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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생존의 근육’을 키워야 할 때

김현진 | 361호 (2023년 01월 Issue 2)
경기 불황에 스태그플레이션까지 겹쳐 최악의 경제 상황을 맞았던 1995년의 일본. 캐논의 수장이 된 미타라이 후지오 CEO는 매출액과 시장점유율에 연연하지 않고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경영 원칙을 발표했습니다. 보통 매출로 평가받는 일본 기업계에선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운영 비용을 줄여 재정 건전성을 높이고, 이를 기반으로 핵심 사업에는 과감히 투자하는 원칙하에 PC 등 7개 사업을 정리하고 디지털카메라 등 핵심 사업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한 것이 이 시기입니다. 그 결과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한 2001년, 경쟁 기업들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을 때 전년 대비 순이익 20% 성장 등의 깜짝 실적을 낼 수 있었습니다. 2008년, DBR 스페셜 리포트 ‘다운턴 매니지먼트(Downturn management)’를 통해서도 분석한 이 사례는 우울한 경제 전망 속에서 한 해를 시작한 2023년의 국내 기업인들에게도 시대를 뛰어넘는 인사이트를 줍니다.

경기 침체는 기업의 운명을 바꾸는 도화선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란제이 굴라티 하버드대 교수 등이 1980년, 1990년, 2000년대에 발생한 경기 침체 기간 동안 상장 기업 4700개의 경영 상태를 조사한 결과 17%는 파산, 상장 폐지, 인수 등의 파국을 맞았지만 9%는 경기 침체 후 3년간 오히려 경쟁사 대비 10% 이상 높은 매출 및 이익 상승을 맛보는 데 성공했습니다. 위기 속에서 오히려 성장한 기업들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HBR가 이러한 사례 연구들을 종합해 소개한 ‘경기 침체에서 살아남아 도약하는 방법’에 따르면 첫 번째 전략은 바로 ‘경기 침체 전에 디레버징(부채 축소)하라’입니다. 2000년 초 아마존닷컴이 6억7200만 달러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한 지 고작 한 달 뒤, 닷컴버블이 붕괴되면서 스타트업들의 줄도산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딱 한 달 앞서 자금 조달에 성공해 부채 수준을 줄이고 성장의 실탄을 마련한 것이 아마존을 지금의 위상에 올려놓은 ‘신의 한 수’가 된 것입니다.

경기 침체 대응 전략 두 번째는 ‘조직 구조에 따른 의사결정 과정에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위기일수록 의사결정 권한을 중앙에 놓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MIT 소속 경영대학원 교수들이 2017년 발표한 공동 연구 결과, 분산화(decentralization)가 오히려 경기 침체기에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현장에서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권한이 위임된 조직에서 변화무쌍한 시기, 더 유연하고 신속한 대처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위기를 본격적으로 뚫고 나가야 할 지금, DBR가 지혜를 구한 전문가들의 조언도 과거 연구 결과와 일맥상통합니다. 피 같은 현금이 새지 않도록 현금 흐름 관리에 나설 것,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익을 늘려 수익성을 확보할 것, 현금이 확보되면 성장과 안정에 분산 투자할 것 등이 핵심입니다.

자금 조달의 혹한기가 찾아온 만큼 추위를 이길 근력을 키우고 내실을 다지는 ‘머슬업’ 전략을 구사하면서 다음 반등을 준비하라는 조언도 눈에 띕니다. 빠른 성장에만 주력했던 실리콘밸리식 성공 문법, ‘블리츠스케일링’ 전략을 내려놓고 혹한기 경영 목표를 ‘성장’이 아닌 ‘생존’에 두라는 현실적인 조언입니다.

앞서 소개한 미타라이 캐논 회장의 인생 좌우명은 ‘숙려단행(熟慮斷行, 최대한 신중하게 생각하되 판단이 서면 주저하지 않고 행동하기)’입니다. 위기에 당황하지 않고 신중하게 내실을 챙기면서도, 체질 개선이 필요할 땐 과감히 방향타를 틀 수도 있는 유연성이 필요한 현재 상황에도 꼭 맞는 교훈을 담고 있는 듯합니다.

DBR는 이번 호와 다음 호 스페셜 리포트를 통해 비즈니스 리더들이 경제 위기에 적극 대응하고, 향후 다시 찾아올 성장기 반등을 도모하기 위해 취해야 할 전략과 모범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전략 수혈’을 통해 생존 근육을 키우는 교훈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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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장•경영학박사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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