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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을 안고 생존하는 방법

김남국 | 29호 (2009년 3월 Issue 2)
개인이나 기업 모두 실수, 혹은 잘못된 행동으로 오점을 남길 수 있다. 실제로 세계적인 대기업들도 뇌물, 최고경영자(CEO)의 잘못된 행동, 비도덕적 관행 등 다양한 스캔들로 곤욕을 치렀다. 이처럼 씻기 어려운 오점을 남긴 기업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경영학 분야 최고 학술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Organization Science’ 최신호(2009년 12월호)에는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가 실렸다. 미국 플로리다 애틀랜틱대 브라이언트 애슐리 허드슨 교수 연구팀은 ‘남성 욕장’ 정도로 번역되는 ‘Men’s Bathhouse’를 연구했다. 남성 욕장은 회원으로 가입한 남성 동성애자들이 모여 성행위를 하는 곳으로, 체육 시설이나 사우나 설비 등이 갖춰져 있다.
 
연구팀이 남성 욕장에 주목한 이유는 이곳이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조직 가운데 본질적으로 오명(stigma)을 안고 있는 대표적 예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많고, 에이즈 바이러스(HIV) 확산의 진원지라는 따가운 시선 때문에 남성 욕장은 아무리 애를 써도 오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하지만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고객, 공급업체, 규제 당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연구팀은 어떻게 이들이 이해 당사자들과 관계를 유지하며 생존하고 있는지 집중 탐구했다.
 
미국 전역에 퍼져 있는 25개 남성 욕장을 연구한 결과, 본질적으로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조직은 생존을 위해 5가지 방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첫 번째 방법은 ‘고립 전략’이다.남성 욕장의 대부분은 외진 곳이나 밤에 인적이 뜸한 산업 시설 내에 위치해 있었다. 간판도 잘 보이지 않아 일반인들은 그 존재를 알아채기 힘들었다. 동성애에 개방적인 태도를 취한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은 곳에 비해 남성 욕장의 간판이 다소 밝았다.
 
두 번째 방법은 ‘통합 전략’이다.시설 유지 보수를 위해서는 여러 공급업체가 필요하다. 남성 욕장의 상당수는 가급적 동성애 커뮤니티 내에서 각종 자재를 조달하고, 유지 관리 서비스도 받았다.
 
세 번째 방법은 이른바 ‘드라마투르기(dramaturgy· 극작법)’다.많은 남성 욕장들은 ‘성행위 금지’라는 푯말을 걸어놓기도 하고, 헬스장과 비슷한 분위기로 꾸며놓기도 한다. 헬스장에서 볼 수 있는 사진과 운동 기구를 구비해놓은 곳도 많았다. 영락없이 헬스장 분위기로 연출해 규제 당국의 압박을 피하려는 노력이다.
 
네 번째 방법은 ‘회원제’를 유지하는 것이다.대다수 남성 욕장은 멤버십 카드를 발급했다. 물론 그 카드에는 고객의 이름이나 고유번호, 업소 명칭 등은 없었다. 카드 뒷면에는 운동 기구를 파손하면 안 된다는 식의 헬스장을 연상케 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다섯 번째 방법은 일반 기업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영업’을 하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의 성행위 장소라는 것을 숨기지 않고, 일반 공급업체와도 계약을 하는 식이다. 물론 이런 방법은 동성애에 대한 우호적 여론이 조성된 곳에서만 활용됐다.
 
월마트는 최저 가격을 무기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저임금 문제 등으로 상당히 좋지 않은 인상을 주고 있다. 이처럼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오명과 관련돼 있거나, 일시적으로 오점을 남긴 기업이라면 극단적 사례인 남성 욕장의 생존 방법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 김남국 김남국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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