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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는 벌거벗은 왕인가?

최재혁 | 29호 (2009년 3월 Issue 2)
유명한 안데르센 동화가 하나 있다. 옛날 어느 나라에 옷을 좋아하는 왕이 살았는데, 한 재봉사가 찾아와 신기한 옷감으로 옷을 만들겠다며 감언이설로 왕을 속이고 만드는 척만 했다.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이 옷이 왕이나 신하에게 보일 리 없었다. 하지만 어리석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아무 말도 못했다. 왕은 거리를 행진하다 한 아이의 진실한 외침에 재봉사에게 속았음을 깨달았다.
 
최근 타임지(誌) 온라인 판에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한때 왕이었던 콘텐츠, 지금은 거지가 되다(Content, Once King, Becomes A Pauper).’ 이 기사는 마치 벌거벗은 왕에게 소리치는 아이의 외침과도 같았다. 오랜 기간 동안 미디어 산업에서 당연시됐던 ‘콘텐츠는 왕이다(Content is King)’라는 금언을 비꼰 이 표현은 영화, TV쇼, 잡지, 라디오 또는 인터넷 콘텐츠의 가치가 급속히 하락하고 있음을 명쾌하게 지적했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콘텐츠를 쉽게 찾거나 접할 수 있게 됐지만, 콘텐츠 개발자 혹은 소유자는 수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의 발전으로 인해 콘텐츠의 본원적 가치(instinct value)가 추락한 것일까? 사실, 콘텐츠는 문화적 개념이 강하기 때문에 계량적 방법으로 그 가치를 간단히 계산할 수는 없다. 만약 현존하는 뉴스를 비롯한 콘텐츠들이 일순간 사라진다면 단순한 시장 붕괴 이상의 파문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현재의 민주주의 양상이나 사회 구조에도 큰 변화가 올 것이다. 즉 콘텐츠 하나하나의 영향력은 단순한 ‘읽을거리’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다.
 
대신증권의 2007년 하반기 산업 전망 보고서는 국내 미디어 산업의 중심축이 단말기에서 콘텐츠로 이동하고 있다면서, 경쟁력 높은 콘텐츠와 광고가 핵심 수익원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한 2008 월드 모바일 콩그레스(World Mobile Congress)의 핵심 화두도 콘텐츠 서비스의 본격적인 등장이었다. 모바일 산업은 과거 하드웨어 업그레이드와 외형 디자인 중심의 차별화에서 단말기에서의 콘텐츠 서비스 최적화로 이동할 것이라고 예측됐다. 이렇게 중요하다는 콘텐츠가 왜 거지가 되었다는 것일까?
 
콘텐츠=공짜’라는 환상
퓨 리서치센터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 신문 잡지의 온라인 구독 비율이 직접 사서 보는 사람보다 많아지면서 종이 신문 잡지의 몰락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온라인 환경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은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30센트는 아깝지 않아도, 뉴스를 보기 위한 10센트는 아까워한다. 즉 콘텐츠는 당연히 무료라고 인식하는 세대가 돼버렸다. 콘텐츠의 디지털화는 세상을 평평하게 만들었지만, 수익성을 악화시켜 콘텐츠 생산자를 먹여 살릴 수 없게 됐다.
 
어찌 보면 콘텐츠라는 ‘왕’은 공짜경제(freeconomics)의 환상에 빠져 자신이 벌거벗었음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자족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인터넷 비즈니스 생태계 안에 있는 타 사업자들이 콘텐츠를 왕이라 칭하며 이를 앞세워 사용자들에게 공짜로 주는 대신
인터넷 사용료를 받고(ISP업체) 광고에서 수익을 얻으며(포털업체) 콘텐츠를 구동할 기기를 팔고(제조업체) 사용자 간 공유 인프라 사용료를 받는(웹하드업체) 동안, 콘텐츠업체들은 재주만 부리다 빈털터리가 된 꼴이다. 오프라인 사업에서 출발한 콘텐츠업체들은 온라인에서 콘텐츠 노출이 많아지면서 오프라인 사업의 매출이 늘어났던 초기의 모습에 안주해, 그런 생태계 구조에 대한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방치했다. 결국 온라인 매출이 오프라인 매출을 초과하고, 사용자 이용 행태가 굳어지면서 형성된 ‘콘텐츠=공짜’라는 인식을 더 이상 바꿀 수 없게 됐다.
  
인터넷 산업에 의한 콘텐츠 산업 파괴는 수익성을 확보해야 하는 콘텐츠들의 기형적 변화를 가져왔다. 한국에서는 일반 음반 시장(650억 원)보다 컬러링 시장(약 2200억 원)이 훨씬 크다. 따라서 컬러링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작곡, 작사의 패턴도 달라지고 있다. 컬러링 시간인 30초에 맞춘 짧고 반복적인 운율과 리듬의 곡들이 트렌드가 된 것이다. 미국 드라마 시장에서 웹비소드(Webisode)라고 해서 유튜브 등 동영상 사이트에 올리기 좋은 길이인 5
10분 단위로 에피소드를 나누어 대본을 작성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출판 시장에서는 검색엔진에 잘 걸리도록 주요 검색어 중심으로 책 제목을 정하고 있다. 자금에 목마른 콘텐츠업체들은 이제 본질적 가치를 증대하려는 노력보다 수익성 확보에 열을 올리는 실정이다.
 
콘텐츠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벌거벗은 콘텐츠에게 옷을 입혀줄 수 있을까? 당장 모든 콘텐츠를 유료화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게 한다면 오히려 콘텐츠를 넘어 인터넷 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정보의 불평등을 야기할 가능성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담론은 차치하더라도, 쓰레기 같은 콘텐츠와 양질의 콘텐츠가 섞여 콘텐츠 전체에 대한 불신감이 커지고 이용률은 더 낮아지는 악순환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이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콘텐츠의 가격과 수익 체계에 대한 4가지 유형과 수익 모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콘텐츠의 절대적 가치를 높여 수익을 얻는 ‘마이크로 결제(micro-payment)’ 유형이다. 즉 고객들이 단위 콘텐츠에 대해 소액 결제를 할 수 있는 마이크로 결제 시스템을 갖추고 양질의 콘텐츠라는 인증을 해준다면 콘텐츠 대가를 기꺼이 지불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 경우 비싸게 지불한 콘텐츠는 뭔가 다르다는, 유료 콘텐츠에 대한 인식 변화가 동시에 필요하다.
 
두 번째는 콘텐츠의 상대적 가치를 판단해 수익을 분배하는 ‘이익 분배(profit sharing)’ 유형이다. SK텔레콤 멜론의 MLB(Music Library Bank) 시스템처럼 고객의 사용 정도를 파악해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이를 영화, 게임, 뉴스 등 다양한 산업에 적용해볼 수 있다. 이 방식은 콘텐츠 제작과 판매를 분리해 제작자는 콘텐츠 완성도 향상에 집중하고, 판매자는 판매에 집중하는 모델이다. 이런 모델을 통해 발생한 수익금이 상업성 외에 문화의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는 분배 규칙에 따라 배분되면, 균형 잡힌 콘텐츠 생산 기반을 마련하면서 광고주들의 직접 개입을 막을 수 있다.
 
세 번째는 콘텐츠 이외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부가가치(value-added)’ 유형이다. 2007년 8월 영국 가수 프린스는 일간 신문인 데일리메일 일요판에 560만 달러 상당의 앨범을 끼워 뿌리는 대신, 런던 콘서트 투어를 통해 2340만 달러, 그리고 데일리메일로부터 100만 달러의 라이선스료를 받았다. 영화라면 PC로는 경험할 수 없는 영화관만의 사운드 및 영상, 신문이라면 최근 사건과 연관된 희귀한 과거 자료 등 차별화한 부가가치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콘텐츠 내용 외에 다른 요소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컨텍스트 페이(context pay)’ 방식이 있다. 고객이 느끼는 가치는 콘텐츠 내용만이 아닌 컨텍스트와 연관되어 있고, 이 컨텍스트를 분해해 상품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컨텍스트 페이 방식으로는 쉽게 얻지 못하고 복제 불가능한 콘텐츠에 대해 한정된 사람에게 유료로 제공하는 희소성 모델 가장 빠르게 공급하거나 가장 오래되어 구하기 어려운 콘텐츠를 제공하는 시간 가치성 모델 시리즈화하거나 연관된 콘텐츠를 저렴하게 번들링해 구성하는 연계성 모델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래도 콘텐츠는 왕이다
방송이나 통신 및 인터넷 산업의 관점에서 보면, 콘텐츠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약자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전체 산업의 구조를 설계할 때, 콘텐츠업체들의 상대적 불이익은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콘텐츠가 없으면 검색엔진도, 포털도, 인터넷TV(IPTV)도 존재할 수 없다. 양질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당한 방식으로 이익을 확보해주는 구조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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