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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사피 바칼 『룬샷』 저자: 황금 기회를 찾기 위한 괴짜 아이디어, 룬샷

실패도 꼼꼼히 돌봐줘야 혁신 싹터
‘모세’ 아닌 ‘정원사형’ 리더가 되라

김윤진 | 336호 (2022년 0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많은 팀, 기업, 그룹은 처음에는 새롭고 엉뚱한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듯하다가 점차 완강히 거부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혁신적인 조직들은 이 흐름을 깨고 변혁적 시대에 살아남는 것일 것일까? 괴짜 아이디어를 살리는 네 가지 테크닉을 소개한다.

1. 모세가 아닌 정원사가 되라
2. 예술가와 병사를 동등하게 사랑하라
3. 좋은 실패를 축하하라
4. 스피드보트와 헬리콥터를 측정하라



급변하는 시장과 기술 발전으로 인해 오늘날의 기업들은 지도자가 되지 않으면 언제든 희생자로 전락할 수 있는 환경에 처해 있다. 시장을 주도하는 서비스가 연일 바뀌고, 누구든 막대한 자본에 접근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증시에 상장 직후 한때 시가총액이 약 100조 원에 달했던 한국의 쿠팡도 이런 변화의 틈에서 급부상한 기업이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의 한복판에서 생존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서킷시티와 베스트바이의 엇갈린 운명

약 50여 년 전,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라는 마을에서 살던 젊은 남성 ‘샘 월즈(Samuel Wurtzel)’는 TV라는 새로운 기술이 출현하고 미국 최초의 방송국이 남부 지역에 생길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는 방송국이 생기면 방영되는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TV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TV를 판매하는 작은 매장을 열었다. 이 예상은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매장은 금세 유명해졌고 매출도 급성장했다. 이렇게 시작된 회사가 바로 1949년 설립된 전자제품 대형 소매 업체 ‘서킷시티’다. 서킷시티는 한때 연 매출 100억 달러를 올리는 거대 기업으로 자리 잡았고 미국 주식시장에서도 상장 후 30년간 좋은 주가 흐름을 보였다. 최고의 실적을 내는 포천 500대 기업 중에서도 1위 기업으로 꼽힐 정도였다. 하지만 그랬던 회사는 한순간에 부도가 났고 모든 자산을 청산한 뒤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렇듯 잘나가던 회사가 나락으로 추락한 까닭은 1990년대에 일어난 두 가지 변화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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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1900년대 소비자 가전제품의 가격이 급격히 하락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저가 전략을 앞세운 한국 등 해외의 가전회사들이 급부상하면서 소비자 가전제품을 판매하던 유통 업체들이 수익을 내기 힘들어졌다. 두 번째, ‘베스트바이’라는 경쟁 매장이 출현했고 순식간에 서킷시티의 매출을 추월해 버렸다. 베스트바이는 시장 가격 하락이라는 변화에 서킷시티보다 빠르게 대응했다. 이 회사는 가장 먼저 시장 반응을 실험했다. 유통 업체가 가전제품만 팔아서는 많은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고 보고 제품에 이상이 생길 때 교환이나 AS를 제공하는 1년짜리 보증 플랜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런 서비스 플랜의 판매는 더 많은 영업사원을 고용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인건비가 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베스트바이는 시장 반응을 실험해보면서 이 플랜을 통해 비용보다 더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실험을 통해 소비자가 직접 진열대에서 원하는 제품을 가지고 와서 계산하게 하는 셀프 체크인 서비스도 도입했다.

서킷시티가 베스트바이와 달랐던 점은 실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990년대 서킷시티의 리더들은 가치 있는 제품을 판매하기만 하면 AS가 없더라도, 영업사원의 도움이 없더라도 소비자들이 기꺼이 주머니를 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 테스트 없이 이런 짐작만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했다. 마진이 낮은 음악 CD, DVD 등 제품군을 판매할지 결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서킷시티는 이런 저마진 제품이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진열대에 추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베스트바이는 이 역시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테스트 결과 저마진 제품을 추가하면 이를 좋아하는 10대들이 부모님을 끌고 매장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렇게 매장을 찾은 부모님이 더 비싼 고마진 제품을 아이들을 위해 구매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값싼 제품까지 판매한 것이 이익 창출에 더 도움이 된 셈이다. 이렇듯 실험 기반의 의사결정은 두 회사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오늘날 베스트바이는 매출 470억 달러를 올리는 포천 73위 기업이 된 데 반해 서킷시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이유다.

이처럼 경쟁사보다 오래 살아남은 탁월한 기업들은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업이 라이프사이클에 따라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시장을 찾고, 수요가 어디에 있는지 찾기 위한 테스트를 진행해야 한다. 두 번째, 핵심 사업의 규모를 잘 키우고, 파이프라인에 있는 고객의 이탈을 줄이고, 고객 한 명당 수익을 어떻게 높일지 고민해야 한다. 보통 두 번째 단계까지만 잘해도 업계 1∼2위로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가기에 앞서 여기에서 멈춘다. 소수의 기업, 국가만이 가는 이 세 번째가 바로 혁신가 단계다. 이 단계로 진화하려면 새로운 아이디어, 괴짜 아이디어를 잘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기업이 그러지 못하고 실패한다.

혁신을 방해하는 공통적인 함정

대개 기업들은 몇 가지 공통적인 함정들에 빠져 있다. 첫째, 혁신할 때 어디에 주력해야 할지 초점을 잘 맞추지 못한다. 스파게티 면이 익었는지 보기 위해 벽에 던져 볼 때 비스듬히 나선형으로 던지면 붙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기업이 일단 “어떤 일이 생기는지 두고 볼까?” 하면서 방향도 없이 아무렇게 던지고 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둘째, 좀비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누군가가 낸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박수를 쳐주고 하루 이틀 정도 해보기로 했다가 곧 옷장에 집어넣고 문을 꽁꽁 닫아버린다. 이렇게 1∼2년간 옷장 밖으로 나오지 못하다 보면 아이디어는 결국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경쟁사의 누군가가 같은 아이디어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성공시켰을 때 회사는 죽고 만다. 셋째, 성급하게 몸집 불리기를 한다. 시기상조인 신사업의 규모를 너무 키워버리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 세 가지보다 치명적이면서도 기업들이 자주 범하는 실수는 바로 잘못된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다. 기업을 망하게 하는 요소는 조직‘문화’가 아니라 ‘구조’다. 많은 기업은 조직문화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사실 문화는 잘 바뀌지 않는다. 이미 정립된 하나의 행동 패턴이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조직구조를 올바르게 세워야 행동이나 기타 패턴이 그에 맞게 바뀐다. 가령 똑같은 분자구조를 가진 물이라고 해도 온도에 따라 액체가 될 수도 있고 냉동의 고체가 될 수도 있다. 물 분자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여기저기 떠다니는지, 아니면 가만히 있는지 등은 액체 상태일 때와 고체 상태일 때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이 분자한테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제발 행동을 바꾸라고 소리를 쳐도, 분자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음악을 들려줘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물 분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은 온도를 바꾸는 것뿐이다.

마찬가지로, 조직에서도 구성원들의 문화를 바꾸려 아무리 시도해도 온도를 바꾸는 시스템적인 구조 변화 없이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측정을 하고, 인센티브를 줘야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여기서 잘못된 구조의 예를 한번 살펴보자. 첫 번째 유형은 바로 코어(핵심) 아이디어가 목이 졸려서 숨을 못 쉬는 경우다. 어떤 직원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해 보기 위해 기술을 가진 직원을 고용하거나 관련 협력사에 돈을 지불하고 싶다고 해보자. 그래서 IT 부서에 찾아갔더니 아이디어를 직접 구현하려면 9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인사부에 찾아갔더니 직원을 고용하려면 약 8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법무팀으로 갔더니 새로운 협력사 등록 절차에 약 1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만약 이렇게 허탕을 치는 경험이 반복된다면 제아무리 참신한 아이디어일지라도 시작도 전에 버려지고 말 것이다. 코어가 숨이 막혀 버리면 결국 죽는다. 이처럼 코어를 무시하고 홀대하고 버려지게 하는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아이디어가 살아남기 힘들다.

미국 제록스(Xerox) 사례가 이 코어를 살리지 못한 대표적인 예다. 제록스는 애플이나 IBM보다도 먼저 개인용 컴퓨터(PC) 기술을 개발했지만 제품을 한 대도 팔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많은 사람은 이 같은 실패를 두고 경영진의 무능을 탓한다. 왜 그렇게 멋진 PC를 개발하고도 출시하지 않았냐고 리더를 바보라 칭한다. 하지만 처음 제록스 그룹을 만든 것도, 새로운 기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과학자를 고용한 것도 모두 같은 경영진이었다. 이들이 실패한 것은 바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 가지 치명적인 잘못을 범했기 때문이다. 바로 구조를 바르게 정립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영업사원들은 월급을 받고 사무실에 있는 제품을 판매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당연히 PC라는 신제품이 무엇인지 이해할 리 없었다. 마찬가지로 고객들도 이 신제품이 어디에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회사는 이 사원들의 판매와 고객들의 구매를 유도할 인센티브를 전혀 설계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영업사원들 입장에서는 컴퓨터가 자주 고장만 나는 골칫덩이였고, 복사기, 타자기가 아닌 컴퓨터를 팔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제품이 빛을 볼 수 없었던 이유다.

초점 없는 혁신, 좀비 프로젝트, 잘못된 구조 등 지금까지 언급된 함정에서 빠져나와 조직이 3단계의 진화 과정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소위 말하는 ‘혁신 운영체계’가 필요하다. 고객 파이프라인을 관리하는 데 적용되는 법칙을 아이디어 파이프라인 관리에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우선 사업의 초점을 잘 맞추지 못하는 함정을 피해 가기 위해서는 기업이 혁신할 수 있는 스무 가지 중에서 어떤 17가지를 혁신하지 않을지 결정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쳐야만 조직이 나머지 세 가지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사실 무엇을 할지 선택하는 것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선택하는 게 훨씬 중요할 수 있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 선택하지 못한다면 전략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음으로 실험을 너무 지체해서 옷장 속에 묵혀 두거나 너무 성급하게 큰 규모로 실행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아이디어를 테스트해봐야 한다. 1년에 100만 달러가 아니라 하루에 100달러로, 일주일에 500달러로 아이디어를 테스트할 방법은 없을지 계속 고민해야 한다. 이런 빠르고 잦은 실험을 통해 구성원의 의견이나 직감보다 ‘데이터’가 의사결정의 중요한 근거로 여겨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인수합병(M&A) 등을 고민할 때도 큰 비용을 들이는 ‘빅 베트(big bet)’보다는 ‘스몰 베트(small bet)’부터 시작해 점차 확대해야 한다. 갑자기 대규모 공장을 인수하거나 기업의 특정 부분을 매각해버리는 등의 결정을 섣불리 내려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빅 베트와 스몰 베트가 같은 분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어떤 분야를 혁신하고 확대할 것인지를 정할 때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인수하기에 앞서 돌다리를 한 번 더 두들겨 보고, 투자하기에 앞서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즉 공장이나 큰 사업부를 인수하기 전에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험을 반드시 해봐야 한다. 두 개 기업이 만날 때는 인력을 어떻게 통합 관리할 것인지, 통합 이후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실제로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빅테크에는 이런 비즈니스 관련 실험만 전담으로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웹 기반 기업은 물론이고 소매(리테일)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렇게 평생 가설을 실험만 하는 전문가한테 물어봐도 성공률이 3번 중에 1번, 4번 중에 1번꼴에 불과하다고 응답한다. 전 세계 일류 기업에 다니는 전문가들조차 고객에 대해 세우는 회사의 가설이 70∼80%는 빗나간다고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 고객에 대한 지레짐작을 따른 서킷시티는 망하고 데이터를 믿은 베스트바이가 살아남은 이유를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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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아이디어를 살리는 네 가지 테크닉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이런 함정을 극복한 뒤 기업이 혁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좋은 소식은 변혁은 언제나 가능하다는 것이고, 나쁜 소식은 변혁을 위한 마술봉은 없다는 것이다. 즉각적으로 혁신을 불러올 방법은 없다.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조직의 리더가 명심해야 할 몇 가지 테크닉을 소개한다. 조직 내의 혁신 아이디어를 살리기 위한 네 가지 원칙을 함께 살펴보겠다.

1) 모세가 아닌 정원사가 되라

첫 번째 원칙은 바로 리더가 모세가 아닌 정원사로서 조직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리더 혹은 관리자가 됐을 때 예언자 모세가 되기보다는 정원사가 돼야 한다. 예지력 있는 혁신가인 성경 속 모세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라. 산 위에 홀로 서서 성스러운 지팡이를 들고 “여기가 선택된 땅이다” “여기서 반드시 성공을 할 것이다” “홍해를 갈라라”라고 말하는 리더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런데 이런 모세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가진 리더는 비즈니스 세계에선 위험하다. 이런 리더십은 이야기책이나 잡지 책, 단순한 온라인 기사에나 등장할 법한 것으로 실전에서는 먹히지 않는다.

진정으로 위대한 리더는 정원사처럼 섬세하게 땅을 함께 일구고 관리하는 사람이다. 조직이 균형과 소통을 제대로 유지하려면 내부의 장벽을 극복하도록 도와줄 손길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때 어느 모세 보좌진의 손길보다도 부드러운 정원사의 손길이 더 유용할 수 있다. 아이디어에 너무 힘을 줘서 추상적인 명령만을 내려서도 안 되고, 힘을 너무 안 줘서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아서도 안 된다. 두 가지 경우 모두 혁신적인 기술을 실험실에서 썩히기 쉽다. 획기적인 괴짜 아이디어인 ‘룬샷’과 기존에 돈을 벌어주던 사업인 ‘프랜차이즈’ 양쪽을 모두 잘 돌보며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압도하지 못하도록 양쪽 모두를 잘 돌보는 정원사가 필요하다. 조직의 온도를 0도에 맞추고 액체 상태의 물과 고체 상태의 얼음이 공존하는 동적 평형 상태가 유지되도록 지켜보는 게 리더의 역할이다.

2) 예술가와 병사를 동등하게 사랑하라

두 번째 원칙은 어느 조직에나 있는 예술가와 병사를 동등하게 사랑하라는 것이다. 조직 내에는 창의적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일구고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사람인 ‘예술가’와 핵심 비즈니스에 집중하는 ‘병사’가 있다. 병사들은 항상 적시에 주어진 예산안에 맞도록 품질을 관리하고 일관성 있는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한다. 그런데 문제는 예술가와 병사들이 대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싫어한다는 점이다. 돈을 버는 사람들은 대체로 돈을 쓰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반대 역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개인적으로 잘 어울리지도 않고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한다. 예술가와 병사는 리스크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다르다. 예술가는 리스크를 환영할 뿐만 아니라 이를 끝까지 안고 한계점까지 끌고 간다. 10개의 프로젝트 중 9개가 실패하더라도 한 개만 성공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정말 미친 아이디어, 모두를 기절하게 만들고, 누구나 효과가 없다고 고개를 가로젓는 것들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이들이 예술가다. 하지만 병사는 리스크를 없애려고 한다. 낙하산을 타고 떨어질 때 오차가 존재해서는 안 되듯이 말이다. 비행기를 제조하는 직원이 10개 아이디어를 일단 실험해보면서 하늘에 띄운 비행기 10대 중 9대가 떨어지도록 뒷짐 져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직원은 바로 해고를 당할 것이다. 비행기는 항상 100% 제대로 작동해서 하늘을 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차이로 인해 병사의 업무는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고, 예술가의 일은 리스크를 높이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서로 싫어하는 게 당연하다.

사실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두 그룹 간 긴장 관계를 적극 권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획기적 아이디어에 더 이상 흥분하지 않고, 병사들이 계속해서 품질의 결함을 찾아내면서 고치지 않는다면 조직에 큰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신호다. 두 가지 모두 필요하다. 예술가와 병사의 공존이 중요한 이유는 모든 기업에서 두 가지 유형의 프로젝트가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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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떤 회사가 DVD를 판매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DVD 판매를 중단하고 온라인으로 영화를 중계한다고 하면 투자자들은 아마도 미친 아이디어라고 묵살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무시당한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긴 회사가 바로 ‘넷플릭스’다. 이 회사는 이제 수천억 달러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거인이 됐다. 이 사례만 봐도 예술가와 병사 중 누가 회사의 성장에 영향을 주는지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보통 작은 기업들은 미친 아이디어가 있으면 힘을 합쳐 함께 키우려고 하고 구성원들이 다 같이 팔을 걷어붙이고 이 씨앗을 배양해보자고 덤벼든다. 하지만 대기업은 그러기 쉽지 않고, 괴짜들을 무시하고 홀대한다. 회사 규모가 커지게 되면 괴짜 아이디어인 ‘룬샷’이 살아남지 못한다. 그리고 직원들은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흥분하기보단 정치나 승진 이야기를 한다. 물이 액체에서 고체가 되도록 온도가 바뀌는 것이다. 회사가 냉동 상태로 얼어붙게 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회사가 얼어붙지 않고 룬샷을 잘 배양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일각에서는 조직 구성원의 창의성을 향상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바보 같은 소리다. 기업이 혁신을 못하는 이유는 창의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열 명의 사람을 방 안에 넣고 한 시간 동안 대화를 하게 하면 100가지 정도의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온다. 이 중 분명 몇 가지는 탁월하게 멋진 아이디어로 구현될 만한 잠재력이 있다. 문제는 이 아이디어가 행동으로 옮겨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예술가가 낸 아이디어는 병사가 반대한다. 사실 모두 자신들의 인센티브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뿐이고, 병사들도 핵심 비즈니스에서 나름의 성과 지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다. 그럼에도 예술가는 대체로 예술가를 편애하고, 병사는 대체로 병사를 편애한다. 룬샷을 육성하면서도 기존에 잘되고 있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망하게 하지 않으려면 둘의 긴장이 유지돼야 한다.

위대한 리더의 첫 번째 역할은 실패를 관리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실패를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예술가와 병사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고, 이 두 집단을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 가령 스티브 잡스가 처음 PC인 매킨토시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창했을 때 애플은 이 아이디어를 미쳤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기존 코어 비즈니스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잡스처럼 아이디어를 내놓는 예술가들을 ‘바보’ ‘광대’라 칭했다. 결국엔 이 광대라 불리던 사람들이 회사 매출의 95%를 창출하게 됐지만 당시에는 보이지 않는 군사분계령이 존재했을 정도로 예술가 간, 병사 간 반목이 극심했다. 첨예한 갈등 상황에서 출시된 매킨토시는 느린 속도, 비싼 가격, 과열 등의 문제로 인해 실패를 겪었고, 이후 잡스는 본인이 창업한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12년이 흘러 스티브 잡스가 다시 돌아온 뒤 애플은 시가총액 2조 달러의 회사가 됐다. 그 사이에 무엇이 달라진 걸까?

복귀한 스티브 잡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천재적인 예술가인 조니 아이브를 승진시키는 일이었다. 다음으로 한 일은 지금 애플의 CEO인 팀 쿡을 고용하는 일이었다. 애플에 영입되기 전 다니던 회사에서 팀 쿡의 별명은 공포의 지배자이자 훈족 마지막 왕의 이름을 딴 ‘아틸라 더 훈(Atilla the Hun)’이었다. 이런 별명이 붙은 까닭은 그가 재고를 비롯해 모든 걸 관리하는 병사형 리더였기 때문이다. 만약 조니 아이브가 아름다운 아이패드 디자인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팀 쿡이 재고를 줄이고 기기 생산 공정을 단축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애플은 없었을 것이다. 이를 종합해 보면 스티브 잡스는 모세의 리더십을 보이는 대신 정원사로서 조직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힘썼다. 예술가도 사랑하고, 병사도 사랑하면서 동적 평형을 유지했으며 자신의 타고난 성향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많은 경우 리더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에만 치중하거나 무조건 영업이나 판매 실적, 매출 등 숫자에 집착한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다른 이 두 편을 평등하게 사랑하지 않고선 조직은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

3) 좋은 실패를 축하하라

회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실패는 바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그냥 무시하는 것, 그리고 두려움을 갖는 것이다. 만약 리더가 성공적인 결과만을 계속 칭찬한다면 아무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도 좋은 실패라고 말하고 칭찬해야 한다. 물론 실패는 늘 부끄럽고 망신스럽기 마련이다. 오토바이 제조 회사인 할리데이비슨이 향수를 만든 적이 있었다. 오토바이와 향수, 이 두 가지는 결국 공존하지 못했고 야심 찬 신제품은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이런 실패는 도처에 널려 있다.

아마존도 한때 휴대폰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파이어폰을 출시하려 시도했다. 실제 홍보 문구까지 완성하고 출시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 파이어폰은 결국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해 아마존의 모든 디바이스가 개발되는 미국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아마존 연구개발(R&D) 센터를 방문하고 나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바로 파이어폰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제품을 만들었던 핵심 엔지니어가 승진했고 보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파이어폰 개발 그룹 전체의 인센티브가 증가했다.

상품이 출시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상이 오히려 늘어난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존은 가치 있는 두 가지 교훈을 시장에서 얻었다. 첫째, 소비자에게 휴대폰은 일종의 사치품이었는데 아마존은 저렴한 제품을 통해 저가 플레이를 하려 했다는 점이다. 파이어폰 출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마존은 이 사실을 알게 됐고, 이는 향후 아마존이 제품과 브랜드를 결합하는 데 반복적으로 중요한 지침이 됐다. 이처럼 책으로 얻는 교훈과 이런 코어 비즈니스 경험으로 얻는 교훈은 완전히 다르다. 둘째, 가장 중요한 기술(테크놀로지)을 얻었다. 아마존은 파이어폰을 개발하면서 전화기에 핵심적으로 들어가는 음성 인식 기술을 고도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기술 덕분에 훗날 아마존의 음성 인식 서비스인 알렉사(Alexa)가 탄생했다. 그리고 알렉사는 그 어떤 전자기기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회사에 안겨줬다.

이처럼 좋은 실패를 축하해주고 격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좋은 실패를 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구체적인 가설을 가지고 실험해야 한다. 무작정 한번 해보는 게 아니라 x라는 제품을 y라는 고객군에게 특정 시점에, 특정 채널을 통해 제공할 경우 ‘2%가 살 것이다’ ‘10%가 살 것이다’ ‘15%가 살 것이다’라는 가설을 수립한 뒤 실험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둘째, 아주 신속하고 저렴한 실험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 셋째, 훌륭한 실행 계획을 짜고 이를 엄격하게 따라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마존이 파이어폰을 통해 그랬듯이 실험을 거쳐 중요한 학습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이렇듯 최고 정점에 도달한 혁신가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자체를 줄이고 이 실패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에 집중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갈수록 더 크게 실패하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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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스피드보트와 헬리콥터를 측정하라

최고경영진은 때때로 회사가 혁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막상 “우리가 잘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라고 물으면 “느낌이 안 좋아서”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느낌을 과연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만약 회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지난 분기 매출이 얼마인가?”라고 물었을 때 “모른다”고 답하면 용납할 수 있을까? 결국 모든 매니저는 일을 시작하고 첫째 날 ‘측정하지 못하는 것은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스피드보트와 헬리콥터를 측정하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예를 들어보자. 15년 전 구글은 온라인 검색 시장에서 88%의 점유율을 확보했다. 구글이란 선박이 바다를 항해하면서 항로를 완전히 독점한 셈이다. 그런데 이때 어떤 젊은 사람이 문자 검색도 좋지만 그림을 검색하고 싶다고 제안을 한다. 이런 게 ‘스피드보트’다. 약간의 리스크는 있지만 큰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은 아니고 방향을 틀었다가 잘 안 되면 기존 선박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다음 젊은 사람이 “구글이 검색 회사인데 e메일도 검색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e메일 애플리케이션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이런 프로젝트는 ‘헬리콥터’다. 아예 노선을 변경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다른 젊은 사람이 “사람들이 나중에 휴대폰으로도 검색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스마트폰에 적합한 운영체계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이것 역시도 헬리콥터다. 이렇게 세상에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e메일인 G메일과 휴대폰 운영체계인 구글 안드로이드다.

결국 스피드보트와 헬리콥터를 측정하라는 것은 회사의 예산과 인력의 몇 퍼센트가 핵심 선박에 들어가 있는지, 스피드보트와 헬리콥터에는 각각 얼마가 배정돼 있는지를 알라는 의미다. 그리고 리더는 이를 반드시 공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즉, 모든 아이디어는 측정을 할 수 있어야 하고, 타깃이 있어야 하고, 시각화돼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조직 내에서 정확하게 실패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고객에게 제공하는 제품에서 실패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객의 문을 똑똑 두드리면서 “당신의 TV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막상 고객은 토스터를 주문했다면 치명적인 실수일 수밖에 없다. 이런 핵심적인 선박에 있어서 실수가 나오거나 실패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다른 헬리콥터에서 실패하는 것은 상관이 없다.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안 돼도 괜찮다는 의미다.

만약 회사가 공격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지 않는다면 결국 경쟁사가 하게 될 것이다. 뒤늦게 미친 아이디어를 실행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달을 즈음에는 이미 경쟁사의 총알이 머릿속을 공격해오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거버넌스와 경영진을 분리해야 한다. 거버넌스란 룬샷에 자원을 어느 정도 투자할지, 1%, 8%, 12%든 정답은 없지만 비율을 정하는 일이다. 이사회에서는 이렇게 우리가 가진 프로파일 중 몇 퍼센트를 리스크 테이킹에 쓰고 미친 아이디어에 할당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실험을 하고, 이 미친 아이디어를 초록색으로 칠할지, 빨간색으로 칠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경영진의 몫이다. 이사회는 초록, 빨강을 정하는 것처럼 작은 아이디어에 매몰돼 있으면 안 되고 경영진이 자유롭게 실험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리스크를 정량화하고 본 선박과 격리하는 데만 집중하면 된다. 10%를 리스크에 투입한다면 회사는 10%만 위험에 노출된다. 그리고 현장에서 사람들이 보다 자유롭게 위험을 찾아 나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측정해야만 관리된다는 사실이다. 무언가를 측정하고 추적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이를 중요하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때 중요한 것은 제품 혁신뿐 아니라 전략 혁신에 힘써야 한다는 점이다. 가령 제트기 제조에 집착했던 제품 위주의 기업 ‘팬암(PANAM)’이 망했고 프리퀀트 고객을 대상으로 마일리지 프로그램을 만들고 무료 예약 시스템을 제공한 ‘아메리칸 에어라인’이 생존할 수 있었던 까닭도 전략을 혁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전략은 실험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폴더폰은 아주 훌륭한 스피드보트다. 삼성전자가 전 세계 톱 5 브랜드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전략 혁신을 잘했기 때문이다. 1974년 삼성전자는 전략적으로 미친 아이디어를 도입하며 반도체 회사를 인수했다. 다른 휴대폰 제조 업체와 다르게 전자에 깊이 파고들었고 이는 삼성이 가진 경쟁 우위의 원천이 됐다. 이는 제품 전략만으로는 부족하며 반드시 전략 혁신을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팬데믹으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황금 같은 기회들을 포착한다면 이 난관을 뚫고 더 건강하고 견실하게 회사를 복구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4가지 원칙대로 1) 모세가 아닌 정원사가 돼 조직을 이끌고 2) 병사와 예술가를 동등하게 사랑하고 3) 좋은 실패를 축하하고 4) 스피드보트와 헬리콥터를 측정한다면 더 높은 수준의 진화 단계로 나아가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피 바칼 『룬샷』의 저자
아마존 52주 베스트셀러 『룬샷』의 저자인 사피 바칼 박사는 1988년 하버드대를 최우등으로 졸업(Summa cum laude)하고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국립과학재단 학술상을 받는 등 과학자로서 큰 성과를 남겼다. 1998년 경영인으로 변신해 맥킨지앤드컴퍼니 컨설턴트로 근무했으며 2001년 암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테크 기업 신타제약을 공동 설립했다.

정리=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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