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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연구회 × DBR 공동 기획 - 미국 회사법 관점에서 본 ESG 경영

ESG경영과 진화하는 주주중심주의

신현탁 | 330호 (2021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ESG에 대한 오해를 미국 회사법의 관점에서 풀어 본다.

1. ESG 경영은 기업의 수익성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규제일까? 그렇지 않다.
미국 경영계에서 규제 강화를 모면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2. ESG 경영으로 주주 중심주의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대체됐다?
ESG 경영에도 주주 중심주의 관점이 유지된다는 것이 미국 법학계의 일반적인 관점이다.

3. ESG 전략으로 손실이 커져도 괜찮다?
ESG 전략이 주주와 이해관계자, 시장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경영진이 법적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다. 경영진은 ESG 전략을 체계적으로 설계하고 주주 후생 극대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주
이 글은 필자의 논문 ‘미국 회사제도와 자율규제 - ESG 경영이념에 대한 법적 분석’ 『상사법연구』 제40권 제2호(한국상사법학회, 2021.08)를 요약•수정한 것입니다.

편집자주
경영학, 법학, 경제학, 정치학 전공 교수 및 연구원들로 구성된 ESG연구회가 ESG에 관한 연구 결과를 공유합니다. ESG연구회는 2013년 여름부터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서 격월간 세미나를 지속하며 ESG의 개념과 한국 기업 환경에서의 함의를 고민하고 토론해왔습니다. DBR와 ESG연구회가 공동으로 기획해 연재하는 기사를 통해 ESG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지혜를 얻어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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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SR와 PBC, 그리고 ESG

국내 중소기업을 포함해 많은 기업이 ESG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많은 기업은 ESG 경영을 ‘이미지 개선’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상장사의 경우 ESG 정보 관련 공시 도입이 의무화되면 상대적으로 경쟁사들에 비해 기업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우려한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ESG 경영은 기업 이익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떨어지는 불필요한 규제로 비춰질 수 있다. 또 경영자는 ESG가 경영 효율성을 반감시켜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 있음을 우려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세간의 우려는 ESG의 의미를 오해하는 데서 비롯한다. ESG 경영 이전에도 기업은 여러 방식으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왔다. 일례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은 기업의 이익과 무관하게 사회적 가치를 위해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다. 전략적으로 CSR를 추구하는 기업은 매출액의 2% 수준에서 회사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마케팅 비용으로 CSR 활동에 투자했다. 그런데 현재 글로벌 회사들은 매출액의 2% 수준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큰 규모의 자금을 ESG 경영에 투자하며 심지어 회사의 명운을 걸고 비즈니스 모델과 사업 목적 자체를 재조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단순히 이미지 개선을 목적으로 ESG 경영을 한다면 주객전도가 아닐 수 없다.

기업이 아예 공익을 추구하는 회사(PBC, Public Benefit Corporation) 형태로 사회적 이익을 위해 본격적으로 투자를 늘리는 방법도 있다. PBC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취지를 회사 정관에 규정하는 것이다. 2010년대 들어 미국 여러 주와 유럽 국가들이 새롭게 PBC 제도를 도입하면서 PBC 회사는 공익적 가치 추구, 사회문제 해결 및 이해관계자 보호를 위해 전략적 CSR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규모로 투자와 지출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런 PBC 경영 방식은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것으로 법적 보장을 받음으로써 경영진의 법적 책임에 대한 우려를 해소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처럼 사회적 가치를 위한 경영을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PBC 방식이 이미 존재하는데 ESG 경영을 하는 것만으로 회사의 이미지가 드라마틱하게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면 왜 지금 전 세계적으로 많은 기업이 CSR나 PBC 방식이 아닌 ESG 경영을 굳이 실천하겠다는 것일까? 법적으로 보면 ESG 경영은 경영진이 신인 의무(fiduciary duty)1 위반에 따른 책임을 부담할 위험이 존재한다. 즉 이미지 개선을 좀 해보겠다고 무턱대고 ESG 경영을 시도하다가는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침해함으로써 법적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글에서는 특히 ESG가 전개된 배경과 법적 한계에 대한 미국의 논의를 검토함으로써 미국 기업들이 ESG 경영을 왜 하려는 것인지, 그리고 경영진의 법적 리스크를 감소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2. 전통적인 주주 중심주의와 경영진의 법적 책임

미국 기업 제도의 역사에서 20세기 중반은 경영자 중심주의가 만연하면서 주주 이익이 노골적으로 무시받던 시기이다. 이런 경영자 횡포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20세기 후반에 주주 중심주의가 주목받는다. 특히 1970년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들이 탄탄한 법경제학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주주 중심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주류의 지위를 확보했고 ‘이사 등 경영진은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위하여 자신의 의무를 다하여야 한다’는 원칙이 확산됐다.

1919년 포드 사건2 은 주주 중심주의의 대표적 판례이자 기원에 해당한다고 평가받는다. 당시 미시간주 대법원은 “포드사에서 근로자 임금을 일반적인 수준의 2배로 상향시키고 차량 가격은 시가보다 절반 수준으로 낮추고 사업 확장을 위해 2400만 달러를 투자하면서도 주주 배당을 하지 않는 것은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므로 부당하다”고 판시하면서 주주에게 2000만 달러를 추가로 배당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포드사는 모델T의 성공으로 6000만 달러의 수익을 달성했다. 헨리 포드는 법정에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자신의 경영 신념을 토로했으나 법원은 그런 이해관계자 보호 조치를 문제 삼지는 않았고 오로지 주주의 이익이 완전히 배제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헨리 포드가 배당을 아낀 것은 경쟁사인 닷지사의 창업주들이 포드사의 지분을 10%나 가지고 있는 대주주였기에 이들이 배당을 받아가는 것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이후 ‘주주의 이익’이라는 원론적 개념이 모호하다는 점 때문에 많은 분쟁이 있었다. 이에 미국 판례법에서 ‘주주의 단기 이익(short-term interest)을 극대화하려는 것은 경영진이 거부할 수 있으며 특정 주주에게만 고유한 개인적 이익(idiosyncratic interest)을 추구하기 위한 경영진의 결정은 부당한 것’이라는 등 구체적인 보완이 이뤄졌다. 즉 경영진은 보편적으로 주주와 회사의 장기적 이익을 극대화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장기적 이익’ 개념은 상당히 완화해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 판례법은 경영진의 당해 결정이 언젠가는 회사와 주주에게 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연관 지을 수 있을 정도(rational relationship test)라면 ‘장기적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인정한다.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는 결정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주주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어떻게든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위와 같은 합리적 관련성 기준에 의해 의무 위반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한편 회사와 주주의 장기적 이익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보호하는 것도 경영진의 의무로 인정할 수 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블루벨아이스크림은 2015년 식중독을 야기해 소비자 3명이 사망하는 등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켰고 결국 재정적 위기에 봉착해 근로자의 3분의 1을 해고하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이에 회사의 주주들은 경영진을 상대로 주주 대표 소송을 제기했고 경영진이 식품 안전을 위한 내부 규정을 적절히 운영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식품 안전 규정은 1차적으로는 소비자에게 필요한 보호 장치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사의 이익과 별개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에 2019년 델라웨어주 대법원에서는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단일 사업을 영위하는 블루벨아이스크림 회사의 입장에서 궁극적으로 소비자를 보호하고 품질로 인정받는 것이 회사의 미래 이익과 직결될 수 있는 문제이므로 소비자 보호 장치를 소홀히 한 경영진은 의무 위반 책임을 부담한다고 판시했다.3

결국 경영진은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위해 결정해야 하는 것이 전통적인 원칙이지만 회사란 본질적으로 주주를 비롯한 여러 이해관계자로 구성돼 있다는 특성을 갖기 때문에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결국 주주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해관계자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이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 경우는 오히려 예외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판례법에서는 주주의 이익과 널리 합리적 관련성을 갖는 경우에는 이해관계자의 이익도 직접적으로 추구할 수 있게 허용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경영진의 의무로 인정하는 것이다.

3. 격변의 전환기: 2010년대

전통적인 주주 중심주의는 앞서 본 바와 같이 이해관계자와의 공존을 보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2010년의 일부 판례가 극단적인 주주 중심주의를 취함으로써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주주 중심주의의 쇠퇴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유명한 광고•거래 웹사이트인 크레이그리스트(Craiglist)는 투박한 화면 구성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크레이그리스트의 지분 28.4%를 취득한 이베이가 화면 구성의 상업적 개선을 요구하는 등의 문제 제기를 했다.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크레이그리스트의 창업자들은 이베이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기 위해 포이즌필4 을 발동했고 이베이의 지분은 24.9%로 축소됐다. 이 사건에서 2010년 델라웨어주 형평법원은 경영권 방어 방법을 사용한 것이 부당하다고 판시함으로써 이베이의 손을 들어줬다.5 그 과정에서 크레이그리스트 경영진은 “경제적 가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여기는 크레이그리스트의 기업 문화와 사회적 가치를 보호할 목적으로 포이즌필을 발동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경영진이 주주 이익 극대화에 상충하는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적으로 판시함으로써 경영진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동안 이해관계자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을 명확하게 분리할 만한 사례가 잘 없었기 때문에 주주 중심주의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판례도 찾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법원이 ‘주주 이익 극대화’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주주 중심주의를 심화하고 법 원칙으로 재확인했다는 의의가 있다.

또 2010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회사가 무제한적으로 정치 자금을 기부할 수 있다”고 판시하면서 회사의 정치적 기본권을 확대했다.6 ‘Citizens United’라는 단체는 국가 안보 및 자유시장 경제, 기독교 신앙 등 보수적 가치를 대중에게 전파하고 교육함으로써 공공복리를 증진하겠다는 목표 아래 연간 1200만 달러 정도를 모금해 사용했는데 2008년 민주당 예비 선거를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비난이 담긴 다큐멘터리를 제작•유포하려다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비영리법인을 포함하는 전반적인 기업에 대해 정치 기부 방식을 엄격히 제한하던 종전의 규정(McCain-Feingold Act)을 위헌으로 결정하면서 ‘회사의 구성원들이 갖는 정치적 기본권은 회사를 통해 행사될 수 있다’는 논리를 인정했다.

나아가 2014년 연방대법원은 회사에 종교적 기본권을 인정함으로써 구성원의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7 예컨대 오바마케어에 따라 미국에선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건강보험을 제공하도록 했는데 하비로비스토어(Hobby Lobby Stores)는 종교적 신념에 근거해 근로자에게 피임에 대한 보험을 제공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 회사는 종교적 신념을 공유하는 일가족이 100%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주주 중심주의하에서는 특히 지배주주가 회사의 종교적 정체성을 주도할 수 있는데 이 사례는 극단적으로 대비하자면 지배주주의 종교적 기본권을 근로자의 기본권에 우선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충격을 가져왔다.

앞서 이베이 판례에서 심화된 주주 중심주의는 회사의 정신적 기본권을 확대하는 연방대법원의 판례들을 통해 2010년대에 최고조에 달했다. 연방대법원은 ‘민주적 내부 절차를 수립해 회사 자체의 정치적•종교적 의사 형성을 해야 할 것’이라고 원론적으로 언급했다. 하지만 사실상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아직 시스템화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지배주주 등은 정치적 기본권이라는 명목 아래 회사 자금을 아무런 제한 없이 사용해 정치적 기부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자 보호를 위한 규제에 대해서도 종교적 기본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상황은 종전의 회사 제도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기 때문에 상당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무엇보다도 근로자•소비자 등 회사의 이해관계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외부 규제는 당연히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인데 회사의 정치적 기부 증대에 의해 규제 완화 로비가 강력해지고 이미 존재하는 외부 규제에 대해서도 회사의 종교적 기본권 등으로 무력화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주주의 지위가 다른 이해관계자의 지위를 압도함으로써 종전의 제도적 균형 상태가 깨진 것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 시대의 정치적 양극화 현상은 점입가경의 상황을 초래했다.

기업의 정치적 로비가 합법화돼 있는 미국에서는 강력한 자금 동원력을 가진 재계의 규제 완화 로비를 일반 시민이 당해낼 재간이 없다. 하지만 이런 양상이 너무 심각해져서 시민들의 불만과 분노가 폭발할 때는 정치적 역풍에 의한 규제 강화 입법이 이뤄지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예상 가능한 수순이다. 2010년대 미국에서는 경제 불안 심화로 인해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가 난무했고 대선에서는 과격한 방식의 규제 강화를 공약으로 내건 후보들이 인기를 끌었다. 강제로 대규모 상장회사를 PBC로 전환시키거나 노동 이사를 의무적으로 선출한다는 등의 법률안이 언제든지 통과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규제가 강화되는 쓰나미를 모면하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윤리 경영에 의해 자율 규제를 하겠다’는 약속을 통해 시장과 시민을 회유하는 것이 최선이었다.8 그 결과 2018년과 2019년은 기관투자가와 CEO들이 앞다퉈 ESG 경영을 선포하고 전파하는 일대 전환점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주 중심주의가 극에 달한 상태에서 오히려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고려하겠다면서 기득권을 내려놓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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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SG 경영과 이해관계자

ESG 경영의 핵심은 회사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는 점이다. 회사의 장기적 존속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장래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사업 위험을 감소시키는 방식으로 경영할 필요가 있다. 이는 결국 회사와 주주의 ‘장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ESG 경영에 의해 잠재적 위험 요인을 미리 찾아내서 관리하는 것은 전통적인 경영진의 의무에도 부합한다. 따라서 ESG 경영에서도 주주 중심주의 관점이 유지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미국 법학계의 일반적인 관점이다.

다만 종전의 주주 중심주의 관점에서는 ‘주주 이익 극대화’를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금전적 이익으로 환산하기 곤란한 비재무적 ESG 성과를 어떻게 포섭할 것인지가 난관이었다. 그런데 2016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법경제학의 거장, 올리버 하트(Oliver Hart) 교수가 2017년에 발표한 논문 9 에서 이 부분을 해결했다. 그는 종전의 ‘주주 이익 극대화에 의해 사회적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명제는 회사의 외부 효과가 전혀 없다고 전제할 경우에만 성립할 수 있는데 사업 수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실적인 외부 효과를 감안한다면 주주 이익(shareholder interest)이 아닌 주주 후생(shareholder welfare)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합리적임을 논증했다. 주주 후생이란 단순히 금전적으로만 측정할 수 없는 주주들의 행복도•만족감을 포함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주들이 이익극대화 이외에도 얼마든지 다른 가치를 추구하길 원할 수 있으며 다른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보호하길 원하는 것도 실현 가능하다는 의미다. 즉 경영진이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은 주주가 그렇게 하길 원했기 때문에 주주 후생 극대화를 위한 것에 불과하다. 이에 따르면 이해관계자의 이익 극대화 자체는 경영진의 의무로 인정될 수 없다. 결국 ‘주주 이익 극대화’에서 ‘주주 후생 극대화’로 일부 내용이 수정되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주주 중심주의 관점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ESG 경영으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천명했다거나 주주 중심주의가 이해관계자 중심주의로 대체됐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법적인 관점에서는 법적 효력이 전혀 인정될 수 없는 얘기다. ESG 경영의 전파 과정에서 일부 과장되거나 오해를 야기한 점이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법적 책임이 문제 될 경우에는 종전의 주주 중심주의 관점에 의해 해결될 것이라는 점을 반드시 유의할 필요가 있다. 1982년 포이즌필을 창안하는 등 미국 회사법 실무의 대가로 인정받는 마틴 립튼(Martin Lipton)은 2016년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서 ESG 경영의 체계적인 로드맵을 발표함으로써 ESG에 관한 청사진을 제시한 인물이다. 그는 다음의 사례에서 법리를 설명한 바 있다. 2018년경 미국 최대 규모의 연기금인 캘퍼스(CalPERS)는 기존에 실시해온 환경 투자 건에서 30억 달러 상당의 손실이 발생한 것을 파악했고 투자를 계속할 것인지 여부를 고민하다가 결국 ESG 전략을 중단했다. 사회적 가치와 이해관계자의 이익만을 추구해도 된다면 ESG 투자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어야 할 것이지만 마틴 립튼은 ‘당시 경영진이 이를 중단하지 않았다면 의무 위반에 따른 책임을 부담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ESG 경영을 실시한다고 해서 회사 손실에 대한 면책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의미이다.

5. ESG 경영과 경영진의 법적 책임

경영진은 회사와 주주의 장기적 이익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ESG 경영을 실시하면서 이를 침해하게 될 때 법적 책임을 부담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경영 판단의 원칙이 적용될 수만 있다면 경영 책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ESG 경영에 대해서도 경영 판단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다고 파악하는 견해가 대부분인데 다만 경영진이 그런 보호를 받으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결정이어야 하므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해당 기업의 ESG 요소를 발굴하고 수집해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자문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숙고했어야 한다. 막연히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CSR를 실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회사가 사회적으로 야기하는 부정적인 외부 효과가 무엇인지를 판별하고, 그런 요소에 적합한 ESG 전략을 세워야 한다. 예컨대 무턱대고 나무 심기 행사를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해 회사에서 발생시키는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연차별 감소 계획을 세워야 한다. 환경 기준을 이미 준수하고 있더라도 당해 회사에서 발생시키는 오염 물질이나 폐기물을 추가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세우는 것도 ESG 전략에 해당한다. 탄소배출량을 감축하고 오염 물질을 정화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비용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노력은 회사의 외부 효과를 감소시킴으로써 회사와 주주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하는 행위로 인정될 수 있기에 그 과정에서 충분한 정보에 근거했다면 경영 판단의 원칙을 적용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소송상 입증할 수 있으려면 ESG 요소 발굴부터 ESG 전략 수립 단계까지 내부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할 필요가 있다. 이는 내부 통제 시스템을 통해 준법 경영(compliance)을 실시하는 것과 외형적으로 유사하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ESG 경영에 따른 회사의 비용 지출이 막대해 손실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회사의 ESG 노력을 공시하고 홍보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어느 정도의 가격 상승을 감수하고서라도 해당 기업의 ESG 전략을 지지해주고, 투자자들 역시 ESG 전략이 시장의 인정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손실을 감당하지 못할 수준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와 투자자의 공감과 지지를 얻지 못하고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무리한 ESG 전략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회사는 그런 ESG 전략을 중단해야 한다. 이런 손실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임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시점에 중단하지 못한 경영진은 성실 의무 위반이 인정돼 마틴 립튼이 지적한 대로 법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물론 일부 손실에도 불구하고 주주들이 해당 기업의 ESG 전략을 지지하는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주주 후생 극대화의 관점에서는 ESG 전략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으로부터 주주들이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다면 그런 경영진의 결정 역시 정당화될 수 있다. 물론 이 역시 소송상 입증될 수 있어야 할 텐데 아직까지 선례가 없다 보니 어느 정도 비율의 주주들이 동의해야 주주 후생 극대화로 인정될 것인지는 불분명하다는 점이 리스크다. 다만 현재 미국 상장회사의 70%에 육박하는 지분을 차지하는 기관투자가들(ETF 포함)이 ESG 경영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정작 더 유의할 점은 각 기업의 ESG 전략이 정말 사회적 가치와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위장 전략(green washing)에 불과해 사실은 주주들의 개인적인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인지를 구별하는 것이다. 미국 판례법에서는 설사 정당한 목적이 있다 할지라도 그와 동시에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려는 목적이 병존하는 상황에서는 이해 상충으로 파악한다. 이해 상충 상황에서는 당해 결정이 완전히 공정했다는 엄격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한 부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ESG 전략도 주주들의 개인적인 이익과 완전히 무관해야 경영진이 면책을 받을 수 있다. ESG 경영을 빌미 삼아서 일감 몰아주기를 한다거나 회사 재산을 빼돌리는 터널링 행위는 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까지 ESG 경영을 자발적으로 실시하는 경영진에게 의무 위반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인지의 문제를 살펴봤다. 이와 별개로 과연 경영진에게 ESG 경영을 실시할 의무까지 인정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경우에 따라서는 경영진이 ESG 경영을 의무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적어도 ESG 경영을 순수한 선택 사항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 5월, 네덜란드 헤이그 법원은 세계적 석유회사인 로열더치셸(Royal Dutch Shell)에 대해 파격적인 판결을 내렸다.10 즉 로열더치셸이 이산화탄소 배출 등으로 인해 네덜란드 시민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할 주의 의무를 위반했기 때문에 파리협정에서 정한 바대로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45%를 감축하도록 명령했고, 그 판결도 선언적인 것이 아니라 강제성을 갖고 집행하겠다고 한 것이다. 나아가 네덜란드에 소재한 로열더치셸 본사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계열사가 위 명령을 이행하도록 판결했다. 이는 세계적으로 경종을 울렸을 뿐만 아니라 이미 계류 중인 다른 사건들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1200여 건의 ESG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며 다른 30여 개 국가에서도 300건 이상이 진행 중이다. 호주 법원 역시 8명의 어린이가 제기한 환경 소송에 대해 지난 5월과 7월 2차례에 걸쳐서 ‘환경부 장관이 탄광 허가를 연장할 때는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지는 않을 것인지에 대한 주의 의무를 다해 결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11 이 사건은 2020년경 호주의 모든 18세 이하 미성년자를 위한 집단소송(class action)으로 제기됐는데 법원이 탄광 개발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호주의 환경에 재앙적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 요소라는 점을 인정했다는 의의가 있다.

6. ESG 전략이 중요한 이유

ESG 경영이 많은 관심을 얻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와전되고 있는 부분도 많다. 미국에서 ESG 경영은 재계에서 자발적으로 추진해온 것으로서 규제 강화를 모면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즉 ESG 경영 자체를 규제로 볼 것은 아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국제적인 ESG 흐름을 따라가는 입장이다 보니 약간 상황이 다를 수는 있겠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자율 규제가 정착되면 규제 강화가 불필요하다는 점은 미국과 동일하다.

또 사회적 가치와 이해관계자에 대한 보호가 예전보다는 강화되겠지만 ESG 경영에 대한 법적 책임은 주주 중심주의에 의해 판단될 것이기 때문에 경영진의 재량 범위는 주주 중심주의 관점을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ESG 경영이 수익성과 효율성을 저해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ESG 전략이 소비자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손실을 야기하는 상황이라면 회사와 주주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중단해야 한다. 이런 판단을 하기 위해서 ESG 경영을 하려는 회사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소를 발굴할 뿐 아니라 시장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ESG 전략을 개발하고, 이러한 과정을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ESG 내부 시스템을 구축•운영할 필요가 있다. 주주와 경영진, 이해관계자가 참여해 소통하는 플랫폼은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제시한 ‘회사 내부적 민주 절차’를 실현하는 이상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법이 주주 중심주의를 온전히 따른다고 보기는 어렵고 미국 제도와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법 적용에 있어서는 미세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ESG라는 새로운 개념을 다룰 때 위와 같은 원칙적 내용이 우리에게도 기준점으로 작용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신현탁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mocha12@korea.ac.kr
필자는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42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U.C. 버클리 로스쿨 법학박사(J.S.D)이며 법무법인 충정 증권금융팀의 파트너 변호사로 일했다. 기업지배구조와 기업금융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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