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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혈경쟁’에서 ‘전략적 협력’으로

애드리언 슬라이워츠키,안홍상 | 24호 (2009년 1월 Issue 1)
대부분 기업들은 고객 입장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슈들을 놓고 서로 지나치게 경쟁만 하고 협력은 거의 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스스로 이익의 폭을 줄이며 기업의 미래를 위험에 빠뜨리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경쟁과 협력에 대한 기본 가정을 재고해야 할 때다.
 
2005년 업계에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제너럴모터스(GM)와 도요타가 수소 연료 전지 개발을 위해 정보를 교환하기 시작했다는 뉴스였다. 비슷한 시점에 GM과 다임러 크라이슬러가 대형 차량 및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에 장착하는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공동 설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전에는 포드와 닛산이 자사 엔진에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기술을 적용하겠다고 합의했다. 다시 말해 세계 5대 자동차 제조사들이 차세대 차량 개발을 위해 연합 전선을 편 것이다.
 
이 같은 다자간 협력은 치열한 경쟁이 일던 자동차 업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1990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를 강화한 이후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은 기존의 내연 기관을 대체하기 위해 상당한 투자를 해 왔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매우 복잡한 연구개발(R&D)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비용과 리스크가 높아졌다. 게다가 각 기업은 경쟁사와 중복 투자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들이 지난 15년간 꾸물거리지 않고 처음부터 협력했다면 중복 투자에 소요된 수십억 달러를 아낄 수 있었을 것이다. 전체 자동차 산업의 수익성이 높아졌을 것이며, GM과 포드는 오늘날과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엔진 기술(이는 자동차를 구매하는 대부분 소비자에게 차별화 요소가 아니다) 분야에서 협력했다면 자동차 제조사들은 제품 디자인이나 유통 서비스 등 고객의 구매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분야에 혁신적인 노력을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 중요한 부분을 놓고 경쟁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미다.
 
물론 경쟁은 현대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원천이다. 경쟁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촉진하며,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또 소비자에게 더 나은 제품과 더 낮은 가격을 보장해 준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의 경험에서 보듯이 경쟁은 순기능과 더불어 역기능도 있다.
 
역동적인 경제 환경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업 모델이 빨리 퇴출된다. 반면에 핵심 고객이 중시하는 기호를 잘 반영한 새로운 사업 모델은 급속히 성장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게임의 룰 자체가 변하기 때문에 옛날에 유효하던 특정 경쟁 방식이 금방 진부해지거나 고객 가치와의 관련성이 떨어질 수 있다. 따라서 기업들은 업무 영역을 재조정해야 한다. 대(對)고객 가치가 미미하거나 차별화 가능성이 적은 부문에서의 경쟁은 건설적이기보다 파괴적인 양상을 나타낸다. 이들 기업은 주주의 돈과 가치 있는 시간 및 에너지를 낭비하고 혁신에 쓰일 자원을 줄어들게 해 미래의 수익 기반을 악화시킨다. 이는 자사뿐 아니라 산업 전반의 수익성에도 해악을 끼친다.
 
오늘날 비즈니스 환경에 급속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상당수의 과거 경쟁 방식은 무용지물이 됐다. 실제로 음악, 항공, 소비자 가전 등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수익성이 감소하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파괴적 경쟁(destructive com -petition)’이다.
 
글로벌화로 인한 경쟁 격화로 많은 기업은 이미 수익성 악화를 경험하고 있다. 제약이나 영화 산업처럼 안정적인 이익률을 보이고 있는 산업이라도 지금과 같은 잘못된 경쟁 구도가 계속 이어지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플라스틱이나 자동차 산업에서는 이미 과잉 설비 문제가 발생했다. 구조적으로 저비용 체제를 갖춘 새로운 경쟁자들은 전 산업 분야에 걸쳐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저비용 구조를 가졌을 뿐 아니라 혁신적인 사업 모델을 가진 새로운 경쟁자 역시 급증하고 있다. 게다가 기업들은 상용화 단계에서의 제품 개발 업무를 대만 등 제3국의 R&D센터에서 아웃소싱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원천 과학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져야 차별화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원천 과학 분야는 성공 가능성이 낮고 비용 부담이 엄청나게 높다는 단점이 있다. 결국 이 분야에서 업계 전반의 협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전략적 협력
회사마다 별 차이가 없는 기능이나 프로세스를 공동으로 운영할 경우 기업들은 중복 지출을 없애고 규모의 경제 실현과 전문성 공유 등의 효과도 볼 수 있다. 전략적인 협력은 가치 사슬의 어느 단계에서라도 실행할 수 있다. 어떤 회사는 제품을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각종 원재료를 표준화시켜 이득을 볼 수 있다. 다른 협력 사례로는 기초 R&D센터를 공동으로 설립하거나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 제작, 유통 채널 마련, 정보 수집 및 판매, 수리 또는 환불 시설 운영, 신규 지역에서의 공장 및 영업인력 확보 등의 활동에서 공동 전선을 펴는 것을 들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비슷한 유형의 전략적 협력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매우 드물었다. 협력 시점도 뒤늦은 감이 있었다. 급박한 위기 상황 또는 정부의 압력에 못 이겨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애초에 협력 가능성을 발견한다고 해도 이를 외면한다. 당신의 회사를 생각해 보라. 경쟁사를 물리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반대로 그들과 협력하기 위해 얼마만큼 투자하고 있는가. 즉 귀사의 ‘경쟁/협력 비율(compete/collaboration ratio)’은 어느 정도인가. 일반적인 경우라면 규제 당국에 대한 로비 같은 일부 분야에서 협력할지 몰라도 90대10100대0의 사이에 있을 것이다. 이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항상 경쟁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성숙산업에서 경쟁은 동반 파멸 지름길
수익이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에서는 전면적인 경쟁이 합리적일 수 있다. 서로 더 많은 파이를 차지하기 위해 기업들이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파이 자체의 크기가 계속 커진다면 기업들은 공급, 생산, 유통, 마케팅 등 가치사슬의 각 단계에서 투자를 강화해야 급증하는 수요에 대처할 수 있다. 따라서 가치 사슬의 모든 단계에서 경쟁적인 투자를 단행함으로써 번영을 구가할 수 있다. 또 폭 넓은 경쟁은 경쟁사별로 새로운 차별화 기회를 가져다주는 동시에 모든 분야에서 생산성을 증대한다. 그러나 어떤 시점이 되면 이런 경제 논리는 그 수명을 다한다. 산업이 성숙단계에 진입하거나 마진이 줄어들면 그동안 무분별하게 이뤄진 경쟁은 불 보듯 뻔한 동반 파멸이란 결과를 가져온다. 이는 과잉설비, 고비용, 낮은 자본 효율성, 저조한 혁신 비율, 차별화 부족으로 이어지게 된다.
 
기업들은 왜 파멸을 부르는 경쟁을 계속할까. 이는 기업들이 그렇게 경쟁을 하도록 교육 받아 왔기 때문이다. 서로 칼을 내려놓고 라이벌과 어깨를 맞대며 나란히 협력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영진이 극도로 싫어하는 일이다.
 
음악 비즈니스를 한 번 살펴보자. 수년 간 음원의 디지털화가 진행됐기 때문에 기존 음악 유통 모델의 붕괴는 확실시됐다. 1999년 션 패닝이 냅스터를 만들고 대중이 불법으로 음악파일을 다운로드하는 취미를 갖게 됐을 때 대형 음반사들은 엄청난 생존 위협에 직면했다. 그러나 음반사들은 디지털 유통에 대한 합법적인 대안을 함께 모색하지 않았다. 대신 경쟁을 계속했다. 결국 이들은 개별적으로 서비스를 내놓았다. 유니버설과 소니는 프레스플레이라는 합작회사를 만들었으며, 타임워너와 베텔스만 및 EMI는 뮤직넷을 설립했다. 두 서비스 모두 상대편에게 음원 라이선싱을 거부했기 때문에 원스톱 쇼핑을 원한 고객들로부터 외면당했다. 결국 음악 사업과 무관한 애플사가 아이튠스 스토어를 시장에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으며, 이는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가져다줬다.
 
물론 기업들이 무분별한 경쟁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실제로 3가지 방법이 흔히 사용된다. 첫째는 기업 인수합병(M&A)이다. 이는 중복 기능을 줄이고 고객 기반을 통합할 목적으로 사용된다. 둘째는 아웃소싱이다.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저비용 구조에 높은 전문성을 가진 제3의 전문 기업에 비전략적 업무를 의뢰하는 방법이다. 셋째는 표준화 작업이다. 호환이 불가능한 제품이나 부품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공통의 기술 또는 프로토콜에 합의하는 것이다. 이런 접근 방법들은 적절한 조건 아래에서는 상당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단점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M&A는 그다지 정교하지 못한 방법이다. M&A는 기업들로 하여금 회사 합병으로 인해 이익이 예상되는 부분에서 뿐 아니라 모든 사업 분야에서의 통합을 강요한다. 이와 같은 광범위한 통합에서 성공하기는 무척 어렵다. 많은 합병이 가치를 창조하기보다 오히려 파괴하기 쉬운 것도 이 때문이다. 또 M&A는 새로 통합된 업체에 더 큰 파이를 안겨줌으로써 외형 성장을 부추기게 돼 업체 간 소모적 경쟁을 심화시킨다.
 
전략적 협력은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롭다. M&A와는 다르게 전략적 협력은 매우 정교하다. 기업들은 명확하게 정의된 업무나 프로세스(통합이나 합리화 과정을 통해 즉각적 효과를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영역)에서만 협력하면 된다. 아웃소싱과는 달리 통제력을 잃을 위험도 뒤따르지 않는다. 기존 경쟁사들끼리 규모의 경제 및 인재 공유(pool)로 인한 혜택을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표준화 작업과도 비교된다. 가격처럼 불공정 경쟁과 반독점 우려를 야기할 분야를 제외하고는 가치 사슬의 전 분야에서 전략적 협력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효과가 더 크다. 전략적 협력은 건설적인 경쟁을 촉진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고객이 가장 중시하는 분야에서 더 나은 혁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더 많은 사업 협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애덤 브랜든버거와 배리 네일버프가 쓴 ‘협력(Co-operation)’이라는 저서에서처럼 협력에 대한 기존 서적들은 대부분 상호 보완적인 노력에만 초점을 맞춰 왔다. 이는 서로 다른 업무를 하는 기업들 간 상호 보완적으로 서로에게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는 노력을 말한다. 반면에 전략적 협력은 동일한 업무, 즉 가치 사슬 내에서 서로 공유하고 있는 주요 업무를 행하는 과정에서의 협력까지도 포함한다. 전략적 협력을 통해 기존 산업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으며, 모든 경쟁사가 혜택을 볼 수 있다.
 
오늘날 냉혹한 비즈니스 현실을 고려할 때 경영진은 협력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 기업은 그들의 경쟁/협력 비율에 대해 새롭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더 늦기 전에 이 비율을 좀 더 생산적인 수준으로 바꿔야 한다. 이제 우리는 전략적 협력이 어떻게 개별 기업의 이익을 증대시키면서 전체 산업의 수익성을 강화하거나, 심지어 망해가는 산업을 살려내는지를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사례를 살펴보겠다. 애플 아이튠스의 사례처럼 제3자가 어떻게 협력 플랫폼을 창조하거나 협력을 촉진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협력을 이끌어내는 다양한 옵션 가운데 사업별로 적절한 옵션을 가려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실질적인 조언도 제공할 것이다. 경쟁으로 인해 놓치기에는 당신 기업의 성공이 너무나 중요하다.

돈을 절약하라. 그리고 새로운 가치를 위해 재투자하라
1960년대에 유럽 항공기 제조사들의 미래는 암담해 보였다. 보잉 및 맥도널더글러스와 같은 미국 기업들이 갈수록 자본 집약적으로 변해가는 항공기 산업의 지배자로 떠올랐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유럽 항공기 제조사들은 유럽 대륙 곳곳에 흩어져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형 현대식 여객기 분야에서 미국 업체들과 경쟁하기에는 규모나 자본이 턱없이 부족했다. 1960년대 말에 유럽 항공사들은 세계 전체 항공기의 25%를 구매했음에도 유럽 항공기 제조사들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10%로 떨어졌다.
 
1970년에 이르러 유럽의 주요 항공기 제조사인 프랑스의 아에로스파시알, 독일의 다임러벤츠에어로스페이스, 스페인의 카사, 영국의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가 매우 혁신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제트기를 설계, 제작, 판매하는 데 필요한 각종 자원을 통합해 에어버스라는 합작회사를 만든 것이다. 이는 재무 리스크를 줄였을 뿐 아니라 각 회사의 자본과 인재를 결합함으로써 엄청난 혁신으로 이어졌다. 초기 경영상 마찰이 있었음에도 에어버스는 ‘플라이바이와이어(조종 페달의 작동을 컴퓨터를 통한 전기 신호로 조종간에 전달하는 시스템)’ 통제 기술과 공통 조종실을 항공기 전체에 도입하는 것을 포함, 항공기 설계에서 새로운 접근 방식을 개척했다. 19841994년에 에어버스는 기술적으로 진보한 고효율 항공기 3종류를 선보였으며, 이는 많은 항공사에 매력적인 제품이었다.
 
이런 협력은 항공기 제조사에 일시적으로 숨통을 틔워 주는 생명연장 조치 수준이 아니라 번영의 기반을 마련해 준 것이었다. 에어버스의 첫째 고객은 유럽의 항공사였다. 그러나 에어버스는 1980년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이어 1990년대에는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US에어웨이, 노스웨스트항공 같은 미국의 거대 업체들이 고객이 됐다. 에어버스는 유럽 항공기 제조업의 명맥을 유지시킨 것은 물론 실질적으로 보잉사의 유일한 라이벌로서 새롭게 자리매김했다.(보잉사는 1997년 맥도널더글러스사를 인수했다) 표 1에 나와 있듯이 에어버스는 과거 20년동안 빠르게 성장했으며, 신규 제트기의 연간 납품 규모로 따졌을 때는 종종 최대 라이벌인 보잉을 앞서기도 했다. 2000년 유럽의 에어버스 파트너들은 에어버스의 경영 및 운영을 프랑스 툴루즈에 결집함으로써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확장했다. 정부의 불공정 보조금이 주기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긴 하지만 에어버스가 파트너십을 통해 더 큰 효율과 혁신을 이뤄냈다는 점은 큰 교훈을 던져준다.

이와 유사하게 한때 어려움을 겪던 미국의 반도체 산업도 협력을 통해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한 사례가 있다. 1980년대 미국 반도체 제조사들은 일본의 저가 경쟁업체 출현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19801986년에 미국의 반도체 산업은 20억 달러 이상 수익이 감소했으며 2만7000명 이상의 직원이 해고됐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약화에 대해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경제적 이유와 더불어 국가안보 측면에 있어서도 상당히 우려를 했다. 예를 들어 미국의 F16 전투기에 사용되는 반도체의 절반을 일본 제조사들이 공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응해 미국 국방부는 반도체 업계의 회생을 위해 R&D 컨소시엄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반도체 산업의 85%를 차지하는 14개 반도체 제조사들은 ‘서로의 자원을 활용하고 리스크를 공유하면서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87년에 한데 뭉쳐 ‘세마테크’를 결성했다. 미국 정부와 더불어 참가 업체들이 각각 1억 달러를 투자했으며, 이 대가로 세마테크에서 나오는 기술을 공유할 권리를 얻었다. 텍사스 오스틴의 세마테크 전용 연구소에서 시작된 공동 연구 협력의 결실은 반도체 크기 축소 및 속도 향상으로 이어졌다. 이는 미국 반도체 산업의 부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러한 2가지 사례는 경쟁사 간 긴밀한 협력이 가능할 일일 뿐 아니라 합법적이며(GP TIP ‘협력은 합법적인가?’ 참조) 특히 이익 감소로 고통 받고 있는 성숙 단계의 산업이나 개별 기업의 수익성을 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기업은 협력을 통해 전략적 차별화 잠재력이 낮은 가치사슬 분야에서 더 큰 규모, 합리화된 자산 및 인재 공유라는 혜택을 얻을 수 있다. 또 경쟁 우위 잠재력이 있는 분야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선제적 조치( Proactive Moves)
이 같은 사례들은 전략적 협력이 수익성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 외에 다른 교훈도 주고 있다. 즉 협력이 일반적으로 너무 늦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유럽의 항공기 제조사와 미국의 반도체 메이커들은 사업 여건이 상당히 악화된 다음에야 협력하기 시작했다. 두 경우 모두 정부의 장려 및 재정 지원을 통해 합작 회사가 출범할 수 있었다.
 
예외적인 사례도 있다. 25개 소규모 철물점들은 이미 1948년에 공동 구매 및 광고를 위해 힘을 합쳤다. 이는 홈디포와 같은 대규모 사업자에 의한 경쟁 위협이 발생하기 한참 전에 이뤄진 것이다. 트루밸류라고 불리는 이 협력은 점점 확대되어 54개국 6200개의 철물·정원 및 장비 렌털 상점들이 참여했으며, 20억 달러 이상의 총 매출을 기록했다. 트루밸류는 자영업자로 이뤄진 회원들에게 독립성을 희생하지 않고도 엄청난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했다.

제품 측면에서 트루밸류는 ‘트루밸류(True Value)’ ‘마스터 미캐닉(Master Mechanic)’ ‘그린섬(Green Thumb)’ ‘마스터플러머(Master Plumber)’와 같은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개발해 회원에게 제공했다. 트루밸류의 12개 지역 유통 센터에서 배송되는 제품은 신속하게 상품 보충이 이뤄질 뿐 아니라 서비스도 즉각적으로 이뤄졌다. 마케팅 측면에서 트루밸류는 공동 광고 캠페인 및 전단지 제작 외에도 회원들의 고객 충성도 제고를 목적으로 하는 ‘트루밸류 리워즈’라는 고객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제공했다. 이는 지역 고객 관계를 강화시켜줄 뿐 아니라 점포들이 개별적으로 수집하기 어려운 깊이 있는 시장 데이터를 제공했다. 트루밸류는 또 효과가 입증된 판촉 및 PR 활동을 소개한 안내서와 마케팅 툴킷을 통해 회원사 간 모범 사례를 공유했다.
 
대기업들 역시 선제적으로 전략적 협력을 주도한 사례가 있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 사업 초기에 카드 발행 은행들은 협력을 통해 2가지 혜택을 얻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첫째는 자사의 카드를 받아줄 전국 단위(이후에는 국제적인) 상점 네트워크를 개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협력을 통해 거래 절차, 기술 및 브랜드 구축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임으로써 실질적인 차별화를 가져올 수 있는 대고객 서비스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를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혜택을 얻기 위해 은행들은 연합 회원사 소유의 기관 2곳을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 비자와 마스터카드의 전신이 됐다. 비자와 마스터카드 가입자는 오늘날 15억여 명에 달하며 이 카드를 통해 전 세계 2000만여 점포에서 연간 4조 달러 가까운 금액이 결제되고 있다.

비자와 마스터카드 같은 신용카드 기관은 모든 이해 당사자에게 가치를 제공했다. 고객은 더 많은 신용을 공여 받았으며, 결제 수단의 선택폭도 넓어졌다. 신용카드 기관들은 직불카드 시장을 개척해 기본 서비스 및 각종 부가 서비스에 대한 막대한 수수료 수입을 올렸다. 또 회원 은행들은 상당한 수준의 비용과 리스크를 줄일 수 있었다. 이런 비용 절감은 회원사로 하여금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대비 경쟁 우위를 제공했으며(물론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다른 강점이 있다), 신규 시장 진출을 막는 커다란 진입 장벽을 세울 수 있었다.
 
[GP TIP] 제3자 제공 협력 플랫폼, 협력의 촉매제
 
경쟁사와의 협력을 통해 자사의 성과를 개선하는 것과 더불어 일부 기업들은 고객 또는 공급업체간 협력을 촉진해 완전히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냈다.
 
자동차 산업에서 존슨 컨트롤스(JCI)는 제3자 입장에서 업계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수단과 동기를 제공하는 독특한 방식을 시도했다. 서로 협력하기 꺼리는 자동차 제조사들에 협력 플랫폼을 만들어 주고 여기서 수익을 창출한 것이다. 지난 10년 간 JCI는 5개의 첨단 기술 센터를 설립(2개는 미국, 2개는 유럽, 1개는 일본)해 여러 자동차 회사와 함께 통합된 모듈 형식의 차량 인테리어에 대한 연구 및 설계를 진행했다. 즉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로 하여금 고가이지만 차별화되지 않는 차량 시트나 난방 시스템 등 부품을 만들 때 이전처럼 중복 투자를 하지 말고 함께 자원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을 제공한 것이다. 이런 협력을 이끌어내는 플랫폼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이회사에 엄청난 수익을 가져다 줬다.
 
협력 플랫폼 마련이 매우 강력한 사업 모델이 될 수 있는 것은 다음의 2가지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첫째, 과당 경쟁으로 인해 경쟁사들은 협력을 향한 첫발을 내디디기 힘든 경우가 많다. 둘째, 협력은 협력 플랫폼을 운영하는 업체뿐 아니라 기존 경쟁사들 역시 추가적인 수익을 거둬들이기에 충분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이는 협력 플랫폼이 기존 파이를 자르는 게 아니라 파이 자체를 키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경쟁사들은 제3자의 플랫폼을 수용할 강력한 동기를 갖게 된다.
 
사업 감각이 있는 수완가라면 경쟁사 간 협력의 촉매제 역할을 능숙히 수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업계가 전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객들이 함께 공조하도록 유도해 해당업계의 사업 기반을 강화시킬 수 있다.
 
의약품 도매상인 카디널헬스의 신사업인 ‘아클라이트시스템(Arclight Systems)’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카디널헬스는 CVS, 알버츠슨, 월마트, 케이마트 및 5개의 지역 약국체인 등 경쟁업체를 설득해 컨소시엄을 결성하고 실시간으로 제품 판매 데이터를 수집해 제약사에 유료로 판매했다.
 
의약품 마케팅 캠페인의 효율성과 신약 및 제네릭 (복제약) 도입 효과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제약회사에 결정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아크라이트는 처방약 사업에서 촉매제 기능을 수행했다.
 
카디널헬스처럼 특정 산업에 필요한 서비스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산업의 고객이 협력의 촉매제 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월마트는 자사에 제품을 납품하는 세계 유수 소비재 기업들이 무선인식(RFID) 기술을 채택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촉매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기술은 각각의 공급망 단계를 거치는 동안 제품을 더 쉽게 추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월마트는 이 새로운 기술이 전체 소매 공급망의 생산성을 향상시킨다면 이로 인한 수익의 상당 부분이 자사의 수익이 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월마트의 독려가 없었을 경우 리스크가 있는 RFID 기술에 대한 소비재 기업들의 투자가 지연됐을 것이며 기본 연구 또한 연기됐을 것이다. 그리고 상호 연동이 불가능한 표준들이 난립해 결국 개발 비용을 높이고 생산성 향상에 저해가 됐을 것이다.
 
여전히 부진한 협력
그러나 선제적 협력 사례는 애석하게도 여전히 드물다. 이런 사실은 지금 당장은 건강하게 보이는 산업에 암울한 기운을 드리우고 있다. 제약 산업이 대표적이다. 많은 제약 회사가 수년 전에 개발한 의약품에서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이며 타 업계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이들의 향후 수익은 개발비 증가 등으로 위협받고 있다. 1975년에는 시장에 신규 치료제를 내놓는 데 드는 비용이 1억3800만 달러가 소요됐지만 2000년에는 8억200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제약회사들은 여전히 사업의 전 영역에서 경쟁을 지속하고 있다. 심지어 유사 화합물에 대한 개발이나 라이선스도 개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간 독성 데이터처럼 기본적인 임상 정보조차 공유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이 같은 배타적 행위들을 통해 제약사들은 자신들이 경쟁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제약회사들이 전략적 협력의 기회를 계속해서 간과한다면 그들은 자동차, 항공 등 다른 산업에서 목격한 이익 급감을 경험할 것이다. 대부분의 대형 제약사들은 비용을 줄이고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정교한 라이선스 협약을 맺곤 한다. 이처럼 협력을 통한 긍정적인 경험을 갖고 있음에도 제약사들은 더 큰 전략적 협력을 꺼려하고 있다 이들의 경쟁/협력 비율은 여전히 경쟁에 치우쳐 있다.

경쟁/협력 비율 개선하기
경쟁/협력 비율을 바꾸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진의 마인드 변화다. 협력 기회 전반에 걸쳐 실질적이고 객관적인 사고 프로세스 역시 요구된다. 협력을 고려하며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데 요구되는 전문성이나 분석적 프레임워크를 보유한 기업은 매우 드물다. 모든 기업은 협력 전략을 구상하는 데 업계의 경제성과 산업 구조, 자사의 경쟁 포지셔닝에 따라 각기 다른 요소에 무게 중심을 둬야 한다. 그러나 모든 기업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4가지 질문이 있다. 가치 사슬의 어느 단계에서 협력해야 최대 이익을 거둘 수 있는가, 어떤 형태의 협력이 최상의 이득을 불러올 것인가, 누구와 협력해야 하는가, 협력에 반대하는 숙적과 어떻게 공조할 것인가.
 
가치 사슬의 어느 단계에서 최대 이익을 거둘 수 있는가
협력은 산업 내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R&D 같은 ‘백엔드(back-end)’ 분야에서 협력은 혁신과 발견의 방식을 바꿀 수 있다. 이를 통해 기업들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중복 투자를 줄이고, 자원을 한 곳에 결집해 더 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또 더 다양한 인재 풀을 활용해 창의적인 솔루션을 찾아낼 수 있다. 운영 분야에서는 규모 확대, 리스크 분산, 공동 구매, 경험곡선효과 등을 통해 기존의 제조 과정에 적용되는 경제 이론의 틀을 바꿀 수 있다. 또 ‘프론트 엔드(front-end)’ 부문에서 기업들은 솔루션의 구성 요소를 좀 더 긴밀하게 통합해 고객 만족을 증진시키거나 가치가 낮은 세일즈·서비스 업무를 합침으로써 비용 절감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올바른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우선 고객 만족, 수익성, 자산 효율성, 변동성과 같은 분야에서 업계 전반의 가치 창출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 경쟁업체별로 실적에 차이가 있겠지만 전반적인 동향과 더불어 성과를 제한하는 요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가치 사슬 자체를 살펴보면 된다.
 
표 2에는 한 기업의 주요 업무와 더불어 각 세그먼트에서 협력 기회를 가늠할 수 있는 일부 카테고리 목록이 나와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경쟁적 차별화 기회가 적은 업무와 고객의 가치 인식에 영향을 덜 미치는 업무 타 기업의 자원과 통합해 규모의 경제, 자산 효율성, 노동 생산성 또는 혁신을 증진할 수 있는 강력한 기회가 되는 업무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이런 업무들이 협력의 기회가 가장 많은 대표적인 사례다. 

 
[GP TIP] 협력은 합법적인가?
 
“우리는 경쟁자와 팀을 이룰 수 없다. 경쟁자와 협력하면 반독점 문제가 생길 것이다.” 이는 편리한 핑계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아니다. 물론 어떤 종류의 협력이든 법적 문제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기업은 가격 정보를 공유하거나 고객에게 해가 되는 조치와 관련한 부분에서 협력해서는 안된다. 또 중요한 유통 시스템 또는 기타 시장 공유 인프라에 대해 카르텔과 같은 권력을 행사하는 협력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반독점법의 목표는 협력을 막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혁신을 지연시키거나 생산적인 경쟁을 방해함으로써 공공의 이익을 저해하는 사업 활동을 막기 위한 것이다.
 
전략적 협력은 시장 효율성을 높이고, 혁신을 촉진하며, 생산적인 경쟁을 강화하기 때문에 공공에 이익이 된다. 따라서 정부가 규제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낮다. 실제로 과거 산업 협력의 경우 종종 정부로부터 직접적인 장려와 지원이 있었다.

협력 이니셔티브를 새롭게 내놓는 기업들은 대중과 정책 입안자들을 대상으로 이니셔티브의 범위와 장점에 대해 교육을 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이 번거롭다는 핑계로 협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협력을 통해 기업과 고객에게 돌아갈 잠재적 혜택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의 협력이 최상의 이익을 가져올 것인가
협력은 비공식적 협력에서 공식적인 파트너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띨 수 있다. 그리고 기업이 과거 목표를 달성했거나 고객의 선호도가 바뀔 경우 협력의 형태를 변화시켜야 한다.
 
협력의 경험이 부족한 산업에서는 신뢰와 경험, 모멘텀을 쌓기 위해 신중하고 점진적인 접근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업이 과거 관계를 맺고 있던 몇몇 기업들과 한정된 프로젝트에서 협력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팀켄사는 베어링을 만드는 경쟁사 SKF와 협력해 물류 및 e비즈니스 업무를 공유하고 있다. 항공 우주산업 분야에서 노스롭그루만은 BAE노스아메리카와 협력해 통합전폭기(JSF)를 위한 IMA(극초단파를 활용한 정밀 군수 장비 시스템의 일종)를 개발했다.
 
아니면 여러 가능한 협력 기회를 살펴보고 협력을 위한 첫 삽을 뜨기 위해 업계 전반의 의견을 수렴하는 위원회 구성도 고려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개발도상국의 이동전화 네트워크 사업자들은 휴대전화 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단말기 가격 인하를 추진할 수 있다. 실제로 이들 기업은 구매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데 뭉쳤으며, 결국 모토로라사는 600만 대에 이르는 이동전화 단말기를 개당 40달러 미만에 공급했다.

누구와 협력해야 하는가
적절한 협력 파트너를 고르는 것은 위험한 외줄타기를 하며 균형을 잡는 것과 비슷하다. 대형 컨소시엄을 통해 다수의 경쟁사와 연계하는 것은 규모가 작은 집단과 연합하는 것보다 규모의 경제면에서 더 큰 장점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파트너 수가 많아지면 그만큼 운영상 갈등과 복잡성이 증가한다. 또 규모, 문화 등에서 자사와 유사한 기업과의 협력은 경영 및 운영상 갈등을 줄일 수 있지만 다양성이 떨어지고 그에 따라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
 
따라서 파트너를 고를 때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프로젝트의 목표와 잠재적 협력자의 특성을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
 
- 프로젝트의 범위, 목표, 책임성을 고려했을 때 자사와 파트너사의 조직은 얼마나 긴밀하게 통합해야 하는가.
- 잠재적 파트너의 전략과 운영 환경이 자사 전략 및 운영 환경과 얼마나 유사한가. 프로젝트 목표와 관련된 주요 지표에서 자사와 잠재적 파트너 간 성과 차이가 얼마나 나는가. 아니면 성과가 업계 전반에 걸쳐 비슷한 수준인가.
- 잠재적 파트너사 간에 공통된 지식 기반이 있는가. 업계 특성상 기업들이 매우 긴밀하게 연계돼 있다면 현재 또는 과거의 관계는 방해 요소가 될 것인가.
- 잠재적 협력자들은 ‘공통 기반(com -mon ground)’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 자사와 협력할 때 다양성이 충분하게 존재할 것인가. 새로운 관점을 줄 수 있는 다른 잠재적 파트너가 업계 안팎에 존재하는가.
- 공급업체 또는 고객을 한 그룹으로 묶으면 얻을 수 있는 혜택이 있는가.
 
협력에 반대하는 숙적과 어떻게 공조할 것인가
협력을 방해하는 강력한 심리적 장애물이 있다. 바로 숙적과는 협력할 수 없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과거 사례들을 살펴보면 항상 그렇지는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휴렛팩커드(HP)와 캐논은 프린터 사업에서 라이벌이지만 HP가 프린터 엔진을 캐논으로부터 소싱하는 등 매우 효과적으로 협력한 적이 있다. WPP와 파리에 본사를 둔 아바는 광고 사업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일부 분야에서는 긴밀하게 협조하기도 했다. 삼성과 소니는 소비자 가전제품 시장에서는 글로벌 경쟁업체이지만 다음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해 왔다.
 
- 한국 액정표시장치(LCD) 생산 공장에 20억 달러 공동 투자
- 다양한 부품 및 생산 프로세스에 2만4000건의 기본 특허 공유
- 차세대 디지털비디오디스크(DVD) 및 플레이어 표준을 마련하기 위한 컨소시엄 참여
 
효과적으로 협력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참가 기업들 간 첨예한 경쟁 구도가 형성됐을 때에는 더욱 힘들다. 그러나 앞의 사례처럼 협력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달성 가능한 일이며, 이는 파트너사와 고객 모두에게 상당한 경제적 혜택을 준다.
 
경쟁의 역설
1776년 애덤 스미스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에 대한 옹호론을 펼친 ‘국부론’을 출간했다. 그는 경쟁을 통해 사회 전반에 걸친 생활수준이 얼마나 향상되었는가를 보여줌으로써 무역 규제 옹호론자들에게 성공적으로 맞섰다. 또 산업혁명 초기에 자유 경쟁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인도되어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킨다는 영국 산업자본주의의 입장을 대표하는 이론적 기반을 수립했다. 약 150년 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스미스의 아이디어에 더해 경쟁은 새롭고 더 나은 제품을 끊임없이 시장에 선보임으로써 창조적인 파괴 사이클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스미스와 슘페터를 비롯한 위대한 자본주의 학자들은 경쟁에 대한 우리의 믿음, 즉 활발한 경쟁이 사람들에게 이득과 편의를 선사할 것이라는 믿음에 이론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지난 50년 동안 우리는 맹목적이고 때로는 광기어린 경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들의 가르침을 왜곡했다. 일부 기업가와 전문가들은 사업을 전쟁 또는 스포츠 경기, 즉 거칠고 무자비한 싸움을 통해서만 이길 수 있는 게임으로 보는 관점을 장려했다. 이는 단순하고도 위험하다. 스미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무분별하고 어떤 제재도 받지 않는 방종한 경쟁은 창조적인 파괴가 아니라 단순한 파괴를 불러일으켜 엄청난 피해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
 
글로벌 경제 체제 아래에서 전방위로 몰려드는 각종 압력이 얼마나 쉽게 기업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지를 고려했을 때 우리는 경쟁을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와 동시에 건전한 경제 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지속해 나갈 수 있는 협력의 역할에 대해 좀 더 높이 평가해야 한다. 고객 가치를 창출할 가능성이 미미한 분야에서조차 지나치게 광범위하면서 전면적인 경쟁을 펼칠 때 기업은 엄청난 금전적 낭비를 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는 산업 전체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것이다.
 
정말 중요한 분야에만 경쟁의 초점을 맞춰주는 전략적 협력은 건강하고 활기찬 경쟁 관계를 촉진해 더 나은 제품, 더욱 저렴한 가격, 더욱 강력해진 산업·경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고객에게 별 가치 없는 영역에서 경쟁을 줄임으로써 대부분 사람에게 최대의 혜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분야에 경쟁 역량을 집중하는 것, 이것이 바로 경쟁의 위대한 역설이다.

한국 기업 경쟁/협력 지수는 얼마인가?
최근 한국 기업들의 전략적 협력 수준은 글로벌 업체의 평균 수준과 비슷할 것으로 판단되지만 과거에 비해 협력 대상이나 영역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공식·비공식적으로 이뤄지는 인적 차원의 정보 교류를 넘어 통신업체 간 네트워크 인프라 공유, 자동차-화학업체 간 차세대 전지 공동 개발 같은 사례 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규모 협력 사례는 대부분 정부 개입에 의해 추진됐거나 불확실성이 높은 장기 신사업 영역에서만 제한적으로 발생했다. 특히 동종업계 간 협력은 아직까지 성공 사례를 꼽기 힘든 상황이다. 실제로 한국 기업들은 전략적 협력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 또는 협력 파트너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가진 경우가 많다.
 
국내 기업들의 전략적 협력에 대한 거부감은 다소 감정적인 원인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협력을 통한 성과 창출에 대한 불확실성이 자리 잡고 있다. 전략적 협력의 성과 창출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장애 요인은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고객 가치 창출을 위해 자사 역량을 집중해야 할 사업 모델 설정이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전략적 협력 시 사업 모델에 대한 불확실성은 자사가 집중해야 할 가치 창출 영역과 협력 영역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협력 추진의 모멘텀 및 투자 효율성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이 종종 겪는 오류는 ‘비용·투자’ 영역에서만 협력하고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영역에서는 배타적이라는 점이다. 통신업체와 자동차업체가 자동차 네비게이션 시장 확대를 위해 상호 협력할 수 있었음에도 협력하지 못한 사례가 존재한다.
 
둘째, 경직되고 글로벌화하지 못한 사업 운영 체제는 또 다른 장애 요인이다. 공동 연구, 공동 사업 개발에서 현실적으로 부닥치는 가장 큰 어려움은 다자간 의사결정 구조를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러 기관이 참여하는 다자간 의사결정 구조는 단점을 갖고 있다. 최종 의사 결정이 지연돼 실무 차원의 업무 지연 및 성과 저하는 물론 심지어는 프로젝트 실패를 초래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이런 문제를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운영 노하우를 가진 기업은 그다지 많지 않다. 또 자동차, 전자, 반도체 등 급속한 글로벌화를 경험한 기업들도 여전히 다른 글로벌 기업과 협력하는 과정에서 운영 및 문화적 장애를 경험하고 있다.
 
셋째, 협력 업체 간 성과 배분이 불명확하다는 점이 문제다. 전략적 협력의 산출물은 금전적 효과, 지적 자산 등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성과 배분 문제는 지속적인 상호 투자와 신뢰를 어렵게 만든다. 역량의 기반이 서로 다른 이종업체 간 협력은 그나마 용이한 면이 있지만 동종업체 간 협력은 더 힘들다. 상대적으로 선도업체 대비 후발업체가 얻는 기대효과가 높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선도업체의 반대급부가 충분하지 못하거나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동통신 업체에서 2세대 이동통신 네트워크 인프라에 대한 공유가 잘 안 되고 있고, 전자업체 간 부품 교차 구매 활성화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경영진의 장기적 관점에서 협력을 ‘윈윈’으로 바라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국내 기업이 이런 장애 요인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치 원천의 이해에 기초한 전략적 협력 모델의 개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운영 체계 수립 및 경영진의 협력에 대한 인식 강화가 선행돼야 한다. 국내 기업들이 경쟁/협력 지수의 개선을 통해 불확실한 경제 여건에서 탁월한 성과를 창출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주 이 글은 전략, 조직, 운영, 위험관리 등에 특화된 전문 컨설팅 회사인 올리버 와이만(Oliver Wyman)이 발간한 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번역한 것입니다. 협력 전략에 대한 일반론은 애드리언 슬라이워츠키 파트너, <한국 기업의 경쟁/협력 지수는 얼마인가?> 부분은 안홍상 파트너가 각각 작성했습니다. 올리버 와이만은 머서 매니지먼트(Mercer Management), 머서 올리버 와이만(Merer Oliver Wyman), 머서 델타(Mercer Delta)가 통합된 글로벌 컨설팅 회사로 전략 및 조직, 마케팅 등과 관련해 정기적 보고서를 출간하고 있습니다.
 
애드리언 슬라이워츠키 올리버 와이만 보스턴 오피스 파트너는 가치이동(value migration), 수익지대(profit zone) 등 다양한 저서를 발간했으며, 유력 매체에 의해 가장 영향력 있는 컨설턴트로 수년간 선정됐다. 안홍상 올리버와이만 서울사무소 파트너(associate partner)는 신규 사업 모델 수립 및 전사 전략 전문가다.
  • 애드리언 슬라이워츠키 | - 올리버와이만 보스턴오피스 파트너
    - <가치이동(value migration)>, <수익지대(profit zone)>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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