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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3 허형만의 커피집

‘골리앗’ 스타벅스 이긴 8평 ‘다윗’

하정민 | 27호 (2009년 2월 Issue 2)
국내 커피 전문점 시장은 누구나 인정하는 대표적인 레드오션 시장이다. 스타벅스나 커피빈과 같은 외국계 대형 프랜차이즈를 필두로 할리스·엔제리너스·파스쿠치·맥카페 등 기타 프랜차이즈와 중소 브랜드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고급스런 이미지와 쾌적한 인테리어로 젊은 층을 사로잡았다. 소비자들은 밥보다 더 비싼 가격을 마다하지 않고 수입 커피 브랜드에 환호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묵묵히 맛과 품질로 승부하며 외국계 ‘골리앗’에 맞서는 국내 토종 커피 전문점이 있다. 커피 마니아들이 인정하는 ‘허형만의 커피집’이다. 허형만 사장은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국내 한 대형 커피업체에서 약 20년 동안 근무했다. 그는 2001년에 다니던 커피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주택가에 조그만 가게를 열었다.
 
큰 길 부근에 위치한 것도 아니고, 수입 커피점처럼 대대적인 광고를 하지도 않았으며, 매장 평수도 8평(약 26.5㎡)에 불과한 이 조그마한 가게의 매출은 연 4억 원에 육박한다. 허 사장과 부인, 오후에만 일하는 파트타임 직원이 낸 성과로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한 집 건너 40∼50평(약 130∼165㎡) 규모의 대형 외국 커피 전문점이 들어차 있는 강남에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성공을 이뤄냈을까.
 
커피를 인테리어로 승부해선 안된다
‘허형만의 커피집’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상가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의 트렌드를 좌우하는 압구정동에 위치하고 있으니 ‘허형만의 커피집’ 역시 매장 외장부터 남다를 것이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파트 상가 1층에 위치하고 있다지만 소규모 가게들이 워낙 빡빡하게 들어차 있어 간판조차 찾기 어려웠다.
 
매장으로 들어선 순간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8평 남짓한 규모의 매장에는 테이블이 불과 3개밖에 없었다. 게다가 자가 로스팅 기계와 세계 각지에서 수입한 생두 자루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 흡사 동네 방앗간 분위기마저 풍겼다. 우아한 인테리어, 감미로운 음악 선율, 화려한 명품으로 치장한 세련된 20대 여성들이 앉아 있는 커피 전문점의 전형적인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저 역시 큰 길가 대형 매장을 내고 싶었지만 퇴직금으로 매장부터 기계설비, 인테리어까지 다 하려니 여기에 가게를 내는 것도 무척 빠듯했습니다. 게다가 상가 1층에는 저희 집 말고도 모두 음식점이 들어차 있습니다. 공인중개소에서 그러더군요. ‘여기 들어온 음식점치고 잘 된 곳이 별로 없는데 이 커피집이 얼마나 갈지 걱정했다’고요. 창업 후 2년 동안 이 아파트 거주민 고객이 별로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 조그마한 가게가 까다로운 커피 마니아들로부터 최고의 커피점으로 인정받은 비결은 단연 맛이다. 그는 스스로를 ‘커피人’이라고 부른다. 단순히 에스프레소 기계를 사용해 커피를 뽑아내는 바리스타가 아니라 커피 생두(green bean) 고르기, 로스팅(roasting·볶기), 블렌딩(blending·섞기), 커피 추출 등 커피 제작의 전 과정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상호에 자신의 이름을 넣은 것도 맛에 관한 신의를 지키겠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허 사장은 커피 맛을 자신하는 가장 큰 이유로 최상의 재료 구입과 그만의 독특한 즉석 로스팅을 들었다.
 
“원두 커피는 생두를 즉석에서 볶아서 만든 식품입니다. 자연스레 시간이 지날수록 본래의 맛과 향이 떨어지죠. 수입 프랜차이즈의 커피가 원두 본연의 맛과 향을 낼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외국 본사에서 한국에까지 재료가 오는데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아무리 진공 팩을 이용해 공수해도 향미가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원두 종류에 따라 그에 맞는 각각의 로스팅 기법이 있고, 설령 같은 원두를 쓴다 해도 어떤 방법으로 얼마의 시간을 들여 로스팅 하느냐에 따라 커피의 향·맛·색깔 등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획일화된 로스팅으로는 제대로 된 커피 맛을 낼 수 없다는 뜻이죠.”
 
모든 고객에게 친절할 수는 없다
수입 커피점에 비해 마케팅 파워에서 밀리는 소형 가게들이 유명해진 것은 결국 소비자들의 입소문 덕분이다. 그러나 이 같은 구전 마케팅은 위험성도 상당하다. 가게에 온 사람들이 블로그나 인터넷 카페에 조금만 좋지 않은 글을 올려도 상당한 파급 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까칠한 고객에게 더 잘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허 사장은 오히려 ‘모든 고객에게 친절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신조’라고 답했다. 입소문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고객에게 무작정 친절할 수 없으며, 이것이 성공에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저희 가게에서는 원칙적으로 리필을 안 하지만 종종 리필을 요구하는 고객이 계십니다. 그때 ‘사장님. 이 커피 너무 맛있는데 조금만 더 먹을 수 없을까요’라고 하는 분과 ‘청담동 어느 집은 제가 말하기도 전에 리필부터 해 주는데 여긴 왜 이래요’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저도 사람인데 전자의 고객께 리필을 안 해 드리겠습니까. 그러나 후자의 고객은 어차피 제가 잘 해 드린다 해도 충성 고객이 될 확률이 낮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잘 해 드리기보다 전자의 고객과 같은 분에게 더욱 좋은 커피와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것이 제 철학입니다. 고객 역시 자신이 행동하는 만큼 대접받아야 하니까요.”

허 사장은 추출보다 로스팅에 치중하고 있다. 즉 커피 판매보다 로스팅한 원두를 직접 판매함으로써 얻는 매출이 훨씬 크다는 의미다. 매장이 협소해 대량의 고객을 유치할 수 없는 만큼 최상의 기술로 로스팅한 원두를 직접 판매해 한번 맛을 들인 고객을 장기 고객으로 확보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계산에서다.
 
이 전략은 멋지게 성공했다. 현재 ‘허형만의 커피집’ 전체 매출 중 약 70%가 원두 판매에서 나온다. 매장 내 판매가 20%, 커피스쿨로 인한 수입이 10% 정도다. 그는 커피학과 제조법 등을 포함한 기본 7주 과정의 커피 강좌를 열어 현재까지 수백 명의 제자를 배출했다. 로스팅 매출이 절대적이니 일부러 넓은 규모의 매장을 갖추지 않아도 되고, 많은 노동력을 투입할 필요도 없다. 고수익이 가능한 이유다.
 
허 사장은 커피 맛에서도 반드시 고객의 요구를 100% 반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허형만 커피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 고객을 애호 고객으로 사로잡는 노력을 할 뿐 허형만 커피를 고객의 스타일에 맞춰 변화시키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요즘은 커피에 관한 관심도 늘어나고 고객 요구도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습니다. 저는 커피를 만들면서 늘 ‘고객을 졸도시킬 정도의 커피 맛을 내자. 고객에게 끌려가지 말고 고객이 말하기 전에 그가 원하는 커피 맛을 내가 먼저 알아차릴 정도가 돼야 한다’고 스스로 주문합니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
근면성도 남달랐다. 맛은 기본이고, 마케팅은 대형 커피 전문점을 이길 수 없으니 나머지를 자신의 근면으로 대신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2001년 창업 후 첫 해에는 365일 중 설과 추석을 뺀 363일 내내 가게 문을 열었습니다. 새벽 5시에 출근해 거의 밤 11시에 문을 닫았습니다. 6개월이 지나니 아침에 세수할 때 코피가 나더군요. 그러나 제가 진짜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아 오히려 뿌듯했습니다. 저는 체력도 정신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안정적인 대기업을 그만두고 창업할 때 스스로 ‘나는 이제부터 사람이 아니라 기계’라는 말을 되뇌었거든요. 그 정도 각오 없이 시작한 일이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밤 늦게 퇴근하다 가게에 들른 고객들은 “이 시간에도 문을 여는 곳이 있냐”며 허형만 커피에 맛을 들였으며, 그 고객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거의 대부분 허형만 커피의 단골이 된다는 의미다.
 
그의 남다른 성실성 덕분에 허형만 커피집은 2001년 창업 이래 현재까지 한 번의 부침도 없이 매년 꾸준한 매출 증가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허 사장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커피를 볶는 일과를 계속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에 가게 문을 닫은 것도 2008년이 처음이었다고 털어놨다.
 
자기계발 노력 또한 남다르다. 그는 로스팅 기계를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열역학·유체역학·화학 등도 독학으로 공부해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갖췄다.인터뷰 동안 기자는 그의 광범위한 독서 내력과 폭넓은 인문학적 교양에 감탄했다.
 
기억력 또한 비상했다. 그는 일시를 얘기할 때 ‘10년 전’ 또는 ‘1995년’이라는 식으로 뭉뚱그려 말하지 않았다. ‘1998년 7월 3일’이라는 식으로 반드시 연·월·일을 모두 밝혀 말했다. 그 숫자를 어떻게 다 기억하느냐고 묻자 “내 가게에 관한 날짜와 숫자인데 이 정도를 기억 못해서야 되겠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가격으로도 고객과의 신의 지킨다
허형만 커피집이 커피 마니아들로부터 인정받는 또 다른 이유는 가격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커피 맛뿐 아니라 가격으로도 고객과의 신의를 지킨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매장 내 커피(6000원 안팎)와 원두(1만2000원 안팎)의 판매 가격은 모두 2001년 창업 당시와 똑같다. 그 기간의 환율 및 원자재 가격 상승을 감안하면 대단한 결단이다. 유가 상승 속도가 가파르던 지난해의 경우 재료비 압박이 크지 않았느냐고 묻자 허 사장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경제가 좋지 않을 때 사람들은 가장 먼저 문화비를 줄입니다. 원두커피는 빠듯한 생활을 하는 현대인이 누리는 최소한의 사치인 셈이죠. 고객들에게서 그런 즐거움을 빼앗고 싶지 않습니다. 환율도 마찬가지입니다. 환율이 내렸다고 제품 가격을 내리는 업체는 없잖습니까. 그러니 환율이 올랐다고 무작정 제품 가격을 올릴 수 없습니다. 물론 환율 타격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려울 때 좀 덜 벌고, 경기가 좋을 때 2배의 수익을 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그의 노력을 고객들이 알아준 덕분일까. 경기침체가 본격화한 지난해 4분기에도 매출에는 별다른 타격이 없었다고 했다. 경제와 주식시장이 활황이던 2005∼2006년과 비교해도 지난해 매출이 더 많다고도 설명했다.
 
그는 커피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노력을 알아봐 주는 고객들을 만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높은 인지도와 성공 노하우를 갖고 있음에도 분점을 내지 않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이다. “떼돈을 벌겠다고 커피점을 낸 것이 아닙니다. 모든 고객이 각자 좋아하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제 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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