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거시경제 환경

2년은 긴축 각오, 보수적으로 봐라

한상완 | 18호 (2008년 10월 Issue 1)
미국의 주택경기 침체에 따른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금융위기로 인해 세계 경제가 격랑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오늘날의 금융위기는 비단 금융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실물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2009년 이후 거시경제 환경을 보려면 지금의 금융위기에 대한 진단이 필수적이다.
 
서브프라임 위기, 아직도 멀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금융위기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모기지 금융업체들과 모노라인 업체의 부도 및 미국 5위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의 JP 모건 피인수를 계기로 진정이 되는 듯 했다. 그러나 최근 들면서 잠시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금융위기가 재현되고 있다. 지난 추석을 전후로 미국 국책기관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구제금융 단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신청, 메릴린치의 뱅크오브아메리카(BoA) 피인수, AIG에 대한 구제금융 결정에 이어 급기야 7000억 달러에 이르는 공적자금 조성 등 메가톤급 구조조정 사안들이 연이어 발표됐다.
 
이로써 미국의 투자은행(IB) 가운데 3∼5위가 모두 정리됐으며 2위인 모건 스탠리마저도 새 주인을 찾는 운명에 처해졌다. 또한 1위 보험사인 AIG가 무너지고, 뮤추얼펀드 1위 업체인 워싱턴뮤추얼도 새 주인을 찾아야 한다.
 
미국 금융위기의 파장은 국제 금융시장에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주식시장, 외환시장 모두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급등락 장세를 연출하고 있다. 미국 다우존스공업지수는 한때 11,000선이 붕괴됐고, 중국 상하이지수도 심리적 저항선이라 여겨졌던 2,000이 무너졌다. 외환시장과 원유시장도 매일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국제 금융위기 상황에 대해 기업들이 궁금한 것은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금융위기의 확산 여부이고, 또 하나는 지속 기간이다.
 
금융위기 확산 여부 우선 금융위기의 확산 가능성을 보자. 결론적으로 말하면 미국발 금융위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동안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던 초대형 금융기관들의 향후 처리 방안이 확정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첫걸음이 시작됐다. 그러나 아직 낙관적인 전망은 금물이다. 국제 금융시장이 파생금융상품을 매개로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금융시장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특히 신용부도스와프(CDS)는 국제 금융시장의 또 다른 공포 대상이 되고 있다. CDS는 기업의 채무 불이행 위험을 사고파는 신종 파생금융 상품이다. 파산된 리먼브러더스가 가장 활발하게 거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AIG도 4400억 달러 규모의 채권에 대해 CDS를 매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 외국 은행에 따르면 2조 달러의 채권에 대해 CDS 거래를 하던 금융기관이 도산할 경우 거래 상대방의 손실 규모는 400억 달러 안팎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다음으로 여타 금융기관의 연쇄 도산 사태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지금까지는 주요 금융기관들만 정리된 상황이다. 그러나 여타 투자은행이나 보험사, 뮤추얼펀드 등 나머지 금융기관들에서도 부실이 나타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또한 아직은 관심을 쏟고 있진 않지만 중소형 은행과 헤지 펀드에서도 부실은 발생할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발표한 공적자금 투입 규모 누계액은 총 1조 달러를 넘어섰다. 그러나 이 금액은 지금까지 알려진 부실 규모 정도를 소화할 수 있는 것에 불과하며, 앞으로 발생 가능성이 있는 잠재 부실은 계산되지 않았다.
 
국제 금융시장은 지금 이른바 ‘손실을 확정해 가는 과정’을 밟고 있다. 이 손실 확정 절차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 금융시장의 위험은 그 범위와 깊이를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현재까지 빙산의 일각만 드러났을 뿐이라는 점이다.
 
금융위기 지속 기간 이제는 금융위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대해 예상해 보자. 금융위기가 마무리되기 위해서는 부동산시장 안정이라는 필요조건과 잠재손실의 확정이라는 충분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우선 현 위기 상황을 초래한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안정돼야 한다. 미국의 부동산시장은 2003년 이후 매년 평균 20% 이상 가격이 상승했다. 이렇게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것은 2000년대 초반 회계 부정 사태에 따른 기업들의 연쇄 도산과 9·11 테러 등으로 세계 경제가 10년의 골디락스를 마무리하고 급격히 침체되면서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공급한 데 기인한다. 이에 따라 장기간에 걸쳐 부동산시장에 거품이 형성됐고, 거품이 꺼지면서 부동산시장이 냉각된 것이다. 미국의 부동산시장은 현재 고점 대비 20% 정도 가격이 하락한 상태로 다소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직 부동산 침체가 마무리됐다고 보지 않는다.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약 10% 추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잠재손실의 확정은 소위 금융공학(fi-nancial engineering)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금융공학은 주식, 채권, 금과 같은 기초 금융자산에 선물 옵션 등의 파생상품을 결합해 수요자와 공급자에게 가장 잘 맞는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부분의 투자 상품, 예를 들어 구조화채권(structured bond)이나 자산유동화증권(ABS) 등이 모두 금융공학에 의해 만들어진 상품들이다.
 
금융공학은 1990년대 들어 빠른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단순한 선물이나 옵션으로 시작한 파생상품이 기초 금융자산과 결합하면서 한층 더 고객의 필요에 맞는 상품으로 변신하더니, 급기야 그 구조가 너무 복잡해져 심지어는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공룡이 됐다. 이와 같은 금융공학의 산물들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면서 그 누구도 자신이 어디에 얼마나 투자했는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따라서 이런 부분에 대한 손실이 확정되고, 금융시장에서 나도는 루머가 진정될 때 금융위기도 가라앉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금융시장 안정은 내년 상반기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말이나 내년 1분기까지는 지금과 같이 급변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며, 변동성이 축소되는 시점은 내년도 2분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주택가격 버블 붕괴, 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세계화
이제 실물 경제를 살펴보자. 세계 경제 흐름을 좀더 깊이 파악하기 위해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90년대 이후 세계 경제는 2000년대 초반 잠시 침체를 경험한 것을 제외하고는 ‘골디락스 경제’라는 저물가 고성장의 초호황을 누려왔다. 골디락스 경제란 성장은 지속되는데 물가는 안정되어 있는 경제를 말한다.
 
이와 같은 골디락스 경제의 동인은 1990년대와 2000년대가 서로 다르다. 1990년대는 세계 전반의 정보기술(IT) 투자 확대와 이로 인한 생산성 증가가 경제 성장을 견인했으며,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급부상하면서 저물가를 수출했다. 그러나 2000년대 저물가의 원인은 중국으로 동일하지만 성장의 동인이 사뭇 다르다.
 
2001년 세계 경제는 IT 부문의 과잉투자 붕괴와 회계 부정 사태, 9·11 테러 등으로 1990년대의 골디락스 경제가 마무리되고 급격한 침체로 빠져들었다. 이에 대응해 세계 중앙은행들은 금리 인하를 단행했고, 시중에 풀려나간 유동성은 주택가격 상승 및 소비 증가를 견인했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지난 5년 동안 세계 경제가 호황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이다. 1990년대 경제 성장이 IT 투자 확대라는 건실한 성장 동인에 기인한 반면에 2000년대는 넘쳐나는 유동성이 성장의 동력이었다. 따라서 언젠가는 버블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버블 붕괴의 조짐은 2006년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 모르고 치솟던 주택가격이 드디어 하락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건설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이 점에 주목하고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미국의 중앙은행과 정부 당국이 주택가격 및 금융시장의 연착륙에 성공해 주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세계 대공황 이후 최고의 금융위기로 번졌다.
 
1990년대 이후 미국 경제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바로 경상수지와 재정수지의 쌍둥이 적자다. 1990년대 미국 경제는 쌍둥이 적자 문제가 지속됐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집권 이후 적자 폭이 대폭 늘면서 연간 적자 합계액이 1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와 같은 대규모 적자는 아무리 미국이라도 10년씩 감내할 수는 없었다.
 
미국 경제는 지금 실질적인 외환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이론상으로 보면 달러화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외환위기가 존재할 수 없지만 달러화 가치가 폭락하고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당할 위기로까지 몰려 있다. 여기에 더해 이번 금융위기로 인하여 정부가 풀어야 하는 자금이 현재까지 발표한 것만도 무려 1조 달러를 넘어섰다. 또 다른 구제 금융이 없다고 가정해도 1조 달러 이상의 추가적인 재정 부담을 감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결국 달러화 가치 하락, 국내 물가 상승, 소비 위축, 경기 침체 가속화로 연결된다.
 
2009년 세계 경제 흐름
내년도 세계 경제의 향방은 미국의 경기 침체가 어떻게 진전될 것이냐에 달렸다는 점은 설명이 필요가 없을 것이다. 먼저 지금까지의 미국 경기 상황을 보면 드디어 주택시장과 금융시장의 위기가 실물로 전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진 직후인 2007년에 4분기 -0.2%(전 분기 대비 성장률)가 되고 2008년 1분기 0.9%, 2분기 3.3%를 각각 보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2008년의 플러스 성장은 세금 환급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3분기부터의 실적이 진정한 미국 경제의 성적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발표되고 있는 월간 속보치들을 살펴보면 전망이 그리 밝지 못하다. 미국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소비를 가늠할 수 있는 소매 판매액을 보면 2004년 이후 2007년 상반기까지 6% 안팎의 증가를 나타냈다. 그러나 2007년 3분기부터 그 증가세가 0%대로 하락했고, 올해 7월과 8월에는 마이너스를 보이고 있다. 실업률도 올 8월 6.1%까지 치솟았으며, 소비자물가도 5%대 중반까지 올라와 있다.
 

이에 따라 미국 경기는 3분기부터 마이너스 성장이 확실시되고 있으며,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는 침체가 이어질 것이다. 내년 하반기 이후의 경기 향방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다소 엇갈린다. 대표적으로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미국 경기가 내년 하반기부터 회복될 것이라며 다소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반면에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은 내년 하반기에도 침체가 지속될 것이며, 2010년이나 돼야 경기가 호전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느 전망이 맞을 것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내년 하반기부터 미국 경기가 호전된다고 하더라도 침체 상황이 다소 개선된다는 의미이지 본격적인 성장 국면으로 진입하지는 못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즉 미국 경제가 호전되었다고 체감할 수 있는 것은 2010년쯤에나 가능할 것이다.
 
유럽이나 일본과 같은 선진국들의 경기 전망도 그리 밝지만은 않다. 부동산시장 침체는 세계 각국이 공통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다. 또한 미국의 실물과 금융 위기가 세계화의 메커니즘을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유럽과 일본 경기도 미국 경기와 비슷한 사이클을 보일 것이다. 이렇게 선진국 경기가 침체되면 수출을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는 신흥국 경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이미 그 징후들은 나타나고 있다.
 
한편 세계 경기 침체에 일정 부분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자원 보유국들은 아직까지 고유가와 고원자재 가격으로 혜택을 보고 있다. 그러나 향후 원자재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감소하면서 이들 국가의 경기 탄력도 둔화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달러화 가치에 일정 부분 연동돼 있는 국제 유가나 원자재 가격의 하락폭은 제한적일 것이다. 미국의 재정 적자 문제로 달러화 가치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번 경기 침체는 기간도 길고 골도 깊을 것이다. 우리 정부나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은 극도로 보수적인 관점에서 2009년 운영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하향 안정화되긴 하겠지만 앞으로도 가격 하락폭은 제한적일 것이다. 원-달러 환율도 당분간 1100원대의 높은 수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국내 금융시장도 상당 기간 요동칠 것이며, 실질금리도 고금리가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국내 기업들은 철저하게 위험관리에 신경 써야 하며, 시중유동성 경색에 대비해 자금 확보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내년 사업 계획 또한 확대 지향적인 전략을 지양하고 보수적인 관점에서 잡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헐값에 매물로 나와 있고, 금융 전문 인력들이 대거 구직자 명단에 올라와 있다. 미국, 영국이 주도하는 세계 금융시장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서는 지금이 기회이다. 일본이나 홍콩 등 우리의 경쟁국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도 금융기관의 인수나 전문 인력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필자는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시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전략본부장(상무)으로 재직 중이다. 앨런 그린스펀의 자서전 ‘격동의 시대’와 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다수 논문들을 번역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