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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마크 존슨 이노사이트 수석 컨설턴트: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출발점은…

10년 후 그린 청사진이 애플 혁신의 원동력
미래를 다녀오는 ‘퓨처 백’ 사고법 필요

이규열 | 336호 (2022년 0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변혁적인 혁신과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현재의 핵심 사업과 주변 사업에서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분야를 탐색하며 비전을 먼저 세워야 한다. 비전이 없으면 신생 시장에서 후발주자로 전락하거나 혁신을 위한 충분한 시간과 자원을 확보할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인과 조직은 미래보다 현재에 주목하는 현재 편향에 휩쓸리기 쉽다. 현재 편향에서 벗어나 혁신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5∼10년 후 미래에 기업이 되고자 하는 지향점을 먼저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미래부터 현재까지 계획하는 ‘퓨처 백’ 사고법이 필요하다.



2020년 4월 『Lead from the Future: How to Turn Visionary Thinking into Breakthrough Growth (국내 미발행)』를 발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하던 때라 주위에서는 책을 내기 어려운 시기가 아니냐고 걱정을 했다. 이처럼 사람들은 코로나19와 같이 당장에 직면한 위기에 집중한다. 물론 당장의 급한 불을 끄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종식되고 5∼10년 이후 미래의 비즈니스는 어떻게 될지 고민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대한 과제다. 리더라면 위기와 상관없이 언제나 기업이 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정해 기업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그래서 내 책은 오히려 결정적인 시기에 발간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20년 동안 여러 기업과 만나면서 어떻게 변혁적인 혁신과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을지 연구했다. 이 책 역시 회사가 어떻게 하면 실패에서 벗어나 혁신을 도모하고 올바른 전략을 세울 수 있는지를 다뤘다. 특히 현재가 아닌 미래에 주목해 새로운 비전을 세우고, 이 비전을 기준으로 혁신을 이루는 방법을 제시했다. 오늘 강연에서도 미래로부터 혁신을 이끄는 ‘퓨처 백(Future Back)’ 사고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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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그린 청사진이 애플 혁신의 원동력

미래로부터 혁신을 이끄는 데 성공한 기업으로는 애플을 꼽을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12년 만에 복귀한 1996년, 애플은 실적과 주가 모두 바닥을 치며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다. 2001∼2002년에는 닷컴 버블 사태를 맞아 애플뿐 아니라 IT 기업 전반에 위기가 닥쳤다. 애플은 주력 상품인 개인용 컴퓨터(PC)가 범용화되기 시작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거뒀지만 동시에 여러 경쟁 업체가 PC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경쟁력을 잃어갔다.

당시 애플 임원들은 현재가 아니라 10년 후인 2010년을 바라보며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고민했다. 그리고 이때 지금의 애플을 혁신 기업으로 만든 ‘디지털 허브’ 전략이 세워졌다. 당시 가전제품 시장의 전망이 밝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했다. 애플은 당시 PC 제작을 위한 마이크로프로세서1 기술을 갖고 있었다. 이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활용해 PC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전제품을 만들고 제품을 서로 연동해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넘나드는 애플 생태계를 구축하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이후 애플은 아이팟, 아이패드와 같은 새로운 가전제품을 선보였으며 아이튠즈나 앱스토어와 같은 애플 전용 소프트웨어에는 애플리케이션(앱)을 공급하는 개발자들과 이용자들이 몰렸다. PC 제조 업체이던 애플은 하나의 디지털 플랫폼이 된 것이다.

이같이 10년을 내다본 애플의 전략적 판단은 애플을 명실상부한 21세기의 혁신의 아이콘으로 만드는 데 중대한 역할을 했다. 애플은 PC라는 핵심 사업에서 휴대용 가전제품이라는 주변 사업으로 확장을 꾀했다. 그 과정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라는 기존의 핵심 역량을 적극 활용했고, 소프트웨어라는 새로운 역량을 개발하기 위해 투자했다. 애플은 당시의 핵심 사업이던 PC 시장에서 여전히 두각을 드러내고 있고 아이폰, 아이패드, 앱스토어 등 신규 사업에서도 성공을 거두며 비즈니스 포트폴리오의 혁신을 이뤘다.

‘시급함의 횡포’가 혁신을 억압한다

그렇다면 왜 많은 기업은 애플처럼 미래를 앞서 보며 변혁적인 혁신을 이루지 못할까. 미래의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비전이 없으면 다음과 같은 ‘혁신의 실패’를 겪게 된다. 우선 변혁적 혁신을 위한 시도가 너무 늦게 이뤄진다. 휴렛팩커드(HP)는 PC를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을 애플보다 먼저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HP가 PC 시장에 주목하기 시작한 건 애플과 같은 신생 IT 업체가 나타난 이후였다. HP만의 PC를 새로 만들어 시장에서 우위를 거두기에는 이미 신생 업체들이 시장을 선점한 상태였으며 PC 사업에 투자하기 위한 내부 자원도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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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임원들이 혁신을 거두기까지 필요한 시간을 인내하지 못한다. 새로운 기회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혁신을 이루기 위해 조급해진다. 혁신 사업을 이끄는 사내 벤처나 팀이 상부로부터 빠른 성장에 대한 압박을 받으면 기존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모델을 먼저 고민하기 시작하고 이로 인해 미래의 혁신으로부터는 멀어지게 된다. 기존의 핵심 사업과 경쟁하다 싹을 틔우지 못하는 혁신 사업들도 있다. 핵심 사업을 운영하는 팀에서 문제가 생기면 이들 팀의 임원들은 당장 아무 수익도 내지 못하고 예산을 쓰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혁신 사업의 예산을 끌어 쓰게 해달라고 회사에 요구한다. 이처럼 명확한 비전이 없다면 조직이 혁신을 위해 충분한 시간과 자원을 쏟을 명분과 확신 또한 흔들린다.

미래에 주목해야 한다는 말은 매우 당연하게 들리지만 사실 이를 실천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실제 사람들은 심리학적으로 미래에 다가올 가치를 합리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며 현재에 지나치게 큰 비중을 두는 ‘현재 편향(Present bias)’에 휩쓸리기 쉽다. 리더들도 가까운 미래를 생각하며 계획을 세우는 게 옳다고 생각하고 실무진 역시 현재를 기준으로 현장에서 의사결정을 내린다. 급여나 인센티브 역시 1∼3년 정도의 목표를 기준으로 하는 게 일반적이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는 사람들이 업무 시간 중 72%를 회의에 할애한다고 밝혔는데 이러한 회의는 주로 미래를 계획하기보다는 현재의 사업을 운영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조직이 당장 시급한 일에 모든 관심을 쏟는 현상을 ‘시급함의 횡포(Tyranny of the Urgent)’라 부르기도 한다. 조직이 설계되는 과정과 일하는 방식 역시 현재 편향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조직이 의식적으로 미래를 지향하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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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부터 현재까지 마일스톤을 세우는 퓨처 백 사고법

아마존을 창립한 제프 베이조스는 아마존이 혁신을 거둘 수 있던 경쟁 우위 중 하나로 ‘7년 이상을 내다보는 계획’을 꼽으며 장기적으로 비즈니스를 살펴보는 기업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의식적으로 미래에 집중하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편향을 극복하고 미래를 조명해 비전과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퓨처 백 사고법이다. 5∼10년 이후 기업이 되고자 하는 지향점을 세우고, 이에 도달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미래에서부터 현재까지 역순으로 이정표를 세우는 것이다. 퓨처 백 사고법은 불연속적이며 다소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일 수 있다. 백지상태에서 여러 가정과 질문들을 바탕으로 하나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닌 시스템 전체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미국의 제약사 존슨앤드존슨의 연구개발(R&D) 총책임자로 일하던 힐 헤이트(Bill Hait)는 과거 종양 전문의로서 암을 치료하던 의사 출신이다. 그의 환자들은 언제나 그에게 “내가 미리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더라면 예우가 달라졌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왜 미리 암을 발견하지 못했고, 왜 미리 치료를 시작하지 못했는지 아무런 대답도 내놓지 못했다.

2014년 90억 달러 규모의 R&D 예산을 맡게 된 그는 모두에게 통용되는 의학 기법이 아닌 개인별 정밀 의학 기술이 발전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에 확신을 가졌다. 자동차의 경우 엔진이 완전히 고장 나기 전에 고장음이나 기름 유수 등의 위험 신호가 있듯 생명과학의 미래 역시 개개인의 질병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는 데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개인별 정밀 의학을 바탕으로 질병이 손쓸 새 없이 커지기 전에 미리 개입해 병을 막아 ‘질병 없는 미래’를 만드는 것을 2030년까지의 목표로 세우고 이를 전사로 확장했다. 특히 한두 문장으로 이뤄진 일반적인 비전 선언문이 아닌 다음과 같은 내러티브 형식으로 비전을 구성하고 공유해 더욱 효과적으로 구성원들의 공감을 일으킬 수 있었다. 2

우리는 질병이 역사적 유물이 되는 세상을 상상한다. 모든 사람이 기술과 의학의 발전 덕분에 건강한 삶을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생명과학 회사들이 질병을 효과적으로 예방•차단•치료하는 솔루션을 개발하고 활용해야 한다. 의료 기술의 변혁적인 혁신에 대한 우리의 헌신과 인류 건강의 궤도를 바꾸겠다는 사명에 발맞춰 우리는 질병을 제거할 헬스케어 솔루션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비하기 위해 질병에 대한 종합적인 전략을 개발할 것이다. 질병 발생 위험이 높은 사람들을 식별하고, 질병 발생 과정을 모니터링하며, 임상적으로 입증된 치료법을 통해 질병의 발생을 막을 것이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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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많은 기업이 비전이 곧 전략이라 오해하기도 한다. 비전을 세웠으면 전략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라 여긴다. 혹은 전략을 세우고 새로운 비전을 천명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비전은 5년 이상을 내다보며 새로운 게임의 판을 짜기 위해 나아가야 할 목적지가 어디인지 설정하는 과정으로 조직 구성원들을 고무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전략은 1∼3년 정도의 비교적 단기적인 의사결정으로 현재의 경쟁에서 또는 곧 다가올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경쟁에서 어떻게 이길지에 대한 방법을 고민하는 게 핵심이다. 비전을 실행에 옮기는 게 곧 전략이며 새 비전에는 새 전략이 필요하다. 근시안적 사고에서 벗어나 장기적 안목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단기적 전략이 불필요하다는 뜻으로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존슨앤드존슨 역시 질병 없는 미래에 도달하기 위한 전략적 과제들을 2030년부터 2014년까지 역순으로 정리해 나갔다. 예컨대 2014년을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가까운 미래인 2016∼2017년에 대한 계획으로는 폐암과 관련된 이니셔티브를 세웠다. 로봇, 자동화 등 첨단 기술들을 활용하고 전 세계 존슨앤드존슨 파트너들과 협업해 폐암 발생을 효과적으로 예측하고 예방하는 방법을 탐구한 것이다.

지금의 핵심 사업과 주변 사업 중 5∼10년 후 어떤 영역에서 현재 도래하지 않은 혁신을 이룰 수 있을지 예상하고 그에 맞춰 사업 포트폴리오와 자원을 배분해 전략적 과제를 설정하라는 말은 다소 막막하게 여겨질 수 있다. 어떤 사업이 성공할지 예상하는 과정부터가 점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이때 크리스텐슨 교수가 말한 ‘할 일 이론(Jobs To Be Done, JTBD)’이 좋은 나침반이 될 수 있다. 소비자들이 자사의 제품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일들(jobs), 즉 제품을 구입하는 본질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성찰하는 것이다. 맥도날드에서 아침에 밀크셰이크를 사는 진짜 이유는 잠을 쫓기 위함이며, 밀크셰이크의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잠을 더 잘 깨우는 밀크셰이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JTBD가 주는 통찰이다. 애플의 혁신이 성공을 거둔 까닭 역시 수천 곡의 노래를 밖에서도 간편하게 듣고 싶었던 JTBD가 적중했으며 이에 맞춰 비전과 전략을 설정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리더들이 미래를 고민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기적인 성장과 혁신은 미래에서부터 온다는 사실을 명심하며 업무 시간의 80∼90%는 현재의 핵심 사업을 다루더라도 10% 이상은 반드시 미래의 새로운 기회를 고민하는 데 쓰기를 바란다.


마크 존슨 이노사이트 수석 컨설턴트
비즈니스 모델을 중심으로 전략 컨설팅 및 투자를 진행하는 혁신 분야의 전략 전문가다. ‘파괴적 혁신’ 이론 창시자인 고(故)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교수와 함께 컨설팅 기업인 이노사이트(Innosight)를 공동 창업했고, 현재는 수석 파트너로 재직 중이다. 자동차, 헬스케어, 항공우주, 방위, IT, 에너지 및 소비재를 포함한 산업의 여러 기업에서 경영 전략을 자문했으며 싱가포르 정부에 혁신과 기업가정신에 대해 조언했다.

정리=이규열 기자 ky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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