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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9. 지배구조 개혁 ‘유통기한’ 임박한 남양유업

경영 감시할 이사회의 절반이 가족
자본시장의 신뢰 되찾을 날은 언제…

김진욱 | 335호 (2021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올해 불가리스 과대광고 창업자 가족의 지분 매각 문제 등 여러 물의를 일으킨 남양유업은 홍원식 회장 일가가 회사 지분의 절반 이상을 보유한 가족 기업으로서 ‘지배주주-비지배주주’ 간의 대리인 문제에 취약하다. 대표이사는 지난 4년간 4차례 바뀌었으며 지난 10월 대표이사에서 사임한 이광범 씨의 직위는 상무로서 제대로 된 경영권을 행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사회 역시 홍 회장 가족이 절반의 자리를 차지하며 감시/감독 역할을 해야 하는 사외이사와 감사가 재무/회계 전문성을 지녔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기업지배권시장 역시 홍 회장 가족의 높은 소유 지분 때문에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남양스럽다는 말 들어보셨어요?”

2021년 10월5일 국회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에게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던진 질문이다. 이어 홍 의원은 “회사를 팔려고 했다가 말았다가 임의대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가 화두인 시대다. 투자자 관점에서 환경, 사회, 지배구조와 관련된 리스크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남양유업은 ESG 관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다. 경쟁사인 매일유업에 대한 비방 댓글 사주 혐의는 마케팅 윤리 위반과 소비자공정거래법 저해에 해당하며 불가리스 효능에 대한 과대 홍보는 제품 안전과 관련된 소비자 보호를 저해하는 행위이다. 이는 사회(S) 관점에서 리스크 관리에 심대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경영진의 잇단 독단적 의사결정과 공시 누락, 공시 정정 등은 폐쇄적 경영 관리 체계, 내부 통제가 잘 작용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지배구조(G) 관점의 리스크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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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의 소유 구조와 대리인 문제

경제학 이론은 의사결정 권한을 위임하는 주인(principal)과 이를 위임받은 대리인(agent) 사이에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가 발생한다고 한다. 정보 우위에 있는 대리인은 주인의 부를 희생하며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려 한다. 기업의 대리인 문제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첫 번째 유형의 대리인 문제는 기업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서 발생한다. 기업의 주인인 주주와 기업의 대리인인 경영자 사이에 정보 비대칭이 존재하는 가운데 경영자가 주주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도록 행동하는 대신 자신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은 지배주주와 비지배주주 간의 갈등에서 발생한다. 소수의 지배주주가 지배력을 이용해 비지배주주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한편 제한된 경제적 권리 이상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남양유업은 코스피 상장사임에도 불구하고 ‘홍원식 왕국’으로 불린다. 홍원식 회장 개인의 지분만 51.68%로 기업에 대해 절대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이윤경(처) 0.89%, 홍명식(형제) 0.45%, 홍승의(손자) 0.06% 지분까지 더하면 홍원식 회장 가족의 지분은 53.08%(2021년 9월30일 분기보고서 기준)에 이른다. 경영학 연구들이 일컫는 전형적인 ‘가족 기업’에 해당한다. 가족 기업은 창업자 가족이 상당한 수준의 주식을 소유하거나 가족 구성원이 경영진이나 이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분산투자 대신 가족 기업의 주식에 집중된 포트폴리오를 가진 창업자 가족은 소액주주에 비해 경영자를 감시할 강력한 유인을 가지며 기업 활동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경영자를 감독할 능력도 갖추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기업을 후대에 물려줄 자산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기업 활동을 장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본다.

가족 기업에서 첫 번째 유형의 대리인 문제는 심각하지 않다. 그러나 가족 기업이 안고 있는 문제는 따로 존재한다. 기업을 통제할 수 있을 만큼 주식을 소유한 창업자 가족은 자신의 사적 이익을 얻기 위해 비지배주주의 부를 침해할 유인을 가진다. 예를 들어 30% 지분을 가진 창업자 가족이 기업 자산을 사취해 100의 이익을 누린다면 이들이 부담하는 비용은 30에 불과하므로 비지배주주의 부가 지배주주에게로 실제로 이전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또한 창업자 가족은 가족 구성원을 경영진으로 내세울 뿐 아니라 이사회에까지 포진시켜 이사회의 감독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창업자 가족과 비지배주주 간의 정보 비대칭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더욱이 성문법(civil law) 체계를 채택한 우리나라의 경우 불문법(common law) 계통의 국가들에 비해 투자자 보호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남양유업과 같은 한국의 가족 기업에서는 두 번째 유형의 대리인 문제가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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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의 지배구조 메커니즘

경영학자들은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배구조 메커니즘으로 경영진 동기부여, 이사회, 내부 감사기구, 기업지배권시장 등을 꼽는다. 남양유업의 지배구조 메커니즘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경영진 현재 남양유업은 김승언 수석 본부장을 경영지배인으로 선임해 경영 정상화를 위한 비상 경영 체제에 나섰다. 그러나 46세 젊은 리더의 실질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이는 김 본부장이 대표적인 ‘남양맨’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홍원식 회장 일가가 외부 수혈 대신 젊은 내부인을 내세워 권한은 주지 않고 책임만 지는 ‘아바타’ 역할을 시켰다는 데 더 무게를 싣는다.

남양유업의 사업보고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남양유업의 경영진에 대해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첫째, 2021년 10월29일 대표이사에서 사임한 이광범 씨의 직위는 ‘상무’다. 대외적으로 기업을 대표하고 업무 집행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는 대표이사가 상무의 직위로 제대로 권한을 수행할 수 있었을까. 홍원식 회장이 이끄는 남양유업의 임원도에서 사장과 부사장은 찾아보기 어려운 직위이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대표이사 직책을 수행했던 박건호 씨가 남양유업의 유일한 부사장이었고 사장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경쟁사인 매일유업의 김선희 대표이사가 총괄 사장의 직위를 가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둘째, 남양유업은 최근 유례없이 잦은 대표이사 잔혹사를 겪고 있다. 2018년 1월1일 대표이사로 선임된 유용준 씨는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2018년 1월26일 사임했고, 후임자인 이정인 씨는 2018년 12월31일에 사임했다. 2019년에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광범 씨도 2021년 5월3일에 사임을 발표했다. 지난 4년 동안 네 번이나 발생한 경영자 교체는 기업의 영업 활동, 투자 활동, 재무 활동 등 경영 활동 전반에 안정성을 해치는 중요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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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숱한 대표이사 교체에도 회장직을 굳건히 유지했던 홍 회장에 대한 보상 체계에도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는 2013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연간 5억 원 이상의 보수를 받는 상장사의 등기임원은 의무적으로 보수를 공개하고 있다. 남양유업의 경우 홍 회장이 유일한 대상자이다. 경제학에서는 경영자 보상에서 (1) 보상의 수준, (2) 계약 구성 요소, (3) 성과 보상 민감도(성과의 증가가 보상의 증가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의 세 가지 부분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홍 회장은 2014년 이후 매년 15억 원 이상의 보상을 받고 있다. 보상 금액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보상 계약의 구성이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홍 회장의 보상은 전액 급여로 지급되며 상여, 주식매수선택권 행사 이익, 기타 근로소득 금액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급여 산정 기준 또한 체계적이지 않다. 이는 남양유업이 당면한 대리인 문제와 경영자에 대한 유인설계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보상 계약임을 보여준다. 남양유업의 경영 성과와 연동되지 않은 회장에 대한 보상은 성과 보상 민감도가 매우 낮음을 입증한다. 2020년 남양유업은 723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는데도 홍 회장은 15억 원가량의 보상을 챙겼다.

넷째, 남양유업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창업자 가족의 경영 능력에 대한 평가이다. 창업주 고(故) 홍두영 명예회장은 한국전쟁 직후 아기들에게 제대로 먹일 것이 없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에 남양유업을 창업했고 이후 유가공 업계를 선도했다. 2세인 홍원식 회장은 검소하고 소탈한 경영과 제품 개발 능력으로 한때 주목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조직 정비보다는 제품 개발에만 몰두했던 그는 내부 인재 양성에 소홀했고, 견제도 조력도 받지 않는 독단적 가족 경영을 구가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재임 기간 동안 여러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했다. 2003년 남양유업 공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건설사로부터 13억 원의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또한 브로커에게 1500만 원을 주고 장남 홍진석 씨의 병역을 회피하려다 병역 비리로 불구속되기도 했다. 장남 홍진석 전 상무도 회삿돈으로 고급 차량을 임대해 개인 용도로 유용했다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미국 조지타운대 등 공동 연구팀1 은 위법 경영자들의 기업은 법규 위반 경력이 없는 경영자들의 기업에 비해 분식회계를 자행할 확률이 647% 더 높다고 보고했다. 즉 경영자들의 사생활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가치 체계 및 인지 양식은 기업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사회 창업자 가족들이 50%가 넘는 소유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경영에도 직접 참여하고 있는 남양유업은 심각한 ‘지배주주-비지배주주’ 간의 대리인 문제를 겪고 있다. 특히 남양유업의 경우 기업을 통제하고 있는 창업자 가족들의 막대한 의결권 때문에 적대적 인수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또한 외국인 투자자를 비롯한 기관투자가의 지분 비율이 낮아 이들의 감시 감독 기능은 미약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지배주주들이 의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배구조 메커니즘은 이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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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는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경영자의 경영 활동을 감시 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해 주주 등의 이해관계자를 보호하는 기업 운영의 핵심 기구이다. 이사회 구성원 중에서 사외이사는 기업의 상무(常務)에 종사하지 않는 외부 인사를 일컫는다. 이들은 독립적인 위치에서 경영자의 직무 수행에 대한 감시와 감독 직무를 수행하며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경영자로부터 독립적인 견지를 유지하는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남양유업의 최근 분기보고서(2021년 9월30일)에 따르면 이사회는 총 6인으로 구성돼 있다. 우선 사내이사부터 살펴보면 4명의 사내이사 가운데 3명이 창업자 가족이다. 최대주주 본인인 홍원식 회장, 홍 회장의 모친인 지송죽 여사, 그리고 홍 회장의 장남인 홍진석 이사가 그들이다. 창업자 가족의 경영을 감시할 이사회의 절반이 가족 자신들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내이사 중 한 명인 지송죽 이사의 경영 활동 참여이다. 지 이사는 등기이사직을 열 차례 연임하며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내이사로 재직했는데 이사회 참석 여부가 공시된 모든 자료에서 출석률이 0%임이 확인됐다. 남양유업의 공시 자료는 지 이사의 선임 배경에 대해 그 어떤 설명도 하지 않고 있다.

경영자의 직무 수행을 감독하고 대주주의 독단 경영과 전횡을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사외이사는 양 모 이사와 이 모 이사 2인으로 구성돼 있다. 사외이사를 평가하는 기준은 활동성과 전문성이다. 2018년 이후 2 개최된 총 45회의 이사회에서 양 이사는 35회 참석(참석률 78%), 이 이사는 45회 참석(참석률 100%)했다. 외면적으로 사외이사의 활동성에는 문제가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사외이사들의 의안 찬성률을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양 이사는 100%, 이 이사는 98%의 의안 찬성률을 보였다. 양 이사가 불참을 시작한 시기가 불가리스 논란이 불거진 2021년 3월 이후라는 점을 고려할 때 양 이사의 이사회 불참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알 수 없다. 남양유업의 공시 자료에 따르면 양 이사는 유가공 및 식품 분야의 전문가로 판단되며 이 이사는 정치학을 전공한 유통 전문가다. 경영진에게 조언을 제공할 전문성은 갖춘 것으로 여겨지지만 감시, 감독 역할을 제공할 기본 역량인 재무, 회계 전문성을 지닌 사외이사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2020년 말 기준으로 남양유업 이사회의 독립성 비율은 33%(=2/6)이다. 아메리칸대와 알라바마대 공동 연구팀3 은 가족 기업에서 이사회의 독립성이 증가할 때 기업 가치가 증가한다는 실증 연구를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사외이사 비율이 75%인 기업은 해당 비율이 25%인 기업에 비해 기업 가치가 16% 더 높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그렇지만 비단 이사회 독립성 비율이라는 숫자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외이사가 비지배주주를 대변해 경영자의 의사결정을 효과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능력과 동기 두 가지를 모두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사내이사에 비해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된 사외이사는 기업 내부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이 주어져야 경영 현안을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외이사 활동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는 경우에만 모니터링 활동에 대한 동기를 가질 수 있다. 한 언론 보도4 에 따르면 남양유업의 사외이사들은 보수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이사회를 감독 대상인 창업자 가족들이 지배하고 있으니 사외이사들에게 기업 내부 정보에 대한 충분한 접근권이 주어졌을 가능성도 높지 않다.

이사회와 관련된 마지막 문제는 이사회 내에 별도의 위원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본시장이 발달한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이 이사회 내에 감사위원회를 비롯해 경영위원회,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내부거래위원회, 보상위원회, 지속가능경영위원회 등의 별도 위원회를 두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따라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존재하지 않는 남양유업에서는 창업자 가족 경영진을 감시할 사외이사를 창업자 가족이 직접 간택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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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감사기구 내부 감사기구는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와 재무 보고 과정을 감시해 주주와 경영자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고 내부 통제 시스템의 적절성을 평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내부 감사기구에는 감사와 감사위원회(이사회 내 위원회) 두 가지 형태가 존재한다. 상법 제523조의11 제1항은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 상장회사는 감사위원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자산 규모가 2조 원 미만인 주권 상장 및 코스닥 상장법인은 감사 또는 감사위원회를 기업이 선택해 적용할 수 있다. 상법 규정(제415조의2 제2항)에 따라 감사위원회는 3명 이상의 이사로 구성돼야 하고, 3분의 2 이상이 사외이사로 구성돼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감사위원회는 업무 및 회계감사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회계 또는 재무 전문가를 포함시켜야 한다(상법 제542조의11 제2항). 따라서 감사에 비해 감사위원회가 경영진으로부터 높은 수준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감독 기능을 수행할 전문성이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남양유업은 자산 총액 2조 원을 넘지 않아 감사를 두거나 자발적으로 감사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다. 남양유업은 감사위원회 대신 감사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동국대 연구팀5 은 지배주주와 비지배주주 사이의 대리인 문제가 큰 경우 감사위원회를 자발적으로 도입하는 경향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지배주주-비지배주주’ 간 대리인 문제를 겪고 있는 남양유업이 자발적으로 감사위원회를 도입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남양유업의 공시 자료에 따르면 심호근 상근감사는 농축산 분야와 관련해선 전문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지만 감사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인 회계 감사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창업자 일가가 53.08%의 지분을 가진 상황에서 주주총회를 통해 선임되는 감사가 업무의 효과를 제고하기 위해 필요한 독립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려워 보인다. 불가리스 과대 홍보, 매일유업 비방 댓글 혐의 등 일련의 의사결정은 폐쇄적 경영 체계와 더불어 내부 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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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지배권시장 기업 지배구조 메커니즘이 기업 내부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지배권시장(market for corporate control)’은 무능하거나 비도덕적인 경영자를 규율하는 기능을 하는 외부 통제 장치이다.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거나 경영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 기업의 주가가 하락할 때 해당 기업을 인수해 경영자를 교체하고 새로운 이사회를 구성해 조직을 개편함으로써 대리인 갈등을 해소해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다. 기업지배권시장을 통한 기업 감시 규율은 경영 부진을 사전적으로 견제하거나 사후적으로 보다 효율적인 경영자에게 경영권을 이전하는 효과적인 기업 지배구조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남양유업의 경우 기업지배권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창업자 가족이 여전히 53.08%의 소유 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창업자 가족의 동의 없이는 주주총회에서 이사의 과반수를 선임할 수 있는 지분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장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2021년 5월27일 남양유업은 사모투자펀드 운용사인 한앤컴퍼니와 보통주 37만8938주(53%) 등 경영권 일체를 3107억 원에 매각하는 주식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창업자 가족의 지분 매각이 발표되자 남양유업의 주가는 거래일 기준 이틀 만에 59% 급등했다. 이는 자본시장이 창업자 가족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는지, 그리고 남양유업의 대리인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9월1일 창업자 가족은 돌연 한앤컴퍼니에 매각 철회를 통보했다. 한앤컴퍼니는 홍 회장을 상대로 전자등록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고 법원은 이를 인용했다. 즉, 홍 회장은 당장은 다른 곳에 남양유업 매각을 추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홍 회장 측은 한앤컴퍼니 대표 등을 상대로 불법 행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지루한 소송전이 전개되고 있다.

2021년 11월19일 남양유업은 시장에 새로운 소식을 내놓았다. 대유위니아그룹에 주식을 양도하고 남양유업 경영권을 이전하는 조건부 약정이다. 이는 말 그대로 홍 회장이 한앤코와의 법적 분쟁에서 최종 승소해 주식 양도가 가능해질 때만 성사될 수 있는 조건부 약정이다.

창업자 가족이 53.08%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던 남양유업은 구조적으로 ‘지배주주-비지배주주’ 간 대리인 문제를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대리인 갈등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하는 지배구조 메커니즘은 그 어느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유가공 업계를 선도했던 남양유업의 재탄생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지배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첫째, 경영진이 주주들의 이해를 위해 행동하도록 유인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경영자 보상 체계가 도입돼야 한다. 이사회 내에 독립적이며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보상위원회를 설립해 이들에게 경영진의 보상 정책 및 프로그램을 설정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권한을 줘야 한다.

둘째, 창업자 가족 중심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전면 개혁해야 한다. 이사회가 경영자의 경영 활동을 제대로 감시 감독하기 위해서는 사외이사의 비중이 높아져야 한다. 무늬만 사외이사가 아닌 경영진과 지배주주로부터 실질적인 독립성을 가지고 비지배주주들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사외이사들의 이사회 진입이 필요하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사회 내에 별도의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설립해 이사회의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셋째, 자발적인 감사위원회 도입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남양유업이 현행 유지하고 있는 상임감사 제도는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려우며 전문성 또한 담보되기 어렵다. 경영 업무 및 회계 감사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회계, 재무 전문가를 포함한 감사위원회의 설치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창업자 가족은 금전적인 이익에 목적을 두지 말고 창업자 가족의 지분 매각을 서둘러야 한다. 창업자 일가의 지분 매각이 미뤄지며 그 피해는 기업 이해관계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기업 가치와 평판 가치 하락으로 인해 비지배주주, 직원, 대리점, 거래처가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빠른 지분 매각은 창업주의 고귀한 뜻을 기리는 길이며 남양유업이 자본시장에서 신뢰를 되찾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김진욱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jinkim@konkuk.ac.kr
필자는 건국대와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경영학과 회계학을 전공하고, 코넬대에서 통계학 석사, 오리건대에서 경영학 박사를 취득했다. 럿거스(Rutgers)대 경영대 교수와 금융감독원 회계제도실 자문교수를 역임했으며 2013년부터 건국대 경영대학에서 회계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세무회계학회 부회장, 세무회계연구 편집위원장, 금융감독원 재무공시 선진화 TF 위원, 국가회계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연구 분야는 자본시장, 회계 감사 및 조세 회피다.
  • 김진욱 김진욱 |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건국대와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경영학과 회계학을 전공하고 코넬대에서 통계학 석사, 오리건대에서 경영학 박사를 취득했다. 럿거스(Rutgers)대 경영대 교수, 금융감독원 회계제도실 자문교수 및 기획재정부 공기업 평가위원을 역임했으며 2013년부터 건국대 경영대학에서 회계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건국대 경영전문대학원 부원장, 한국회계학회 부회장, 한국거래소 기술평가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연구 분야는 자본시장, 회계 감사 및 인수합병(M&A)이다.
    jinkim@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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