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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역량에 대한 오해와 진실

신동엽 | 37호 (2009년 7월 Issue 2)
지난 10여 년간 경영학계와 언론은 물론이고 전 세계 기업들이 가장 자주 사용한 경영 용어 가운데 하나는 ‘핵심 역량(core competence)’이다. 동시에 가장 자주 오해한 개념도 이것이다. 필자의 경험에 비춰보면, 신문이나 경영 잡지, 그리고 기업이 자사의 핵심 역량이라고 정리해놓은 문서 가운데 절반 정도는 전혀 엉뚱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핵심 역량 강화하면 문어발식 다각화 더 잘해!
핵심 역량을 잘못 이해하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은 것은 재벌이 문어발식 다각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핵심 역량 사업 분야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식의 언론 보도는 핵심 역량 개념을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전혀 문제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이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핵심 역량이 마치 문어발식 다각화를 줄이고 소수 강점 분야로 선택과 집중을 하는 기준으로 보이는데, 실제로는 정반대다.
 
핵심 역량을 강화하면 오히려 문어발식 다각화를 더 잘하게 된다. 또 핵심 역량 논의의 초점은 문어발식 다각화를 하자는 뜻이다. 일반인들의 인식과 달리, 문어발식 다각화는 끊임없이 새로운 경쟁 우위(competitive advantage)를 창출해야 하는 21세기 글로벌 초경쟁 환경에서 필수 생존 요건이다.

21세기 초경쟁 환경과 셀즈닉의 고유 역량 이론
핵심 역량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그 개념이 맨 처음 탄생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핵심 역량 이론의 원류를 19401950년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조직 이론가 필립 셀즈닉에게서 찾고 있다. ‘테네시 강 유역 개발 공사(TVA)’에 대한 연구와 제도주의적 조직 이론으로 유명한 그는, 조직은 단순히 과업을 수행하는 기계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자체 생명력을 가진 유기체와 같다고 주장한다.
 
셀즈닉은 각 조직이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그 조직만의 독특한 ‘고유 역량(distinc-tive competence)’을 구축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고유 역량은 각 조직의 환경 적응 과정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조직마다 서로 다른 양상을 띨 뿐만 아니라, 다른 조직들이 모방하기도 힘들다. 또 다양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기반으로 확장·활용돼 조직의 생존과 성과를 결정하게 된다. 즉 고유 역량은 각 조직의 지속 가능한 차별적 경쟁 우위의 기반이 된다.
 
1940년대에 제시됐던 셀즈닉의 고유 역량 이론이 1990년대 중반 C K 프라할라드와 게리 해멀에 의해 핵심 역량 개념으로 재등장했는데, 이는 초경쟁 환경의 도래 때문이다. 20세기는 대량생산, 규모의 경제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런 시절에는 각 기업이 강점을 가진 소수 사업 분야를 선택하고 이에 집중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세계화로 인한 경계 파괴, 끊임없는 신기술의 등장, 그리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지식경제 출현 등으로 21세기 글로벌 초경쟁 환경이 조성됐다. 이런 환경에서는 기존 사업 분야나 경쟁 우위가 끊임없이 교란되고 무너지기 때문에 이를 방어하거나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오히려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 분야와 경쟁 우위를 신속하게 만들어내는 혁신과 속도, 즉 창조 경영이 생존의 필수 요건이 됐다.
 
따라서 21세기에 소수 사업 분야로 선택과 집중을 한 기업은 그 사업 분야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기 때문에 상시적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초경쟁 환경에서 기업들은 핵심 사업을 고수하려 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 분야를 신속하게 창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중심에는 핵심 역량이 있다.

사업 분야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야
흔히 핵심 역량을 각 기업에서 가장 중시하거나, 혹은 다른 기업들과 비교해 경쟁 우위가 있는 기술력이나 경영 관리 능력의 의미로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핵심 역량이라는 개념은 결코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핵심 역량은 기업의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경쟁자들이 모방하기 어려운 차별적 경쟁 우위를 제공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 분야나 시장에 확장 적용(leverage)할 수 있는 공통의 기술 역량이나 경영 관리 역량을 말한다. 이는 정확하게 셀즈닉의 고유 역량 개념과 일치한다. 즉 핵심 역량은 각 기업의 독특한 환경 적응의 역사를 통해 형성되므로 다른 기업들과 달라서 차별적 경쟁 우위를 제공한다. 또 쉽게 모방하기 힘들어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의 원천이 된다. 

그런데 핵심 역량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다양한 사업 분야들에 공통의 경쟁 우위를 제공하며, 미래에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 분야들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핵심 역량 개념의 초점은 각 기업이 현재 갖고 있는 사업 분야들에서의 경쟁 우위가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미래 사업을 창출하는 데 있다. 나무를 예로 들면, 사업 분야가 가지라면 핵심 역량은 뿌리다. 가뭄과 홍수가 계속되는 불안정한 환경에서 기존 가지들이 말라버리거나 부러져버리는 것처럼, 21세기 글로벌 초경쟁 환경은 극도로 불안정하다. 때문에 이런 환경에서 기업들은 기존 가지(사업 분야)에 매달릴 게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가지를 뻗어야 한다. 하지만 가지에서 새로운 가지가 나오지는 않으므로, 뿌리(핵심 역량)로 내려가서 끊임없이 새로운 가지(사업 분야)를 뻗어야 한다는 게 핵심 역량 개념의 본질이다.
 
핵심 사업 분야’ 사고와 ‘핵심 역량’ 사고의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기업이 바로 혼다다. 혼다는 사업 분야 기준으로는 무슨 회사인지 그 정체성을 이해하기 힘들다. 1948년 창업하면서 혼다가 가장 먼저 만든 것은 자동차가 아닌 오토바이였다. 그 후 경운기, 자동차, 잔디 제초기, 스노모빌 등 계속 새로운 사업 분야로 진입했다.최근에는 요트, 소형 제트기 사업에까지 진출했다. 이처럼 혼다는 엄청난 문어발 기업이지만, 수많은 사업 분야에서 거의 예외 없이 최소한 ‘글로벌 톱(top) 5’에 들어갈 정도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런 성과를 낸 비결이 바로 핵심 역량이다. 사업 분야 중심 사고로는 혼다를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곳의 수많은 사업 분야들은 모두 혼다의 막강한 ‘동력 기술(power technology)’을 적용했다. 즉 혼다는 동력 기술이라는 핵심 역량을 토대로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 분야를 창출하고 있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개인에게 있어 사업 분야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직무(job)다. 핵심 역량 개념을 인적자원 관리에 적용한 ‘탈직무화’와 ‘역량 중심 인적자원 관리’ 관점에서는, 개인들이 ‘나는 이런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여러 직무에 공통으로 활용될 수 있는 역량 중심으로 파악해야 한다. 요즘처럼 수많은 직종들이 사라져버리는 시대에 스스로를 특정 직무 수행자로 규정하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의 핵심 역량을 활용해 새로운 직무를 끊임없이 만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볼 때, 핵심 역량 사고는 현재의 경쟁력에 관한 개념이 아니라 미래 지향적 개념이다. 혼다가 1948년에 오토바이를 만들 때 이미 가지고 있었던 핵심 역량인 동력 기술은, 그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상용 소형 제트기 사업을 2000년대 중반에 만들어내는 뿌리가 됐다. 이런 의미에서 프라할라드와 해멀이 쓴 핵심 역량에 대한 책이 <미래를 향한 경쟁(Competing for the Future)>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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