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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의 품격

럭셔리 시장은 개인화 전략의 교과서

박찬용 | 339호 (2022년 0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럭셔리 브랜드는 태생부터 부유층 고객을 타깃으로 한 고가 개인화 서비스로 명성을 쌓았다. 오히려 지금처럼 럭셔리 브랜드를 누구나 살 수 있게 된 것은 20세기 중산층의 등장이 그 원인이다. 중산층이라는 구매층이 급부상하면서 럭셔리 브랜드들이 이들을 위한 사치품을 만들어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 하지만 최근 들어 나만의 취향을 중시하는 MZ세대의 부상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 글로벌 공급망 확대 등으로 럭셔리 산업의 본래 DNA인 개인화 서비스가 빠르게 부활하고 있다. 개인화 서비스가 럭셔리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견인하는 주역이 된 것이다.



최근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가운데 상당수는 19세기 후반에 태어났다. 이들 브랜드는 대량 생산 시스템이 본격화된 19세기에 오히려 역으로 부유층 고객을 타깃으로 한 고가 개인화 서비스를 선보이며 명성을 쌓았다. 개인화 서비스는 따라서 럭셔리 브랜드 DNA의 핵심이다. 루이뷔통이나 파텍 필립, 에르메스와 같은 유명 브랜드들도 창립 초기부터 특별 고객들을 위한 특별 주문품을 제작했다.

따라서 오늘날 기성품으로 판매되는 럭셔리 제품이 오히려 원래 명품 산업의 본질에서 벗어난, 20세기의 특수한 산물일 수 있다. 20세기에 중산층이라는 구매층이 급부상하면서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럭셔리 브랜드들은 이들을 위한 사치품을 만들고 판매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명품 시장이 성숙해지고 고객 수요가 다양해지고 있다. 또한 나만의 취향을 중시하는 새로운 세대가 부상하면서 명품 산업의 DNA, 즉 개인화 서비스가 빠르게 부활하고 있다. 개인화 서비스는 최근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글로벌 공급망의 확대 속에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서비스로 탈바꿈하고 있다. 내 취향을 알아서 파악해 내가 좋아할 만한 동영상 콘텐츠를 추천해 주는 유튜브 알고리즘이나 내가 인터넷에서 어떤 것을 검색했는지를 바탕으로 나에게 필요한 제품을 추천해 주는 서비스에 익숙한 젊은 소비자들은 소비재에 있어서도 취향에 꼭 맞는 제품을 선호한다.

향수와 개인화

필자는 지난해 11월 프랑스 뷰티 브랜드 겔랑 행사에 다녀왔다. 신제품 향수 출시 행사였다. 행사장의 다양한 시설을 구경하던 중 신기한 코너를 보았다. 맞춤 향수였다.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내가 원하는 종류의 향수를 직접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향수를 직접 만드는 서비스 자체는 새롭지 않다. 놀라운 건 겔랑처럼 글로벌 그룹에 소속된 대형 브랜드까지 개인화 서비스를 진행한다는 사실이었다. 맞춤 향수를 주문하는 방법은 보통의 향수 개인화 서비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담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향과 전문가의 상담을 거쳐 향을 섞는다. 향을 고르고 나서 유리병도 개인화할 수 있다. 뚜껑에 붙이는 엠블럼을 고를 수도, 더 화려한 장식을 더할 수도 있다. 주문을 하면 약 6개월 안에 프랑스에서 만든 제품이 한국으로 도착한다. 불가리 역시 2021년 향수 개인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럭셔리 비즈니스의 개인화 서비스는 뷰티 제품 외에도 패션 제품군, 고가 자동차, 고가 시계 등의 귀금속류로까지 점차 확장되는 추세다. 이러한 추세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다. 이는 고객 만족도 증대와 고객 경험 다양화, 옴니채널 경험, 럭셔리 브랜드의 수익성 증대 등 다양한 방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

럭셔리 패션의 개인화

패션 산업 역시 개인화의 경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2018년 구찌는 ‘구찌 DIY’라는 이름의 개인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가방, 지갑, 니트 등에 자기가 원하는 이니셜을 붙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루이뷔통도 같은 해인 2018년부터 ‘나우 유얼즈’라는 이름의 개인 맞춤 서비스를 선보였다. 구찌에 비하면 의류와 가방 등 맞춤 적용이 가능한 품목이 더 많다. 버버리는 자사의 대표 상품인 트렌치코트를 맞출 수 있는 ‘트렌치 비스포크’를 선보였다. 이외에도 디오르, 펜디, 발렌시아가 등 다양한 브랜드에서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를 체험할 수 있다.

패션 브랜드의 개인화 서비스는 확실히 밀레니얼세대를 노린 시도라는 해석이다. 자기 자신의 개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밀레니얼세대의 수요에 따라 명품 브랜드임을 보여주면서도 자신의 기호에 따라 몇 가지 요소를 더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화 서비스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 이전에 대중 패션 브랜드에서 이미 활발히 진행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스니커즈 개인화 서비스다. 나이키, 반스, 뉴발란스 등의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는 이미 개인화 서비스 플랫폼을 구축했다. 미국의 스니커즈 브랜드인 ‘반스’의 대표 모델인 ‘어센틱’의 경우에는 신발 바닥부터 끈까지 8가지 부품의 소재와 색을 바꿀 수 있다. 각 부분마다 최소 9가지, 최대 80가지의 변수가 있고 고객이 원하는 자수나 이미지도 삽입할 수 있으므로 제작 가능한 경우의 수가 엄청나게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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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화된 제품을 수령하기 위해 매장에 갈 필요성이 생긴다는 점은 명품 브랜드의 옴니채널 전략과 부합한다. 개인화 서비스를 받기 위해 매장에 온다면 그만큼 고객이 브랜드를 체험할 여지가 많아진다. 도시 매장의 임대료가 오르고 온라인 매출이 증가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은 면적별 매출을 넘어서는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오프라인 매장은 그 결과 브랜드라는 무형의 멋을 경험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중인데 이것도 개인화 서비스와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개인화를 하는 고객들의 심리도 흥미롭다. 명품을 비롯해 브랜드가 알려진 제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상반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내가 가진 것을 알아 봐줬으면 하는 인정 욕구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과 다른 걸 가져서 달라 보이고 싶은 차별화 욕구다. 내가 가진 게 남에게 인지를 받으려면 충분한 인지도가 있는 물건이어야 한다. 동시에 나는 남과 다른 (명품을 살 정도의) 재력을 가졌으니 이 물건이 너무 흔해도 곤란하다. 개인화 제품이라면 제품도 보여주고 남과 달리 만들 수도 있다. 개인화된 제품이야말로 이러한 소비자의 모순적인 심리를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인 셈이다.

고급 자동차의 개인화 서비스

개인화는 패션 비즈니스만의 경향이 아니다. 양적 성장에 한계를 맞은 21세기에 고부가가치 산업이 돌파구가 될 수 있음은 모든 제조업과 서비스 비즈니스에 적용되는 사실이다. 소비재 업계의 고부가가치를 부여하려면 역시 고급화가 필수적이다. 롤스로이스, 벤틀리, 메르세데스-벤츠 등 자동차 브랜드들이 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 역시 이를 통해 고급화를 추구하고 궁극적으로 대당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여기서 특히 눈여겨볼 브랜드는 ‘포르쉐’다. 포르쉐는 처음부터 높은 수준의 개인화 서비스를 진행한 회사 중 하나다.

포르쉐의 개인화 역사는 브랜드의 시작과 함께한다. 포르쉐가 자리 잡고 문을 열기 시작한 1960년대의 스포츠카는 실제 경주용 차에 가까워서 사이드미러나 와이퍼도 달려 있지 않았다. 하지만 포르쉐는 고객의 요청에 따라 고객이 원하는 별도 부품을 설치해 줬다. 그것이 포르쉐 개인화의 시작이다. 1980년대에는 특별 요청이라는 뜻의 ‘손더분치(sonderwunsch)’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당시 손더분치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조직이 커져서 현재 전 세계의 개인화 고객을 담당하는 ‘포르쉐 익스클루시브팀’이 됐다. 1986년부터 정식 운영되기 시작한 이 팀이 자동차 업계 최초의 ‘개인화 특화 서비스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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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의 개인화는 굉장히 세밀하며 이들의 개인화 체험 자체가 별도의 상품이 된다. 포르쉐를 대표하는 911은 패션 브랜드의 의류처럼 전체 매출은 낮으나 브랜드 이미지를 끌고 가는 핵심 요소다. 그래서 쿠페, 타르가, 컨버터블 등의 지붕 개폐 여부와 후륜구동, 4륜구동의 구동 방식, 터보차저 포함과 불포함 등 아주 다양한 요소를 매만지며 나만의 911을 만들 수 있다. 이 정도의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브랜드 이미지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고객들은 포르쉐 본사가 자리한 슈투트가르트로 직접 가서 내가 원하는 차를 맞춤 주문할 수도 있고, 내 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도 있으며, 유럽에 있다면 차가 출고됐을 때 그 차를 바로 몰고 나갈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고객 체험의 일부이자 포르쉐 판타지를 끌어올리는 기능을 한다.

자동차의 개인화 역시 앞으로 점차 늘어날 것이다. 이미 마이바흐, 벤틀리, 롤스로이스 등 최고 수준의 고급 차 브랜드 역시 포르쉐에 준하는 정도의 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가품에서의 개인화는 ‘이런 게 된다’를 넘어 ‘안 되는 게 없다’ 수준까지 간다. 롤스로이스는 LED 조명을 이용해 밤하늘의 별을 자동차 실내 천장에 재현한 적도 있다.

시계의 개인화

스위스를 필두로 하는 기계식 시계 시장은 고정밀 계측기에서 고가 액세서리로의 리포지셔닝에 완전히 성공했다. 보통 고객은 잘 모르지만 시계 브랜드 중에서는 포르쉐 911 수준의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브랜드가 적지 않다. 케이스 소재, 케이스 모양, 무브먼트 기능, 다이얼의 색, 기타 등등 거의 모든 부분을 고객이 원하는 대로 맞출 수 있다. 돈과 시간이 많이 필요할 뿐이다.

귀금속의 개인화 전략은 결국 VIP 마케팅으로 귀결된다. 백화점처럼 고가 시계나 귀금속 역시 소수의 VIP가 매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가 있다. 중요 고객에게 시계를 무한정 팔 수는 없으니 아주 크고 좋은 걸 파는 것이 서로에게 기분 좋은 일이다. 고객의 편의를 극단적으로 챙기고 고객으로부터의 수요를 흥미로운 도전 과제로 받아들이는 풍조 역시 시계 업계의 유서 깊은 전통이다. 기계식 시계 역사상 가장 비싼 가격으로 경매에서 낙찰된 ‘헨리 그레이브스 시계’가 있다. 뉴욕의 은행가 헨리 그레이브스 주니어가 당시 경마 시간을 맞추기 위해 호화로운 사양을 맞춤 주문한 것이다. 100여 년 전의 개인화 서비스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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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화 서비스는 다양한 취향에 부합해 고객 만족도를 높이면서도 변화하는 소비자 니즈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새로운 마케팅 수단이 됐다. 이에 더불어 개별 제품의 마진을 높여 럭셔리 기업의 생산성에도 기여하는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럭셔리 산업에 내재됐던 전통적 DNA가 다시 현재와 미래를 견인하는 주역이 된 것이다.


박찬용 칼럼니스트 iaminseoul@gmail.com
필자는 서강대 영미문학과를 졸업하고 크로노스, 에스콰이어, 매거진B 등에서 라이프스타일 잡지 에디터로 일했다. 주 담당 분야는 시계, 호텔 등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다. 2018년 『요즘 브랜드』를 냈고 한국의 니치 브랜드에 대한 『한국의 요즘 브랜드』(가제)를 작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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