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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메커니즘 구축이 경쟁력 원천

조동성 | 20호 (2008년 11월 Issue 1)
신정부 출범과 더불어 탄생한 ‘공룡 부처’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지식경제부다. 옛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업무를 흡수해 설립된 지식경제부는 산하 관련 부처 공무원이 1000명이 넘고, 각종 관리 감독 관련 기관이 480여 개에 이른다. 그야말로 한국의 미래 경쟁력을 실무적으로 책임지는 핵심 경제부처다.
 
지식경제부가 최근 발표한 신성장 동력 산업 육성 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5년 동안 22개 핵심 산업에 민관 협력으로 총 99조 원이 투자되고 88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한다. 성장에 목이 마른 기업과 국민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과연 투자만으로 신성장 동력이 확보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영국 무역산업부가 매년 발표하는 연구개발상황표(R&D Scoreboard) 2007년 자료는 전 세계 R&D 투자 상위 1250개 기업의 순위를 보여 준다. 이 자료에 따르면 미국 기업이 509개로 가장 많고, 투자 금액도 전체 투자의 40.4%를 차지하는 218조 원(약 1816억5000만 달러)이다. 2위는 일본으로 220개 기업이 전체 투자의 17.7%인 95조 원(795억6000만 달러)을 투자했다. 7위에 오른 한국은 21개 기업이 15조 원(124억8000만 달러)을 투자하고 2.8%를 차지했다. 교육과학부 발표자료에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R&D비는 3.47%로 이스라엘과 스웨덴에 이어 세계 3위다.
 
한국의 GDP가 세계에서 13위인 것과 비교하면 한국기업들의 R&D비는 다른 나라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높다. 그러나 R&D비 규모가 크다고 해서 그 기업이 사업에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R&D비는 낭비될 수도 있고, 잘못 사용될 수도 있다. 지나치게 많은 R&D비는 연구자를 나태하게 만들고, 비용을 줄이기 위한 혁신이나 창조적인 노력보다 기존 방식에 의존하게 만들 수도 있다. 같은 R&D비라도 경영자가 과학과 기술에 대해 가진 열정과 전문성, 기업이 가진 R&D 메커니즘에 따라 성과는 크게 달라진다.
 
2008년 8월까지의 실적을 기준으로 한국의 10대 수출 품목은 석유제품, 선박 및 해양구조물(조선), 자동차, 무선전신기기(휴대전화), (메모리)반도체, 평판디스플레이, 철강, 합성수지, 자동차부품, 컴퓨터 등이다. 품질경쟁력과 원가경쟁력을 기준으로 10대 수출 제품을 분류하면 한국이 품질과 원가 모두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조선, 반도체, 평판디스플레이, 철강과 품질 및 가격이 동시에 세계 1위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나머지 제품으로 나뉜다.
 
세계 1위는 아니지만 세계시장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가진 제품들의 경쟁력 원천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그룹인 석유제품과 합성수지는 생산설비와 가공 능력으로 경쟁력을 갖고 있고, 둘째 그룹인 휴대전화·컴퓨터·자동차·자동차부품은 디자인과 조립기술 면에서 세계 1위 기업들을 열심히 쫓아가고 있다.
 
품질과 원가 면에서 동시 세계 1위를 자랑하는 반도체, 평판디스플레이, 조선, 철강산업을 이끌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제품에 대한 원천기술 면에서 하나같이 세계 최고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제품경쟁력의 원천은 R&D
반도체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평판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가 각각 양강 체제를 구축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원천기술의 자체 개발, 절묘한 투자시점의 선택, 과감한 투자 규모로 품질 및 원가경쟁력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수년 동안 무역수지 흑자의 원동력으로 매년 20조 원이 넘는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는 조선은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으로 구성된 국내 3대 기업과 이를 뒤따르는 여러 조선회사가 공정 관련 신기술을 끊임없이 개발해 세계 최고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철강은 포스코가 끊임없이 원천기술 개발에 투자해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2007년 상용화에 성공한 파이넥스(FINEX) 공법은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용광로 공법이 나온 이후 큰 변화가 없던 제철기술의 역사를 100년 만에 새롭게 쓴 차세대 기술이다. 포스코는 또한 끊임없는 공정기술 개발을 통해 세계 철강산업에서 최고 수준의 원가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반도체·평판디스플레이·조선·철강에서 삼성전자, 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포스코가 현재의 생산성과 미래의 핵심 기술을 바탕으로 품질과 원가 면에서 독보적인 세계 경쟁력을 갖게 된 원인은 R&D 투자 규모, R&D에 대한 경영자의 열정과 전문성, 이들 기업에 내부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독특한 R&D 메커니즘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성공 요인은 R&D 투자 규모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반도체 부문에서 매년 투자하는 규모는 2008년 상반기 기준으로 각각 매출액의 9.2%와 11.0%로 세계 우수 전기전자 기업의 R&D 비 비중인 4.5%의 2배를 넘는다. 철강부문에 대한 R&D 투자에 있어 세계 철강산업의 우수 기업 대비 150%의 투자를 하고 있는 포스코 역시 R&D 집약도가 가장 높은 기업이다. 국내 다른 대기업들이 해당 산업에서 세계 평균의 30%에 불과한 R&D 집약도를 갖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이들 기업의 R&D투자액은 놀라운 수치다.
 
둘째, 기술 선도 기업들의 R&D 투자를 기업 성과로 이끌어내는 데에는 열정과 경륜을 갖춘 경영자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인물을 영웅으로 내세우는 사회문화를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그래도 전자 및 반도체에서 이병철·이건희·윤종용·이윤우·진대제·황창규·김쌍수·남용·백우현·우의제·김종갑·최진석, 조선에서 정주영·김우중·민계식·남상태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담당한 역할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철강산업을 대표하는 포스코에서는 박태준 초대 회장부터 현재의 이구택 회장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기간을 철강 전문 경영자가 이끌어 오면서 철강기술 개발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해왔다. 특히 파이넥스 공법 탄생의 주역으로 꼽히는 강창오 사장 시절에는 대표이사 사장이 연구소장을 겸임할 정도로 연구소 위상이 높았다. 이런 인물들이 열정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R&D에 대한 장기적 투자를 한 결과 세계를 선도하는 한국기업이 나타난 것이다.
 
셋째, R&D 투자 규모나 R&D에 대해 열정을 가진 경영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개별 기업들이 갖고 있는 자신만의 독특한 R&D 메커니즘이다. 삼성은 신상필벌의 인사평가 제도를 확립한 뒤 우수한 인력들을 모아 이들 간에 치열한 경쟁을 유도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신제품을 개발하는 R&D 메커니즘을 구축했다. LG는 철저한 고객 중심 조직 및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여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R&D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하이닉스는 소수 주력 품종에 특화해 제한된 자원을 집중하는 R&D 메커니즘을 통해 품질과 원가 경쟁력에서 경쟁기업들을 앞섰다.
 
정교한 메커니즘이 경쟁력 원천
조선 3사와 포스코는 국내 유수 대학과 컨소시엄을 형성해 다양한 R&D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포스코가 갖고 있는 회사-대학-연구소간의 삼각 편대는 우리나라 산학연 연계의 대표적인 R&D 메커니즘이다. 기업은 생산효율 및 원가경쟁력 개선과 제품 및 프로세스 관련 신기술 개발 역할, 포항공대는 철강산업에 필요한 기초연구 수행 및 지속적인 인재 공급 역할,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은 지구온난화 가스배출 저감과 부산물 재활용 및 연료전지 등 차세대 기반기술 개발 역할을 각각 담당하고 있다. 기업에서는 현장에 즉시 적용 가능한 응용기술 개발, 학교에서는 최신 지식과 기술 동향, 연구소에서는 실험모델 개발과 이를 현장에 연결함으로써 역할을 분담하며 파이넥스와 같은 기술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이 세계 1위 기업들은 R&D 투자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정교하게 디자인된 메커니즘을 운용하고 있다.
 
각 기업이 가진 R&D 메커니즘은 시대를 앞서가는 경영자가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제한된 자원을 십분 활용해서 만들어 낸 결과다. 그러나 한 번 만들어진 R&D 메커니즘은 경영자가 바뀌더라도 이와 관계없이 주어진 R&D 투자액에서 최대 효과를 이끌어내는 핵심 역할을 발휘한다.
 
이런 메커니즘을 기반으로 R&D에 대해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 온 한국의 세계기업들은 반도체, 평판디스플레이, 조선, 철강산업에서 앞으로도 당분간 세계시장을 선도할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각각 메모리 반도체 중 D램 시장에서 2008년 상반기 기준 세계시장의 30.4%와 19.1%를 차지함으로써 한국산업의 과점적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는 평판디스플레이 세계 시장에서 2008년 상반기 기준 20.6%와 19.4%,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은 2007년 기준 세계시장에서 24.9% 및 19.7%와 19.4%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포스코는 수 년째 세계 철강사 경쟁력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품질경쟁력이 우수한 제품을 자동차·조선 등 국내의 주요 철강소비재 산업에 경쟁사 대비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면서도 20%에 가까운 탁월한 영업이익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능력을 보여 주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에서는 지식경제부가 중심이 돼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R&D 투자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은 대규모 R&D 투자를 하기 전에 투자 효과를 극대화되기 위한 사전 조치를 취해야 한다. 기업의 메커니즘은 단기간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확고부동한 비전을 세우고 온 구성원이 이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가운데 반복과 강조를 통해 형성된다.
 
앞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기업의 경영자는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R&D 예산을 늘리는 동시에 자신에게 적절한 R&D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
정부 역시 원천기술 확보가 가능한 산업 위주로 투자순위를 정하고, R&D 연계가 가능한 산업들 간에 시너지가 발휘될 수 있도록 R&D 지원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 각 산업에 필요한 R&D의 성격을 파악하고 한국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원천기술에 초점을 둔 정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R&D 메커니즘을 가진 우리 기업들을 앞세워 한국을 세계 최고의 R&D 강국으로 우뚝 세워야 한다.
 
편집자주 한국을 대표하는 경영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조동성 서울대 교수가 동아비즈니스리뷰 (DBR)에 R&D 메커니즘 구축을 제안하는 기고를 보내 왔습니다. 기술 혁신으로 성장해 온 한국 기업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R&D 투자비 확대 외에도 독특한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는 조 교수의 주장은 국가와 기업의 R&D 담당자들에게 통찰을 제시합니다.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걸프오일 회사에서 근무한 뒤 1978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 경영전략과 국제경영 등의 분야에서 교육과 연구 활동을 수행해 왔다. 국내외 저명 학술지에 90여 편의 논문을 실었으며, 566개 학회를 회원으로 하는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을 역임했다.
  • 조동성 | -(현)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위원회 위원
    -(현)핀란드 명예총영사
    -(현)안중근의사기념관 관장직
    -(현)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 (학총) 회장 역임
    - 한국복제전송권협회 이사장 역임
    - 서울대 경영대학 학장
    - 하버드, 미시건, 듀크, 동경대, 북경대, 장강대 초빙교수
    - 전 정부혁신관리위원회위원장
    - 전 한국경영학회 회장
    dsch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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