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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 Interview: 도상인 교보생명 빅데이터지원팀 부장

현업 담당자와 ‘As is’-‘To be’ 명확히 정의
경영진이 시작부터 결과까지 직접 챙겨야

배미정 | 325호 (2021년 07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교보생명이 추진한 빅데이터/AI 활용 웨이브 방법론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현업 직원들로 구성된 워킹 그룹에서 추진 과제를 도출하고, 비즈니스 가치와 기술적 구현 가능성을 균형 있게 평가해 실행 과제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2. 빅데이터/AI 개발 이전에 현업 담당자들과 협의해 ‘As is’ 프로세스와 ‘To be’ 이미지를 명확히 정의하고 실제 업무 적용 방안까지 세웠다.

3. 빅데이터/AI 과제 도출부터 업무 적용에 이르기까지 표준화된 절차를 통해 다양한 과제를 신속하게 추진했다.

4. 반복적인 빅데이터/AI WAVE와 역량 내재화 교육을 통해 직원들의 디지털 활용 역량을 높이고 빅데이터/AI 프로젝트의 지속성과 연속성을 높였다.




2016년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세계 최정상의 프로기사 이세돌과 겨룬 대결에서 승리한 지 5년이 지났다. 당시 인간보다 더 똑똑한 기계인 알파고의 출현은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다. AI가 인간의 일을 상당 부분을 대체할 것이란 두려움 섞인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AI는 우려했던 것만큼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우리의 삶을 바꿔 놓지는 않은 것 같다. 왜 그럴까? 원천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것과 별도로 현실 속의 AI는 여전히 사람의 개입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AI를 도입하는 과정, 즉 데이터를 검토하고 필요한 데이터를 식별해 적재 요청하거나 전처리하고, 모델을 개발, 운영 및 적용하는 모든 과정에 사람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그 자체로 완벽한 AI 모델이 완성됐다고 할지라도 그게 정작 비즈니스 현장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이처럼 AI가 만능 기술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AI를 도입하는 과정에는 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많은 기업이 AI를 도입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해 쉽게 좌절하는 이유다.

최근 기업의 AI 프로젝트가 늘어나면서 이렇게 복잡한 AI 도입 과정을 총괄하며 데이터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이터 스트래터지스트(Data Strategist)의 역할이 부상하고 있다. 데이터 스트래터지스트는 비즈니스 과제를 도출하고 데이터 관점에서 과제를 정의해, 도메인의 데이터 오너뿐 아니라 데이터 애널리스트,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데이터 엔지니어와 협업하고 프로젝트를 관리 운영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를 위해서는 데이터와 알고리즘뿐 아니라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야 한다. 대개 AI 프로젝트팀의 팀장 혹은 총괄 프로덕트 매니저(PM)가 이런 역할을 맡는다.

국내 기업은 AI 프로젝트를 추진한 경험이 부족한데다 비즈니스와 기술 역량을 균형 있게 갖춘 인재 풀도 적어 실제 데이터 스트래터지스트가 어떻게 일하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2019년 AI 기반 보험 언더라이팅(underwriting)1 시스템 ‘바로(BARO)’를 기획해 ‘2019 아시아보험산업대상’에서 국내 보험사 최초로 ‘올해의 디지털기술상’을 받은 교보생명 사례를 통해 이를 들여다봤다. ‘바로’는 세계 최초로 생명보험 상품 심사에 자연어 처리 기술을 결합해 주목을 끈 바 있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 주도한 교보생명 빅데이터지원팀 도상인 부장의 인터뷰를 통해 AI 프로젝트에 필요한 역량, 데이터 스트래터지스트의 역할과 과제 등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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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언더라이팅 시스템 ‘바로(BARO)’를 개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발단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내에 처음으로 꾸려진 빅데이터 활용 태스크포스(TF)의 PM을 맡아 빅데이터를 활용한 비즈니스 과제 추진, 활용 역량 내재화, 인프라 고도화에 관한 전략과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2017년 정식으로 빅데이터활용팀을 만들어 빅데이터 과제를 추진하는 웨이브(Wave)를 시작했다. 웨이브는 크게 ‘과제 도출 → 과제 평가 → 과제 상세 정의 → 데이터 정제 → 모형 개발 → 파일럿 실행’의 과정으로 6개월 단위로 주기적으로 진행되는 빅데이터 활용 추진 방법론을 의미한다. 최근까지 5차례에 걸쳐 웨이브를 진행했는데 ‘바로’는 그중에서 2018년 8월 시작한 2기 웨이브에서 도출된 아이디어였다.

웨이브에서 과제 도출과 평가는 어떻게 이뤄졌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빅데이터/AI 웨이브가 시작되면 전 부서에서 워킹그룹에 참여할 직원을 부서별 1명씩 대략 30명가량 뽑았다. 이들이 빅데이터를 활용할 현업의 과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제출하면 그 아이디어를 두고 워킹그룹에서 1차적으로 평가 절차를 진행했다. 평가는 혁신성과 파급성 등 사업적 가치와 내부 역량과 외부 환경 등 기술적 구현 가능성을 묻는 8개 항목에 대해 5점 척도로 점수를 매겼다. 그리고 사업적 가치와 기술적 구현 가능성을 각각 X축과 Y축으로 하는 사분면에 점수를 표시했을 때 양쪽 점수가 모두 높은 1사분면에 위치한 과제를 선정했다. 현실적으로 모든 과제를 다 모델링해볼 수는 없다. 그래서 이런 객관적인 절차를 거쳐 최종 과제를 선정했다. 이런 평가 과정을 거쳐 5번의 웨이브 동안 도출한 과제가 총 64개였다. 웨이브당 30명씩, 총 150여 명의 현업 직원이 AI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DBR mini box
AI 언더라이팅 시스템 ‘바로(BA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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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는 크게 2가지 모듈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보험 청약 시 본 심사 단계에서 자동 심사를 진행하는 ‘오토 언더라이팅(Auto Underwriting)’, 다른 하나는 본 심사 이전에 계약 체결이 가능할지에 대해 보험설계사(FP)와 보험사 간 정보를 주고받을 때 자동 응답하게 하는 컨설턴트QA다. 알고리즘을 통해 심사 결과를 예측하고, 심사 유형별 차별적인 답변을 제공해 언더라이터(underwriter)를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바로(BARO)’란 이름은 ‘최고의 분석을 통해 빠른 결과물을 도출한다(Best Analysis and Rapid Outcome)’는 의미다. 언더라이팅 업무를 담당하는 가입심사팀이 직접 지은 이름이다.

이전까지 일부 해외 보험사가 언더라이팅에 적용한 AI 기술은 ‘룰베이스(Rule-Based)’ 방식으로 미리 짜인 언어 규칙에 맞게 응대 방법을 설정한 것이다. 그래서 규칙에 벗어나는 내용은 답변을 도출하지 못하는 게 한계였다. 하지만 ‘바로’는 이보다 진화한 단계의 자연어 학습 기반 머신러닝 시스템으로 정해진 언어 규칙을 벗어난 유사 문장의 의미까지도 분석할 수 있다. 특약 등이 포함된 복잡한 보험 상품도 다룰 수 있고,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가 학습을 통해 정확도를 개선한다.

평가 결과 선정되지 않은 과제는 어떻게 했나?

과제 아이디어가 해당 웨이브에서 선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사장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웨이브를 시작할 때마다 이전 웨이브에서 나왔던 과제들을 재검토함으로써 사업적 가치 혹은 기술적 구현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는지를 체크했다. 예컨대, 기술적 구현 가능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 또 새로운 웨이브를 담당하는 그룹이 사업적 가치에 있어서도 더 나은 인사이트를 도출할 수 있을지 재검토했다.

AI 프로젝트의 건당 실행 기간은 어느 정도인가?

과제를 도출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모델링하고 파일럿을 실행하는 데까지 평균 6개월 정도 걸렸다. 물론 과제 성격에 따라 4개월 걸리는 과제도 있고 8개월 걸리는 과제도 있다. 마지막으로 실제 업무에 적용하는 데는 약 3개월 정도 걸렸다. 대략적으로 웨이브 1기의 기간을 업무 적용 단계를 포함해 9개월 단위로 계획하고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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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를 실제 추진하는 프로젝트팀은 어떻게 구성했나?

AI 과제를 수행하려면 세 가지 역량, 즉 비즈니스 기획과 데이터 분석, IT 인프라 기술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 비즈니스 기획 파트는 사업적 이슈를 도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빅데이터/AI 활용 목표를 수립, 과제를 기획하고 운영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데이터 분석은 각종 데이터의 전처리와 함께 데이터 분석을 수행하고, 해당 과제에 적합한 알고리즘을 검토, 개발을 진행하며, 비즈니스 운영 환경에 적합하도록 모형을 개발하는 역량을 말한다. IT 역량은 분석에 적합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환경을 구성하고 데이터의 수집, 적재, 처리 환경을 운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프로젝트팀은 이 3가지 중 별도 부서가 있는 IT를 제외한 비즈니스 기획과 데이터 분석 역량을 갖춘 인재로 구성했다. 팀 규모는 대개 비즈니스 기획 2명(빅데이터활용팀
1명, 현업 담당 1명)과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3명 등 총 5명으로 파일럿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으로 구성했다.

워킹 그룹에서 프로젝트팀에 참여하지 않는 직원은 무엇을 하나?

웨이브에서 프로젝트 추진과 별도로 워킹 그룹에 참여한 직원을 대상으로 빅데이터 역량 내재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빅데이터와 AI에 관한 기초 지식 및 문제 해결 방법론 등 이론뿐 아니라 실제 프로젝트에 활용할 수 있는 분석 툴 등 도구를 교육하고, 한국데이터진흥원 위탁 과정을 통해 실습까지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AI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한 역량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비즈니스 기획과 데이터 분석, IT 인프라 세 가지 역량 모두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비즈니스 기획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다. 비즈니스의 가장 큰 역할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즉 사람이 쓰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그래서 과제의 개념을 정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과제를 도출하는 과정은 현재 상태(As is)와 나아갈 방향(To be)을 파악하고, 그 차이(gap)를 좁히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As is와 To be에 대한 분석이 잘못되면 큰 예산을 들여 AI 모형을 도입하고 난 후에 정작 뭘 하기 위해서 AI를 도입했는지 잊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데이터를 분석하고 AI 모형을 개발하기에 앞서 AI를 적용한 이후 업무 운영 방안까지 상세하게 정의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초연결’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기계, 기계와 기계가 연결되는 것인데 기술만능주의가 퍼지면서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사람과 사람’의 연결은 기술이 만들어낼 수 없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기획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최근 소위 빅테크 기업들이 전통 기업에서 현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재들을 차출해가는 이유다. AI가 발전하면서 그것을 비즈니스 관점에서 해석하고 기획하는 데이터 스트래터지스트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데이터 스트래터지스트의 역할은 무엇인가?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하나?

데이터 스트래터지스트는 프로젝트 전체를 기획하고 운영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려면 현업뿐 아니라 컴퓨터 언어와 데이터에 대한 이해력이 있어야 한다. 알고리즘을 직접 짤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알고리즘의 논리적 구조가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모델을 실행해서 어떤 결괏값이 나왔을 때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해석할 수 있다. 알고리즘을 이해하지 못하면 AI가 거짓말을 하는지 판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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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를 구축할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

기존 프로젝트와 달리 ‘바로’는 자연어 처리 기술이 적용돼 이전보다 더 복잡한 데이터 전처리 과정이 수반됐다. 보험설계사(FP)의 사전 질의 내용과 심사 메모를 AI가 인식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하는 데이터 전처리 과정이 복잡했다. 우선 기본 전처리, 즉 사람별로 다른 표현을 표준화하고 불용 표현을 제거하는 룰 795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심사에 필요한 정보를 추출하기 위해 전처리한 원문을 개체명으로 인식하는 체계(Ontology)를 구축했다. 기간, 병명, 치료 내용 등 1만2500여 개의 개체명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사람마다 다른 표현을 동일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도록 표준 분류 체계(Taxonomy)를 구축했다. 예컨대 우리가 ‘허리디스크’라고 부르는 병명을 ‘추간판탈출증’이라는 보험 언어로 표준화하는 것이다. 이런 표준 분류 체계를 약 3000개 만들었다. 이런 데이터 작업 과정을 진행하는 데는 현업과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현업의 반발이나 우려는 없었나?

처음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얘기하면 현업 담당자들이 시큰둥할 때가 많다. 이들은 말 그대로 현업에 바쁘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남의 일’처럼 방관하거나 기술자가 알아서 다 해주길 바라는 경향이 크다. AI 모형을 파일럿 테스트한 뒤 효과가 검증되고 나면 현업 부서의 관심과 지지가 확 올라가지만 그전까지는 ‘모르쇠’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AI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현업과의 협업은 필수적이며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AI 프로젝트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현업 관계자들을 참여시켜 의견을 듣고 설득했다. 우선 프로젝트팀 빌딩을 할 때 비즈니스 기획 파트에 반드시 한 명은 현업에서 파견을 받았다. 그래야 실제로 현업에서 일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고, 나중에 AI를 적용할 때 현업 담당자가 본인 부서에 돌아가 다른 직원들을 설득할 수 있다. 또 모형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 혹은 수시로 현업 부서의 팀장 혹은 임원과 소통하면서 현업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례로 ‘바로’를 도입할 때는 언더라이터가 FP에게 6시간 이내에 심사 결과를 제공하기로 돼 있는 규정을 감안해 편의상 오전에 들어온 사전 심사 건수는 언더라이터가 오후까지 집중 처리하고, 오후에 들어온 사전 심사 건수는 ‘바로’가 심사해 다음 날 아침까지 답변을 제공하기로 업무 루틴을 정했다. 그러자 심사가 지연되는 사례가 줄었다. 아울러 ‘바로’가 자동 심사하는 건수가 늘어날수록 언더라이터가 봐야 할 업무가 줄면서 만족도가 빠르게 높아졌다. 이처럼 현장의 상황을 반영해 ‘바로’의 도입을 신속하게 확산시킬 수 있었다. 최근 신상품 출시로 데이터 테이블이 변경되면서 일시적으로 ‘바로’가 멈춘 적이 있었는데 언더라이터들이 갑자기 옛날처럼 일이 많아졌다며 불평할 정도로 ‘바로’가 일상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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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도입 이후 언더라이터, FP들의 일하는 방식에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과거에는 보험 청약 시 ‘사전 심사(컨설턴트QA)’와 ‘본 심사’ 단계에서 고객의 계약 체결이 가능할지를 두고 병명, 치료 기간 등의 정보를 언더라이터들이 일일이 눈으로 확인해서 승낙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다 업무 물량이 집중될 때는 처리가 지연돼 FP와 고객의 불편이 컸다. 현재는 전체 보험 가입 심사 물량의 15%를 ‘바로’가 자동 심사해 판단하며 룰베이스(Rule-Based) 방식으로 가입 승인하는 물량 30%를 제외한 55%만 사람, 즉 언더라이터가 관여해 심사하고 있다. 언더라이터가 직접 심사해야 하는 업무 역시 ‘바로’가 정리해 제공하는 심사지원정보를 토대로 해서 더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승낙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실패한 과제는 없나?

AI 모형을 개발해 파일럿까지 진행하고도 현업에 적용하지 못한 과제들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모형의 정확도가 떨어질 수도 있고, 해당 부서에서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또 데이터가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아 기대하던 비즈니스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일례로 고객 녹취 데이터(VOC)를 분석하는 과제를 진행했는데 당초에는 고객 음성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업무 프로세스를 바꾸거나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해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실제로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콜센터 데이터의 절반 이상이 업무 처리성 데이터였다. 이런 업무 처리성 데이터로는 프로세스를 바꾸거나 신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다른 회사에서도 이런 시도가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 우리가 막연하게 상상하는 것과 달리 현실적으로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모형을 개발했을 때, 처음 기대한 만큼 대단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과정이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그로부터 인사이트를 도출해 가능한 프로세스를 일부 개선할 수 있고 또 다른 프로젝트에 반영할 수 있다. ‘바로’도 최초 기획 시에는 FP의 사전 질문에 대한 답변을 ‘실시간’ 처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실제 데이터를 모아 모형을 돌려 보니 실시간 처리가 불가능했다. 도입 이후 지속적인 고도화를 통해 준-실시간 답변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올해 하반기 실행할 예정이다.

AI 프로젝트를 하면서 경영진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금융업의 경영진은 문과 출신이거나 연령대가 높은 편으로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이해도는 높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비즈니스에 대한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빅데이터의 중요성을 알고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고, 어떤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보고했을 때 그것이 회사 전체의 전략 혹은 비전과 맞는지를 판단해 프로젝트팀을 격려하고 지지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바로’의 경우 처음 직원들이 웨이브에서 도출한 과제는 본 심사의 언더라이팅에만 자동 심사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보고를 받은 신창재 회장이 직접 FP의 사전 심사 과정에도 도입하자고 제안하면서 프로젝트의 범위가 확대됐다. 그렇게 해서 현재 ‘바로’의 2가지 모듈이 나오게 됐다. 이는 경영진이 현장, 즉 FP와 고객의 니즈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의사결정이었으며 그 덕분에 AI 프로젝트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AI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실무진 입장에서 리더십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최근 금융권에서 디지털 전환과 관련해서 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 고객에게 새로운 고객 경험을 제공하거나, 내부 프로세스의 효율을 높이거나, 빅테크 기업에 협력 또는 대응하거나, 디지털 내부 역량을 높이는 시도와 도전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강조하고 싶은 점은 무엇을 하겠다는 ‘아름다운 계획’에 대한 의사결정도 중요하지만 실제 진행되는 과정에 대한 관심과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어떤 디지털 프로젝트든지 최종적인 결과에 대한 점검과 피드백이 중요하다. 업계에서 디지털 사업을 추진하는 실무진이 갖춰야 할 역량으로 기획력, 개발력뿐 아니라 발표력이 요구된다고들 말한다. 여기서 발표력은 프로젝트의 내용을 효율적으로 요약, 설명함으로써 의사결정자의 동의를 얻어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수많은 의사결정을 하는 경영층이 디지털, 빅데이터/AI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출 수는 없다. 다른 한편으로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 없이 기술적으로만 편향된 경우도 있다. 경영진은 의사결정을 할 때 막대한 인적•물적 예산이 수반되는 디지털 사업이 자칫 발표력에 의지한 결정이 되지 않는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시작과 진행 과정, 특히 결과를 직접 확인하고 챙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디지털 과제가 신문 기사나 홍보의 도구로 활용되는 데 머물 수 있다. 발표력에 의존하지 말고 기획력과 개발력을 확인하고 결과를 살펴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언더라이팅 외에 AI를 활용해 개선할 수 있는 업무 영역이 있다면?

현재 13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서울대 AI 연구원과 공동 진행하고 있는 고객 미래 행동 예측 프로젝트이다. 사람마다 결혼, 출산 등의 이벤트에 따라 생명보험 가입 시기가 제각기 다르다. 이런 데이터를 토대로 고객 군집별로 페르소나를 도출해 고객과 유사한 유형의 사람은 언제 생명보험을 가입할지 예측할 수 있다. 실제로 파일럿 모형을 만들어 실제와 비교해봤더니 약 70% 정도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고객의 페르소나가 구체화되면 FP들이 고객과 상담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FP들이 모든 고객의 소소한 이벤트까지 챙기기는 쉽지 않다. 고객별로 페르소나가 분류되면 FP는 페르소나 정보를 바탕으로 ‘내 고객이 이런 사람이구나’ ‘이런 이벤트를 챙겨야겠구나’라고 고객과 정서적으로 공감함으로써 고객에게 진정 필요한 상품을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파일럿 프로젝트로 90개 정도의 페르소나를 만들었는데 현재 페르소나를 54만 개로 분리하고 이벤트도 현재 72개에서 200개로 늘리는 등 예측 알고리즘을 고도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AI가 앞으로 보험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AI는 최근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어느 정도 AI라는 기술에 익숙해졌으며 부지불식간에 AI를 향유하며 생활하고 있다. 혹자는 AI를 컴퓨터 비전, 자연어 이해, 로보틱스 등에 한정해 이야기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AI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시스템’이며, 이는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일상이다. AI가 최근 부각된 배경으로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데이터의 디지털화를 강조하고 싶다. MIT 미디어랩의 창시자인 니컬러스 네그로폰테는 1995년 그의 저서 『Being Digital』에서 디지털이란 ‘데이터의 모음’들이 최종적으로는 기업의 자산으로 인식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데이터가 비즈니스 가치로 환원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술이 AI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기존에 쌓여만 있던 심사 관련 각종 데이터들이 ‘바로’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비로소 업무 가치를 발현할 수 있는 데이터 자산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자산화된 데이터는 다른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신사업을 하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전 하버드대 교수는 책 『혁신 기업의 딜레마』에서 디지털 환경에 기반한 기존 업의 지속적인 혁신(Sustaining Innovation)뿐 아니라 ‘고객중심적 사고’를 기반으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의 두 가지 방법인 하위 혁신(Low End Innovation)과 신시장 개척 혁신(New Market Innovation)을 중단 없이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금융 마이데이터 사업이 본격화되고 금융뿐 아니라 의료, 공공 데이터까지 개방되는 속도가 빨라지면 기존 보험업의 본질 자체가 바뀔 수 있다. 이에 따라 보험은 기존의 사후 보장 중심의 비즈니스에서 사전 예방과 보장 중심의 비즈니스로 변모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험사도 외부 및 정책 당국의 변화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 할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는 고객을 중심으로 하는 데이터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함으로써 디지털 기반의 헬스 & 라이프 케어 회사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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