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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기획과 혁신

체계적, 의도적으로 사업에 대한 고정관념 폐기하라

이동현 | 18호 (2008년 10월 Issue 1)
언제부턴가 여름 무더위를 지나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면 기업들은 저마다 새해 사업계획 구상에 분주해진다. 특히 올해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이에 따른 금융시장 위기 때문에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한 느낌이다. 정부가 앞장서 성장을 외치고 있지만 기업들은 몸을 사리고 있고, 여전히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전략
조명도 없는 캄캄한 밤에 시골길을 차로 달린다고 상상해 보자. 처음 가는 곳이어서 길도 익숙지 않은 터에 달빛마저 없으니 조심스럽게 운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때 억수같은 비마저 내린다면 어떨까. 자동차 헤드라이트에서 나오는 실낱같은 조명에 의지해 잘 보이지도 않는 길을 달리는 운전자, 바로 이 운전자의 심정을 요즘 기업 경영자의 모습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예상하기 어렵다. 폭우로 길이 막힐 수도 있고, 심지어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경영전략은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나침반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경영자들에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direction)’을 제공하는 것이다. 혼란스럽고 복잡한 세계에서 경영자는 전략을 통해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이런 방향 결정은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불확실성이 높고 전망이 어두울수록 오히려 경영전략이 빛을 발할 수 있다. 1990년대 초 노키아는 유럽의 변방인 핀란드의 무명 기업에 불과했다. 경쟁사인 에릭손이나 모토롤라는 이미 우편 및 전화 사업과 경찰, 군대, 소방서 등 전문가 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들 세 기업 앞에 이동전화라는 미래가 불투명한 사업 기회가 놓이게 된다. 그런데 세 기업의 상황 판단은 달랐으며, 당연히 전략도 서로 상이했다.
 
에릭손은 이동전화 서비스를 전통적인 고정 네트워크 사업자에게 제공하는 추가 틈새시장으로 보았다. 모토롤라도 이동전화를 구조대원들이 사용하는 전문가용 제품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노키아는 다르게 생각했다. 두 경쟁자와 달리 노키아는 이동전화를 전문 서비스 영역으로 보지 않고 대량소비 제품이라고 간주했다. 또한 전통적인 고정 네트워크 사업자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새로 인가받은 이동전화 서비스 사업자를 개발하고 지원하는데 주력했다. 노키아는 제품과 시장 측면에서 경쟁자들과 완전히 다르게 이동전화 사업을 정의한 것이다. 이 결과 노키아는 이동전화 사업에서 세계 1위 업체로 급부상했으며, 그 후 모토롤라와 에릭손은 단 한 번도 노키아를 이겨보지 못했다. 사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작업이 까다로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키아처럼 제대로 전략을 수립한다면 위기를 커다란 사업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다.
 
기술혁신과 전략혁신
그렇다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2009년 사업계획에 과연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까. 여기서 잠깐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려 30년 전으로 되돌아가 보자. 70년대 우리나라 기업들은 사업계획에 무슨 내용들을 담았을까? 당장 30년 전에 작성한 기업들의 사업계획서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도서관에서 먼지 쌓인 신문들을 뒤적이면 해마다 발표하는 주요 기업 CEO들의 신년사는 살펴볼 수 있다.
 
70년대 우리나라 기업들의 신년사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키워드는 역시 ‘수출’이었다. 정부가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주도하던 시대였고, 기업도 이를 따라가던 시절이었기에 ‘수출’이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 올해 초 발표된 기업들의 신년사는 어떨까. 물론 업종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가장 많이 등장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기술’이었다. 연구개발(R&D) 투자, 기술개발, 기술혁신 등 표현만 다를 뿐 결국 기술에 대한 투자만이 글로벌 경쟁에서 우리나라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렇다. 30년 전만 해도 신년사에서 찾아보기 힘들던 기술혁신에 대해 이제 우리나라 경영자들이 그 중요성을 깊이 깨달은 것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기업 대부분은 자체 기술개발보다 해외 선진 업체 기술을 도입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그 후 자동차나 반도체, 이동전화를 비롯한 정보기술(IT) 산업의 성공에서 알 수 있듯이 기술혁신에 대한 투자야말로 우리나라 기업 성장에 핵심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사실 현대적인 기업이 나타나기 시작한 19세기 이후 기술혁신 또는 R&D 투자는 경영자가 고민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로 부각되었다.
 
이제 시각을 다른 데로 돌려 다음의 기업들을 살펴보자. 컴퓨터 산업의 델, 커피 산업의 스타벅스, 화장품 산업의 보디숍, 방송 산업의 CNN, 소매유통 산업의 아마존, 복사기 산업의 캐논, 가구 산업의 이케아, 항공 산업의 사우스웨스트항공 등은 대표적 혁신 기업으로 꼽힌다. 그런데 업종이 다른 이 회사들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이들 기업이 기술혁신이 아니라 남과 다른 전략을 통해 산업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델은 애플이나 IBM, 컴팩과 같은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PC 산업에서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이는 대리점 없이 고객의 주문을 직접 받고 제품을 배달하는 전략을 개발했기 때문이었다. 델이 애플이나 IBM이 따라올 수 없는 첨단 기술을 보유했기 때문에 성공한 게 아니다. 캐논은 제록스를 능가하는 기술혁신을 달성했기 때문에 복사기 시장의 1위를 탈환한 게 아니다. 저가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항공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성공은 남과 다른 기술을 개발했다기보다 남과 다른 전략을 개발했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전략도 기술 못지않게 기업의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필자는 여기서 기술혁신의 중요성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기술혁신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핵심적인 기업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술혁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영자들에게 홀대받고 있는 전략혁신에 대해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신년사에서 살펴본 것처럼 지난 30년간 우리나라 기업들은 기술혁신의 중요성을 진정 깨달았다. 그 결과 자체 기술연구소를 세웠고, 최고의 박사급 인력들을 영입한 것은 물론 매년 엄청난 자금을 R&D 활동에 투자하고 있다.

전략혁신의 방법론
반면에 전략혁신은 어떤가. 전략연구소를 세웠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간혹 경제연구소를 가진 기업은 있지만 전략을 개발하는 업무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기술연구소처럼 전략에 관한 박사급 인력을 별도로 육성하는 것도 아니다. 투자 역시 기술혁신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경영자들이 기술개발에 기울이는 관심과 재원의 10%만이라도 전략을 개발하는 데 투자한다면 과연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결과를 장담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보다 훨씬 더 창의적이고 구체적인 전략 대안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기술혁신의 중요성을 깨닫는 데 30년 정도 시간이 걸렸으니, 전략혁신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데도 그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그러기에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당면한 현실이 너무도 급박하다.
 
혁신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기술혁신은 물론 제품혁신과 프로세스혁신이라는 개념도 있다. 그렇다면 필자가 주장하는 전략혁신은 무엇이며,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
 
최근 열풍처럼 유행한 블루오션이라는 개념은 전략혁신을 위한 좋은 방법론이 될 수 있다. 블루오션 전략에서는 고객에게 주는 가치(value)라는 관점에서 기업의 전략을 재정립할 것을 강조했다. 즉 기업 입장에서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가에 대한 체계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고객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객이 미처 알지 못하는 가치를 제공할 수는 없는지, 고객이 불만스럽게 여기는 가치를 아직도 개선하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닌지 등 고객의 가치에 대한 일련의 질문들을 통해 기업들은 자신의 전략을 점검하고 바꿀 수 있다.
 
화장품 산업에서 가치혁신에 성공한 세포라를 예로 살펴보자. 세포라는 고객 입장에서 구매에 대한 부담 없이 편안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고, 다양한 브랜드를 비교하면서 구매할 수 있는 새로운 판매 방식을 창조했다. 사실 백화점에서는 진열대마다 1개 브랜드 제품만 전시되기 때문에 타사 제품을 비교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수수료에 집착하는 판매원들의 압력 때문에 편안히 쇼핑을 즐기기도 어렵다. 세포라는 바로 이 점을 공략했다.
 
판매원의 급여를 고정급으로 바꾸고 이들에게 판매를 강요하기보다 고객 서비스를 강조했다. 또 600개가 넘는 제품을 독특하게 진열함으로써 고객들이 쇼핑을 최대한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세계에서 판매되는 모든 향수가 알파벳순으로 가지런히 진열돼 있으며, 색상 순으로 정리된 수백 가지 립스틱이 제조업체별이 아니라 카테고리별로 진열되어 있다. 판매원은 고객에게 선호하는 제품이 무엇인지만을 물어보고 다른 유사한 제품을 권하는 정도일 뿐이고, 모든 제품은 고객이 직접 손으로 집어서 시험 삼아 발라볼 수 있을 만큼 완전히 개방된 방식으로 진열됐다. 세포라에 가면 고객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고 쇼핑의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전략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가치혁신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좀 더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전략을 혁신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다. 비즈니스 모델은 사업에 대한 기본적인 설계도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어떤 상품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판매할 것인가를 결정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비즈니스 모델은 기업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뿐 아니라 그런 가치를 만들고 전달하는 기업의 역량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기업은 전략을 수립하기에 앞서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을 분석하고 이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시대 변화와 함께 과거의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도 진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복사기 산업이 좋은 예다. 1970년대 초까지 전 세계 복사기 시장은 제록스가 석권하고 있었다. 제록스는 복사기를 구매하는 주된 고객인 대기업을 상대로 고속의 대용량 복사기를 리스 형태로 판매했다. 뛰어난 성능의 제품과 효과적인 영업 조직으로 제록스는 20%가 넘는 수익률을 달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제록스가 지배하는 복사기 시장은 1980년대 들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복사기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면서 그 동안 주요 고객인 대기업 외에 중소기업이나 일반 개인들도 복사기를 필요로 했다. 당연히 고객의 욕구도 다양해졌다. 복사기 시장의 주된 고객인 대기업은 여전히 고속 복사기를 원했지만, 중소기업이나 개인들은 1회에 복사할 양이 적었기 때문에 우수한 성능보다는 가볍고 싼 제품을 원했다. 몇 장밖에 안 되는 복사를 하기 위해 멀리 떨어진 고속 복사기를 찾기보다 속도가 늦고 용량이 작더라도 자신의 근처에 복사기가 있기를 원했다. 즉 저가 복사기에 대한 고객들의 욕구가 생긴 것이다. 이런 시장의 변화를 감지하고 뛰어든 기업이 바로 캐논이다.

캐논은 복사기 사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재설계했다. 고객 가치 측면에서 제록스가 자신의 주요 고객인 대기업의 욕구에 맞는 초고속, 대용량 복사기에 집착하고 있을 때 캐논은 중소기업과 개인 고객들을 대상으로 저렴한 소용량 복사기를 출시했다. 또한 역량 측면에서 제록스가 대용량 복사기를 자체 영업 조직을 통해 고가로 리스하고 있을 무렵에 캐논은 저가 복사기를 딜러망을 통해 고객에게 직접 판매했다. 이런 캐논의 전략혁신은 당시 시장 변화와 딱 맞아 떨어졌고, 이 결과 캐논은 제록스를 추월하고 선두 기업으로 도약했다.
 
그렇다면 제록스가 지난 20년 동안 지켜온 복사기 시장의 아성을 캐논에 빼앗긴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주된 이유는 제록스가 기존 고객에 집착한 나머지 새로운 고객과 욕구에 대한 대비가 소홀했을 때 캐논은 새로운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제록스와는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한 것이다. 이처럼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검토는 현재 사업에 대한 혁신 기회를 찾는 것은 물론 혹시나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을 진부하게 만들려는 경쟁자들의 시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성장의 새로운 돌파구
모든 비즈니스 모델은 영원불멸하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 비즈니스 모델들이 쓸모없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영자는 여전히 과거의 성공과 가정들에 집착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자기 사업에 대한 고정관념들을 끊임없이 점검하는 것이다. 기업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잘못된 가정을 폐기시켜야 한다. 체계적이고 의도적으로 사업의 고정관념들을 폐기하지 않으면 기업은 중요하지도 않은 일들에 치여 꼼짝할 수 없게 되고, 결과적으로 시장과 기술이 변할 때 파생되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놓치게 된다.
 
경영의 구루(대스승) 드러커 교수는 모든 기업이 3년마다 자사의 모든 제품, 서비스, 유통망에 대해 ‘우리가 이런 제품, 서비스, 유통망을 채택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이러한 제품이나 서비스, 유통망을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년도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시점에서 반드시 한 번쯤 되짚어 볼 필요가 있는 질문일 것이다.
 
기업의 운명을 결정할지도 모를 의사결정이 지금의 사업계획 수립에서 발생할지도 모른다. 시장의 글로벌화, 급격한 기술혁신, 잠재적 경쟁자의 출현 등으로 21세기 기업 환경은 점점 더 급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순히 운영의 효율성이나 개선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부가가치는 극히 제한적인 효과만 가져올 수 있다. 경쟁의 룰을 바꾸려는 시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하려는 근본적인 노력만이 성장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업계획 수립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재조명돼야 한다.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 방문 교수로 연구 활동을 벌였다. <MBA 명강의> <경영의 교양을 읽는다: 고전편, 현대편> <깨달음이 있는 경영> <경영전략 에센스> <초우량 기업의 조건> <잭 웰치·끝없는 도전과 용기> <꿀벌과 게릴라>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경영학 지식을 다양한 조직에 확산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이동현 | - (현)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
    -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 방문 교수
    - <경영의 교양을 읽는다: 고전편, 현대편>, <깨달음이 있는 경영>, <초우량 기업의 조건> 저자
    dhlee67@catholi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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