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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olumn

경영학 교과서가 다시 쓰여야 하는 이유

장정주 | 331호 (2021년 10월 Issue 2)
디지털 기술이 산업계에 촉발한 커다란 혁명이 경영의 근본을 흔들고 있다. 그동안 당연시돼 왔던 경영학의 원칙이나 법칙에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 목격되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기존 관념에 따르면 기업은 생존을 위해 고객이 지각하는 가치보다는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하고 원가보다는 높게 가격을 매겨 이윤이 발생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기본적인 기업 생존의 법칙을 굳이 따르지 않고, 즉 판매나 이윤이 발생하지 않아도 방문자 숫자만 확보되면 큰 성공을 거두는 기업들이 시장의 주도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학교에서 가르쳐온 전통적 기업들은 선형적인 가치사슬의 기반 위에서 공급자, 소비자 등 외부 세력들을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이들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기업만의 고유한 우위를 확보해 왔다. 그러나 플랫폼을 기반으로 새롭게 부상한 기업들은 공급자 및 소비자 등과 같은 외부 세력들을 적이나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고 자사의 우호 세력, 나아가 잠재적 자산으로 간주한다. 플랫폼의 개방을 통해 누구나 자신의 생태계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하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기업 경영에 대해 상반된 관점과 접근법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기업 가치 분석에 있어서도 기존의 접근법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신생 디지털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실제 충분한 수익이 나지 않는 플랫폼 기반 신생 디지털 기업들이 엄청난 수익과 이익을 자랑하는 전통적 기업들의 시장 가치를 가뿐히 추월할 뿐만 아니라 자사의 월간 활성 사용자 수를 기반으로 천문학적인 시장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신생 디지털 기업들을 우리가 배운 주가 수익 비율(PER) 등의 지표로만 설명하기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런 지각변동은 자동차, 금융, 에너지, 제조, 의료 및 헬스케어, 교육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관련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인해 앞으로도 기업 경영의 대전환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기업 경영은 경영진을 중심으로 인력과 전산에 기반한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의존해 운영돼 왔지만 이제는 AI 기반의 프로세스가 표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경영 모델에서는 기업 운영의 주요 의사결정이 전산의 도움을 받은 인간에 의해 이뤄졌지만 이제는 인간이 아닌 기계로 진행되는 모델로 전환될 것이란 의미다. 승객 요청에 따른 차량 배정, 대출 승인, 상품 가격 결정, 엑스레이 판독, 금융 자문 서비스 등 점점 많은 영역에서 AI의 도움을 받은 기계가 인간(직원 등)을 배제한 채 스스로 의사결정을 수행하고 이를 인간(소비자 등)이 수용하는 양상이 나타날 것이다.

결국 디지털 기술의 혁명적 변화로 산업 내 기업들이 수행하는 비즈니스 운영 방식과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 그리고 기업 간 경쟁 방식 등에 있어서도 대전환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이 모든 혁명적 변화의 발단은 디지털 기술을 수용하고 편리함 등의 효용을 기꺼이 이용하려는 소비자의 힘이다. 이런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변화는 이미 현재진행형이기에 경영학 교과서는 다시 쓰여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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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주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jahngj@snu.ac.kr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RPI대 경영대학 교수를 거쳐 2004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영국 OR(Operational Research) Society에서 EJIS(European Journal of Information Systems)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돼 최초의 Stafford Beer 메달을 획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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