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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국제경영 패러다임 전환

저원가·차별화 동시추구하는 글로벌 초국적기업으로 도약하라

송재용 | 26호 (2009년 2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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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지식기반경제 시대의 도래로 경영전략의 패러다임이 변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기업이 주도하는 세계화 추세가 더욱 가속화하면서 국제경영의 패러다임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본고에서는 경영 패러다임의 변화를 불러온 글로벌 지식기반경제의 주요 특징을 살펴본다. 또 초경쟁 환경과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경영전략과 국제경영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찰한다.
 
글로벌 지식기반경제로 패러다임 변화
21세기 글로벌 지식기반경제는 20세기와 완전히 다른 경영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 산업혁명 시대에는 자본·노동·토지 등 재무제표에 나오는 유형재화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반면에 지식경제시대에는 경쟁자가 모방하기 어려운 차별적인 기술력, 프리미엄 브랜드, 강력한 경영 시스템과 조직문화, 맞춤형 서비스 제공 능력 등 재무제표에 나오지 않는 무형자산이 중시된다. 특히 지식자산이 글로벌 경쟁우위의 원천으로 최우선시됨에 따라 차별적인 지식을 창출해 내는 ‘혁신 능력’과 혁신의 주체인 ‘핵심 인재’가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게 됐다.
 
지식경제시대의 대표 산업으로는 생명공학(BT)·나노기술(NT)·정보기술(IT) 등 ‘지식기반 하이테크산업’과 컨설팅 등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산업에서 성공하려면 시장의 표준이 될 수 있는 가치 있는 지식재화를 경쟁자보다 빨리 창출해야 한다. 물론 이런 지식재화를 선점하려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고 실패 확률도 높다. 그러나 선점해 놓은 지식이 시장의 표준으로 자리잡고, 원천기술 특허 등 지적재산권으로 확실히 보호받으면 어마어마한 보상이 따라온다. 표준을 장악한 초기경쟁의 승자가 장기간 고(高)이윤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초기 경쟁의 패배자나 후발 진입 기업은 생존조차 어려워지는 ‘승자독식’과 ‘수확체증’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지식경제 시대의 또 다른 특징은 경쟁이 초기 단계부터 국경을 넘어 글로벌화 한다는 것이다. PC 운영시스템을 석권한 마이크로소프트(MS)처럼 글로벌 시장을 승자가 독식할 가능성이 높다. 제조업 시대에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것처럼 후발주자가 저임금-저비용을 앞세운 ‘빠른 추종자 (fast-follower)’ 전략으로 선발주자를 따라잡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지식경제시대는 지식기반산업뿐 아니라 전통산업의 경쟁 패러다임도 변화시켰다. 전통산업도 지식기반 고도화에 나서야 생존을 보장받게 된 것이다. 범용제품의 원가경쟁력 우위에 안주하던 한국의 화학섬유산업이 지식기반 고도화에 실패하고 결국 중국에 추격당한 것이 그 좋은 예다. 반면에 노동집약적 성격이 강한 조선업계의 성공적 변신은 한국의 전통제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한국 조선업체들은 지식기반 고도화에 대한 부단한 투자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주문 설계 능력을 갖췄다. 또 세계 조선의 역사를 바꾼 육상건조기술 등 획기적인 공정을 개발해 전통 강자인 일본을 제치고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한국 기업의 전략 변화
한국 기업들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전략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했다. 삼성이나 태평양 같은 업체들은 부채를 끌어다가 외형을 키우는 성장 중심의 전통적 전략 모델의 한계를 일찌감치 인식했다. 이들 기업은 1990년대 초반이나 중반부터 선제적으로 전략 방향과 사업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꿨다. 특히 삼성은 외환위기를 기업의 비전, 전략과 시스템, 조직구조, 문화 등을 급격히 변화시키는 전기로 삼았다. 글로벌 지식기반경제에 부합하는 지식자산 및 무형자산, 글로벌 핵심인재 위주의 역량 확보에 매진한 삼성전자는 일류기업 반열에 올랐다.
 
글로벌 지식기반경제의 도래 속에서 한국 기업들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경영전략의 일대 전환을 요구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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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채(起債)를 기반으로 한 다각화를 통한 성장 일변도 전략 → 주력사업의 핵심역량 강화를 통한 수익성 및 내실 중시 전략
-저원가를 기반으로 한 경쟁전략 → 차별화를 기반으로 한 경쟁전략
-저인건비, 규모의 경제 등 유형자산 위주 경쟁전략 → 기술력, 브랜드, 마케팅 역량, 디자인 역량, 학습조직 구축 등 무형자산 위주의 경쟁전략
-노동집약적 산업 위주의 사업 구조 → 자본집약적·기술집약적 산업 위주의 사업 구조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 위주의 수출 전략 → 자기 브랜드 위주의 수출 및 해외투자 전략
-본국 중심의 자원·경쟁력 확보 모델 → 글로벌 네트워크의 자원·경쟁력 확보 모델
-투명성과 일반주주의 권익 강화, 견제와 균형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기업지배 구조의 도입
 
이런 패러다임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외환위기 이후에도 성장 일변도 전략을 고수하던 대우그룹은 해체됐다. 반면에 외환위기 이후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에 잘 대응하며 앞서 간 삼성의 뒤를 이어 무형자산 위주의 핵심역량 강화와 기존산업의 지식기반 고도화 추구, 수익성 위주 경영으로 방향을 전환한 SK·LG·현대중공업·포스코(POSCO) 등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게 됐다. 또 네트워크 경제 시대의 도래로 네트워크 효과, 수확체증의 법칙, 플랫폼 리더십, 고객관계관리(CRM) 등 새로운 전략 개념이 중시되고 있다. NHN과 엔씨소프트 같은 지식기반형 벤처기업들은 이런 변화를 잘 감지해 높은 가치를 창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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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새로운 패러다임 아래에서 글로벌 선도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와 같이 하나의 전통적인 경쟁우위의 원천에 의존하기보다 서로 상충하는 복수의 경쟁우위 원천을 동시에 추구하는 패러독스 경영이 중요하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은 차별화와 저원가, 글로벌 표준화와 현지화를 동시에 추구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좀 더 강화하는 한편 신성장 동력을 적극 발굴하는 방향으로 경영전략과 국제경영의 패러다임을 지속적으로 변화시켜야 할 시대적 명제에 직면하고 있다.
 

차별화와 저원가 동시 추구
지식기반경제에서 선도 기업으로 도약하려면 과거와 같이 하나의 경쟁우위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1980년대 전략 이론의 주류를 이룬 마이클 포터의 ‘본원적 경쟁전략’에 따르면 기업은 차별화·저원가·집중화 전략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는 게 바람직했다. 차별화나 저원가 전략은 서로 다른 자원과 조직 문화를 요구하기 때문에 특정 기업이 복수의 전략을 채택하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stuck-in-the-middle)’에 빠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동차나 메모리 반도체 산업 등에서 장기간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도요타 자동차나 삼성전자의 사례를 보면 비록 순차적이긴 하지만 차별화와 원가 경쟁력을 동시에 갖는 게 가능하다. 이 기업들은 우선 대규모 투자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원가 우위를 확보했다. 이후에는 강력한 학습조직을 구축해 품질을 높이는 차별화 전략을 실행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초경쟁 환경에서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차원에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함과 동시에 학습과 혁신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차별화도 성공적으로 이뤄내야 한다.
 
글로벌 표준화와 현지화 동시 추구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다국적 기업들이 속속 초국적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은 본국에서 창출한 기술력이나 브랜드 파워를 바탕으로 해외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을 지칭한다. 통상 다국적 기업은 본사에서 외국 자회사로 기술·인력·자금 등 자원을 일방적으로 이전해 해외 현지에서의 불리함을 극복했다. 그러나 초국적 기업은 본국의 자원만 활용하지 않는다. 본국보다 우수한 자원을 해외에서 적극 조달해 활용한다. 본국에서 만든 경쟁력 있는 자원과 해외에서 조달한 자원을 결합해 범세계적인 경쟁우위를 창출하는 기업을 초국적 기업이라 부른다.
 
과거에는 전 세계적으로 표준화한 제품을 공급하는 ‘글로벌 통합(global inte -gration)’과 현지 특성에 맞게 상품과 서비스, 경영 시스템을 변형한 ‘현지화(local adaptation)’의 양립이 어려웠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이 초국적 기업으로 변신하면서 글로벌 통합과 현지화를 모두 추구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차원에서 전략을 수립하되 현지 특성에 맞게 실행하는(thing global, act local)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 위해 초국적 기업은 최적의 위치를 찾아 기업 활동을 재배치하고 최고의 자원을 조달한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개발센터는 인도에 두고 콜센터는 필리핀, 생산 기지는 중국에 각각 배치하는 식이다. 또 초국적 기업은 인재의 글로벌 소싱도 적극 추구한다. 지식이 가장 중요한 경쟁력의 원천으로 떠오른 만큼 국적이나 성별, 인종을 불문하고 전 세계적 차원에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경쟁력 강화의 관건임을 잘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최고경영자(CEO)도 외국인으로 발탁하고 있다. 실제 유럽 100대 글로벌 기업의 20% 이상이 외국인을 CEO로 채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펩시가 인도에서 대학까지 마친 여성을 CEO로 임명하기도 했다.
 
초국적 기업은 기술 분야의 글로벌 소싱에도 적극적이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이 해외 이전을 가장 꺼리는 부문은 연구개발(R&D)이다. 그러나 초국적 기업은 R&D 분야의 해외 이전도 망설이지 않고 추진한다. 스웨덴계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R&D 예산의 40%를 해외에서 썼다. 미국 보잉사도 기업 R&D의 상당 부분을 러시아로 이전했다.
 
심지어 본부나 본사 기능을 해외로 이전하는 초국적 기업도 나오고 있다. 스위스 제약업체 노바티스는 R&D 부문 본사를 바이오 연구 중심지인 미국 보스턴으로 이전했다. 외환위기 직후 삼성중공업의 건설기계 부문을 인수한 볼보 그룹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스웨덴 공장을 아예 폐쇄하고 굴착기 부문 본사 및 연구소를 한국으로 이전했다.
 
한국의 거대 기업들도 초국적 기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한국 대기업들은 아직도 본국 중심적인 성향이 강하다. 본국의 인력과 핵심역량에 의존해 성장하려는 기업이 많다. 그러나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 전 세계적 차원에서 자원을 조달하고 경쟁 우위를 창출해야 초국적 기업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적극적인 신성장 동력 확보
최근 경제위기 상황에서 기업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현금 유동성을 최대한 확보하고 핵심사업 및 핵심역량 위주로 사업을 전개하면서 비핵심·비주력·적자 사업을 구조조정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한국기업의 주력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특히 중국, 인도 등의 부상으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주요 산업에서의 성장 정체 및 수익성 저하가 예상된다. 따라서 생존에 큰 문제가 없고 여력이 있는 기업이라면 창조적 혁신과 국내외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이나 신사업 진출 등을 통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즉 한국기업들이 글로벌 지식기반경제에 좀 더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지식을 창출하는 혁신지향적 기업으로 변신해야 한다. 전통적인 ‘빠른 추종자’에서 혁신을 통한 ‘시장 선도자(market leader)’로 변모해야 한다.

또 한국은 기초과학 수준이 취약해 원천기술 개발 능력이 부족하다. 따라서 기업들은 국내외 대학·연구소·벤처기업 등의 전문가 집단과 제품 개발 과정에서 적극 협력하는 개방적 혁신(open inno -vation)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원천기술을 개발한 벤처 기업에 대해 ‘실물옵션’적 성격의 전략적 지분 출자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원가 절감 및 품질 향상 능력을 확보한 ‘오른손잡이 조직’의 근간을 흔들지 않으면서 창조적 혁신을 주도하는 ‘왼손잡이 조직’을 만들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양손잡이 조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신성장 동력을 확보할 때에는 기존사업과 유사하며 과거 핵심 역량을 이전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를 적극 개척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기업들이 꺼려하는 M&A가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기에 권장한다. 지난 몇 년 동안 글로벌 유동성 과잉 상황에서 너무 비싼 가격에 기업을 인수했다가 최근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일부 국내외 기업들처럼 ‘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도록 적정가격으로 매수해야 한다. 또 M&A 후 통합 과정에 대한 치밀한 접근을 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훌륭한 회사들을 싼 가격으로 인수해 성공 확률을 크게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 현금 동원 능력이 있는 회사들은 국내외 M&A의 기회를 더욱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한국기업들이 글로벌 지식기반경제 체제에 잘 적응해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 변화에 잘 적응하고 나아가 이를 선도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꿔야 한다.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는 경쟁력이 있고 자금 여력이 있는 기업에겐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본 기사는 SK 최종현 회장 10주기 추모 세미나에서 발표한 ‘경영패러다임의 변화와 한국기업의 실천적 과제’ 라는 제목의 논문 (신유근, 이경묵, 송재용 공저) 가운데 송재용 교수의 집필 부분과 ‘송재용 교수의 스마트 경영’ 칼럼 원고들을 기반으로 작성됐다.
 
필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컬럼비아대 교수를 지냈다. 미국경영학회(AOM), 유럽국제경영학회(EIBA) 최우수 박사논문상, 컬럼비아대 및 서울대 경영대학 최우수강의상, 연세대 우수업적교수상을 받았다. <Management Science> 등 세계적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현재 서울대 Global MBA 주임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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