발급했는데, 이는 사실 제조업체의 입장만 반영한 것이었다. 소비자들은 지갑 안에 마일리지 카드가 수십 장이 있으니 넣고 다니며 찾아 쓰기가 불편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휴대전화에 마일리지를 적립할 수 있는 서비스가 나왔다. 휴대전화는 언제든 가지고 다니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무척 편하다. 이처럼 소비자의 마음을 꿰뚫는 것은 거창한 게 아니다. 소비자의 아쉬운 부분을 채워주는 데서부터 서비사이징이 시작된다.”
 
 
서비사이징은 기업의 신성장 동력을 발굴한다는 점 외에도 ‘친환경’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서비사이징이 환경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홍 부사장앞서 말했듯이 기업의 공장 설비가 줄어들어 매연과 폐수 배출에 따른 대기 오염과 수질 오염이 줄어든다. 고객은 전력 사용이 줄어 에너지가 절약되고, 물건 구매가 적어진 만큼 버리는 양도 줄어 토양 오염도 줄일 수 있다. 정부 역시 사회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되니 수명이 길어져 불필요한 자원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아직은 친환경 효과가 미약해 보일지 몰라도 패러다임이 전환되면서 점차 그 효과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인간이 건강해지고 삶의 질이 높아진다.
 
이처럼 넓게 보면 서비사이징의 의미는 굉장하다. 소비자는 100을 쓸 것을 30만 써도 충분히 만족하고, 기업은 1000을 생산할 것을 900만 생산해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다. 또 국가는 1000의 재정 대신 500만 써도 기업과 국민에게 상당한 혜택을 줄 수 있다. 서비사이징이 그 매개체가 될 수 있다.”

홍대순 부사장은 연세대에서 응용통계학 학사 및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글로벌 컨설팅사 아서디리틀(ADL) 글로벌 파트너 겸 한국지사 부사장으로 기술 및 제조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대기업과 정부기관을 대상으로 비전 및 하이테크 관련 신사업, 연구개발(R&D), 운영 혁신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황윤일 상무는 서울대 공업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고분자학 석사, 카네기멜런대에서 화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LG화학을 거쳐 현재 ADL 한국지사 상무로 재직하며 화학부문 리더로서 전자, 화학, 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신사업, 기술 전략 등을 수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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